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늘 왼쪽에 앉는다 창비시선 243
류인서 지음 / 창비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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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말하는 시 66



시와 한가위

― 그는 늘 왼쪽에 앉는다

 류인서 글

 창비 펴냄, 2005.3.15.



  한가위가 되니, 시골에는 자동차가 부쩍 늘어납니다. 우리 마을에도 이웃 여러 마을에도 온통 자동차투성이입니다. 여느 때에는 볼 수 없는 온갖 자동차가 마을마다 가득합니다.


  아마 서울을 비롯해 여러 도시에는 자동차가 부쩍 줄었을 테지요. 거의 다 시골로 왔을 테니까요. 그래서 한가위 언저리에는 어디 움직이고 싶은 마음이 안 듭니다. 조용하고 깨끗하던 시골에 시끄러운 소리에다가 어지러운 자동차 물결에다가 매캐한 배기가스가 춤추기 때문입니다.



.. 운주사 골자기에서 비 잠시 긋는 동안 / 바위와 석탑을 머리에 이고 선 석불 곁에 / 먹을 것 마실 것 힘겹게 지고 온 배낭나찰을 내려 기대 놓는다 ..  (운주에 오르다)



  한가위 언저리에 시골마을에 자동차가 빼곡하게 들어서면서, 곳곳에서 아이들 목소리가 들립니다. 여느 날에는 저녁 여덟 시만 되면 마을마다 불을 다 끄는데, 한가위 언저리에는 저녁 열 시가 넘도록 불을 안 끄는 집이 수두룩합니다. 이때까지 아이들 목소리가 들리곤 합니다. 깊어 가는 밤에 아이들 쉬를 누인 뒤 쉬통을 비우고는 나도 쉬를 한 뒤 집으로 들어가면서 이웃집 불빛을 바라봅니다.


  대청마루로 들어서는 모기문을 열면서 문득 한 가지를 떠올립니다. ‘시끄럽다.’ 모처럼 시골에 아이들 목소리가 들리지만, 왜 그런지 자꾸 ‘시끄럽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냥 시끄럽습니다.


  먼 도시에서 오랫동안 달려 시골까지 달려온 아이들은 ‘할머니 할아버지 집’에 틀어박혀 바깥으로 안 나옵니다. 그냥 그렇습니다. 마당에서 놀거나 고샅을 달리는 아이를 찾아볼 수 없습니다. 아직 가을걷이를 하지 않았으니 빈들이 없어 들에서 놀 수 없기도 하지만, 마을 어귀 빨래터에서 물놀이를 하는 아이도 없습니다. 한가위이고 설이고 연을 날리는 아이도 없습니다. 하다못해 폭죽놀이라도 하는 아이마저 없습니다.



.. 몸에 무수한 방을 가진 남자를 알고 있다 / 햇살방 구름방 바람방 풀꽃방 / 세상에, 남자의 몸에 무슨 그리 많은 방을 ..  (그 남자의 방)



  아이들은 도시에서도 ‘집에 틀어박혀’ 지내고, 한가위를 맞이해서 시골로 왔어도 ‘집에 코 박혀’ 바깥으로 안 나옵니다. 모처럼 애써 시골에 왔지만, 아이뿐 아니라 어른도 바깥으로 나다니지 않습니다. 바깥바람을 쐰다든지 숲길을 거닌다든지 나무그늘에 앉는 어른도 아이도 없습니다.


  어쩔 수 없을 테지만, 오늘날 시골에는 숲정이가 없어요. 마을 둘레 나무를 거의 다 베었기에 숲정이가 남아날 수 없습니다. 시골집 가운데 마당나무 한 그루라도 제대로 건사하는 집이 드뭅니다. 마당나무 한 그루쯤 있어도 가지를 죄 치거나 목아지를 뎅겅 베어 그늘이 없습니다.


  한가위나 설을 맞이해서 시골로 왔지만, 정작 마당이나 바깥에서 어울리지 못하는 사람들을 탓할 수 없습니다. 집 바깥으로 나와도 갈 데가 없기 때문입니다. 도시에서나 시골에서나 사람들은 집 바깥에서 어울릴 수 없습니다. 집 바깥에서 어울릴 너른 터나 마당이나 자리가 거의 사라졌습니다.



.. 하늘색 빨래걸이에 말그레 웃고 있는 몇잎의 빨래 / 그것의 입김이었습니다, 프리지어향 산뜻한 ..  (빨래꽃)



  류인서 님 시집 《그는 늘 왼쪽에 앉는다》(창비,2005)를 읽습니다. 늘 왼쪽에 앉는다는 그는 어떤 사람일까요. 그는 늘 왼쪽에 앉는다지만 ‘왼쪽’은 어디일까요. 누가 보기에 왼쪽일까요. 왼쪽이라고 해 본들 언제까지 왼쪽이 될 만할까요.


  아무래도 왼쪽에 앉고 싶으니 왼쪽에 앉을 테지요. 스스로 왼쪽이 좋으니 왼쪽에 앉을 테고요.



.. 누적된 불면에 현기증까지 겹친 마녀가 어느날 굳게 성문을 잠가버렸어, 부엌의 밥솥 타이머를 정확히 백년에 맞춰두고 풍덩, 잠솥에 빠져버린 거야. 재미있지 않니? 백년 동안의 뜨거운 솥단지를 생각해봐, 그동안 여기서는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일들이 다 일어났지 ..  (뚱딴지)



  날이 새로 밝고 한가위 연휴가 끝나면 시골마을을 가득 채우던 자가용은 모두 떠나리라 생각합니다. 모처럼 시골집마다 늦도록 불을 밝히던 아이들도 모조리 사라지리라 생각합니다.


  가만히 보면, 애써 시골로 나들이를 왔어도, 도시내기 어른들이 시골에서 할 만한 일이 없습니다. 애써 시골로 와서 늙은 어버이가 못하는 농약치기를 해 줄까요? 뭐, 안 해 줘도 됩니다. 요사이 시골 어르신들은 농협에 돈을 주고는 ‘농약 헬리콥터’를 사서 씁니다. 시골 어르신들은 이제 돈만 있으면 됩니다. 일꾼이 없어도 됩니다. 다 농약을 치니까 풀을 낫으로 벨 일도 없습니다. 풀을 베어야 해도 기계로 슥슥 밀 뿐이니, 도시내기가 거들 일이 그야말로 없습니다. 손으로 나락을 벨 일도 없으니, 이앙기를 사서 쓰도록 돈만 있으면 됩니다.


  젊은 사람은 도시에서 돈을 법니다. 늙은 어버이는 시골에서 돈을 들여 기계를 부리고 농약을 부립니다. 아이들은 도시와 시골 사이를 가끔 오가지만, 도시와 시골이 무엇이 다른가를 느낄 겨를이 없습니다. 시골로 왔어도 꽃이나 나비를 볼 틈이 없습니다. 시골에 왔지만 나무나 숲을 만나지 않습니다.



.. 소꿉시절 잃어버린 손거울을 꿈에서 찾았다 / 내 손바닥 안의 작은 연못 / 빛의 방죽길 ..  (거울연못)



  류인서 님은 이녁 시집에서 ‘늘 왼쪽에 앉는 그’를 노래합니다. 왼쪽에 앉는 그가 있으면 오른쪽에 앉는 이웃이 있을까 궁금합니다. 왼쪽에 앉는 그 사람 곁에는 아무도 없을는지, 오른쪽을 차지하는 이웃이 있을는지, 아니면 더 왼쪽에 앉는 동무가 있을는지 궁금합니다.


  이웃 어르신들이 하도 농약을 뿌려대어 풀벌레도 얼마 살아남지 못했기에, 더할 나위 없이 조용한 한가위가 흐릅니다. 아마 보름달이 떴겠지요. 그러나 보름달을 구경하는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마을 고샅을 거니는 발걸음 소리를 아직 못 들었습니다. 4347.9.9.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시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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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찍는 눈빛 44. 누구나 한 걸음씩



  사진을 찍을 적에는 누구나 한 걸음씩 걷습니다. 어떤 이는 한꺼번에 열 걸음이나 백 걸음쯤 걷는구나 하고 느낄 수 있을 테지만, 그 사람들도 언제나 한 걸음씩 걸을 뿐입니다. 더 빨리 걷는 사람이나 더 많이 걷는 사람은 없습니다. 누구나 한 걸음씩 걷습니다.


  잘 걷다가 제자리걸음을 하거나 뒷걸음을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한참 걸음을 멈추고 가만히 서는 사람이 있습니다. 아예 눌러앉는 사람이 있습니다. 깡충깡충 이리 뛰고 저리 뛰다가 지치는 사람이 있습니다. 저마다 삶이 다르고 넋이 다르기에 걸음새가 달라요. 누군가는 한 걸음씩 내딛는 삶을 지겨워 하거나 따분하게 여깁니다. 누군가는 한 걸음씩 내딛으며 빙그레 웃거나 활짝 웃습니다.


  한 걸음씩 모여 천 리를 걷거나 만 리를 걷습니다. 한꺼번에 천 리 걸음이나 만 리 걸음을 내딛지 않아요. 꾸준하게 걸어서 천 리 걸음이나 만 리 걸음이 됩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내 걸음걸이를 스스로 느끼는 사람은 늘 새롭습니다. 내 걸음걸이를 스스로 살피는 사람은 언제나 새삼스럽게 삶을 누립니다.


  어느 날 문득 아주 놀랍다 싶은 사진을 찍을 수 있어요. 그러면, 놀랍다 싶은 사진이란 무엇일까요? 처음일까요? 끝일까요? 아무것도 아니에요. 내가 디디는 걸음 가운데 그저 하나일 뿐입니다. 이곳에서 저곳까지 걸어가는 동안에 만날 수 있는 수많은 빛 가운데 하나일 뿐입니다.


  참으로 빼어나다 싶은 사진을 한 장 찍을 수 있어요. 그렇지요. 그러면 생각해 보셔요. 참으로 빼어나다 싶은 사진은 무엇입니까? 이런 사진 한 장을 얻고 싶어서 사진을 찍습니까? 이런 사진 한 장을 얻었으니, 이제 사진을 더는 안 찍어도 됩니까?


  세계 사진 역사를 밝히는 수많은 사진가들은 참으로 놀랍다 싶은 사진을 찍어서 나누어 줍니다. 어떤 이는 참으로 놀랍다 싶은 사진이 ‘처음이자 끝’입니다. 어떤 이는 참으로 놀랍다 싶은 사진이 ‘날마다 걷는 걸음걸이 가운데 하나’입니다. 사진을 어떻게 찍고 싶은지 스스로 생각해야 합니다. ‘멋진 한 장’을 찍으면 더 안 찍어도 될 사진일까요? 멋진 노래 한 가락을 지었으면 더 노래를 안 불러도 될까요? 멋진 글을 한 꼭지 썼으면 더 글을 안 써도 될까요? 맛난 밥을 한 끼니 지었으면 이제 더 밥을 안 짓고 안 먹어도 될까요?


  가슴이 찡하도록 떨리는 사진 한 장을 얻었다면, 이 사진은 내 기나긴 사진길 가운데 ‘오늘 하루’를 밝히는 즐거운 열매입니다. 오늘 하루 열매를 먹었으니 이튿날에도 열매를 먹을 수 있기를 빌어요. 모레와 글피에도 새로운 열매를 먹고 활짝 웃을 수 있기를 빌어요. 4347.9.9.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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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아이 198. 2014.9.8. 누나야 여기 봐



  산들보라가 누나를 부른다. 둘리 만화책을 펼치고는 낯익은 어떤 그림을 짚은 뒤 “누나야, 여기 봐!” 하는데, 누나는 거들떠보지 않는다. 누나는 일찌감치 다 본 만화책이고 스스로 다 안다고 여겨, 동생이 불러도 입으로만 “응” 할 뿐 고개조차 안 돌린다. 동생은 누나한테 보여주고 싶어서 자꾸 부르는데 누나는 안 쳐다보고, 동생은 자꾸 부르다가 나중에는 책을 들고 누나 코앞에 디밀지만, 누나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산들보라야, 그냥 너 혼자 봐야겠네. 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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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난감 자동차 놀이 4 - 시계를 달리다



  산들보라는 장난감 자동차를 어디에서나 굴린다. 아니, 산들보라는 장난감 자동차가 어디에서나 구르면서 마음껏 나들이를 다닐 수 있도록 한다. 바다를 하늘을 들을 마룻바닥을, 그리고 시계를 달리도록 한다. 4347.9.9.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놀이하는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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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기놀이 1



  책꽂이를 비추는 햇볕을 가리려고 발을 드리웠다. 산들보라는 문득 발을 천천히 말아올리더니 손을 놓아 촤르륵 내린다. 발을 말았다가 펴는 일이 놀이가 되는 줄 알아챈다. 어떻게 알았을까. 아이 스스로 문득 떠올렸겠지. 스스로 재미있다고 여겨 자꾸자꾸 발을 말았다가 폈다가 되풀이한다. 4347.9.9.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놀이하는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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