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가을 탱자잎



  첫가을로 접어든다. 첫가을로 접어들면서 잎빛이 모두 달라진다. 봄부터 즐겁게 먹던 풀잎은 차츰 억세면서 쓴맛이 감돈다. 우리더러 그만 먹으라는 뜻일 수 있다. 이제 꽃대를 올려 씨앗을 맺어야 하는데 자꾸 잎을 뜯으면 꽃대를 올리기 힘들다는 소리라고나 할까.


  탱자알은 참 천천히 익는다. 탱자꽃이 진 지 한참이지만 아직 탱자알은 짙푸르다. 가만히 보면 탱자잎이 먼저 옅푸르게 바뀌고, 탱자잎이 더 옅푸르다가 옅누렇게 빛깔이 빠질 무렵 탱자알도 차츰 노오란 빛이 들지 싶다.


  탱자잎을 바라보면서 날씨가 어떻게 달라지는가 하고 곰곰이 느낀다. 텔레비전이 없던 사람들은, 신문이나 인터넷이 없던 사람들은, 우리 삶자락에서 언제나 마주하는 잎사귀 하나와 흙내음 하나로 얼마든지 날씨와 철을 읽었으리라 느낀다. 4347.9.2.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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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개 찌그러진 무당벌레



  고들빼기잎에 앉아서 쉬는 무당벌레를 바라본다. 한가위가 코앞이니 가을빛이 한창인 요즈음이다. 무당벌레도 아침저녁으로 쌀쌀한 바람을 느끼리라. 그런데, 무당벌레를 가만히 들여다보니 날개가 찌그러졌다. 어쩌다 찌그러졌을까. 날개가 찌그러졌으면 제대로 날 수 있을까. 날면서 이리 기우뚱 저리 흔들 하지는 않을까. 아직 낮에는 많이 따뜻하지만, 곧 무당벌레도 겨울잠에 들 때가 되겠네. 겨울잠에 들기 앞서까지 즐겁게 풀밭을 누리렴. 4347.9.2.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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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 백과사전 - 내 안의 모든 감정과 만나는 그림책 밝은미래 그림책 18
메리 호프만 글, 로스 애스퀴스 그림, 최정선 옮김 / 밝은미래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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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425



마음을 이야기해요

― 감정 백과사전

 메리 호프만 글

 로스 애스퀴스 그림

 최정선 옮김

 밝은미래 펴냄, 2014.5.30.



  어머니나 아버지가 걱정을 늘어놓으면 아이들도 어느새 걱정을 물려받습니다. 어머니나 아버지가 걱정을 하지 않으면 아이들도 걱정을 모릅니다. 어머니나 아버지가 즐겁게 웃고 노래하면 아이들은 늘 웃고 노래하면서 하루를 누립니다. 어머니나 아버지가 즐겁게 웃거나 노래하지 않으면 아이들은 웃음도 노래도 좀처럼 스스로 길어올리지 못하곤 합니다.



.. 행복 유전자를 타고난 것처럼 언제나 행복해 보이는 사람들도 있어. 어떨 땐 반짝이는 햇살만 봐도 행복한 기분이 든단다 ..  (5쪽)



  사랑을 물려주는 어버이는 아이들이 앞으로 어른이 될 적에 이웃과 동무한테 사랑을 나누어 주도록 이끕니다. 근심과 슬픔을 물려주는 어버이는 아이들이 앞으로 어른이 될 적에 이웃과 동무한테 근심과 슬픔을 퍼뜨리도록 이끕니다.


  참말 그렇습니다. 아이들은 옳거나 그르다고 가르지 않으면서 받아들입니다. 아이들은 좋거나 싫다고 금을 긋지 않으면서 맞아들입니다. 사랑이라서 옳거나 좋다고 받아들이지 않아요. 어버이가 사랑스럽게 지내니, 이러한 모습을 늘 지켜보면서 사랑을 받아들입니다. 근심이라서 그르거나 슬픔이라서 나쁘다고 쩍쩍 가르지 않습니다. 어버이가 늘 근심과 슬픔에 젖어서 지내니, 아이들은 그저 늘 바라보면서 하나둘 맞아들입니다.




.. 살다 보면 속상한 일도 생겨. 친구가 너를 무시하거나 따돌린다면 ..  (14쪽)



  메리 호프만 님이 글을 쓰고, 로스 애스퀴스 님이 그림을 그린 《감정 백과사전》(밝은미래,2014)을 읽으며 생각합니다. 즐거움과 흐뭇함 같은 느낌뿐 아니라 걱정과 창피 같은 느낌을 두루 이야기합니다. 어느 모로 본다면, 즐거운 느낌보다 서운하거나 고단한 느낌을 조금 더 이야기하지 싶습니다.


  가만히 살피면, 이 그림책에서 서운하거나 고단한 느낌을 더 다룰 만할 수 있으리라 봅니다. 왜냐하면, 오늘날 여느 어버이는 즐거운 느낌보다 서운하거나 고단한 느낌으로 하루하루 살림을 꾸린다고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어른들은 걱정이 참 많습니다. 오늘날 어버이들은 근심덩어리라 할 만합니다. 아이를 낳아 함께 지내면서 즐겁게 웃고 노래하며 춤추는 어버이는 얼마나 있을까요. 학교와 학원 때문에 걱정할 뿐 아니라, 돈 때문에 근심이 가득합니다. 뒤틀린 정치와 경제와 사회 때문에 골이 아픕니다. 자동차 소리 때문에 언제나 귀가 아프고, 매캐한 바람과 찌뿌둥한 하늘을 짊어진 채 하루하루 힘겹습니다.


  맑은 물을 못 마시는 사람들입니다. 어른도 아이도 똑같습니다. 하루라도 수돗물이 끊기면 도시에서는 큰일이 생깁니다. 하루라도 가스가 끊기거나 전기가 끊겨 보셔요. 어떻게 될까요. 아이들은 딱히 걱정하지 않을 수 있지만, 어른들은 온통 걱정투성이입니다.


  전쟁이 터지면 어쩌지요? 아버지나 아저씨는 군대에 끌려갈 걱정을 해야겠지요. 전쟁이 터지면 도시사람은 어떻게 하지요? 어디 몸을 옮길 시골이 있을까요. 시골로 몸을 옮기더라도 어떻게 먹고살까요? 전쟁이 아니더라도 핵발전소가 터지면 어쩌나요? 핵발전소가 아니더라도 화력발전소가 터지면 어떡하나요? 화력발전소가 아니더라도 그동안 미군부대에서 흘려보낸 엄청난 쓰레기와 석유찌꺼기와 중금속은 어떡하나요?




.. 정말로 부끄러워서 어떡해야 좋을지 몰랐던 적이 있니? 떠올리기만 해도 창피해서 숨어 버리고 싶은 일, 그런 일은 누구에게나 있어. 엄마나 아빠가 사람들 앞에서 너를 창피하게 만들 때도 있을 거야 ..  (22쪽)



  마음을 바라봅니다. 아이들이 서로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마음을 이야기합니다. 마음을 마주합니다. 아이와 어른이 서로 따사롭게 마주하면서 마음을 이야기합니다. 마음을 주고받습니다. 어른들이 서로 어깨동무를 하면서 마음을 이야기합니다.


  마음이 넉넉할 때에 즐거운 하루가 됩니다. 마음이 기쁠 때에 환하게 웃습니다. 환하게 웃는 마음일 때에 사랑이 샘솟습니다. 사랑이 샘솟을 때에 노래가 흐르고 춤이 절로 나옵니다.




.. 쉽게 해결할 수 있는 작은 일도 자꾸 걱정하다 보면 큰일처럼 느껴지거든. 이런 말 들어 봤니? “작은 걱정이 큰 걱정을 만든다.” 네 고민을 털어놓을 만한 사람이 없으면 종이에 네 걱정거리들을 하나하나 적어 보는 것도 좋아 ..  (27쪽)



  마음을 이야기하는 《감정 백과사전》은 우리한테 꼭 한 가지를 힘주어 말하려는구나 싶습니다. 어려운 일도 괴로운 일도 슬픈 일도 고달픈 일도 있을 테지만, 우리 스스로 웃고 노래하면, 모든 실타래를 풀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려주려 하지 싶습니다. 내가 먼저 한발 나서서 어깨동무를 하자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내가 스스로 웃고 노래하자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기다리지 않아도 돼요. 내가 먼저 웃으면 돼요. 서두르지 않아도 돼요. 느긋하게 웃으면 됩니다. 웃을 수 있는 마음이 따사롭습니다. 웃을 수 있는 마음일 때에 서로 돕습니다. 웃을 수 있는 마음이 되어야 비로소 사랑꽃이 핍니다. 4347.9.1.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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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로 읽는 책 162] 몸빛



  포근히 어루만지면서

  보드라이 안을 때

  맑게 빛나는 몸.



  바라보는 대로 이룬다고 느낍니다. 아무렇게나 바라보면 내 넋은 아무렇게나 흔들리고, 사랑스레 바라보면 내 넋은 사랑스레 거듭난다고 느낍니다. 즐겁게 바라볼 적에 즐겁게 다시 태어나는 넋이고, 꾀죄죄하게 바라보면 그야말로 꾀죄죄하게 주눅이 드는 넋이지 싶어요. 우리 몸도 똑같아요. 우리가 어떻게 바라보거나 마주하는가에 따라 튼튼한지 안 튼튼한지 씩씩한지 안 씩씩한지 달라지지 싶습니다. 4347.9.1.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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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마을운동 책읽기 (조선왕조실록)



  새마을운동이란 무엇인가. 새로운 마을을 만들겠다는 운동일 텐데, 정작 이 운동은 1970년데 군사독재자가 이 나라를 군홧발로 짓밟으려는 뜻으로 퍼뜨렸다. 도시에 새로 짓는 공장으로 경제개발을 내세우는데, 도시 공장 노동자 숫자가 모자라니, 아무래도 시골에서 사람들을 끌어들여야 했고, 시골사람을 도시로 끌어들이려고 시골을 와장창 무너뜨리는 짓을 일삼았다. 농약과 비료와 기계를 시골에 퍼부어서, 시골에서는 ‘일손이 없어도 일해서 돈을 벌 수 있다’는 거짓말을 심었다. 이러면서 군사독재정부는 농약장사·비료장사·농기계장사·석유장사로 더 큰 돈을 벌어들인다. 도시에서는 ‘시골에서 흘러든 노동자’를 아주 싸디싼 일삯으로 부려먹으면서 더 큰 돈을 거머쥔다.


  군사독재정부를 지키려고, 마을 공동체 문화를 없애려 했다. 두레와 품앗이를 없애려 했다. 그러니, 농약과 비료와 농기계를 시골에 들이부었다. 집집마다 따로따로 농약을 뿌리고 기계를 쓰도록 내몰았다. 모든 일을 예부터 손으로 하면서 쓰레기 하나 없던 시골에 갑자기 손일이 사라지면서 이웃사랑과 이웃돕기까지 사라졌다. 논과 밭과 들과 숲에 농약이 춤추면서 아이들은 시골을 떠났고, 시골을 떠난 아이들은 돌아오지 않았다. 글을 배운 적 없는 사람만 시골에 남아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되었고, 이제 오늘날 시골에서 육칠십대뿐 아니라 팔구십대 할머니와 할아버지조차 농약과 비료와 비닐과 석유가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이 되고 만다.


  새마을운동은 참말 새로운 마을을 만들었다. 모든 삶이 자본주의에 노예처럼 길들이거나 얽매이는 마을을 만들었다. 시골사람이 흙으로 자립이나 자급자족을 못하도록 새로운 마을을 만들었다. 도시사람은 공산품과 물질문명에 길들어 스스로 삶을 못 짓는 굴레에 갇히도록 새로운 마을을 만들었다.


  그런데, 이런 새마을운동이 ‘유네스코 세계기록문화유산’에 이름을 올렸다. 참 대단하다. 그러나, 그럴 만하겠다고 느낀다. ‘조선왕조실록’과 ‘새마을운동’은 다를 바 없다고 느낀다. 두 가지 모두 권력자가 권력을 지키려고 한 일이다. 여느 사람이 여느 살림을 가꾸거나 사랑하도록 하던 일하고 동떨어진다. 여느 사람이 삶을 사랑하면서 부르던 노래와 나누던 춤과 주고받던 이야기는, 조선왕조실록이나 새마을운동 가까이에 가지도 못한다.


  아직도 새마을운동 깃발이 춤춘다. 오늘날 학교에서는 조선왕조실록을 역사로 가르친다. 아직도 시골에서는 자립이나 자급자족하고는 한참 멀다. 오늘날 학교에서는 ‘여느 사람들 삶과 이야기(민중문화)’를 안 가르친다.


  생각해 보라. 조선왕조실록에 나오는 사람들은 조선이라는 나라에서 1%도 안 되는 권력자 끄나풀이다. 조선이라는 나라에서 99%를 훨씬 넘던 여느 수수한 사람들 이야기를 왜 학교에서 역사나 경제나 정치나 문화나 과학으로는 안 가르치고 안 말하며 안 보여줄까? 바로 우리를 노예로 만들어 기계 부속품으로 다루려는 속셈이기 때문이다.


  아이들한테 조선왕조실록을 읽히지 말자. 아이들한테는 삶과 사랑과 꿈을 물려주자. 어른들은 새마을운동 깃발을 걷어치우자. 어른들은 마을 두레와 품앗이와 어깨동무로 거듭나자. 4347.9.1.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삶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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