여름 소리 풀빛 그림 아이
박선정 지음 / 풀빛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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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그림책 / 그림책비평 2024.8.27.

그림책시렁 1464


《여름 소리》

 박선정

 풀빛

 2023.7.10.



  첫여름이면 개구리노래가 한창이면서 여름새가 텃새하고 부르는 노래가 가득합니다. 한여름이면 바람과 비가 어우러지면서 뭇새와 개구리가 밝히는 노래가 흐드러집니다. 늦여름이면 새로 깨어난 어린 제비에 꾀꼬리에 뜸부기가 기뻐하는 노래에 매무와 풀벌레가 나란히 들려주는 노래가 넘실거립니다. 그리고 뙤약볕이 쏟아지는 들숲바다에서 구슬땀을 흘리면서 뛰노는 어린이가 외치는 노래가 반짝이는데, 이 곁으로 이슬땀을 흘리며 살림집고 일하는 어른이 웃음짓는 노래가 어울립니다. 《여름 소리》라는 그림책이 ‘온누리 여름빛’을 담아낼 수 있으리라고는 여기지 않았습니다. 어쩔 길 없이 ‘서울내기 눈높이’에 머물면서 몇 가지를 조금 건드리려다가 그치리라 느꼈습니다. 시골내기 아닌 서울내기도 빗줄기나 수박맛을 어느 만큼 옮길 수 있을 테지만, 빗방울이 풀잎과 나뭇잎에 떨어질 뿐 아니라, ‘여름새 날갯죽지’에 떨어지는 소리란 하나도 모르겠지요. ‘바람을 쐬는 조그마한 풀개구리 눈망울’을 알아볼 서울내기는 몇 없겠지요. 수박알에 앞서 수박꽃을 그릴 수 있을까요? 수박꽃에 앞서 수박싹을 그릴 수 있나요? 서울은 철없이 12달 늘 똑같은 쳇바퀴입니다. 부디 시골에 조용히 깃들어 열두 달 철빛을 바라보기를 바랍니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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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콜릿 한 조각의 기적 웅진 이야기 교양 3
사토 기요타카 지음, junaida 그림, 황세정 옮김 / 웅진주니어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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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그림책 / 그림책비평 2024.8.26.

그림책시렁 1473


《초콜릿 한 조각의 기적》

 사토 기요타카 글

 주나이다 그림

 황세정 옮김

 웅진주니어

 2022.2.28.



  온누리에서 자라나는 풀꽃나무는 다 다르게 뭇숨결한테 이바지합니다. 사람이 밥으로 삼으라고 태어난 풀은 없고, 사람한테 열매를 내주기만 하려고 태어난 나무란 없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뭇나라는 풀(채소)을 괴롭힐 뿐 아니라 좁다란 땅뙈기에 잔뜩 욱여넣고, 해바람비가 없는 비닐집이나 유리집에 때려박기 일쑤입니다. 더구나 숱한 과일나무는 쇠줄(철사)로 친친 동여매거나 묶어서 들볶아요. 곰곰이 보면 풀밥(채식)으로 누린다는 낟알과 열매는 “풀꽃나무 피눈물”입니다. 아니, “풀꽃나무 피고름”을 마치 ‘몸에 좋은 밥’이라고 여기면서 ‘비건(비거니즘)’을 외치는 얼개이기도 합니다. 《초콜릿 한 조각의 기적》을 읽었습니다. 열일곱 살과 열네 살인 두 아이하고 함께 읽었습니다. 두 아이는 이 그림책을 읽으면서 ‘카카오를 다루는 척하다가 멈췄다’고 느낀다고 하는군요. 달콤이(초콜릿)는 왜 놀라울(기적)까요? 달콤이로 삼는 카카오콩은 푸른별에 언제 어떻게 뿌리를 내리면서 들숲을 어떻게 보듬었을까요? 사람만 즐기는 낟알이나 열매란 없습니다. 벌레나 나비나 새나 짐승은 카카오라는 콩을 비롯해서, 카카오잎과 카카오나무를 어떻게 마주하는 이웃일까요? ‘먹고살기’는 대수롭되, 먹고살기에만 빠지면 죽어요.


ㅅㄴㄹ


#佐藤?隆 #junaida #ひと粒のチョコレ?トに


+


《초콜릿 한 조각의 기적》(사토 기요타카·주나이다/황세정 옮김, 웅진주니어, 2022)


초콜릿은 디저트의 황제

→ 달콤이는 으뜸 뒷가심

→ 달달이는 꼭두 입가심

2쪽


종류도 다양해 무엇을 먹어야 할지 망설여질 정도입니다

→ 갈래도 많아 무엇을 먹어야 할지 망설입니다

→ 여러 가지라서 무엇을 먹어야 할지 망설입니다

3쪽


기름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 기름으로 빚지만

→ 기름덩어리이지만

5쪽


기름을 열을 가해 녹인 다음

→ 기름을 끓여 녹인 다음

→ 기름을 익혀 녹인 다음

6쪽


카카오 콩이라 불러요

→ 카카오콩이라 해요

9쪽


변신하는 계기가 되었어요

→ 바뀔 수 있었어요

→ 거듭나는 발판이었어요

28쪽


알맞은 온도로 녹였다가 다시 굳혀 결정을 만들어 내는

→ 알맞게 녹여서 다시 굳히는

→ 알맞게 녹여서 다시 알꽃으로 빚는

36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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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숲

책숲하루 2024.8.25. 이웃길


―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 (국어사전 짓는 서재도서관)

: 우리말 배움터 + 책살림터 + 숲놀이터



  부산이웃님하고 고흥으로 돌아옵니다. 늦은낮부터 느슨하게 달려서 고흥에 닿았습니다. 저는 우리 보금자리에 사흘 만에 돌아와서, 비로소 등허리를 펴고 누워서 느긋하게 한밤을 보내었고, 부산이웃님은 아마 ‘고흥 발포 바닷가’에 깃든 ‘빅토리아호텔’에서 밤빛과 바다빛을 두루 품으면서 하루를 마무르겠지요.


  고흥 발포에 깃든 ‘빅토리아호텔’ 하루삯은 그리 안 쌉니다. 얼추 8만 원 언저리입니다. 서울이나 큰고장에서는 이만 한 길손집 하루삯이 3∼4만 원이라 여길 만하니 “뭔 시골에서 잠삯이 이리 비싸?” 하면서 놀라거나 도리도리할 만합니다.


  그런데 곰곰이 헤아려 보기를 바라요. 서울이나 큰고장에서는 하루삯 30만 원이나 100만 원이라 하더라도, 밤새 시끄럽게 오가는 쇳덩이(자동차) 소리가 넘칩니다. 길손집뿐 아니라 둘레가 너무 환해서 밤에 별 한 톨 못 봅니다.


  이와 달리 고흥 발포 바닷가 ‘빅토리아 호텔’은 일찌감치 ‘자잘한 불’은 다 꺼놓기에, 둘레가 그저 새카맣습니다. 광주청소년수련원이라는 쓰레기더미가 가까이에 갑자기 생긴 탓에 그쪽으로는 짜증스러이 시끄럽고 훤하지만, ‘빅토리아 호텔’ 둘레는 그저 고요하고 호젓한 밤바다에 밤하늘인데, 2024년 8월 25일 밤에는 하늘에 구름이 티끌조차도 없기에 미리내(은하수)가 반짝반짝 가로질러요.


  우리나라에서 멀리보기(망원경)가 없이 맨눈으로 미리내를 하염없이 올려다볼 수 있는 곳이 몇 군데나 있을까요? 저는 우리나라에서 “밤에 별이 쏟아진다”고 하는 곳을 거의 다 가 보았습니다만, 전남 고흥만큼 별이 쏟아지는 곳은 없더군요. 강원 양구나 고성에서 가시울(DMZ) 가까운 곳에서 올려다보는 밤하늘이라면 그곳에서도 밤하늘에 별이 많을 듯싶지만, 막상 그렇지는 않아요. 왜냐하면, 우리나라 가시울(DMZ)은 밤이면 불을 허벌나게 밝힙니다. 이른바 ‘경계근무’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강원 양구 가시울에서 싸움살이(군대생활)를 했지만, 밤에 지킴이로 설 적에는 별을 보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불빛이 너무 환하거든요.


  오롯이 밤별과 밤바다를 누리면서, 이 늦여름 끝자락에 풀벌레랑 소쩍새 노래가 어우러지는 밤을 누릴 수 있는 ‘8만 원 하루삯 길손집’은 오히려 값이 눅다고 여길 만합니다. 저는 늘 생각해 봅니다. 우리나라에서 살아가는 모든 사람이 밤을 밤빛 그대로 바라보고 품으면서 “밤이란, 이렇게 별이 쏟아지면서 눈물이 샘솟는 꿈길이로구나!” 하고 깨달으시기를 바라요. “낮이란, 이렇게 끝없이 풀벌레랑 멧새가 노래하면서 온마음을 환히 틔우는 일살림이로구나!” 하고 알아차리시기를 바랍니다.


ㅅㄴㄹ


* 새로운 우리말꽃(국어사전) 짓는 일에 길동무 하기

http://blog.naver.com/hbooklove/28525158


*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 지기(최종규)가 쓴 책을 즐거이 장만해 주셔도 새로운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짓는 길을 아름답게 도울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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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빛 / 숲노래 책읽기

2024.8.24. 말모이



  전주서 진주로 건너가는 아침에 기차에서 적는다.


  1982년에 들어간 어린배움터에서는 주시경을 따로 가르쳤다. 그즈음에는 세종임금보다 주시경 님을 높이 여겼다고 느낀다. 아무렴, 마땅한 일인데, 주시경 님은 우두머리가 아닌 우리 곁에서 나란히 숨쉬며 살던 어른이자 홀로서기(독립운동)에 나선 분이다.


  어느 때부터인지 독립운동가 이름에서 슬그머니 주시경을 솎더니, 세종임금만 높이 받드는 모임과 나라(정부)가 또아리를 틑고, 한글과 말모이를 아예 지우다시피 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따로 영화 〈말모이〉가 안 나왔다면 감쪽같이 잊힐 수 있었다. 그런데 영화 〈말모이〉가 나오기는 했되, ‘한글과 말모이와 주시경’이 아닌, ‘조선어학회와 큰사전과 말모이’라는 다른 이름이 오히려 크게 나부낀다.


  남북녘 말글지기(언어학자)는 다 주시경한테서 배웠을 텐데, 남녘도 북녘도 저마다 끼리끼리 학벌과 단체로 갈려서 그들 밥그릇으로 치닫는다.


  그러고 보면, 주시경 님을 빼고는 말글지기는 하나같이 어렵게 글을 썼고 한문을 사랑했다. 허웅과 몇몇 분을 빼고는 그야말로 ‘한문범벅 국어학’을 할 뿐이라고까지 할 수 있다.


  왜 ‘사전’이라 안 하고 ‘모이’라 했을는지 우리 스스로 생각할 노릇이다. ‘사전’은 일본말이거든. 군사제국주의로 쳐들어온 일본이 휘두르는 낱말을 어찌 함부로 쓰겠는가? 더구나 ‘국어국문학’이란 이름은 “군사제국주의 일본”이 새로 엮은 말이고, '국어국문학 = 일어일문학'이다. 이 얼거리가 거의 100해에 이르며 우리나라와 일본을 휘감았고, 이제 일본은 '국어국문학'이라는 군사제국주의용어를 안 쓴다.


  말모이가 왜 말모이였는지, 이 작은 말씨 한 톨을 이 땅에 심으려고 오지게 땀흘린 어른을 헤아릴 수 있을 때라야, 우리는 저마다 스스로 참다이 살림눈을 뜨고 어깨동무를 이루는 새길을 걸을 만하지 싶다.


  나는 걷는다. 등짐에 책을 잔뜩 담고서 뚜벅뚜벅 걷는다. 지난날 주시경 님이 주보따리로 살던 길을 더듬는다. 나는 아무래도 숲보따리로 천천히 걸어간다고 느낀다. 나무한테서 받은 종이에 이야기를 얹은 책을 읽고 쓴다. 손으로 종이에 노래를 쓰고서 이웃한테 건넨다.


  나는 또 쓰고 새로 짓는다. 옛어른은 말모이를 일구려 했으니, 나는 말숲을 가꾸려고 한다. 말꽃을 피울 말씨를 심고서 숲노래를 부르려고 한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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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빛 / 숲노래 책읽기

2024.8.24. 나는 야한 여자가 안 좋다



  1998년 어느 날, 서울 용산 헌책집 〈뿌리서점〉에서 책벌레 어른 한 분이 불쑥 묻는다. “그런데 최종규 씨는 마광수 교수를 어떻게 생각해요?” “네? 마광수요? 그런 사람 책을 뭣 하러 읽어요?” “읽어 보셨어요?” “아뇨. 굳이 읽어야 하나 싶어서 쳐다보지도 않았습니다.” “안 읽어 보고서 그렇게 말해도 되나요?” “어, 어, 그런가요? 음, 좀 생각해 볼게요. 그래요, 어르신 말씀이 맞네요. 마광수라는 사람을 읽어 볼 만한지 아닌지는, 먼저 그 사람이 쓴 책을 차곡차곡 읽어 보고서 말해야겠습니다. 제가 잘못했습니다. 부끄러울 모습을 미리 짚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라는 책 있잖아요? 그 책부터 읽어 보세요.”


  이날 헌책집 〈뿌리서점〉에서 바로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를 샀다. 이날 밤을 하얗게 새우면서 깜짝 놀랐고, 책집에서 자주 만나서 말을 섞는 책벌레 어른한테 새삼스레 창피했다. “어르신, 마광수 교수 책 잘 읽었습니다.” “그래요? 어떻든가요?” “할 말이 없을 만큼 창피했습니다. 책이름만 보고서 무슨 씨나락 까먹는 “야한 여자가 좋다”인가 싶었는데, 크게 뒷통수를 맞았습니다.” “마광수 교수는 윤동주 전문가예요. 우리가 아는 윤동주 이야기는 마광수 교수가 정리했어요.” “네? 윤동주를요?” “나중에 찾아보세요.”


  1998년 첫봄에 처음 읽고, 2008년 즈음 다시 읽고, 2021년과 2024년 늦여름에 새로 읽으면서도,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는 그냥 태어난 책이 아니라고 느낀다. 1989년에 마광수 교수는 왜 책이름을 이렇게 붙였을까? 차디찬 사슬나라(박정희 독재)에서 겨우 풀려났고, 끔찍한 굴레나라(전두환 독재)를 겨우 떨쳐냈지만, 막상 이 나라는 온곳이 갑갑하고 ‘대학생·운동권’조차 ‘선후배 위계질서’를 내세워서 ‘대학교에서조차 주먹질(구타·폭행)’이 버젓했고, ‘목소리만 내는 허울(위장 진보)’이 글밭 구석구석에 고스란했다. 우리는 우리 민낯을 그대로 밝히고 짚으면서 새길을 열 만한 눈길과 머리와 손길과 발걸음과 마음이 있을까?


  이를테면, 마광수 교수가 1971년 11월에 쓴 어느 글을 보면, “우리 대학생들은 누구나 막연히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갖고 있다. 그러기에 학교 앞에는 술집들이 날로 번창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모두들 해답을 찾기를 두려워하고 소극적인 소시민으로 변해 가고 있는 것이다. 나도 역시 그렇다. 그러나 큰 해답은 바라지 못한다 하더라도 우선 나날의 일상에 행복하고 건강하고 활기있게 임할 수 있는 방도쯤은 있는 것이 아닐까.(281쪽)” 같은 대목이 있다. 1971년 11월이면, 전태일 님이 불꽃으로 스러지고서 고작 한 해 뒤이다. 숱한 서울사람도 시골사람도 가난에 겨워 입에 풀바르기조차 버겁던 즈음이다. 이런 때에 숱한 ‘서울내기 대학생’은 ‘대학교 앞 술집’에서 아무렇지 않게 술값을 썼다면, 또 1980년대와 1990년대와 2000년대에도 똑같은 쳇바퀴가 흘러온 이 나라요, 적잖은 ‘대학생·운동권’은 으레 술판과 노닥판에 절어서 보낸 속낯을 돌아본다면, 우리는 이 나라가 왜 뒤틀리거나 비틀린 수렁을 못 씻는지 환하게 알아차릴 수 있다고 본다.


  술값과 옷값과 노닥값으로 10만 원을 쓸 적에 책값(배움값)으로 10만 원을 함께 쓸 줄 모른다면, 그이는 대학생도 운동권도 진보도 좌파도 보수도 우파도 아닌, 그저 바보라고 느낀다. 쇳덩이(자가용)를 장만하려고 1천만 원을 썼다면, 책값으로 적어도 나란히 1천만 원을 쓸 줄 알아야 비로소 사람답다고 느낀다. 잿집(아파트)을 얻으려고 10억 원을 들인다면, 책값으로 적어도 1억 원을 들일 줄 알아야 비로소 ‘철든 사람’이라고 느낀다.


  저이가 꼰대라고 나무라지 않아도 된다. 내가 나부터 바꾸면 넉넉하다. 그놈은 갑갑하고 갇혔다고 손가락질하지 않아도 된다. 우리가 스스로 서울을 떠나서 시골에서 조그마한 보금자리를 꾸리면서 들숲바다를 언제나 품는 숲살림으로 걸어가면 아름답다.


  아직 애송이 책벌레로 뒹구느라 “나는 야한 여자가 안 좋다”고 중얼대면서 마광수를 뭣 하러 읽어야 하느냐고 투덜거리던 철바보를 넌지시 타이른 책벌레 어른을 떠올린다. 거짓말이나 눈속임이나 훔침질이나 베낌질을 하는 무리는, 언제나 감추거나 숨기거나 덮거나 가린다. 참말이나 참살림이나 참빛이나 참넋이나 참글로 나아가려고 하는 작은이는, 늘 환히 드러내고 밝게 나타내며 맑게 웃는 매무새로 온누리를 노래한다.


  글을 어렵게 꼬거나 꾸미는 이는 거짓말꾼이다. 글을 쉽게 안 쓰면서 멋을 부리거나 치레하는 이는 사랑을 모른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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