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박 님 만화책 《빨간 풍선》을 읽고 나서 생각해 본다. 책이름은 왜 ‘빨간 풍선’일까? 글쎄, 나는 모른다. 만화를 그린 분 스스로 이렇게 이름을 붙였을 뿐이다. 파란 풍선이라 이름을 붙이거나 푸른 풍선이라 이름을 붙여도, 만화를 그린 분이 이렇게 이름을 붙일 뿐이다. ‘빨간 나비’라든지 ‘빨간 구름’ 같은 이름을 붙일 수도 있다. 그러니까, 이름은 대수로우면서 대수롭지 않다. 무슨 말인가 하면, 우리가 누리는 삶은 대수로우면서 대수롭지 않다. 우리가 누리는 삶은 만화에 담길 만큼 대수로우면서 굳이 만화로 안 담아도 될 만큼 대수롭지 않다. 또한, 만화에 담기는 삶이라 해서 더 대수롭거나 덜 대수롭지 않다. 그저 우리 삶이고 우리 이야기이며 우리 노래이다. 김수박 님 만화책에서 흐르는 이야기는 오롯이 김수박 님이 겪고 누린 삶이다. 그래서, 이 책을 읽는 동안 김수박 님이 어떤 마음으로 하루를 맞이해서 꿈을 가꾸었는가 하는 대목을 엿볼 수 있다. 앞으로도 김수박 님 스스로 즐겁게 꿈을 키우기를 바랄 뿐이고, 언제나 한결같이 김수박 님 사랑을 곱게 여밀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삶과 꿈과 사랑이 어우러지면, 만화는 언제나 따스할 테니까. 4347.8.30.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한 줄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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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풍선
김수박 지음 / 수다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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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08월 30일에 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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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책방 책꽂이



  헌책방 책꽂이를 바라보면 우리 둘레 이웃들이 어떤 책을 읽고 어떤 책을 안 읽는지 헤아릴 수 있다. 헌책방 책꽂이를 들여다보면 오늘날 사람들이 책을 어떻게 마주하는가를 짚을 수 있다. 머나먼 옛날 이야기를 꺼낼 생각이 아니다. 예전에 이 나라에서 사람들이 책을 아끼고 알뜰히 돌보았을 때에는 ‘헌책방 책꽂이 앞에 책이 쌓일 틈’이 없었다고 한다. 누구라도 책을 반갑게 맞이하면서 읽으려 했단다. 지식인만 읽는 책이 아니고, 대학생만 읽는 책이 아니며, 학자만 읽는 책이 아니었다고 한다. 누구나 즐겁게 책을 손에 쥐면서 삶을 되새기고 생각을 가꾸며 마음을 가다듬었다고 한다.


  오늘날에는 책이 아니어도 볼거리가 많다. 영화가 참으로 많이 나온다. 온 나라 극장이 얼마나 많은가. 집에서 컴퓨터나 텔레비전을 켜면 수많은 영화가 흐른다. 굳이 극장을 안 가더라도, 느긋하게 드러누워 술이나 콜라를 홀짝이면서 영화를 쳐다보기만 해도 된다.


  애써 머리를 굴리면서 책을 읽으려 하지 않는 오늘날이 된다. 우리는 머리(뇌)를 제대로 쓰지 않는데, 머리(뇌)를 제대로 쓰지도 않으면서 그나마 이런 머리조차 더 안 쓰려 한다. 생각을 놓고 영상에 사로잡힌다. 텔레비전에 영화에 그저 휩쓸린다.


  영화가 나쁘다는 뜻이 아니라, 영화를 보면서 생각을 기울이거나 가다듬는 일이 드물다는 뜻이다. 그냥 보고 그냥 잊는다. 재미로 삼아 본 뒤, 다른 재미를 찾아 움직인다.


  그런데, 재미가 이쪽에서 저쪽으로 옮아 갈 수 있을까. 이쪽에서 재미를 보다가 저쪽으로 가서 다른 재미를 볼 수 있을까. 이렇게 옮겨 다니면서 재미 꽁무니만 좇을 적에 우리 삶은 어떻게 될까.


  가장 재미있는 놀이는 남이 나한테 차려 주지 않는다. 가장 재미있는 놀이는 언제나 스스로 빚는다. 스스로 놀이를 생각해 내어 즐길 때에 가장 재미있다. 스스로 놀이를 빚어 내어 함께 누릴 적에 더할 나위 없이 재미있다.


  책을 읽으면서 재미있다고 말하는 이들이 있다. 왜 재미있을까? ‘재미있는 줄거리’가 있기 때문일까? 아니다. 줄거리 때문에 책이 재미있지 않다. 책을 읽으면서 내 머리(뇌)를 자꾸 쓰고, 그동안 잠자던 머리를 깨워 생각을 자꾸 새로 짓기 때문에 재미있다. 내가 나아갈 길을 스스로 밝히니 재미있고, 내가 누릴 삶을 스스로 캐거나 짓거나 일구기에 재미있다.


  헌책방 책꽂이마다 책이 쌓이는 모습을 곰곰이 지켜본다. 오늘날 사람들은 참말 재미없게 사는구나 싶다. 그런데, 영화를 보든 어디 놀러갔다 오든, 비행기를 타고 외국에 다녀오든, 재미가 넘치는 얼굴이 되지 않는다. 영화를 다 보고 나면 다시 재미없는 얼굴이 된다. 외국에서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재미없는 얼굴이 된다.


  책을 즐겁게 읽어서 스스로 재미를 찾는 사람만 ‘늘 재미있게 밝은 얼굴’이 된다고 말할 뜻은 없다. 책을 읽더라도 스스로 생각을 열어 머리(뇌)를 신나게 쓰지 않는다면 그저 부질없다.


  책을 읽든 영화를 보든 무슨 일을 하든, 내 둘레 이웃들이 머리(뇌)를 신나게 쓸 수 있기를 빈다. 스스로 재미를 실컷 지어서 아름다운 삶을 사랑스레 누리는 길을 걸어갈 수 있기를 빈다. 4347.8.30.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헌책방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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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있다



  책방에 책이 있다. 책에 이야기가 있다. 이야기에 넋이 있다. 넋에 사랑이 있다. 사랑에 삶이 있다. 삶에 하루가 있다. 하루에 모든 숨결이 있다. 문득 책을 덮는다. 한창 책을 읽다가 덮는다. 책에 무엇이 있는지 알고 싶어서 책을 골라서 읽다가, 차근차근 흐름을 살피다가, 조용히 책을 덮는다.


  책에 깃든 이야기는 어떤 숨결인지 곰곰이 되새긴다. 내 가슴속에서 늘 싱그럽게 살아서 움직이는 숨결을 찾으려고 수많은 책을 살피거나 읽은 셈일까. 내 가슴속에서 펄떡펄떡 뛰는 숨결이 내 삶이 맞는지 알아보려고 다른 사람들이 적은 책을 그토록 찾거나 살핀 셈일까.


  책이 보여주는 길인 ‘이 책에 적힌 대로 따라오시오’가 아니다. 곧잘 ‘이 책에 적힌 대로 따라오시오’ 하고 외치는 책이 있지만, 이런 책은 한 번 훑은 뒤에 다시 펼칠 일이 드물다. 내가 여러 차례 되읽는 책은 언제나 아무 말을 하지 않고 아무 길을 보여주지 않는다. 그저 나 스스로 내 가슴속을 들여다보라고 넌지시 고갯짓을 할 뿐이다. ‘네 가슴속에 다 있는데 뭘 그리 먼길을 나서면서 기웃기웃 구경하니?’ 하고 한 마디 한다.


  우리는 아이를 낳을 수 있다. 우리는 죽을 수 있다. 그리고, 우리는 살 수 있다. 우리는 모든 것을 할 수 있고, 참말 언제나 모든 것을 다 하면서 이곳에 있다. 저마다 가슴속에 어떤 이야기가 있고 어떤 숨결이 피어나는가를 찬찬히 들여다보고 싶기에 ‘다른 책’, 그러니까 ‘다른 나’를 찾으려고 했는가 보다.


  책이 있는 책방에 선다. 책마다 수많은 ‘내’가 있다. 저마다 다른 곳에서 저마다 다르게 꿈꾸고 사랑하며 살아가는 수많은 ‘내’가 있다. 나는 어떤 길을 책에서 보려 하는가. 나는 어떤 길을 익혀 내 길을 걸어가려는가. 실마리를 여는 열쇠를 가슴속에서 끄집어 내려고 이웃한테 말을 건다. 책을 펼쳐서 읽고, 책을 조용히 덮은 뒤, 한손으로 가슴 언저리를 쓰다듬는다. 4347.8.30.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헌책방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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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방에서



  책방에서 책을 본다. 책방에서 책내음을 맡는다. 책방에서 책빛을 느낀다. 책방에서 책지기 손길을 헤아린다.


  책방에 가는 까닭은 내 마음을 움직이는 책을 만나고 싶기 때문이다. 책을 손에 쥐는 까닭은 내 마음을 찬찬히 살찌우면서 아름다운 노래를 부르고 싶기 때문이다. 책을 읽어 하루가 즐겁다면 먼먼 옛날부터 우리 둘레에서 살아온 사람들이 이녁 슬기를 책마다 살뜰히 담아서 나누어 주었기 때문이다.


  나는 오늘 내 마음에 새로운 숨결로 스며들 책을 살핀다. 내가 고르는 책 하나는 둘레 이웃이 빚은 선물이다. 둘레 이웃은 내가 책을 더 잘 알아볼 수 있도록 곱게 건사해서 책시렁에 놓는다. 나는 그저 책을 바라볼 수 있으면 된다. 나는 그저 책을 손에 쥐어 펼치면 된다. 나는 그저 한 장 두 장 넘기면서 마음에 이야기를 새기면 된다.


  책방지기는 쪽종이에 이웃 책방 전화번호를 적어서 붙인다. 책손이 남긴 말을 간추려 쪽종이에 적어서 나란히 붙인다. 책을 읽을 적에는 이야기를 읽고, 이야기를 읽을 적에는 숨결을 읽으니, 책 하나를 장만하러 책방에 갈 적에는 숨결을 읽으면서 이야기를 나누려는 마음이지 싶다. 4347.8.30.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헌책방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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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랑 놀자 62] 배움잔치



  배우는 일은 즐거움이었습니다. 예부터 무엇 하나 새로 배울 때마다 삶을 즐겁게 가꾸었습니다. 아이들이 뒤집기를 배우고, 기어다니기를 배우고, 일어서기를 배우고, 말을 배우고, 걷기를 배우고, 손에 쥐기를 배우는 모든 일이란 즐거움이었습니다. 호미질을 배우고 낫질을 배우며 새끼꼬기를 배우는 일도 즐거움이었습니다. 나무타기를 배우고 헤엄치기를 배우며 절구질을 배울 적에도 즐거운 노래였어요. 그런데 이제 ‘배우는 즐거움’이 차츰 사라집니다. 대학입시를 바라보는 ‘학습 훈련’만 넘칩니다. 시험문제를 더 잘 풀도록 길들이기만 합니다. 이리하여, 요즈음에는 ‘학교’라는 건물이나 시설은 있되, 배우는 터인 ‘배움터’는 없다고 할 만합니다. 배움터가 없다 보니 배우는 일이 즐거움이 아니요, 배우면서 누리는 잔치도 없구나 싶어요. 가르치거나 배우는 사람들은 날마다 잔치입니다. 날마다 새로운 삶을 느끼기에 잔치입니다. 날마다 새로 태어나면서 바라볼 수 있기에 잔치입니다. 배움잔치인 삶입니다. 배움잔치인 삶을 누려야 사랑을 일굽니다. 배움잔치를 누리며 사랑을 일구어야 꿈을 키웁니다. 4347.8.30.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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