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맹호 씨 자서전 소식을 들으며 생각에 잠긴다. '민음사 편집자' 가운데 10년이나 20년쯤 한 자리를 지킨 이가 있다면, 이들이 '민음사 편집자 자서전' 한 권쯤 쓸 수 있기를. 아니면, '민음사를 거친 편집자' 100사람이나 200사람쯤 모여서 '민음사에서 책을 만든 이야기'를 쓸 수 있기를. 한 사람 목소리만으로는 출판사 한 곳이 어떻게 걸어왔는가 하는 대목을 제대로 밝히거나 말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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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맹호 자서전 책
박맹호 지음 / 민음사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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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나누는 사랑

 


  중학교를 다니던 때부터 동무한테 책을 선물합니다. 노래테이프를 선물한다든지 극장표를 선물한다든지 하기도 했지만, 내가 즐겁게 읽은 어떤 책 하나를 정갈한 종이에 곱게 싸서 엽서 한 장 끼운 선물이 나로서는 참 좋았습니다. 때로는 내가 미처 못 읽은 책을 책방에 서서 바지런히 읽은 다음 예쁜 그림엽서 하나 함께 사서는 이런 인사 저런 이야기 담아 책 사이에 꽂고는 정갈한 종이에 곱게 싸서 선물하곤 합니다.


  책을 선물하면서 ‘내가 읽은 그 책’을 새롭게 다시 들춥니다. 나는 그 책 읽으며 들뜨며 즐거웠는데, 내 동무는 어떤 마음일까 궁금하고 설렙니다. 내가 읽지 않은 책을 선물할 수 없기에, 아직 읽지 못했지만 꽤 아름다우리라 여긴 책을 고른 뒤 한 시간 즈음 서서 손자국 안 묻히도록 애쓰며 후다닥 읽기도 합니다. 책을 선물하는 김에 책을 하나 더 읽을 수 있는 셈입니다.


  누군가한테 무엇을 건넬 적에는 더 천천히 더 반듯하게 글을 씁니다. 한 글자 두 글자 사랑 듬뿍 담아 적바림합니다. 책 한 권 선물이란, 나무 한 그루 선물과 같다고 느낍니다. 나무는 몸한테 푸른 숨결을 베풀고, 책은 마음한테 푸른 숨결을 베풉니다. 나무로 빚은 책은 사람들한테 푸른 넋과 푸른 얼 싱그럽고 산뜻하게 일구는 슬기를 베풉니다.


  내가 읽는 내 책은, 내가 나한테 선물하는 책입니다. 내 이웃이나 동무한테 선물하는 책은, 내 이웃이나 동무가 마음밭 아름다이 일굴 수 있기를 바라는 꿈이요 사랑입니다. 4346.2.8.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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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살아온 발자취

 


  일본에서 대정 13년에 1쇄를 찍고 소화 11년에 수정8쇄를 찍은 영어 교과서를 전남 순천 헌책방 〈형설서점〉에서 만납니다. 퍽 낡은 교과서로구나 싶고, 또 일본에서는 지난날 영어 교과서를 어떻게 엮었나 살짝 궁금해서 구경합니다. 그런데, 책 안쪽에 깃든 꽤 오래되었구나 싶은 도장 하나 봅니다.

 

― 우리들의 冊房 全南順天 大衆文化社

 

  전라남도 순천에 있었다는 책방 ‘대중문화사’는 어떤 곳이었을까요. 이곳을 아는 분은 아직 있을까요. 1936년에 일본에서 나온 영어 교과서는 언제 ‘전남 순천 대중문화사’ 책시렁에 놓였을까요. 일제강점기에 있던 책방일는지요, 아니면 해방 뒤에 있던 책방일는지요.


  누군가 책을 한 권 장만합니다. 책 한 권은 새책방 책시렁에 놓여 누군가한테 팔립니다. 즐겁게 읽힌 책이 오랜 나날 조용히 묻히다가 어느 날 헌책방으로 흘러나옵니다. 책 한 권 건사한 이가 이승에서 저승으로 건너간다든지, 이 나라에서 저 나라로 떠난다든지, 살림을 줄인다든지, 집안청소를 한다든지, 책하고 멀어진다든지, 하면서 헌책방으로 들어옵니다. 서른 해 쉰 해 일흔 해 발자취가 헌책방에 살포시 남습니다.


  손으로 빚는 책을 손으로 갈무리합니다. 손으로 갈무리하는 책이 책방 책시렁에 놓여 책손을 기다립니다. 책손은 손으로 책을 쓰다담으며 책을 고르고, 고른 책을 주머니에서 손으로 돈을 꺼내어 책값을 치릅니다. 책값 치른 책을 손에 들고 들뜬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갑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두 손으로 책을 꼬옥 쥐기도 하고 펼치기도 하고 어루만지기도 합니다.


  우리들 책방 대중문화사는 이제 없지만, 우리들 책방 대중문화사에서 다룬 책 하나는 정갈한 도장 자국과 함께 오래오래 이어집니다. 헌책방에서 책 하나 고른 뒤, 주머니에서 볼펜 한 자루 꺼내어 오늘 날짜를 또박또박 적습니다. 1936년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천천히 이어온 여러 사람 발자국에 내 발자국 하나 보탭니다. 앞으로 서른 해나 쉰 해나 일흔 해쯤 지나면, 또 누군가 이 발자국을 바라보며 새삼스러운 책삶을 더듬을 수 있겠지요. 4346.2.8.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헌책방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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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가운 상말
 611 : 경거망동

 

모든 것을 침착하고 신중하게 하되 목표를 정해 놓고 올바른 방향을 향해 나아가야지, 남들이 하라는 대로 이리저리 경거망동해서는 안 된다
《에냐 리겔/송순재-꿈의 학교, 헬레네 랑에》(착한책가게,2012) 289쪽

 

  “침착(沈着)하고 신중(愼重)하게 하되”는 “차분하고 꼼꼼하게 하되”로 손볼 수 있습니다. “차근차근 꼼꼼하게 하되”라든지 “찬찬히 차분하게 하되”로 손보아도 잘 어울립니다. “목표(目標)를 정(定)해 놓고”는 “목표를 세워 놓고”나 “할 일을 세워 놓고”나 “나아갈 길을 잡아 놓고”로 손보고, “올바른 방향(方向)을 향(向)해”는 “올바른 곳을 바라보며”나 “올바른 곳으로”나 “올바르게”로 손봅니다.


  ‘경거망동(輕擧妄動)’은 “경솔하여 생각 없이 망령되게 행동함”을 뜻하는 네 글자 한자말입니다. 그런데 말풀이가 쉽지 않군요. 다시 국어사전을 들춥니다. ‘경솔(輕率)’은 “말이나 행동이 조심성 없이 가벼움”을 뜻한다 하고, ‘망령(妄靈)’은 “늙거나 정신이 흐려서 말이나 행동이 정상을 벗어남”을 뜻한다 하는군요. 그러니까, ‘가볍게 움직이거나 함부로 구는’ 짓을 가리킨다 하겠습니다.

 

 이리저리 경거망동해서는
→ 이리저리 가볍게 움직여서는
→ 이리저리 휘둘려서는
→ 이리저리 휩쓸려서는
→ 이리저리 춤춰서는
 …

 

  뜻을 살피면 ‘경거망동’ 같은 낱말도 얼마든지 쓸 만하리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말뜻 그대로 ‘가볍게’나 ‘함부로’라 쓴다면 한결 쉬우면서 널리 즐거울 수 있겠구나 싶어요.


  쉽게 말하며 쉽게 생각을 나눕니다. 부드러이 말하며 부드러이 생각을 주고받습니다. 가벼운 짓이 가볍다 밝히고, 함부로 구는 짓을 함부로 구는 짓이라고 가리킵니다.


  그러고 보니, 함부로 구는 짓은 ‘마구 움직이는 짓’이에요. 마구 움직이는 짓은 한 낱말로 간추려 ‘막짓’이라 나타낼 수 있습니다. ‘막말’과 ‘막춤’처럼 ‘막-’을 앞가지 삼아 새 낱말 빚을 만합니다. 4346.2.7.나무.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모든 것을 차근차근 꼼꼼하게 하되 어떻게 할지를 살펴 올바르게 나아가야지, 남들이 하라는 대로 이리저리 춤춰서는 안 된다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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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위

 


  설을 앞두고 음성 할머니한테서 전화 한 통 온다. 오늘(2월 7일) 음성 할머니 할아버지 계신 데는 영 도 밑으로 스무 칸 내려갔고, 이듬날은 더 추울 테니 애들 데리고 올 수 있겠느냐고, 눈 치우느라 바쁘시단다. 고흥에서는 눈을 구경하지 못하고 바람만 휭휭 부는데, 전라남도 시골과 충청북도 멧골짝은 참 많이 벌어지는구나. 너무 추우니 설에 오지 말라 이야기를 하시는데, 겨울이니 마땅히 추울 테고 우리 아이들은 추위를 많이 겪어 보아 괜찮으니 그냥 가겠다고 이야기한다.


  전화를 끊고 한참 생각한다. 날씨를 곰곰이 헤아린다. 오늘부터 여러 날 몹시 추울 듯하다. 아직 고흥에서는 물을 안 틀고 지내는데, 요 며칠 사이에는 좀 많이 춥겠구나 싶다. 이런 날씨에 여러 날 집을 비우면 물이 어떻게 될까. 우리가 쓰는 물은 땅밑물이라 하지만, 물관을 박아서 끌어올리니까 추위에 얼어붙어 못 쓸 수 있다.


  설을 앞두고 음성에 가려고 미리 끊은 기차표를 살핀다. 다른 날에 갈 수 있나 알아본다. 다른 날에는 차표가 없다. 그러면, 이 기차표를 인터넷으로 취소할 수 있는가 알아본다. 순천 기차역에 가야만 취소할 수 있다. 이래 해도 만만하지 않고, 저래 해도 순천까지 나들이를 해야 한다. 시골에서 살아갈 때에는 조용하니 좋지만, 한 번 움직이자면 골이 살짝 아프구나. 네 식구 움직이는 기차삯이 꽤 되니 순천을 다녀올밖에 없으리라. 설을 지나고 날씨가 풀리면 그때에 찾아가야겠구나. 4346.2.7.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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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극곰 2013-02-08 15:19   좋아요 0 | URL
날씨가 춥다니 여기 어머니 저기 어머니가 전화를 하시네요. :)
그래도 저희는 부산에 계시니 내일 내려갑니다.

함께살기 님, 가족들과 함께 설 잘 쇠시고요,
물도 얼지 않게 잘 보살펴주세요. :)

요즘 함께살기님 글을 너무 많이 올리셔서 못 따라가고 있습니다.
시간 날 때 쉬엄쉬엄 보면 되겠지요? ㅎ

파란놀 2013-02-08 18:51   좋아요 0 | URL
저야 늘 올리는 대로 올리니까요.
부산에서 따스한 설 즐거이 누리셔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