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른팔꿈치가 몹시 저립니다. 저린 지는 한참 되었습니다. 올 사월에 짐을 실어 옮기면서도 저렸지만, 지난해에 자전거 타며 돌아다닐 때에도 썩 좋지 않았습니다. 한편으로는, 자전거를 너무 많이 타고다녀서 그러지 않느냐 싶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책짐을 혼자서 다 꾸리고 나르느라 그러지 않느냐 싶기도 합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이렇게 몸을 쓰면서 제대로 쉬어 준 적이 없이 글쓰기를 하느라 도지고 덧나서 이렇게 되었지 싶고요.

 어제 낮, 낡은 책꽂이를 손질하며 쫄대못을 박울 때입니다. 망치질할 때에도 쩌릿쩌릿하기에, 망치를 왼손으로 들고 못을 박아 봅니다. 처음에는 퍽 서툴어 어려웠지만, 하다 보니 왼손 망치질도 할 만합니다. 빨래는 진작 왼손빨래를 연습해 오고 있었기에, 이제는 제법 익숙합니다. 젓가락질과 숟가락질도 수월하고요. 다만, 공을 던지거나 글씨를 쓰기는 쉽지 않아요. 앞으로는 틈틈이 왼손 글쓰기를 익혀 두려고 합니다. 오른손이 그동안 참 애 많이 썼어요. (4340.8.5.해.ㅎㄲㅅㄱ)

댓글(2)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2007-08-07 23: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파란놀 2007-08-08 07:40   좋아요 0 | URL
말씀 고맙습니다.
참말로, 병원에라도 가 보아야 하지 않겠느냐 싶기도 합니다.
저는 의료보험카드가 없기 때문에 병원에 가면 돈을 많이 내야 하지만,
아는 의사한테 이야기를 해서 어떻게든 진료를 받아야지 싶던데 ^^;;;;
양의사가 아니더라도 한의사 하는 분이라도 만나 보아야겠어요.
에구구구 ^^;;
 


.. 시창작에 있어서, 아니 삶의 창조에 있어서 저항이 어떠한 성질의 것이라는 점을 그는 여기서 암시하고 있다 ..  《조태일-고여 있는 시와 움직이는 시》(전예원,1980) 130쪽

 삶을 자기 스스로 가꾸면서 알알이 빚어낼 때, 비로소 글 하나 세상에 태어날 수 있습니다. 제 스스로 제 삶을 알알이 빚어낼 수 있도록 가꾸거나 힘쓸 때, 비로소 제 마음에 드는 글 하나 살포시 건넬 수 있습니다. 제 삶을 스스로 가꾸지도 않고 추스르지도 않으면서 자꾸자꾸 무언가 뽑아내려고 하면, 책상 앞에 앉아 자판을 두들기거나 볼펜을 붙잡고 종이를 마주할 때에는, 머리가 하얘지기만 할 뿐, 또는 헛말만 지루하게 늘어지기만 할 뿐입니다. 삶이 없이 글이 나올 수 없는 한편으로, 남들 삶을 그저 따라만 갈 때에도 글이 나올 수 없습니다. 내 삶을 꾸려야지, 내 길을 걸어야지, 내 일을 해야지, 내 놀이를 즐겨야지, 내 말을 하고, 내 사람을 만나고, 내 눈으로 바라보아야지, 내 귀로 들어야지, 내 마음으로 헤아려야지, 내 살갗으로 느껴야지, 내 몸으로 껴안아야지, 내 발로 디뎌야지, 내 손으로 만져야지, 내 몸뚱이를 움직여 자전거를 타고 돌아다녀야지, 내 머리로 알아챈 책을 책시렁에서 스스로 뽑아내어 내 주머니에 있는 돈, 그러니까 내 땀방울을 흘려서 번 돈을 써서 사들이고 내 품과 시간을 들여서 읽어내어 내 나름대로 곰삭이고 받아들여야지, 비로소 글 하나가 태어납니다. 글은 태어납니다. (4340.8.6.달.ㅎㄲㅅ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다음주 <시민사회신문>에 싣는 글입니다.


 책으로 보는 눈 14 : 노래방에 없는 노래

 그제, 아내와 노래방에 가서 서로 좋아하는 노래를 불렀습니다. 하지만 정작 부르고픈 노래는 목록에 없더군요. 이를테면 김현식 님 노래 가운데 〈사랑의 나눔이 있는 곳〉이나 〈어화둥둥 내 사랑〉이나 〈할렐루야〉는 없습니다. 정태춘 님 노래에서 〈아, 대한민국〉이나 〈우리들의 죽음〉이나 〈버섯구름의 노래〉 같은 노래는 찾아볼 수 없습니다. 대중가요처럼 되어 버린 노래마을 〈나이 서른에 우린〉 같은 노래도 노래방에서는 찾아보기 힘듭니다. 안치환 님 노래 가운데 〈수풀을 헤치며〉나 〈당당하게〉, 또는 〈저 창살에 햇살이〉는 있어도, 〈고향집에서〉나 〈시인과 소년〉이나 〈38선은 38선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는 없습니다. 이지연 님 노래에서 〈바람아 멈추어 다오〉쯤은 있어도 〈내일이 밝아올 텐데〉나 〈차가운 미소만이〉는 없어요. 언니네이발관 노래는 제법 많이 올라와 있으나 〈동경〉이나 〈쥐는 너야〉나 〈로랜드 고릴라〉라든지 〈미움의 계절〉 같은 노래는 찾아볼 수 없습니다. 노래꾼 이름에 따라 찾아보기를 하다가 그만두게 됩니다. 아주 많이 사랑받던 노래꾼이 아니고서는 그이 ‘인기노래’ 빼고는 찾아볼 수 없습니다. 신정숙 님은 〈그 사람이 울고 있어요〉 하나를, 장덕 님은 〈님 떠난 후〉와 두어 가지를, 우순실 님은 〈잃어버린 우산〉에 두 가지가 더 올라와 있을 뿐이네요.

 그러고 보면, 라디오나 텔레비전에서 들을 수 있는 대중노래는 사람들 귀에 익숙한 노래나 널리 불리던 노래로구나 싶습니다. 교과서에 실리는 시가 이 나라 사람들한테 사랑받는 시 작품이 되고, 교과서에 작품을 싣는 시인쯤 되어야 비로소 팔릴 만한 시인 대접을 받습니다. 고등학교 문학시험에서 100점을 맞는 아이들이, 신경림 시인 이름쯤은 알아도 신경림 시인 시집 하나 사서 읽을 틈이 있을까요. 조태일이나 정희성, 고정희나 최승자, 김해화나 백무산, 조혜영이나 권태응을 알 수 있을는지. 신동엽 하면 〈껍데기는 가라〉는 알 테지만 〈산문시 1〉을 알 수 있을까요. 김수영이나 김남주는 얼마나 제대로 알 수 있을까요.

 노래방에는 대중노래와 트로트, 어린이노래와 서양노래에다가 일본노래까지 있으나 민중노래나 노동노래란 없습니다. 민중노래나 노동노래가 라디오며 텔레비전에 두루 소개될 수 없다고 해도, 노래방을 찾아가는 사람들이 대중노래만 부르는 사람이 아니라 한다면, 민중노래도 노래방에서 즐길 수 있어야지 싶은데. 교보문고나 영풍문고처럼 큰 새책방에서 ‘베스트셀러 목록’과 ‘스테디셀러 목록’을 내걸며, 훨씬 많은 사람들한테 사랑받는 책을 좀더 보기좋고 널찍한 자리에 수백 수천 권씩 쌓아 놓고 판다고 하더라도, 저마다 다른 수많은 출판사마다 다 다른 뜻과 마음으로 펴낸 갖가지 책들이 ‘적어도 한 권씩’ 꽂힐 자리를 얻을 수 있어야지 싶어요. 《일중독 벗어나기》, 《몽골리안 1만 년의 지혜》, 《‘위안부’ 리포트》, 《진보의 미래》, 《여군은 초콜릿을 좋아하지 않는다》, 《부심이의 엄마 생각》, 《오모니》 같은 책도 책손하고 가까워질 자리를 얻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4340.8.1.물.ㅎㄲㅅ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책으로 보는 눈 13 : 식민지 이야기책은 일본사람이 쓴다

 그제, 《한국근대사 개설》(한울,1986)이라는 조그마한 책 하나를 샀습니다. 77쪽짜리 책입니다. 글쓴이는 가지무라 히데키(梶村秀樹). 이분 책은 1985년에 《한국사입문》(백산서당)이라는 이름으로 한 번 나옵니다. 일본에서는 《朝鮮史》(講談社)라는 이름으로 1977년에 처음 나왔습니다. 글쓴이 가지무라 히데키 님은 《朝鮮史》를 써낼 때까지 ‘한국땅을 밟아 본 적이 없’습니다. 하지만 남북녘에서 펴낸 거의 모든 역사책을 꼼꼼히 읽었고, 미국이나 중국이나 일본에서 나온 ‘한국사를 연구한 책이나 논문’을 빠짐없이 살폈습니다. 일본에서 나온 《朝鮮史》를 보면, 가지무라 히데키 님이 얼마나 많은 책과 자료를 살펴보았는가가 뒤에 붙었고(그 작은 책에), ‘그때(1977년까지) 남녘이나 북녘에서 나왔던 거의 모든 역사책’이 일본말로 번역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일본 학자는 한국을 와 보지 않고도 한국사람들 안방 구석구석을 훤히 돌아볼 수 있는 셈입니다.

 그제, 《한국근대사 개설》을 살 때 함께 보인 책은 《식민지》. 이 책 또한 일본사람이 쓴 글을 단출하게 추려내어 엮은 작은 책. 문득 생각이 나서, 인터넷새책방을 들어가 ‘식민지’로 찾아보기를 해 봅니다. ‘식민지’라는 말이 들어간 책이 그럭저럭 보이기는 합니다만, 정작 일제강점기 역사를 다룬 책은 적네요. 게다가, 중고등학생 눈높이에 읽을 만한 식민지 이야기 책은, 또 대학생이나 여느 사람들 눈높이에 읽을 만한 식민지 이야기 책은 보이지 않습니다. 가만히 보면, 전문 학자가 읽을 만한 책 또한 드물구나 싶어요.

 그렇다면, 지금 우리 나라 대한민국에서 일제강점기 역사를 헤아릴 수 있도록 도와줄 만한 읽을거리나 볼거리나 알거리로는 무엇이 있을까요. 텔레비전에서 어쩌다가 한두 번 보여주는 다큐멘터리 풀그림? 텔레비전 다큐멘터리 풀그림은 무엇을 바탕으로 엮어내지요? 초중고등학교 역사 교사는 무엇을 바탕으로 아이들한테 역사를 가르칠까요. 아이들한테 역사를 가르치는 수업 시간 가운데 얼마쯤을 ‘일제강점기 역사는 이렇다’ 하고 보여주고 들려주고 이야기 나눌 수 있을까요.

 인터넷새책방에서 ‘식민지’로 찾아보기를 했을 때, 그나마 일제강점기 역사를 다룬 책 몇 가지는 거의 ‘일본사람이 지은 책’이었습니다. 남녘사람이 쓴 책은 얼마 없습니다. 남녘에서 백제 역사를 다루는 학자 숫자가 열이 안 된다고 하고, 고구려 역사를 다루는 학자 또한 열이 안 된다고 합니다. 아무래도 백제나 고구려 역사를 다루면, 더욱이 가야 역사를 다루면, 이런 전문지식이 쓰일 만한 곳이 없다고 하겠지만, 백제와 고구려와 가야 역사를 알고자 하는 사람이 없는데다가, 교과서에서도 ‘전쟁 이야기’만 풀어놓지, 그때 사람들 삶과 문화와 발자취는 톺아보지 않습니다. 백제와 고구려와 가야 역사는, 거칠고 팍팍한 세상에서 먹고사는 지식으로서는 쓸모가 없는가요. 일제강점기 역사는 어떻습니까. 일제강점기 역사 가운데 성노예와 강제징용, 우키시마호, 관동큰지진, 우토로, 만주와 사할린 이야기는 어떤가요. (4340.7.26.나무.ㅎㄲㅅ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잡지 <좋은생각>에서 청탁이 들어와서 써 보낸 글입니다.
마감날에 겨우 맞추었네요 ^^;;;;;


― 내 삶에 책 하나 : 마르지 않는 삶을 담은 책


 제가 일하는 책상에는 늘 100∼200권에 이르는 책이 얹히거나 꽂혀 있습니다. 책상 둘레에도 비슷한 숫자로 쌓여 있습니다. 그날그날 제 살림집으로 받아들인 책이 하나둘 모이면서 탑을 이룹니다. 한 번 집어들고 끝까지 쉬지 않고 읽어내리는 책도 있지만, 제 얕은 마음을 휘젓거나 다독여 주는 줄거리를 읽었을 때면 한동안 책을 덮습니다. 지금 막 깨우친 이야기를 차근차근 곰삭이고 싶어서요. 누런 쌀밥을 백 번쯤 우물우물 씹어서 넘기듯, 마음에 밥이 되는 책을 만났을 때는 서두르지 않고 읽습니다. 아무리 배가 고파도 한 끼니에 열 그릇이나 스무 그릇을 비울 수 없듯이, 제 모자란 깜냥을 일깨우는 책이라면 하루아침에 읽을 수 있으랴 싶습니다.

 우리들이 만나는 책은 ‘그 책을 짓거나 엮은 사람이 짧으면 한두 해, 길면 열이나 스무 해도 넘는 세월을 바쳐서 만든’ 책이에요. 그래, 열 해라는 세월을 한두 시간만에 후루룩 넘겨버릴 수는 없다고도 느껴요. 이러다 보니 책상맡에는 쌓이느니 책이요, 다 읽고 나서도 좀처럼 ‘따로 마련한 책꽂이’로 옮겨 꽂지 못합니다. 다 읽었어도 더 읽고 싶고, 여러 차례 읽었어도 틈틈이 다시 들추고 싶어서.

 그러나 책상맡에 놓지 않으면서도 꾸준히 들춰보는 책이 있습니다. 잡지 《샘이 깊은 물》. 1984년에 첫호를 낸 《샘이 깊은 물》은 ‘아줌마 독자’와 ‘아가씨 독자’한테 눈길을 맞추어 우리 사는 세상 이야기를 조곤조곤 돌아볼 수 있게 이끌어 줍니다. 폐간되어 새책방에서 사라지고, 도서관에서도 갖추어 놓지 않는 잡지인 터라, 헌책방 나들이를 하면서 한 권 두 권 틈틈이 사서 읽습니다. 책꽂이에서 1987년 10월에 나온 《샘이 깊은 물》을 꺼내어 봅니다. 벌써 스무 해나 지나간 옛글이라 할 테지만, 세월을 건너뛰는 슬기로움을 보여줍니다. 철지나거나 묵었으면 ‘이제는 돌아볼 값어치’가 없다고 여기는 요즘 세상이건만, 이 잡지는 철이 지나고 묵을수록 깊은 된장맛을 냅니다. 잡지가 나오던 지난날에는 지난날대로 세상을 앞서 읽던 줄거리를 담았고, 잡지가 자취를 감춘 오늘날에는 지금 우리 모습과 삶을 가만히 되새기고 돌아볼 수 있는 이야기로 가득합니다. 잡지 이름처럼, 샘이 깊어서 언제까지나 마르지 않고 시원하게 감겨들까요. 섣부른 세상 물결에 휩쓸리지 말되 세상일에 팔짱 끼고 나 몰라라 하지 않도록, 무엇이든 빨리빨리 외치는 세상 흐름에 끄달리지 말되 자기 줏대와 눈길을 추스를 수 있도록, 조용히 외치고 말이 아닌 온몸으로 파고드는, 내 삶에 마르지 않는 샘물 같은 책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