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흥 군내버스 003. 할머니 보퉁이

 


  마을 할매가 광주로 마실을 갑니다. 할매는 귤상자를 보자기로 싸서 들고 갑니다. 상자는 귤상자이지만 속에는 온갖 먹을거리가 담겼겠지요. 시골에서 흙을 일구어 거둔 여러 가지를 이래저래 손질하고 여러모로 버무린 먹을거리가 가득하겠지요. 할매는 짐보퉁이가 무거워 잘 들지도 못하시는데, 이 보퉁이를 땀을 빼며 들고 갑니다. 택배로 부쳐도 좋으련만 택배값 얼마를 아끼고 싶으실 테고, 할배 경운기를 빌어 우체국까지 다녀오는 길도 멉니다. 깨지거나 쏟아지는 먹을거리는 섣불리 택배로 못 부치기도 합니다. 그러면, 도시로 떠나 살아가는 이녁 딸아들이 시골로 찾아와서 이 보퉁이를 가지러 들를 수 있을까요. 그래도, 할매는 이녁 아이들을 보러 마실을 떠날 적에 빈손으로 가지 못합니다. 이것 챙기고 저것 꾸리다 보니 어느새 매우 묵직한 보퉁이가 됩니다. 2014.3.13.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고흥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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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흥 군내버스 002. 버스 탈 적에

 


  시골에서 군내버스를 타거나 택시를 타거나, 언제나 할매가 먼저 오릅니다. 방정맞은 할배라면 할매보다 앞서서 타기도 합니다. 마을에서 잔치가 있어 고기집에서 모임을 하면, 고기집 작은 버스가 마을로 찾아오는데, 이때에도 할매부터 한 분씩 버스에 다 올라서 앞쪽 자리에 앉습니다. 이렇게 할매들이 다 타고 나서야 할배들이 한 분씩 올라서 뒤쪽 자리에 앉아요. 짐을 드는 몫도 할배입니다. 할배 허리가 안 좋다면 모르되, 노란 보퉁이가 되든 빨간 보따리가 되든 언제나 할배가 짐꾸러미를 듭니다. 2014.3.13.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고흥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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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흥 군내버스 001. 버스 기다리기

 


  마을 할매와 할배가 나란히 마을 어귀 버스터에 앉으신다. 시골에서는 남녀가 아직도 따로 떨어져야 하기에, 할매와 할배는 버스터 걸상에서도 살짝 떨어져 앉는다. 정작 버스에 올라타면 두 분이 나란히 앉아야 할 테지만, 언제나 이렇게 떨어져 앉는다. 그런데, 이녁 아이들이 사는 광주나 서울로 먼 마실을 갈 적에 시외버스에서는 함께 앉아도, 군내버스를 타고 읍내로 갈 적에는 서로 딴 자리에 앉는다. 군내버스에서 할매와 할배가 나란히 앉는 모습을 아직 못 보았다. 겨울이 저물고 봄이 천천히 퍼지는 삼월 첫무렵, 이웃 할매와 할배를 마을 어귀 버스터에서 만난다. 2014.3.13.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고흥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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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고흥 시골마을에서 살아가며

자가용 없는 삶을 이으니

늘 자전거를 타거나 군내버스를 탑니다.

 

군내버스를 타고 오가는 동안 만나는 이야기를

사진 한 장씩 따로 나누어 갈무리하려고 합니다.

 

고흥에 뿌리를 내린 2011년부터

군내버스 사진을 신나게 찍었어요.

2014년으로 접어든 이즈음

비로소 이 사진들을 차곡차곡 그러모으자고 생각합니다.

 

예전에 찍은 사진은 틈틈이 띄우고,

새로 찍은 요즈막 사진부터 하나씩 올립니다.

 

도시에서 살았더라면 '시내버스'를 찍었을까 궁금하지만,

아무래도 시내버스는 저한테는 그리 재미있지 않고,

시골길과 들길과 바닷길을 달리는 군내버스가

재미있어서 곧잘 사진으로 담습니다.

 

사진으로 즐겁게 누려 주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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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자말 ‘존재’가 어지럽히는 말과 삶
 (171) 존재 171 : 궁극의 존재

 

궁극의 존재라도 된 줄 알겠지만, 넌 그게 다야
《아라카와 히로무/서현아 옮김-강철의 연금술사 : 완전판 18》(학산문화사,2013) 126쪽

 

 궁극의 존재라도 된 줄
→ 하느님이라도 된 줄
→ 가장 높은 것이라도 된 줄
→ 가장 뛰어난 사람이라도 된 줄
→ 가장 끝까지 간 줄
→ 마지막에 이를 수 있는 넋이 된 줄
→ 스스로를 뛰어넘기라도 한 줄
 …


  한국말사전에서 ‘신(神)’을 찾아보면 “종교의 대상으로 초인간적, 초자연적 위력을 가지고 인간에게 화복을 내린다고 믿어지는 존재”로 풀이합니다. ‘신’이라고 한다면 “어떤 존재”를 가리키는 셈이라 하겠습니다.


  이 보기글에 나오는 “궁극의 존재”는 ‘신’입니다. 마지막에 이를 수 있다고 여기는 어떤 모습이기에 ‘존재’라는 낱말을 빌어서 이야기합니다. 한국말사전에서도 ‘신’을 ‘존재’라는 낱말을 빌어서 가리키는 만큼, 이 한자말은 이런 자리에서 꼭 써야 한다고 여길 만합니다.


  그러면, 1900년대 첫무렵이나 1700년대를 살던 한겨레는 어떤 낱말로 “마지막에 이르는 모습”이나 “가장 높은 자리에 서는 모습”을 가리켰을까요? 1000년대나 100년대, 또는 기원전 2000년대에는 어떤 낱말을 썼을까요? ‘존재’라는 한자말이 이 땅에 들어오지 않았을 적에 시골에서 흙을 만지며 살던 한겨레는 어떤 낱말을 빌어 ‘신’이나 ‘하느님’ 모습을 그렸을까요?


  예전에는 ‘신’이라는 낱말도 없습니다. 그저 ‘하느님’입니다. 한겨레에서 ‘하느님’은 종교에서 가리키는 그분이 아닙니다. 사람이라는 목숨붙이를 넘어서는 어떤 분을 가리켜 ‘하느님’이라 했습니다. 곧, 하느님은 하느님이요 신 또한 하느님입니다. “궁극의 존재”를 가리킬 적에도 한겨레는 언제나 ‘하느님’이라 했습니다.


  때로는 짧게 간추려서 ‘님’이라 했고 ‘그분’이라고도 했습니다. “그분이 오셨다”라든지 “님이 오셨다”고 할 적에는, 섬기거나 우러르는 어떤 사람을 가리키기도 하지만, 사람과는 다른 자리에서 숨쉬는 넋을 가리키기도 했습니다. 4347.3.16.해.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하느님이라도 된 줄 알겠지만, 넌 그게 다야

‘궁극(窮極)’은 “어떤 과정의 마지막이나 끝”을 뜻합니다. “궁극의 존재”에서는 마지막에 이를 수 있는 무엇, 곧 “가장 높은”이나 “가장 뛰어난”이나 “마지막에 이를 수 있는”으로 손볼 때에 어울리는구나 싶습니다.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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