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을 돌보는 책읽기



  몸이 고단하거나 아프면, 책을 손에 쥘 엄두를 못 내기 일쑤이다. 고단하니까 몸을 쉬려 하고, 아프니까 몸을 살리려 한다. 몸이 고단하기에 기운을 되찾기까지 가만히 쉰다. 몸이 아프니까 힘을 되찾도록 조용히 쉰다.


  책을 읽으려면 그만큼 기운을 쏟고 힘을 기울여야 한다. 그러니까, 책을 읽고 싶다면, 몸이 고단하거나 지치지 않도록 애를 써야 한다. 책을 손에 쥐고 싶으면, 언제나 튼튼하면서 씩씩한 몸이 되도록 마음을 다스려야 한다.


  시외버스를 이틀에 걸쳐 여덟 시간쯤 타면서 생각한다. 시외버스로 여덟 시간쯤 달리니, 이동안 책을 얼마나 많이 읽을 수 있을까? 어제는 세 권을 읽었는데, 오늘은 아직 한 권도 못 읽는다. 바깥일을 마치고 시골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기운이 많이 빠졌기 때문이다. 속이 더부룩하지 않도록 내 손으로 배를 살살 쓰다듬는다. 이마와 낯을 살살 문지르고 다리를 주무른다. 부산에서 새벽 일찍 길을 나섰으니 고흥에는 한 시쯤 닿을 듯하다. 아이들은 하룻밤 아버지를 못 보았는데 잘 지냈겠지. 오늘 저녁에 아이들한테 어떤 밥을 차려 주면 즐겁고 맛나게 먹을 수 있나 하고 헤아려 본다. 4347.9.22.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삶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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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흥에 닿다



  어제와 오늘 이틀에 걸쳐 여덟 시간쯤 시외버스를 달렸다. 부산서 일을 마치고 고흥으로 돌아온다. 시외버스가 막 고흥에 닿는다. 열한 시 사십육 분. 열두 시 반에 우리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를 탈 수 있다. 살짝 틈이 생긴다. 저잣마실을 한다. 집에서 아버지를 기다릴 새끼 제비들을 떠올리면서 돼지 뒷다리살을 장만한다. 부산에서 일을 마친 뒤 받을 삯이 아직 은행계좌에 들어오지 않았을 테지만, 곧 들어오겠지. 가을볕이 뜨끈뜨끈하다. 온몸을 덥힌다. 바람이 살그머니 분다. 머리카락이 날린다. 바람이 불어 머리카락을 날릴 때에 즐겁다. 그래서, 중학교에 들어갈 무렵 머리를 빡빡이로 밀어야 하던 때에 몹시 못마땅했다. 왜 학교는 사내 아이 머리카락을 빡빡이로 밀어서 감옥 죄수처럼 만드는가. 군내버스가 들어온다. 마을 할매가 먼저 나를 알아보고 인사하신다. 나도 꿉벅 절을 한다. 어디 다녀오느냐고 물으신 뒤, 좋은 일이 많이 꾸준히 있으면 “다 됐지!” 하신다. 좋은 일이 있으면 된다. 그렇지. 스스로 좋은 일을 지어서 하루하루 즐기면 되지. 고흥에 닿았다. 20분만 더 가면 우리 집이다. 4347.9.22.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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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가는 책읽기



  부산 보수동에서 책방골목 살리기 이야기잔치를 함께한 뒤 고흥으로 돌아간다. 마음을 열어 생각을 키우려는 고운 이웃들과 어울리는 동안 나도 새롭게 생각을 키우면서 이야기꽃을 펼칠 수 있었다. 이야기는 참 그렇다. 함께 생각을 키우는 이웃이 있을 때에 확 피어난다. 가슴 가득 부푼 숨결로 시외버스를 탄다. 가을볕이 곱네. 4347.9.22.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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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깥일 나서는 새벽밥



  오늘 낮에 부산 보수동 헌책방골목에서 이야기잔치가 있다. 그곳에 가야 한다. 낮 세 시까지 가는데, 적어도 낮 한 시쯤에는 부산 보수동에 닿아 여러 책방을 둘러보면서 사진을 찍어야 한다. 여러모로 따지니, 우리 마을에서 이웃 봉서마을까지 걸어가면, 그곳에는 새벽 여섯 시 십 분에 지나가는 군내버스가 있다. 이 버스를 타고 읍내에 닿은 뒤, 순천으로 가는 시외버스로 갈아타고, 순천에서 부산으로 가는 버스로 다시 갈아타면 이럭저럭 일찍 닿을 듯하다.


  새벽에 길을 나서야 하기에 새벽밥을 짓는다. 새벽밥을 지으려고 어제는 좀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밤 한 시에 자리에서 일어나 글을 쓴 뒤, 새벽 네 시부터 부엌에서 부산을 떤다. 어제 조금 남은 미역국에 콩나물을 넣고 양파를 반 토막 썰어서 된장콩나물국으로 바꾸어 새로 끓인다. 고구마와 감자와 단호박과 달걀을 함께 삶는다. 다섯 시 사십 분에 집을 나설 테니, 꼭 이즈음에 모두 끝마칠 듯하다. 요즈음 우리 집 아이들이 새벽 여섯 시를 살짝 넘으면 일어나서 아침 일곱 시가 안 되었어도 배고프다고 앙앙거리니, 내가 집을 비워도 곁님이 잘 챙겨 주리라 믿는다.


  기지개를 켠다. 몸을 푼다. 가늘디가늘게 걸린 초승달을 바라본다. 고니자리는 어디에 있을까 헤아린다. 슬슬 가방을 챙겨야겠다. 4347.9.21.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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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말도 익혀야지

 (1001) 아울러


이 책의 내용을 이해한 독자라면 우리 말의 구조와 어원을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될 것입니다. 아울러 잊혀져 가는 우리 말에 쏟는 관심만큼, 사라져 가는 우리 생물에도 많은 사람이 관심 갖기를 바랍니다

《이주희-내 이름은 왜?》(자연과생태,2011) 5쪽


 아울러

→ 이와 아울러



  ‘아울러’는 어찌씨입니다. 한국말사전을 보면, “지혜와 용기를 아울러 갖추다”라든지 “고아나 다름이 없는 사실과 아울러 ” 같은 보기글이 나옵니다. ‘아울러’는 이렇게 글월 사이에 들어갑니다. 그런데, 요즈음 들어 ‘아울러’를 글월 첫머리에 넣는 사람이 퍽 자주 눈에 뜨입니다. 한국말사전에서도 “아울러, 위대한 선언이었고요”라든지 “아울러 그 절도 사건을 취급한 경찰의 태도” 같은 보기글을 싣습니다.


  ‘아울러’는 “동시에 함께”를 뜻합니다. ‘同時’란 ‘한때’를 가리키니, “한때에 함께”를 나타냅니다. 그런데, ‘동시 + 에’는 글월 첫머리에 쓰지 않습니다. 한국말사전에서도 “그 사람은 농부인 동시에 시인이었다”라든지 “독서는 삶의 방편인 동시에 평생의 반려자이기도 하다”와 같은 보기글을 싣습니다. “-인 동시에” 꼴로 나타난다고 하겠는데, “-이면서”로 손질할 수 있어요. 무슨 소리인가 하면, ‘동시에’와 같은 말꼴은 글월 사이에만 쓸 수 있지, 글월 첫머리에는 안 쓴다는 뜻입니다. 글월 첫머리에 이 낱말을 넣고 싶다면 “이와 동시에”라든지 “그와 동시에”처럼 적어야 합니다.


  ‘아울러’는 “동시에 함께”를 뜻하니, 이번에는 ‘함께’를 살펴봅니다. ‘함께’는 “한꺼번에 같이”를 뜻합니다. 뜻풀이로만 본다면, ‘아울러’나 ‘함께’나 ‘같이’는 모두 같거나 엇비슷하다고 여길 만합니다.


 아울러, 위대한 선언이었고요 (x)

 함께, 위대한 선언이었고요 (x)

 같이, 위대한 선언이었고요 (x)


  ‘아울러’뿐 아니라 ‘함께’나 ‘같이’를 글월 첫머리에 외따로 놓아 봅니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도 요즈음에 드문드문 나타납니다. 그러나, 한국말에서는 이런 어찌씨를 글월 첫머리에 넣지 않습니다. 이음씨가 아니라면 글월 첫머리에 두지 않아요.


  “이와 아울러”처럼 적거나, “이와 함께”처럼 적거나, “이와 같이”처럼 적습니다. ‘아울러·함께·같이’ 앞에는 반드시 다른 말을 넣습니다. 다른 말을 앞에 넣을 때에 ‘아울러·함께·같이’가 제구실을 합니다.


  사회나 문명이 새로우니, 새로운 말투를 쓸 수도 있습니다. 새로운 말투로 쓰는 일이 잘못이라고는 여기지 않습니다. 그러면, “이와 아울러”나 “이와 함께”처럼 적는 말씨에서 ‘이와’라는 말마디를 없애거나 지우는 말씨는 얼마나 새로울 만한지 궁금합니다. 굳이 이렇게 써야 할는지 궁금합니다. 한국말을 제대로 못 배우거나 옳게 못 살핀 탓에 엉성하게 말을 하거나 글을 쓰지는 않나 궁금합니다. 엉성하게 쓴 말은 알맞게 바로잡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4347.9.21.해.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이 책을 잘 헤아린 분이라면 우리 말 얼개와 뿌리를 헤아릴 때에 크게 도움이 되리라 봅니다. 이와 아울러, 잊혀지는 우리 말에 쏟는 눈길만큼, 사라지는 우리 생물도 더 널리 눈여겨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 책의 내용(內容)을 이해(理解)한 독자(讀者)라면”은 “이 책을 잘 읽은 분이라면”이나 “이 책을 잘 헤아린 분이라면”으로 손보고, “우리 말의 구조(構造)와 어원(語源)”은 “우리 말 얼개와 뿌리”로 손봅니다. “많은 도움이 될 것입니다”는 “크게 도움이 되리라 봅니다”로 손질합니다. ‘관심(關心)’은 ‘눈길’이나 ‘사랑’으로 다듬고, “많은 사람이 관심 갖기를 바랍니다”는 “많은 사람이 눈여겨보기를 바랍니다”나 “더 널리 눈여겨보기를 바랍니다”로 다듬어 줍니다.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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