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핑계

 


  오늘은 아침부터 바람 되게 분다. 아침에 편지꾸러미 싼 다음, 우체국에 들러 책을 부치고 나서, 아이들 자전거에 태워 이웃 풍양면 별학산 너머까지 마실을 해 볼까 생각했으나, 바람을 핑계 대고 길을 나서지 않는다. 봄바람치고 너무 되게 불어, 이 바람으로는 두 아이 태운 자전거 끌다가 아주 ‘바람 맞고’ 애먹을까 싶더라.


  그러나 다 핑계이지. 태풍이 온 날에도, 한겨울에도, 비가 오거나 눈이 오더라도 자전거를 몰았으면서 고작 봄바람 갖고 뭘. 외려, 바람 분다며 아이들 바람 느끼기도 해야 한다면서 자전거 씩씩하게 몬 적도 있잖나.


  깊은 밤 되니 바람이 조용하다. 바람 한 점 없다. 별빛 초롱초롱 맑다. 시골 밤하늘 별을 올려다볼 적마다, 참말 ‘초롱초롱’이라는 낱말 아니고는 별빛을 못 가리겠다고 느낀다. 옛사람은 어쩜 낱말 하나 이렇게 싱그럽게 빚었을까. 오늘 살아가는 나는 옛사람이 빚은 ‘초롱초롱’에 이어, 어떤 새 낱말 맑게 빚으며 저 별빛을 가리킬 수 있을까. 아이들과 잠자리에 누워 자장노래 부르면서 곰곰이 헤아려 보아야겠다. 아이들한테 물어 봐야지. 얘들아, 밤하늘 별빛 어떻게 보이니? 4346.4.9.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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쇠스랑개비꽃 책읽기 (가락지나물, 양지꽃)

 


  볕 잘 드는 곳에서 무리지어 곱게 피어나는 꽃이라 한다며 ‘양지꽃’이라는 이름이 붙는다는 양지꽃을 바라보며 생각한다. 참말 옛날 시골사람도 이런 꽃이름으로 이 꽃을 바라보았을까? 시골사람이 한자말 ‘양지(陽地)’를 썼을까? 나는 어릴 적에 ‘양달’과 ‘응달’이라는 낱말을 썼다. 둘레 어른들도 이런 낱말을 썼다. 나중에 ‘볕받이’라는 낱말을 듣기도 했다. 볕이 잘 드는 곳이라 ‘볕받이’라 한단다.


  그러니까, 한겨레 옛사람이 노랗게 피어나는 꽃한테 붙인 이름이라 한다면 ‘양지꽃’ 아닌 ‘볕받이꽃’이라든지 ‘양달꽃’이라든지 ‘볕달꽃’이라야 맞다.


  그러나, 시골사람이 이런 이름으로 풀포기를 가리켰으리라고도 느끼지 못하겠다. 더 생각하고 찾아본다. 이리하여, ‘쇠스랑개비’라 하는 풀이름 알아낸다. 같은 풀을 가리켜 다른 이름으로 ‘가락지나물’이라고도 한단다. 그래, 바로 이런 이름이지. 손가락 다섯처럼 꽃잎 다섯이 벌어져서 가락지나물일까. 쇠스랑하고 어떻게 이어지는 실타래 있어 쇠스랑개비라는 이름 붙었을까. 이런 이름도 고장마다 다 다를 테지. 전라도와 경상도와 충청도와 강원도와 경기도, 또 함경도와 평안도와 황해도에서 저마다 다 다른 이름으로 이 들꽃 들풀 들나물 이름 가리키겠지. 권정생 할배는 ‘민들레’를 안동 고장말로 ‘말똥굴레’라고 이야기한다. 쇠스랑개비와 가락지나물은 고장마다 어떤 예쁘고 재미난 이름 있을까 궁금하다. 4346.4.9.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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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나물꽃 책읽기 (노랑매미꽃)

 


  봄날에 피어나는 풀과 꽃은 무엇이든 먹을 수 있어 반가우면서 즐겁다. 재미있고 고맙다. 숲은 얼마나 너른 품이 되어 우리한테 밥잔치를 차려서 베푸는가. 한 발자국 살며시 들어가도 나물이고, 두 발자국 가만히 디뎌도 나물이며, 세 발자국 살포시 걸어도 나물이다.


  피나물에 핀 꽃을 바라본다. 왜 ‘피’나물인가를 생각하기 앞서 피‘나물’이라 이름을 붙였구나 하고 생각한다. 피나물 이름 알려주는 분 말씀이 떨어지기 앞서, 낼름 한 닢 똑 따서 입에 넣고 씹는다. 음, 피나물은 이런 맛이로구나.


  큰아이는 피나물 노란 꽃송이를 손에 쥐며 논다. 노랗게 꽃송이 피어나기에 노랑매미꽃이라고도 할까. 참말 봄날 봄들은 노란 물결이다. 우리 어머니가 노란꽃 좋아한다는 말씀 잘 알 만하다. 이렇게 어여쁜 꽃이 피어나는 반가운 나물이 온 들과 숲과 멧골 뒤덮으니, 우리 어머니 어릴 적 시골살이 누리면서 노란 웃음 피웠으리라 생각한다. 우리 할머니가 우리 아이들만 했을 어린 나날 시골자락 모습을 떠올려 보며, 다시 한 닢 똑 따서 먹는다. 4346.4.9.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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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삶에 한 줄, 기다리며 읽는 책

 


  천종호 님이 쓴 책 《아니야, 우리가 미안하다》(우리학교,2013)를 읽다가 282쪽에서 “소년들이 비행을 저지르는 배경에는 경제적인 이유도 크지만 대체로 정신적·심리적 문제인 경우가 더 많다.” 같은 대목에 밑줄을 긋습니다. 소년법정에서 아이들한테 판결하는 일을 맡는 천종호 님은 이 아이들을 소년원으로 보내야 하는지 시설로 보내야 하는지, 아주 너그러이 봐주어야 하는지를 놓고 늘 마음앓이를 한다고 밝힙니다. 잘못을 묻기는 하되 사람을 다그칠 수 없는 노릇이니까요. 아이들이 맑고 밝으며 슬기롭게 살아가기를 바라지, 끔찍한 짐을 짊어진 채 바보스레 무너지기를 바라지 않으니까요. 그런데, 아이들이 잘못을 저지를 적에 ‘돈 때문이라기보다’ ‘마음에 생채기를 입은 탓’이 크다고 한다면, 어른들도 이와 같지 않으랴 싶습니다.


  잘못을 저지르는 어른들은 참말 왜 잘못을 저지를까요. 전쟁무기를 만드는 어른들은 왜 전쟁무기를 만들까요. 이념에 따라 사람을 죽죽 나누어 삿대질하는 어른들은 왜 사람을 이념에 따라 나누려 할까요. 가방끈 길이로 푸대접을 하거나, 살빛을 놓고 푸대접을 하는 어른들 마음밭은 어떤 모습일까요. 왜 어른들은 당신부터 온누리를 아름답게 일구지 않으면서, 아이들한테만 착하고 참다우며 아름답게 살아가라 말할까요.


  강성미 님이 쓴 책 《내 아이가 사랑한 학교》(샨티,2013)를 읽습니다. 65쪽을 읽다가 빙그레 웃습니다. 강성미 님이 아이를 보낸 발도르프 학교 모습을 마음속으로 그려 봅니다. “교실 안, 학교 안, 운동장, 어디라도 아이들이 접하는 공간은 부드러운 색과 부드러운 재료로 꾸며진 발도르프 학교와 자상함을 자주 볼 수 있었다. 그것은 아이들이 눈으로 보는 것, 피부로 접촉하는 것, 코로 냄새 맡는 것들도 입으로 먹는 음식처럼 우리의 내면에 들어와 중요한 양식이 된다는 사실에 대한 이해가 있기 때문이었다.” 하는 이야기를 가만히 헤아립니다. 우리 식구 살아가는 고흥에 있는 초등학교 건물을 보면, 분홍빛 페인트를 바르기도 하고, 노란빛 페인트를 바르기도 합니다. 눈이 막 어질어질합니다. 학교 울타리에는 예쁘장하게 보이려는 그림을 잔뜩 그리기도 합니다. 눈이 마구마구 돕니다.


  그래요. 어른들은 왜 아이들을 생각하지 않으면서 건물 벽에 ‘원색’ 페인트를 바를까요. ‘원색으로 바른 방’에 들어가면 누구라도 몇 분 버티지 못하고 머리가 어지럽다 하는데, 왜 초등학교 건물 벽에 ‘원색’ 페인트를 바를까요. 아이들을 괴롭히고 싶은 마음은 아니라고 느끼지만, 아이들을 아끼는 길을 너무 모르는구나 싶어요. 아이들한테 ‘좋은’ 그림 보여주고 싶은 뜻은 알겠으나, 시멘트 울타리에 그림을 그리려면, 아이들한테 맡겨야지요. 어른 눈높이로 아무 그림이나 그리지 않을 노릇입니다. 섣부른 어른 생각대로 아이 마음결을 함부로 재거나 따지지 않을 노릇입니다.


  그런데, 학교 건물부터 아이들한테 그리 살갑지 않습니다. 이 나라 학교는 도시이든 시골이든 몽땅 시멘트집입니다. 차가운 시멘트로 바르고, 교실 칸은 죄다 똑같습니다. 마치 감옥처럼 짓는 학교 건물이에요. 냉·난방이라든지 첨단시설 갖추는 데에는 마음을 기울이지만, 아이들이 무척 긴 나날 이곳에서 보낸다는 데에는 마음을 쓰지 못해요. 포근한 보금자리 같은 학교 건물이 없습니다. 따스한 마을 같은 학교 건물이 없습니다. 더 들여다보면, 아이들이 학교에서 배우는 것부터 그리 살갑거나 따스하거나 사랑스럽지 않아요. 아이들은 대학입시에 발맞추어 시험공부를 할 뿐이에요. 아이들은 밥짓기·옷짓기·집짓기를 학교에서 하나도 못 배워요. 어린이집과 유치원부터 초·중·고등학교와 대학교까지, 아이들한테 밥·옷·집하고 동떨어진 지식만 집어넣어요. 아이들은 대학교 아닌 대학원까지 다니거나 나라밖으로 배우러 다녀와도 스스로 ‘삶짓기’를 하지 못하는 얼거리예요.


  미야자와 겐지 님 동화책 《늑대 숲, 소쿠리 숲, 도둑 숲》(논장,2000)을 읽습니다. 동화책 첫머리인 8쪽에 “빗속의 푸른 대숲을 보면 좋아서 눈을 깜박깜박하고, 푸른 하늘을 끝없이 날아가는 매를 발견하면 깡충거리며 손뼉을 쳐서 모두에게 알렸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이 겐쥬를 몹시 얕잡아보고 놀려댔기 때문에, 겐쥬는 점점 웃지 않는 척하게 되었습니다.”와 같은 이야기를 읽습니다. 숲을 사랑하고 숲을 누리는 겐쥬라 하는 여린 아이를 마을 아이들은 얕잡아보았답니다. 그러나 겐쥬는 이런 눈길이나 놀림에 아랑곳하지 않으면서 숲을 가슴 깊이 받아들였다고 해요. 왜 어린 아이들이 ‘몸과 마음 여린 아이’를 따사로이 어깨동무하지 못하면서 놀릴까요. 왜 ‘숲을 누리며 아끼는 넋’을 보듬지 못할까요. 꿈을 기다리면서 사랑을 바라면 누구라도 아름다운 눈빛 밝힐 텐데요. 봄볕 기다리면서 봄꽃 바라면 누구라도 맑은 봄내음 한껏 누릴 텐데요. 4346.4.9.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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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글 넣어 책 부치기

 


  이번에 《이야기밭》이라 하는 내 사랑스러운 ‘1인 잡지’를 만들어 봉투에 주소 적고 하나하나 부치면서, 쪽글을 하나하나 적어서 넣어 본다. 내 ‘1인 잡지’를 받아보면서 ‘사진책도서관 함께살기’를 씩씩하게 지키도록 돕는 분들한테 조그마한 글월 띄워 본다.


  봉투 싸랴, 봉투에 주소 적으랴, 쪽글 하나하나 쓰랴, 아무리 짧게 쓴다 하더라도 한 사람한테 보낼 봉투 꾸리는 데에 꽤 긴 겨를과 품이 든다. 오늘 스물 몇 통 꾸리는 데에 벌써 두 시간 즈음 든다. 손목도 아프고 목아지도 당기고 허리도 쑤시고 아이들 밥도 못 차려 주고. 그렇지만, 이렇게 쪽글을 쓰는 동안 즐겁다. 짤막한 한두 줄이라 하더라도 이야기 한 자락 띄워 봄바람 봄내음 보낼 수 있어 좋다.


  여러 날 걸쳐 부치더라도 이렇게 쪽글을 쓰자 생각한다. 시골사람 들에서 풀 뜯어 먹는 흐름처럼, 책 하나 부칠 때에도 찬찬히 싸목싸목 웃으면서 하자. 아이들이 아버지 곁에서 조잘조잘 노래하면서 잘 논다. 4346.4.9.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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