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천히 걸어

 


버스를 타고
기차를 타고
자가용을 타면,

 

아픈 몸
안 나아요.

 

천천히 걸어
도시를 벗어나고
자동차 배기가스와 소리 다 없는
조용한 시골에 닿아
풀내음과 나무노래 들으며
햇볕 쬐고 새들 날갯짓과 함께
하루를 누리면,

 

내 몸 구석구석
개운하고 튼튼해
아플 곳 없어요.

 


4347.1.4.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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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집에 두고 나온 아이들

 


  내가 왜 시외버스에서 이렇게 골골대면서 몸이 아팠는가를 돌아본다. 스스로 마음을 제대로 다스리지 못한 탓일 텐데, 왜 나는 시외버스에서 마음을 제대로 다스리지 못했을까. 언제나 아이들과 함께 움직이는 삶인데, 아이들을 시골집에 두고 나온 탓 아닌가. 아이들하고 함께 다닐 만한 곳에 다니며, 아이들이 곁에서 신나게 놀 수 있을 만한 데에서 일을 하려는 내 뜻과 길인데, 이런 흐름하고 엇나가면서 몸을 축냈기 때문 아닌가.


  아이들하고 언제나 같은 자리에 있으면 아플 일이 없다. 아이들과 맛나게 밥을 먹으면 아플 일이 없다. 아이들과 신나게 뛰놀다가 어른인 내 일을 하면 힘들거나 고될 일이 없다.


  아이들이 위층 아래층 걱정하지 않고 개구지게 뛰놀 수 있는 보금자리일 때에, 어른도 씩씩하고 아름답게 일할 수 있다. 아이들이 뭐 잘못 만질까 걱정할 일이 없이 신나게 놀 수 있는 터전일 때에, 어른도 착하고 참답게 일할 수 있다.


  어른도 속이 아프고 머리가 어지러운 시외버스라면, 아이들은 얼마나 힘들까. 어른도 도시에서 자동차 소리로 귀가 아프고 매캐한 바람 때문에 재채기가 나오면, 아이들은 얼마나 고될까. 아이들이 즐겁게 다니면서 방긋방긋 웃을 수 있는 마을이 되어야지 싶다. 아이들이 스스럼없이 웃으면서 맑게 노래하고 뛰놀 만한 도시요 시고이 되어야지 싶다. 4347.1.4.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아빠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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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옥 님 만화를 다시 읽으며

 


  경상남도 진주에 있는 헌책방 〈소소책방〉에 들렀는데, 마침 《스타가 되고 싶어?》 1권과 2권이 있다. 아, 강경옥 님 옛날 만화책이네. 고등학생 때 읽은 만화책인데 아주 새삼스럽다. 아무 망설임 없이 장만한다. 수없이 읽은 만화책이고, 서재도서관에도 갖춘 만화책이지만 다시 장만한다.

  차근차근 읽는다. 고등학생이던 지난날 느낌을 떠올리고, 마흔 살 오늘날 느낌을 되새긴다. 아름답구나. 예쁘구나. 이런 이야기를 그무렵 청소년은 얼마나 두근두곤 설레면서 읽었던가. 강경옥 님 만화를 놓고서 얼마나 오랫동안 신나게 수다를 떨었던가.


  그런데 1993년에서 스무 해가 흐른 2013년에 강경옥 님 만화책 가운데 《설희》를 표절한 연속극이 공중파에서 흐른다. 적잖은 사람들은 표절이고 아니고 안 따지면서 공중파 연속극을 즐긴다. 더 많은 사람들은 표절인 줄 아닌 줄 하나도 모르면서 공중파 연속극에 사로잡힌다.


  아름다움을 가슴에 품고 살아가는 사람은 예나 이제나 아름다움을 사랑스러운 빛으로 선보인다. 꿈 씨앗을 마음밭에 심으며 살아가는 사람은 어제도 오늘도 꿈 씨앗을 스스로 가꾸고 돌보면서 하루를 맑게 빛낸다. 4347.1.4.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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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에는 그랬다

 


  1996년 1월에 군대에서 처음 휴가를 받아 강원도 양구를 벗어난 뒤, 지오피 경계근무를 마치고 다른 산속으로 주둔지를 옮기고서 두 번째 휴가를 받았는데, 나를 아끼던 고참 한 분이 한 가지를 부탁했다. 〈이등병의 편지〉 노랫말을 알고 싶은데 바깥에 나가면 알아보아 달라고 했다. 그래서, 이 노래가 담긴 테이프를 하나 장만하고, 노랫말을 종이에 옮겨적어서 부대로 돌아갔다. 노랫말 적힌 종이를 고참한테 건네고, 그러니까 이이는 전역을 곧 앞둔 병장이었는데, 더듬더듬 노래를 불러 주었다. 잘 부르는 노래는 아니었지만, 고참은 노랫말을 새기고 노래를 들으면서 눈물을 흘렸다. 나는 김광석이 아닌데 내가 부르는 이 노래로도 누군가는 눈물을 흘리는구나.


  고참은 테이프를 받아 이 노래를 몰래 한참 들었다. 김광석 님은 군부대로 공연을 다니시기도 했지만, 내가 있던 부대로 위문공연을 온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내가 있을 무렵뿐 아니라 내 앞에 다른 이들 있을 적에도, 강원도 양구에서도 한참 안으로 깊숙하게 들어간 비무장지대 아닌 ‘완전 무장지대’에서도 영토가 남녘이 아닌 북녘 경계에 있던 우리 부대로는 참말 어느 누구도 위문공연을 오지 않았고, 그런 일도 없었다 한다. 우리 부대에서는 ‘위문공연’이라는 말조차 아무도 몰랐다. 그래서인지는 모르나, 김광석 님 노래는 부대에서 ‘불온노래’였고, ‘반입금지 물품’ 가운데 하나가 김광석 님 노래테이프였다.


  언젠가 그 고참이 이 노래테이프를 듣다가 하사관한테 걸려서 빼앗겼다. 노래테이프를 부대로 갖고 들어온 나까지 하사관한테 불려갔다. 한참 꾸지람을 듣고 얼마 뒤, 하사관이 이 노래테이프를 들어 보았는지, 아무 말 없이 돌려주었다. 불온노래요 반임금지 물품 목록에 든 노래태이프였지만, 아무 말썽이 없이 지나갔다.


  이 노래테이프는 여러 사람 손을 거치면서 우리 중대에서 그야말로 테이프가 늘어지도록 돌아갔다. 이등병에서 일등병이 되고, 어느덧 병장이 되고 여섯 달 뒤에 전역할 무렵, 내가 아끼는 후배한테 이 노래테이프를 물려주었다. 이 노래테이프는 그 뒤에 어떻게 되었을까. 너무 늘어져서 못 듣게 되었을까.


  그때에는 그랬다. 이 노래테이프가 걸릴까 걱정한 고참들은 겉에 붙은 스티커를 박박 벗겼다. 이렇게 하면 안 걸릴까 싶어. 그런데, 내무반검사를 하는 행정보급관이나 중대장이나 하사관은 ‘스티커를 벗긴 노래테이프’를 오히려 더 의심하고 빼앗는다. 참말, 그때에는 그랬다. 살아남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살아서 바깥으로 돌아가려고 노래 하나에 목숨을 걸었다. 4347.1.4.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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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석 님 책 느낌글

 


  김광석 님 책을 읽는다. 김광석 님이 남긴 글조각을 묶었다고 한다. 글조각은 얼마 안 되는데 빈자리를 무척 많이 두었다. 양장을 퍽 두껍게 했다. 떠난 이를 기리는 뜻이라 이렇게 했으리라 싶으면서도, 작고 도톰하게, 살가우면서 앙증맞게 엮을 수 있었으리라 느낀다. 짤막하게 쓴 글이 많은 만큼, 빈자리를 넓게 두기보다는 훨씬 자그마한 판과 가벼운 책으로 꾸며 늘 주머니에 넣고 다니면서 애틋하게 되새길 수 있도록 하면 얼마나 좋았으랴.


  글이 짧아 퍽 빨리 읽고 덮는다. 다 읽은 책을 덮고 나서 무언가 허전하다. 무엇이 허전했을까.


  시골집으로 돌아가는 기차를 타러 가기 앞서, 여관에서 기차때를 기다리며 김광석 님 책 느낌글을 쓴다. 느낌글을 쓰다가 비로소 가슴에 쨍 하고 울리는 소리를 듣는다. 그래, 김광석 님이 한창 노래잔치를 열다가 어느새 이슬이 된 그무렵, 나는 신문배달을 하던 ‘대학교 자퇴를 하려고 생각하던’ 젊은이였고, ‘대학교 엉성한 교육에 진절머리를 내면서 군대에 들어가 뒹굴던’ 숨결이었다. 아버지가 커다랗게 틀어놓은 텔레비전에 자막으로 김광석 님 마지막 이야기가 흘렀는데, 그때는 내가 군대에 들어가 훈련소에서 받은 연대장 표창장에 딸린 휴가증을 갖고 며칠 집으로 돌아온 날이었다. 스치듯이 텔레비전 자막으로 짧은 이야기를 읽었고, 이튿날 다시 군대로 돌아가서 지오피에 여섯 달 처박혔다. 김대중 님이 대통령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군대 간부들이 반란 일으키지 않을까 두려움에 떨면서 1997년 12월 31일에 전역을 했고, 국제통화기금 찬서리가 내린 서울에서 다시 신문배달을 하며 이태를 살았다. 이동안 김광석 님 노래테이프를 늘어지도록 들었고, 새벽에 신문을 돌리면서 목이 터져라 부르곤 했다.


  느낌글을 쓰다가 그무렵 그 이야기들이 하나둘 떠오른다. 그렇구나. 그런 이야기가 나한테 있었구나. 입시지옥에서 벗어나 대학교라는 데에 왔지만, 막상 이 대학교에서 선배라는 이들이 후배를 때리고 얼차려 주고 머리박기 시키고 허구헌날 술만 퍼먹이고, 교수나 강사라는 이들은 시간때우기만 하고, 도서관에는 소설책과 토익책만 가득하고, 대학교 앞 책방은 장사가 안 되어 하나둘 문을 닫고, 동무들은 선배를 깎듯이 모시기만 하면서 밤새도록 술을 퍼마시다가 곳곳에 웩웩 게우고, 이런 틈바구니에서 괴로워 대학교란 데를 때려치우자고 생각하던 마음에 김광석 님 노래가 조그맣게 빛줄기가 되었지. 〈이등병의 편지〉가 담긴 테이프를 몰래 군대로 가지고 와서, 군대에서 나를 살가이 아끼던 고참과 후배한테 빌려주며 모포를 뒤집어쓰고 눈물 적시며 들었지.


  빛이 있기에 빛이 퍼지고, 빛이 있어 빛을 포근하게 안는구나. 4347.1.4.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삶과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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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4-01-04 13:40   좋아요 0 | URL
저도 이 책이 나왔을 때 관심이 있었는데 너무 고급으로 만들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을 했었습니다.
물론 한 시대를 풍미했던 가객의 책이니 허접하게 만드는 것도 예의는 아니겠죠.
하지만 너무 비싸게 만드는 것도 상술이란 점을 배제할 수 없으니
적당한 상한선은 있었어야 하리라 생각됩니다.
즉 사람과 독자를 연결 시켜준다는 좀 더 고상한 목표가 있었으면 좋았을 것을...
그래도 김광석을 좋아하는 사람은 이 책을 샀을 것이고, 앞으로도 사겠죠?

파란놀 2014-01-04 18:02   좋아요 0 | URL
'고급'으로 만들었다기보다
'품위 아닌 품위'를 갖추려 하다 보니
껍데기가 부풀려졌구나 싶어요.

예쁘게 꾸미는 일과
고급으로 하는 일은
좀 다르잖아요.

왜 더 김광석 님 노래와 삶과 이야기를
헤아리지 못했나 싶어요.

생각해 보면,
김광석 님 음반을
적어도 1000번쯤이라도 들었으면
책을 이렇게 만들지 않았으리라 생각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