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버리면 살아나요 - 지구를 구하는 분리배출 생활을 위한 50가지 질문, 2022 우수환경도서
손영혜 지음 / 목수책방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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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칠읽기 . 숲노래 책읽기 / 인문책시렁 2026.5.31.

책으로 삶읽기 1127


《잘 버리면 살아나요》

 손영혜

 목수책방

 2020.10.25.



예부터 시골에서 흙을 만지면서 손수짓기를 하는 사람을 팽개친 나라(정부·국가)이다. ‘나라’란 이름을 내세운 무리는 언제나 모든 ‘나(사람들)’를 억누르고 짓밟으면서 길들이는 굴레를 씌웠다. 나라가 흙사람(농사꾼)한테 무슨 짓을 일삼았는지 돌아봐야 한다. 나라는 언제나 낛(세금)을 무겁게 떼먹었고, 흙사람을 싸울아비(군인)으로 데려가서 내몰었고, 돌담(성곽)을 쌓으라느니 임금채(궁궐)를 세우라느니 부려먹었다.


오늘날 나라를 보면, ‘팔기(수출)’를 하려고 사람들을 서울로 불러모아서 값싸게 부려먹었다. 만듦터(공장)를 커다랗게 마련해서, 다 다른 사람이 그저 똑같이 움직이는 틀을 짜고는, 톱니바퀴(공장 부속품)로 쓰다가 버린다. 톱니바퀴를 잘 돌리려고 서울(도시)을 크게 굴린다. 모두 서울로 보내고, 죄다 서울로 몰리고, 몽땅 서울에서 쓰고 버리고, 모조리 서울에 기대느라, 누구나 들숲메바다를 잊는 늪이다.


《잘 버리면 살아나요》를 읽었다. 글쓴이는 ‘서울 잿집(아파트)’에서 살아가면서 ‘나라에서 시키는’ 대로 ‘나눠버리기(분리배출)’만 하면 되는 줄 여겼다고 한다. 참말로 나라에서는 이렇게 가르치고 길들인다. 배움터에서도 이와 같다. 나눠버리기를 한 다음에 무슨 일이 있는지 밝히지 않는다. 아니, 처음부터 “버려야 할 것을 왜 만드는지”부터 안 밝힌다. “버려야 하는 것”이라면 처음부터 안 만들고 안 팔고 안 써야 맞을 텐데, 이 대목을 살피는 눈길을 만나기란 어렵다.


더 들여다보면 ‘짓기’와 ‘살림’을 안 가르치는 나라요 배움터이다. ‘손수짓기’와 ‘손수살림’이라는 길을 닫아건 나라와 배움터이다. 손을 써서 짓는 사람은 “버릴 것”을 만들지 않는다. 버려야 하는데 굳이 손품을 들일 까닭이 없다. 살림을 손수 펴는 사람은 두고두고 쓸 길을 헤아린다. 두고두고 쓰지 않는 살림이라면 손빛을 담을 까닭이 없지.


“잘 버려”야 살아나지 않는다. “안 버려”야 살아나는데, “쓰임새가 없어서 버려야 할 것을 안 버린”대서 살아나지 않는다. “두고두고 쓰면서 한결같이 이을 살림”을 저마다 손수 마련해서 즐겁게 쓰고 물려줄 때라야 살아난다. 《잘 버리면 살아나요》는 내내 “잘 버리기”만 줄거리로 삼는다. 짓지 않을 적에는, 살림을 안 할 적에는, 두고두고 물려줄 길을 살피지 않을 적에는, 함께 밝힐 푸른숲을 바라보지 않을 적에는, 그저 죽음늪일 뿐이다.


서울을 풀어헤쳐야 살아난다. 서울에 ‘무늬만 숲’이 아닌 ‘들숲메’가 우거져야 살아난다. 온나라가 숲빛과 들빛과 멧빛이어야 살아난다. 버려야 한다면 오직 하나, 서울을 버려야지. 잿집(아파트)을 버리고 달구지(자가용)를 버려야지.


ㅍㄹㄴ


저는 매주 화요일 아파트에서 분리배출을 정말 열심히 했어요. 왜냐하면 우리가 열심히 분리배출을 하면 당연히 모두 재활용될 것이라고 생각했거든요. 26쪽


가축을 기르기 위해 필요한 사료를 만들려면 엄청난 살충제와 비료가 필요하고, 이 과정에서 많은 화석연료를 사용하기 때문이지요. 33쪽


직접 조사를 해 보니 포장이 별로 안 되어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전통시장도 대부분 플라스틱 포장이 되어 있었고, 48쪽


사실 개인 텀블러를 가지고 다니면 좋기는 하지만, 늘 가지고 다니는 일이 쉽지만은 않습니다. 62쪽


쓰레기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우리가 애용하는 물건들의 정체를 하나씩 알게 되자 저는 충격에 빠졌습니다. 그중에 대표적인 것이 바로 물티슈입니다. 88쪽


지구를 사랑하는 우리는 치약을 어떻게 사용하고 버려야 좋을까요? 우선 가위로 입구 부분을 3센티미터 정도 남기고 자릅니다. 127쪽


+


《잘 버리면 살아나요》(손영혜, 목수책방, 2020)


선생님들과 대화하다 나온 이야기입니다

→ 길잡이와 이야기하다 나온 말입니다

→ 샘님과 이야기하다 나온 대목입니다

8쪽


쓰레기 분리배출을 할 때마다 화가 많이 납니다

→ 쓰레기 따로버림을 할 때마다 아주 불납니다

→ 쓰레기를 가를 때마다 무척 부아납니다

8쪽


업사이클링 교육이 끝난 후 조용히 앉아서 수업을 듣던 수강생이 이런 질문을 던졌습니다

→ 손빛살림을 다 가르치니, 조용히 앉아서 듣던 분이 이렇게 물어봅니다

→ 되살림길을 모두 가르치니, 조용히 앉아서 듣던 분이 이렇게 여쭙니다

8쪽


땅에다 묻어서 처리하기 때문에 쓰레기를 묻을 매립지 확보가 문제입니다

→ 땅에다 묻어서 버리기 때문에 쓰레기를 묻을 땅부터 마련해야 합니다

→ 땅에다 묻기 때문에 쓰레기를 묻을 땅부터 얻어야 합니다

15쪽


당연히 모두 재활용될 것이라고 생각했거든요

→ 마땅히 모두 되쓰리라 여겼거든요

→ 그냥 모두 살려쓰리라 보았거든요

26쪽


레진resin 즉, 수지樹脂는 소나무와 전나무 같은 나무에서 나오는 점도 높은 액체 또는 그것이 산화해 딱딱하게 변한 것을 의미합니다

→ 나무기름은 소나무와 전나무 같은 나무에서 나오며, 끈적하거나 딱딱하게 굳어요

→ 소나무와 전나무 같은 나무에서 나오는 나무물은 끈적하거나 딱딱하게 굳어요

74쪽


거짓으로 표시한 경우 과태료가 부가됩니다

→ 거짓으로 적으면 값을 치릅니다

→ 거짓으로 밝히면 어긴값을 냅니다

80쪽


재생용지를 사용하면

→ 살림종이를 쓰면

→ 되종이를 쓰면

→ 헌종이를 쓰면

104쪽


하나하나 살피며 평소에 쓰레기 버리는 습관을 짚어 보는 시간을 가져 보세요

→ 하나하나 보며 그동안 쓰레기를 어떻게 버렸는지 짚어 보세요

→ 하나하나 짚으며 여태 쓰레기를 어떻게 버렸는지 살펴보세요

168쪽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과 노래를 쓴다. 숲을 품은 시골에서 산다. 살림을 짓는 하루를 가꾼다. 《열두 달 소꿉노래》,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를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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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읽기 / 가난한 책읽기

미운나무



  오늘은 미국으로 글월을 부치려고 읍내로 나온다. 책을 부치려다가 우표값이 세려나 싶어서 글종이만 꾸린다. 무게를 달고 보니 얼마 안 비싸다. 다만 배로 갈 테니 한 달은 걸리겠지. ems가 있다고 하니 이다음에는 그 길을 써 볼까 싶다. 나라안에서 주고받는 글월만 오래 쓰다 보니, 나라밖으로 글월을 보내는 길을 까맣게 잊었네.


  고흥읍으로 나가는 시골버스를 마을앞에서 기다리자니, 마을할매 두 분이 나무를 미워하는(저주하는) 말을 한참 퍼붓는다. 옆에 서서 한귀로 흘린다. 그저 빙긋빙긋 웃으며 노래 한 꼭지를 새로 쓰고서 책을 읽는다. 아무래도 이 시골 어느 누구도 스스로 배우려 하지 않으면 나무가 무엇이고 풀이 무엇이며 숲이 무엇인지 그저 모를밖에 없다. 바다하고 비하고 샘과 내가 어떻게 얽히는지 마냥 모르겠지. 그런데 땅을 만지는 일을 하는 사람한테 땅빛과 흙빛과 풀빛과 숲빛과 나무빛을 제대로 들려주지 않는다면, 앞으로 이 나라는 얼마나 더 망가지려는 셈일까.


  풀죽임물(농약)을 뿌리면 ‘심은 씨앗’을 빼고서 다른 풀을 싹 잡는 듯 여기는데, 개미도 거미도 풀벌레도 개구리도 벌나비도 새도 몽땅 죽인다. 무엇보다도 시골사람 스스로 마시는 물을 망가뜨리고, 시골에 흐르는 바람도 더럽힌다. 죽음켜(비닐)를 땅에 덮으면 얼핏 풀잡이를 하는 듯 여기는데, 죽음켜는 고스란히 쓰레기요, 죽음켜가 해바람비에 닳아서 여기저기 뒹굴면 땅도 흙도 들도 숲도 마을도 더럽힌다. 죽음거름(화학비료)을 논밭에 들이부으면 얼핏 더 많이 거두는 듯 보이지만, 죽음거름을 쓰는 논밭은 해마다 싯누렇게 앓으면서 죽어간다. 죽음거름을 쓰면 그때부터 죽음거름이 없이는 아무것도 못 거둔다. 박정희 새마을바람이 일으킨 짓은 ‘ㅅㅈ(세죽음 : 풀죽임물·죽음켜·죽음거름)’이다. 이 ‘ㅅㅈ’를 걷어치울 때라야 시골이 살아날 수 있다.


  한집에서 아이랑 살아가는 나날이라면, 나무가 얼마나 이바지하는지 알 텐데, 아이가 있더라도 외려 아이한테 ‘미운나무’라고 자꾸 읊으며 길들일 수 있다. 곰곰이 보자. 우리 마을에서 나무를 돌보고 새로 심는 할배가 한 분 있는데, 그동안 지켜본 바로는 다들 “나무 심는 할배”를 몹시 싫어하더라. “쓰잘데기없는 짓”을 한다는 뒷말을 숱하게 하더라. ‘나무할배’ 한 분을 깎아내리는 말을 듣고 싶지도 않아서 마을모임에 발을 끊기도 했다.


  우리 마을에서 ‘나무할배’는 이제 등허리가 나가서 엉금엉금 다니시기에 나무를 더는 못 심는다. 언젠가 할배는 “내가 죽고 없어도, 이 마을에 늙은이가 다 죽고 없어도, 나무는 남지 않겠소? 나무가 남으면 나중에 마을도 다시 살지 않겠소? 그러니 나무를 심지. 보쇼, 최 선비. 저그 언덕에 자라는 나무는 내가 다 심었소. 허허, 봄마다 꽃이 발갛게 올라오는데 참 보기 좋지 않소?” 하며 웃으셨다. 아마 나무할배도 마을 다른 모든 할매할배가 이녁한테 “쓰잘데기없는 짓”을 한다고 뒤에서 수군거리는 말을 익히 들었겠지.


  나무가 서야 겨울이 포근하다. 나무가 둘러야 여름이 시원하다. 나무를 심고 돌보기에 마을을 비롯해서 이 별이 빛난다. 나무 한 그루 못 자라는 모래벌(사막)에 기름이 퐁퐁 솟기에 떼돈을 버는 나라가 제법 있는데, 돈과 기름만으로는 무너지게 마련이다. 숱한 ‘기름나라(산유국)’는 하나같이 먹을거리를 먼나라에서 사다먹는다. 숱한 기름나라는 기름을 팔아서 벌어들인 어마어마한 돈으로 ‘아름살림’이 아닌 ‘겉멋내기’나 ‘싸움질(전쟁무기 개발)’로 치닫더라. 오늘날 우리나라는 잇(반도체)으로 먹고산다고 외치는데, “잇(반도체)을 판 돈으로 먹을거리를 사들이기”에 살아남을 뿐이다.


  기름이나 잇을 팔아서 먹을거리를 먼나라에서 사들이면 ‘큰나라·좋은나라’일까? 나무 한 그루를 누구나 마당에 심고서 보살필 수 있어야 비로소 아름나라이지 않을까? 나무 한 그루가 푸르게 서지 않는 서울이나 시골이라면 이미 죽음터이지 않은가? 나무 한 그루가 어떤 숨빛인지 들려주거나 가르치거나 이야기하는 배움터나 마을이나 나라나 집이 아니라면, 이미 우리는 사람빛을 팽개친 셈이지 않은가? ‘밉나무’가 아니라 ‘푸른나무’와 ‘살림나무’인 줄 알아보고 얘기하고 아낄 노릇이다. 나는 어느 책을 손에 쥐든, 너른숲에서 부는 바람을 마신다. 모든 책은 나무요, 모든 책은 숲이며, 모든 책은 파란바람을 머금은 풀 한 포기요, 모든 책은 푸른들을 이루고 푸른숲으로 일렁이는 푸른빛이니까. 2026.4.29.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과 노래를 쓴다. 숲을 품은 시골에서 산다. 살림을 짓는 하루를 가꾼다. 《열두 달 소꿉노래》,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를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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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제 호타루 2 - SL Comic
토사야 코우 지음, 송재희 옮김 / 디앤씨미디어(주)(D&C미디어)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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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그림꽃 / 숲노래 만화책 . 만화비평 2026.5.31.

책으로 삶읽기 1128


《고제 호타루 2》

 토사야 코우

 송재희 옮김

 디앤씨미디어

 2026.3.20.



《고제 호타루 2》(토사야 코우/송재희 옮김, 디앤씨미디어, 2026)을 읽었다. 살아남으려고 악쓰며 버티는 아이가 한달음에 소릿가락에 눈뜬다는 줄거리를 짜내고 잇는다. 눈먼 노래꾼은 멧숲길을 하염없이 헤매듯 걷고서야 이웃마을에 깃들어 노래마당을 편다지. 노래꾼은 다른 노래꾼한테서 노래를 배운다고만 나오는데, 우리가 누리고 부르는 모든 노래는 들숲메바다에서 태어났다. 우리는 저마다 빛으로 태어났되, 노랫가락은 “빛으로 태어난 다른 곳”인 들숲메바다에서 움트게 마련이다. 그렇게 멧길을 걷고, 그렇게 나뭇잎소리와 새소리를 듣고, 그렇게 빗소리와 물소리를 들었을 텐데도, 들숲메에서는 아무런 노랫가락을 못 배운다는 줄거리는 아리송하기만 하다. “다른 사람과 어울린다는 모둠살이(사회생활)”에서만 배운다는 줄거리를 짜려고 하기에 꽤 억지스러울밖에 없다고 느낀다. 노래를 짓거나 부르는 사람들이 왜 들숲메바다에 안겨서 소릿결을 가다듬으려고 했는지 조금이라도 눈여겨본다면, 이렇게 줄거리를 성글게 짜면서 붓끝마저 성글지 않으리라.


ㅍㄹㄴ


“꿈을 꾸며 죽고 싶으면 할아버지한테 돌아가서 산이든 강이든 혼자서 죽어라.” 19쪽


‘넌 혼자가 아니구나. 엄마가 생각했던 것과는 달라도, 이렇게 누군가와 연결될 수 있는 거구나.’ 102쪽


‘사람이나 마음과 마찬가지로 노래도 변해 간다. 하지만 지금 나는 이 노래가 어떻게 태어났는지 알고 있다.’ 163쪽


#ごぜほたる #十三野こう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과 노래를 쓴다. 숲을 품은 시골에서 산다. 살림을 짓는 하루를 가꾼다. 《열두 달 소꿉노래》,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를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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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읽기 / 가난한 책읽기

투표 법 시골 할매 밭일



  열흘 앞서 마을 할매네 마늘밭 일손을 도왔다. 할매는 곤드레밭 일손도 도와주기를 바라셨고, 그러마 했다. 할매가 얘기한 날 05시에 곤드레밭에 갔더니 아무도 없다. 한참 기다리다가 집으로 왔다. 할매가 힘들어서 쉰다고 여겼다. 엊저녁에 할매가 전화했다. “어이, 작가네인가? 공(고흥)에 있나? 공에 있어? 그라믄 낼 새벽에 밭에 좀 나올 수 있는가? 잉, 새벽 다섯 시에 나와 주면 고맙지. 우린 네 시에 나와서 먼저 빌 텡게. 어이, 그라믄 낼 봅세.”


  밤새와 낮새가 갈마드는 무렵이 03∼05시이다. 밤새는 얼추 이무렵에 쉬러 떠나고, 낮새는 거의 이무렵부터 일어나서 노래한다. 멧밭(산밭)으로 걸어가며 새소리를 듣는다. 늦봄 끝자락이기에 04시도 05시도 환하다. 할매 여섯 분이 먼저 ‘비’ 놓은 곤드레를 자루에 쏟아서 천천히 여민다. 곤드레자루가 하나둘 열스물 쌓이고 난 뒤에는 수레를 밀어서 큰자루(15∼20kg)를 길가로 옮겨서 쌓는다.


  지난해에는 곤드레밭 일손을 도울 적에 05∼08:30이면 마쳤는데, 올해에는 꽤 더디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할매가 곤드레를 베고서 큰바구니에 척척 쌓은 뒤에 자루에 쏟으셨다면, 올해에는 내가 큰바구니를 날라서 자루에 쏟은 다음에 빈바구니를 할매 옆으로 갖다놓는다. 이렇게 하는 틈틈이 곤드레자루를 단단히 여미고, 여민 자루를 수레에 싣고서 길가로 옮기는데, 할매들 낫질이 나보다 훨씬 느리다.


  무엇보다도 할매는 쉴참을 못 낸다. 아침해가 일찍 뜨는 첫여름 어귀이다 보니, 할매들은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는데, “아구야, 심들어 죽갓소. 숨도 못 쉬겠네.” 하시면서도 낫을 못 놓는다. 안 되겠구나 싶어서 물병을 들고서 할매 곁에 쪼그려앉는다. “할머님, 낫 좀 놓고서 물 한 모금 마시면서 숨을 돌리셔요.”


  여든 언저리이거나 아흔 가까운 나이인 할매들은 여태 ‘쉬잖고’ 일만 해왔다. 일손을 잡을 적에는 참을 낸다는 마음조차 없이 몸을 부린다. 문득 돌아본다. 할배라면 막걸리나 ‘쐬주’를 걸친다면서 꼭 참을 내는데, 할매는 어느 분조차 1분쯤 쉬는 참조차 스스로 못 낸다. “순이한테 일만 시키며 부린 굴레(가부장제)”가 뼛속 깊이 스몄을 테니, 이제 와서 씻거나 내려놓기는 어려울 만하겠구나 싶다. 할매들은 몸이 고되어 물병 있는 데로 오갈 기운이 없기도 하시지만, 내가 물병을 들고서 한 분씩 물을 떠서 드릴 때까지 “목타서 죽는 줄 알았소!” 같은 말조차 못 하셨다. 그저 “어떻게 작가양반은 우리가 목타서 죽는 줄 알고서 물도 다 갖다 주쇼잉? 고맙구마!” 하실 뿐이다.


  거의 해마다 마을 곤드레밭 일손을 도왔다. 참말로 지난해까지만 해도 아침 08∼08:30이면 다 끝났고, 할매도 천천히 걸어서 집으로 가셨으나, 올해에는 10:00에 이르러서야 드디어 마쳤고, 나는 온갖 일손을 이리 뛰고 저리 뛰면서 더 많이 맡았다. 그런데 할매들은 “아따 09시 버스로 선거 하러 갈랑캤는데 못 가것네. 다음 버스가 언제 있다야?” 하신다.


  나는 오늘 뽑기를 하러 갈 수 있을까? 어제 읍내에 갔더니 도무지 뽑기를 할 수 없이 먼 곳 하나만 열려서 못 했다. 오늘 뽑기를 하러 못 가면 제때뽑기(본투표)는 못 한다. 첫여름 사흗날(6.3.)은 쉼날(공휴일)인 터라 시골버스가 안 다니니, 면소재지에 나갈 수 없다. 마을 할매들도 이 대목을 알기에 오늘 꼭 미리뽑기(사전투표)를 하러 가려고 하신다.


  집으로 돌아와서 씻고, 숨돌리고, 등허리를 펴고, 손끝과 발끝에 밴 흙을 조금 빼다가, 나라지기가 남긴 말을 들었다. 깜짝 놀랐다. 박근혜·윤석열·이명박이든 이재명·문재인·노무현이든, 섣불리 하지 말아야 할 말을 함부로 했구나 싶다.


이 대통령 “투표 포기, 공동체 해치는 그들 편드는 것”

https://n.news.naver.com/article/449/0000347145


  시골사람은 뽑기를 하러 가기 힘들다. 서울·큰고장이라면 “걸어서 오갈 만한 곳”에 뽑기터(투표소)가 있지만, 시골은 면소재지나 읍내에만 있는데, 면소재지나 읍내에 둔 뽑기터는 마을사람이 걸어가기에는 먼 데에만 있다. 다시 말하자면, “마을 할매할배가 시골버스를 타고서 면소재지나 읍내 버스나루에 내려서 걸어가기에 먼” 곳이면서, 종이를 내고서 다시 마을로 돌아가려면 시골버스를 한두 시간을 멀뚱멀뚱 기다리고서 또 먼길을 걸어야 한다.


  시골사람은 우리나라에서 1%도 안 되는 줄 안다. 그나마 이 1% 가운데 면소재지나 읍내에 사는 사람은 그냥 걸어가서 종이를 내기도 하지만, 요새 웬만한 분들은 달구지(자동차)를 몰더라. 이와 달리 시골 할매할배는 달구지를 못 몰거나 안 몰기도 하지만, 지팡이조차 못 쓰고서 아기수레를 천천히 밀면서 “10m를 1분에 걸쳐서 기듯 걷는”데, 이분들은 ‘투표 포기’라기보다는 ‘투표권을 나라에서 빼앗은’ 셈이다. 시골에서는 뽑기날에 따로 ‘버스를 마을마다 대어서 할매할배를 태우며 다녀’야 맞다. ‘투표 포기’를 안 하고서 ‘투표권 지키기’를 할 수 있는 틀을 마련할 노릇 아닌가?


  또한 “누구를 찍는 몫”만 ‘투표권’이지 않다. “찍을 만한 놈이 보이지 않을 적에는, 어느 누구도 안 찍는 몫”도 ‘투표권’이다. 어느 누구도 안 찍는 사람들은 “이놈도 저놈도 그놈도 모두 한통속”이라고 느낀다고 “말없이 말하는 몸짓”이다. 이른바 ‘손사래(기권)’도 “한 표 행사”이다. 손사래를 할 몫으로 말없이 말하려는 사람도 적잖게 마련인데, 나라지기가 손사래를 하는 사람을 싸잡는 말을 함부로 한다면, 이 나라는 앞날이 캄캄하다. 손사래를 하는 사람들 앞에 무릎꿇으면서 “앞으로 투표를 하고 싶은 마음이 들도록 나라일을 고르게 아름답게 착하게 하겠습니다!” 하고 뉘우쳐야 할 일이다. 2026.5.30.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과 노래를 쓴다. 숲을 품은 시골에서 산다. 살림을 짓는 하루를 가꾼다. 《열두 달 소꿉노래》,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를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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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까칠한 숲노래 씨 책읽기


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26.5.25.


《보물 찾기 딱 좋은 곳, 바르셀로나》

 미겔 팡 글·그림/김여진 옮김, 후즈갓마이테일, 2025.4.21.



해구름이 갈마드는 하루이다. 밥을 하고 빨래를 하고 쉬다가 앵두를 훑는다. 작은아이랑 둘이서 천천히 훑는다. 앵두나무에 붙은 사마귀알집이 여럿인데 아직 안 깨어난 듯하다. 오늘은 쉼날인데 알림종이(선거공보물)가 온다. 두 아이가 뜯어본다. 아이가 보든 어른이 보든, ‘살림길’을 말하는 이는 없이, 죄다 ‘Ai·드론’만 외친다. 숲을 가꾸고, 바다를 지키고, 어린이를 헤아리는 길을 아무도 펴지 않으나, 이 대목을 아무도 짚지 않을 뿐 아니라, 아무도 나무라지 않는 모습이란, 바로 오늘날 우리 맨모습이다. 《보물 찾기 딱 좋은 곳, 바르셀로나》를 돌아본다. 꽤 익살스럽게 꾸린 줄거리가 돋보인다.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되, 작은사람이 작은마을을 일구며 살아온 나날을 ‘삶(문화)·살림(역사)·사랑(평화)’라는 얼거리로 짜서, 우리나라 곳곳을 조촐히 펼쳐서 들려주는 이야기책이나 그림책이 있을 노릇이라고 느낀다. 우리나라 글꾼한테 이런 이야기를 쓸 마음이 없다면, 내가 손수 쓸까 싶기도 하다. 마을책집을 찾아서 온나라를 누비니까, ‘작은책집이 있는 고장과 고을’에 어떤 마을빛이 흐르는지 들려줄 수 있으면 될 테지. 아무튼 두 아이는 종이(선거공보물)를 한참 꼼꼼히 읽으시고서 “아무도 찍을 사람이 없네요!” 하고 외쳤다.


#MiguelPang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과 노래를 쓴다. 숲을 품은 시골에서 산다. 살림을 짓는 하루를 가꾼다. 《열두 달 소꿉노래》,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를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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