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지’와 ‘시골’
[말사랑·글꽃·삶빛 34] 살아가는 생각이 나타나는 말

 


  ‘도시(都市)’라는 곳은 언제 처음 생겼을까 헤아려 봅니다. 국어사전 말풀이를 살피면 “일정한 지역의 정치·경제·문화의 중심이 되는, 사람이 많이 사는 지역”이 도시라고 일컫는데, 신라 때 서라벌이 도시라 할 만할까요. 고구려 때 개성이나 평양은 도시라 할 만한가요. 4300년 앞서 옛조선에서 서울로 삼은 데는 도시라고 할 만할까요.


  오늘날 한국에서 ‘서울’은 땅이름 한 가지로만 많이 쓰지만, ‘서울’은 땅이름이기 앞서 어느 한 나라에서 정치와 경제가 모이는 한복판인 데를 가리키는 낱말이었습니다. 그래서, ‘서울’하고 서울 아닌 ‘시골’ 두 가지로 삶터를 나누었어요. 한겨레 삶자락을 돌아본다면, ‘도시 = 서울’이라고 할 만합니다. 이를테면, 시골서 사는 분들은 도시에서 찾아온 손님을 바라보며 언제나 “서울에서 오셨어요?” 하고 묻습니다. 부산에서 오든 대구에서 오든, 인천이나 대전에서 오든 ‘도시 = 서울’이라 ‘서울사람’이라고 바라봅니다. ‘도시사람 = 서울사람’인 셈이니까요.


  정진국 님이 쓴 《사진가의 여행》(포토넷,2012)이라는 책을 읽다가 196쪽에서 “폴은 이렇게 프랑스 벽지 사람들을 보여준다.”와 같은 대목을 봅니다. 책을 읽다가 문득 멈춥니다. 국어사전을 펼칩니다. ‘벽지(僻地)’ 말풀이를 찾아보니, “외따로 뚝 떨어져 있는 궁벽한 땅. 도시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 교통이 불편하고 문화의 혜택이 적은 곳을 이른다” 하고 나옵니다. ‘벽지’와 비슷하게 쓰는 ‘오지(奧地)’라는 낱말도 찾아봅니다. ‘오지’ 말풀이는 “해안이나 도시에서 멀리 떨어진 대륙 내부의 땅. ‘두메’로 순화” 하고 나오는군요.


  새삼스레 한국말 ‘시골’과 ‘두메’ 뜻풀이가 궁금합니다. 이 낱말도 국어사전에서 찾아봅니다. ‘시골’은 “도시에서 떨어져 있는 지역. 주로 도시보다 인구수가 적고 인공적인 개발이 덜 돼 자연을 접하기가 쉬운 곳을 이른다” 하고 나오네요. ‘두메’는 “도회에서 멀리 떨어져 사람이 많이 살지 않는 변두리나 깊은 곳”이라고 나와요.


  다시 책을 읽습니다. “프랑스 벽지 사람들”이란 “프랑스 시골 사람들”이겠구나 싶습니다. 한국말로 ‘시골’을 한자말로 ‘벽지’라 적은 셈이로구나 싶습니다. 한국말로 ‘두메’를 한자말로 ‘오지’라 적는 셈이고요.


  그런데, 시골서 살아가는 사람은 ‘교통이 불편’할까 알쏭달쏭합니다. ‘문화 혜택’을 못 누리는 시골사람일까 아리송합니다. 교통이란 무엇이고 문화란 무엇인가요. 자동차로 오가기 좋거나 기차와 비행기가 다녀야 교통이 좋다 할 만할까요. 자전거로 다니기에 넉넉하고 두 다리로 걸어다니며 한갓진 데는 교통이 어떻다고 말해야 할까요. 극장이 있거나 병원이 있어야 문화가 될까 헤아려 봅니다. 극장도 병원도 없지만 삶을 아름다이 누린다면, 또 나무와 꽃과 벌과 새와 나비를 실컷 누린다면, 어느 쪽이 문화를 즐긴다고 할 만할까 헤아려 봅니다.


  누군가한테는 극장이나 편의점이나 옷가게나 찻집이 문화 혜택이라 할 수 있습니다. 누군가한테는 숲과 골짜기와 들판과 바다가 문화 혜택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아파트도 문화요 흙집도 문화예요. 한쪽은 도시 문화이고 한쪽은 시골 문화입니다. 한쪽은 서울살이요 한쪽은 시골살이예요.


  아이들은 맨발로 뛰놀기를 좋아합니다. 나도 어릴 적에 맨발로 뛰놀기를 즐겼습니다. 온통 시멘트와 아스팔트뿐이라 하더라도 맨발이 훨씬 즐거워요. 시골 아이들은 맨발로 뛰놀 흙이 곳곳에 널립니다. 오늘날은 풀약을 잔뜩 치기는 하지만, 풀밭이 있고 흙땅이 있어요. 논밭을 거닐 수 있고, 바닷가와 갯벌을 오갈 수 있어요. 참으로 문화란 무엇이고, 문화를 누리는 삶이란 무엇이며, 문화가 아름다운 터란 무엇일까요.


  우리들이 주고받는 말은 삶자리에 따라 다릅니다. 도시사람은 도시에서 살아가는 결대로 말을 하고, 시골사람은 시골에서 살아가는 무늬대로 말을 해요. 서울사람은 서울말이요, 시골사람은 시골말입니다. 어느 쪽이 다른 쪽보다 낫거나 뛰어나거나 훌륭하지 않습니다. 스스로 삶을 어여삐 일굴 때에는 어여쁘다 여길 말이 태어납니다. 스스로 삶을 알차게 돌볼 때에는 알차게 샘솟는 말이 흐드러집니다. 스스로 삶을 기쁘게 누릴 때에는 서로 기쁘게 나눌 말을 새롭게 짓습니다.


  오늘날 한국사람은 한국말을 제대로 안 씁니다. 예전에는 대학교수나 지식인이 되려고 사자성어를 비롯한 온갖 한자말을 일본이나 중국에서 빌어 학문을 했습니다. 이제는 대학교수나 지식인, 또 기자와 학자와 작가가 되려고 미국에서 영어를 빌어 학문을 하고 글을 쓰며 문학과 책을 빚습니다. 초등학교에서도 영어를 가르치고, 어린이집과 유치원에서도 영어를 가르쳐요. 어떤 삶이요 어떤 문화인가를 살피지 않아요. 무턱대고 영어를 가르칩니다. 지식인이나 작가로 살아가는 어른은 스스로 어떤 말이며 어떤 넋인가를 돌아볼 겨를 없이 갖가지 한자말과 영어로 이녁 생각을 적바림합니다. 삶을 살피지 않고 말을 앞세워요. 삶을 돌아보지 않고 글을 써요.


  살아가는 생각이 나타나는 말입니다. 살아가는 모습이 드러나는 말입니다. 흙을 밟고 풀을 만지는 시골 할머니는 풀내음과 흙내음 물씬 풍기는 말을 합니다. 자가용을 몰고 아파트에서 지내는 도시 젊은이는 쇳덩이와 시멘트로 둘러싸인 내음이 풍기는 말을 합니다. 더 낫거나 덜 떨어지는 말이란 없습니다. 삶자리 따라 말자리가 다를 뿐입니다. 삶을 짓는 꿈에 따라 말을 빚는 넋이 다를 뿐입니다.


  어린이는 어떤 삶을 누리며 어떤 말을 나눌 때에 아름답게 꿈을 키울까 생각해 봅니다. 푸름이는 어떤 삶을 즐기며 어떤 말을 주고받을 때에 아리땁게 사랑을 빛낼까 헤아려 봅니다. 어른이 되어서는 어떤 삶을 꽃피우며 어떤 말을 북돋울 때에 어여쁘게 마음을 밝힐까 가만히 그려 봅니다. (4345.11.7.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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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2048) -에서의 14 : 자유세계에서의 최고의 모델

 

‘자유세계’에서의 최고의 모델로 선전하는 미국식 모델은 미국을 뺀 다른 곳에서는 선언의 수준에 머물렀다
《이임하-적을 삐라로 묻어라》(철수와영희,2012) 421쪽

 

  “최고(最高)의 모델(model)로 선전(宣傳)하는”은 “가장 훌륭하다고 내세우는”이나 “가장 첫손으로 꼽는”으로 다듬고, 바로 뒤따르는 “미국식(-式) 모델(model)은”은 “미국은”이나 “미국 모습은”으로 다듬어 봅니다. ‘모델’이라는 낱말을 두 차례 쓰기보다는 한 번만 쓰면 더 낫고, 아예 덜면서 글흐름에 녹아들도록 하면 한결 낫습니다. “선언(宣傳)의 수준(水準)에 머물렀다”는 토씨 ‘-의’만 덜어 “선언 수준에 머물렀다”로 손볼 수 있는데, “선언과 같을 뿐이었다”라든지 “허울좋은 말뿐이었다”나 “허울만 그럴듯했다”로 손보면 어떨까 싶습니다. 이 글에서 말하는 ‘선언’이란 알맹이 없이 말만 그럴듯하다는 뜻을 가리키니까, 말만 그럴듯하다고 하거나 허울만 좋아 보인다고 하면 넉넉하리라 생각해요.

 

 ‘자유세계’에서의 최고의 모델로 선전하는 미국식 모델
→ ‘자유세계’에서 첫손가락으로 꼽는 미국
→ ‘자유세계’에서 가장 좋다고 손꼽는 미국
→ ‘자유세계’에서 첫손으로 내세우는 미국
 …

 

  토씨 ‘-의’를 잇달아 넣으며 글을 쓰는 버릇이 자꾸 퍼집니다. 쓸 만하기에 쓰는 사람이 있을 수 있으나, 곰곰이 살피면 글쓴이 스스로 이녁 생각을 슬기롭게 담아 나타내는 말투를 모르기 때문에 이렇게 쓰는구나 싶어요. 초등학교에서도 대학교에서도 내 생각을 내 나름대로 슬기롭게 나타내도록 가르치기보다는 대학바라기 시험공부나 영어공부만 시켜요. 하루빨리 삶다운 삶을 찾고 배움다운 배움을 찾아서, 말다운 말과 글다운 글이 아름다이 꽃피울 수 있기를 빕니다. (4345.11.7.물.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자유세계’에서 가장 좋다고 손꼽는 미국은 미국을 뺀 다른 곳에서는 허울만 좋아 보일 뿐이었다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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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들보라 사진틀 놀이

 


  사진틀을 붙잡고 이리저리 흔드는 산들보라. 사진에 멍멍이 있어서 멍멍이 바라보며 이리 보고 저리 보고 하니. 멍멍이가 사진에서 튀어나오려 하니. 꼭 네 눈높이에서 멍멍이가 예쁘게 보이는구나. (4345.11.7.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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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으로 책읽기

 


  책은 책을 부른다. 이 책 하나 읽으니 저 책이 눈에 밟힌다. 저 책 하나 살피며 그 책이 보인다. 얼마나 많은 책을 살펴야 책이 눈에 안 밟힐 수 있을까. 얼마나 많은 책을 건사해야 책을 안다 말할 만할까.


  옆을 돌아보면 책을 얼마 안 읽고도 책을 말하는 사람이 많다. 책을 얼마 건사하지 않고도 책을 내세우는 사람이 많다. 책을 깊이 사귀지 않고도 책을 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책을 널리 헤아리지 않고도 책을 안다고 말해도 될까.


  그런데, 몇 권쯤 읽어야 책읽기를 했다 말할 만할까. 몇 가지쯤 건사해야 책을 갖추었다 보여줄 만할까.


  동무를 몇 사람쯤 사귀면 동무가 많다고 말하려나. 이웃을 몇 사람쯤 알고 지내면 사람들과 많이 알고 지낸다고 말하려나.


  도시 한켠에 마련한 작은 공원을 드나들면서도 나무를 느낄 수 있고 나무를 알 만하며 나무를 말할 수 있겠지. 가끔 자가용 몰아 시골길 지나가며 나무를 더 많이 보거나 숲도 조금쯤 들여다볼 수 있겠지. 두멧자락 깊디깊은 숲이라든지 러시아 타이가숲이라든지 안데스나 알프스 같은 곳 숲을 느끼지 않고도, 아마존이나 열대우림 같은 숲을 살피지 않고도, 얼마든지 숲을 이야기할 수 있겠지. 숲은 크고작은 크기로 나누지 않으니까. 숲은 숲 그대로 숲이니까.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은 도시에서 자라는 나무를 바라보며 나무를 말하리라. 시골에서 살아가는 사람은 시골에서 자라는 나무를 마주하며 나무를 말하리라. 별을 못 보는 도시에서는 별이 없는 밤하늘을 안고 밤이나 별을 말하겠지. 별을 흐드러지게 보는 시골에서는 별이 흐드러지는 밤하늘을 보듬으며 밤이나 별을 말하겠지. 누군가는 도시를 벗어나 비행기 타고 먼먼 나라로 가서 별을 본 다음 별을 말할 테고, 누군가는 시골에서 오래오래 살면서 늘 바라보는 별을 말할 테지.


  누구나 삶을 말한다. 누구나 스스로 꾸리는 삶을 말한다. 누구나 책을 말한다. 누구나 스스로 읽는 책을 말한다. ‘모든 삶을 말하’는 사람은 아직 거의 없다. ‘모든 책을 말하’는 사람도 아직 거의 없다. 곰곰이 돌아보면, 모든 나무와 모든 숲과 모든 별을 말하는 사람도 아직 거의 없다.


  누구나 사랑을 말하고 꿈을 말한다. 다만, 아직 모든 사랑과 모든 꿈을 아낌없이 말하거나 스스럼없이 말하거나 환하게 말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온갖 말이 수없이 떠돈다. 온갖 책이 숱하게 나온다. 그림책도 만화책도 어마어마하게 새로 나온다. 다만, 삶을 밝히는 빛줄기 같은 책은 좀처럼 구경하기 어렵다. 책을 더 읽는대서 무엇을 말할 수 있을까. (4345.11.7.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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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버지랑 그림 그리는 어린이

 


  그림종이를 펼친다. 큰아이와 아버지가 함께 그림을 그린다. 아이는 아이대로 아버지는 아버지대로 스스로 그리고픈 그림을 그린다. 아이는 아버지 그림을 바라보며 무얼 그리는지 자꾸 묻는다. 아버지는 아이한테 무얼 그리느냐고 묻지 않는다. 아버지가 묻기 앞서 아이 스스로 무얼 그린다고 다 말하니까. 아이가 요즈음에는 잘 안 그리는 콩돌이 콩순이를 그려 본다. 아이는 아버지보다 훨씬 큼지막하게 콩돌 콩순 그린다. (4345.11.7.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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