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읽히기 기다리는 사진책 64

 


살아가는 사랑으로 빚는 사진
― 北邊の原野を驅ける キタキツネ
 다케타쓰 미노루(竹田津 實) 글·사진
 平凡社 펴냄,1974.11.5.

 


  들짐승을 찾아다니며 사진을 찍는 사람이 제법 많습니다. 이 가운데 누군가는 들짐승처럼 ‘들사람’이 되어 사진을 찍고, 누군가는 들짐승을 멀거니 바라보는 ‘구경꾼’이 되어 사진을 찍습니다. 생각해 보면, 들짐승을 찍는 사람만 ‘들사람·구경꾼’ 사이를 오가지 않습니다. 크고작은 도시에서 골목동네를 사진으로 찍는 이들도 ‘골목사람’이 되거나 ‘구경꾼’이 돼요. 골목동네에서는 ‘골목사람·구경꾼’ 사이에서 오간다 하겠어요. 숲으로 들어서며 꽃을 사진으로 찍는 사람이라면 ‘꽃사람·구경꾼’으로 나눌 만하겠지요. 멧골에서는 ‘멧사람·구경꾼’으로 갈릴 테고, 시골에서는 ‘시골사람·구경꾼’으로 벌어지겠지요.


  여느 살림집에서 아이들을 사진으로 찍는 어버이일 때에도 이처럼 살필 수 있어요. 아이들과 살가이 부대끼며 사랑을 담아 사진을 찍는 어버이라면 ‘살림꾼’이거나 ‘사랑이’로서 사진을 찍는 셈입니다. 이와 달리, 남들한테 예쁘장하게 보여주려는 사진으로 찍으려 한다면, 아이와 어버이 사이라 하더라도 ‘사진찍기에서만큼은 구경꾼’인 셈이에요.


  바닷사람일 때에 바다를 사진으로 담습니다. 서울사람일 때에 서울을 사진으로 담습니다. 그렇겠지요? 서울사람 아닌 구경꾼으로서도 서울을 사진으로 ‘찍을’ 수는 있어요. 적잖은 이들은 ‘찍힌 서울 모습’을 즐겁게 구경할 수 있어요. 구경하는 사진도 여러모로 재미날 수 있습니다. 재미나게 구경하는 사진에도 여러 가지 이야기가 깃들 수 있어요.

 


  누군가는 일본으로 구경하러 가서 사진을 찍고 글을 써서 책을 낼 수 있습니다. 누군가는 티벳이나 잠비아나 마다가스카르로 구경하러 가서 사진을 찍고 글을 써서 사진잔치를 열 수 있습니다. 구경하는 사람이라서 나쁜 사람이지 않습니다. 구경하는 사람이기에 속살을 못 보거나 못 느끼는 않아요. 다만, 곰곰이 헤아려 봅니다. 나는 내 삶을 구경할 수 있을까요? 나는 내 삶을 구경하듯 하루를 누릴 수 있을까요? 나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그저 구경하기만 할 수 있을까요?


  일본 훗카이도에서 아픈 들짐승을 고치거나 보살피는 일을 하는 다케타쓰 미노루(竹田津 實) 님이 있습니다. 이분은 아픈 들짐승을 고치거나 보살피기 때문에 ‘고쳐 주는 삯’을 한푼도 못 받습니다. 들짐승한테는 사람들이 주고받는 돈이 없으니까요. 그런데, 다케타쓰 미노루 님은 씩씩하게 ‘들짐승 병원’을 호젓한 숲 한켠에 열어 예쁘게 꾸립니다. 어떻게? 사진을 찍고 글을 쓰거든요. 들짐승 이야기를 사진으로 찍고, 들짐승 한삶을 들짐승이랑 이웃이나 동무가 되어 글을 써요.


  한국에는 2005년 8월에 《동물 재판》(웅진주니어)이라는 그림책이 처음 나왔습니다. 이 그림책에는 다케타쓰 미노루 님이 글을 썼어요. 사진책으로는 2007년 2월에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동물병원》(청어람미디어)이 비로소 나왔고, 뒤이어 《숲 속 수의사의 자연일기》(진선북스,2008.1.)와 《아기 여우 헬렌》(청어람미디어,2008.7.)과 《시끌벅적 동물병원의 하루》(청어람미디어,2010.6.)가 나왔어요.

 


  한국에서 나온 ‘일본 훗카이도 들짐승 병원 아저씨’ 책들을 살피면, 모두 어린이책입니다. 일본에서는 어른들 읽는 글책과 사진책이 무척 많이 나왔으나, 아직 이 책들은 한국말로 나오지 않아요. 어쩌면, 어른책은 한국말로 못 나올는지 모르고, 《北邊の原野を驅ける キタキツネ》(平凡社,1974) 같은 사진책은 구경조차 하기 힘들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나는 《北邊の原野を驅ける キタキツネ》라 하는 사진책을 2000년 6월 서울 홍대 앞 헌책방에서 장만했습니다. 이 사진책은 책이름처럼 훗카이도 들판에서 뛰노는 여우를 ‘들여우와 이웃이 되어’ 찬찬히 찍은 사진으로 엮습니다. 2000년 6월에 내가 무엇을 하며 살았나 돌아보니, 그무렵 나는 어린이책 만드는 출판사에서 일하며 ‘세밀화 그림책 자료로 쓸 외국 자연사진책’을 바지런히 모았어요. 출판사 자료실에 없는 책은 영수증을 붙여 책꽂이에 두고, 출판사 자료실에 있는 책은 ‘나 스스로 숲과 들짐승과 들꽃을 배우자’고 생각하며 푼푼이 갈무리했습니다. 그때 출판사에서 일삯으로 다달이 62만 원을 받았기에 《北邊の原野を驅ける キタキツネ》 같은 사진책 장만하며 들인 3만 원으로 살림이 후들거렸지만, 한국에서는 사라진 여우를 볼 수 있을 뿐 아니라, ‘그때에는 아직 이름조차 모른 竹田津 實’이라는 분 사진이 참 아름답다고 여겼어요. 출판사 선배한테서 여러 날 밥 얻어먹자고 생각하며 이 사진책을 장만하고는 선배들한테 빌려주어 읽히곤 했어요.


  2000년 여름날, 헌책방에서 다카타쓰 미노루 님 사진책 하나를 찾아서 건사했지만, 그 뒤로 한국 헌책방에서 이분 사진책을 더 만나지는 못합니다. 그러다 문득 ‘헌책방에 없으면 새책방에 얘기해서 외국도서 주문으로 받을 수 있을까’ 싶어 이것저것 살핀 끝에 수수료를 붙여 다른 들짐승 사진책 세 권을 더 장만합니다. 이분이 처음부터 ‘사진과 글로 돈을 번’ 다음 ‘들짐승 병원은 자원봉사로 꾸리자’고 생각했는지 궁금한데, 아무튼 이분은 사진과 글을 바지런히 쓰고, 또 들짐승을 바지런히 보살피면서 아이들 낳아 키웠고, 들짐승 병원도 알뜰히 지킵니다.

 

 


  돈을 벌 생각이었으면 여느 병원을 차렸겠지요. 여느 병원을 차렸어도 ‘집짐승 사진’을 얼마든지 찍을 수 있었겠지요. 그러나 다케타쓰 미노루 님은 스스로 어떤 꿈 하나를 가슴에 품고 살았구나 싶어요. 구경하는 사진쟁이 아닌, 들짐승과 이웃하는 사진쟁이로 살고, 이러면서 ‘들짐승 모습을 사진으로 찍으며 모델값으로 들짐승이 다쳤을 때에 즐겁게 돌봐 주기’를 하자고 다짐했구나 싶어요.


  살아가는 사랑으로 빚는 사진입니다. 아이들과 살아가는 사랑으로 아이들 사진을 빚습니다. 골목동네 이웃들과 살아가는 사랑으로 골목동네 사진을 빚습니다. 패션사진을 하는 분들은 패션모델이랑 살아가는 사랑으로 사진을 빚겠지요. 다큐사진을 하는 분들은 저마다 찾아다니는 골골샅샅 이웃들하고 살아가는 사랑으로 사진을 빚을 테고요.


  살아가는 사랑으로 나누는 이야기입니다. 저마다 스스로 꿈꾸는 삶과 사랑이 밑바탕 되어 사진을 찍고 글을 쓰며 그림을 그립니다. 춤과 노래와 영화도 오직 사랑이 밑거름 되어 태어날 수 있습니다. 여우를 사진으로 찍은 사람이 제법 있고, 일본에서는 여우 사진책이 곧잘 나왔는데, 나는 여태껏 다케타쓰 미노루 님만 한 사진책은 없다고 느낍니다. 이 마음을, 사진하는 내 이웃님들이, 곱게 껴안고 맑게 바라보며 따사로이 함께 느낄 수 있기를 빕니다. 4345.12.15.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2 - 사진책 읽는 즐거움)

 

 

(윗 사진에 나오는 두 아이는, 다케타쓰 미노루 님네 아이들입니다. 다친 여우를 보살핀 다음 들에 놓아 준 뒤에, 서로 동무가 되어, 이렇게 가까이에서도 지켜보며 논다고 합니다. 이제 두 아이는 모두 어른이 되었습니다.)

 

..

 

작은아이 사진책 읽기

 

큰아이 달라붙어 같이 넘기며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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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그늘

 


옆에 자전거 세우고
다리를 쉰다.

바람이 흔들며 빚는
보드라운 잎사귀 노래
듣는다.

 

조그마한 흙땅에
조그마한 씨가 내려
나무로 자라고
그늘을 드리운다.

 


4345.10.19.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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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타기 1

 


  우리 집 마당에서 자라는 튼튼한 후박나무를 보고는 ‘우리 아이들 무럭무럭 자라 이 나무를 타고 놀겠네.’ 하고 생각했다. 아이들은 언제쯤 이 나무를 탈 만할까. 다섯 살을 꽉 채우고 여섯 살로 달려가는 큰아이가 11월 21일 아침나절, 문득 이 나무를 붙잡고 낑낑거린다. 오른쪽 돌울타리에 한발을 걸쳐 용을 쓴다. 어라, 어라, 돌울에 발을 디디니 혼자 올라갈 수 있네. 대견하네. 참 씩씩하네. 날마다 네 손과 다리와 몸에 힘이 부쩍부쩍 붙을 테니, 이 겨울에 잘 먹고 잘 뛰면서 새로 맞이할 봄에는 돌울에 기대지 않고도 혼자 나무타기를 해 보렴. 4345.12.15.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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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삶에 한 줄, 새롭게 읽는 책

 


  예전에 읽은 책을 부러 다시 장만하기도 합니다. 책방마실을 하다가 문득 내 눈에 들어온 책 하나 가슴 두근두근 마음 콩닥콩닥 북돋우면, 살며시 집어들어 살살 쓰다듬어 봅니다. 그러고는 새로 장만합니다.


  지난날 읽은 책인 줄 알고, 내 서재도서관에 두 권 꽂힌 줄 알지만 굳이 새롭게 장만합니다. 서재도서관에 둔 책으로 다시 읽을 수 있지만, 이렇게 책방마실을 하는 길에 새삼스레 장만해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시외버스에 앉아 느긋하게 읽고 싶습니다. 1989년에 새 옷을 입은 신동엽 님 서사시 《금강》(창작과비평사)을 읽습니다. 첫머리에 “그 가슴 두근거리는 큰 역사를 / 몸으로 겪은 사람들이 그땐 / 그 오포 부는 하늘 아래 더러 살고 있었단다(7쪽).” 하는 이야기가 흐릅니다. 귀로 듣거나 눈으로 지켜본 이야기 아닌 몸으로 겪은 이야기를 헤아립니다. 남들이 들려준 이야기나 책에서 읽는 이야기 아닌 몸소 겪은 이야기를 돌아봅니다.

 


  내 몸에는 어떤 이야기가 아로새겨졌을까요. 나는 어떤 이야기를 가슴에 아로새기며 살아갈까요. 우리 아이들은 어떤 이야기를 저마다 아로새기며 하루를 누릴까요. 서사시는 흘러 “3천의 / 농민들이 대창 들고 관청에 몰려와 / 병사 내쫓고 아전 죽이고 / 노비문서 불살라버렸다(12쪽).” 하는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동학농민혁명 이야기입니다. 아니, 이에 앞서 이른바 ‘민란’이라 이름 붙은 지난 역사 이야기입니다. 흙을 일구던 이들은 대나무 깎아 창을 만들어 관청으로 몰려갑니다. 흙을 일구던 이들은 무기 하나 이름 하나 권력 하나 돈 하나 없이 두레와 품앗이로 살아갔습니다만, 이들 흙일꾼을 억누르거나 들볶거나 죽이기까지 하던 관청사람과 궁궐사람 때문에 더는 견디지 못하고 벌떡 일어서요. 이러면서 농사꾼들이 한 일은 ‘노비문서’ 불사르기예요.


  읽던 시집을 가만히 덮고 생각에 잠깁니다. 궁궐사람과 관청사람은 노비문서를 만들고 족보를 만들어요. 사람은 다 아름다운 사람인데, 저마다 계급을 짓고 울타리를 세우며 신분을 갈라요. 손에 흙 한 줌 물 한 방울 대지 않고도 기름진 밥을 누릴 뿐 아니라, 나랏일을 돌본다느니 민생을 걱정한다느니 읊어요. 참말, 나랏일을 돌보려 한다면 흙일꾼과 나란히 흙을 일구면 되는데요. 참으로, 민생을 걱정한다면 세금 거둘 생각 말고 공무원 권력과 양반 신분을 불사르면 되는데요.

 


  겨울날에도 눈부시게 파랗디파란 하늘을 올려다봅니다. 시를 다시 읽습니다. “사람은 한울님이니라 / 노비도 농사꾼도 천민도 / 사람은 한울님이니라 // 우리는 마음속에 한울님을 모시고 사니라 / 우리의 내부에 한울님이 살아 계시니라 / 우리의 밖에 있을 때 한울님은 바람, / 우리는 각자 스스로 한울님을 깨달을 뿐, / 아무에게도 옮기지 못하니라(21∼22쪽).” 하는 이야기가 흐릅니다. 그러고 보니, 초·중·고등학교를 다니며 ‘동학’이 무엇인지 배운 적 없습니다. 고등학교 철학 수업 때에도, 중학교 도덕 수업 때에도, 대학교 교양강좌 때에도, 어느 누구도 동학을 이야기하지 않았어요. 철학자나 지식인 가운데 동학을 이야기하는 사람도 없어요. 기독교 학교나 천주교 학교는 있지만 ‘동학 학교’는 없어요.


  동학은 종교일까요. 동학은 지식일까요. 동학은 학문일까요. 아니, 동학은 ‘흙 만지고 물 만지는 사람들 삶을 사랑하는 이야기’는 아닐까요. 어린이도 늙은이도 모두 한울님이라 말하고, 풀도 나무도 모두 한울님이라 밝히는 동학 이야기를 왜 오늘날 이 나라 이 땅 이 마을에서는 들을 수 없는지 고개를 갸웃갸웃해 봅니다.

 


  “봄이면 꽃 / 여름이면 하늘 / 가을이면 귀뚜라미 / 겨울이면 추위 // 전봉준은 자주 / 아들의 손을 이끌고 / 아내의 무덤 앞 찾아와 / 말없이 / 몇 시간씩 / 서 있다 가곤 했다. // 그림이었으리라(75쪽).” 하고 흐르는 이야기를 읽다가 우리 집 아이들 노랫소리를 듣습니다. 그래, 밥할 무렵이로구나. 집에서 살림하는 아버지가 얼른 밥을 차려야지. 너희 배고프겠네. 조금 더 놀면서 노래하렴. 아버지가 맛난 밥 예쁘게 차릴 테니까, 그동안 신나게 뛰놀렴. 마당에서도 뛰놀고, 마루에서도 뛰놀렴. 마당에서는 하늘바라기를 하고, 집에서는 누나와 동생 서로 사이좋게 아끼면서 놀렴.


  밥이 보글보글 끓습니다. 국이 자글자글 끓습니다. 밥상에 수저를 놓습니다. 나물을 버무리고, 무를 썹니다. 밥과 국이 다 되면 작은아이 것을 맨 먼저 뜹니다. 작은아이는 뜨거운 것을 못 먹으니, 맨 먼저 작은아이 것을 떠서 식힙니다. 이 다음으로는 큰아이 것을 뜨고, 어머니와 아버지 몫은 나중에 뜹니다. 이제, 날마다 새로운 밥을 즐겁게 먹을 때입니다. 4345.12.15.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2)

 

 

아이야, 너는 마음껏 놀며 생각날개를 펼치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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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천 동구 송림3동.

2012.12.11.

 

눈이 멎은 지 여러 날 지났으나 골목집 지붕에는 아직 소복소복 하얗게 빛난다. 빌라가 좋으니 아파트가 나으니 하는 말이 많더라도, 예전 사람들 지은 집은 칸이 작고 조그마한 보금자리라 하지만, 이웃집과 내 집 모두 볕이 잘 드는 어여쁜 살림터였다고 느낀다. 도시에서도 작은 마당 마련해 나무 한 그루 돌볼 줄 아는 골목집이란 더없이 사랑스럽습니다.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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