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를 생태세밀화로만 그리는 그림만 곧잘 나오는데, 이렇게 나무와 얽힌 '내 이야기'를 조곤조곤 풀어내는 그림책이 나오니 반갑다. 나무를 잊고 살거나 나무하고 동떨어진 채 살아가는 사람들 가슴에 푸른 내음이 물씬 풍길 수 있기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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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친구 이야기
강경선 글.그림 / 길벗어린이 / 2012년 7월
11,000원 → 9,900원(10%할인) / 마일리지 550원(5% 적립)
2012년 10월 11일에 저장
절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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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촐하게 책잔치 즐기기

 


  한글날에 맞추어 새로 내놓은 이야기책 《사자성어 한국말로 번역하기》를 놓고, 부산 보수동 헌책방골목 한켠에 자리한 〈우리글방 북카페〉에서 조촐하게 책잔치를 열었다. 시골에서 살아가며 도시로 마실을 하기 어렵고, 도시로 굳이 마실을 할 생각이 없는 터라, 내가 쓴 책을 놓고 책잔치(출판기념잔치)를 여는 일을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다 마침 부산 보수동 헌책방골목에 마실을 갔고, 마실을 할 즈음 한글날이 끼었다. 깜짝잔치로 책잔치를 열면 어떠할까 생각해 보았다. 한 사람이 찾아오든 열 사람이 찾아오든, 서로서로 마음을 열고 이야기를 주고받으면 기쁘리라 생각했다.


  서울에 있는 출판사에서 돈 20만 원을 부쳐 준다. 서울에서 부산으로 마실을 오지 못해 미안하다는 뜻을 알린다. 미안할 일은 없지만, 돈은 고맙게 받는다. 이 돈으로 케익을 하나 산다. 맛난 보리술도 몇 깡통 산다. 아이들 줄 먹을거리도 몇 가지 산다. 이듬날에는 부산에서 고흥으로 돌아갈 기차표도 끊고, 기차에서 먹을 도시락까지 장만한다.


  돈 몇 푼은 여러 사람이 깊은 밤까지 이야기꽃 즐길 수 있는 밑거름이 된다. 내가 쓴 책은 여러 사람이 깊은 밤에도 이야기꽃 나눌 수 있는 밑바탕이 된다. 이제 조그마한 책쉼터 책잔치를 마치고, 이 책들은 나라안 여러 책방 책시렁에 꽂힐 테고, 여러 사람들이 즐겁게 장만해서 읽어 주겠지. 저마다 고운 넋을 북돋우고 고운 삶을 살찌우는 반가운 삶동무로 여길 수 있으면 얼마나 기쁠까. (4345.10.11.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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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헌책방에서 책읽는 어린이

 


  헌책방에서 노는 어린이는 그림책을 책상에 펼쳐 놓고는 종알종알 읽는다. 아버지가 그림책을 읽어 주니, 저도 스스로 읽겠다며 그림을 보며 종알종알 읽는데, 줄거리 흐름하고는 동떨어진 말을 읊는다. 다섯 살 아이 나름대로 아이가 아는 모든 낱말을 끌어들이고, 아이가 느낀 그대로 읊는다. (4345.10.11.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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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로 '글꼴 디자인'을 하는 책이 무척 오랜만에 선보인 셈 아닐까 생각합니다. 한국사람 스스로 한국말과 한국글을 아끼거나 사랑하는 길이란 너무 먼 듯하기도 하고요. 예쁜 책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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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을 그리다
유래 지음 / 발해 / 2012년 10월
10,500원 → 9,450원(10%할인) / 마일리지 520원(5% 적립)
*지금 주문하면 "3월 5일 출고" 예상(출고후 1~2일 이내 수령)
2012년 10월 11일에 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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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글

 


  글을 쓰는 모든 사람은 ‘글을 쓰는 사람 스스로 누리는 삶’을 글로 씁니다. ‘글을 쓰는 사람 스스로 누리는 삶’ 말고 다른 어느 이야기도 글로 쓰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글은 바로 ‘글을 쓰는 사람’ 삶이기 때문입니다.


  글을 읽으면 ‘글쓴이 삶’을 읽을 수 있습니다. 아주 마땅한 노릇인데, 글은 글쓴이 삶이요, 글에는 글쓴이가 살아오며 품은 생각과 살아가며 겪는 일이 모두 담깁니다. 글에서 글쓴이를 읽을 수 없는 때란 없습니다.


  글을 읽으며 어떤 멋을 느낀다면, 글쓴이는 멋을 누리며 살아갑니다. 속멋을 가꾸듯 겉멋을 챙기든 글쓴이가 멋을 좋아하거나 아끼거나 마음을 쓸 때에는 글에서 멋을 느낍니다. 글을 읽으며 따분하다 싶으면, 글쓴이가 어쩌면 따분하다 싶은 삶을 누린다 할 만합니다. 글을 읽으며 웃음이 터진다면, 글쓴이가 늘 웃는 삶을 누린다든지, 늘 웃고픈 삶을 꿈꾼다는 뜻이라고 느껴요.


  그래서, 글에는 참도 담기고 거짓도 담깁니다. 다만, 글쓴이가 글에 담은 넋을 모든 ‘글을 읽는 사람’이 알아채지는 못해요. 글쓴이는 언제나 글쓴이 삶을 글에 담지만, 읽는이가 언제나 글쓴이 삶을 읽지는 못합니다. 읽는이 스스로 글쓴이 삶하고 하나가 되려고 마음을 기울이면서 ‘글읽기 = 삶읽기’가 되도록 힘을 쓰고 사랑을 들여야 비로소 ‘글쓴이가 어떤 삶을 글에 담았는가’를 헤아릴 수 있어요. 읽는이 스스로 온힘과 온마음을 들여 글을 읽지 않는다면, 100번을 읽든 1000번을 읽든 글쓴이 넋을 못 읽습니다. 이를테면, 성경책을 10000번을 읽는다 하더라도 온힘과 온마음을 기울이지 않으면, 성경책에 담긴 넋을 읽지 못하고 느끼지 못해요. 때로는 엉뚱하게 읽거나 잘못 읽습니다.


  동무가 나한테 띄운 글월을 읽을 때에도 ‘동무 목소리’와 ‘동무 마음’과 ‘동무 숨결’을 고스란히 살피면서 읽어야 제대로 읽을 수 있어요. 동무 삶을 살피지 않고 ‘읽는이 내 틀’에서 글월을 읽으면 으레 잘못 읽거나 엉뚱하게 읽기 마련이라서, 읽는이가 생채기를 받는다고 여기기 마련입니다.


  즐겁게 일구는 삶에서 즐겁게 쓰는 글이 되고 즐겁게 읽는 글로 마주합니다. 슬프게 일구는 삶에서 슬프게 쓰는 글이 되며 슬프게 읽는 글로 이어집니다. 예쁘게 일구는 삶에서 예쁘게 쓰는 글이 되면서 예쁘게 읽는 글로 얼크러져요.


  글쓴이는 글쓴이대로 글쓴이 삶을 담으며 글을 쓰고, 읽는이는 읽는이대로 읽는이 삶에 맞추어 글을 읽어요. 어떤 이가 어느 책을 읽으면서 ‘어느 책에 깃든 알맹이를 알뜰살뜰 받아먹으며 즐긴다’ 한다면, 이 어떤 이(읽는이)는 ‘어느 책을 쓴 사람 넋과 삶과 꿈을 오롯이 아로새기면서 스스로 온힘과 온마음을 들여 아름다운 길을 걸어가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글쓴이로서는 언제나 온넋을 바치는 글 하나를 빚을 때에 아름답고, 읽는이로서는 늘 온넋을 기울이면서 글 한 줄이나 책 한 권을 마주할 때에 아름답습니다.


  글쓴이로서는 바로 오늘 뜻을 이루어 아름답다 싶은 글을 빚을 수 있습니다. 읽는이로서는 바로 오늘 뜻을 이루어 아름답다 싶은 글을 ‘옳고 바르며 알맞고 슬기롭게’ 읽을 수 있습니다. 이와 달리, 글쓴이는 아직 스스로 깨우치지 못한 나머지 글을 제대로 못 쓸 수 있고, 읽는이 또한 아직 스스로 눈길과 눈빛과 눈높이와 눈썰미가 너무 낮아서 ‘아름다운 글 하나 못 알아보’며 겉훑기조차 엉뚱하게 하곤 합니다.


  말꼬리 잡기가 나타나는 까닭은, 읽는이 스스로 아직 마음그릇이 덜 되었기 때문이에요. 글쓴이가 아직 덜 무르익었다 하더라도 읽는이 스스로 곱게 무르익는 마음그릇이 된다면, ‘글쓴이가 여러모로 어리숙하게 글을 썼다’ 하더라도, ‘이 어리숙한 글 한 줄’에 깃든 어여쁜 사랑씨앗 하나를 느끼면서 북돋울 수 있어요. 글쓴이는 아름다운 꿈을 글에 담아 ‘아름다운 읽는이’를 글로 만나고 싶어 합니다. 말꼬리나 말다툼을 하려고 글을 쓰지 않아요. 생각나눔을 하고 생각빚기를 하고 싶기에 글을 씁니다. ‘글쓰기 = 삶쓰기’이기에, 글을 쓰면서 생각을 나누고, 이 글을 읽는 누군가는 이녁 스스로 삶을 살찌울 수 있어요. 글을 쓰는 이는 글을 쓰면서 스스로 생각과 사랑을 새롭게 빚어요. 이렇게 생각과 사랑을 새롭게 빚은 글을 읽는 사람이라면, 이들 읽는이 또한 이녁 생각과 사랑을 새롭게 빚으면서 ‘글로 만날’ 수 있으면 아주 아름답겠지요. (4345.10.11.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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