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기놀이 2 - 둘이 함께

 


  달리기만 해도 즐거운 아이들이로구나 싶으면서, 달리기란 아이들이 몹시 좋아하는 놀이라고 새삼스레 느낀다. 두 발로 이 땅을 단단히 디디면서 앞으로 죽 내닫는 느낌이 좋으니, 이보다 더 나은 놀이는 없겠구나 싶다. 이마에 땀이 솟지만 바람을 가르며 시원하다. 가슴이 벌렁벌렁 뛰고 온몸 힘살이 불끈불끈 움직인다. 아이들은 달려야 하고, 아이들이 실컷 달릴 수 있는 곳에 보금자리를 마련해야 옳다. 4346.7.17.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놀이하는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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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1700) 그녀의 4 : 그녀의 삶에

 

아울러 니사와의 관계를 새롭게 다지고 내가 떠난 뒤에 그녀의 삶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들을 기회가 될 수도 있었다
《마저리 쇼스탁/유나영 옮김-니사》(삼인,2008) 477쪽

 

  “니사와의 관계(關係)를”은 “니사와 나 사이를”이나 “니사와 나를”로 다듬고, ‘기회(機會)’는 ‘자리’로 다듬어 줍니다.

 

 그녀의 삶에
→ 이녁 삶에
→ 니사 삶에
→ 니사가 사는 동안
→ 니사가 살아오며
 …

 

  보기글을 살피면, 앞쪽에 ‘니사’라고 이름을 밝히나, 뒤쪽에서는 ‘그녀’라고 적습니다. 같은 말을 되풀이하고 싶지 않아 앞과 뒤를 다르게 적었는지 모르는데, 굳이 같은 말 쓰기를 꺼려야 했을까 곰곰이 생각해 보면 아쉽습니다. 아무래도, 이 글을 쓰신 분으로서는 ‘그녀’라는 낱말을 쓰는 데에 아무 거리낌이 없었을 뿐더러, 이 대목에서는 ‘그녀’라고 적어야 알맞았다고 여기지 않았으랴 싶습니다.


  그런데 ‘그녀’ 아닌 ‘니사’라는 이름을 밝혀 적었어도 “니사 삶에”라 하지 않고 “니사의 삶에”처럼 적으면서 토씨 ‘-의’를 붙였을는지 모르고, “니사가 살아오며”나 “니사가 꾸려온 삶에”처럼 손질해 볼 생각 또한 못했을는지 모릅니다. 얄궂든 올바르든 어긋나든 알맞든, 글쓴이가 예전부터 익히 쓰던 대로만 쓰지 않았으랴 싶고, 어떠한 말투가 이녁 느낌과 생각을 알뜰히 담아내는가를 돌아보지 못했으랴 싶습니다. 4343.3.7.흙./4346.7.17.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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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울러 니사와 나 사이를 새롭게 다지고, 내가 떠난 뒤에 이녁 삶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들을 자리가 될 수도 있었다

 

..

 


 '-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1800) 그녀의 5 : 그녀의 방

 

저는 동무네 집 툇마루에 걸터앉아 마주보이는 그녀의 방을 엿보곤 했습니다
《정상명-꽃짐》(이루,2009) 211쪽

 

  이 글에서 말하는 ‘그녀’란 ‘칠칠회관 댄서’라고 합니다. 낮에는 잠만 자고 골목길에 어둠이 내릴 때문 눈부시게 차려입고 집을 나서던 ‘술집에서 춤추며 일하는 아가씨’라고 합니다.


  술집에서 춤추는 일을 하는 사람이 사내였다면 “마주보이는 그의 방”이라고 적었으리라 생각합니다. 오늘날 우리 말투는 ‘그-그녀’로 굳어졌으니까요.


  그나저나, 보기글 앞쪽은 “동무의 집”이 아닌 “동무네 집”이라고 알맞게 잘 적었습니다. 뒤쪽에서는 ‘-의’를 얄궂게 붙이고 말았지만, 이 대목은 참 반갑습니다.

 

 그녀의 방
→ 그 사람 방
→ 그 사람이 사는 방
→ 그 사람이 있는 방
→ 그 사람이 깃든 방
 …

 

  그러고 보면 사람들 말씨는 “숲속의 방”이라든지 “누나의 방”이라든지 하면서 토씨 ‘-의’를 어김없이 붙이는 쪽으로 바뀝니다. 올바르게 쓰는 말투는 “숲속 방”이요 “누나 방”인데, “형철이 방”이고 “정은이 방”인데, “할아버지 방”이며 “동생 방”인데, 스스로 우리 말투를 알뜰살뜰 가꾸거나 보듬으려는 매무새가 거의 사라집니다. 어떻게 말을 해야 옳고, 어떻게 글을 써야 바른지를 생각하지 못합니다.


  옳게 배우지 못했으니 옳게 말할 줄 모른다고 하겠으나, 대학교까지 다니고 책깨나 읽었다 하더라도 말과 글을 찬찬히 배우지 않습니다. 고등학교를 다니며 신문줄 읽을 수 있으면서도 말과 글을 곰곰이 돌아보지 않습니다.


  옳은 밥이 무엇인지 따지지 않고 값싼 밥만 찾듯, 옳은 말이 무엇인지 가리지 않는다고 할까요. 옳은 일이 무엇인지 살피지 않고 돈벌이에만 달려들듯, 옳은 말이 무엇인지 살피려 하지 않는다고 할까요. 옳은 생각이 무엇인지 보듬으려 하지 않고 사회 물결에 휩쓸리듯, 옳은 말글을 고이 지키면서 늘 새롭게 익히거나 가다듬으려는 매무새가 없다고 할까요. 4342.6.23.불./4346.7.17.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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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동무네 집 툇마루에 걸터앉아 마주보이는 그 사람 방을 엿보곤 했습니다

 

..

 

 '-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2086) 그녀의 6 : 그녀의 도착

 

롭상이 그녀의 도착을 알렸을 때 나는 아침햇살을 받으며 창문턱 내 자리에 앉아 졸고 있었다
《데이비드 미치/추미란 옮김-달라이 라마의 고양이》(샨티,2013) 254쪽

 

  “도착(到着)을 알렸을 때”는 “왔다고 알렸을 때”로 다듬고, “졸고 있었다”는 “졸았다”나 “꾸벅꾸벅 졸았다”로 다듬습니다.

 

 그녀의 도착을 알렸을 때
→ 그 사람이 왔다고 알렸을 때
→ 그분이 오셨다고 알렸을 때
→ 그 손님이 오셨다고 알렸을 때
 …

 

  이름난 여자 배우이건 영국 여왕이건 열 살 가시내이건 모두 ‘그 사람’입니다. 그 사람을 살짝 높여 가리키자면 ‘그분’입니다. 그분을 우리 집에 모셨다면 ‘그 손님’이 될 테지요. 낱말 하나 말투 하나 올바르게 가다듬을 수 있기를 빕니다. 4346.7.17.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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롭상이 그 손님이 오셨다고 알렸을 때 나는 아침햇살을 받으며 창문턱 내 자리에 앉아 졸았다

 

(최종규 . 2013 - 우리 말 바로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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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1234) 그녀의 1 : 그녀의 몫

 

재치 있는 농담이나 재미있는 이야기로 간호사들을 웃겨 분위기를 확 바꿔 주는 일도 늘 그녀의 몫이었다
《안재성-김시자 평전, 부르지 못한 연가》(삶이보이는창,2006) 29쪽

 

  “재치(才致) 있는”은 “번뜩이는”이나 “솜씨 있는”으로 손볼 수 있고, ‘농담(弄談)’은 ‘장난말’이나 ‘우스갯소리’로 손볼 수 있습니다. ‘분위기(雰圍氣)’는 어느 곳을 둘러싼 기운을 가리키는 한자말입니다. 이 낱말을 그대로 써도 되고, ‘바람’이나 ‘자리’로 손질해도 됩니다.

 

 늘 그녀의 몫이었다
→ 늘 그이 몫이었다
→ 늘 김시자 몫이었다
→ 늘 김시자가 맡았다
→ 늘 김시자가 했다
 …

 

  이 글에서는 ‘김시자’라고 하는 분 이야기를 합니다. 그래서 이분 이름을 밝혀서 “김시자 몫”으로 적으면 됩니다. “김시자가 맡았다”나 “김시자가 했다”처럼 고쳐써도 됩니다. 조금 더 생각하면, 글짜임을 통째로 손질해서, “김시자는 늘 번뜩이는 우스갯소리나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서 간호사들을 웃겨 병실을 밝게 확 바꿔 주곤 했다.”처럼 새로 쓸 수 있어요. 4341.2.17.해./4346.7.17.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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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뜩이는 우스갯소리나 재미있는 이야기로 간호사들을 웃겨 바람을 확 바꿔 주는 일도 늘 김시자 몫이었다

 

..

 


 '-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1268) 그녀의 2 : 그녀의 다른 작품

 

주자나 빈터로바는 1933년 1월 27일 브르노에서 태어났고, 1942년 4월 4일 테레진으로 이송되었다. 그녀의 다른 작품으로는
《프란타 바스 외/이혜리 옮김-더 이상 나비들은 보지 못했다》(다빈치,2005) 7쪽

 

 ‘이송(移送)되었다’는 ‘보내졌다’나 ‘옮겨졌다’로 고쳐씁니다.

 

 그녀의 다른 작품으로는
→ 주자나 빈터로바 다른 작품으로는
→ 이 아이 다른 그림으로는
→ 이 아이가 그린 다른 그림으로는
→ 이 아이는 (이러저러한) 그림도 남겼다
 …

 

  이제 막 열 살이 되는 가시내를 가리켜 ‘그녀’라 하고, 이 아이가 쓴 글이나 그린 그림을 놓고 ‘작품’이라고 말하는 대목이 얄궂습니다. 아이면 ‘아이’라 할 때가 가장 낫지 않울까 생각합니다. 굳이 작품이고 뭐고 하기보다는 꾸밈없이 적을 때가 가장 알맞습니다. 글을 썼으면 ‘글’이라 하면 되고, 그림을 그렸으면 ‘그림’이라 하면 됩니다. 또는 이 아이 이름 ‘주자나 빈터로바’를 밝혀서 적으면 돼요. 겉치레를 하지 말고, 겉발림에 매이지 말며, 겉꾸밈에 빠지지 않으면 됩니다. 4341.3.17.달./4346.7.17.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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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자나 빈터로바는 1933년 1월 27일 브르노에서 태어났고, 1942년 4월 4일 테레진으로 보내졌다. 이 아이 다른 그림으로는

 

..

 


 '-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1272) 그녀의 3 : 그녀의 어깨에 내려앉곤

 

친구가 모이를 줄 때면 새들이 그녀의 어깨에 내려앉곤 했다
《타샤 튜더/공경희 옮김-행복한 사람, 타샤 튜더》(윌북,2006) 72쪽

 

  ‘친구(親舊)’는 ‘동무’로 다듬을 수 있으나 그대로 두어도 나쁘지 않습니다. 또는 동무 이름을 밝혀 주어도 됩니다.

 

 그녀의 어깨에 내려앉곤
→ 어깨에 내려앉곤
→ 친구 어깨에 내려앉곤
→ 그 아이 어깨에 내려앉곤
 …

 

  보기글 앞쪽에서 ‘친구’라 했다가 바로 뒤에서 ‘그녀’라고 적습니다. 글쎄, 뒤쪽에서는 그냥 ‘어깨’만 적고 “새들이 어깨에 내려앉곤”으로 해도 될 텐데요. 글 뒤쪽에도 ‘친구’라고 적을 수 있으나, “친구가 모이를 줄 때면 새들이 친구 어깨에 내려앉곤”이라 하기보다는 한 번은 덜어내 주면 단출할 테지요. 또는 말을 바꾸어 ‘그 아이’라 해 볼 수 있어요. 이 글월에서 말하는 ‘친구’란 바로 ‘어린이’입니다. 서양사람은 서양말로 아이들 가리키면서 ‘she’라 적을 테지만, 한국사람은 한국말로 ‘아이’라고 적으면 됩니다. 4341.3.19.물./4346.7.17.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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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가 모이를 줄 때면 새들이 이 아이 어깨에 내려앉곤 했다

 

(최종규 . 2013 - 우리 말 바로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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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그림 읽기
2013.7.13. 큰아이―헌책방에서 그림놀이

 


  헌책방마실을 아버지와 함께 나온 두 아이는 골마루며 계단이며 쉬잖고 놀다가 살짝 심심하다는 티를 보인다. 종이 한 장 얻어 큰아이한테 건넨다. 자, 그림을 그려 보렴. 조그마한 나무걸상에 앉아 그림을 그린다. 작은아이도 그림을 그리겠다 해서 종이 한 장 더 얻는다. 두 아이 그림 그리는 동안 얌전하고 조용하다. 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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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흙벽집 하늘파란상상 2
이상교 글, 김원희 그림 / 청어람주니어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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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책 읽는 삶 36

 


사람은 나면 시골로 보내야
― 오래된 흙벽집
 이상교 글,김원희 그림
 청어람주니어 펴냄,2009.7.7./9000원

 


  어린이와 젊은이가 시골을 떠나 도시로 갑니다. 시골에는 늙은 사람만 남습니다. 도시로 간 어린이와 젊은이는 학교를 다니거나 회사에서 돈을 법니다. 도시에서 학교를 다니는 아이나 푸름이는 흙일을 하지 않습니다. 도시에서 회사를 다니는 어른도 흙을 만질 겨를이 없습니다. 도시 아이와 어른 모두 돈을 내고 곡식과 열매와 푸성귀를 가게에서 사다 먹습니다. 시골에 남은 늙은 사람은 늘 흙을 만지며 일굽니다. 그러나 일손이 모자라거나 힘이 달린 나머지, 농약과 비료를 자꾸자꾸 씁니다. 시골에 젊은 일손이라도 있으면 농약과 비료를 덜 쓸 만하지만, 시골에 남은 젊은 일손이래서 똥오줌 거름을 삭혀서 쓰려는 생각을 키우지 못합니다. 1960∼70년대부터 풀지붕 없애고 흙길 밀며 논도랑을 시멘트로 바꾸는 따위로 시골사람 길들인 탓에, 이제 시골에서 똥오줌 거름 잘 삭혀서 젊은이한테 가르치거나 물려주는 어르신은 매우 드물어요. 소몰이를 가르치거나 물려줄 어르신도 아주 드뭅니다. 시골에서도 돈을 벌어 농기계를 장만해야 하고, 돈을 더 벌어 농기계 움직일 석유값 대어야 합니다.


  갈수록 텅 비는 모습이 되는 시골에는 어린이와 젊은이가 돌아와야 합니다. 흙을 아끼며 사람과 지구를 사랑할 마음 키우고 싶은 어린이와 젊은이가 시골로 돌아와야 합니다. 돈 될 만한 농사짓기를 바라는 사람이 아닌, 스스로 집을 짓고 옷을 지으며 밥을 짓는 즐거움 흐뭇하게 누리면서 아이들한테 물려주거나 가르치고 싶은 어른들이, 바로 시골로 돌아와야 합니다.


  시골은 물이 맑아야 시골입니다. 시골은 바람이 시원해야 시골입니다. 시골은 햇살이 따스해야 시골입니다. 시골은 풀빛이 가득하고 나무가 우거져야 시골입니다. 곧, 시골에서 냇물과 땅밑물 맑게 마실 수 없다면 시골이랄 수 없습니다. 시골에서 시원한 바람 어디에서나 맛나게 마실 수 없다면 시골이랄 수 없어요. 농약 때문에 냇물과 땅밑물을 못 마신다면, 농약 뿌리는 냄새 때문에 창문을 열 수 없다면, 이런 곳은 시골이 될 수 없어요. 풀밭이 없거나 숲이 없을 때에도 시골이랄 수 없지요.


.. 삼촌을 따라 집 구경을 갔던 삼촌 친구 종도 아저씨도 똑같이 말했다고 했다. “삼촌, 왜 하필 그런 집으로 이사했어?” 그런 집 말고도 깨끗하고 살기 좋은 집이 많을 텐데, 싶었다. “벽이 진흙으로 발려 있어 맘에 들었거든.” 꼬라비 삼촌은 생각도 하지 않고 단숨이 대답했다. “흙벽?” … “무슨 새인데, 참새?” 내 머릿속에서 참새 한 마리가 폴짝 날아올랐다. “재현이 넌 새라면 그저 참새밖에 모르지?” ..  (12∼14, 16쪽)


  예부터 어떤 사람들이 얄궂은 말을 퍼뜨렸습니다. 이른바, “사람은 나면 서울로 보내고, 말은 나면 제주로 보내라”와 같은 말입니다. 참 엉터리라 할 말입니다만, 오늘날에도 이 말이 널리 뿌리내립니다. 부산이나 대구나 인천처럼 커다란 도시에서조차 이런 도시에 안 남고 서울로 가야 무언가 번듯하게 할 수 있는 듯이 잘못 생각해요. 오직 서울바라기요, 그예 서울바라기입니다.


  서울이 커지면서 시골이 줄어듭니다. 서울이 커지며 서울사람 쓸 공산품과 전기와 물이 모자라다 보니, 시골에 공장을 짓고 댐을 지으며 발전소를 짓습니다. 서울만큼 커지고 싶은 부산이며 대구이며 인천이며 광주이며 대전이며 울산이며, 곳곳에 도시가 자꾸자꾸 커지니, 이런 큰도시와 서울을 이으려는 고속도로를 자꾸자꾸 닦습니다. 고속도로 닦으며 시골마을 무너지고 둘로 쪼개집니다. 발전소 시골에 세워 큰도시로 전기를 보내면서 논밭과 숲에 우람한 송전탑 섭니다. 깨끗한 곡식과 열매와 푸성귀를 바라는 도시사람이지만, 그러니까 유기농이니 무농약이니 친환경이니 하고 바라는 도시사람이지만, 정작 시골마을 깡그리 무너뜨리거나 짓밟습니다.


  고속도로를 내는 도시사람은 시골마을 무너뜨려요. 4대강사업 하나 갖고 시골마을 무너지지 않습니다. 고속도로, 고속철도, 공장, 발전소 따위가 나란히 시골마을 무너뜨립니다. 조금 깨끗하고 조용하다 싶으면 관광지로 만들겠다며 삽질을 해대니 시골마을 망가집니다. 우리 식구 살아가는 전남 고흥은 바닷가 어디나 다도해 국립공원에 들 만큼 정갈하며 좋은 삶터였지만, 차츰차츰 바닷가 ‘국립공원 지역’을 슬그머니 풉니다. 이러면서 바닷가에 시멘트로 옹벽을 세우지요. 그저 개발짓이고 그저 삽질입니다.


.. 나는 물고기가 정말 좋다. 딱 한 번 물고기를 손으로 잡아 본 적이 있었다. 작은 송사리였는데 손바닥을 간질이는 것처럼 꼬물거려 얼른 놓아주었다. 그 일은 생각만 해도 절로 웃음이 난다 ..  (26쪽)


  도시에서도 그리 멀지 않던 지난날까지 집은 나무와 흙과 돌로 지었습니다. 도시에서도 그리 멀지 않던 지난날까지 ‘골목동네 작은 집’을 허물면, 나무와 흙과 돌을 새로운 집 지을 적에 다시 쓸 수 있었어요. 이른바 ‘건축폐기물’이 거의 안 나왔습니다. 그렇지만, 이제 도시에서나 시골에서나 집을 허물면 온통 쓰레기입니다. 시멘트로 짓고 스티로폼과 합판과 석면 따위를 쓰니, 이런 것들은 집을 허물 때에 모두 쓰레기가 됩니다. 어디 갖다 버릴 데가 없는데, 자꾸자꾸 ‘나중에 쓰레기로 버려질 집’을 짓는 한국 사회가 되었어요. 아파트만 걱정거리 아니에요. 시멘트로 짓는 모든 집이 걱정거리예요. 슬레이트지붕만 치운대서 될 일이 아니에요. 시멘트로 지은 모든 집을 걱정해야 해요. 앞으로 이 시멘트 쓰레기를 어찌할 생각일까요.

  생각해 보셔요. 지난날 흙집은 허물어 얼마든지 새로 지을 수 있어요. 흙집 허물어 나온 흙은 땅에 뿌리면 그대로 밭흙 논흙 숲흙 되지요. 아니, 무너진 집을 그대로 두기만 해도 되었어요. 나무와 흙과 돌로 지은 집이 허물어지면, 백 해쯤 지나면 저절로 흙으로 돌아가 깨끗한 새 숲이 이루어져요.


  그러면, 한 가지를 더 생각해야지요. 오늘날 아파트와 빌라를 백 해쯤 그대로 두면 어찌 될까요. 아마 아주 으스스한 곳이 될 테지요. 사람도 풀도 가까이하기 어려운 무시무시한 쓰레기터가 되겠지요. 핵발전소 핵쓰레기가 자연으로 돌아가자면 어마어마한 시간이 걸린다 하는데, 아파트 쓰레기가 자연으로 돌아가자면 얼마나 기나긴 시간이 걸려야 하는지 생각해야 합니다.


.. “처음엔 몰랐는데, 이곳에 와서 살다 보니 저절로인 것이 참 많아요. 일부러 가꾸지 않아도 저절로 돋아나 저절로 열매를 맺고, 지고, 또 봄이면 다시 저절로 돋아나고.” “그렇지요? 네발 달린 동물들도 깃털 달린 새도 하다못해 흙 속을 기어 다니는 벌레들까지도요.” 삼촌이 덧붙여 말했다. “삼촌, 물고기들도.” 윗개울에 가는 걸 미루게 될까 봐, 나도 재빨리 덧붙여 말했다 ..  (101쪽)


  이상교 님 동화책 《오래된 흙벽집》(청어람주니어,2009)을 읽습니다. 동화책에서는 ‘흙벽집’이라 말하지만, 옛날 집은 벽만 흙이 아니에요. 방바닥과 지붕도 흙입니다. 서까래에 흙을 잔뜩 올리고, 방바닥도 흙을 잔뜩 깔아요. 그래서 ‘흙벽집’이 아닌 ‘흙집’입니다. “오래된 흙집”이라 해야 올바릅니다.


  이 흙집은 마당도 흙이지요. 예전에는 울타리도 흙으로 쌓기도 했다고 해요. 바닷가나 섬처럼 바람이 많은 데에서는 돌로 쌓지만, 여느 시골마을에서는 울타리 아예 없거나 흙으로 쌓곤 했습니다. 때로는 탱자나무나 찔레나무가 울타리 구실을 해요.


  《오래된 흙벽집》 99쪽을 보면 ‘개밥별’이라는 풀을 얘기하며, 이 풀이 ‘환상덩굴’이라고 적는데, ‘환삼덩굴’을 잘못 적었습니다. 글쓴이도 잘못 적고, 편집부 일꾼도 풀이름을 잘 모른 탓에 그대로 책에 찍혀 나왔구나 싶습니다. 그나저나, 환삼덩굴을 가리켜 ‘개밥별’이라고도 하는군요. 이 동화책은 경기도 가평을 바탕으로 썼다고 하는데, 경기도 가평 시골말로는 ‘개밥별’ 풀이라고 일컬을까요?


.. 꽃이며 나뭇잎이 흔들리는 것이 모두 드르렁 푸우 드르렁 푸우 숨을 쉬는 것처럼 보였다. “쉿! 너도 곧 알게 될 거야. 사람의 숨, 나무, 꽃, 새, 풀, 물고기, 흙 같은 것들의 숨은 모두, 서로서로 바꿔 쉬는 거래.” 발명가 아저씨가 그물을 주면서 했던 말이 떠올랐다 ..  (126쪽)


  동화책을 덮으며 가만히 생각합니다. 우리 네 식구 살아가는 집은 시골 흙집입니다. 우리 아이들은 이 집에서 신나게 뛰고 달리며 구릅니다. 마당에서도 뛰놀고 고샅에서도 뛰놉니다. 시골집에서 아이들은 거리낌없이 노래를 하고 춤을 춥니다. 아래층 위층 소음공해 피해를 걱정하지 않습니다. 조용히 쉴 적에는 바람소리를 듣고 풀벌레소리와 개구리소리를 듣지요. 비가 오면 빗소리를 듣습니다. 전남 고흥 시골은 눈이 거의 안 오니 눈소리 듣기는 어렵지만 한 해에 한두 차례쯤은 눈소리를 들어요.

  어른한테나 아이한테나 어떤 집이 사랑스럽거나 즐거울까요. 부동산이 되는 집이 사랑스럽거나 즐거울까요. 아이들이 기쁘게 뛰놀며 어른들은 느긋하게 쉬며 새 기운 차려 하루일 힘차게 여는 집이 사랑스럽거나 즐거울까요.


  사람이 사람다울 수 있는 집에서 이 나라 사람들 누구나 활짝 웃으면서 살아갈 수 있기를 빌어요. 사람은 사람답고 풀과 나무는 풀과 나무다우며, 새와 짐승은 새와 짐승답게 이녁 삶 빛낼 수 있기를 빌어요. 우리는 모두 지구별 따사로운 이웃이에요. 4346.7.16.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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