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를 그만둔 아이 이야기가 하나 또 나왔다. 곰곰이 돌아보면, 내가 쓴 내 책 <책 홀림길에서>도 대학교를 그만둔 사람이 쓴 책이라 할 수 있다. 아주 마땅하지만, 몇 해 앞서 김예슬 님 책이든 이분 장혜영 님 책이든 나로서는 그닥 재미나다 싶은 이야기를 찾아보기는 어려우리라 느낀다. 살아가는 뜻이란, 어디에서든 찾을 수 있지만, 스스로 어떤 굴레에 갇히면 어디에서도 삶뜻을 찾을 수 없기 마련이다. 미리읽기로 몇 꼭지 살폈을 때에는, 그리 가슴이 촉촉히 울릴 만한 이야기를 찾아보지 못하겠다. 스물 몇 해를 살며, 장혜영 님 스스로 가슴 촉촉히 적시도록 들려줄 만한 이야기는 이 굴레를 넘어설 수 없을까. 오래도록 학교 울타리에 갇혔기 때문에 상상과 창조와 사랑과 믿음과 꿈을 홀가분하게 꽃피우지 못했다고만 말할 수 없는 대목이 있다. 부디, 이제부터 차근차근 홀가분해질 수 있기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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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사랑하고 있습니까- '이별 선언문'을 남기고 대학을 떠난 장혜영의 못다한 이야기들
장혜영 글.그림 / 새잎 / 2012년 1월
14,000원 → 12,600원(10%할인) / 마일리지 70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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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르노빌 목소리를 듣는 사람들은 책읽기로 그치지 않고, 삶을 바꾸는 자리로 나아갈 수 있을까 궁금합니다. 자가용을, 석유를, 대학교를, 도시를, 회사원이라는 일자리를, 하나하나 버리거나 내려놓으면서 삶을 바꿀 수 있을까요. 그저 책만 읽고 그치는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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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르노빌의 목소리- 미래의 연대기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지음, 김은혜 옮김 / 새잎 / 2011년 6월
16,000원 → 14,400원(10%할인) / 마일리지 80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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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도 먹을거리도 책도 꿈도 서울로 보내는

 


 사람이 새끼를 낳으면 서울로 보내야 한다고 말한다. 시골마을에서 자라는 아이들 스스로 시골마을에서 초·중·고등학교를 마치고는 시골마을에서 일거리를 찾아 시골마을에서 뿌리를 내려야겠다고 생각하지 않거나 못한다. 시골마을 아이들은 초등학교까지만 시골에서 다니고, 중학교부터는 이웃한 큰도시로 가기 일쑤이다. 곧, 전남 고흥 시골마을 아이들 가운데 적잖은 아이들은 이웃한 큰도시 순천으로 가고, 광주로 가며, 때로는 경기도 수원이나 아예 서울로 간다. 어느 시골집 아이들은 초등학교부터 일찌감치 서울로 간다. 전남 고흥에는 대학교가 없으니 어차피 가르친다면 더 일찍 더 빨리 시골을 벗어나 도시로 가도록 내몰아야 좋다고 여긴다.

 

 시골마을 사람들 거의 모두 이렇게 사람 새끼들 시골을 떠나 도시로 가도록 하니, 우리 네 식구 시골마을로 깊디깊이 보금자리를 찾아 삶터를 옮긴 일을 바라보며 고개를 갸우뚱갸우뚱 알쏭달쏭하다고 여길밖에 없으리라 느낀다. 그런데, 한참 이야기를 하고 나면, 아이들이 시골마을에서 초·중·고등학교를 마칠 때에 나중에 ‘회사에 들어가 일을 하더’라고 한결 일을 잘 하고, 생각이나 말이 또릿또릿하다고 이야기하곤 한다.

 

 시골마을에는 일거리가 없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이 말은 조금도 옳지 않다. 시골마을에서는 꿈을 키울 수 없다고 이야기한다. 그렇지만, 이 말 또한 하나도 맞지 않다. 시골마을에 일거리가 없을 수 없다. 시골마을 일거리 때문에 시골마을뿐 아니라 크고작은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밥을 먹는다. 시골마을 일거리 때문에 사람들이 밥을 먹고 옷을 입으며 집을 짓는다. 시골마을 일거리가 아니라면 사람들 모두 굶어죽거나 헐벗거나 추위에 떨어야 한다. 시골마을이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꿈을 꾸고 사랑을 나누며 믿음을 주고받을 수 있다.

 

 시골마을은 돈벌 구멍이 없다고 말해야 조금 맞을 동 틀릴 동 하다. 그러나, 돈벌 구멍이라고 해 봐야, 크고작은 도시는 공무원 일거리라든지 회사원 일거리가 있다뿐, 사람들 스스로 어버이한테서 받은 고운 목숨을 어여삐 북돋우는 착한 일거리가 참말 있다고 할 만한지 나로서는 잘 모르겠다.

 

 패션디자이너가 좋은 일거리일까, 좋은 꿈일까. 여행가이드가 좋은 일거리일까, 좋은 꿈일까. 물리학자나 화학자가 좋은 일거리일까, 좋은 꿈일까. 대학교수나 스튜디어스가 좋은 일거리일까, 좋은 꿈일까. 버스기사나 기술자나 정비사나 연구원이나 공장 임노동자가 좋은 일거리일까, 좋은 꿈일까. 의사나 검사나 판사나 약사나 간호사나 변호사나 법무사나 회계사가 좋은 일거리일까, 좋은 꿈일까.

 

 시골마을 어르신들 스스로 얼마나 아름다우면서 좋고 어여쁜 일을 하며 살아가는지를 좀처럼 못 느끼는구나 싶다. 시골마을 어르신들 스스로 흙을 만지고 흙을 밟으며 흙을 먹고 마시는 일이 얼마나 사랑스러우며 보람찬가를 제대로 못 느끼는 나머지, 자꾸자꾸 흙에 비료를 치고 풀약을 뿌리며 시멘트나 아스팔트를 깔며 기계를 부리는구나 싶다.

 

 밤하늘 별과 미리내를 밀어내고 전깃불을 밝혀야 문명이나 문화나 발전이나 개발이나 진보가 될까. 낮하늘 구름과 무지개를 몰아내고 자가용을 싱싱 달려야 문명이나 문화나 발전이나 개발이나 진보가 되나. 양복을 차려입고 구두를 또각이며 가죽가방을 한손에 들어야 문명이나 문화나 발전이나 개발이나 진보가 되는가.

 

 사람도 먹을거리도 책도 꿈도 서울로 보내는 마당에, 우리 네 식구는 인천을 떠나 충청북도 멧골자락으로 들어갔다. 멧골자락에서 한 해를 지낸 뒤 큰도시 서울이랑 한참 더 멀어지는 전라남도 시골마을로 들어왔다. 시골마을로 들어온 뒤 어린 두 아이 건사하랴 집일 하랴 여러모로 눈코 뜰 사이 없는 나날이다 보니, 나 또한 좀처럼 흙 밟으며 아이들이랑 못 놀고 만다. 이런 나날이라면, 시골로 온 보람이 무엇 있으랴 싶지만, 보금자리를 찬찬히 손질하고 가다듬느라 몇 달은 이럭저럭 견디자고 생각해 본다. 차근차근 우리 네 식구 일머리와 살림살이를 추스르며 시골마을 흙바람 흙내음 고이 누리자고 생각한다. 아침에 신나게 빨래를 마치고 이모저모 토닥거리고 나서는, 뒤꼍 땅뙈기를 돌보고 흙길 밟는 마실을 즐기자고 생각한다. 풀을 밟고 풀을 뜯고 풀을 먹고 하늘과 구름과 멧등성이와 바다를 바라보고 큰숨 들이마시자고 생각한다.

 

 삶이란 무엇이고, 꿈이란 무엇이며, 사랑이란 무엇일까. 일이란, 돈이란, 사람이란, 삶터란, 집이란, 옷이란, 밥이란, 이야기란 무엇일까.

 

 나는 어린 나날부터 ‘사람은 나면 서울로 보내고, 말은 나면 제주로 보낸다.’ 하고 읊는 말마디가 참 못마땅했다. 사람을 왜 서울로 보내야 하나.

 

 하루하루 자라면서 바라보면, 이 나라에서는 사람만 서울로 보내지 않는다고 느꼈다. 사람을 비롯해 좋다 하는 먹을거리이든, 샘물이든, 종이이든, 물고기이든, 나물이든, 모조리 서울로 보낸다고 느꼈다. 온통 서울로 쏠린다. 무엇이든 서울로 빨려든다. 그러고는, 서울에서는 이 모두를 아무렇게나 휘저어 쓰레기를 만들고는 이 쓰레기를 시골로 ‘내려보낸’다. 서울은 시골에서 받아들인 온갖 열매 알맹이만 살짝 빨아먹고는 찌꺼기를 된통 시골로 ‘내다 버린’다.

 

 나는 어린 나날부터 ‘사람을 서울로 보내면 쓰레기만 만드는 바보를 만든다’고 느꼈다. 나부터 서울에서 아홉 해를 살던 지난날, 서울에서 살아가던 나는 쓰레기를 만들어 버리는 바보로 지냈다고 깨닫는다.

 

 사람은 나면 시골로 보내야 할 뿐 아니라, 사람을 낳은 어버이가 저희 새끼하고 오붓하게 시골에서 보금자리를 틀어야 아름답고 즐거우며 착한 나날을 누릴 수 있다고 느낀다. 아이들은 즐겁게 살아야 하지 않는다. 어른들 또한 즐겁게 살아야 한다. 아이들만 착하게 살아야 하지 않아. 어른들 또한 착하게 살아야지. 아이들만 곱게 살아야 하나. 어른들 또한 곱게 살아야지.

 

 좋은 넋, 좋은 꿈, 좋은 말을 아리따이 어우르는 좋은 삶을 누릴 좋은 사람으로 지내며 좋은 사랑을 빛내야 바야흐로 좋은 글이 태어나고 좋은 그림이 태어나며 좋은 사진·좋은 노래·좋은 춤·좋은 문학이 태어나겠지. (4345.1.25.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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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2-01-26 10:37   좋아요 0 | URL
일본의 경우 지역학교를 나오서 지역 기업에 취직하는 것이 대부분이라고 하는데 우린 너무 경제 활동이 서울로만 집중된것이 큰 문제지요ㅜ.ㅜ

파란놀 2012-01-26 10:59   좋아요 0 | URL
우리는 공무원도 지역 공무원이 안 돼요.

다들 고향하고 먼 데에서 자취하거나 하숙하면서 공무원이 되고... 참 얄딱구리합니다..
 


 나 혼자 투덜대는 책읽기

 


 시골마을 조그마한 학교에서 교사로 일하는 분이 내놓은 교사일기가 책으로 나왔다. 적잖은 이들이 손꼽아 추켜세우는 책인데, 막상 이 교사일기를 읽는 나는 이 책을 조금도 추켜세울 수 없겠다고 느낀다. 말과 삶과 글과 넋이 너무 어지러이 흐트러지기 때문이다. 글로는 훌륭하며 꾸밈없으며 아름다이 보이려는 티가 나지만, 정작 이 글에서 드러나기로도 아이들한테 억지스레 가르침을 집어넣는 모습이 보일 뿐 아니라, 스스로 뉘우친다고 밝히지만 아이들한테 손찌검을 하는 모습이 너무 자주 나타난다. 차라리, ‘때렸다’ 하고 끝맺으면 한결 나을 텐데, ‘때리고 나서 미안하다고 느낀다’고까지 덧말을 붙인다. 이렇게 하자면 아예 글을 안 써야 맞지 않을까. 이렇게 쓰는 글을 왜 보여주어야 할까.

 

 왜 사랑을 자꾸 만들려고 하는지 슬프다. 만들려고 한대서 만들 수 있는 사랑은 아닐 텐데. 스스로 사랑스레 살아가면 시나브로 사랑을 곱게 지을 수 있을 텐데.

 

 흙을 사랑하면서 농사를 짓는다 하듯, 내 삶을 사랑하면서 아이들하고 서로 가르치고 배우는 삶을 짓는다. 농사는 곡식 만들기가 아니듯, 교육은 아이들 지식 만들기가 아니다.

 

 짝을 짓는다고 하지, 짝을 만든다고 하지 않는다. 짝짓기란 참 거룩하고 예쁘게 지은 좋은 말이다. 짝을 짓는다, 짝을 맺는다, 짝을 이룬다, 이 한겨레 말마디는 사람들이 어떠한 삶으로 사랑을 빛내야 즐거운가 하는 이야기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짝을 짓고, 사랑을 짓는다. 집을 짓고, 밥을 지으며, 옷을 짓는다. 가장 아름다운 나날은 짓는 삶이다. 짓는 꿈이요 짓는 말이며 짓는 이야기가 된다.

 

 사랑짓기, 배움짓기, 꿈짓기, 밥짓기, 이야기짓기가 된다. 일짓기, 흙짓기, 책짓기, 글짓기가 된다. 사람들이 스스로 옳게 짓지 못하고 제도권과 학벌과 권력과 이름값과 돈값이라는 가시울타리에 자꾸자꾸 걸거치니까, ‘글짓기’ 아닌 ‘글쓰기’를 해야 한다고 예부터 이오덕 님이 말했는데, 글짓기가 나쁜 일이 아니라 ‘제도권 독후감 만들기 숙제’가 나쁘다. 제도권학교에서 한 일은 ‘글짓기’가 아니라 ‘글만들기’였다.

 

 모든 ‘만들기’는 꾸미는 일이 되고 만다고 느낀다. 만드는 일이 마냥 나쁘다고는 느끼지 않으나, 사랑을 담으며 짓는 일이 아니라, 억지로 모양만 만들거나 시늉으로 만들거나 흉내내듯 만드니까 슬프며 못마땅하고 밉다.

 

 시골마을 조그마한 학교에서 일하는 어른으로서 아이들하고 무슨 사랑짓기 삶짓기 배움짓기 일짓기 꿈짓기를 하는가 돌아보고 싶어 교사일기를 책으로 읽는데, 정작 사랑짓기이든 삶짓기이든 배움짓기이든 일짓기이든 꿈짓기이든, 이러한 이야기를 찾아 읽기 어렵다. 그렇다고 교사일기 쓴 분이 착하지 않다거나 참답지 않다고 여기지 않는다. 더 사랑하지 못하는 삶이고, 더 아끼지 못하는 삶이며, 더 좋아하지 못하는 삶이로구나 싶다.

 

 교사는 바라보는 사람이 아니다. 교사는 내려다보는 사람이 아니다. 교사는 올려다보는 사람이 아니다.

 

 곧, 교사는 보는 사람이 아니다.

 

 교사는 스스로 살아가는 사람이다. 교사는 아이들과 살아가는 사람이다. 교사는 어른들과 살아가는 사람이다.

 

 바야흐로, 교사는 살아가는 사람이다.

 

 교사일기란, ‘보는’ 이야기가 아닌 ‘살아가는’ 이야기를 적바림하는 꿈짓기요 사랑짓기요 배움짓기가 되어야 아름답다고 느낀다. 교사일기를 애써 만들지 않으면 좋겠다. 교사일기를 기쁘게 쓰고 예쁘게 지으며 사랑스레 빚으면 고맙겠다. 나는 아무래도 나 혼자 투덜대며 마지막 쪽까지 골을 부리는 책읽기를 할 듯하다. (4345.1.24.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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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2-01-24 19:44   좋아요 0 | URL
이분, 나름대로 시도 쓰시고 글도 재미있게 많이 쓰시는 분인데, 이 책은 영 아니었나보네요. 더 호기심이 생깁니다. 어떤 글을 쓰셨길래 하고요 ^^

파란놀 2012-01-24 21:39   좋아요 0 | URL
영 아닌 책이 아니라,
교사로 아이들과 살아가는 나날 가운데
'공부'가 가장 중요한 대목이 아닌데,
자꾸 아이들하고 '무슨 공부를 하느냐' 하는 데에 얽매이면서
자유롭고 사랑스러우며 즐거운 나날을 누리는 길하고
어긋나는 모습이 자주 보여요.

'좋은 공부'를 하려는 뜻은 나쁘지 않지만,
좋든 안 좋든
공부를 꼭 해야 한다는 틀에 빠지고 만다고 하겠어요.

곧, 아이들 스스로 상상과 창조를 빚고 빛내는 길을
가기보다는
아이들한테 '좋은 길'을 보여주려고 애쓰는 몸짓을
교사 스스로 얽매이면서
한결 아름다우면서 자유롭지 못하다고 하겠지요.

그래도, 책 평점은 100점 만점에 84점을 줄 만하다고 느껴요.

기억의집 2012-01-24 21:47   좋아요 0 | URL
어떤 책일까 궁금한데요.

저 또한 굳은 철학이라도 해도 아이를 때리는(체벌)만은 반대해요. 교사가 아무리 체벌이 아이를 올바르게 인도할 것이라는 결의를 가지고 있다 해도 말입니다. 체벌 받은 아이의 상처는 평생 가는 것이니깐요. 저는 아직도 30년도 넘은, 초등2학년 담임한테 맞은 따귀를 기억하고 있거든요. 체벌은 자신의 감정을 폭력으로 드러내는, 감정적 핑계에 불과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 교사는 사랑을 만든다는 구실로 자신의 손찌검을 정당화 하는 게 아닐까 싶어요.

파란놀 2012-01-24 22:16   좋아요 0 | URL
책에서는
스스로 체벌이 좋지 않다는 생각이지만
스스로 자제심을 누르지 못하고 체벌을 하면서
자꾸자꾸 뉘우치는 일이 되풀이돼요.

저는 이러한 슬픈 되풀이가
체벌로만 이루어진다고는 느끼지 않아요.
다른 데에서도 교사일기에는 드러나지 않는
안타깝거나 아쉬운 대목이 엿보이지 않겠느냐 싶어요.

아이들이 반기지 않는 급식을
굳이 해 보려고 밀어붙이려 하던 일도 안타깝고,
"이럴 때 말 한번 들어주면 얼마나 좋을까. 말 꺼낸 나도 체면이 서고(98쪽)." 같은 대목이라든지 "공부 시간에 왜 이런 문제도 모르냐고 나는 딱딱한 얼굴로 사랑없이 말했고 아이는 한숨을 쉬었다(84쪽)." 같은 대목은, 솔직한 고백이라기보다, 너무 안타깝고 슬픈 모습이구나 싶어요.

이러한 대목을 스스럼없이 밝히니 좋다고도 할 테지만,
이러한 대목마저 밝힐 뿐
아름다이 살아갈 길을 스스로 밝히거나 찾거나 보여주지 못해요.

책을 읽으면서 스스로 안타까운 나머지
이렇게 투덜댄답니다...
 


 ‘노동시 평가’에 나 혼자 괜히 골을 부리며

 


 지난 2005년부터 내 마음에 오래도록 감도는 시집이 있다. 2005년에 이 시집 느낌글을 하나 쓰기는 했으나 그리 내키지는 않았다. 이 느낌글을 썩 제대로 썼다고는 느끼지 않았다.

 

 2012년 설을 맞이해 음성까지만 다녀왔다. 음성을 거쳐 일산까지 다녀올 생각이었으나, 고흥을 떠나는 새벽까지 옆지기 몸이 어떠한가를 살피느라 음성에서 서울로 가는 기차표를 막상 미리 끊지 못했다. 돌이켜 보니, 못 간다 하더라도 표는 미리 끊어야 하지 않았으랴 싶다. 왜냐하면, ‘간다 10% 못 간다 90%’인 채 광주에서 청주 가는 시외버스표 하나는 끊었으니까.

 

 살림돈 후덜거리기에 음성에 간다 하면 음성에서 서울로 갈 기차표 끊을 돈을 걱정할 만하지만, 그래 봤자 10만 원 안팎일 텐데, 정 못 간다면 집에서 취소하면 되니까 그리 근심할 일이 아니었구나 싶은데, 늘 이렇게 때가 지나고서야 뒤늦게 땅을 친다. 아마, 표를 미리 끊었다면 우리 네 식구 음성을 거쳐 일산 옆지기 어버이까지 뵙고 돌아왔겠지.

 

 후줄근하고 초라한 살림집이라 하더라도 어여쁘며 좋은 보금자리이다. 못난 어버이는 없다. 나와 옆지기한테 우리 어버이가 못난 어버이가 아니듯, 우리 아이들한테 우리가 못난 어버이가 아니다. 서로 꾸밈없이 어여쁜 사람들이다. 조그맣고 조그마한 이 시골집에 할머니 할아버지 두 다리 뻗고 즐거이 주무시고 돌아가셔요, 하고 인사할 만하다. 한 지붕에 한 이불 덮고 잠자리에 드는 일이 기쁨이요 아름다움이지, 꼭 호텔 방 같은 데에서 묵어야 보람이거나 즐거움이 아니다.

 

 아주 찌뿌둥한 몸으로 새벽에 일어난다. 오래도록 마음에 담은 시집 하나를 헤아리다가, 이 시집에 하나 달린 ‘서평’을 읽다가, 이 시를 내놓은 분 삶을 가만히 생각하다가, 괜히 골이 난다. 어느 분이 별 다섯 만점에 별 둘을 붙이면서 ‘노동시’라는 이름이 걸맞지 않는다고 적은 짧은 ‘서평’을 읽다가, 울컥 하고 무언가 치민다. 노동시란 뭐지? 사랑시란 뭐지? 문학이란 뭐지? 시란 뭐지? 글이란 뭐지?

 

 시골마을 시골집에서 시를 읽으며 생각한다. 이 시골마을 흙일꾼 할머니 할아버지 읽으라고 시를 쓰는 도시사람은 없다. 아무도 없다. 시골마을 흙일꾼 할머니 할아버지하고 예쁘게 나누려고 시를 쓰는 문학쟁이란 없다. 아무도 없다. 연필 쥐기보다 호미 쥐기를 좋아한 박경리 님이라지만, 막상 박경리 님이 쓴 시조차 시골자락 흙을 밟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읽도록 쓴 시이지는 않다.

 

 노동시라면 누가 읽으라는 시일까. 노동자라는 사람이 읽으라는 시인가. 그러면, 노동자라는 사람은 어떤 시를 읽고 어떤 ‘노동자 삶’을 아끼거나 사랑하거나 좋아하거나 즐기다가는, ‘노동자 삶을 꾸리며 낳은 아이들’한테 이 ‘노동자 일과 삶’을 물려줄 만할까.

 

 새벽바람에 찌뿌둥한 바람으로 골을 부리며 글을 쓴다. 글을 다 쓰니 기운이 폭 빠진다. 울컥 하고 치미는 마음으로 글을 쓰는 일은 매우 부질없다. 그런데, 찌뿌둥할 뿐 아니라 눈이 절로 감기는 마당에 울컥 하고 치밀다 보니, 없는 기운이 마구마구 샘솟았다.

 

 책상맡에 무릎 꿇고 앉아 글을 쓴다. 책상맡에 걸상을 놓고 앉아 글을 쓸 수 있는데, 옆지기하고 한살림 꾸리던 때부터는 낮은 책상 앞에 가만히 무릎 꿇고 앉아 글을 쓴다. 일부러 이렇게 글을 쓰지는 않는데, 무릎이 시릴 때까지만 책상맡에서 무릎 꿇고 글을 쓰니 나한테 아주 좋구나 싶다.

 

 내가 즐겨읽던 시집 하나를 누군가 애틋하게 사랑하는 손길로 쓰다듬은 글을 붙여 주었다면, 나는 어떤 넋으로 글을 쓸 수 있었을까 생각해 본다. 이때에도 이 시집에 느낌글 하나 쓸 만했을까. 다른 이가 고운 사랑으로 느낌글 하나 썼다면, 나는 애써 내 사랑을 담는 느낌글을 쓰려 했을까.

 

 나는 새해 설날부터 아이한테 잔소리를 하고야 말았다. 마음이나 다짐과 달리 잔소리를 하고야 만다. 잔소리를 하고 난 뒤 새근새근 잠든 아이를 바라보며 또 속을 긁는다. 이 바보스러운 아버지는 얼마나 바보스러운 티를 풀풀 내며 철부지로 살아야 하느냐고 스스로 속을 긁는다. 나는 좀 사랑어린 손길로 우리 집식구를 보듬고, 내 마음을 어루만지면서 살아갈 수 없을까. 자꾸자꾸 이렇게 뉘우치기만 하지 말고, 사랑어린 삶을 누려야 하지 않나.

 

 슬프구나 싶은 서평 때문에 괜히 골을 냈다. 괜히 골을 내면서, 나는, 나부터, 나야말로 골을 부리지 않는 삶을 일구며, 사랑을 돌보는 삶을 누리자고 또 다짐한다.

 

 누군가 나한테 거울이 된다고는 느끼지 않는다. 달갑잖은 거울은 그야말로 달갑잖다. 아름다운 거울이 좋다. 눈물 흘리는 거울이 좋고, 웃음꽃 흐드러진 거울이 좋다. 새벽에 코피 쏟은 아이 곁으로 돌아가서 더 드러누워야겠다. 아이 손을 살며시 잡고 아이 이불을 여미고 아이 머리칼을 쓸어야겠다. (4345.1.24.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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