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덤 옆 지나가는 고속도로

 


  고흥을 벗어나 순천을 지나고 청주를 거쳐 음성으로 오는 길, 여러 고속도로 곁을 스친다. 시골마을 가운데 어느 곳도 고속도로가 바로 옆으로 지나가리라 생각하지 않았으리라. 모든 시골마을은 이름 그대로 시골이요, 조용한 삶터였으리라. 그런데, 오늘날 시골 가운데 고속도로나 송전탑이나 공장이나 짐승우리나 발전소나 골프장이나 아파트나 4대강 삽질터 같은 거친 손아귀에서 홀가분한 데는 매우 드물다. 홀가분하면서 호젓한 시골마을은 차츰 줄어든다.

  고속도로 곁 시골마을 사람들은 새벽이고 밤이고 아침이고 낮이고 얼마나 시끄러울까 생각하다가, 고속도로 바로 곁에 있는 무덤을 퍽 많이 본다. 저 자리를 처음 잡아서 무덤을 쓸 적에는 고속도로 같은 찻길은 조금도 헤아리지 않았겠지. 더없이 좋은 터를 고르고, 볕 잘 들면서 아름다운 숲속에 무덤을 놓았으리라. 그런데, 이런 좋은 터, 무덤 있는 곁에 고속도로가 참 많이 지나다닌다.


  어쩔 수 없는 노릇일까. 더 깊이 살피거나 헤아릴 수 없는 노릇일까. 자동차 뜸한 옛날에는 누구나 천천히 걸어 무덤자리 찾아가서 술 한 잔 떡 한 점 올리면서 도란도란 이야기꽃 피웠으리라. 자가용 몰아 붕붕 싱싱 무덤자리 휘 둘러보고 떠나는 요즈음은 오순도순 이야기꽃 피울 겨를이나 마음이 크게 줄거나 사라질밖에 없으리라. 4346.2.10.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두 아이 재우는 시외버스

 


  옆지기는 작은아이를 맡고, 나는 큰아이를 맡는다. 두멧시골집에서 택시를 타고 읍내로 나와, 고흥읍내에서 순천 버스역까지 시외버스를 타고, 순천 버스역에서 청주 버스역으로 시외버스를 타며, 청주 버스역에서 음성 버스역으로 시외버스를 탄다. 시외버스에 시달리는 아이들은 스스로 몸부림을 치면서 온갖 놀이를 하고 싶다. 갑갑한 몸을 풀고 싶어 이래저래 비틀고 꼬물꼬물 노닥거린다. 너희가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어떻게 견딜 수 있겠니.


  고흥읍에서 순천 버스역으로 가는 길, 순천에 거의 닿을 무렵 두 아이가 스르르 잠든다. 순천에서 청주로 가는 길, 세 시간 달리는 버스에서 한 시간 반쯤 되자 두 아이가 사르르 잠든다. 처음에는 두 아이가 따로 앉았으나, 작은아이를 달래려고 나와 큰아이 사이에 앉히고 사진기를 손에 쥐어 주었는데, 이십 분쯤 사진기 들여다보다가 큰아이가 “나 이제 안 볼래. 보라 혼자 보라고 해.” 하더니 아버지 허벅지에 머리를 대고 눕는다. 작은아이를 왼허벅지에 앉힌다. 큰아이가 잘 자도록 자장노래를 부른다. 두 가락쯤 불렀을까, 사진기 손에 쥔 작은아이가 꾸벅꾸벅 졸다가 폭 고개를 떨군다. 깊이 잠들어 느긋하게 쉴 수 있기를 빌며 자장노래를 열 가락 남짓 더 부른다. 내 허벅지 둘은 두 아이 눕히는 베개가 된다. 옆지기가 작은아이를 넘기라 말하지만, 옆지기가 한갓지게 쉴 수 있기를 빌며 내가 둘 다 안는다. 한 시간 남짓 두 아이를 허벅지에 앉히고 누여 재운다. 호젓한 길을 널널한 시외버스가 달린다. 나도 눈을 감는다. 가만히 생각에 잠긴다. 아이들과 살아가는 날을 되짚는다. 내 어버이가 나와 형을 어떻게 보살피며 하루를 누렸을까 헤아린다. 이 아이들은 나와 옆지기 지난날을 돌아보는 거울이요, 내 어버이가 살아온 한때를 짚는 발자국이면서, 스스로 씩씩하고 맑은 숨결일 테지. 자는 아이 둘 끌어안고 시외버스를 달리지만, 몸이 힘들거나 허벅지가 저리거나 팔이 아프지 않다. 음성 할머니 할아버지 댁으로 간다. 4346.2.10.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내 이야기를 쓰기

 


  ‘객관’이란 ‘여러 사람 눈길’로 바라보는 이야기요, ‘제3자’란 ‘다른 사람 눈길’로 바라보는 이야기라고 느낀다. 어떤 이는 객관이나 제3자라는 자리에 서며 글을 쓰리라 생각한다. 그런데, 객관이나 제3자라는 자리가 있을 수 있는지 궁금하다. 어떤 사람이라 하더라도 ‘내 삶자리’에서 헤아리거나 바라볼 뿐, ‘다른 삶자리’나 ‘여러 사람 삶자리’에서 바라볼 수는 없지 않나. 나를 잊거나 지우면서 다른 사람 마음이 되어 본다지만, ‘다른 사람 마음이 되려’고 할 뿐이지, ‘다른 사람이 되지’는 않는다. 스스로 살아내는 만큼 헤아리거나 바라보기 때문에, 누구라도 이녁 삶자리에 맞추어 헤아리거나 바라본다고 느낀다.


  그러니까, ‘객관’이나 ‘제3자’ 마음이 되어 글을 쓴다는 말은 함부로 할 수 없다. 남한테서 들은 이야기를 토씨 하나 고치지 않고 옮긴다면 객관이나 제3자가 되었다고 할는지 모를 텐데, 내 느낌과 생각과 마음을 담지 않고 토씨 하나조차 똑같이 붙이며 읊는 말이나 글이란 조금도 아름다울 수 없으리라 생각한다.


  글을 쓴다고 할 때에는 내 이야기를 쓴다는 소리이다. 남 이야기를 쓴다면 글쓰기가 될 수 없다. 이른바 ‘채록’을 하거나 ‘증언’을 받는다면, 남 이야기를 토씨 하나조차 안 건드리며 그대로 살려야지. 객관이나 제3자라는 자리를 떠나, 남 이야기를 내 손을 빌어 적바림할 적에는 토씨 하나라 하더라도 함부로 건드려서는 안 된다. 따옴표를 붙여서 적는 다른 사람 말은 내 멋대로 고치거나 손질해서는 안 된다.


  글쓰기란 언제나 내가 살아내는 하루를 적바림하는 일이다. 내 마음을 적바림하고, 내 꿈을 적바림하며, 내 사랑을 적바림할 때에 글쓰기가 된다. 내 이야기는 나 혼자서 쓸 수 있다. 내 이야기는 바로 내가 쓸 수 있다. 아이들과 복닥이는 삶은 나 스스로 쓴다. 나무를 쓰다듬고 풀꽃을 들여다보는 기쁨은 나 스스로 쓴다. 겨울바람과 봄바람 누리는 즐거움은 나 스스로 쓴다. 스스로 내 삶을 어떻게 빛내면서 활짝 웃는가 하는 이야기를 나누고 싶기에 글을 쓴다. 4346.2.10.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설 마실을 가기로 한다.

고흥읍내서

순천시내로 간 뒤

청주로 가는 버스를 타면 되는데

부디 순천서 청주 가는 버스를

네 식구 잡아 탈 수 있기를 빈다.

 

어찌저찌

음성까지 잘 가리라 믿으면서

겨우겨우

짐 다 꾸리고

택시를 불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바닷가 바위 틈 후박나무 책읽기

 


  나무는 씨앗으로 퍼집니다. 사람들이 씨앗을 받아 천천히 키워 어린나무를 옮겨서 심기도 할 테지만, 오랜 나날 한 곳에서 튼튼하게 자라 우람하게 서는 나무는 하나같이 스스로 씨앗으로 뿌리를 내려서 씩씩하게 줄기를 올리기 마련입니다.


  나무는 사람이 따로 물을 주지 않아도 자랍니다. 빗물을 먹으며 여름을 나고, 눈송이를 가지에 얹으며 겨울을 납니다. 찬바람 더운바람 가리지 않고 맞아들입니다. 들새와 멧새가 끊임없이 내려앉아 노래를 부르며 지나갑니다.


  햇볕을 먹으며 하루를 보냅니다. 바람결 따라 나뭇잎을 흔들며 노래를 부릅니다. 바닷가 바위 틈에 씨앗을 떨구어 자라난 후박나무는 날마다 바다를 바라보며 고운 사랑 북돋웁니다. 한 해 다섯 해 열 해 쉰 해 천천히 자라면서 줄기는 굵어지고 가지는 깊어지겠지요. 머잖아 바닷사람 바위에 걸터앉아 쉴 적에 여름에는 그늘을 베풀고 겨울에는 바람막이가 되어 주겠지요. 해마다 새롭게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어 씨앗 여럿 즐겁게 떨굴 테고, 숱한 씨앗은 저마다 바위 틈으로 깃들어 힘껏 뿌리를 내리려 하겠지요.


  사람은 나무를 바라봅니다. 나무는 사람을 바라봅니다. 갈매기가 후박나무를 바라봅니다. 후박나무는 갈매기를 바라봅니다. 어린 갈매기는 어린 후박나무를 보며 자라고, 어른 갈매기는 어른으로 자란 후박나무에 앉아 쉽니다. 새롭게 태어날 갈매기는 차츰 커지는 후박나무에 내려앉아, 먼먼 옛날 옛 어른 갈매기가 이곳에 깃들며 지낸 이야기를 물려받습니다. 4346.2.9.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