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하는 책읽기

 


  사무실에 스스로 갇혀 공무를 수행하는 사람은 노래를 부를 수 없다. 공장에 깃들어 기계를 다루어야 하는 사람은 빈틈이 조금이라도 생기면 손이 잘리거나 물건이 망가지니 노래를 부를 수 없다. 햇볕을 쬐지 못하니 노래를 부를 수 없다. 바람을 마시지 못하고 빗물을 받아먹지 못하니 노래를 부를 수 없다. 꽃내음과 풀내음이 없는 자리에서는 노래를 부를 수 없다. 구름과 무지개를 누리지 못하는 곳에서는 노래를 부르지 못한다. 새와 풀벌레와 개구리하고 나란히 살아가지 못하는 데에서는 노래를 부르지 않는다.


  이제 사람들은 노래를 잊거나 잃는다. 이제 사람들은 스스로 노래를 짓지 못한다. 이제 사람들은 방송에서 흐르는 대중노래를 소비하기만 한다. 이제 사람들은 이녁 삶이 노래가 되는 줄 깨닫지 않는다. 이제 사람들은 이녁 삶에서 날마다 노래가 태어나거나 자라는 흐름을 바라보지 못한다. 이제 사람들은 이녁 아이한테 노래를 물려주지 못한다. 이제 사람들은 이녁 하루에 노래를 담지 않으니, 노래하는 사랑과 꿈을 모른다. 이제 사람들은 책을 노래하듯이 읽거나 쓰지 못한다. 4347.3.18.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여관에 들다

 


  여관에 들어온다. 여러 날만에 셈틀을 만진다. 비로소 느긋하게 글을 몇 줄 적을 수 있다. 온몸이 뻐근하고 결린다. 사흘 동안 책방마실 길동무 노릇을 하면서 경상남도와 강원도와 서울을 오락가락하면서 지낸다. 날짜로는 오늘까지 사흘이지만 여러 해 흐른 듯하다고 느낀다. 시골집에 있는 곁님과 아이들은 잘 놀면서 즐겁게 지낼까? 봄꽃 흐드러진 시골집에서 모두들 오순도순 이야기꽃을 피울까. 얼른 씻고 밀린 빨래를 하면서 허리부터 펴고 보아야겠다. 4347.3.19.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고흥 떠나 통영 마산 진주 거쳐 서울을 돈 뒤 춘천으로 간다. 얼마나 신나게 바삐 도는지 피시방 들를 겨를조차 없다. 아름다운 사람들 만난 얘기 얼른 풀어내고 싶다. - 춘천 가는 기차에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오늘부터 며칠 마실을 간다.

아이들과 곁님이 지낼 시골집에

먹을 밥과 국을 미처 못 끓인다.

부랴부랴 길을 나서야 하는데

아무쪼록

다들 밥 잘 먹고 씩씩하게 놀면 좋겠다.

얼른 이웃마을 버스터까지 달려가야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불받침꽃과 등잔풀(등대풀) 푸른 빛

 


  새봄에 돋는 풀꽃은 으레 하얗거나 발그스름하거나 파르스름하거나 노르스름하다. 그런데, 이런 알록달록 봄꽃잔치 사이에서 푸르스름한 빛으로 피어나는 꽃이 있다. ‘불받침꽃’이요 ‘등잔풀꽃’이다. 일본 풀이름으로는 ‘등대풀’이다.


  아이들과 함께 발포 바닷가에 찾아가서 바닷바람을 쐬며 쉬는데, 발밑에 알록달록 앙증맞게 올라온 너를 보고는 사뭇 반갑다. 네 곁에 함께 피어나는 봄까지꽃을 보면서 더욱 반갑다. 봄까지꽃은 꽃송이가 갓난쟁이 손톱보다 훨씬 작은데, 불받침꽃 너도 그리 크지는 않구나. 아마 네가 꽃인 줄 알아보는 사람도 드물지 않을까. 너를 꽃으로 여기며 예뻐 할 사람도 아주 없지 않을까.


  나는 너한테 새롭게 이름을 붙여 주고 싶다. 푸르스름한 잎사귀가 벌어져 받침을 이루고, 푸른 받침 사이에 아주 조그맣게 맺는 풀빛 꽃송이를 떠올리면서, 너는 푸른 불꽃을 받치는 꽃이라고, ‘불받침꽃’이라고 이름을 붙여 본다. 봄을 밝히는 푸른 불꽃이 되자. 봄을 환하게 노래하는 푸른 불씨가 되자. 4347.3.16.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꽃과 책읽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