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다는 것의 의미 - 어느 재일 조선인 소년의 성장 이야기 카르페디엠 14
고사명 지음, 김욱 옮김 / 양철북 / 2007년 7월
평점 :
절판



 이 책 하나 116 ― 아픔과 슬픔이 함께 있어 좋은 책
 : 고사명, 《산다는 것의 의미》



- 책이름 : 산다는 것의 의미
- 글 : 고사명
- 옮긴이 : 김욱
- 펴낸곳 : 양철북 (2007.7.2.)
- 책값 : 8700원



 (1) 좋아하는 책을 사서 읽고 나누며 살기


 제가 더없이 사랑하는 일이 한 가지 있습니다. 저한테 좋다는 느낌이 드는 책을 찾아나서고, 두 손 두 다리 온몸이 고단하도록 책을 살핀 다음, 좋아하는 책을 쥐어들어 기쁘게 울고 웃으며 읽고, 이렇게 읽은 책을 옆지기한테 건넨다든지 느낌글을 쓰고 나서, 둘레에 건네주거나 느낌글을 쓰던 얼거리 그대로 저 스스로 살아내는 일입니다. 좋아하는 책을 찾아나서서 사고 읽고 나누면서 살아가는 일이란 저한테 둘도 없이 애틋하고 사랑스러우며 아름다운 일입니다.

 요 며칠 《매미 울음소리 그칠 무렵》이라는 일본 만화 하나를 보면서 이 같은 생각이 문득 떠올랐습니다. 이 만화책은 200쪽이 채 안 되는 작은 판이요 2009년에 나왔는데 8000원이나 합니다. 요사이 만화책에서 8000원이란 값이란, ‘애장판’이나 ‘소장판’이라는 이름을 달고 400∼500쪽은 되는 녀석한테나 붙이는 값입니다. 여느 만화책 한 권은 요사이(2009년 첫머리∼2010년 첫머리)에 4200원 합니다. 그러니까, 여느 만화책 두 권 값이요 딱히 애장판이나 소장판도 아니면서 떡하니 8000원입니다. 아무래도 대본소판 만화가 아니라 이러한 값을 붙였다 할 텐데, 그래도 참 비쌉니다. 비싸기 때문에 한참 망설였는데, 책 뒤쪽에 ‘카마쿠라의 바닷가 마을을 무대로 펼쳐지는 봄볕처럼 따스하고 청량한, 네 자매의 속 깊은 이야기들’이라는 소개글이 적혀 있어서 골랐습니다. 책값으로 8000원을 치르고 나서 ‘만화가 그저 그렇다’면 이 돈을 고스란히 버릴 뿐 아니라, 책을 읽던 시간마저 버리는 셈이지만, ‘카마쿠라 바닷가 마을’이라는 말마디와 ‘네 자매 속 깊은 이야기’에 이끌렸습니다. 우리로 치면 ‘보성 바닷가 마을’이나 ‘삼척 바닷가 마을’쯤 되는 터전에서 펼쳐지는 이야기인 셈이요, 만화책에서 너무도 뻔하게 나오는 사랑타령과 판타지싸움판타령에서 훌쩍 벗어나 있거든요.

 만화책을 펼쳐 읽으며 꽤 괜찮다고 생각하고 느끼고 받아들입니다. 웃어야 할 대목은 신나게 웃도록 그림을 그리고, 울어야 할 대목은 북받쳐 울 수 있게끔 그림을 그렸습니다. 조그마한 동네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바닷가 마을에서 수수하게 살아가는 네 사람 애틋한 이야기를 담아낸 줄거리를 곱씹으면서, ‘왜 우리 나라에는 이렇게도 넓고 갖가지로 살아가는 사람이 많아도 늘 뻔하고 너절한 이야기에 그치는 줄거리밖에 못 만날까’ 싶어 아쉽습니다. 무엇이든 서울로 모이고, 어떤 책이건 영화이건 뭣이건 서울을 다룹니다. 서울에서 서울 이야기를 쓰고 서울에서 사고팔립니다. 한 마디로 하자면, 오늘날 우리네 문화와 사회와 정치는 온통 ‘서울에서 생산하고 서울에서 소비한다’입니다. 서울에서 전철로 한 시간만 달려도 인천골목길이 있지만, 인천골목길을 놓고 ‘골목길이다!’ 하고 여기는 문화예술인이든 여느 사람이든 매우 드뭅니다. 부산사람 스스로 부산골목길을 얼마나 곰삭이고 느끼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강릉에 사는 아끼는 동생은 강릉골목길이 참 예쁘다며 꼭 보러 와야 한다고 이야기하는데, 강릉골목길을 이야기한 서울사람은 아직 못 만났습니다. 목포골목길이든 고흥골목길이든 고령골목길이든 진주골목길이든 영월골목길이든 화천골목길이든 …… 도시나 시가지를 이룬 곳에는 어김없이 있는 골목길, 논밭을 이룬 곳에는 반드시 있는 고샅길, 이들 자동차 아닌 사람들이 한복판에 서면서 빚어내는 살가운 삶마디를 알알이 느끼며 나누려는 움직임이 얼마나 되는지 궁금합니다.

 옆지기 부모님이 살고 있는 일산에 나들이를 가면 으레 여러 식구가 둘러앉아 연속극을 봅니다. 저는 이때에 비로소 연속극을 구경합니다. 여러 시간에 걸쳐 여러 가지 연속극을 죽 보노라면 늘 뻔하게 맺는 줄거리로구나 싶은 한편, 또 하나 늘 뻔하다 싶은 모습을 찾아봅니다. 바로, 어떠한 연속극이든 ‘역사 이야기’를 다루는 작품이 아니라 한다면 모조리 서울에서만 찍습니다. 역사 이야기도 으레 궁중 이야기를 다룰 때에는 서울이 무대입니다. 원주에서 펼쳐지는 연속극, 청주에서 이루어지는 연속극, 문경에서 펼쳐지는 연속극, 남원에서 이루어지는 연속극은 찾아보지 못합니다. 지역에서 지역사람이 주인공이 되어 이루어내고 전국사람이 함께 즐기는 연속극을 찍으려 하는 몸짓은 찾아볼 길이 없습니다. 우리가 이 나라 곳곳 다 다른 터전에서 다 다른 모양새와 넋으로 살아내면서 부대끼는 이야기를 한 올 두 올 알차게 여미면서 서로 반갑게 껴안으려는 움직임은 도무지 뿌리내리지 못합니다.

 그러고 보면, 제가 좋아한다는 책을 내놓는 출판사는 하나같이 서울에 있습니다. 이제는 땅값이 싼 경기도 파주로도 많이 옮겨 갔다지만(돈이 있는 출판사만 들어갔지만), 모두들 서울에서 돌고 돕니다. 서울에 있는 작가들이 서울에 있는 출판사에서 책을 내어 서울에 있는 책방에서 팔리고 서울에 있는 언론사에서 기사로 다루며 서울에 있는 헌책방으로 흘러든다고 할까요. 하기는, 인천에서 살고 있는 저부터 인천에서는 좀더 넓고 깊게 책을 만나기 힘들어 바지런히 서울마실을 해야 합니다.

 며칠 앞서 서울 용산에 자리한 헌책방 〈뿌리서점〉에서 “20세기 미술의 발견”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는 묶음책 가운데 하나인 《코코슈카》를 장만했습니다. 코코슈카라는 그림쟁이는 ‘오스카 코코슈카’입니다. 이분은 당신 그림에 ‘OK’라는 이름을 남겨 놓았습니다. 좋은 그림쟁이 좋은 그림을 보면서 좋은 느낌을 선물받아 참으로 좋다고 느끼는 가운데, ‘OK’라는 이름 때문에 한참 웃었습니다. 그저 ‘OK’라서 웃었습니다. 비아냥거리는 뜻이 아니라 재미있어서 웃었습니다. 그러다 문득, 알파벳으로는 ‘OK’이지만, 우리 말로는 ‘옥’이겠네 싶어 또 한 번 웃었습니다. 데굴데굴 구르는 나뭇잎을 보며 웃을 때가 있듯, 그냥 웃음이 터져나왔습니다. 저하고 옆지기가 한참 웃으니, 옆에서 지켜보던 아기도 함께 웃습니다.

 지난 2009년 12월 31일에 맞추어 사진책 《윤미네 집》이 나왔습니다. 이 책에 깃들인 사진을 찍은 전몽각 님은 몇 해 앞서 돌아가셨습니다. ‘윤미네 집’에서는 아버지이자 남편 제사를 1월 1일에 함께 지낸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제삿날 하루 앞서 책이 나왔고, ‘윤미네 집’에서는 새해 첫날 차례상을 올리면서 《윤미네 집》을 두 권 함께 올려놓으며 기쁨과 슬픔을 나란히 느꼈다고 합니다. 이 소식을 들으면서 홀로 곰곰이 생각에 잠겼습니다. ‘차례상이든 제사상이든 먹을거리만 올릴 수 있지 않구나. 차례상이든 제사상이든 우리 스스로 무엇을 기리고 아끼고 나누며 함께하느냐를 돌아볼 수 있구나. 다가오는 설에 우리 식구가 아무 데에도 갈 수 없다면 우리 깜냥껏 차례상을 차리고 지난해에 내가 써낸 책 몇 가지를 올려놓으며 옛어른한테 고맙다고 인사를 올려도 되겠구나.’

 제가 써낸 책을 제사상에 올릴 수 있습니다. 제가 읽고 그지없이 좋았던 책을 제사상에 올릴 수 있습니다. 제가 찍은 사진 가운데 참 마음에 드는 녀석을 제사상에 올릴 수 있습니다. 격식이나 예절이라고 하지만, 격식과 예절에 앞서 마음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격식이든 예절이든 맨 처음에는 마음을 바치거나 나누면서 사랑하려는 흐름이지 않았나 싶습니다. 두 눈으로 보여지는 모습이 아닌 가슴팍으로 느끼는 마음입니다. 겉으로 보이는 옷차림이나 생김새가 아닌 맨가슴으로 받아들이는 마음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책을 하나하나 돌아볼 때에, 이 책들은 틀림없이 ‘좋은 줄거리’이거나 ‘훌륭한 이야기’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좋은 줄거리와 훌륭한 이야기를 넘어서면서 ‘따뜻한 마음’이요 ‘넉넉한 사랑’이었으리라 봅니다. 대단하지 못한 줄거리라 할지라도 따뜻한 마음이 담겨 있으면 저한테는 좋은 책입니다. 훌륭하지 못하다고들 일컫는 이야기라 하더라도 넉넉한 사랑이 실려 있으면 저한테는 좋은 책입니다. 저는 제 두 눈이 아닌 제 마음으로 읽는 책이 좋습니다. 아니, 저는 열여섯 살 푸름이였을 때나 스물여섯 살 젊은이였을 때나 서른여섯 살 애 아빠일 때나 한결같이 제 마음을 톡톡 두드리면서 살포시 어루만지다가는 와락 껴안는 책이 좋습니다. 머리에 담는 지식이 가득한 책은 그저 자료로 책꽂이에 꽂아 놓습니다. 마음으로 나누는 사랑과 믿음이 어우러진 책이라야 비로소 여러 해에 걸쳐 제 책상맡에 올려놓고 수도 없이 되풀이하며 읽고 삭입니다. 새롭게 읽고 삭이기를 거듭합니다.


 (2) 《산다는 것의 의미》라는 책이란


 《산다는 것의 의미》는 오래된 책입니다. 우리 말로 옮겨진 지는 세 해이지만, 일본에서는 퍽 예전에 나왔습니다. 한겨레이지만 한겨레가 살아가는 남녘에서든 북녘에서든 뿌리내리지 못하고 일본에서 뿌리내린 한 사람이 한국말이 아닌 일본말로 적바림한 책입니다. 한국사람도 조선사람도 아니요 일본사람 또한 아닌 떠돌이 같은 넋이 일본땅에서 부딪히고 아파하고 슬퍼하면서 괴로워 뒹굴던 이야기를 아주 차분하게 펼쳐내는 책입니다.

 아무래도 모든 아픔과 슬픔을 딛고 섰기 때문이 아니라, 모든 아픔과 슬픔을 겪어야 했으며 이 책을 써내는 그때에도 아픔과 슬픔이 늘 길동무처럼 옆에 나란히 있기 때문일 테지요. 아픔과 슬픔에 짓눌린 사람이 아니니까, 아픔과 슬픔에 얽매인 사람이 아니니까, 아픔과 슬픔이 우리 삶에서 좋음과 기쁨처럼 늘 곁에 있는 벗임을 깨달았다면 아주 차분하게 나 스스로 걸어온 길을 적바림할 수 있다고 느낍니다.

 삶이란 눈물과 웃음이 함께 있는 발자국입니다. 삶이란 괴로움과 싱그러움이 나란히 있는 걸음걸이입니다. 삶이란 고단함과 개운함이 엇갈리는 길목입니다. 삶이란 낮과 밤이 갈마드는 하루하루입니다. 내내 낮이지 않고 노상 밤이지 않습니다. 줄곧 어둠이지 않고 내처 밝음이지 않습니다.

 내내 낮이거나 내처 밝음이라면 눈이 너무 고달픕니다. 우리는 잠을 자야 합니다. 잠을 자지 않고 어찌 삽니까.

 사람은 누구나 밥을 먹고 똥을 눕니다. 사람은 누구나 물을 마시고 오줌을 눕니다. 사람 아닌 목숨도 매한가지입니다. 동물뿐 아니라 식물도 먹은 만큼 내뿜거나 내보내야 합니다. 돌고 돌리도록 해야 합니다. 주고받기입니다. 주기만이 아니요 받기만이 아닙니다. 주기만 하거나 받기만 하면 탈이 납니다. 먹기만 하거나 누기만 할 때에도 말썽이 생깁니다. 낮이 있는 만큼 밤이 있어야 하고, 바지런히 일하는 만큼 신나게 놀아야 합니다. 힘껏 하루를 보냈다면 한갓지게 하루를 쉬어야 합니다.

 이리하여 1932년에 일본에서 태어나 재일조선인으로 살아간 ‘고사명(김천삼)’ 님은 《산다는 것의 의미》라는 책 하나로 ‘도무지 삶이란 뭐지?’ 하는 길찾기를 합니다. 마흔세 살이 당신 외아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아픔이 어떠한 아픔인가를 돌아보고, 이 세상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 가냘픈 목숨은 당신 외아들뿐이 아님을 헤아리며, 아이들과 어른들 누구나 내 삶이 어떠한 삶인가를 짚지 않는다면 삶과 죽음이란 다르지 않음을 곱씹습니다. 살아 있어도 죽은 사람이 많고, 죽었으나 살아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버젓이 살아 있다지만 죽었다느니만 못하고, 아련히 죽었다지만 언제까지나 마음속에서 살아남아 빛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 땅 아이들한테, 아니 이 땅이 아닌 일본땅에서 일본사람으로 살아가는 아이들과 일본땅에서 일본사람이 될 수 없는 채 살아가는 재일조선인과, 한국땅에서 이웃나라 한겨레와 일본 아이들 모두 얼마나 아픔과 슬픔을 짊어지고 살아가고 있는지를 굽어살피지 못하는 모든 아이들과 어른들한테 바치는 책이 《산다는 것의 의미》가 아니랴 싶습니다. 삶과 죽음은 하나요, 삶은 삶대로 아름답고 죽음은 죽음대로 아름답습니다. 살아 있을 때에는 살아 있는 모든 기쁨과 웃음을 슬픔과 눈물과 함께 누려야 합니다. 죽어 묻힐 때에는 흙으로 기꺼이 돌아가면서 내 뒷사람과 뭇 목숨붙이한테 고맙다는 인사말을 남겨야 합니다.


 (3) 수없이 되읽는 말마디


 2007년에 나온 《산다는 것의 의미》를 2008년에 읽었는데, 2009년 한 해 내내 이 책을 끌어안고 지냈습니다. 이제 2010년을 맞이하며 제 마음 한켠에서 살포시 내려놓고 우리 집 책시렁 한쪽에 얌전히 옮겨 놓고자 합니다. 제 어설프고 어줍잖은 마음밭을 일구어 준 고마운 책 하나한테 즐거웠다는 인사말을 남기며, 새로운 책 하나로 이 마음밭을 다시금 일구어 보고자 합니다. 책상맡에서 책시렁으로 옮겨 놓기 앞서, 한 번 더 책장을 뒤적이면서, 그동안 밑줄을 그은 대목을 또박또박 느린 글씨로 적바림해 봅니다. (4343.1.16.흙.ㅎㄲㅅㄱ)


[7, 79∼80, 115, 188쪽] 생명이 얼마나 고귀한지는 아기의 울음소리를 한 번이라도 들어 본 사람이라면 말하지 않아도 알 것입니다 … 비가 오는 날은 나막신을 두 손에 들고 맨발로 뛰었습니다. 나는 비오는 날이 좋았습니다. 다른 아이들이 커다란 우산을 쓰고 가방이나 운동화가 비에 젖을까 봐 쩔쩔맬 때 나는 아무 거리낌 없이 빗속을 뛰어다녔습니다 … 이 세상을 살아가는 힘은 좋은 환경에서 태어났다고 해서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고통 속에서 스스로를 건져내는 수밖에 없습니다 … 인간의 상냥함이란 참된 조선인, 참된 일본인을 뛰어넘는 것입니다. 인종과 상관없이 모두가 인정하는 참된 인간이 되려고 노력했을 때 나보다 힘겨운 누군가를 도울 수 있는 힘이 생기는 법입니다.

[18∼19, 46쪽] 어머니는 아무것도 남기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인데, 어머니는 처음부터 남길 만한 유품이 없었습니다. 아버지와 결혼할 때도 결혼사진을 찍을 돈이 없었다고 합니다 … 어머니는 가난에 허덕이다 돌아가셨습니다. 아버지에겐 어머니의 죽음이 당신 책임처럼 느껴졌을 겁니다 … 아버지와 한바탕 싸움을 끝내면 새엄마는 너무나도 슬픈 눈으로 우리 형제를 바라봤습니다. 그러다가도 금세 독기가 오른 표정으로 아버지에게 달려들었습니다.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슬픈 눈빛은 고통스런 생활을 온힘을 다해 버텨 내려는 데서 나온 것이었습니다.

[20, 24∼25, 200쪽] 우리는 왜 우리의 이름이 떳떳하게 불리는 조선에서 태어나지 못했던 것일까요? 아버지는 언제 일본으로 건너오게 된 것일까요? … 전쟁은 조선이라는 나라를 무척이나 괴롭혔습니다. 수많은 조선인들이 슬피 울었습니다. 같은 일을 당했다면 분명 일본인도 울지 않고서는 견뎌 내지 못했겠지요 … 특히 어떤 선생님은 내가 아직도 일본식 이름을 쓰지 않고 조선 이름을 쓰고 있다는 데 노골적으로 적의를 드러내기도 했습니다. 온 나라가 전쟁에 뛰어든 판국에 정부가 시키는 대로 일본 이름으로 바꾸지 않으니, 눈에 거슬렸을 것입니다.

[26∼27, 74쪽] 일본어에는 일본어만이 지닌 향기가 있습니다. 일본인은 자신들의 언어가 부드럽고 단아하다고 말합니다. 조선인에게는 조선어가 있습니다. 일본인이 일본어를 사랑하듯 조선인은 조선어를 사랑합니다. 조선어에는 조선인만이 느낄 수 있는 향기가 있습니다 … 일본 학교에 다니는 일본인이 일본어를 사용할 수 없다면 일본인들은 어떻게 행동했을까요? … 가장 큰 문제는 우리가 아버지에게서 조선어를 배우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아버지는 조선어로 얘기했고, 우리는 일본어로만 얘기했습니다. 부자 간에 마음을 주고받는 언어가 서로 다르다니 기막힌 일입니다.

[49, 66, 127쪽] 우리 집은 천장에도 신문지가 발라져 있었습니다. 동생이 죽기 전까지만 해도 천장은 우리들에게 무척 유용한 놀잇감이었습니다. 나는 천장에 붙여 놓은 신문을 통해 처음 글씨를 배웠습니다 … 입학식 날입니다. 우선 내 또래의 아이들이 그렇게 많다는 데 놀랐습니다. 그리고 아이들 대부분이 새 교복을 입고 있다는 데 놀랐습니다. 마지막으로 나 말고는 전부 어머니가 있다는 데 놀랐습니다 … 시치린마치의 아이들이 바다를 사랑한 것은 맨몸으로 뛰어들어도 거리낌 없이 우리를 받아 주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수영은 옷을 입지 않아도 되기에 옷이 더럽다고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바닷물이 온몸을 부드럽게 감싸 주기 때문에 드넓은 바다에 몸을 담그고 있으면 나가야의 숨막히는 생활도 멀리 사라집니다.

[61, 64, 75쪽] 그런데 세상에는 우리보다 더 가난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우리 집엔 살림이라고 부를 만한 것이 거의 없어서 도둑 걱정은 해 본 적이 없습니다. 당연히 자물쇠 같은 것도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우리 집에 도둑이 들었습니다 … 한편으로는 도둑이 불쌍하기도 했습니다. 나가야의 빈집을 털 정도였으니 찢어지게 가난했을 것입니다. 부리나케 바지를 벗고 똥을 쌀 때는 심장이 터질 것처럼 두근거렸을 것입니다. 똥을 싸고 있을 때 사람이 들어오면 정말 큰일이니까요 … 모두가 가난했으니 가난이라는 말조차 필요 없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소학교에 입학해 나처럼 가난하지 않은 일본 아이들을 알게 되면서, 내가 가난하다는 것과 내가 아는 조선인 대부분이 가난하다는 것을 알아차렸습니다. 그 깨달음이 내 삶에 그림자를 드리우기 시작했습니다.

[87, 174∼175쪽] 학교에서 멋대로 날뛰면 안 된다는 건 누구보다 내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나를 이렇게 만든 건 바로 학교였습니다. 나는 아버지에게 그 말을 하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학교에 대해 생각해 봤습니다. 아버지 말대로 학교는 공부하는 곳입니다. 하지만 내게 학교는 공부하는 곳이 아니었습니다. 학교는 나를 가난하다고 놀리고, 조선인이라고 놀리고, 어머니가 없다고 놀리는 곳입니다. 학교는 나를 괴롭히는 곳입니다. 나를 괴롭히는 곳을 좋아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 사카이 선생님은 모두를 평등하게 대했습니다. 선생님의 마음속엔 조선인과 일본인의 차이가 없었던 것입니다. 선생님은 내가 조선인이라고 경멸하지도 않았고, 가난하다고 해서 우습게 보지도 않았습니다. 선생님이 내게 화를 낸 것은 내가 조선인이라는 사실을 부끄러워했기 때문이며, 가난에 짓눌려 눈치나 봤기 때문입니다 … 4학년 때 담임은 나라는 학생보다 학교 규칙이 먼저였습니다. 내가 왜 손톱을 자르지 않고 지저분하게 길렀는지를 궁금해하기보다는 학교 규칙을 어겼으니 혼을 내야겠다는 식이었습니다.

[145, 149쪽] 폭력 속에 갇힌 인간은 폭력에 눈이 멀어 폭력이 명령하는 대로 마구 폭력을 휘두르는 수밖에 없습니다. 한마디로 폭력의 노예가 되는 것입니다 … 나는 모두에게 조롱받았던 말의 폭력에 대해 팔의 힘을 행사하는 폭력으로 맞서 싸웠고, 그 순간 나 자신이 폭력 속에 갇히는 신세가 되어 버린 셈입니다 … 다른 사람의 처지를 함부로 조롱하는 인간은 상대방을 비웃기 전에 자기 자신의 인간성을 비웃는 것밖에 되지 않습니다 … 우리는 매일 아침 학교에 오자마자 세계지도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언제쯤 우리가 만든 일장기 모형을 미국의 수도인 워싱턴에 붙일 수 있게 될지를 이야기했습니다. 만약 우리가 만든 일장기를 워싱턴이라고 쓴 곳에 붙일 경우, 실제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이야기하지 않았습니다. 워싱턴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고, 얼마나 많은 집이 불타고, 얼마나 많은 아이들이 어머니를 잃게 될 것인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생각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234쪽] “이제 겨우 해방됐으면서 뽐낼 틈이 어디 있어?” 그리고 아버지는 우리에게 말했습니다. “일본사람은 조선인을 괴롭혔다. 조선인이 어려울 때도 도와주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은 세상이 뒤집혀 일본사람들이 어려워졌다. 그럼 조선인은 어떻게 해야겠느냐? 일본사람이 그랬던 것처럼 짓밟고 괴롭혀야겠느냐? 남에게 원한을 사면 나중에 그 원한이 나한테 돌아오는 법이다. 어려운 처지에 있을 때는 서로 돕는 게 사람의 도리다. 사람의 도리를 짓밟으면 해방도 머잖아 끝이다. 일본사람이 우리에게 한 짓을 용서해 줘야 그게 진짜 해방이다. 앞으로 좀 살 만해졌다고 일본사람을 괴롭히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또다시 조선을 망하게 할 게 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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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자와 글쓰기


 내가 대단히 좋아하는 만화책 가운데 《도자기》가 있다. 이 만화를 그린 이는 ‘호연’이라는 이름을 쓰고 있는데, 지난 2009년 봄에 몸이 무척 아팠는가 보다(아마 예전부터 몸이 나빴겠지). 호연 님이 몸이며 살림이며 너무 어려운 나머지 당신 블로그에서 어찌어찌 도움을 바라는 글을 남겼는데, 이 이야기를 두 군데 신문에서 기사로 내보냈는가 보다. 《미녀는 못 말려》 만화책을 보던 옆지기가 문득 이런 이야기를 하기에 ‘그런 일이 있었나?’ 생각하며 인터넷에서 뒤적뒤적해 보니 〈한겨레〉 기사가 뜬다. 〈세계일보〉에도 같은 기사가 이틀 앞서 나왔다는 댓글은 읽었으나 〈세계일보〉 기사까지는 찾지 못했다. 줄거리는 〈한겨레〉하고 크게 다르지 않을 테지. 그런데, 이 기사를 놓고 여러 누리사랑방(블로그)이나 누리모임(카페)에서 뒷말이 많다. 나로서는 오늘 처음 알았지만, 호연 님 만화를 사랑하고 아끼는 분들이 남긴 뒷말인데, 호연 님은 당신 몸이 아파서 도움을 바라는 글을 올렸던 이야기를 자꾸 퍼뜨리지 말아 달라고 했단다. 그런데 이런 이야기를 덥석 기사로 띄운 셈이다. 이런 이야기를 띄운 〈세계일보〉도 그렇지만, 이렇게 기사가 된 이야기를 새삼 다시 기사로 띄운 〈한겨레〉는 무얼까? 이렇게나마 호연이라는 만화쟁이를 돕고자 했기 때문일까? 더없이 슬프고 안타깝다. 그리고, 이런 〈한겨레〉 기자들이라 한다면, 〈한겨레〉가 그토록 손가락질하는 〈조선일보〉 매무새하고 무엇이 다를까 궁금하다. 나는 〈한겨레〉 ㄱ기자가 참 불쌍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앞으로 〈한겨레〉 ㄱ기자가 나를 취재하겠다며 연락을 해 온다면 “호연이라는 만화쟁이를 아십니까?” 하고 넌지시 여쭌 다음에, “호연이라는 만화쟁이한테 미안하다고 지면을 빌어 공개사과를 한 적 있습니까?” 하고 조용히 여쭈고, “호연이라는 만화쟁이한테 미안하다고 생각하신다면 부디 저를 취재하지 말아 주십시오.” 하고 마무리말을 한 다음 내가 먼저 전화를 뚝 끊으려 한다. (4343.1.15.쇠.ㅎㄲㅅㄱ) 



http://www.hani.co.kr/arti/society/life/347436.html#opinion1

http://cafe.naver.com/swallowedbird.cafe?iframe_url=/ArticleRead.nhn%3Farticleid=43159
 


 

2009년 4월에 있던 일을 이제서야 

알아서, 뒤늦게 가슴을 치면서 

뒷통수 치는 글을 끄적입니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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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빛
강운구 지음 / 문학동네 / 2004년 1월
평점 :
품절







 사진쟁이 한길을 걸으며 하고 싶던 말
 [내 삶으로 삭인 사진책 11] 강운구, 《시간의 빛》



- 책이름 : 시간의 빛
- 글ㆍ사진 : 강운구
- 펴낸곳 : 문학동네 (2004.1.5.)
- 책값 : 18000원


 (1) 삶에 따라 하는 말, 삶에 따라 찍는 사진


 내가 좋다고 느끼는 사람하고 함께 있는 동안에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을 바라보는 눈길이 따뜻하고 깊습니다. 그러면서 내 둘레 터전과 이웃을 바라보는 눈길 또한 따뜻하며 깊습니다.

 내가 달갑지 않다고 느끼는 사람하고 어울리는 동안에는 내가 달갑지 않다고 느끼는 사람과 마주하는 눈길이 차갑고 얕습니다. 그러면서 내 언저리 삶자리와 동무를 마주하는 눈길 또한 차갑고 얕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나 자연이나 땅이나 목숨붙이하고 있다면, 내가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사진을 찍거나 내가 좋아하는 느낌을 고이 담습니다. 남들이 어떻게 생각하거나 말거나 나 좋은 길을 걷습니다. 창작이란, 글이나 그림이나 사진이나 나 스스로 나한테 가장 알맞고 걸맞고 들어맞는 길을 걷는 놀이입니다. 느끼는 대로 바라보고, 바라보는 대로 살며, 살아가는 대로 펼쳐 보입니다. 높음이나 낮음이 따로 없는 창작이요, 훌륭함이나 못남 또한 따로 나눌 수 없는 창작입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창작이 아닌 생산을 하곤 합니다. 생산이란 내가 먹고살아야 한다는 굴레를 스스로 뒤집어쓰면서 공장을 돌리는 일입니다. 이른바 ‘프로’로서 ‘취업’을 하는 셈이라 하겠습니다. 주문하는 사람 입맛에 맞추어 척척 찍어내는 기계가 된다고 하겠습니다. 내 결에 따라서 내 넋을 담는 창작이 아닌, 다른 사람 눈썰미에 따라서 다른 사람 쓸모에 맞추는 공산품을 일구면서 내 주머니를 채우고 내 이름값을 높이며 내 힘을 키운다고 할까요.

 공산품을 생산하는 프로가 된다 하더라도, 즐겁고 신나게 작품을 일굴 수 없지는 않습니다. 마음가짐을 어찌 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니까요. 공산품 뽑아내는 직업인으로 살아간다 할지라도, 아름답고 싱그럽게 작품을 가꿀 수 없지는 않습니다. 몸가짐을 어떻게 추스르느냐에 따라 바뀌니까요. 그런데, 이 나라에서 프로 작가라는 이름을 내거는 분들 가운데 즐거움과 아름다움이라는 길을 걷는 분을 만나기는 몹시 어렵습니다. 스스로 이름값을 내려놓는 분이라든지, 스스로 주머니를 털털 털어놓는 분이라든지, 스스로 힘을 버리는 분이라든지, 그러니까 낮은자리로 스스럼없이 내려서면서 고개를 숙이는 어른을 찾아보기가 참 힘듭니다.


.. 잠깐 눈이라도 쉬어 갈 수 있는 편한 풍경들을 보여주고 싶다. 그 풍경을 넘어서 뭔가를 느끼게 할 수 있는 것도 어쩌다 끼어 있다면 기쁘겠다 ..  (8쪽)


 저는 날마다 ‘우리 말 이야기’를 쓰면서 언제나 한결같은 이야기를 넌지시 담는다며 발버둥을 칩니다. 말은 삶이요 삶은 말이라는 이야기를 늘 글 한켠에 살포시 적바림하려고 몸부림을 칩니다. 말과 삶과 넋은 늘 한동아리가 되고 있으며, 우리 스스로 말과 삶과 넋을 다 함께 가누지 않는다면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뿐 아니라, 내 하루하루가 기쁠 수 없다는 이야기를 노상 글 한구석에 조용히 끄적거리려고 용을 씁니다. 저로서는 말과 넋과 삶이지만, 이를 조금 달리하면 글쓰기와 넋과 삶이 되고, 사진찍기와 넋과 삶이 되기도 합니다.

 그래, 사진쟁이한테는 사진쟁이 스스로 어떤 생각을 하면서 어떤 삶을 꾸리는가에 따라 그이 사진이 달라집니다. 그림쟁이한테는 그림쟁이 스스로 어떤 마음을 품으면서 어떤 삶을 보내는가에 따라 그이 그림이 달라집니다. 만화쟁이도 그렇습니다. 초중고등학교와 대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사람도 그렇습니다. 법을 다루든 공무원으로 있든 고기잡이이든 농사꾼이든 그렇습니다. 누구나 제가 발딛고 있는 터전에서 살아가는 대로 생각을 가꾸고 말을 합니다. 발딛고 있는 터전에 따라 일하는 매무새가 다릅니다. 발딛고 있는 터전에 따라 창작이든 생산이든 하면서 제 깜냥껏 작품을 내놓습니다. 이리하여, 더 높거나 낮은 작품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오로지, 가슴을 움직일 만한 작품이냐 아니냐로 가를 수 있습니다. 눈물을 샘솟게 하는 작품이냐, 웃음이 피어나도록 하는 작품이냐, 이렇게 두 가지로만 작품을 바라봅니다.


.. 사람들은 불 밝힌 빌딩에서 밤을 새우며 야근하고, 재벌 총수는 밤새 불이 꺼지지 않는 고층빌딩을 자랑한다 … 기름값이 치솟자 연탄으로 돌아간 집들이 다시 생겼다. 그래서 연탄재가 여기저기서 다시 보이기 시작했다. 들판이나 골목길에 쌓인 연탄재 무더기들은 꼭 설치미술 같아 보인다 ..  (229, 238쪽)


 어제와 그제 서울마실을 하면서 사진기를 목걸이처럼 걸고 다녔습니다. 추운 날씨라서 두 손은 겉옷 주머니에 쑤셔넣고, 쑤셔넣은 손으로 사진기를 붙잡고 다닙니다. 동네 구멍가게를 찾아갈 때에도 사진기는 목걸이처럼 걸고 다닙니다. 따로 사진찍을 일이 없어도 제 한쪽 손은 사진기를 움켜쥡니다. 여느 날씨에는 손이 시리지 않으니, 서울길을 거닐 때에 책을 읽습니다. 서울에서 돌아다니는 동안에는, 저로서는 눈을 둘 만한 데가 없고 바라볼 만한 곳이 없다고 느끼며 책을 읽습니다. 애써 목걸이처럼 사진기를 달고 다니면서 사진 한 장 찍을 일이 없습니다. 그저, 헌책방에 찾아가 책시렁을 둘러볼 때에만 사진을 찍습니다. 한 장 두 장 아끼면서 찍습니다. 필름사진을 찍을 때에도 한 장씩 아끼면서 찍습니다. 그렇다고 한 자리에 오래도록 서서 빛이며 틀이며 느낌이며 다 맞추면서 찍지 않습니다. 내 몸뚱이가 내 사진감인 헌책방에서 ‘헌책방과 내 몸마음이 하나되도록 살아내’면서 시나브로 사진 한 장을 찍습니다. 숨을 멎고 1/15초나 1/20초로 찍습니다. 예전에는 1/4초나 1/8초로도 곧잘 찍었는데, 이제는 손떨림을 줄이고자 1/15초로 늘렸습니다. 때로는 1/30초로도 찍지만, 제 헌책방 사진은 거의 모두 1/15초나 1/20초입니다. 저로서는 마땅하게도 세발이를 받치지 않고 이렇게 찍습니다.

 골목마실을 할 때에도 으레 1/20초나 1/30초에 머물고 셔터빠르기를 더 넘기지 않습니다. 요사이에는 1/30초나 1/40초쯤으로 맞추곤 합니다. 헌책방마실은 책을 찾아 읽으면서 손이 쉬지만, 골목마실은 여러 시간을 쉴새없이 사진기를 쥔 채로 돌아다니다 보니 손이 쉴 겨를이 없어 손떨림이 꼭 나타나더군요. 1/20초로 찍을 때에는 아깝게 버려야 하는 사진이 반드시 나옵니다.

 골목마실 사진은 모두 디지털사진으로만 찍습니다. 골목마실 사진을 필름사진으로 하고 싶은 꿈이 있지만, 이러다가는 필름값을 짐질 수 없어 두 손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골목마실 사진을 필름으로 담을 때에는 여느 35밀리 사진이 아닌 105밀리 중형 가운데 파노라마사진기로 담고 싶습니다. 파노라마 중형사진기 필름사진이 아니라면 골목마실 사진을 따로 필름으로 할 생각이 없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디지털사진으로 거의 날마다 200장쯤 골목 사진을 빚어 놓으면서 저로서는 ‘사진을 무척 적게 찍는다’고 느낍니다. 숫자로 치면 200장이 많다고 여길 수 있지만, 저는 이 동네 저 동네 이 집 저 집 골골샅샅 누비면서 담으니까 조금도 많은 숫자가 아닙니다. 한 집 한 가지 모습에 꼭 한 장만 딱 한 번 찍습니다. 손떨림을 느끼면 다시 찍지만, 이런 일은 드뭅니다. 필름사진을 할 때에만 ‘한 장 찍으면 돈이 얼마 떨어진다’는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디지털사진을 할 때에도 ‘군더더기로 더 찍으면 군더더기 사진을 파일로 만지느라 내 아까운 품을 버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품값도 돈입니다. 시간도 돈입니다. 그러나, 돈을 잃는다는 생각 때문에 아껴 찍지 않습니다. 시간을 버린다는 느낌 때문에 잘 가누면서 찍으려 하지 않습니다. 돈과 시간보다 훨씬 마음을 쓸 대목이 있다고 여깁니다. 돈과 시간을 아무것이 아니라 할 수 없습니다만, 돈과 시간을 넘어서는 다른 무엇이 있습니다. 바로 나한테 가장 반갑고 즐겁고 훌륭하고 거룩한 사랑이느냐입니다. 내 사랑을 아름답게 펼치는 사진이냐 아니냐를 헤아려야 한다고 봅니다. 내 사랑을 따뜻하게 담아내는 사진이 되느냐 아니냐를 따져야 한다고 느낍니다. 내 사랑을 넉넉하게 펼칠 줄 아는 사진으로 자리매기느냐 아니냐를 곱씹을 노릇이라고 생각합니다.

 제 입에 붙은 말마따나 말은 삶이고 삶은 말이든, 사진은 삶이고 삶은 사진이라고 생각하거든요.


 (2) 사진쟁이 한길 걷는 강운구 님이 하고픈 말이란


 강운구 님이 사진과 글로 엮어 놓은 《시간의 빛》이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사진밭에서 강운구 님 이름은 무척 드높습니다. 강운구 님 스스로 당신 이름을 드높다고 여기실는지 안 여기실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어찌 되었든 강운구 님은 이름이 드높습니다. 다만, 제아무리 이름 드높은 강운구 님이라 하지만, 이 높은 이름값에 견주어 당신 사진책은 얼마 안 팔립니다. 다른 사진쟁이 사진책과 댄다면 무척 많이 팔리는 셈이지만, 이 나라에서 ‘사진한다’고 하는 숱한 사람들 숫자를 어림해 본다면 너무 안 팔리는 노릇입니다.

 하기는, 이 나라에서 사진책은 참 낮은대접입니다. 사진기 팔리는 모양새를 본다면, 사진책 팔리는 모양새는 참 까마득합니다. 사진기를 장만한다고 사진책을 꼭 사서 보아야 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사진읽기 없이 사진찍기를 할 수 있을까 궁금합니다. 글읽기 없이 글쓰기를 할 수 있을까 모르겠습니다. 그림읽기 없이 그림그리기를 할 수 있는지 갸우뚱합니다. 노래듣기 없이 노래부르기를 할 수 있을는지 알 길이 없습니다.

 춤 잘 추는 사람 춤을 구경해야 내 춤을 잘 출 수 있지는 않습니다. 노래 잘 부르는 사람 노래를 들어야 내 노래를 잘 부를 수 있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아름다움과 사랑이라는 테두리에서 헤아린다면, 나 스스로 내 춤과 노래가 아름답거나 사랑스럽다고 느낄 수 있는 가슴팍이라 할 때에는, 내 둘레에서 춤과 노래를 아름답거나 사랑스럽게 펼치는 사람들을 만나고 마주하고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고 느낍니다. 나 스스로 글 하나 아름다이 여미려고 한다면, 내 둘레에서 더없이 아름답게 글을 여민 사람들 열매를 찬찬히 살피면서 글읽기를 할 수 있어야 한다고 느낍니다.

 아름다운 사진을 찾아나서려는 몸짓이 없이 나 스스로 아름답다 느낄 사진찍기를 선보일 수 있을까요? 사랑스러운 사진을 알아보려는 매무새 없이 나 스스로 사랑스럽다 느낄 사진찍기를 즐길 수 있을까요?


.. 이 세상에서, 인류사에서, 이 땅에서만큼 빠르게 온갖 것을 뒤죽박죽으로 바꾼, 아니 버리고 새로 시작한 경우가 있었을까? 그러고도 걸핏하면 반만년 역사나 선조들의 지혜를 들먹이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어제의 길은 오늘은 길이 아니며, 어제의 풍경은 오늘 이미 없다. 눈에 보이는 것만으로 말하자면, 온 나라가 고속도로와 고층아파트가 되려고 한다. 온 나라가 공사판이다 … 한때는 서울 광화문 지하도 입구에서 풍란이나 춘란을 가마니로 쌓아 놓고 헐값으로 팔기도 했다. 다 저 남쪽의 무인도 같은 곳 절벽에 핀 것들을 쓸어담아다가 여러 사람이 골고루 나눠 가진 뒤에 골고루 죽이게 된 것이다. 이 세상은 험해서 자태 귀하고 향내 좋은 것은 결코 그냥 두지 않는다 … 사람들은 흔히 있는 것을 있는 그대로, 또는 아름다운 것을 아름다운 그 자체로서 바라보기보다는 어떤 평판과 그에 깃든 사연을 따르기를 좋아한다. 순박한 메밀밭을, 메밀밭 그 자체의 아름다움으로서보다는 한 소설의 무대로서 바라보기를 더 좋아한다 ..  (9, 27, 129쪽)


 강운구 님이 글과 사진으로 엮은 《시간의 빛》을 곰곰이 삭여 읽으면서, 빛느낌 좋은 사진을 듬뿍 느끼는 한편, 어쩐지 이 책에서는 사진읽기를 하기 어렵다고 느낍니다. 더없이 맑고 고운 사진과 글이라서 더없이 맑고 고운 목소리를 들을 수 있지만, 군더더기가 자꾸자꾸 보입니다. 강운구 님은 ‘군더더기 남기지 않으며 사진찍기를 한다’는 소리를 듣는데, 왜 당신이 쓰는 글에서는 ‘군더더기 가득한 모습이 보이는’지 모르겠습니다. 사진찍기를 잘하는 사람이 글쓰기까지 잘할 수 있겠느냐 싶지만, 잘하고 못하고 하는 갈래나눔이 아닙니다. 사진 하나에 아름다움과 사랑을 담는 님이라 한다면 글 한 줄에도 아름다움과 사랑을 담아야 할 텐데, 빈틈과 티끌은 하나 없는 사진이요 글이라 하지만, 보기좋음을 감싸면서 가슴찡함으로 울리는 이야기는 나타나지 않는구나 싶습니다.

 그렇다고 강운구 님 글이 어수룩하거나 어리석다는 소리는 아닙니다. 강운구 님 글에는 우리 삶터를 읽어내어 당신 깜냥껏 삭여내되 보드랍고 너그러이 감싸려는 손길이 어려 있습니다. 그렇지만, 메아리처럼 돌아오는 목소리가 아닙니다. 산울림처럼 외곬로 내보내기만 하고는 돌아오지 못하는 목소리로 머뭅니다.


.. 여수까지 가면서 여기저기 기웃거려 보니 기후가 수상해서 나라 안의 꽃피는 질서가 없어졌다. 서울 시내야 공해로 감싸인 곳이니 진달래가 일찍 피는 것이 당연하지만, 위도에 상관없이 여러 지역에서 한꺼번에 피어 분홍빛으로 ‘봄봄봄’ 하고 있었다 … 천 년 전 융성했던 폐허에 아직 당당하게 곧추서 있는 탑 그늘의 남루한 폐허에도 환한 봄은 왔다. 16만 원어치 더덕 모종을 심는다고 노인이 말했다. “그러면 그걸 언제 수확하나요?” “삼 년 뒤에나요.” “그땐 그게 얼마어치나 됩니까?” “몰라요. 그걸 지금 알 택이 있겠십니껴.” … 보리가 건강에 좋다면서도 먹는 사람이 없으니 보리값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리하여 일손이 달리는 판에 노동력의 대가를 주지 못하는 농사는 포기할 길 말고는 없게 되었다 … 조선 소도 서양 소들처럼 사육되는 목장이 많이 생겼다. 한우 고기를 생산하는 소와 그 주인은 교감 따위가 필요없다. 오로지 팔기 위한 것이므로 많이 먹여 빨리 살만 찌게 하면 된다 ..  (36, 49, 74, 137쪽)


 바라보는 목소리를 넘어 살아내는 이야기로 글과 사진을 아로새길 수 있기를 바라는 일은 아직 어려울 수 있습니다. 남 이야기를 하기 앞서 저부터 스스로 옳고 알차게 해내지 못하면서 바라기만 할 수 없습니다. 이 땅을 살아내자고, 이 사람을 부둥켜안자고 하는 땀방울이란 ‘펜굴림’으로 이루지 못합니다. 그리고 ‘사진기쥠’으로도 이루지 못합니다. 펜을 붙잡은 손을 넘어서는, 아니 펜을 붙잡는 손을 아우르는 발걸음과 몸부림이 있어야 합니다. 사진기를 쥔 손을 넘어서는, 아니 사진기를 쥔 손을 어우르는 손품과 몸놀림이 있어야 합니다. 지식을 담는 손에서 지식을 다루는 손이 되었다면, 지식을 녹여내어 지식을 살아내는 몸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 자연을 바라보거나 쉬러 가는 게 아니라 오로지 건강을 얻기나 하려는 그런 거지들은 꼭 달리기 경주처럼 산을 오르내린다. 산뜻하게 깨어나는 자연, 길섶에 핀 샛노란 제비꽃 양지꽃 들을 무참히 밟으며 씩씩하게 오르내린다 … ‘풍경’이나 좋으라고 다랑이논에서 소로 써레질을 계속할 리는 없다. 우리는 지킨 전통보다 버린 것이 더 많다. 소와 맺어 온 오래된 인연도 끊기게 되었다. 농가 울타리 안에서 소와 개와 닭은 늘 한식구로 살아왔다. 닭은 늘 경계하며 겉돌았고, 개는 아이들과 친했으며, 소는 어른들의 사랑을 받았다 … 비록 감상적인 영향은 무시할 수 없다 하더라도 인간은 자연이 제시하는 조건을 웬만큼은 무시하며 살아간다. 비가 와도 출근해야 하며, 눈이 와도 일은 해야 한다. 계절 때문에 결코 성장을 멈추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인간이 식물보다 행복한 것은 아니다 ..  (54, 66, 97쪽)


 좋은 생각은 좋은 삶이 되면서 좋은 사진으로 다시 태어납니다. 사람을 찍건 자연을 찍건 들판을 찍건 노을을 찍건 빛줄기를 찍건 구름을 찍건 나무를 찍건 연날리기를 찍건 꽃송이를 찍건 연탄재를 찍건, 이 사진 하나하나에는 바라보기 하나에서 그치지 않는 이야기를 함께 스며 놓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여느 사진쟁이가 아닌 ‘작가주의’ 사진쟁이 강운구 님이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새내기 사진쟁이가 아닌 ‘사진길을 어느새 마흔 해 즈음 걷고 있는’ 사진쟁이 강운구 님이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풋내기 사진쟁이가 아닌 ‘우리 고유한 풍경을 가장 한국 내음이 묻어나는 모습으로 찍는다는’ 사진쟁이 강운구 님이기 때문입니다.

 한국 내음이란 무엇일까요. 한국 내음이란 어떤 느낌일까요. 우리한테 고유한 넋이나 얼이란 무엇일까요. 우리들은 우리한테 고유한 넋과 얼을 어느 만큼 간수하고 있을까요. 강운구 님 스스로 살아내는 한국 내음이란 어떤 모습이나 빛깔일까요. 강운구 님 스스로 즐기면서 나누는 고유한 넋과 얼이란 무엇일까요.


.. 쓰레기가 얼마나 소중한지, 높고 깨끗한 곳에 모셔져 있었다. 그 아기자기하고 아름다은 작은 산의 마루께는 고창읍의 쓰레기 매립지였다. 아마도, 어떤 마을과도 마찰이 없는 곳에 은밀하게 자리잡은 것일 터이다. 그럴 거라고 짐작은 하더라도 속은 풍경에 전혀 감동받지 않았다고는 말할 수 없다 … 보기 좋은 풍경을 찾는다고 꼭 이름난 곳에만 갈 이유는 없다. 풍경은 어디서나 만날 수 있으며, 뜻밖에 만나는 풍경이 더 신선하다. 같은 곳을 다시 가더라도 다른 것을 볼 수 있다. 계절이나 환경이 바뀌기도 하고, 보는 관점이 달라지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람 또는 사람이 생활하는 풍경과 자연의 풍경은 늘 동떨어져서 따로만 있다 … 제도권 밖에 있다고 해서 중요하지 않다거나 아름답지 않다고는 결코 누구도 말할 수 없다. 오히려 벼슬이 낮거나 아예 없는 것들에서 신선한 아름다움을 볼 수도 있다 ..  (117, 119, 216∼217쪽)


 강운구 님은 1994년에 〈우연 또는 필연〉이라는 이름으로 첫 사진잔치를 열었고, 1998년에 〈모든 앙금〉이라는 이름으로 사진잔치를 열었습니다. 사진길을 걸은 지 서른 해가 되어서야 비로소 사진잔치를 열었습니다. 니어링 부부 이웃에서 살던 사람들은 당신들과 같은 때 같은 곳에서 살아서 고마웠다는 인사를 했다는데, 저는 1994년과 1998년 강운구 님 사진잔치를 두 눈으로 바라보고 온몸으로 느낄 수 있던 일이 더없이 고맙다고 느낍니다. 같은 때 같은 곳에서 살아가면서 사진을 보고 배울 수 있으니 그지없이 반갑다고 느낍니다. 좋은 모습을 헤아리면서 배우고, 아쉬운 모습 또한 살피면서 배웁니다.

 그러고 보면, 강운구 님이 어느 한 군데 빠지지 않도록 대단하기만 하다면 좀 재미없는 사진이며 글이 아니었을까 싶기도 합니다. 참 좋은 사진이요 참 애틋한 사진인데 어느 한 구석에서는 ‘어딘가 허전한걸?’ 하고 느낄 수 있기 때문에, 사진길을 걷는 뒷사람으로서 제 깜냥껏 새 눈길을 트고 새 손길을 갈고닦으며 새 마음길을 추스를 수 있지 않느냐 싶습니다.

 아는 사람들이 몹시 적지만, 강운구 님은 1975년에 ‘공간’이라는 출판사에서 《내설악 너와집》이라는 사진책을 한글판과 영어판으로 나란히 낸 적이 있습니다. 이때에 ‘공간’ 출판사는 임응식 님 《비원》과 《종묘》를 비롯해 여러 가지 사진책을 함께 내놓았습니다. 공간 출판사가 이무렵 내놓은 《종묘》에는 오늘날까지 널리 읽히는 ‘대표가 되는 종묘 사진’이 시원스런 판짜임으로 담겨 있습니다. 그러나저러나, 사람들이 눈여겨보는 책은 임응식 님 《종묘》이지, 강운구 님 《내설악 너와집》이 아닙니다. 오로지 흑백으로만 담은 강원도 내설악 너와집인데, 무지개빛사진이 아닌 흑백사진으로도 이토록 아름답게 담을 수 있음을 잘 보여줍니다. 저로서는 강운구 님 사진책 가운데 이 《내설악 너와집》을 가장 사랑하고 아낍니다. 더없이 아름다우며 훌륭하다고 느낍니다. 그렇지만, 이보다 안승일 님 사진책 《굴피집》이 한결 아름다우며 훌륭하다고 느낍니다. 두 분 모두 빼어난 분이요, 두 사진책 모두 훌륭하지만, 《굴피집》에는 굴피집에 깃들어 살아가는 사람들과 굴피집을 짓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둘러싼 자연 터전 이야기가 고이 묻어나 있고, 《내설악 너와집》에는 사람들 발자취와 사람들을 둘러싼 자연 터전 모습만 곱게 묶여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내설악 너와집》이나 《굴피집》이나 100번을 넘게 되읽고 되읽지만, 《내설악 너와집》을 되읽으면서 눈물을 흘린 적이 없습니다. 《굴피집》은 되읽을 때마다 코끝이 시큰하고 눈물방울이 똑똑 떨어지지만.

 아쉽게도 ‘이야기’가 빠졌기 때문에, 《내설악 너와집》을 몹시 아끼고 사랑하면서 간수하고 있지만, 강운구 님 사진밭에서 ‘이야기 찾기’가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1975년에서 서른 해가 지난 2004년이었다면, 무언가 ‘다리품 팔며 이 땅 곳곳을 누빈 당신 땀방울이 깃든 이야기’가 넌지시 사진으로 실리고 조용히 글로 여미어질 수 있어야 하지 않았느냐 생각합니다.

 저로서는 《강운구 마을 삼부작 그리고 30년 후》에서마저도 이야기를 찾아내지 못했습니다. 《저녁에》에서도 이야기는 스며들지 못했다고 느낍니다. 왜 강운구 님은 당신 사진에 이야기를 깃들이는 손길을 여미지 않을까요. 아니, 못할까요. 아니, 스스로 더 다가서지 못할까요.

 좋아하는 분이요, 사랑하는 어른이기 때문에 이 대목을 늘 아쉽게 생각합니다. 아쉽고 안타깝기 때문에 기다리며, 기다리는 동안 저부터 한결 새로워지며 나날이 거듭나자고 다짐합니다. 그리고, 이제는 안타까움이나 아쉬움이 아닌 반가움이나 고마움으로 생각을 고쳐먹습니다. 강운구 님이 걸어온 사진길은 100%를 빛내는 사진이 아닌 98%로 아름다운 길을 걷는 발자국이었는지 모르니까요. 아무리 강운구 님 사진밭이 알차고 아름다우며 사랑스럽다 하여도, 너무 높은 이름이 아닌 작고 따사로운 동네 아저씨 바지저고리로서 들려주는 사진 목소리인지 모르니까요. (4343.1.14.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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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있어 고맙습니다 이철수의 나뭇잎 편지 5
이철수 지음 / 삼인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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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걸음 더 낮게, 한 가락 더 높게
 [애 아빠가 오늘 읽은 책 19] 이철수, 《당신이 있어 고맙습니다》



 여름날과 봄날과 가을날에도 하루 서너 시간 넘게 골목길을 걸어다니면서 사진을 찍고 집으로 돌아오면 온몸이 쑤시고 결리고 고단했습니다. 골목마실이 아닌 책방마실을 하며 서너 시간 넘게 책을 들여다보고 집으로 돌아올 때에는 방바닥에 가방을 내려놓고 발을 씻은 다음에는 그예 곯아떨어졌습니다.

 겨울날 눈밭을 헤치면서 골목마실을 하고 사진을 찍으니, 다른 철보다 더욱 기운이 빠지고 고단합니다. 손가락 마디마디가 결리고 밥 생각조차 나지 않습니다. 따뜻한 집에서 쉬고 있으나 오슬오슬 떨려 옷가지를 주워 입습니다. 애 아빠는 일찍부터 새근새근 잠들고, 덩달아 아기도 옆에서 새근새근 잠들어 줍니다. 애 엄마 혼자 아기하고 씨름을 하면 무척 고단한데, 이렇게 아기가 아빠하고 함께 잠들어 주면 더없이 고맙습니다.

 이튿날 새벽, 애 아빠는 부시시 일어납니다. 지난 하루 못한 일을 하려고 쑤신 몸을 토닥거리며 일어납니다. 오줌으로 젖은 기저귀를 갈아 주는데, 아기도 눈을 번쩍 뜨며 말똥말똥해집니다. 아이고, 우리 아기는 오늘도 바지런이답게 새벽부터 놀겠다고?

 한 시간 남짓 놀다가 잠들 듯하며 엄마 옆에서 젖을 물더니, 이내 벌떡 일어나며 옹알옹알 떠듭니다. 그러고는 다시 온 방안을 휘저으면서 이것 집고 저것 잡으며 놀자고 합니다. 옆지기가 아기일 때부터 갖고 놀던 장난감이 담긴 통을 들여다보던 아기는, 장난감 빗을 찾아냅니다. 장난감 빗 나이로 치면 거의 서른 살이 되었을 텐데, 이 장난감 빗 둘을 왼손 오른손에 나뉘어 쥔 아기는 제 머리를 살살 빗질하더니 아빠한테 다가와 아빠 머리도 빗겨 준다고 슥슥 합니다. 참 용한 녀석이구나 싶어 사진 몇 장 찍습니다. 아기는 요즈음 밥자리에서 제가 손수 숟가락으로 떠서 퍼먹으려고 하는 한편, 제 숟가락으로 푼 먹을거리를 엄마하고 아빠한테 건네면서 받아먹으라고 하기도 합니다. 엄마 아빠가 늘 저한테 밥을 떠먹이니, 숟가락으로 떠먹이는 밥먹기를 시늉하는 셈이라 하겠지요.


.. 아이들은 잘 압니다. 부모의 가난도 잘 알고 부모의 마음도 잘 압니다. 아이들을 바르게 키워 가는 건 사랑입니다. 때로 경제적 여유가 아이를 망치듯 가난도 아이를 망치지만, 사랑 결핍이 제일 큰 이유지요. 아이들은 말없는 사랑조차 온몸으로 느껴 압니다 … 권력은 거짓말을 일삼고, 백성은 욕설을 참지 못하는 나날입니다. 소주, 커피 대신 시집 한 권! 그렇게라도 마음을 거두어 보시지요 ..  (29, 54쪽)


 아이를 함께 키우는 몸으로서, 아이가 우리한테 오기 앞서까지 우리가 해 오던 여러 가지를 더는 제대로 하지 못합니다. 아빠한테는 글쓰기나 책읽기나 사진찍기를 예전처럼 못하지만, 옆지기한테는 성당마실을 예전처럼 못하며 다른 여러 가지 또한 아무것도 못합니다. 매듭엮기도 못하고, 밥하기도 못하며, 그림그리기와 고양이 키우기를 못합니다.

 못하는 일이 많아 이리 아쉽고 저리 아쉽습니다. 그러나 못하는 일이 있는 만큼 새로 깨닫거나 할 수 있는 일이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아이를 키웁니다. 날마다 수없이 새로 쌓이는 빨래감을 빨아대고, 나날이 끊임없도록 오줌갈이 똥갈이를 합니다. 어른 두 사람이 밥을 먹을 때하고 아이 한 사람과 밥을 먹을 때는 사뭇 다릅니다. 아이를 키우면서 바깥일을 한다는 뜻과 얼거리를 온몸으로 배웁니다. 동네 골목길에서 노는 아이가 참으로 없음을 새삼스레 느끼는 한편, ‘동네에 아이들이 없는’ 오늘날이 아니라 ‘아이들은 집구석에 갇히거나 학원에 내몰리고 있음’을 살갗으로 느낍니다. 아이와 함께 살아가면서 틀림없이 책읽기를 제대로 못하지만, 그만큼 책 하나를 더 가려읽는 눈썰미를 키웁니다. 아이와 함께 사는 동안 어쩔 수 없이 글쓰기를 마음대로 못하지만, 그만큼 글 한 꼭지에 더 깊은 사랑과 믿음을 담아내는 땀방울을 들입니다.

 우리 식구가 그동안 그러모은 책들을 반드시 우리 아이한테 물려주란 법은 없습니다. 그러나 나중에 누구한테 우리 책들을 물려준다 하든, 우리 뒷사람한테 좀더 알차고 너르며 살뜰하다 싶은 책이 되도록 옳게 갖추어야겠다고 다짐합니다. 내 아이를 생각하는 일이란 내 아이와 어울릴 또래동무를 생각하는 일이고, 또래동무를 키우는 숱한 어버이를 생각하는 일입니다.

 이 나라에 ‘애 엄마’나 ‘애 아빠’라는 이름은 보잘것없을 뿐더러 알아주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애 엄마와 애 아빠 스스로도 알아주지 않는 ‘애 엄마’와 ‘애 아빠’라는 이름이 얼마나 대단하고 거룩하기까지 한지를 새롭게 익힙니다. 나이를 먹어서 어른이 아닌, 나이 먹은 값을 하기에 어른입니다. 아이를 낳아서 어른이 아니라, 아이를 낳아 기르며 새로 배우기에 어른입니다.

 우리 식구는 아이를 낳아 키우며 수많은 삶자락을 놓거나 잃어야 하는데, 이렇게 잃은 자리에 새로운 살이 돋고 새로운 꽃이 자라납니다. 혼인을 해서 아이를 낳아야 ‘어른이 된다’고들 이야기하지만, 아이를 낳는다고 다 어른이 되지 않으며, 스스로 아이와 마찬가지로 새로 태어나듯 살림살이를 새롭게 가꾸면서 새 사람이 되지 않는다면 나이를 아무리 많이 먹고 아이를 아무리 많이 낳아도 하나도 어른이 되지 않음을 깨닫습니다. 아이는 어버이한테 둘도 없는 선물이라 하는데, 아이가 어버이한테 둘도 없는 선물이라면, 거꾸로 어버이는 아이한테 둘도 없는 선물이어야 합니다. 아이는 스스로 우리한테 선물이 되면서, 우리보고 저한테 좋은 선물이 되라면서 날마다 새롭게 일깨우고 있습니다.


.. 농민은 분노도 없고 생각도 없는 사람들인가 보다 할 만큼, 농민의 소리는 세상에서 참 작습니다. 이제 인구구성비로도 한줌이지요 … 뒷날, 바로 우리 시대를 두고 ‘어두웠다’고 쓰게 될 겁니다. 가난의 고통애 모멸을 더하고, 사소한 이익을 위해 인간의 존엄에 속한 가치를 모조리 쓸어다 버린, 어리석은 부자들의 한 시대였다고 쓰게 될 겁니다 ..  (15, 21쪽)


 ‘나뭇잎 편지’라는 이름을 달고 나온 《당신이 있어 고맙습니다》를 들여다봅니다. 《있는 그대로가 아름답습니다》(2008), 《자고 깨어나면 늘 아침》(2006), 《가만가만 사랑해야지 이 작은 것들》(2005), 《밥 한 그릇의 행복 물 한 그릇의 기쁨》(2004)에 이어 다섯째로 나온 그림엽서 묶음입니다. 그림 하나에 이야기 하나를 묶어 놓은 ‘나뭇잎 편지’인데, 꼭 그림엽서만 한 종이에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기 때문에 더 큰 그림과 더 긴 글을 담을 수 없습니다. 꼭 엽서만 한 그림과 글을 담을 뿐입니다.

 오늘날에는 손수 우체국이나 문방구나 구멍가게에 가서 우편엽서 한 장을 장만한 다음에 빈자리에 알맞게 이야기를 적바림하면서 내 사는곳과 받는이 사는곳을 손글씨로 또박또박 적어 새해 인사를 띄우는 일은 거의 사라졌습니다. 손전화 쪽글을 띄우면 한꺼번에 여럿한테 띄울 수 있고, 누리편지를 쓸 때에도 손쉽게 여럿한테 띄울 수 있으니까요.

 그만큼 우리들은 둘레에 사귀는 사람이 많고 고마운 사람이 많아, 엽서를 몸소 장만하고 손수 인사글을 적어 보내기 어렵다 할 만합니다. 인사할 분이 많을 뿐더러, 우리 스스로 몹시 바빠 손으로 인사글을 또박또박 적을 겨를이 없다 할 만합니다.

 그런데, 바쁘고 힘겨운 우리 삶터에서, 굳이 손으로 그림을 그리고 손으로 글을 적어 내려가는 이철수 님 ‘나뭇잎 편지’는 무슨 느낌과 뜻과 생각과 넋을 나눌 수 있을까 궁금합니다. 이철수 님 ‘나뭇잎 편지’를 들여다보면서 좋아하고 기뻐하는 가슴으로 그칠 뿐, 우리 스스로 ‘나한테 고마운 님한테 엽서 한 장 띄워야지’ 하는 마음으로 이어지지 못하는 이 터전에서, 이와 같은 그림엽서책을 둘레에 선물하면서 우리 삶과 넋은 얼마나 새로워질 수 있을까 궁금합니다. 내 손품(노동력)을 들이면서 내 살가운 벗과 이웃한테는 사랑을 베풀지 못하면서, 다른 이 손품을 돈으로 사들이면서 사랑을 보여주려고 하는 우리들은 아닌지 궁금합니다. 손뜨개 옷이 좋다면, 목돈 들여 손뜨개 옷을 장만할 노릇이 아니라, 우리가 손수 손뜨개 옷을 떠서 입을 노릇이 아닌가 궁금합니다.


.. 공룡은 커서 쉽게 배가 고파질 거야. 공룡은 먹이가 많아야 살 수 있고, 그래서 풍요한 땅이 필요할 거야 … 엊그제는 수녀님들이 운영하시는 복지시설에 다녀올 일이 있었습니다. 그길에 혼자 한 생각인데요, 수녀님들이 큰차 타고 다니는 걸 본 적이 없네요. 큰차 탄 수녀님 보셨어요? 전 중형차 타고 일 보는 수녀님도 못 보았습니다. 큰차 탄 신부님은 흔해빠졌는데……. 그게 제가 수녀님들께 고마워하는 이유일지도 모릅니다. “수녀님 어디 가세요?” “저기 가난한 이웃에게요.” ..  (22, 4쪽)


 이철수 님은 집 앞에 너른 논밭을 일구고 있습니다. 젊은 나날에는 가난에 찌들려 살았지만, 이제는 그럭저럭 살림을 꾸리면서 당신 이름으로 된 논밭을 마련하여 농사꾼이자 그림꾼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당신이 있어 고맙습니다》를 비롯한 ‘나뭇잎 편지’에는 손수 농사꾼으로 꾸리는 삶을 그림이며 글로 틈틈이 들려주고 있으며, 이웃 농사꾼 삶자락을 들여다보거나 어울리면서 헤아린 이야기를 곳곳에 담아 놓고 있습니다.

 농사꾼 삶을 꾸리기에 이 나라에서 밑바닥에 있는 사람들 눈높이가 되기도 하고, 농사꾼 삶을 오래 이어오고 있기에 이 나라를 버티는 밑바탕 마음자리에 서기도 합니다. 이러면서 그림꾼이라는 길을 걷고 있는 터라, 농사꾼 스스로 내지 못하는 목소리를 당신이 고이 이어받아서 나타냅니다. 다만, 스스로 농사꾼이고 이웃사람 또한 농사꾼이면서 조금 더 ‘농사꾼다운’ 당참과 떳떳함과 아름다움을 차분하고 즐거우며 따사롭게 펼치지는 못하고 있지만요.

 일본문학인 ‘하이쿠(‘한줄시’이며, 글자수는 꼭 ‘일곱’입니다)’를 나타내는 한 줄짜리 말마디는 “한 줄도 너무 길다”입니다. “한 줄도 너무 길다”라는 말마디는 일본글에서도 일곱 글자이고, 우리 말로 옮겨도 일곱 글자입니다. 일본문학 하이쿠를 펼친 그분도 대단한 시를 썼지만, 이를 우리 말로 옮긴 분 또한 대단한 번역을 했습니다.

 그러면, ‘나뭇잎 편지’라는 이름으로 쪽글과 쪽그림을 띄우는 이철수 님은 어떤 그림과 글로 ‘나뭇잎’다운 이야기를 펼치고 있을까요. 나뭇잎이란 어떠한 잎이요 목숨이며, 나뭇잎이란 어떠한 자연이며 이야기일까요.


.. 부지런히 땀흘려 일하는 게 전부인 사람들에게는 갈수록 힘든 세상입니다 … 조국이 없던 시절에도 별을 노래한 시인이 있었습니다 … 공권력에 두들겨맞는 농성 노동자들을 보았습니다. 맞는 사람들보다, 곤봉과 방패를 휘두르는 사람을 보면서 더 슬픕니다. 설득을 포기하고 진압과 통제로 국민을 상대하기로 한 권력의 명령이, 곤봉과 방패와 레이저건과 또다른 무기들을 펄떡이게 하는 걸 우리가 압니다 ..  (80, 103, 126쪽)


 2009년을 떠나보내고 맞이하는 2010년 겨울철에도 새로운 ‘나뭇잎 편지’라는 농사를 지어서 우리 앞에 선보이리라 봅니다. 농사꾼이 논밭이 흘리는 땀방울이 고스란히 한가위 열매와 곡식으로 돌아오듯, 이철수 님이 종이와 나무한테 바치는 땀방울이 알알이 ‘나뭇잎 편지’로 그러모인다고 느낍니다.

 우리가 디디는 땅을 이루는 흙 하나하나는 모두 지구이며 넋이며 목숨입니다. 우리가 손으로 쥐어 입에 넣는 밥알 하나하나는 모두 자연이요 얼이요 씨앗입니다. 가을녘이 되면 우리 눈길에 곱게 보이는 나뭇잎 하나하나는 모두 이야기이고 삶이고 사랑입니다. 한 걸음 더 낮은자리로 다가서면서 한 가락 더 높은소리가 솟구쳐나오는 새로운 ‘나뭇잎 편지’를 기다려 봅니다. 한 번 더 곱씹으면서 한 번 더 다듬어내는 ‘나뭇잎’ 이야기를 손꼽아 봅니다. (4343.1.10.해.ㅎㄲㅅㄱ)


 ┌ 《당신이 있어 고맙습니다》(삼인 펴냄,2009)
 ├ 그림ㆍ글 : 이철수
 └ 책값 : 1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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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미네 집 - 윤미 태어나서 시집가던 날까지
전몽각 지음 / 포토넷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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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까지만 해도 안 뜨더니, 용케(?) 오늘은 뜬다. 나처럼 항의하는 사람이 있었을까?) 


 아픈 삶과 웃는 삶 모두 좋아 사진을 찍는다
 [내 삶으로 삭인 사진책 10] 전몽각, 《윤미네 집》



- 책이름 : 윤미네 집
- 사진 : 전몽각
- 펴낸곳 : 포토넷 (2010.1.1.)
- 책값 : 28000원

(전몽각 님 누리집 www.jmong.net)




 (1) 아프게 살아가고 고맙게 사진찍고


 지난해 팔월부터 십이월 첫머리까지 한 주에 닷새씩 인천에서 서울로 오가면서 일을 해야 했습니다. 집식구가 몹시 힘들어 해서 때때로 한 주에 한 번씩 쉬거나 조금 늦게 나가기도 했으나,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새벽바람으로 밥해 놓고 빨래해 놓고 집일 얼추 하고 일을 나간 다음 파김치가 되어 저녁이나 밤에 집으로 돌아와서 어지러운 집을 대충이나마 돌보든 그대로 내팽개치고 곯아떨어지든 하며 하루하루를 보내니 도무지 사람 사는 모양이 아니라고 느꼈습니다. 이러면서 몸마음 모두 아픈 옆지기는 더 아픕니다. 저는 저대로 더 힘듭니다. 하소연을 할 까닭이 없으나 우리 식구가 하소연할 구멍은 없습니다. 저는 저대로 옆지기한테 푸념하지 못하고, 옆지기는 옆지기대로 당신 아픈 몸마음을 풀어내지 못하면서 옆지기 부모님네 걱정을 하느라 더 고단해 하고 슬퍼 합니다.

 이렇게 죽어나듯 하루하루를 보내다가 12월 2일부터 더는 출퇴근 일을 안 해도 되었고, 요사이는 한 주에 이틀을 서울로 일하러 나갑니다. 그런데 한 주에 닷새이든 이틀이든, 이렇게 애 아빠 된 몸으로서 집을 오래도록 비워 놓고 있자니, 집을 비우든 동안 집안에 쌓일 일을 미리 해놓느라 바쁘고, 집으로 돌아와서도 쉴 겨를이 없이 다시 밀린 일을 하느라 허둥지둥입니다. 이러면서 옆지기하고 오붓하고 느긋하게 이야기를 나눌 짬을 못 냅니다. 우리는 더 많은 돈을 벌고자 이렇게 일할 마음이 아닌데, 세상 흐름에 맞추자면 나 스스로 바보가 된다는 느낌입니다. 우리가 해야 할 몫을 이 땅에서 하고자 한다지만, 식구들 몸과 아이키우기를 내버리면서까지 해야 하느냐 싶어 고개를 갸우뚱갸우뚱합니다.

 딱히 어디에 내놓으려고 찍었던 사진이 아닌 제 사진감인 ‘헌책방’은, 저 혼자서 필름을 맡기고 찾고 스캔질하는 동안 즐겁고 보람이 있었습니다. 굳이 어디에 내세우려고 찍는 사진이 아닌 제 둘째 사진감인 ‘인천골목길’ 또한, 저 스스로 제 사진을 돌아보면서 웃고 울고 기쁘며 슬픕니다. 누구한테 내보일 마음이 아니요, 나중에 아이한테 큰선물이라도 되는 양 던져 줄 마음이 아닌 가운데 붙잡는 셋째 사진감인 ‘딸아이 사름벼리’도, 나와 옆지기와 아이 모두 신나게 예전 자취를 더듬으며 즐기고 있습니다. 올해로 세 살을 맞이한 아이는 때때로 ‘제 모습 찍힌 사진 담은 꾸러미’를 펼치면서 한 장 한 장 넘기곤 합니다. 아이가 사진을 알아서 스스로 넘겨보는지 아닌지는 모릅니다. 





 보름쯤 앞서부터는 아이가 제 디지털사진기를 즐겨 들여다보고 있습니다. 아빠가 제(딸아이) 모습을 사진으로 찍으면 ‘찰칵’ 하는 소리에 아빠를 쳐다보며 얼굴에 시익 웃음을 머금고 후다다닥 달려듭니다. 그러면서 두 팔을 뼏쳐 사진기를 움켜쥡니다. 한 주쯤은 제가 단추를 하나씩 눌러 주어야 했고, 이제는 아이 스스로 어느 단추를 눌러야 사진을 넘길 수 있는지, 크고작게 보려면 무엇을 눌러야 하는지까지 알아챕니다. 오늘은 드디어 혼자서 켜고 끄기까지 해냅니다.

 아이 모습을 사진으로 담아 놓는 일도 ‘적바림(기록)’이라면 적바림입니다. 몸마음 아픈 옆지기는 엊그제뿐 아니라 아침 일마저 떠올리지 못할 만큼 매우 힘들어 합니다. 애 아빠가 찍은 사진을 셈틀 화면으로 넘겨보면서 ‘언제 적 모습’이었는지를 가늠하지 못하곤 합니다. 배앓이를 하며 낳은 딸아이가 어떠한 나날을 거쳐 뒤집고 기고 서고 앉고 걷고 뛰고 하며 이렇게 자랐는지를 하나도 헤아리지 못합니다. 예전 사진을 보며 마치 ‘우리 아이가 아닌 듯’ 느끼기도 합니다. 모르는 노릇이지만, 사진이라도 담아 놓지 않았으면 아무리 말로 이러쿵저러쿵 이야기를 들려주어도 옆지기가 머리로 떠올려 내지 못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그런데, 딸아이 지난날 모습을 꼭 떠올려야 하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옆지기가 저하고 함께 살던 처음 모습을 구태여 되돌아보아야 하지는지를 잘 모르겠습니다. 지난날이 더 아름답거나 못났을 까닭이 없고, 오늘이 더 아름답거나 모자랄 까닭이 없으며, 앞날이 더 아름답거나 아쉬울 까닭이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한테 주어진 삶과 목숨대로 어제도 오늘도 모레도 고맙습니다. 때때로 ‘우리 옆지기가 이렇게 아픈 사람이 아닌, 튼튼한 사람이라면 내 삶과 우리 아기 삶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하고 생각해 보는데, 튼튼한 옆지기였다면 저는 저대로 바깥일을 훨씬 많이 했을 테고 글을 더욱 엄청나게 써댔을 테며 방송취재라든지 책 펴내기도 아주 신나게 해댔을는지 모릅니다. 어쩌면 연예인 못지않게 잘나갔을는지 모르고, 어쩌면 지난 1995년부터 가난하고 벗삼은 삶자락을 떨쳐냈을는지 모릅니다. 그렇지만, 잘나가는 제 모습이나 가멸찬 살림이 된 제 모양새는 그림으로 그리지 못하겠습니다. 외려 두렵습니다. 잘나가는 만큼 다소곳함을 잃지 않을까 두렵습니다. 가멸찬 살림인 만큼 돈 한푼을 알뜰히 간수하며 고마워하는 마음을 잃지 않을까 무섭습니다. 





 옆지기라서 아픈 사람이라서 더 좋지는 않으나, 그렇다고 아픈 옆지기가 싫거나 밉지 않습니다. 아픈 옆지기 때문에 저 스스로 더 아픈 자리를 견디어야 하고 알아야 하며 받아들여야 합니다. 고단한 나날이지만 옆지기처럼 아픈 이웃을 가슴으로 받아들이도록 가다듬습니다. 지치는 삶이지만 옆지기보다 더 아플 이웃을 어렴풋이나마 헤아립니다. 예전이라고 머리통만 굴리는 생각은 아니었지만, ‘몸마음 다 아픈(심신장애)’ 사람이 한식구요 옆지기요 애 엄마인 가운데 갖은 집안일과 바깥일을 도맡으면서 더 마음을 쏟고 힘을 내야 하는 자리가 어디인가를 겨우 붙잡습니다. 어설픕니다만, 우리 어머니가 할아버지 똥오줌을 치우고 밥을 먹이면서 우리 형제를 키우는 한편 부업을 하고 아버지를 모시고 하는 삶을 견디고 살아낸 하루하루를 살갗으로 살짝살짝 느낍니다. 어머니는 홀몸으로 어떻게 그 많은 일을 다 하면서 당신 젊음을 다 바칠 수 있었을까요? 저한테는 우리 어머니이지만, 제 둘레에는 수많은 ‘또다른 어머니와 아버지와 형제’들이 당신들 식구나 동무나 이웃이나 살붙이한테 이렇게 ‘몸마음 다 바치는 삶’을 견디거나 살아냈겠지요.

 이 같은 삶이 사진으로 적바림된 적은 이제까지 한 번도 없는 줄 압니다만, 이러한 삶을 사진으로 적바림하고자 하는 사람을 저로서는 아직까지 한 번도 찾아내지 못하고 있습니다만, 이 삶을 고맙고 사랑스러운 삶으로 받아들여 사진으로 적바림하는 눈물콧물땀방울을 영그는 사람을 저로서는 여태까지 한 번도 만나지 못합니다만, 삶이 참 사진이고 사진이 참 삶이라고 느낍니다.

 눈물이 없는 글이 글이라 하겠습니까? 콧물이 없는 그림이 그림이라 하겠습니까? 땀방울이 없는 사진이 사진이라 하겠습니까?

 저는 어느새 손빨래로 보내온 삶이 열여섯 해째 접어듭니다. 홀살이를 하건 함께살기를 하건 군대살이를 했건 늘 손빨래 삶입니다. 서른여섯 줄 나이로는 찬물 빨래가 어려워 보일러를 돌려 손빨래를 하는데, 졸음을 이기며 이마에 흐르는 땀을 훔치고 빨래를 하는 동안 기쁘고 고맙다고 느낍니다. 언제였는지 떠오르지 않을 만큼 오래된 이야기라고 느끼는데, 옆지기는 ‘당신이 너무 힘드니까 내가 빨래할 테니 그냥 두어요’ 하고 이야기하곤 했지만, 이제는 이런 이야기를 아예 꺼내지 않습니다. 그만큼 옆지기가 힘들다는 소리입니다. 옆지기도 아픈 몸으로 빨래를 하자면 더 힘들기는 할 테지만, 옆지기나 저나 손빨래를 하면서 ‘힘들다’고 느낀 적은 없습니다. 고되다고 느끼거나 귀찮다고 느낀 적 또한 없습니다. 손빨래를 하면서 늘 ‘좋았’습니다. 손빨래를 하고 나면 언제나 ‘흐뭇’했습니다. 빨래하는 동안 아이를 안 봐도 되니까 그러할 수도 있지만, 비비고 헹구고 털고 널고 하면서 옷가지만이 아니라 마음가지까지 말끔하게 빨아 놓거든요. 옷가지를 맑게 다스리면서 마음가지 또한 맑게 다스리거든요.

 저는 옆지기를 사진으로 담거나 아이를 사진으로 찍을 때에 노상 손빨래하는 마음입니다. 손빨래를 하며 우리 집식구 몸을 돌아보고 마음을 곱씹듯, 사진기 단추를 한 번 누르고 두 번 누를 때마다 우리 집식구 오늘 하루 삶이 이렇게 고맙고 반갑고 흐뭇하고 멋지고 고와 참 아름답구나 하는 느낌을 담으려 합니다. 앞으로 우리 식구가 얼마나 오래오래 살아갈 수 있는지는 하늘님과 땅님 뜻일 텐데, 오래 살든 짧게 살든 이 하루 서로서로 복닥이고 아파하고 힘겨우면서도 어찌어찌 한 해 두 해 달력을 넘기는 삶임을 깨닫고 기쁘구나 하는 느낌을 사진 한 장이나 글 한 줄에 실으려 합니다. 이리하여, 이렇게 해서 찍은 우리 식구 사진은 바깥에 내보여도 부끄럽지 않습니다. 따로 바깥에 내보이려고 찍는 사진은 아니지만 옷장 깊은 곳에 꽁꽁 감추려고 하는 사진 또한 아닙니다. 그예 우리 삶입니다. 그저 우리 사진입니다. 그대로 우리 사람입니다. 꾸밈없이 우리 사랑입니다.
 





 (2) 다시 태어난 《윤미네 집》


 사진책 《윤미네 집》이 2010년 1월 1일을 맞이해서 새옷을 입고 우리 앞에 다시 선보입니다. 1990년 11월에 처음 나온 이 사진책은 스무 해라는 세월을 조용히 잠들어 있다가 깊은 잠을 기지개 켜고 깨어나 우리 앞에서 슬그머니 웃습니다. 1990년에는 ‘시각’ 출판사이고, 2010년에는 ‘포토넷’ 출판사입니다. ‘시각’은 사진문화를 깊이 사랑한 주명덕 님이 꾸리던 곳이고, ‘포토넷’은 다달이 사진잡지를 펴내는 곳입니다.

 디지털사진기가 나오기 앞서도 한국에서 사진하는 사람은 많았으나 사진책이나 사진잡지가 사랑받기는 만만하지 않았습니다. 디지털사진기가 널리 팔리며 웬만한 사람들 누구나 괜찮은 디지털사진기를 갖추고 있는 오늘날 또한 사진책이나 사진잡지는 사랑받기 만만하지 않습니다. 꿋꿋하게 사진책을 펴내는 출판사가 있습니다만, 어느 날 갑자기 이 사진책들이 품절이나 절판이라는 길을 걸을는지 모릅니다. 이번에 새옷을 입고 나온 《윤미네 집》은 사진잡지 길을 꿋꿋하게 걷는 곳에서 애써 펴내 주니, 여느 사진책보다는 좀더 오래 살아남을 수 있지 않겠느냐 싶습니다만, 앞으로 두고보아야겠지요. 새옷을 입기 앞서 《윤미네 집》을 헌책방에서 찾아내려고 하던 사람들이 꽤 있었고, 제가 갖고 있는 예전 판 이 책을 10만 원 줄 테니 팔라던 사람도 제법 있었습니다. 이분들이 ‘새로 나오는 책’을 널리 사랑하면서 즐거이 마주해 주실 수 있는지는 모르는 노릇입니다.


.. 그저 낳은 이후로 안고 업고, 뒹굴었고 비비대었고, 그것도 부족해서 간질이고 꼬집고 깨물어 가며 아이들을 키웠다. 아이를 나무우리(아기침대)에 넣어 두고 시간 맞춰 우유병을 물려 주는 미국이나 유럽의 그런 식과는 사뭇 달랐다. 그런 것을 너무나 한국적이라 해야 할지 혹은 원시적이라는 비평거리가 될는지는 모를 일이나, 나와 아내는 하여간에 아이들을 그런 식으로만 키운 것이다. 앞으로의 젊은 세대들은 요즘같이 냉철하고 이성적으로만 치닫고 있으니 서양의 그네들처럼 그렇게 닮아 갈 것이란 미래 예상은 어렵지 않지만, 그 방식이 나로서는 안타깝고 두렵기까지 하다. 아이들이 자라던 그때에는 나의 공부방에 있다 보면 아이들의 깔깔대는 웃음소리가 온 집안에 가득했다. 사람 사는 집 같았다 … 아이들의 일상생활은 보기에 따라서는 비슷하고 평범한 것 같지만, 유심히 살펴보면 그게 아니다. 그들은 언제나 새롭고 독특하여 아무리 섬세한 예술가일지라도 연출로는 불가능한 그런 자체 표현을 수시로 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카메라를 손에 든 내가 이래라 저래라 지시할 필요는 전혀 없었다. 집에만 들어오면 카메라는 언제나 내 곁에 있었고, 어쩌다 귀가 시간이 늦어 아이들이 잠자리에 들어 있을 때라도 한참 들여다보면 자는 모습이 너무 예뻐서 카메라를 또 들이대고, 아이 깨운다고 아내에게 야단맞은 적도 한두 번이 아니다. 아이들이 한 발 한 발 걷기 시작할 때, 더듬더듬 말을 하는 등의 변화가 보이면 공연히 나 혼자 흥분하여 필름만 더 축내곤 했으니 말이다 ..  (책머리에/전몽각)
 





 사진책 《윤미네 집》은 조금도 ‘전문성과 예술성’이 담기지 않은 사진을 그러모은 책입니다.

 그러나, 사진을 찍은 전몽각 님한테 ‘사진을 찍는 전문성과 사진을 보여주는 예술성’이 하나도 없다는 소리가 아닙니다. 사진책 《윤미네 집》은 누구나 찍을 수 있는 사진이라는 소리입니다. 누구나 혼인하여 아이를 낳고 키울 수 있듯(아이를 못 낳으면 데려다 키울 수 있습니다), 누구나 아이를 키우면서 바라보고 느끼고 겪는 모습을 담고 있는 책이라는 소리입니다.

 다만, 《윤미네 집》은 ‘누구나 찍을 수 있는 쉬운 사진을 담은 책이지만, 누구도 찍지 않은 쉬운 사진으로 이루어진 책’입니다. 거꾸로 말하자면, 오늘날 우리 둘레에 넘치는 ‘전문성과 예술성’이 담긴 사진들은 ‘누구나 찍을 수 없는 어려운 사진이지만, 누구나 찍고 있는 어려운 사진’이라는 소리입니다.

 전몽각 님이 담아낸 《윤미네 집》은 누구나 알고 느꼈고 부대끼며 받아들이는 삶을 보여줍니다. 오늘날 거의 모든 사진작가와 사진예술가들이 담아내는 사진작품은 누구나 잘 모르고 못 느끼고 동떨어져 있는 꿈나라 모습을 보여줍니다.

 만듦사진이 되어야 ‘작품’이라는 이름을 얻을 수 있지 않습니다. 살아가며 늘 보고 겪는 모습을 담는다고 ‘작품’이라는 이름을 얻을 수 없지 않습니다. 사진관이든 스튜디오이든 장비를 잘 갖추어 놓은 골방에서 빛을 맞추고 모델을 움직여 가며 담아내야 ‘예술작품’이 되지 않습니다. 조그마한 살림집 한켠에서 아이들과 옆지기를 35밀리 사진기나 값싼 디지털사진기로 담아낼 때 ‘예술작품’이 안 되란 법은 없습니다. 가난하다는 사람이나 제3세계라는 곳 사람이나 전쟁터에서 시달리는 사람이나 아프리카라든지 인도라든지 티벳이라든지 하는 곳 사람을 만나서 사진으로 담아야 ‘다큐사진’이 되지 않습니다. 설레는 가슴으로 만나다가 뜨거운 사랑으로 얼우고 풋풋한 믿음으로 아이를 낳아 키우는 삶자락을 사진으로 담는데 이 사진들이 ‘다큐사진’이란 이름을 못 얻을 까닭이 없습니다.
 





.. “《윤미네 집》에 제 사진이 많지만 저와 남동생 둘, 그리고 엄마와 아빠가 모두 이 사진집의 주인공입니다. ‘윤미네 집’으로 불리던 우리 가족 모두의 다정하고 따뜻했던 시간들의 기록이기 때문입니다 … 《윤미네 집》은 언제 보아도 그리운 시간들의 기록이기 때문에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이 제게 소중합니다. 살아가면서 어려운 일을 겪을 때, 그 사진들을 보면서 제가 받은 사랑과 행복했던 그 시간들로부터 용기와 힘을 얻곤 했어요 … 외로운 외국에서 그 사진집을 받고서 부모님께 감사하며 많은 힘을 얻었지만 사진을 찍으시고 또 사진집으로 엮으신 그 절절한 부모님의 마음까지는 깊이 알지 못했던 것 같아요. 두 아이의 엄마가 되고, 사진 속 어머니와 렌즈 너머에 계셨던 아버지의 나이가 되고 보니, 그 사랑 하나하나를 너무나 또렷하게 느낍니다.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럽고 큰 기쁨이라고 말씀하셨던 가족의 순간순간을 일기 쓰듯 기록하신 아버지의 그 마음을 이제는 잘 알 것 같아요.” ..  (딸 전윤미 씨 인터뷰/162∼163쪽)


 지난 1월 6일부터 경기도 고양시 아람누리에서 ‘세바스티앙 살가도’ 님 사진잔치가 열리고 있습니다. 살가도 님은 나라 안팎에 이름난 다큐멘터리 사진작가입니다. 세계 곳곳에서 이루어지는 아픈 삶과 힘겨운 삶을 꾸밈없이 담아내는 훌륭한 분입니다. 저로서는 인천에서 고양시까지 가기는 너무 벅찰 뿐더러, 옆지기와 아기를 놓고 혼자 갈 수 없어, 일산에 사는 처남한테 용돈을 쥐어 주고 동무들하고 구경하러 가 보라고 했습니다. 책이라면 언제라도 장만할 수 있고 어디에서 어떻게 지내든 책장을 펼칠 수 있지만, 책으로 묶이지 않은 사진이라면 전시장에 가야만 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2005년에 서울에서 열린 사진잔치에 찾아가서 8000원을 치르고 사진을 돌아보고 난 다음에, 이분 사진책 《Workers》와 《Children》을 서울 혜화동 〈이음책방〉에서 장만했습니다. 사진잔치를 연 전시장에서는 전시장 느낌대로 좋은 느낌이었고, 언제나 다시 들출 수 있는 두툼한 사진책은 언제나 새롭게 가슴이 벅차오르도록 이끕니다.

 사진책 《윤미네 집》을 《Workers》와 《Children》하고 견주는 일은 어울리지 않을는지 모르는데, 전몽각 님 사진책과 살가도 님 사진책은 어느 때 어느 곳에서 찬찬히 다시 돌아보아도 반가운 대목에서 비슷합니다. 다루는 사진감이 다르고 다루는 사진감만큼 사진에 담으려는 이야기도 다를 테지만, 사진기를 든 사람과 사진기 앞에 선 사람이 놓인 거리가 멀지 않다는 대목에서도 비슷합니다.

 ‘큰 이야기’를 다루거나 담아야만 훌륭한 사진이겠습니까. ‘큰 이야기’를 짚거나 찍어야만 다큐사진이 되겠습니까. ‘작은 이야기’를 다루어도 훌륭한 사진이며 다큐사진입니다. ‘작은 이야기’라 하여도 좋은 사진이 될 수 있고, ‘큰 이야기’라 하지만 좋지 못한 사진에 머물 수 있습니다.

 저는 살가도 님 사진을 들여다보면서 이분 사진은 흔히 말하는 ‘다큐’라는 이름만으로는 걸맞지 않다고 느껴, ‘삶사진’이라는 다른 이름을 붙여야 하지 않느냐고 생각합니다. 전몽각 님이 당신 식구들 삶자락을 담은 사진을 들여다보면서도 숱한 다른 이름들은 들어맞지 않다고 느껴, 이때에도 ‘삶사진’ 같은 이름을 붙여야 알맞지 않느냐고 생각합니다. 두 분 모두 사람들 삶을 사진으로 담아서 보여주고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큰 테두리에서 온누리 사람들 눈물과 웃음을 보여주는 살가도 님 사진이라면, 작은 테두리에서 집식구들 눈물과 웃음을 보여주는 전몽각 님 사진이라고 생각합니다. 큰 테두리에서 온누리를 두루 찾아다니며 사람 삶이란 무엇인가 하고 헤아리는 사진을 찍은 살가도 님이라면, 작은 테두리에서 내 집식구를 속속들이 들여다보고 껴안으면서 사람 삶이란 어떠한가 하고 살피는 사진을 찍은 전몽각 님이라고 생각합니다.
 





.. 남편이 처음부터 어떤 목적을 가지고 아이들 사진을 찍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놓치고 싶지 않은 순간들을 기록하다 보니 쌓이게 되었고, 그래서 전시회도 하고 책도 만들게 되었다. 가족사진으로 첫 전시회를 하겠다고 했을 때 그 당혹감은 말할 수 없었다. 아무 때나 카메라를 들이댈 때도 저러다 말겠지 하고 근근이 참았는데, 이제는 만천하에 공개하겠다고 하니 해도 너무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간 세상이 많이 바뀌었다고는 하나, 첫 출판 후 20년이 지난 지금도 평범한 우리 가정의 일상사가 여과 없이 공개되는 것은 부담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왜 다시 책을 내는 데 동의하게 되었을까? ..  (사랑하는 남편과 지난날을 추억하며/이문강,200쪽)


 언제나 찍을 수 있는 사진이고 누구라도 엮을 수 있는 사진인 《윤미네 집》입니다. 전몽각 님한테는 ‘윤미네 집’입니다. 우리 식구한테는 ‘사름벼리네 집’입니다. 이웃집에서는 숱한 ‘아무개네 집’이 이루어집니다.

 ‘아무개네 집’ 이야기는 사진으로 엮일 수 있고 글이나 그림으로 엮일 수 있습니다. 엮는 사람 나름이고, 엮는 사람 생각에 따라 다릅니다. 따로 사진이나 글이나 그림이 아닌 ‘마음에 담아 놓는 이야기와 느낌’으로 우리 삶을 저마다 다르게 이루어 놓을 수 있습니다. 





 《윤미네 집》이든 《Workers》이든 《Children》이든 아름답거나 거룩하거나 좋거나 사랑스럽거나 따뜻하거나 하는 느낌을 받는다면, 사진기를 든 사람이 사진기 앞에 선 사람하고 늘 함께 있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언제나 곁에서 지켜보는 한편, 한결같이 손길을 내밀고 어깨동무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무엇을 지키고 가꾸고 돌보아야 하느냐는 마음을 튼튼하게 가다듬고 있기 때문에 ‘좋은’ 사진 하나 얻는다고 봅니다.

 ‘좋은’ 사진뿐 아니라, ‘좋은’ 글이나 ‘좋은’ 그림이나 ‘좋은’ 책이나 ‘좋은’ 노래는 따로 없다고 하지만, ‘좋은’ 무엇이란 어김없이 있습니다. ‘좋은’ 사람 또한 틀림없이 있습니다. 바로 우리 옆에 있습니다. 우리 옆지기가 좋은 사람이고, 우리 옆에 있어 주는 동무가 좋은 동무이며, 우리 옆에서 믿고 사랑하는 이웃이 좋은 이웃입니다. 돋보이고 아니고가 아니라, 내보이고 아니고가 아니라, 돈벌이가 되고 아니고를 떠나, 예술이 되고 아니고를 떠나, 함께 웃고 울 수 있는 이야기가 될 때에 비로소 ‘사진’이라는 이름이 붙으며 우리 가슴에 곱다시 내려앉는다고 봅니다. (4343.1.7.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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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해한모리군 2010-01-14 12: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래 가지고 싶던 사진집이라 땡투하고 구매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