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청 어느 공무원을 문득 스친 뒤



  토요일 낮에 고흥군청 앞으로 간다. 고흥에서 뜻과 생각을 가꾸려는 사람들이 마음을 모아서 조그맣게 저잣터를 열었다. 저잣터에 네 식구가 나들이를 간다. 낮 두 시 군내버스를 타고 읍내로 나가서, 낮 네 시 사십 분 군내버스로 집으로 돌아오려 한다. 그늘이 드리운 곳에 앉아서 쉬는데, 고흥군청 어느 곳에서 일하는 공무원 아저씨를 만난다. 군청에서 일한다는 분은 그냥 ‘군청에서 일한다’고 말씀한다. 그렇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인다. 한참 뒤, 우리는 군내버스 타러 일어선다. 자리에서 일어서기 앞서 그분이 ‘고흥에 살면서 어려운 점은 없습니까?’ 하고 물으시기에, “어려운 일은 없어요. 그런데, 군청에서 자꾸 어려운 일을 만드네요. 멀쩡히 있는 골짜기 바닥을 들어내어 시멘트를 들이부어 망가뜨리지를 않나, 깨끗한 바닷가에 청소년수련원을 새로 짓는다면서 숲을 밀어서 바다를 온통 더럽히지를 않나. 사람들이 고흥에 관광을 하러 온다면 아름다운 숲과 바다를 보러 올 텐데, 숲과 바다를 망가뜨리기만 하니, 이런 일들 때문에 우리 식구가 고흥에 앞으로도 그대로 살아야 할는지 말아야 할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하고 이야기를 한다.


  나무를 밀어서 자동차가 드나들기 좋은 찻길을 닦으면 사람들이 숲으로 올까? 이런 숲에 오는 사람도 있겠지. 물과 모래가 맑고 아름다운 바닷가에 시멘트를 퍼부어서 ‘산책길’을 만들면 사람들이 바다로 올까? 이런 바다에 오는 사람도 있겠지. 4347.9.21.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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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을 돌보는 책읽기



  몸이 고단하거나 아프면, 책을 손에 쥘 엄두를 못 내기 일쑤이다. 고단하니까 몸을 쉬려 하고, 아프니까 몸을 살리려 한다. 몸이 고단하기에 기운을 되찾기까지 가만히 쉰다. 몸이 아프니까 힘을 되찾도록 조용히 쉰다.


  책을 읽으려면 그만큼 기운을 쏟고 힘을 기울여야 한다. 그러니까, 책을 읽고 싶다면, 몸이 고단하거나 지치지 않도록 애를 써야 한다. 책을 손에 쥐고 싶으면, 언제나 튼튼하면서 씩씩한 몸이 되도록 마음을 다스려야 한다.


  시외버스를 이틀에 걸쳐 여덟 시간쯤 타면서 생각한다. 시외버스로 여덟 시간쯤 달리니, 이동안 책을 얼마나 많이 읽을 수 있을까? 어제는 세 권을 읽었는데, 오늘은 아직 한 권도 못 읽는다. 바깥일을 마치고 시골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기운이 많이 빠졌기 때문이다. 속이 더부룩하지 않도록 내 손으로 배를 살살 쓰다듬는다. 이마와 낯을 살살 문지르고 다리를 주무른다. 부산에서 새벽 일찍 길을 나섰으니 고흥에는 한 시쯤 닿을 듯하다. 아이들은 하룻밤 아버지를 못 보았는데 잘 지냈겠지. 오늘 저녁에 아이들한테 어떤 밥을 차려 주면 즐겁고 맛나게 먹을 수 있나 하고 헤아려 본다. 4347.9.22.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삶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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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흥에 닿다



  어제와 오늘 이틀에 걸쳐 여덟 시간쯤 시외버스를 달렸다. 부산서 일을 마치고 고흥으로 돌아온다. 시외버스가 막 고흥에 닿는다. 열한 시 사십육 분. 열두 시 반에 우리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를 탈 수 있다. 살짝 틈이 생긴다. 저잣마실을 한다. 집에서 아버지를 기다릴 새끼 제비들을 떠올리면서 돼지 뒷다리살을 장만한다. 부산에서 일을 마친 뒤 받을 삯이 아직 은행계좌에 들어오지 않았을 테지만, 곧 들어오겠지. 가을볕이 뜨끈뜨끈하다. 온몸을 덥힌다. 바람이 살그머니 분다. 머리카락이 날린다. 바람이 불어 머리카락을 날릴 때에 즐겁다. 그래서, 중학교에 들어갈 무렵 머리를 빡빡이로 밀어야 하던 때에 몹시 못마땅했다. 왜 학교는 사내 아이 머리카락을 빡빡이로 밀어서 감옥 죄수처럼 만드는가. 군내버스가 들어온다. 마을 할매가 먼저 나를 알아보고 인사하신다. 나도 꿉벅 절을 한다. 어디 다녀오느냐고 물으신 뒤, 좋은 일이 많이 꾸준히 있으면 “다 됐지!” 하신다. 좋은 일이 있으면 된다. 그렇지. 스스로 좋은 일을 지어서 하루하루 즐기면 되지. 고흥에 닿았다. 20분만 더 가면 우리 집이다. 4347.9.22.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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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가는 책읽기



  부산 보수동에서 책방골목 살리기 이야기잔치를 함께한 뒤 고흥으로 돌아간다. 마음을 열어 생각을 키우려는 고운 이웃들과 어울리는 동안 나도 새롭게 생각을 키우면서 이야기꽃을 펼칠 수 있었다. 이야기는 참 그렇다. 함께 생각을 키우는 이웃이 있을 때에 확 피어난다. 가슴 가득 부푼 숨결로 시외버스를 탄다. 가을볕이 곱네. 4347.9.22.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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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깥일 나서는 새벽밥



  오늘 낮에 부산 보수동 헌책방골목에서 이야기잔치가 있다. 그곳에 가야 한다. 낮 세 시까지 가는데, 적어도 낮 한 시쯤에는 부산 보수동에 닿아 여러 책방을 둘러보면서 사진을 찍어야 한다. 여러모로 따지니, 우리 마을에서 이웃 봉서마을까지 걸어가면, 그곳에는 새벽 여섯 시 십 분에 지나가는 군내버스가 있다. 이 버스를 타고 읍내에 닿은 뒤, 순천으로 가는 시외버스로 갈아타고, 순천에서 부산으로 가는 버스로 다시 갈아타면 이럭저럭 일찍 닿을 듯하다.


  새벽에 길을 나서야 하기에 새벽밥을 짓는다. 새벽밥을 지으려고 어제는 좀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밤 한 시에 자리에서 일어나 글을 쓴 뒤, 새벽 네 시부터 부엌에서 부산을 떤다. 어제 조금 남은 미역국에 콩나물을 넣고 양파를 반 토막 썰어서 된장콩나물국으로 바꾸어 새로 끓인다. 고구마와 감자와 단호박과 달걀을 함께 삶는다. 다섯 시 사십 분에 집을 나설 테니, 꼭 이즈음에 모두 끝마칠 듯하다. 요즈음 우리 집 아이들이 새벽 여섯 시를 살짝 넘으면 일어나서 아침 일곱 시가 안 되었어도 배고프다고 앙앙거리니, 내가 집을 비워도 곁님이 잘 챙겨 주리라 믿는다.


  기지개를 켠다. 몸을 푼다. 가늘디가늘게 걸린 초승달을 바라본다. 고니자리는 어디에 있을까 헤아린다. 슬슬 가방을 챙겨야겠다. 4347.9.21.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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