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우리말 착하게 가꾸기 ㉤ 살려쓰면 좋은 우리말 : 일말


 낱말책에는 ‘밥하기’하고 ‘밥짓기’라는 낱말이 안 실립니다. 이 책을 여기까지 읽은 말사랑벗들은 이제 어렴풋이 느끼리라 생각하는데, 남녘땅에서 낱말책에 안 실린 낱말은 글로 적바림할 때에 어떻게 해야 한다고 했는지 떠오르나요.

 낱말책에 안 실린 낱말 ‘밥하기’하고 ‘밥짓기’는 남녘나라 말법에 따른다면 ‘밥 하기’하고 ‘밥 짓기’처럼 띄어서 적어야 맞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 두 가지 낱말을 띄어서 적지 않습니다. 이 나라에서 살아가는 수많은 여느 사람들 또한 두 가지 낱말을 띄지 않습니다. 그저, 책이나 신문 같은 데에서는 두 낱말을 으레 띄어 놓습니다.

 ‘밥하다’라는 낱말은 낱말책에 실립니다. 그래서 ‘낱말책에는 안 실린 낱말’이기는 하지만 ‘밥하기’는 살그머니 붙인 채 적바림해도 틀리지는 않습니다. 낱말 씨끝이 바뀐다고 여기면서 ‘밥하- + -기’로 여기면 됩니다.

 ‘일하다’와 ‘놀다’라는 낱말도 낱말책에 실립니다. 이리하여 ‘일하기’랑 ‘놀기’ 또한 넉넉히 붙여서 쓸 만합니다.

 날마다 먹는 밥이요, 날마다 내 손으로든 어머니 손으로든 할머니 손으로든 아버지 손으로든 밥을 차려서 나란히 먹거나 혼자 먹거나 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날마다 누구나 먹는 밥이고, 날마다 누구나 밥상을 차리지만, 정작 ‘밥하기’ 같은 낱말은 낱말책에 실리지 못합니다. ‘밥짓기’하고 ‘밥짓다’ 같은 낱말도 매한가지입니다.

 낱말책에는 ‘요리(料理)’라는 낱말이 실립니다. 요리를 하는 사람은 ‘요리사’입니다. 한자말 ‘요리’ 뜻풀이를 찾아보면 “여러 조리 과정을 거쳐 음식을 만듦”으로 나옵니다. 다시금 ‘조리(調理)’라는 낱말을 찾아봅니다. 이 한자말은 “요리를 만듦”을 뜻한답니다.

 다시금 무언가 어렴풋이 느낄 말사랑벗이 있으려나 궁금합니다. “요리를 만듦”이 ‘조리’라 한다면, 이 말풀이는 엉터리입니다. 왜냐하면 ‘요리’란 “음식을 만듦”이라고 풀이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말풀이를 살피면 “조리 = 음식을 만듦을 만듦”이 되고 말아요. 거꾸로 ‘요리’ 말풀이도 엉망입니다. “여러 음식을 만드는 과정을 거쳐 음식을 만듦”이 ‘요리’가 되거든요.

 한 번쯤 곰곰이 짚어 볼 일입니다. 우리네 낱말책은 낱말풀이가 이다지도 얄궂은데 왜 도무지 바로잡히지 않을까요. 우리들은 우리말을 담은 낱말책을 뒤적일 때에 이 같은 낱말풀이가 얄궂다고 느끼기는 하는가요. 우리는 우리 삶을 알뜰살뜰 낱말책에 담아서 즐거이 나누는 길을 걸을 수 없는가요.

 요리를 하는 사람은 요리사라면, 밥을 하는 사람은 ‘밥꾼’이나 ‘밥지기’입니다. 살림을 하는 사람이 살림꾼이듯, 밥짓기 하는 사람은 밥꾼이거나 ‘밥짓기꾼’입니다. 농사를 짓기에 농사꾼이라면, 농사를 짓는 일이란 ‘농사짓기’나 ‘농사하기’입니다. 사람들 누구나 밥을 먹으려면 농사를 지어야 하니까, 밥하기와 밥짓기라는 낱말만큼 대수로우면서 소담스럽다 할 낱말이 ‘농사짓기’하고 ‘농사하기’이지만 이 낱말도 낱말책에는 안 실립니다. 그래도 밥만 먹고 살 수 없다(?)고 여기기 때문인지, 고기를 잡는다는 ‘고기잡이’는 낱말책에 실려요. 옛말로 ‘농사(農事)’는 ‘여름지이’라 했고, 농사짓는 사람을 일컬어 ‘여름지기’라 했습니다. 어쩌면 토박이말로 ‘여름지이’와 ‘여름지기’와 ‘여름짓다’를 살릴 수 있을 테고, 이러한 낱말을 살린다면 아주 반갑습니다. 다만, 살리는 낱말은 살릴 낱말이고, 두루 쓰는 낱말은 두루 쓰기 좋도록 가꾸어야 아름답습니다.

 우리 둘레 말삶을 더 돌아보면, ‘식수(食水)’나 ‘생수(生水)’란 낱말은 버젓이 쓰이면서 낱말책에 냉큼 실리지만, ‘마실물’이나 ‘먹는샘물’ 같은 낱말은 여태껏 낱말책에 안 실립니다. ‘생수’는 일본말이기에 ‘먹는샘물’로 고쳐써야 한다고 정부에서 틀을 세운 지 한참 지났으나, 이러한 틀을 낱말책에 알뜰히 담지 못해요. 그나마, ‘먹을거리’는 낱말책에 실어 놓으나, ‘마실거리’는 낱말책에 없습니다. 고작 ‘음료수(飮料水)’ 한 마디만 실립니다.

 여느 자리에서 여느 삶을 꾸리는 여느 사람이 일하고 놀며 복닥이면서 주고받는 말마디가 제대로 사랑받지 못합니다. 말글학자는 말글학자대로 사랑하지 않고, 여느 자리에서 살아가는 여느 사람인 우리들 또한 알맞고 착하게 사랑하지 않습니다.


1. 손빨래 : 빨래는 예부터 손으로 했습니다. 기계로 빨래하던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이 나라에 빨래기계가 들어온 지 몇 해쯤 되었으려나요. 기껏 스무 해 남짓 되었을까 싶고, 서른 해나 마흔 해 앞서만 해도 빨래란 으레 손빨래입니다. 오늘날에는 손으로 빨래하는 일이 거의 자취를 감추다 보니, 사람이 손으로 하는 빨래는 ‘빨래’가 아닌 ‘손빨래’가 됩니다. 발로 밟는 이불빨래를 가리켜 ‘발빨래’라 하지 않는데, 여느 빨래만큼은 ‘손빨래’가 되고 맙니다. 기계로 빨면서 ‘기계빨래’라 하지 않을 뿐더러, 빨래를 해 주는 기계는 ‘빨래기계’가 아닌 ‘세탁기(洗濯機)’이고, 빨래를 해 주는 곳은 ‘빨래집’이 아닌 ‘세탁소(洗濯所)’입니다. 


2. 아이키우기 : 모든 어버이는 아이를 낳아 기릅니다. 내 아이를 낳아 기르든 다른 살붙이나 이웃 아이를 보살피든 어버이 되는 사람은 아이를 맡아 기르며 돌봅니다. 아이를 키우니까 ‘아이키우기’요, 아이를 기른다면 ‘아이기르기’이며, 아이를 돌본다면 ‘아이돌보기’인데, 학문이나 보건이나 복지로 넘어서면 ‘육아(育兒)’가 됩니다. 


3. 구멍가게 : 조그마한 가게라서 구멍가게입니다. 요즈막에는 ‘나들가게’라는 이름을 붙여 마을 작은 살림터를 돕는다고 합니다. ‘나들가게’라는 낱말도 좋습니다. 마을에 있기에 ‘마을가게’라 할 만하고, ‘동네가게’라 해도 잘 어울립니다. ‘수퍼’나 ‘수퍼마켓’은 미국에서 찾을 노릇입니다. 


4. 저잣거리 : 크고작은 도시와 온 나라 시골마다 ‘마트(mart)’가 치고 들어왔습니다. 시골에서마저 농협은 ‘하나로’라는 고운 이름을 앞에 달기는 하나, 뒤꼭지에는 ‘마트’를 붙여 ‘하나로마트’입니다. 아직 시골 저자는 ‘장(場)마당’이라 하는데, 날마다 가게를 여는 장삿집이 모인 도시에서는 ‘저자’나 ‘저잣거리’라는 이름이 사라지고 ‘재래시장(在來市場)’이라는 이름만을 씁니다. 


5. 밥집 : 머리카락을 손질하거나 깎을 때에는 머리집이나 머리방에 갑니다. 책을 볼 때에는 책집이나 책가게나 책방에 갑니다. 차를 마시려고 찻집에 갑니다. 술을 자시는 어른은 술집에 가요. 밥을 밖에서 사다 먹을 때에는 ‘밥집’에 갑니다. 


6. 밤샘 : 지난날에는 공장 일꾼들한테 밤새도록 일을 시키며 들볶았습니다. 오늘날에는 밤새도록 일을 하지 않으면 먹고살기에 빠듯하거나 아이를 가르치기에 벅차다고 합니다. 이른바 ‘철야(徹夜)’와 ‘야근(夜勤)’입니다. 더 많이 벌어 더 많이 쓰지 않고서는 버틸 수 없는 나날이 되고 맙니다. 일도 공부도 놀이도 온통 밤샘입니다. 밤일이요 밤공부요 밤놀이입니다. 


7. 풀약 : 나와 내 살붙이가 먹을 밥을 거두는 땅이라 한다면 그리 안 넓어도 되고, 애써 풀약을 칠 까닭이 없습니다. 자동차를 굴려야 하고, 아이들을 대학교까지 넣어야 하며, 온갖 물건을 사들여야 하니까 더 넓은 땅을 일구어 더 많은 곡식을 거두어야 하고, 이러는 동안 풀베기나 풀뽑기를 손으로 할 수 없어 풀약을 칩니다. 풀은 풀약을 먹으면서 죽고, 풀하고 이웃한 곡식은 풀약을 함께 먹고 자라면서 사람들 몸뚱이에 수은이며 납이며 카드뮴이며 차곡차곡 쌓입니다. 삶이 고단하면서 살림살이가 고단하고, 살림살이가 고단하다 보니 일거리가 고단하고, 일거리가 고단한 탓에 넋 또한 고단한 만큼, 나날이 나누는 말마저 고단하고야 맙니다. (4343.12.31.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1 -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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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1.28. 

충북 음성 읍내리 

읍내 고양이를 만난다. 여럿 만난다. 이 가운데 두 아이 사진을 담았다. 

 

시골 읍내 고양이는 도시 골목 고양이하고 얼마나 다른 삶을 누리려나. 

아마 도시보다는 보금자리가 한결 넓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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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과 우리 말 73] 폐도

 문과나 인문계를 다니든, 문학을 하든, 국어학을 하든, 이런 사람들만 우리 말과 글을 배워야 하지 않는다. 한국에서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국말을 배워야 한다. 미국이나 영국에서 살자면 마땅히 영어를 배워야겠지. 수학을 하든 건축을 하든, 아니면 여느 가정주부로 살든 운동선수가 되든, 나라밖에서는 영어를 마땅히 잘 해야 한다. 한국에서는 무슨 일을 하든 한국사람으로서 한국말을 잘 배워서 잘 써야 한다. 아파트를 짓든 쇼핑센터를 짓든, 이들은 한국말은 한 번도 제대로 배우지 못한 나머지, “이 길은 아파트를 지으면서 더는 다닐 수 없으니 너그러이 살펴 주시기 바랍니다.”처럼 적을 줄 모른다. 시골 읍내 할머니나 할아버지가 이 알림판을 어떻게 알아보든지 말든지 마음을 쓰지 못한다. (4344.1.29.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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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리말(인터넷말) 22] GIFT 소셜 쇼핑 앵콜 EVENT

 한국에서 살아가지만, 내가 한국사람이 맞나 하고 고개를 갸우뚱할 때가 꽤 잦습니다. 틀림없이 한국땅 한국사람이 한국글로 적은 말마디일 텐데, 도무지 알아듣지 못하는 말마디가 너무 많습니다. 그렇지만 이런 말마디를 적바림한 분이라든지, 이런 말마디를 읽고 찾아가서 물건을 사는 사람들은 아무렇지 않게, 아니 그리 어렵지 않게 이야기꽃을 피우겠지요. (4344.1.29.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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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쪽지 2011.1.27.
 : 눈길 달리기



- 집살림 도맡는 아빠가 혼자서 할 수 있는 반찬은 늘 어슷비슷하기 때문에 반찬을 얻으러 마실을 가기로 한다. 큰길가에 있는 보리밥집 아주머님한테서 얻을 생각이다. 아주머님은 늘 반찬을 그냥 주시는데, 밥을 사먹는 셈치고 반찬값을 받으라 말씀드리지만, 언제나 반찬을 그냥 담아 주신다. 반찬값을 안 받으시면 미안해서 다시 찾아오기 힘들지만, 그래도 다시 안 갈 수 없고, 거듭 말씀을 여쭈지 않을 수 없다. 반찬값을 안 받으시니, 노상 다른 여러 가지를 산다. 그러나 다른 여러 가지를 산다 한들 반찬값에 댈 수 있으랴. 거꾸로 생각해서 내가 밥집을 꾸리는 아저씨라 할지라도, 누군가 반찬을 얻으러 올 때에 반찬값을 받기는 쉽지 않겠지. 그러나 나는 반찬값을 값대로 받으면서 살며시 덤을 더 얹어 주리라 생각한다.

- 집 앞 길머리에서 논둑길로 갈까 마을길로 갈까 어림한다. 논둑길은 눈을 치우지 않아 고스란히 쌓였다. 내리막으로 가야 하기에 자칫 미끄러질까 걱정스럽다. 마을길로 가기로 한다. 마을길은 발굽병인가 때문에 이리로 못 가도록 막아 놓기도 했는데, 오늘은 막아 놓던 헌바퀴더미가 없다. 발굽병 때문에 바깥 자동차 못 들어오게 막는다지만, 여기를 이렇게 막는다고 일이 풀리겠는가. 발굽병이라는 병이 퍼지는 까닭이 자동차 때문이겠는가. 고기를 즐겨먹는 도시사람 때문에 생기고, 고기를 더 싸게 더 많이 먹어치우는 도시사람 때문에 일어나는 병 아닌가. 시골사람은 고기 먹을 일이 드물 뿐더러, 시골사람이 고기를 즐겨찾는다든지 자주 먹는다든지 하는 일도 없다. 온통 도시 때문에 생기거나 퍼지는 병인데, 이런 병이 생기면 늘 시골사람만 골탕을 먹는다.

- 이제 아이는 추운 겨울날 자전거마실을 잘 깨닫는다. 처음 몇 번은 장갑을 안 낀다 하고 모자를 안 쓴다 하며 손을 밖으로 내밀어 놓으려 했으나, 이제는 아빠가 장갑 끼우고 모자 씌우며 이불을 꼭꼭 여미면 얌전히 있는다. 우리가 갈 곳까지 거의 아뭇소리 없기까지 한다. 그래도 가는 길에는 꽁꽁 얼어붙으며 꼼짝을 않으나, 오는 길에는 조잘재잘 떠든다. 아마, 마실을 나가서 이것저것 얻어먹기도 하고 귀여움도 많이 받으며 돌아오니까 신이 나겠지.

- 오늘도 마실 나가는 길은 맞바람. 겨울 맞바람은 참 끔찍하다. 혼자 살던 지난날, 이 끔찍한 겨울철 맞바람을 맞으며 멧골집부터 서울에 있는 헌책방까지 어떻게 자전거로 달렸나 놀랍기만 하다. 오늘 내 나이보다 조금 어리거나 젊었다 할지라도, 그때에도 틀림없이 손이며 얼굴이며 사타구니며 꽁꽁 얼었을 텐데, 어떻게 견디며 그 먼길을 꿋꿋하게 주마다 오갈 수 있었을까.

- 개를 키우고 소를 치며 돼지를 기르는 곳 옆을 지난다. 소를 쳐서 소젖을 짜는 분들은 소젖을 거두어 가는 우유공장에서 내주는 사료만 사서 먹여야 한단다. 젖소 키우는 짐승우리에서 병이 생긴다면 젖소 키우는 사람 탓이 아니라 우유공장 탓이다. 그러나, 젖소 키우는 우리에서 발굽병 따위가 생겼을 때에 우유공장한테 잘잘못을 캐묻는 일은 듣도 보도 못한다.

- 공장 옆길을 지난다. 마을길을 거치면 공장 옆을 지나야 해서 싫지만, 이웃사람 살림집 옆을 지나는 마을길을 안 지날 수 없다. 이 공장 옆을 지날 때면 언제나 매캐하고 코를 뚫는 듯한 쇳가루 냄새를 맡아야 한다. 땅값 싼 시골마을 깊숙한 데로 공장을 지어서 물건을 팔아야 하는 우리 나라 경제란, 더 값싼 물건이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를 모르면서 그저 더 싸게만 사려는 도시사람을 키워 내는 제도권 사회라고 느낀다.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당신들 아파트나 살림집 곁에 제철소나 중화학공장이 있어 쇳물이 흐르고 쇳가루가 날리면 어떻게 받아들이겠는가. 내 고향 인천은 곳곳에 중화학공장이며 제철소며 제련소며 유리공장이며 자동차공장이며 득시글득시글한데다가 화력발전소까지 있다. 다른 데도 아닌 옛도심 한복판에 이런 공장들이 가득하고, 여느 살림집과 5층짜리 낮은 아파트 옆으로 이런 공장투성이를 이룬다. 서울사람들은, 더욱이 지식인들은, 또 글쟁이들은 공장이 어떤 곳인 줄 참 모른다.

- 보리밥집에 닿는다. 수레에서 안전띠를 끌러 아이를 내린다. 아이는 아무 말도 없더니, 밥집으로 들어가 모자를 벗기니까 비로소 웃음을 띤다. 많이 추웠지?

- 아이는 장갑을 벗겠다 하며 밥집을 이리저리 콩콩 뛴다. 얼마나 뛰고 싶었을까.

- 반찬을 얻고 몇 가지 까까를 산다. 씨있는 달걀 마흔 알을 산다. 가방에 차곡차곡 담는다. 아이하고 함께 보리밥집 아주머님들한테 인사를 한다. 아이를 수레에 태우고 안전띠를 채운다. 아빠도 자전거에 올라탄다. 영차영차 달린다. 공장 곁 스쳐야 할 마을길로 돌아가고 싶지 않아 논둑길 쪽으로 간다. 마을 또다른 개장수 있는 논둑길 옆으로만 눈이 그대로 쌓였다. 바퀴가 폭폭 잠기는 길을 달린다. 고스란히 쌓인 눈을 폭폭폭 밟으며 달리는 맛을 오랜만에 느낀다. 그냥 좋다. 생각보다 미끄러지지 않는다. 아마 어설피 눈을 쓸거나 치워서 바닥이 얼었으면 미끄러지겠지. 외려 눈을 안 쓸어 그대로 있으니 바닥도 안 얼어 안 미끄러지는구나 싶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뒷바람. 얼굴로 찬바람이 칼바람처럼 불지 않으니 그리 안 춥다고 느낀다. 아이도 똑같이 느끼는지, 수레에 앉아 “아빠, 저거 뭐야?” 하면서 묻는다. “응, 볏짚말이. 볏짚을 동그랗게 만 볏짚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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