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임 캡슐 속의 필통 창비아동문고 145
남호섭 지음 / 창비 / 1995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시를 사랑하는 시 35



어른이 아이한테 물려주는 것은

― 타임 캡슐 속의 필통

 남호섭 글

 남궁산 그림

 창비 펴냄, 1995.9.30.



  노란 탱자알을 따면 단단한 열매에서 상큼한 냄새가 물씬 흐릅니다. 단단한 탱자알을 아이들 손바닥에 살그마니 올리면, 어느새 탱자내음이 아이들 손을 거쳐 아이들 온몸으로 확 퍼집니다.


  탱자나무를 바라봅니다. 우리는 탱자알을 맛나게 먹지는 않습니다. 탱자나무는 울타리 구실을 합니다. 탱자알은 그윽한 냄새를 한껏 나누어 줍니다.


  가만히 보면 나무마다 구실이 다릅니다. 어느 나무는 달디단 열매를 잔뜩 나누어 줍니다. 어느 나무는 집을 짓는 기둥이 되어 줍니다. 어느 나무는 숲에 불이 나더라도 더 퍼지지 않게 막아 줍니다. 어느 나무는 새를 잔뜩 불러모아 노래잔치 이루는 쉼터 구실을 합니다. 어느 나무는 열매로 우리 아픈 몸을 다스립니다. 



.. 눈 오신다. / 이사하는 날 아침 / 이삿짐 위에 눈 쌓인다. // 이제 이사 안 가도 되는 거지? ..  (첫눈)



  소나무로 집을 짓는 사람이 많습니다. 아니, 한국에서는 소나무가 아니라면 집을 지을 만한 나무를 찾기 어렵습니다. 소나무 아닌 다른 나무는 많이 잘리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숱한 전쟁과 부역 때문에 온갖 나무가 숲과 마을에서 사라졌습니다.


  전쟁은 한국전쟁만이 아닙니다. 부역은 일제강점기에만 있지 않았습니다. 조선과 고려와 고구려·백제·신라·가야 때에도 온갖 전쟁이 끔찍하게 잦았고, 궁궐을 짓거나 성곽을 올리거나 절집을 키우느라 큰나무가 남아날 겨를이 없었습니다.


  한겨레는 처음부터 소나무로 집을 짓지 않았다고 합니다. 지난날에는 느티나무로 집을 지었다고 합니다. 굵고 단단하면서 곧게 잘 자라기 때문에, 느티나무는 집을 짓는 기둥으로 알맞춤했다고 해요. 정치권력이 일으킨 전쟁과 부역 때문에 느티나무가 거의 씨가 마르면서, 그 다음으로 소나무를 썼다고 합니다.


  얼추 즈믄 해쯤 되었다고 하던가요. 다시 말하자면, 즈믄 해쯤 앞서 ‘집을 지을 만한 느티나무’는 자취를 감춘 셈이라고 할까요.



.. 대공원의 공중 열차보다 / 훨씬 숨막히고 식은땀 나는 / 전철 안에서 / 그 날 나의 가장 큰 소망은 / 기린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  (전철 안에서)



  한국 정부는 미국에서 ‘한 대에 천 억원이 넘는 전투비행기’를 사들이려고 합니다. 천억 원이 넘는 전투비행기를 한 대만 살 생각이 아니라 백 대쯤 사들이려 할는지 모릅니다. 열 대를 산다면 1조요, 백 대를 산다면 10조인데, 이런 비행기를 사들인다면, 유지비와 관리비가 어마어마하게 듭니다.


  정부에서는 평화를 내세우면서 값비싼 전쟁무기를 자꾸 사들이려 합니다. 평화를 지키려면 값비싼 전쟁무기가 있어야 한다고 외칩니다. 그래서, 한국과 맞닿은 북녘에서도 값비싼 전쟁무기를 갖추려고 합니다. 저쪽에서도 이쪽에서도 똑같이 말합니다. ‘전쟁을 막으려면, 아니 저쪽에서 쳐들어오지 못하도록 하자면 더 뛰어나고 더 값비싼 전쟁무기가 있어야 한다’고 정부에서 외칩니다.


  이리하여, 북녘에서는 밥을 굶는 사람이 엄청나게 많습니다. 북녘에서는 배를 곯다 못해 죽는 사람이 아주 많습니다. 남녘에서는 가난에 쪼들리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이 많습니다. 값비싼 전쟁무기를 갖추려면 세금을 더 거두어야 하니, 제아무리 용을 써서 돈을 번다 한들 살림살이가 나아질 낌새가 없습니다. 전쟁무기와 군대에 들이는 돈은 끔찍하게 많아서, 민주이든 복지이든 교육이든 문화이든 모두 뒷전이 되어, 사회는 메마르고 정치와 경제는 매몰차기만 합니다.



.. 노오란 포클레인을 / 꿈속까지 끌고 들어가는 것은 / 아이들뿐이다 ..  (포클레인을 꿈꾸며)



  어른들은 핵발전소를 짓습니다. 핵발전소 못지않게 쓰레기와 매연을 낳는 화력발전소를 자꾸 짓습니다. 커다란 발전소를 시골에 지으면서 도시까지 무서운 송전탑을 수천 개씩 멧봉우리마다 척척 처박습니다. 일제강점기에는 일본 제국주의자가 우리 멧자락에 쇠못을 수없이 박았다고 하는데, 오늘날은 우리 정부가 스스로 멧자락마다 ‘쇠못보다 훨씬 무서운 송전탑’을 끝없이 박고 다시 박습니다.


  왜 도시에 ‘에너지 자급’을 할 생각이 없을까 궁금합니다. 왜 집집마다 ‘에너지 자급’을 하도록 시설을 안 하는지 궁금합니다. 전기로 사람들을 다스리거나 거머쥐어서, 정부가 시키는 대로 꼼짝을 못하도록 옭아매려는 뜻이 아닌지 궁금합니다.


  이리하여, 어른들은 아이들한테 끔찍한 쓰레기를 선물로 남깁니다. 깨끗하거나 싱그럽던 냇물을 몽땅 시멘트덩이로 바꾸는 짓을 일삼은 어른입니다. 시골마을에 농약바람이 불게 하면서, 석면 공해 지붕을 모조리 뒤집어씌운 어른입니다. 남북이 평화롭게 나아갈 길은 안 찾고, 남북이 서로 전쟁무기로 다투도록 내모는 어른입니다. 이런 어른들은 아이들한테 입시지옥이라는 새로운 선물까지 갖다 안깁니다.



.. 선배 언니들은 / 아무렇지도 않게 / 그 옆을 지나치는데 // 올해 처음 / 개나리 담장을 보게 된 / 신입생들은 / 모두 한마디씩 하며 / 지나갔습니다. // “여기 개나리가 있었네.” ..  (개나리)



  남호섭 님이 쓴 동시를 그러모은 《타임 캡슐 속의 필통》(창비,1995)을 읽습니다. 백 해쯤 뒤를, 또는 오백 해쯤 뒤를 생각해서 타임 캡슐을 묻는다고 하는데, 굳이 묻을 까닭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핵발전소 핵쓰레기는 오백 해뿐 아니라 오십만 해는 갈 테니까요. 오늘날 우리들이 쓰는 비닐봉지와 플라스틱과 가전제품은 땅속에서도 안 썩어 오백 해뿐 아니라 천 해쯤 거뜬히 갈 수 있으니까요.


  남호섭 님이 동시에 쓴 대로, 아이들은 “노오란 포클레인을 꿈속까지 끌고 들어”간다고 할 만합니다. 아이들은 꿈속에서 모든 것을 다 합니다.


  그런데, 왜 아이들이 “노오란 포클레인”을 생각하거나 꿈으로까지 꿀까요? 왜 아이들이 꿈속에서 훨훨 날지 않고, 신나게 놀지 않으며, 사랑을 속삭이지 않는가요? 어른들은 왜 아이들한테 “노오란 포클레인”을 보여주나요? 어른들은 왜 아이들한테 따스한 사랑이나 푸른 꿈을 이야기하지 않나요?



.. 우리의 제일 높은 산 이름 / 우리의 제일 오랜 산 이름 / 백두산, / 왜 백두산 담배는 없을까 ..  (담배 심부름)



  동시에서까지 삽차 이야기라든지 물질문명을 노래하는 이야기를 보고 싶지는 않습니다. 동시에서까지 담배 이야기를 보고 싶지는 않습니다. 어른들이 메마르거나 갑갑하게 만든 굴레를 동시에서도 그대로 보여주지 않기를 바랍니다. 어른들이 앞으로 슬기롭게 가꾸어 사랑스레 일굴 꿈을 동시로 쓸 수 있기를 바랍니다.


  신문에 나지 않고 방송에 나타나지 않으며 책에 적히지 않지만, 즐겁고 사랑스러우며 아름답게 살아가는 슬기로운 어른은 틀림없이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동시를 쓰는 어른이 아이들한테 들려줄 이야기란, ‘슬기로운 어른’이 아름답게 가꾸는 삶과 사랑일 때에 환하게 빛나리라 생각합니다.


  이 나라에서 어른은 아이한테 무엇을 물려주는가요. 이 나라에서 아이는 어른한테서 무엇을 물려받는가요. 이 나라 어른은 아이한테 어떤 동시와 노래와 사랑을 물려주려 하는가요. 이 나라 아이는 어른한테서 어떤 동시와 노래와 사랑을 물려받아야 할까요.


  어른이 만든 굴레에 갇힌 아이들은 눈망울에서 빛을 잃습니다. 눈망울에서 빛을 잃은 아이들은 개나리꽃도 지나치고 들꽃도 지나치며 겨울눈도 지나칠 테지요. 아이들 눈망울이 싱그러이 살아나도록 이끌 수 있는 동시가 태어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4347.9.25.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시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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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한 권이 달랜다



  아이들한테 아침을 차려 주고 난 뒤 고단해서 살짝 자리에 눕는다. 설거지는 마쳤고, 빨래는 한숨 돌리고 나서 할 생각이다. 한 시간쯤 눈을 붙였을까, 삼십 분쯤 눈을 붙였을까, 우체국 일꾼 목소리를 듣고 눈을 번쩍 떠서 소포를 받은 뒤 시계를 보았을 때에는 삼십 분쯤 지난 듯하다. 우체국 일꾼은 작은 책꾸러미 하나를 건네준다. 따로 시킨 적이 없는 책인데 누가 보냈을까 궁금하게 여기며 봉투를 뜯는다. 아, ㅊ이라는 곳에서 보낸 책이다. 비노바 바베 님 교육책이 얼마 앞서 새로 나왔다 했는데 ‘서평쓰기 책’으로 보내 주었다.


  졸음을 떨치고 책을 펼친다. 예전에 읽을 적에도 느꼈는데, 비노바 바베 님이 들려주는 이야기에는 슬기로운 숨결이 있다. 이러한 숨결을 만나면 ‘사라진 기운’이 돌아오고 ‘없던 힘’이 천천히 솟는다. 책이란 이러할 때에 책이라고 느낀다.


  아나스타시아 이야기 여덟째 책 《새 문명》과 나란히 놓고 함께 읽어 본다. 따사로운 바람이 살며시 분다. 이윽고 책을 모두 덮고 기지개를 켠다. 신나게 빨래를 한다. 어제와 그제 비가 꽤 많이 내린 터라 이틀 사이에 빨래 몇 점만 했더니, 제법 쌓였다. 슬슬 추위가 다가오니 곧 두꺼운 옷가지를 빨래하느라 등허리가 꽤 결리겠네 싶다.


  빨래를 마무리짓고 마당에 넌다. 한가을에 뜨겁게 내리쬐는 햇볕을 받는다. 눈부신 햇볕을 받는 곡식은 잘 익으리라. 빨래도 잘 마를 테고, 내 마음에도 즐거운 이야기가 샘솟을 테지. 빨래를 다 널었으니 자전거를 몰아 서재도서관에 가서 살짝 아이들과 논 다음, 우체국에 다녀와야겠다. 책 한 권을 선물처럼 받으면서 새롭게 자리를 박차고 일어선다. 4347.9.25.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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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밥 먹자 96. 2014.9.17. 아이들 밥버릇과 고기



  모처럼 고기를 밥상에 올린다. 고기를 밥상에 차릴 때면 늘 큰아이 어릴 적 밥버릇이 떠오른다. 우리 집은 고기를 딱히 안 먹지는 않으나 굳이 챙겨서 먹지 않는다. 이러다 보니 큰아이는 어릴 때에 고기맛을 거의 본 일이 없다. 할머니 할아버지 댁에 찾아갈 때면 으레 고기가 나온 밥상을 구경하는데, 큰아이는 고기에는 도무지 손을 대지 않았다. 할아버지나 할머니가 손수 입에 넣어 주려 하면 싫어하고, 밥그릇에 얹으면 못마땅했다. 큰아이는 네 살로 접어들 무렵부터 천천히 고기를 조금 맛보았고, 이제는 그럭저럭 먹는다. 곰곰이 돌아본다. 사람이 살아온 나날을 곰곰이 돌아온다. 사람들이 고기를 즐겨먹은 지 얼마나 되었는지 돌아본다. 사람은 고기를 얼마나 자주 먹었을까? 아예 안 먹지는 않고, 아주 드물게 먹지 않았으랴 싶다. 옛날 옛적부터 사람들은 풀과 열매를 먹었으리라 느낀다. 몽골이나 알래스카 같은 데에서는 고기를 늘 먹을밖에 없었겠지만, 여느 삶터에서는 참말 풀과 열매가 몸을 살찌우는 밥이었으리라 느낀다. 어쨌든, 밥상으로 차렸을 때에는 즐겁게 먹으면 된다. 아이들아, 우리 맛나게 먹자. 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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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로 읽는 책 167] 생각하기



  생각하기에 바라볼 수 있고

  생각하지 않으니

  그저 질끈 눈을 감네.



  스스로 생각을 하지 않으면 먹고 먹히는 하루가 됩니다. 이런 하루는 언제나 똑같이 되풀이됩니다. 수렁에 갇힌 하루라 할 만하고, 굴레에 얽매인 하루라 할 만해요. 이와 달리, 스스로 생각을 할 수 있으면 사랑을 새롭게 빚으면서 아름답게 거듭나는 삶이 되리라 느껴요. 생각을 하는 하루일 때에는 삶이 돼요. 왜냐하면, 생각을 하기 때문에 우리 둘레 모든 것을 새롭게 바라볼 수 있어요. 생각을 하지 않으면 무엇을 바라보든 새롭다고 느끼지 못해요. 새롭다고 느끼기에 삶이 피어나고, 새로운 줄 못 느끼면 삶이 사라지고 굴레와 수렁만 남습니다. 4347.9.25.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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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불놀이 8 - 이불 새로 빼꼼



  마당에 이불을 널면 아이들 놀이터가 새로 생긴다. 햇볕을 받아 보송보송 따순 기운 감도는 이불 사이로 아이들이 파고들더니, 서로 깔깔거린다. 이윽고 고개를 빼꼼 내민다. 누가 우리를 쳐다보나? 바깥에 누가 있나? 오락가락 들락날락 아이들은 이불놀이로 햇볕내음 듬뿍 받아먹는다. 4347.9.25.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놀이하는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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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14-09-25 11:00   좋아요 0 | URL
넘 귀여워요

파란놀 2014-09-25 13:17   좋아요 0 | URL
귀엽고 사랑스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