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아이 재우기

 


요즈음
아버지가 두 아이를
나란히 재운다.

 

삼십 분이나 한 시간 즈음
잠자리에서
같이
손놀이 하고
노래 부르다 보면,

 

동생이 마지막까지
눈 반짝이며
놀려 하다가
새근새근 잠들고,

 

누나도

스르르
곯아떨어진다.

 

4345.2.18.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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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lmo 2012-02-18 11:56   좋아요 0 | URL
언제부턴가 문득 든 생각인데요...
된장님 글을 보면, 우리말 살려 쓰기, 다시 쓰기, 제대로 쓰기...등등
김소월 님이 생각나는 거 있죠.
이쁜 시 잘봤습니다, 꾸벅(__)

파란놀 2012-02-18 17:08   좋아요 0 | URL
시를 쓰는 이들이
조금 더
따사로우며 사랑스러운 말마디로
빛을 일구면 좋으리라 하고 생각해요..
 

 

 


 시든 동백꽃에 하얀 눈얼음
 [고흥살이 6] 마당에서 자라는 나무 한 그루

 


 네 식구 고흥 살림집에는 후박나무와 동백나무와 산초나무가 마당가에서 자랍니다. 이 집에서 예전에 살던 할머니가 심어 돌본 나무들입니다. 산초나무에서 얻은 열매를 빻아서 국에 넣어 먹어 보았습니다. 후박나무가 우람하게 자랐기에, 이 후박나무 듬직한 줄기에 빨래줄을 드리웠습니다. 동백나무를 마당에서 늘 바라보며 언제 얼마나 꽃이 피고 지는가를 느낍니다.

 

 따스한 봄을 맞이하면 흐드러지게 피어날 동백나무 동백꽃이라는데, 지난겨울에 몇 송이가 곱게 봉오리를 펼쳤어요. 12월 1일에 첫 봉오리가 터졌고 12월 9일에 두세 봉오리가 더 펼쳤습니다.

 

 그러나 서너 봉오리까지만 터지고 다른 봉오리는 입을 꼭 다뭅니다. 일찌감치 봉오리를 터뜨린 서너 봉오리는 시든 모습으로 겨울을 납니다. 앙 다문 다른 봉오리는 찬바람과 눈바람을 모두 견딥니다. 바야흐로 아주 포근해지는 날씨에 이들 동백꽃이 한꺼번에 봉오리를 터뜨릴 테지요. 차디찬 눈바람이 아닌 포근한 햇살을 오래오래 누리고 싶기에 한겨울 며칠 따스한 기운이 퍼지더라도 봉오리를 터뜨리지 않으며 꾹 참을 테지요.

 

 따스한 남녘땅입니다. 이곳에서 몇 봉오리는 그만 한겨울 들머리에 꽃을 터뜨려 철을 잊었다는 소리를 듣습니다. 철을 앞서갔다 할 수 있고 철을 아랑곳하지 않았다 할 수 있어요. 우리 살림집뿐 아니라 이웃 살림집 동백나무도 일찍 꽃봉오리 터뜨려 일찍 시든 동백꽃이 있습니다. 길가에서 자라는 동백나무도 이와 매한가지입니다. 일찍 터진 꽃은 일찍 시듭니다. 늦게 터지는 꽃은 늦게 시듭니다.

 

 일찍 터져서 일찍 시들기에 더 못나 보이지 않습니다. 느즈막하게 터진대서 더 어여쁘다고는 느끼지 않습니다. 봄을 피어야 제멋이라 하지만, 한겨울에 피어도 제멋이라고 느껴요. 꽃은 활짝 피어 흐드러질 때에도 멋스럽고, 꽃은 파들파들 시들어 쪼그라들 때에도 멋스럽거든요.

 

 어린이는 어린이대로 아름답습니다. 푸름이는 푸름이대로 싱그럽습니다. 젊은이는 젊은이대로 씩씩합니다. 늙은이는 늙은이대로 슬기롭습니다.

 

 몇 달 일찍 봉오리 터뜨린 동백꽃송이를 날마다 바라보며 생각합니다. 이렇게 시들었으니 잎이 곧 떨어지겠거니 생각합니다. 언제쯤 시든 잎이 흙으로 돌아갈까 생각하며 날마다 들여다보는데, 시든 잎이 좀처럼 떨어지지 않습니다. 시든 잎은 찬바람이랑 눈바람을 고스란히 맞습니다. 어쩌면, 다른 꽃봉오리 활짝 터질 봄에도 이 모습 그대로 있을는지 모르고, 다른 꽃봉오리 활짝 터진 다음 하나둘 지며 쪼그라들 때에도 나란히 쪼그라든 모습으로 있을는지 몰라요.

 

 《지는 꽃도 아름답다》(문영이 씀,달팽이 펴냄,2007)라는 책을 떠올립니다. 일흔 넘은 나이에 글꽃을 피운 할머님 삶을 떠올립니다. 《박정희 할머니의 행복한 육아일기》(박정희 씀,걷는책 펴냄,2011)라는 책을 헤아립니다. 아흔 줄에 접어들었어도 그림꽃을 흐드러지게 피우는 할머님 넋을 헤아립니다. 살결이 쪼글쪼글한 할머님들 삶은 그야말로 쪼글쪼글하다 할 만합니다. 신문이나 방송이나 책이나 학교나 문화나 예술이나 정치나 경제나 한결같이 한껏 젊음을 뽐내는 어린 아가씨 허여멀건 몸매와 얼굴에 눈길을 둡니다. 사내이든 가시내이든 더 어려 보이려 애쓰고, 더 젊어지려고 용씁니다.

 

 나이에 걸맞게 슬기로이 살아가는 길을 걸으려 하지 않습니다. 스무 살에는 스물에 걸맞는 삶길이 있고, 서른 살에는 서른에 걸맞는 삶길이 있으며, 마흔 살에는 마흔에 걸맞는 삶길이 있어요. 쉰 살 삶길은 쉰 자락 걸어온 나날로 이룹니다. 예순 살 삶길은 예순 자락 걸어온 나날로 일구어요. 나이를 더 먹었대서 더 슬기롭지는 않아요. 나이가 어리다고 더 풋풋하거나 싱그럽지도 않아요. 삶은 밥그릇으로 따지지 않으니까요. 삶은 하루하루 얼마나 따순 사랑을 나누며 어깨동무했느냐 하는 꿈날개로 보살피니까요. (4345.2.18.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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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lmo 2012-02-18 11:58   좋아요 0 | URL
전 시댁이 전북 고창이어서 선운사 동백은 가끔 봐요.
빗 속의 동백은 운 좋게 볼 때가 간혹 있었는데...
눈 속의 동백은 사진으로라도 귀한 선물이네요~^^

파란놀 2012-02-18 17:08   좋아요 0 | URL
눈과 꽃은 새삼스레 잘 어울리는구나 싶어요..
 


 피아노 건반에 뒤로 앉아 치는 어린이

 


 제 몸뚱이만 한 인형을 등에 업고 피아노를 치자니 한손으로 받쳐야 한다. 한손으로 받치고 치자니 아무래도 힘들어 피아노 건반에 올라탄다. 이렇게 하면 인형이 흘러내리지 않는다. 두 손을 홀가분하게 놀리며 피아노 건반을 두들긴다. 아직 키가 작은 동생은 피아노를 붙잡고 겨우 버티지만 누나처럼 건반을 두들기지 못한다. 재미있게들 놀아라. (4345.2.18.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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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들보라 피아노 치고 싶어

 


 누나가 피아노 치는 소리를 듣고는 누나 따로 끝방으로 볼볼볼 기어가서는 피아노 다리를 붙잡고 서기까지는 했지만 키가 안 닿아 건반을 두들기지는 못하는 산들보라. 아직 너는 혼자 서지 못하잖니. 혼자 설 무렵 키가 훌쩍 자라 그때에는 너도 누나하고 나란히 앉거나 서서 피아노를 칠 수 있을 텐, 어서 무럭무럭 자라렴. (4345.2.18.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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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lmo 2012-02-18 12:20   좋아요 0 | URL
저 녀석이 정녕 산들보라란 말입니까?
저 녀석들 보고 있으면, 안 먹어도 배 부르시겠습니다여~^^

파란놀 2012-02-18 17:06   좋아요 0 | URL
씩씩하게 잘 크기를 빌고 또 꿈꾸어요..

카스피 2012-02-19 18:32   좋아요 0 | URL
둘째 태어난지 얼마안된것 같은데 벌써 짚고 일어나는군요ㅎㅎ,정말 안먹어도 배가 부르시겠네용^^

파란놀 2012-02-20 06:54   좋아요 0 | URL
많이 먹어야 이 아이들 데리고 놀지요 ㅋㅋㅋ
 
예스터데이를 노래하며 1
토우메 케이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10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함께 있는 즐거움
 [만화책 즐겨읽기 118] 토우메 케이, 《예스터데이를 노래하며 (1)》

 


 그믐밤에는 달이 보이지 않습니다. 달이 보이지 않으면 별이 한결 잘 보이지 않으랴 싶지만, 막상 깜깜한 밤하늘을 올려다보노라면 별을 그리 많이 찾아보지는 못합니다. 깜깜해진 밤하늘은 더 깜깜하고 별빛까지 수그러듭니다.

 

 저녁이 되면 아이들을 데리고 살짝 바깥으로 나와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걷습니다. 바람이 꽤 쌀쌀하면 살짝 나왔다가 금세 들어갑니다. 바람이 그닥 차지 않으면 마을을 한 바퀴 빙 돕니다. 보름밤에는 길이 훤히 잘 보여 걱정없이 걷는데, 그믐밤에는 여느 때에 잘 보이던 길이 아주 깜깜합니다. 이때 아버지랑 나란히 걷는 첫째 아이는 아버지 손을 꼭 움켜쥐며 뒤로 물러섭니다.

 

 별을 보고 깜깜한 밤을 보면서 이제 이렇게 조용한 때에는 모두 코 하고 자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아이들과 집으로 돌아가 잠자리 이불을 뒤집어쓰고 눕습니다. 이런다고 곧 잠들 아이들은 아닙니다. 갓난쟁이 둘째는 가슴에 엎드리도록 합니다. 첫째는 곁에 누우라 합니다. 이런 다음 한참 노래를 부르며 놉니다. 고개를 이리저리 갸우뚱하다가는 두 팔로 아버지 가슴을 팍 디디고 웃몸을 일으키는 둘째가 까르르 웃기를 되풀이하다가는 눈꺼풀이 스르르 감길 무렵, 나즈막하게 자장노래를 부릅니다. 이무렵 첫째는 “동생 자?” 하고 묻고는 저도 하품을 길게 하다가는 눈을 사르르 감습니다.


- “너 지금 까마귀들에게 밥 주고 있는 거냐? 그건 팔다 남은 도시락이잖아. 사장님이 아시면 야단하실 텐데.” “비밀로 해 주세요. 어차피 버릴 거잖아요.” (10쪽)
- “나도 도시락, 한 개만 줘.” “뭐? 이런 일을 하면 안 되게 되어 있어, 규정상. 미안하지만.” “뭐? 방금 까마귀에게는 줬잖아.” “그, 그야 그렇지만.” “좀 봐줘. 막차를 놓쳐서 신주쿠에서 여기까지 걸어왔단 말이야. 배가 너무 고파서 그래. 까마귀에게 적선한 셈치면 되잖아.” (13쪽)

 


 아이 둘을 나란히 재우기란 만만하지 않습니다. 아이 둘을 재우고 보면 셋이나 넷이 있을 때에 어떻게 하면 좋을까 하고 떠올립니다. 다른 무엇보다 아이들이랑 살을 부대끼며 같이 있는 나날이 가장 즐거운 하루가 아니겠느냐 생각합니다. 억지로 재우려 한대서 잠들 아이들이 아니라, 실컷 뛰고 구르고 기고 달리고 하다가 제풀에 겨워 곯아떨어질 때에 비로소 꿈누리로 접어드는 아이들이리라 생각합니다.

 

 멀리 찾아보지 않더라도 알 수 있어요. 바로 내 어린 나날을 조금만 떠올리면 오늘 내 곁에서 살아가는 아이들하고 어떻게 어울릴 때에 서로 기쁘며 좋은가를 깨달을 수 있어요.

 

 사람 몸은 밥을 먹으며 기운을 얻는다면, 사람 마음은 사랑을 먹으며 기운을 얻어요. 밥 한 그릇으로 몸에 새 기운 북돋우고, 사랑 한 자락으로 마음에 새 기운 북돋울 수 있어요. 몸과 마음이 함께 튼튼해야 씩씩한 사람이 돼요. 몸만 튼튼하거나 마음만 튼튼할 수 없어요. 내 몸을 빛낼 가장 좋은 밥을 찾아서 먹고, 내 마음을 빛낼 가장 좋은 사랑을 찾아서 나누어야 즐거운 삶이에요.


- “그나저나 넌, 하나도 안 변했구나.” “사람이 반년만에 쉽게 바뀌겠어! 너야말로 전혀 안 변했는걸.” (35쪽)
- “이상하지. 사랑이란 단지 착각일 뿐인데, 알고 있으면서 그걸 거역할 수가 없다니. 덕분에 5년씩이나. 바보같이.” (72∼73쪽)

 


 가장 즐거이 살아가는 길은 오직 하나라고 느낍니다. 왜냐하면, 가장 즐거이 살아가는 길이니까요. ‘가장’은 오직 한 가지에만 붙이는 꾸밈말이거든요.

 

 이렁저렁 즐거운 길이란 많아요. 이모저모 즐거이 누릴 삶도 많겠지요. 그러나 참말 가장 즐겁게 오순도순 어우러질 길이라 한다면 다문 하나예요. 어버이로서, 아이로서, 집식구로서, 옆지기로서, 살붙이로서, 서로서로 가장 즐겁게 오순도순 어우러질 길이란 스스로 밥을 일구어 얻고 스스로 사랑을 길어올려 나누는 삶 하나라고 느껴요.


- “미안해. 이 밤중에. 잠깐 나와 줄 수 없을까?” “커피숍이라도 갈까?” “아니, 여기서도 괜찮아. 오래 전부터 하고 싶은 말이 있었는데, 난, 널 좋아해.” (87쪽)
- “네가 말한 착각에 종지부를 찍고 자전거 채로 넘어졌어. 그냥 한번 자기변혁을 시도해 봤을 뿐이야. 거짓말쟁이인 자신을 힘껏 쫓아내 봤어. 그리고 도망갈 길을 잃으면 어떻게 되나 하고 봤더니, 뜻밖에, 아무렇지도 않더라구. 계속 같은 곳에 있을 뿐.” (95쪽)
- “거짓말쟁이는 아무것도 잃지 않지만 아무것도 손에 넣을 수 없어. 난 거짓말쟁이지만 처음으로 남이 날 좋아해 주길 바랐어. 나도 도망칠 곳을 잃은 건지도 몰라.” (98쪽)

 


 아이들이 학교에서 치르는 시험에서 100점을 맞는다고 그리 기쁘지 않습니다. 아이들이 이름난 대학교에 붙는다고 기쁘지 않습니다. 아이들이 공무원 시험에 붙거나 큰회사 시험에 붙었기에 기쁘지 않습니다.

 

 아이가 씨앗 한 알 고이 건사해서 무럭무럭 자라도록 심을 수 있을 때에 기쁩니다. 아이가 가슴속에서 우러나오는 사랑으로 서로서로 아끼고 보듬으며 어루만질 수 있을 때에 기쁩니다. 아이가 따스한 손길로 풀줄기와 꽃잎을 쓰다듬을 수 있을 때에 기쁩니다. 아이가 맑은 눈빛으로 노래하며 이야기꽃 피울 때에 기쁩니다.

 

 곰곰이 돌아봅니다. 내 삶에서 나부터 살고 싶은 길이 아이들하고 살아가는 동안 아이하고 함께 누리고 싶은 길입니다.

 

 나는 시험 100점이 썩 기쁘지 않습니다. 나는 어떤 졸업장이나 자격증이 그리 반갑지 않습니다. 나는 어찌저찌 누리는 이름쪽이 대수롭지 않습니다. 나로서는 내가 살가이 건사할 수 있는 보금자리가 좋습니다. 내가 포근히 감싸며 나눌 수 있는 사랑이 좋습니다. 내가 흐뭇하게 길어올릴 이야기와 꿈이 좋습니다.

 

 아이한테 바라고 싶은 무언가를 나부터 살아내면 됩니다. 아이한테 무언가 바라고 싶으면 나부터 기쁘게 살아내면 됩니다. 아이와 어버이가 나란히 어깨동무하면서 즐거이 한길을 걸으면 됩니다.


- “네가 싫은 건 아니지만, 그다지 잘해 줄 수 없을 것 같아. 지금 내 머릿속은 그럴 여유가 없거든.” “알고 있어. 우오즈미는 생각할 게 많으니까. 자신에 대해서도, 시나코 선생님에 대해서도, 충분히 알고 있어. 난 반 바퀴 정도 늦게 출발한 러너 같은 존재야.” “뭐?” “처음부터 지는 경기를 시작했다는 뜻이지. 우오즈미가 날 이상하게 생각하는 것도 알지만, 난 우오즈미가 생각하는 것만큼 환상이나 이상을 가지고 있진 않아. 내가 생각하고 느낀 그대로의 사람이었어. 그러니까 우오즈미가 누굴 좋아하든 상관없어. 난 우오즈미에게 아무것도 바라지 않아. 그야 물론, 언젠가는 날 좋아해 주었으면 좋겠지만, 하지만 지금은 우선, 이렇게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해. 그러니까 괜찮아. 포기하는 것보단 나으니까. 이런 내가 이상해?” (215∼217쪽)

 


 토우메 케이 님 만화책 《예스터데이를 노래하며》(학산문화사,2001) 첫째 권을 읽습니다. 모두 일곱 권으로 이루어진 《예스터데이를 노래하며》 첫째 권에서는 ‘함께 있는 즐거움’을 이야기합니다.

 

 사랑이든 아니든, 사랑이라 느끼든 못 느끼든, 서로 바라보고 함께 어깨동무하는 즐거움을 이야기합니다.

 

 어떤 증명서나 계약서나 신고서가 있어야 함께 살아가는 님이 아닙니다. 한 집 같은 방에서 나란히 잠자리에 누워야 함께 살아가는 짝이 아닙니다. 몸을 섞는대서 사랑이 아닙니다. 사랑으로 몸을 섞기도 하지만, 사랑이 아니면서 몸을 섞기도 해요.

 

 사랑일 때에는 서로 마주볼 수 있기에 기쁘고, 사랑인 만큼 서로 마주볼 수 없어도 마음으로 그리기에 기쁘며, 사랑인 사람들은 저마다 두 다리 서는 곳에서 사랑씨앗 곱게 뿌리며 돌보기에 기쁩니다.


- “까마귀 좋아해?” “좋아한다기보다, 익숙해지면 귀엽잖아.” “가끔 먹이를 나눠 줘서 고마워.” “그게, 네 까마귀였어?” “응.” (15쪽)
- “난 우오즈미를 만나고 싶어서 가게에 들르는 거야.” “그거 고맙군.” (51쪽)


 좋아하니까 손을 잡아야 하지 않습니다. 좋아하니까 입을 맞추어야 하지 않습니다. 좋아하니까 나들이를 함께 다녀야 하지 않습니다. 좋아하니까 둘이 꼭 붙어 다녀야 하지 않습니다. 좋아하니까 이 지구별 이 조그마한 마을 이 자리에 함께 햇살을 누리고 바람을 마시면서 웃고 울 수 있습니다. (4345.2.18.흙.ㅎㄲㅅㄱ)


― 예스터데이를 노래하며 1 (토우메 케이 글·그림,신현숙 옮김,학산문화사 펴냄,2001.6.25./3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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