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배기가스 매캐한 도시에서는

버스 창문 꼭꼭 닫고

에어컨 돌려야

문화이고 문명이면서

더위를 이기지만,


들바람 맑고

숲바람 싱그러운

시골길 달리는 버스라면

에어컨 없이 창문바람이

즐거운 삶과 사랑인데,


요새는

시골에서도

구월 한복판쯤 되어야

드디어 에어컨을 끈다.



4347.9.18.나무.ㅎㄲㅅ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두 가지 글쓰기



  시골에서 살면서 ‘두 가지 글쓰기’가 있기도 하는구나 하고 느낀다. 하나는 군수님이 좋아할 만한 글이고, 다른 하나는 마을사람이 좋아할 만한 글이다. 그런데, 다른 갈래에서 ‘두 가지 글쓰기’가 있기도 하다. 새마을운동에 길든 시골사람이 좋아할 만한 글이 하나요, 숲을 가꾸려는 시골사람이 좋아할 만한 글이 다른 하나이다. 더 생각한다면, 아이를 모두 도시로 보내는 시골사람이 좋아할 만한 글이 하나이고, 아이와 함께 시골에서 푸른 숨결이 되어 지내려는 시골사람이 좋아할 만한 글이 다른 하나이다.


  굳이 이것과 저것으로 가를 까닭은 없다. 그런데, 글을 쓰다 보니 글이 스스로 이처럼 갈린다. 아마, 삶이 이처럼 갈리기 때문이리라. 나무를 심는 사람과 나무를 베는 사람이 다르다. 핵발전소가 있어야 전기를 쓸 수 있다고 여기는 사람과 핵발전소 없이 스스로 전기를 만들어 쓰자고 생각하는 사람이 다르다. 삶을 헤아리는 만큼 글이 다르다. 삶을 가꾸는 만큼 글이 새롭다. 삶을 사랑하는 만큼 글이 거듭난다. 4347.0.18.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삶과 글쓰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세탁기에 올려놓은 빨래



  곁님이 엊그제 뜨개질을 마친 뜨개옷을 세탁기에 올려놓았다. 다 떴으니 신나게 빨아서 햇볕에 잘 말리면 된다. 그런데 여러 날 이 옷을 빨아야 하는 줄 깨닫지 못한다. 아니, 빨래를 다 마치고 물기를 짠 옷을 세탁기에 한 벌씩 척척 올리다가 뒤늦게 알아본다. 아차, 이 뜨개옷도 함께 빨았어야 했는데.


  세탁기가 있어도 세탁기를 안 쓰고 손으로 빨래를 하다 보니, 세탁기에 얹은 옷가지는 그냥 지나치기 일쑤이다. 코앞에 있어도 안 보인다. 빨래를 모두 마친 뒤에야 비로소 알아챈다. 여러 날 허허 웃다가 오늘 드디어 ‘세탁기에 올려놓은 뜨개옷’을 빨래한다. 4347.9.18.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빨래순이)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말이랑 놀자 66] 글그림



  어릴 적부터 만화책을 즐겁게 보았어요. 나이가 들어 아이를 낳아 돌보는 삶을 일구면서, 아이들과 그림책을 즐겁게 봅니다. 요즈음 그림책을 보다가 문득 한 가지를 깨닫습니다. 그림책을 그리는 어른 가운데 글과 그림을 함께 짓는 분이 있어요. 이때에는 으레 ‘글·그림’이라 적습니다. 내가 어릴 적에 보던 만화책에도 으레 ‘글·그림’이라 적었지요. 글이랑 그림이 한데 어우러지는 만화책이요 그림책이니, 한 사람이 두 가지를 함께 하면 언제나 ‘글·그림 아무개’라 했어요. 그런데 예나 이제나 ‘글·그림’을 빚는 이들을 가리켜 ‘작가’라는 한자말을 흔히 써요. ‘글쓴이·그린이’라는 한국말을 즐겁게 쓰는 사람은 꽤 드뭅니다. 책에 적기로는 ‘글·그림’이지만, 입에는 이러한 말마디가 익숙하지 않은 셈일까요. 4347.9.18.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나무꾼과 호랑이 형님 옛이야기는 내친구 5
이나미 글.그림 / 한림출판사 / 1998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432



함께 살아가는 이웃

― 나무꾼과 호랑이 형님

 이나미 글·그림·꾸밈

 한림출판사 펴냄, 1998.9.30.



  나무꾼하고 범 이야기는 어릴 적부터 익히 들었습니다. 나무꾼은 범한테 잡아먹히지 않으려고, 그러니까 어머니하고 깊은 멧골집에서 둘이 사는데, 어머니를 생각하면서 범한테 이야기를 하나 지어서 들려줍니다. 왜냐하면, 깊은 멧골에서 어머니와 아들 둘이서 단출하게 지내는데, 아들이 어느 날 갑자기 집으로 안 돌아온다면, 어머니가 얼마나 쓸쓸하면서 고단할까요. 슬픔과 아픔에 못 이겨 더는 살아가지 못하겠지요. 그러니, 나무꾼은 온힘을 기울여서 범한테 이야기를 지어서 들려줍니다. 나무꾼은 반드시 살아남겠다는 생각으로 이야기를 짓습니다.



.. 옛날 어느 산골에 나무꾼과 어머니가 살고 있었습니다 ..  (2쪽)



  나무꾼인 아이는 왜 어머니와 둘이서 살까요? 아버지는 어디 갔을까요? 멧골집에서 지내니, 어쩌면 아버지는 멧짐승한테 잡아먹혔을는지 모릅니다. 멧골집에서 따로 사는 살림을 헤아린다면, 아버지는 나라에서 빼앗았을 수 있습니다. 성곽을 쌓는 부역자로 빼앗거나, 병졸로 빼앗았을 수 있어요. 그래서 어머니는 아들을 데리고 깊은 멧골로 숨어 들어서 조용히 살려고 했겠지요.


  끔찍한 정치와 무서운 전쟁이 없다면, 사람들은 마을에서 오순도순 살 만합니다. 서로 아끼고 도우면서 즐겁게 살 만합니다. 그러나, 임금을 비롯해 정치꾼들이 끔찍하고, 이들이 끝없이 전쟁을 일으키면서 새로운 성곽이나 궁궐을 쌓으라고 일을 시키면, 힘이 없는 여린 사람들은 깊디깊은 멧골로 숨을밖에 없습니다.


  어릴 적에 나무꾼과 범 이야기를 들으면, 언제나 이런 모습이 환하게 떠올랐어요. 두 사람은 얼마나 고달팠을까. 그러나 깊은 멧골에서 둘이 오순도순 지내면서 얼마나 즐거웠을까. 이리하여 문득 범을 만났을 때에 가슴이 덜컹 내려앉으면서 ‘어머니 걱정’이 솟았겠지요.




.. 나무꾼은 갑자기 땅바닥에 넙죽 엎드려 호랑이에게 절을 하고는 울면서 말했습니다. “형님! 그동안 어디에 계셨습니까?” ..  (7쪽)



  옛이야기이지만, 나는 그저 옛이야기로만 느끼지 않았습니다. 사람과 범이 얼마든지 말을 나눌 수 있었으리라 느낍니다. 그래서 범은 나무꾼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가만히 듣다가, 참말 범이기 앞서 사람으로도 살았던 적이 있었다고 떠올렸으리라 생각합니다. 예부터 사람이 죽어 범이나 나비로도 다시 태어난다고 했으니까요. 옛이야기이니까요.


  범으로서는 나무꾼을 굳이 잡아먹지 않아도 됩니다. 범은 얼마든지 다른 멧짐승을 잡아먹을 수 있습니다. 범은 ‘사람 먹기’를 그치면서 생각합니다. 범으로서 왜 살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생각합니다. 이리하여, 범과 나무꾼은 새롭게 형과 동생이 됩니다.




.. 나무꾼의 이야기를 들은 호랑이는 잃어버린 기억이 되살아나는 듯 눈물을 흘리며 말했습니다 ..  (15쪽)



  이나미 님이 그림을 그린 《나무꾼과 호랑이 형님》(한림출판사,1998)을 찬찬히 읽으면서 생각합니다. 옛이야기이지만, 요즈음 말에 맞추어 글을 새로 엮습니다. 그런데 여러모로 아쉽습니다. 옛날에는 모두 ‘멧골’이고 ‘멧짐승’입니다. ‘산골’이나 ‘산짐승’이 아닙니다. “살고 있었습니다”라든지 “기다리고 있었어요”는 한국 말투가 아닌 번역 말투입니다. “살았습니다”와 “기다렸어요”로 바로잡을 노릇입니다. 그리고, 어린이와 함께 읽을 그림책인데 어린이 눈높이에 걸맞지 않은 낱말이 곳곳에 있습니다. 이런 대목을 더 살피면서 그림책을 빚었어야지 싶어요.


  한편, 나무꾼이 멘 지게가 너무 작아요. 지게는 어른한테도 아이한테도 꽤 크게 만듭니다. 그래야, 나무를 해서 짊어지거든요. 이 책에 나온 지게는 너무 작아서 나뭇감은커녕 검불도 못 얹겠구나 싶습니다. 먹빛으로 살리는 예스러운 그림결이 돋보이지만, 이런 대목은 더 살펴야지 싶어요. 나무꾼이 손에 쥔 도끼도 그래요. 손도끼라 해도 너무 작아요. 아주 작은 도끼를 두 손으로 엉성하게 잡은 모습은 어쩐지 안 어울립니다. 도낏자루는 더 굵고 길어야 합니다. 도끼로 쩍쩍 찍는 장작도 반듯하게 잘려야 옳습니다. 구불구불 힘차게 흐르는 먹줄기인데, 붓으로 먹을 놀리더라도 곧게 흐르는 줄기는 곧게 흘러야 합니다.




.. 새끼 호랑이들은 나무꾼에게 달려와 말했습니다. “삼촌! 삼촌을 기다리고 있었어요.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며칠 후 우리 아버지도 돌아가셨답니다. 옛날에는 우리 아버지도 사람이셨대요.” ..  (26쪽)



  먼 옛날에는 사람과 짐승이 서로 남이 아니었으리라 느낍니다. 서로 이웃이요 동무였으리라 느낍니다. 멧골에서는 멧사람과 멧짐승이 멧살림을 함께 가꾸면서 살았으리라 느껴요. 멧내음을 마시고 멧바람을 쐬면서 멧밥을 나누고 멧노래를 부르는 하루였으리라 느껴요.


  이제 한국에서 범은 씨가 말랐습니다. 범뿐 아니라 수많은 멧짐승이 씨가 말랐고, 삶터를 빼앗깁니다. 이러는 동안 사람들은 멧짐승을 아주 괴롭히기만 할 뿐, 이웃으로 여기지 않습니다. 게다가 사람들은 사람만 살 수 있는 도시를 키우면서 사람과 사람 사이도 그리 살갑지 않아요.


  어쩌면, 어쩌면 말이지요, 사람은 사람끼리만 살 수 있는 도시를 키우면서, 사람 스스로 이웃과 동무를 저버리는 길로 가지 싶습니다. 멧짐승하고 동무가 되는 삶일 때에는 멧짐승뿐 아니라 이웃인 사람도 아낍니다. 들짐승하고 동무가 되는 삶일 적에는 들짐승뿐 아니라 이웃인 사람도 사랑합니다.


  숲을 잃거나 잊으면서 사람 사이에서 나누던 사랑을 잊습니다. 숲을 망가뜨리거나 무너뜨리면서 사람 사이에서 짓던 삶을 함께 망가뜨리거나 무너뜨립니다. 4347.9.18.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그림책 읽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