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살이 일기 30] 집으로 집으로
― 눈과 마음과 머리를 트는 길

 


  바깥일을 보러 먼먼 마실을 다녀와야 할 때가 있습니다. 고흥에서는 어디로 가든 먼길입니다. 순천을 다녀오더라도 가깝지 않습니다. 서울과 부산을 다녀오는 길은 무척 멉니다. 고흥에서 다른 시골로 찾아가는 길은 훨씬 더 멉니다. 시골에서 시골로 움직이면, 새로운 시골빛을 누리며 즐겁지만, 시골에서 도시로 다녀와야 할 적에는 몸이 여러모로 고달픕니다. 시끄러운 자동차 소리에 시달려야 하고, 온통 빽빽하게 들어찬 시멘트와 아스팔트와 가게와 전깃줄에 들볶여야 합니다.


  그래도 아름다운 사람들 살아가는 마을에서 아름다운 이야기를 들으면서 아름다운 생각을 북돋울 수 있기에 먼 마실을 다녀요. 아름다운 이야기꽃을 피우면서 아름다운 꿈을 주고받다 보면, 다른 시끄럽거나 자질구레한 소리와 모습은 어느새 내 눈앞에서 사라집니다. 다만, 시외버스를 여러 시간 타면 속이 울렁거리고 골이 아파요. 그런데, 시외버스가 여러 고속도로를 거쳐 벌교읍 지나 고흥읍 동강면으로 접어들면 멀미와 울렁거림이 감쪽같이 사라져요. 버스에 탄 몸이라 바깥바람을 쐴 수 없지만, 바깥에서 흐르는 고운 시골바람을 마음으로 느끼기 때문일까요.


  시외버스는 과역면을 지나고 고흥읍에서 섭니다. 고흥읍에서 군내버스를 타고 우리 마을로 돌아옵니다. 이동안 나는 군내버스가 달리는 시골길에서 흐르는 냄새를 맡고, 별빛을 느끼며, 풀노래를 듣습니다.


  삶이란 무엇일까요. 즐겁게 누리는 삶이란 무엇일까요. 우리는 어디에서 마음을 살찌우면서 삶을 빛낼 수 있을까요. 내 이웃은 누구이며, 내가 선 이 마을은 어떤 이야기 흐르는 터전일까요.


  읍내에서 20분 달린 끝에 동백마을에 닿습니다. 버스에서 내립니다. 늦가을이라 풀벌레는 더 노래하지 않습니다. 그래도 가을바람 따라 살랑살랑 흔들리는 누런 풀포기가 춤노래를 베풉니다. 버스는 등불을 켜고 어두운 시골길을 달립니다. 나는 어두운 고샅길을 거닐며 밤하늘 별자리를 올려다봅니다. 4346.11.15.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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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아이 69. 2013.11.13.

 


  따사로운 바람 잦아들고 썰렁한 바람이 부는 철이다. 이제 큰아이는 낮에도 양말을 신는다. 그런데, 큰아이는 ‘온양말’ 아닌 ‘짝양말’을 즐긴다. 왼발과 오른발에 제 마음에 하나씩 들도록 신고 싶은 듯하다. 아직 대청마루에 앉을 만하니, 대청마루에 앉아서 만화책을 펼친다. 저녁해 뉘엿뉘엿 기울고 저녁빛 살곰살곰 스며든다. 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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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한테 밥을 떠서 먹이기

 


  큰아이는 숟가락질과 젓가락질을 잘 한다. 작은아이도 큰아이 흉내를 내며 숟가락질과 젓가락질을 제법 잘 한다. 그러나, 이 아이들은 밥자리에서 밥 한 술 뜨고는 슬그머니 일어나서 한참 뛰다가 다시 밥자리로 돌아와 밥 한 술 뜨고는 또 살그마니 일어나서 한참 뛰다가 밥자리로 돌아온다. 아이들은 워낙 이렇게 노니까 그대로 두자고 하면서도, 이러다가 밥때를 놓친다든지, 작은아이는 놀다가 제풀에 지쳐 곯아떨어지곤 하니, 작은아이를 불러 밥을 꼬박꼬박 먹인다. 작은아이한테 밥을 떠서 먹이다가 생각한다. 큰아이도 저한테 밥을 떠서 먹여 주기를 바라지 않을까? 그래서 큰아이한테도 밥을 떠서 내밀어 본다. “내가 할래.” 하면서 큰아이가 숟가락으로 밥을 뜨고 젓가락으로 반찬을 집어서 먹기도 하지만, 아버지가 내미는 숟가락을 날름날름 잘 받아먹기도 한다.


  아이들은 무엇을 먹을까. 그래, 밥을 먹지. 그러면, 어떤 밥을 먹을까. 사랑 담은 밥을 먹지. 그러니까, 찬찬히 사랑 담아 밥을 짓고, 느긋하게 함께 밥을 먹을 노릇이다. 그리고, 작은아이한테도 큰아이한테도 모두 똑같이 따순 눈빛으로 바라보는 너그러운 손길로 다가갈 노릇이다. 큰아이한테 나누어 주는 사랑은 작은아이한테도 나누어 줄 사랑이요, 작은아이한테 물려주는 사랑 또한 큰아이한테 물려줄 사랑이다. 4346.11.15.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아빠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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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에서 여관을 찾다가

 


  대구 삼덕동에 있는 작은 출판사 ‘사월의눈’ 책잔치를 조촐하게 마친 때는 밤 열두 시 반 무렵. 이제 나는 잠잘 곳을 찾으러 가야 한다. 그런데 어디로 가나? 골목을 뚜벅뚜벅 걷다가 큰길로 나온다. 좀처럼 여관 불빛이 안 보인다. 한참 걸은 끝에 목욕탕 굴뚝과 여관 불빛을 본다. 이리 갈까 하다가 한 군데 더 나오기를 바라며 걷는데, 내가 걷는 길 쪽에 모텔이 있다. 그런데, 들어가는 문을 새카맣게 발라 속이 안 보인다. 어딘가 꺼림칙하구나 싶어 목욕탕여관으로 가기로 한다. 목욕탕여관으로 가는데, 조금 앞서 지나간 큰길에서 술에 절은 자동차 한 대 전봇대를 아주 세게 들이받는다. 문득 저 사람 죽지는 않았겠네, 하고 생각한다. 그러나, 저이는 죽으려고 술을 퍼마신 뒤 자동차를 몰았겠다고 느낀다. 목욕탕여관 문간에 선다. 딸랑이도 안 울리고 아무 소리도 없다. 이곳 여관지기 방은 불이 꺼졌고 문은 닫혔으며 안 열린다. 한참 덩그러니 서서 기다리다가, 다른 곳을 찾을까 생각하지만, 뾰족한 수가 없다. 시내에서 떨어진 데라 시내로 가기까지 멀고, 어느새 한 시가 가까우니 그렇게 걸어가고 싶지도 않다. 피시방에 가서 걸상에 기대어 잘까 하다가 고개를 젓는다. 한숨 포옥 쉰 뒤 계단을 밟고 올라간다. 1층과 2층이 목욕탕이고 3층이 여관이다. 밖에서 볼 적에 불 켜진 방이 한 군데도 없었다. 빈방이 있을까 싶어 문 손잡이를 살그머니 돌린다. 열린다. 아무도 없는 빈방이 있다. 신을 벗고 가방을 내려놓는다. 바닥에 이불을 반만 펼쳐 드러눕는다. 조금만 등허리를 펴고 다리를 쉬었다가 피시방에 가자고 생각한다. 두 시간 누워서 등허리를 펴니 이렁저렁 살 만하다. 기운이 다시 난다. 때를 살피니 새벽 세 시 반이 살짝 지난다. 어떻게 할까 생각하다가 다시 눕는데, 잠이 올 듯하지는 않다. 일어나서 가방을 메고 신을 꿴다. 시골집에서도 새벽 두어 시 무렵 일어나서 글을 쓰니, 피시방에 가서 글을 쓰기로 한다. 아침 아홉 시까지 글을 쓰고는 대구시청 둘레 헌책방에 들러 책내음 맡은 뒤 순천으로 가는 시외버스를 타자. 순천에서 다시 고흥으로 들어가는 시외버스를 타자. 4346.11.15.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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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시방 책읽기

 


  아이들을 시골집에서 옆지기와 지내도록 하고 혼자 바깥일 보러 돌아다닐 적에는 으레 피시방에 들러 글을 쓴다. 예전에는 피시방에서 사람들이 담배를 많이 태워, 십 분만 지나도 매캐하고 숨이 가빴는데, 요새는 피시방에서 담배를 피울 수 없기에, 한결 느긋하다. 그렇지만, 피시방에 오는 사람들은 스피커를 크게 틀어 게임을 하느라, 자꾸 이 소리가 귀에 들어온다.


  어느 모로 보면 더 마음을 기울여 내 소리를 내가 듣고 내 말을 내가 되새기도록 애쓴다. 피시방에서 두어 시간쯤 바지런히 글을 쓰고 밖으로 나오면 후유 하고 한숨이 나오면서 머리가 핑 돈다. 너무 어지러운 곳에서 마음을 글쓰기로 모으느라 힘이 많이 드는 탓이다. 이리하여, 바깥일 보러 나올 적에는 피시방보다는 컴퓨터 있는 여관에 가려 한다. 적어도 여관에서는 나 홀로 조용히 글쓰기에 빠져들 수 있으니까.


  그래도,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피시방이 무척 고맙다. 시끄럽고 담배내음 때문에 한동안 숨이 막히기는 했어도, 돈 몇 천 원으로 ‘마실길에 느낀 이야기와 마실하며 누린 삶’을 조곤조곤 글로 쓸 수 있어 참으로 고맙다. 4346.11.15.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삶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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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1-15 17: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파란놀 2013-11-15 20:54   좋아요 0 | URL
아, 대구와 진주로 마실을 가는 길에
피시방에서 쓴 글이에요.

한 달에 한 번쯤
살림돈과 도서관 유지비를 벌려고
바깥일을 보러
다니거든요.

이럴 때에는 피시방에서 글을 쓴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