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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밤이 끝나가요, 때마침 시는 너무 짧고요 ㅣ 창비시선 458
최지은 지음 / 창비 / 2021년 5월
평점 :
숲노래 노래꽃 / 문학비평 . 시읽기 2026.4.12.
노래책시렁 544
《봄밤이 끝나가요, 때마침 시는 너무 짧고요》
최지은
창비
2021.5.25.
모든 책은 늘 느긋이 읽으면 됩니다. 느긋이 읽기에 넉넉히 스밉니다. 느긋하지 않으니 겉을 훑다가 잊힙니다. 모든 하루는 느루 돌보면 됩니다. 느루 돌보기에 차분합니다. 느루 돌보지 않으니 겉을 꾸미다가 헤맵니다. 《봄밤이 끝나가요, 때마침 시는 너무 짧고요》를 읽는 내내 우리집으로 늘 찾아오는 크고작은 뭇새를 떠올립니다. 저는 시골내기로 살아가느라 언제나 새와 나비와 풀벌레와 개구리와 뱀과 박쥐와 거미와 애벌레와 딱정벌레와 노린재를 이웃으로 맞이합니다. 팔랑이는 나비는 부전나비나 모시나비나 네발나비나 흰나비나 제비나비나 범나비일 수 있는데, 어느 갈래인 몸을 입든 모두 다른 날갯짓과 빛과 숨결입니다. 이따금 서울로 일하러 다녀올 적에는 너무나 물결치는 사람을 스치는데, 시골에서는 벌떼를 보더라도 ‘벌 1 벌 2 벌 3 ……’ 다 다르게 이름을 붙일 수 있지만, 서울에서 너울대는 사람바다라면 누가 누구인지 종잡지 못 하고 이름도 못 붙이겠다고 느낍니다. 그런데 사람뿐 아니라 집도 쇠(자동차)도 너무 많고 막혀서 ‘이름’을 묻거나 들을 엄두를 못 내겠습니다. 서울에서 서울내기가 쓰는 글이란, 서울스럽게 멋을 부려야 하되 그저 똑같지는 않으려고 아주 힘들여야 하는 틀입니다. 서울옷을 벗고서, 서울티를 안 붙이면서, “서울에서 사는 나”가 아니라 “나로 살아가는 나”를 바라본다면, 노래는 그저 놀이하는 가락이 될 만하다고 봅니다.
ㅍㄹㄴ
미루고 미루는 잠. 먼저 잠드는 사람이 있고 잠이 들려 하는 사람이 있고. 잠들기 위해 먼 길을 돌아온 사람이 있고. 한 사람은 깨어 있기로 한다. 어금니에 낀 딸기씨를 혀끝으로 건드리면서 잠은 어떻게 드는 거더라. 서로의 잠을 위해 잠자는 우리들. (우리들/14쪽)
깨어나는 망원동의 잠. 창밖엔 아직도 눈이 내리는데, 메니에르. 메니에르. 일어날 수가 없다. 이럴 때면 너는 저 금빛 물고기가 되어버린 건 아닐까 생각하고. 물속으로 사라진 아버지를 생각하고. 그 뒤를 따라 물에서 잃어버린 너의 가까운 영혼들을 생각하고. 금빛 물고기 좁은 어항을 돈다. (메니에르의 숲/29쪽)
경대 앞에서 몰래 화장을 하고 머리를 땋고 자라는 내 몸을 때때로 혼자 훔쳐봤는데 그럴 때면 이상하게 누군가 나를 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안심이 되곤 했다. 그날 이후로 내가 가는 곳마다 커다란 거울이 내 앞에 섰다. (영원/13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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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밤이 끝나가요, 때마침 시는 너무 짧고요》(최지은, 창비, 2021)
가끔씩 새우가 튀어오르기도 하는 여름날의 투명한 꽃병
→ 가끔 새우가 튀어오르기도 하는 여름날 맑은 꽃담이
10
어머니의 이야기는 열을 내려줍니다
→ 어머니 이야기로 불이 식습니다
→ 어머니 이야기로 불을 재웁니다
11
이불을 덧대어 잠자리를 만든다
→ 이불을 덧대어 잠자리를 여민다
→ 이불을 덧대어 잠자리를 꾸린다
→ 이불을 덧대어 잠자리를 둔다
14
잠은 어떻게 드는 거였더라. 서로의 잠을 위해 잠자는 우리들
→ 어떻게 잠들더라. 서로서로 재우려고 잠자는 우리들
14
모든 것이 희미해집니다 무거워집니다 마침내 기록적인 폭설
→ 모두 흐립니다 무겁습니다 마침내 눈이 펑펑
→ 모두 뿌옇습니다 무겁습니다 마침내 눈보라
→ 모두 가물댑니다 무겁습니다 마침내 함박눈
22
때마침 알람이 울리고 부재중 전화를 확인합니다
→ 때마침 울리고 못받음말을 살핍니다
→ 때마침 찌르릉 울고 못받음을 봅니다
25
내 눈동자 안으로 미모사
→ 내 눈망울로 잠풀
→ 내 눈속으로 잠풀
38
나는 어지럼이 심해지고 간밤의 통화를 되짚으면서
→ 나는 더 어지럽고 간밤에 나눈 말을 되짚으면서
→ 나는 몹시 어지럽고 간밤 말을 되짚으면서
84
그녀들이 아껴 쉬는 숨소리
→ 할매들이 아껴 쉬는 소리
→ 할매들이 아끼는 숨소리
110
지금 책상 위 스노우볼 속에는
→ 오늘 책자리 눈꽃공에는
→ 이제 책자리 눈가루공에는
115
경대 앞에서 몰래 화장을 하고
→ 거울 앞에서 몰래 꽃꾸미고
→ 거울판 앞에서 몰래 꾸미고
137
나는 햇빛 속에 내려앉는 먼지 같은 존재였던 것 같아요
→ 나는 햇빛 사이로 내려앉는 먼지 같았어요
→ 나는 햇빛을 받으며 내려앉는 먼지였어요
140
무한의 깊이를 누리며
→ 가없는 깊이를 누리며
→ 끝없는 깊이를 누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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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열두 달 소꿉노래》,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를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