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에서도 겨울눈 책읽기

 


  서울 공덕동에 있는 한글문화연대로 찾아간다. 서울시에서 공문서와 보도자료에 쓰는 말이 얼마나 올바른가를 살펴보아 주기를 바란다는 일감을 맡겼다고 해서, 이 일을 함께 하기로 했다. 뜻있는 여러 사람들과 도란도란 이야기를 한다. 앞으로 어떻게 이 일감을 맡아 해야 할까 생각한다. 한참 이야기를 하고 나서 낮밥을 먹기로 한다. 사무실에서 나와 밥집으로 가는 길에 두리번두리번 돌아본다. 이 둘레에 어떤 나무들 어떻게 있는지 궁금하다. 아직 잎이 안 진 나무가 있지만, 웬만한 나무는 모두 잎이 졌다. 은행나무는 노란 은행잎 한두 닢 달랑달랑 남기도 하지만, 거의 모두 떨어지고 가지만 덩그러니 있다. 그런데, 잎 모두 진 은행나무이건, 목련이건, 겨울눈 앙증맞게 있다. 너희는 잎을 떨구면서 벌써 겨울눈을 품었니? 사람들은 아마 너희를 ‘앙상한 나무’라 말할는지 모르지만, 앙상하다는 겨울나무에 아무것도 없지는 않아. 누구보다 먼저 잎을 떨구는 대추나무에도 겨울눈 그득하던걸. 살구나무와 복숭아나무에도, 감나무와 매화나무에도 온통 겨울눈 그득하던걸. 나란히 걷던 한 분한테 “저기 나무 좀 보셔요. 잎 떨군 지 얼마 안 되었을 텐데 겨울눈이 가득가득 맺혔어요.” 하고 이야기한다. 도시에서 살거나 일하는 이들도 둘레에서 씩씩하게 뿌리내리며 푸른 숨결 나누어 주는 이 나무들을 살며시 보듬거나 얼싸안아 주기를 빈다. 4346.12.5.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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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고무신

 


  시골집 떠나 서울과 인천으로 마실을 나오면서 고무신을 꿴다. 털신으로 바꿀까 하다가 그냥 고무신을 꿴다. 양말을 신을까 말까 하다가 신는다. 아침해 아직 안 뜬 어둑어둑한 새벽에 군내버스를 기다린다. 발이 좀 시리다. 군내버스는 읍내에 닿고, 서울로 달리는 첫 시외버스를 오십 분 즈음 기다린다. 발이 꽤 시리다. 한참 기다린 끝에 서울 가는 첫 시외버스를 타고 한 시간쯤 지나니 발가락이 녹는다.


  서울에 닿아 지하철을 탄다. 버스를 갈아탄다. 딱딱한 아스팔트길 걷는다. 발바닥이 이럭저럭 아프다. 발뒤꿈치며 발가락이며 뻑적지근하다.


  시골도 요새는 온통 시멘트길에 아스팔트길이지만, 조금만 걸어가면 흙땅과 풀밭을 밟을 만하다. 도시에서는 흙이나 풀로 이루어진 땅바닥을 도무지 찾아볼 수 없다. 고무신을 꿰고 도시로 마실을 다니기란 발을 괴롭히는 일 될까. 도시사람은 굽이 높거나 바닥 두꺼운 신을 꿸밖에 없겠다고 느낀다. 도시사람은 굽 높거나 바닥 두꺼운 신을 자주 장만해야 하고, 여럿 건사해야 하는구나 싶다. 시골에서는 고무신 한 켤레면 넉넉하지만, 도시에서는 참 다르구나 싶다.


  형네 집에서 잠을 자면서 문득 생각한다. 나도 도시에서 나고 자란 사람인데, 아주 시골사람처럼 말을 하네. 그래, 시골에 집을 마련해서 시골살이 하니까 시골사람이지, 그러니 이렇게 시골스런 이야기를 하지. 4346.12.5.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삶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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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물

 


안 먹는 이한테는
저 달디단 민들레잎
쓰디쓰다.

 

안 멋는 이한테는
고들빼기잎 씀바귀잎
손댈 엄두 안 난다.

 

까마중알 안 먹는 이한테
까마중잎 어찌 건넬까.

 

꽃마리 작은 꽃송이 모르니
코딱지나물 맑은 꽃송이
같이 먹기 어렵다.

 

나물 한 줌 숲짐승 먹고
나물 두 줌 애벌레 먹으며
나물 석 줌 들사람 먹는다.

 


4346.12.3.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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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쉽다

 


  날마다 쓰려고 하는 글이 있는데, 바깥일 때문에 서울로 온 터라, 또 인천에 있는 형네 집에서 하루 묵고 아침 일찍 서울로 일하러 가야 하는 터라, 마음속에서 이 글 쓰고 싶으며 저 글 샘솟는데, 이 글빛을 터뜨리지 못한다. 이제 그만 닫아야 한다. 히유우우, 길게 한숨을 쉰ㄷ다. 이따 모임을 너덧 시에 마친다고 하니, 모임을 마치고 다들 뒤풀이나 저녁 먹으러 움직인다고 하는 길에, “저, 마감 맞추어야 하는 글이 있어서요, 한 시간만 살짝 글을 쓰고 올게요.” 하고 말하자고 생각한다. 적어도 이따 한 시간 나 홀로 글쓰기에 폭 사로잡힐 틈을 마련하지 못한다면, 더없이 슬퍼 눈물을 흘릴는지 모른다. 4346.12.4.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삶과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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톨스토이처럼 죽고 싶다
김별아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01년 9월
평점 :
절판


책읽기 삶읽기 144

 


김별아처럼 죽고 싶다면
― 톨스토이처럼 죽고 싶다
 김별아 글
 이룸 펴냄, 2001.9.3.

 


  글지기 김별아 님이 쓴 《톨스토이처럼 죽고 싶다》(이룸,2001)를 읽습니다. 어느새 새책방에 사라진 이 책을 헌책방에서 찾아내어 읽습니다. 한 줄 두 줄 찬찬히 읽습니다. 김별아 님 글 한 꼭지 읽고 책이름을 생각합니다. 김별아 님 글 두 꼭지 읽고 책이름을 새삼스레 생각합니다. 한참 읽는 동안, 또 책을 다 읽고 덮은 뒤로도, 오래도록 책이름을 떠올립니다.


  톨스토이라는 분은 얼마나 대단한 빛인가 하고 생각합니다. 얼마나 대단한 빛이기에, 러시아에서 먼 한국땅 글지기까지 이녁 이름을 빌어 책을 한 권 내놓을 만한가 하고 생각합니다.

  문득 생각합니다. 앞으로 이 땅에서 누군가, “김별아처럼 죽고 싶다”라는 이름을 붙여 책을 쓸까요? 열 해쯤 뒤에, 서른 해쯤 뒤에, 쉰 해나 백 해쯤 뒤에, “김별아처럼 죽고 싶다”뿐 아니라 “권정생처럼 죽고 싶다”라든지 “전우익처럼 죽고 싶다” 같은 이름을 붙여 책을 내놓을 글지기 있을까요?


.. 여성은 동물이 아ㅣㄴ고 가축이 아니다. 어린아이와 남성의 중간자도 아니고 말을 알아듣는 꽃이나 인공지능의 장난감이 아니다. 그 사실을 인정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인간이 인간에게 표현할 수 있는 최소한의 예의만으로도 충분하다. 그를 낳아 길렀으며, 그와 사랑을 나누었으며, 그와 함께 생을 이겨낸 존재에 대한 애정이다. 그것은 남성 자신에 대한 긍정이기도 하다 … 나는 결국 극기 훈련을 통해 정글의 법칙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맹수처럼 살아남는 방법을 배운 것뿐이다. 나를 이겨야 한다지만 사실은 결국 나 자신을 강하게 단련하여 남을 이겨야 한다는 것이었다 ..  (40, 48쪽)


  김별아 님은 “톨스토이처럼 죽고 싶다” 하고 노래합니다. 이 노래를 가만히 읊습니다. 김별아 님이 쓴 글에 깃든 빛을 누리면서 함께 노래합니다. 이러다가 다시금 생각해 봅니다. 나는 톨스토이처럼 죽고 싶지는 않습니다. 로맹 롤랑 님이 쓴 톨스토이 평전을 헤아립니다. 로맹 롤랑 님이 쓴 글을 읽으면 톨스토이 님이 스스로 마무리지은 삶자락이 잘 나옵니다. 그래, 그런 죽음을 떠올릴 만할 테지만, 나는 달리 생각합니다. 내 삶이라면, 내 즐겁고 아름다운 삶이라면, 나는 “톨스토이처럼 살고 싶다” 하고 노래하겠어요. 내 이웃과 동무한테도 “아무개처럼 죽고 싶다” 하는 노래가 아닌, “아무개처럼 살고 싶다” 하고 노래를 부르고 싶어요.


  그리고, 아무개처럼 사랑하고 싶다, 아무개처럼 꿈꾸고 싶다, 아무개처럼 춤추고 싶다, 하는 노래를 부르고 싶어요. 무엇보다도 “나는 나답게 살고 싶”어요. “나는 나답게 사랑하고 싶”어요. 내가 이웃과 동무한테 선물하고 싶은 책은 “아름답게 살고 싶다”예요. “사랑하며 살고 싶다”예요. “노래하며 살고 싶다”입니다.


.. 나는 남자로 살아 보지 못했기에 그들이 좋은 제자, 좋은 부하, 좋은 후배, 좋은 친구와 동료를 왜, 얼마만큼 성적 대상으로 보는지 알 수 없다. 그리고 왜 평소에 그 마음을 표현하거나 고백하지 못하는지 알 수 없다. 자신의 매력을 발휘하여 여성을 사로잡는 대신 어쩌다가 상명하복의 관계나 인간적인 친밀감을 이용하여 여성을 강제로 소유하게 되었는지 알 수 없다. 그 숱한 의문 중에 가장 풀리지 않는 안타까운 것은, 그들이 정말 남성으로서 여성을 갈망하거나 사랑하는 방법을 알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  (85쪽)


  글 한 줄에는 삶이 드러납니다. 글 한 줄에는 삶이 묻어납니다. 웃음을 꽃피운 삶과 눈물로 얼룩진 삶이 고스란히 글 한 줄에 스며듭니다. 기쁘게 노래한 빛이 글로 다시 태어나요. 고달프거나 고단했던 지난날이 글로 거듭 태어나요.


  어떤 글을 쓸 적에 스스로 즐거운가요. 어떤 글을 써서 이웃한테 선물할 적에 서로 즐거운가요. 어떤 글을 쓰면서 삶꽃 피울 적에 우리 지구별에 따스한 사랑이 샘솟을까요.


  글을 쓰는 사람으로 살아가면서 생각합니다. 내 글은 나한테 어떤 빛이 되고, 내가 적은 글 한 줄은 내 이웃과 동무한테 어떤 꿈이 될 만한가 하고 생각합니다. 먼저 나 스스로 빛이 되지 못한다면 내 글은 아름답지 못합니다. 글을 쓰면서 내 삶을 스스로 가꿀 수 있을 때에, 이 글을 내 이웃과 동무한테 선물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나부터 맛나게 먹을 만한 밥을 우리 살붙이한테 차려 줍니다. 나부터 기쁘게 먹을 만한 밥을 우리 시골집으로 찾아오는 이웃한테 내놓아요.


  사진 한 장 찍을 적에도 가장 고운 빛을 담습니다. 사진 한 장 찍어 살며시 건넬 적에도 가장 고운 빛이 드러난 사진으로 골라서 건네요.


.. 오로지 누군가의 ‘삶’ 그 자체인 삶을 소설을 위해 희생시키고자 했던 나의 치기 어린 시도가 너무도 어리석은 것으로 느껴졌다 … 아이를 통해 나의 결점은 낱낱이 공개되고 있었다. 나의 무지, 나의 이기, 나의 나약함과 철없음, 의존성과 무책임이 날것으로 드러났다. 나는 그제야 둔기로 뒤통수를 얻어맞듯 깨달았다. 나는 다시 태어나 아이와 함께 자라고 있구나! 내가 아이를 키우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 그를 키우고 있구나 ..  (212, 218쪽)


  우리 아름답게 살아요. 우리 아름답게 노래해요. 우리 아름답게 어깨동무해요. 즐겁게 죽어도 될 테지만, 죽음보다는 삶을 생각해요. 톨스토이처럼 살고, 김별아처럼 살며, 나답게 살아요. 사랑스레 살고 눈빛 밝히며 살고 노래 부르면서 살고 알콩달콩 이야기빛 누리면서 살아요. 4346.12.4.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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