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책방 사진 이야기] 6. 서울 정은서점 2009


 사람들은 헌책방 헌책은 어지러이 쌓여서 책 하나 찾아보기 퍽 힘들다고 말합니다. 헌책방 헌책은 틀림없이 쌓입니다. 책꽂이에 꽂을 만큼만 갖추지 않기 때문입니다. 여느 새책방이라면 오래도록 안 팔리는 책을 반품하겠지요. 새책방은 반품을 한대서 책방에 손해가 되는 일이 없으니까요. 헌책방은 모든 책을 헌책방 일꾼 돈을 치러 사들입니다. 헌책방에서 책을 버린다 하면, 당신이 사들인 책을 팔지 못해서 버리기 때문에 당신 돈을 버리는 셈입니다. 그러나, 사들인 책이 아깝기에 책을 못 버리거나 못 치우지 않습니다. 어떠한 책이든, 처음 사들이고 나서 며칠 만이거나 한두 달 만이거나 한두 해 사이에 팔리리라고는 생각하기 힘듭니다. 다만, 언젠가 좋은 때가 되면 좋은 임자가 나타나 좋은 값을 좋은 마음으로 치러 사들인 다음 좋은 손길로 읽어 좋은 열매를 맺으리라 생각합니다. 헌책방에는 책이 쌓이지 않고, 책이 책손을 기다립니다. (4344.3.24.나무.ㅎㄲㅅㄱ)


- 2009년. 서울 연세대 건너편 정은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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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밤길


 오늘 하루는 온갖 집일을 하느라 빨래를 저녁 일곱 시가 넘어서야 한다. 아직 살림집 물이 안 녹았기에 멧길을 따라 올라가는 이오덕학교에서 빨래를 한다. 빨래를 마치고 내려오는 길은 깜깜한 밤길. 깜깜한 시골 멧자락 밤길이니 별이 참 잘 보인다. 반짝반짝 수많은 별을 올려다보며 발걸음을 재촉한다. 밤에 쉬를 누러 마당으로 나와 다시 하늘을 올려다보면 이 많은 별이 우리 식구를 따사로이 지켜보면서 보듬는구나 싶다. 그런데 나는 애 아버지로 얼마나 잘 살아가려나. 이렇게 따사로이 지켜보면서 보듬는 별이 많은데, 고운 목숨 하나인 사람으로서 얼마나 사랑스러우며 아름다이 살아가는가. (4344.3.24.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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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프니까 책읽기


 아프니까 쓰러지고, 지치니까 드러눕는다. 아프니까 쉬고 싶다. 지치니까 눈을 감고 싶다.

 아픈 몸을 일으킨다. 아픈 몸으로 생각한다. 아, 내가 이렇게 아프면 집일은 어떻게 하나. 집살림까지 바라지 못하더라도 아프면 어쩌나.

 아픈 몸을 일으켜 움직이니 어지럽다. 그런데 이렇게 아픈 채 몇 시간 힘겨이 움직이고 보니 어느새 아팠던 곳이 사라진다. 잊었을까. 아픔을 잊었을까.

 지치니까 드러눕는다. 드러누운 몸으로 생각한다. 이렇게 자빠진 채 있으면 집안일은 누가 하나. 일어난다. 온몸에서 두두둑 소리가 난다. 끄응 하면서 집일을 붙잡는다. 손가락에 힘이 들어가지 않으나 애 어머니 허리나 허벅지나 다리를 주무른다. 지쳐 드러누웠을 때에는 손가락 하나 움직일 수 없었는데, 용하게 손가락에 힘이 들어가며 주무를 수 있다.

 아파서 아무것 못할 수 있다. 참말 많이 아픈 사람은 무엇을 할 수 있겠나. 마음은 하고 싶어도 몸이 따르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나도 아플 때에는 아무것도 못하겠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렇게 아픈 몸을 어찌저찌 움직이고 보면, 내 몸이 참 대단히 고맙게도 잘 움직여 준다. 빠릿빠릿 움직이지는 못하지만, 어느 만큼 집일을 할 수 있도록 움직여 준다.

 사람 몸뚱이는 기계가 아니기 때문일까. 아니, 기계이더라도 사랑을 실으면 따뜻해질 수 있을까.

 그래, 아프니까 더 잘 살아가려고 꿈을 꾼다. 아프니까 아픈 몸으로 책을 펼친다. 힘드니까 더 웃고 싶어서 빙그레 얼굴꽃을 피운다. 힘들기에 힘든 몸으로 책을 한 쪽이라도 읽는다. (4344.3.24.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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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낳기


 둘째가 태어나자면 두 달쯤 남았다. 두 달 동안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두 달을 곰곰이 생각하며 집안을 이제부터라도 제대로 갈무리해야 한다고 느끼지만, 하루하루 닥치는 일을 맞아들이는 데에도 넋이 나가고야 만다. 이래서는 안 될 텐데, 애 어머니가 더 힘들어 할 모습만 보여주니 나 스스로 몹시 부끄럽다.

 글쓰기로 살아가는 내 나날을 곱씹는다. 그래, 나는 어쩔 수 없이 글을 쓰는 사람이라 한다면, 난 무슨 글을 써야 할까. 내가 나 스스로하고 내 옆지기하고 내 아이 앞에서 떳떳하며 올바른 삶을 일구는 모습으로 함께 어깨동무를 하자면, 나는 어떤 글부터 써야 할까.

 여러 달 차근차근 생각한 끝에 지난주부터 조금씩 갈피를 잡는다. 나는 다른 어느 글보다 ‘아빠 육아일기’를 써야 한다고 느낀다. 앞으로 자라날 푸름이한테 들려줄 ‘아빠 육아일기’부터 쓰지 않고서야 내 글이 글다울 수 없겠다고 느낀다.

 그러나, 아버지로서 그닥 옳거나 바르게 살아가지 못하는 만큼, 이러한 글을 제대로 쓸는지 못 쓸는지 아리송하다. 그렇지만, 이 글부터 쓰지 않고서야 다른 무슨 글을 쓴다고 깝죽댈 수 있겠는가.

 아직 옆지기한테는 차마 말을 꺼내지 못한다. 그러나 이 글을 옆지기가 읽는다면 알아챌 텐데, 내가 쓸 ‘아빠 육아일기’란 나 스스로 겪은 삶뿐 아니라 나 스스로 맞아들일 삶을 쓰는 글이어야 한다. 그러니까, 이제부터 하나씩 다스리거나 다독이는 삶을 적는 글이어야 하는 셈이다. 둘째를 낳기까지 집안을 어떻게 갈무리하면서 어떤 매무새로 어떤 일을 살피는가부터, 둘째를 집에서 낳도록 어느 만큼 마음을 기울이고 몸을 움직이는가를 더 배우고 돌아보면서 쓸 글이어야 한다.

 잘 못하니까 다시 배우고 새로 배우면서 써야 한다. 제대로 못했으니까 거듭 배우고 꾸준히 돌아보면서 써야 한다. 나부터 이러한 이야기를 쓸 수 있게끔 삶을 고쳐야겠지. 나부터 이러한 이야기가 겉발린 말이 아닌 몸으로 움직여 내는 하루하루가 되도록 살아가면서 글을 써야겠지. 그러니까, 내 삶을 바꾸고자 내 글을 바꾸어야 한다. 내 글을 바꾸면서 내 삶을 바꾸고, 내 삶을 바꾸면서 내 글을 바꾸어야 한다.

 생각해 보면, 첫째를 낳아 돌본 나날이란 내 삶을 고치는 나날이었으나, 영 뾰족하거나 시원하거나 아름답게 고치지 못한 나날이라고 느낀다. 그럭저럭 나아지기는 했다손 칠 수 있겠지. 그래, ‘했다손 칠’ 수 있다. ‘했다’고 여길 수 없다.

 둘째를 낳을 때까지도 나는 내 삶을 못 고치는가. 둘째를 낳는 자리에서마저 나는 내 삶을 고치려고 애쓰지 못하겠는가. 삶을 고쳐야 글을 고치고, 글을 고칠 때에 모든 일이 풀리기 마련이다.

 아침부터 저녁 아홉 시까지 집일만 하느라 글이건 책이건 손에 쥘 수 없었다. 그러나 집안일이란 이렇다. 게다가 이렇게 집일 하나만으로도 글이건 책이건 손에 쥘 수 없다 하더라도 살림을 옳게 했다고 여길 수 없다. 살림을 옳게 하자면 더 마음을 쏟아 훨씬 제대로 살아내야 한다. 밥을 차리고 설거지를 하며 빨래를 한다고 살림이 아니다. 이는 그저 집일일 뿐이다. 집일을 했다고 살림을 했다 말하지 않는다. 날마다 맞아들이는 집일만큼, 날마다 여미거나 다스릴 살림이 있다. 나는 어느 무엇보다 이 살림 다스리기에 너무 젬병이었거나 무디었다. 이제 두 달이면 코앞이라 할 만한데, 짧다면 아주 짧은 나날이지만, 이 짧은 나날이 짧지만은 않도록 더 잘 살아가고 싶다. 더 사랑스레 살아가고 싶다. 온몸이 찌뿌둥하며 고단하지만, 난 오늘 이 말을 글 한 조각에 담고 싶어 졸립고 지치지만 두 시간째 셈틀 앞에 앉아서 글을 쏟아낸다. 글을 쏟아내는 까닭은 이렇게 다짐을 하고 싶기 때문이다. 허튼 말이나 겉발린 시늉으로 그치고 싶지 않으니까, 참말 잘 살고 싶으니까, 참으로 즐거이 살고 싶으니까, 이렇게 다짐을 하려고 두 눈을 부릅뜨면서 한 글자 두 글자 적는다. 팔꿈치가 대단히 시리다. (4344.3.23.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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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눈과 책읽기


 겨울나무 새눈을 사진으로 담은 일본 어린이책을 보았다. 일본사람은 참 대단하고, 일본 어린이는 온갖 이야기를 책으로 만날 수 있으니 좋겠다고 느끼는 한편, 굳이 이런 이야기까지 책으로 담아야 할까 싶어 고개를 갸우뚱하기도 했다. 그런데, 책이라 한다면 어떤 이야기를 담아야 좋을까. 어린이책이라 한다면 무슨 이야기를 펼쳐야 즐거울까.

 곰곰이 생각하면, 겨울나무 새눈이란 사진으로나 그림으로나 글로나 아기자기하게 담을 만큼 아름다우며 귀엽고 좋은 이야기라 할 만하다. 추운 겨울을 견디거나 온몸으로 받아들인 겨울나무마다 나뭇가지에 다 다른 크기와 모양과 빛깔로 새눈을 틔우는 모습이란 얼마나 훌륭하며 거룩하고 사랑스러운가.

 똑같은 나뭇잎이란 한 닢조차 없다. 모양이든 무늬이든 빛깔이든 어느 나뭇잎이든 다 다르다. 얼핏 보기에는 똑같다 할 만하겠지. 그러면, 나뭇가지를 털어 나뭇잎을 견주면 된다. 은행나무에 붙은 수만 닢이 되는 나뭇잎을 모조리 뜯어서 살펴보라. 똑같은 잎은 하나조차 없다.

 똑같은 잎이 없으니 똑같은 새눈이란 있을 수 없다. 똑같은 사람이나 똑같은 손그림이란 있을 수 없다. 다 다른 사람이고, 다 다른 나무이며, 다 다른 잎이다. 소나무이든 느티나무이든 밤나무이든 똑같은 나무란 없다. 감나무에 맺히는 감 열매 가운데 똑같이 생긴 감이 한 알이라도 있을까.

 아이들한테 겨울나무 새눈 사진책을 보여준 다음 멧길에 구르는 나뭇가지 몇을 주워서 함께 들여다본다. 아이들이 놀다가 부러뜨린 나뭇가지가 있고, 짐승이 풀을 뜯어먹는다며 멧길을 오르내리다가 부러뜨린 나뭇가지가 있다. 아무튼 시골에는 나뭇가지란 흔하다. 나뭇가지에 맺히려는 겨울 새눈한테는 안 된 일이지만, 모든 새눈이 씩씩하게 살아남지 못한다. 멧개구리가 막 겨울잠에서 깨어나 비탈논과 멧자락 사이를 오가려 하다가 사람들이 낸 찻길에서 자동차에 치이거나 깔려서 죽을밖에 없듯, 숱한 나뭇가지가 뜻하지 않게 꺾이거나 잘리며, 수많은 새눈이 새잎이 되지 못한 채 사라진다.

 새로 난 가지이든 오래된 가지이든 새눈이 달린다. 새눈은 그야말로 작다. 돋보기로 들여다보아야 알아볼 만한 새눈이 많다. 큼지막한 새눈도 더러 있지. 그러나 웬만한 나무들 새눈은 참으로 작다.

 모르는 노릇이지만, 봄이 왔다고 봄 얘기를 나누는 도시사람 가운데 겨울을 이긴 나무들 새눈을 들여다보면서 ‘아, 봄이네.’ 하고 느낄 사람은 얼마나 될까. 겨울나무 새눈이 새잎으로 트는 모습을 날마다 새삼스레 지켜보며 놀라워 하거나 기쁘게 여기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봄에는 봄나무, 여름에는 여름나무, 가을에는 가을나무, 겨울에는 겨울나무인데, 이들 나무를 나무 그대로 마주하거나 껴안으며 나무 같은 품으로 살아가려는 도시사람은 우리 나라에 얼마나 있을까. (4344.3.23.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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