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일공일삼 6
페터 헤르틀링 지음, 페터 크노르 그림, 박양규 옮김 / 비룡소 / 1999년 3월
평점 :
절판




 한 사람으로 오롯이 우뚝 서기
 [푸른책과 함께 살기 69] 페터 헤르틀링, 《할머니》(비룡소,1999)



- 책이름 : 할머니
- 글 : 페터 헤르틀링
- 옮긴이 : 박양규
- 펴낸곳 : 비룡소 (1999.3.10.)
- 책값 : 6500원



 (1) 집식구로 살아가는 나날


 집에서 둘째를 낳으면 내 나이 마흔이 될 무렵 이 아이가 네 살이 되는구나 하고 깨닫습니다. 첫째가 올해에 네 살이니, 첫째는 세 해 뒤에 일곱 살이 되겠지요. 일곱 살이 될 첫째는 집일을 얼마나 도우면서 제 어버이 어깨짐을 덜 수 있을까 어림합니다. 아이가 어버이 몫을 떠맡는 짐꾼이나 심부름꾼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아이가 집일을 찬찬히 거들지 못한다면 어버이로서 몹시 고단하거나 힘들밖에 없겠다고 느낍니다. 나이를 먹는 일, 나이를 먹으며 몸을 쓰는 일, 나이를 먹으며 아이와 부대끼는 일을 새삼스레 뒤돌아봅니다.

 여느 아버지들은 집일을 잘 모릅니다. 오늘날뿐 아니라 앞날까지도 이 나라 여느 아버지들은 집일을 잘 모를 수밖에 없습니다. 예전에는 어떠했을까 궁금합니다. 양반이나 사대부나 임금님 같은 사람들 말고, 땅을 일구며 조그맣게 조용히 살아가던 여느 살림집 아버지들은 어떠했을까 궁금합니다. 짚을 얹은 작은 흙집에서 온식구 복닥이며 지내던 곳에서 여느 아버지는 집일을 얼마나 돌보거나 알거나 챙겼을는지 궁금합니다. 예나 이제나 아버지들은 모든 집일을 그저 어머니한테만 맡기면서 바깥일만 했을는지 궁금합니다.

 집식구가 걱정없이 지내거나 느긋하게 지내거나 즐겁게 지내자면 집일을 잘 다스리고 집살림을 잘 꾸려야 합니다. 일과 살림을 알뜰히 북돋아야 합니다. 밥은 밥대로 챙기고 옷은 옷대로 건사하며 집은 집대로 돌봐야 합니다. 사람이 집안을 이루며 살아갈 때에는, 무엇보다 밥·옷·집을 옳게 거느려야 합니다.

 돈을 번대서 집일을 하거나 집살림을 하는 삶이 아닙니다. 돈을 버는 일은 그저 돈벌이입니다. 돈을 벌기에 집일이나 집살림을 어느 한 사람한테 떠넘기는 일은 집식구로 함께 살아가는 모습이 아닙니다. 오로지 돈벌이에만 마음을 쏟는 나머지, 정작 돈을 버는 까닭과 뜻을 잃는 슬픈 모습이에요.

 안타깝게도 참으로 많은 아버지들이 돈벌이에만 매달리며 막상 집일과 집살림에 등돌리거나 잊습니다. 아버지가 되는 날까지 아들을 키운 어버이들 또한 사내아이한테 집일과 집살림을 옳게 물려주거나 가르치지 못한 탓도 있을 테지만, 사내아이 스스로 집일과 집살림을 가만히 들여다보면서 받아들이거나 배우려 하지 못한 탓도 큽니다.


.. 할머니는 돈이 없다는 것에 대해, 그리고 당신의 몇 푼 안 되는 연금과 아무것도 남기지 않고 돌아가신 할아버지에 대해 가끔 불평을 했다. 그러나 사실 할머니는 불평하기보다 언제나 즐겁게 사는 편이다 … (칼레 어머니와 아버지가 교통사고로 함께 돌아가시자) 할머니만은 그러지 않았다. 금세 눈물을 거둔 할머니는 칼레가 없는 사이 삼촌들과 숙모들에게 단호히 말했다. 어쩔 거냐? 살아 나가야지. 어쨌든 살아야 해. 칼레는 내가 데리고 가겠다. 같이 살면 돼. 삼촌 가운데 한 명이 말했다. 하지만 어머니 연세에요! 그러자 할머니가 그 삼촌을 비웃으면서 호통을 쳤다. 그럼 네가 칼레를 키울 거냐? 마음에 없는 소리 하지도 마라! … 관심 없기로는 나도 마찬가지야. 하지만 옷값이 그렇게 비싸니 내가 어떻게 테니스를 칠 수 있겠니? ..  (7, 10∼11, 78쪽)


 남자와 여자, 또는 여자와 남자가 만나서 이루는 사랑이란 서로를 깊고 넓게 헤아리면서 따사로이 보듬는 일입니다. 보드라운 살결을 쪼물딱쪼물딱한대서 사랑이 되지 않습니다. 마음을 기울이고 마음을 쓰며 마음을 쏟을 때에 사랑이 피어납니다.

 첫눈에 반하는 일은 사랑이 아닙니다. 그저 ‘첫눈에 얼굴이나 겉모습이나 느낌이나 생김새에 반한’ 일일 뿐입니다. 첫눈에 반한 뒤로 사랑이 싹틀 수 있으나, 첫눈에 반했대서 착하거나 참다운 사랑으로 흐르지는 않아요.

 슬픈 노릇이지만, 오늘날 퍽 많은 사람들이 착하거나 참다운 사랑에 따라 짝을 찾거나 사귀지 못하기 때문에, 두 사람이 한 집안을 이루어 제금나거나 새 보금자리를 꾸린다면서 집일이나 집살림을 어떻게 건사해야 좋으냐를 놓치거나 아예 모르는구나 싶습니다. 집일만 알거나 집일을 조금 거든대서 집살림이 되지는 않는데, 그나마 집일에조차 손을 놓는 사람이 너무 많아요. 스스로 삶을 일구지 못하고, 내 손으로 삶을 가다듬지 못하며, 서로서로 삶을 북돋우지 못하는 셈입니다.

 사람으로 태어난 아이들은 지식과 정보를 머리에 쌓는 시험기계로 클 노릇이 아니라, 사람으로 태어난 만큼 사람값을 하도록 삶을 깨닫고 살림을 배우며 집일을 거드는 튼튼한 어른으로 클 노릇이라고 생각해요. 무나 양파를 썰 줄 모르면서, 김치를 썰 줄 모르면서, 파나 마늘을 다질 줄 모르면서, 감자나 당근을 갈 줄 모르면서, 미역국이나 된장국 하나 끓일 줄 모르면서, 죽이나 밥을 할 줄 모르면서, 볶음이나 조림을 할 줄 모르면서, 학교에서 시험성적 잘 받으면 무슨 보람이 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스스로 걸레를 빨아 집안을 치울 때에 일을 거들 뿐 아니라, 제 잠자리는 제 손으로 치우고 깔며, 제 옷가지는 어버이 손에 맡길 노릇이 아니라 저 스스로 빨고 개어 건사할 줄 알아야 씩씩한 푸름이가 되고 어른이 된다고 느낍니다.


.. 칼레가 할머니를 도우려고 물건을 하나하나 꼼꼼히 들여다보면 가게 주인들은 화를 냈다. 더러운 손으로 오이를 자꾸 만지지 말아라. 그러면 할머니는 점잖게 한 마디 쏘아붙였다. 저 오이를 칼레 손만큼 자주 씻어 주었나요? 할머니는 이렇게 멋진 유머를 할 줄 알았고, 그 점이 칼레 마음에 쏙 들었다 … 칼레는 할머니가 부모님보다 가난하다는 것을 차차 알게 되었다. 만약 네 고아 연금을 받게 된다면 형편이 조금 나아질 텐데. 공무원들이 일처리에 늑장을 부리니 말이야. 그 사람들은 우리 같은 사람들 생각은 통 안 한다니까… (복지과 아동 상담원이) 두 달에 한 번씩 찾아오고 싶고, 또 필요한 게 있으면 돕고 싶다고도 했다. 할머니는 조금 화가 풀려 친절하게 대답했다. 아가씨, 지금까지 아무도 우리를 도와주지 않았어요. 그러기엔 이젠 너무 늦었어요. 칼레도 이제 미운 일곱 살이 아니니 괞찮아질 거요 ..  (19, 21, 68∼69쪽)


 아이들은 ‘좋다 하는 책’을 읽을 수 있으면 좋으리라 생각합니다. 아이뿐 아니라 어른들부터 ‘좋다 하는 책’을 가까이할 수 있으면 더 좋으리라 생각합니다. 아이한테 좋다 하는 책을 읽히려는 어버이라면 어버이부터 좋다 하는 책을 가까이할 노릇이라고 느낍니다. 아이가 받아들이거나 받아먹을 좋은 마음밥이라면 어버이 또한 어머니와 아버지 두 사람이 나란히 먼저 받아들이거나 함께 받아먹을 일이라고 느껴요.

 좋다 하는 책을 아이한테 쥐어 주거나 읽어 주는 어른이라면, 좋다 하는 책이 왜 좋은가를 가슴으로 느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좋다 하는 책은 ‘이 책에 담긴 알맹이를 쓰거나 그리거나 엮거나 일군 사람’부터 스스로 좋다 할 만한 삶을 일구어야 태어납니다. 좋다 할 만한 삶에서 좋다 할 만한 앎이요, 좋다 할 만한 앎을 좋다 할 만한 넋과 좋다 할 만한 손길로 보듬어 좋다 할 만한 이야기로 빚습니다. 좋다 할 만한 이야기를 좋다 할 만한 땀방울을 들여 좋다 할 만한 책으로 엮어 내놓습니다.

 좋다 할 만한 책이라면, 이러한 책을 장만해서 즐기려는 사람들 또한 좋다 할 만한 삶을 꿈꾸면서 스스로 좋다 할 만한 사람으로 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스스로 좋다 할 만한 사람으로 살 때에 ‘좋다 할 만한 이야기’를 좋다 할 만한 넋으로 아로새기면서 나부터 좋다 할 만한 사람으로 거듭나는 한편, 내 아이와 이웃 아이한테 좋다 할 만한 사랑을 나눌 수 있을 테니까요.

 책은 지식으로 머리속에 가둘 수 없어요. 책은 오직 내 삶으로 받아들일 뿐입니다.


.. 전쟁이 끝나기 직전, (칼레 아버지는) 공군 보조병으로 전선에 불려 갔지. 그러곤 폭탄을 터뜨려야만 했어. 그토록 어린 아이들이 대포를 쏘아야 했다니! 야, 재미있었겠다. 칼레가 불쑥 말했다. 재미라고? 너희들은 장난감 총을 들고 전쟁놀이를 하기 때문에 진짜 전쟁이 재미있겠다고 하는 거냐? 그래도 진짜 전쟁을 좋아하는 아이는 없을걸. 전쟁이 나면 아이들이 가장 힘들어지니까 ..  (35∼36쪽)


 아이한테는 돈을 더 물려주다고 해서 사랑이 싹트지 않습니다. 아이한테는 사랑을 물려주어야 사랑이 싹틉니다.

 고운 옆지기한테도 돈을 더 벌어 준대서 사랑이 싹트지 않습니다. 돈을 더 벌어 주면 돈이 싹틉니다. 사랑이 싹트자면 사랑을 나누어 주어야 합니다.

 돈이 없거나 모자란 살림살이라 하지만 알콩달콩 오순도순 복닥복닥 재미나게 살아가는 사람들은 ‘돈을 못 물려주’지만 ‘사랑을 아낌없이 물려주’는 삶이에요. 돈이 많거나 넉넉한 살림살이라 하지만 따분하고 메마르며 썰렁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은 ‘돈은 실컷 물려주’지만 ‘사랑은 조금도 못 물려주’는 삶이겠지요.

 돈이 넉넉해서 예쁜 옷도 입고 자가용도 몰며 맛나다는 밥을 마음껏 사다 먹는다 해서 아이나 어른이 모두 즐거울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돈이 늘 쪼들려 바깥밥은 엄두를 못 내고 밥상 반찬 가짓수 또한 몇 안 된다지만 밥상머리에서 실컷 이야기꽃을 피운다면 아이나 어른이나 나란히 즐거우리라 생각해요.

 서로서로 집식구로 사랑할 노릇이에요. 다 함께 집식구로 집일을 거들어야지요. 나란히 어깨동무하면서 집살림을 알뜰히 꾸리는 나날입니다.


 (2) 할머니와 살아가는 아이


 이야기책 《할머니》(비룡소,1999)를 읽으면서 생각합니다. 《할머니》라는 이야기책에는 할머니 한 사람과 어린이 한 사람이 나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를 함께 잃은 ‘칼레’라는 어린이는 할머니하고 함께 살아갑니다. 다른 피붙이들은 칼레라는 어린이를 건사하려는 마음이라기보다 칼레라는 짐덩이를 어떻게 다루어야 할까를 놓고 걱정했습니다.

 할머니는 나이도 있고 몸도 있기에, 어린아이 하나를 내내 돌보며 건사하기 힘듭니다. 그렇지만 할머니한테는 돈이나 몸(체력·건강)은 없어도 마음(사랑·믿음)이 있습니다. 할머니는 당신한테 없는 돈이나 몸으로 아이를 맡아서 돌보려 하지는 않습니다. 당신한테 알뜰히 있는 마음으로 아이를 아끼며 보살피고 싶습니다.


.. 할머니는 학교 들어가기 전에 칼레를 다시 유치원에 보내지 않기로 했다. 우리 둘이 집에서 서로 적응하는 편이 더 낫다. 칼레는 처음에는 아쉬운 마음도 들었지만 곧 괜찮아졌다. 할머니와 함께 하루를 보내노라면 항상 새로운 일이 일어났다 … 칼레는 할머니가 옛날얘기만 하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어제 일어난 일에 대해서는 관심도 없으면서 이십 년 전, 혹은 사십 년 전에 겪은 일은 지금도 생생히 기억한다. 처음 기차를 탔을 때나 결혼식 때 어떤 옷을 입었는지, 잔치 음식으로 무엇이 나왔는지도 훤히 알고 있다 … 할머니는 이미 본 옛날 영화들은 꼭 다시 보려고 한다 ..  (17∼18, 34, 104쪽)


 할머니는 아이한테 책을 읽어 주지 못합니다. 할머니는 아이한테 책을 사 주지 못합니다. 할머니는 아이한테 자가용을 태워 주지 못합니다. 할머니는 아이한테 자전거를 사 주지 못합니다.

 할머니는 오로지 이야기꽃만 피울 수 있습니다. 할머니는 늘 당신 몸으로 ‘살림하며 꾸리는 삶’을 보여줄 수 있습니다. 할머니는 노상 당신 손으로 빚은 밥을 차려서 내놓고, 당신 손으로 아이 옷을 빨아서 입힙니다.

 아이는 이제 처음으로 ‘돈이 아닌 사랑’으로 이루어진 ‘무언가 다른 날’을 시나브로 맞아들입니다. 영화 〈아이 앰 샘〉에 나오는 계집아이는 ‘돈으로는 채울 수 없는 사랑’을 알기 때문에 ‘몸이 아픈’ 아버지 품에 안기고 싶어 해요. 지능이 늘 제자리에 머물어 이제 나(딸아이)보다 지능이 낮고 만 아버지인 줄 진작에 알아채지만, 제 아버지가 잠자리마다 읽어 주는 ‘닥터 수스 그림책’을 무척 재미나게 들으면서 좋아합니다. 제 아버지는 저한테 더없이 큰 사랑을 나누는 멋진 집식구이거든요.


.. 칼레는 삼 학년이 되었다. 그런데 학교 생활이 순조롭지 않았다. 할머니가 숙제를 도와주기는 했지만 가끔은 설명을 못할 때도 있었다. 이런 엉터리 같은 것 때문에 머리가 다 아프네. 뭣 땜에 이런 것을 배워야 하지. 불쌍한 녀석들. 칼레도 동감이었다. 칼레는 할머니에게 숙제를 도와 달라는 말도 많이 하지 않고, 숙제도 반 정도만 하기로 결심했다 … 칼레야, 열 살이면 벌써 생각할 줄 아는 나이지. 나이에 비해 넌 많은 것을 겪기도 했고. 할미가 지금 하는 말을 잘 생각해 봐. 난 이미 일흔이 넘었어. 아무도 내 나이를 그렇게 보는 사람은 없지만, 너보다 내가 예순 살이 더 많다는 걸 상상할 수 있겠니? 아니오. 칼레는 깜짝 놀라 대답했다 ..  (62, 121쪽)


 이야기책 《할머니》에 나오는 할머니는 그야말로 할머니입니다. 할머니한테도 이름이 있을 테지만, 칼레한테든 다른 사람한테든 학교 교사한테든 공무원한테든, 할머니는 그저 할머니입니다.

 아마 오늘날이나 지난날이나 앞날에 이르기까지, 여느 살림집에서 어머니는 늘 어머니이겠지요. ‘칼레 할머니’이듯 ‘아무개 어머니’일 테지요.

 학교에서 교사는 교사입니다. ‘어른 아무개’가 아닌 ‘교사 아무개’이거나 ‘무슨 과목 교사 아무개’입니다.

 학교에서 교사 노릇을 하는 이들은 ‘저마다 맡은 교과서로 아이들한테 교과서 지식을 물려주는’ 몫을 맡습니다. ‘교과서에 담긴 지식이 다 다른 아이들 삶에 어떻게 스며들거나 파고들어 다 다른 아이들 삶을 북돋울까를 헤아리는’ 몫은 맡지 않습니다.

 맨 처음부터 학교라는 곳이 사랑보다 지식으로 세워졌는지 알쏭달쏭하고, 맨 처음부터 교사라는 사람이 사랑보다 지식으로 꽁꽁 얽매였는지 아리송합니다. 왜 학교에서는 ‘지도’를 하고 ‘교육’을 하며 ‘학습’을 시키고 ‘평가’를 할까요.

 밥먹기에는 지도나 교육이나 학습이나 평가란 없습니다. 밥을 더 잘 먹거나 맛나게 먹는 길이란 없습니다. 흙을 일구어 벼를 거두든 감자를 거두든 꽃을 보든, 더 잘 일구거나 멋지게 일구는 길이란 없습니다. 흙을 일구는 일이란 겨루기(실적 경쟁)가 아니니까요.

 다달이 300만 원을 버는 일자리가 다달이 250만 원을 버는 일자리보다 더 나은 일자리인지 알쏭달쏭합니다. 다달이 200만 원을 버는 일자리가 다달이 150만 원을 버는 일자리보다 더 좋은 일자리인지 아리송합니다. 다달이 100만 원을 버는 일자리가 다달이 50만 원을 버는 일자리도 더 아름다운 일자리인지 궁금합니다. 다달이 50만 원을 버는 일자리가 다달이 버는 돈이 없는 집살림보다 더 사랑스러운 일자리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아니, 돈을 버는 일자리가 되어야 좋은 삶인지 고개를 갸웃갸웃합니다. 돈을 벌지 않는 삶자리는 좋지 않은 삶이거나 어여쁘지 못한 삶인지 고개를 기우뚱해 봅니다.


.. 칼레는 이제 늙은 사람들이 두렵지 않았다. 비록 답답하기도 하고 자기와는 아무 상관도 없는 곳이지만, 양로원도 세상의 한 부분이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할머니와 칼레는 서로 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잠시 뒤 할머니가 말문을 열었다. 우리에 모아 놓은 가축처럼 살아야 하다니, 끔찍한 일이야. 모두들 저렇게 늙어서 … 나도 그 노인들과 다를 바 없어. 단지 양로원에 살지 않고 내 집에서 손자와 함께 산다는 것만 다를 뿐이지. 그래서 나이든 것도 달라 보이는 거야. 나이든 사람들끼리만 살면서 삶을 더 이상 볼 수 없다면 나이 먹은 게 끔찍하지 ..  (101, 102쪽)


 이야기책 《할머니》는 여러 가지 이야기를 보여줍니다. 여러 가지 삶을 다루며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할머니를 섬기거나 좋아하자는 이야기라든지, 어버이를 잃었다는 불쌍한 아이 이야기를 담은 《할머니》는 아닙니다. 저마다 다 다른 삶이 있다고 속삭이면서, 저마다 다 다른 삶은 이대로 예쁘고, 기쁜 결대로 사랑하며 꾸리는 길을 즐거이 찾아 돌보자는 이야기를 담는 《할머니》입니다.


 (3) 한 사람으로 오롯이 우뚝 서기


 누구나 한 사람으로 오롯이 우뚝 서야 합니다. 망아지이든 새끼 사슴이든 송아지이든, 갓 태어난 날부터 제 다리로 씩씩하게 일어섭니다. 새끼 짐승은 갓 나는 자리부터 네 다리를 툭툭 털며 비틀비틀 걷습니다.

 ‘새끼 사람’이라 할 아기는 갓 날 적부터 걷지 못합니다. 참 오래도록 돌보고 아끼며 사랑해야 합니다. 겨우 걸음마를 떼었다지만 어른 말을 주고받을 수 없습니다. 또 오래도록 말을 가르치고 옹알이를 알아들어야 합니다. 새끼 짐승이든 새끼 사람이든, 제 어미나 어버이가 보여주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고스란히 따릅니다. 새끼를 낳은 짐승이라면 새끼가 찬찬히 보고 배울 수 있도록 어미답게 살아갑니다. 아기를 낳은 어른이라면 아기가 천천히 보며 익힐 수 있게끔 어버이답게 살아가야 합니다. 아이들은 책으로 배우지 않거든요. 아이들은 ‘좋은 책’으로 배우지 않거든요. 아이들은 텔레비전이나 영화로 배우지 않거든요. 아이들은 노상 ‘내 어버이 삶’을 바라보며 배우거든요.


.. 할머니는 의자를 뒤로 밀치며 벌떡 일어섰다. 여보슈, 당신은 내 연금이 얼만지 알 거요. 거기 적혀 있을 테니까. 아이 하나가 하루에 얼마나 먹어대는지, 바지나 양말은 얼마나 잘 떨어지는지, 아이 밑에 들어가는 것은 또 얼마나 많은지 알기나 하시오? 내가 재벌이나 공장 주인이라도 된다는 말이오? 아니면 뭐요! … (텔레비전에) 아이와 함께 사는 연금 생활자의 얘기라든가 고아 연금에 대한 얘기는 눈을 씻고 봐도 없는데 내가 왜 이렇게 열심히 보고 있지? ..  (31, 106쪽)


 공무원이 되면 다 똑같아진다고 합니다. 군인이 되어도 다 똑같아집니다. 경찰이 되건 국회의원(정치꾼)이 되건 다 똑같아집니다. ‘보고 배울 웃사람이나 이웃’ 삶자락을 고스란히 따르기 때문에 똑같아집니다.

 집에서 일과 살림을 거뜬히 즐길 뿐더러 아름다이 살아가는 어버이라 한다면, 아이는 제 어버이 결을 따르면서 살아갑니다. 꽃을 사랑하는 어버이 곁에서 꽃을 사랑하는 아이입니다. 흙을 북돋우는 어버이 곁에서 흙을 북돋우는 아이입니다. 책을 좋아하는 어버이 곁에서 책을 좋아하는 아이예요.

 살아가는 대로 살아갈 아이입니다. 살아가는 대로 받아들이는 아이예요. 어버이 되는 사람은 더 넓은 집이나 더 높은 이름값이나 더 많은 돈이 아닌, 어버이 두 사람이 서로 사랑으로 맺으며 활짝 웃을 만한 보금자리에서 아름답게 살아야 합니다. 아이는 책이나 돈이나 지식이나 아파트나 자가용이나 학력을 물려받을 때에 즐거울 삶이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들판과 멧자락에서 지저귀는 새가 무슨 새인지 모르는 어버이 곁에서는 새소리를 모르는 아이가 자라날 뿐입니다. 바람소리를 느끼지 못하고 구름하늘을 올려다보지 못하는 어버이 곁에서는 날씨와 자연을 모르는 아이가 클 뿐입니다.

 아이가 일찍부터 영어를 썩 잘 한다든지, 무슨무슨 고등학교나 대학교에 들어갔대서 기뻐할 수 없습니다. 아이한테 착하거나 참답거나 어여쁜 넋과 마음밭이 살찌우지 않는다면, 하나도 기뻐할 수 없습니다.


.. 사람들은 가끔 할머니와 같이 사는 게 어떤지 물었다. 칼레는 이 바보 같은 질문에 대답할 수 없었다. 칼레는 할머니와 같이 사는 생활 말고는 다른 어떤 생활도 알지 못한다. 어쩌다 할머니와 싸우기도 하지만 칼레에게는 할머니가 최고였다 ..  (46쪽)


 어른은 어른대로 한 사람으로서 오롯이 우뚝 서야 합니다. 아이는 아이대로 한 사람답게 오롯이 우뚝 서야 합니다. 저마다 슬기롭고 아리따운 꿈과 땀을 누려야 합니다. 서로서로 따뜻하며 너그러운 품으로 껴안아야 합니다.

 사랑은 돈으로 이루지 못하고, 돈은 사랑을 꽃피우지 못합니다. 돈이 없으면 굶는다지만, 사랑이 없으면 메마르고 맙니다. 돈이 없으면 동냥을 할 수 있으며, 돈이 없으니까 이웃한테서 밥을 얻을 수 있습니다. (4344.4.23.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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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빼쫑빼쫑 새와 책읽기


 새벽 세 시 오십삼 분에 일어난다. 텃밭 가장자리에 쉬를 눈다. 보름달은 기울고 하늘은 온통 잿빛구름이다. 앞 멧자락에서 새소리가 들린다. 그리 멀잖은 곳에 있다. 휘파람새라는 새일까. 밤에 지저귀는 소리가 참 남다르다. 이윽고 날이 차츰 밝으며 다른 멧새가 우짖는다. 삐이삐이 빼쫑빼쫑 우짖는 이 새는 종다리일까. 새벽 다섯 시에 접어들 무렵부터 한 시간쯤 우짖더니 조용하다.

 새를 다룬 도감이나 사진책이 곧잘 나온다. 많지는 않지만 드문드문 나온다. 새를 다룬 책에는 새가 날갯짓을 하거나 나뭇가지에 앉은 모습을 예쁘게 잘 담는다. 그렇지만 막상 새가 어떤 소리를 내며 노래하는지는 다루지 않는다. 새마다 어떠한 먹이를 즐겨찾는지를 알아보기는 더욱 힘들다.

 생각해 보면, 나 스스로 알아보거나 찾아낼 노릇이다. 새를 다룬 사진책이나 도감이 모든 이야기를 밝히기를 바랄 수 없다. 새벽과 아침과 낮과 밤에 따라 새소리가 어떻게 다르고, 먹이를 어디에서 어떻게 얻으며, 날마다 먹이를 어느 만큼 찾아서 먹어야 즐겁고 배부르게 하루를 마감하는지를 스스로 알아보거나 찾아낼 노릇이다. 배고플 때와 배부를 때 새소리는 어떻게 다르고, 막 일어났을 때하고 한창 움직일 때하고 잠들 무렵 새소리는 어떻게 다르며, 새끼일 때하고 어른일 때 새소리는 어떻게 다른가 또한 스스로 알아보거나 찾아낼 노릇이겠지.

 책을 아무리 뒤적이거나 살피더라도 제대로 알 길이란 없다. 스스로 숲속으로 들어가야 하고, 스스로 살금살금 새한테 다가서야 한다. 새가 우짖을 때에 이 소리를 가만히 귀담아들어야 한다.

 책을 아무리 펼치거나 넘기더라도 밥을 맛나게 할 수 없다. 스스로 밥을 차려야 한다. 지지든 볶든 굽든 삶든 스스로 물과 불과 간을 맞추어야 한다. 어느 밥책에도 물과 쌀을 몇 그램까지 맞추고 무슨 그릇으로 쓰며 어떠한 불을 넣고 몇 분 몇 초 끓여야 한다고 적을 수 없다. 스스로 알아내고 스스로 깨달으며 스스로 부딪혀야 한다. 책을 읽는대서 ‘장님 코끼리 만지기’조차 할 수 없다. 장님은 코끼리를 만지며 머리인지 다리인지 몸통인지 귀인지 모른다지만, 장님은 코끼리를 만져도 코끼리인 줄을 알 수 없다. (4344.4.23.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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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클릭 후 확인” 같은 말마디를 보면 슬픕니다. ‘누르기’라는 말마디를 잃거나 버리면서 ‘클릭하기’만을 붙잡으려는 모습을 새삼스레 느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close’ 같은 영어를 안 쓰고 ‘닫기’나 ‘그만보기’ 같은 한국말을 쓴 대목이 반갑습니다. 말 그대로 닫는 자리를 쉽게 알아보도록 하려는 만큼, 이렇게 한국말로 알맞고 바르게 적으면 됩니다. (4344.4.23.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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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리말(인터넷말) 64] 해피콜, 택배지연신고센터

 영어로는 ‘해피콜’이라면, 한자말로는 ‘행복전화’가 됩니다. 그러면, 우리 말로는 무엇이 될까요. 한국사람은 한국땅에서 살아가며 한국말로 생각을 나누어야 합니다. 일본사람은 일본땅에서 살아가며 일본말로 생각을 나누어야 할 테고요. 덴마크사람이 덴마크땅에서 덴마크말을 버리고 영어를 사랑할 까닭이 없습니다. 그렇지만 한국사람은 한국땅에서 한국말을 버리고는 영어와 한자를 사랑합니다. ‘幸福’을 한국말로 돌아보지 못합니다. 즐거움도 기쁨도 모르는 한국사람입니다. 덧붙여, ‘택배’ 같은 일본말이야 이제는 어찌할 수 없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지연(遲延)’이나 ‘센터(center)’ 같은 말 또한 어찌할 수 없을까 궁금합니다. “택배늦음신고마당”처럼 한국사람답게 한국말을 할 날을 우리 손으로 맞아들이기란 너무 힘든 듯합니다. (4344.4.23.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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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생각
― 사진과 돈



 돈이 있으면 더 나은 장비를 장만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퍽 많은 사람들이 들려줍니다. 돈이 없기에 더 나은 장비를 장만하지 못한다는 이야기 또한 꽤 많은 사람들이 들려줍니다.

 참말로 돈이 있지 않고서야 더 낫다는 사진 장비를 쓸 수 없습니다. 사진기 몸통이든 렌즈이든, 후드이든 필터이든, 세발이이든 가방이든, 빛살피개이든 필름이나 메모리카드이든, 사진 장비를 장만하자면 돈이 있어야 합니다. 어떻게 보면 돈이 없는 사람으로서 사진길을 걷는다는 일은 터무니없다 말할 만한지 모릅니다.

 제가 사진길을 처음 걷던 때를 돌이킵니다. 저한테는 사진기가 없었습니다. 다섯 학기를 다니고 그만둔 대학교에서 처음으로 사진을 만나 사진길을 걸었는데, 이 대학교에서 보도사진을 배울 때에 강사를 맡은 분은 모든 학생한테 사진기를 하나씩 가져오라고 했습니다. 대학교 앞 신문사지국에서 신문배달을 하며 먹고살던 터라 그야말로 빈털털이였는데, 아버지가 예전에 쓰시다가 망가져서 집안 어디인가를 뒹굴거리던 낡은 자동사진기 하나를 생각해 냈습니다. 주말에 집에 가서 낡고 망가진 사진기를 찾았습니다. 사진관에 수리를 맡기니 한 주쯤 걸리고 삼만 원이 든다 했습니다. 다음 수업에는 사진기를 갖고 갈 수 없습니다. 저는 1회용 사진기를 사서 수업에 들어갔습니다. 이듬주에 두 번째 수업에 들어가 보니, 모두들 번들거리며 큼지막한 사진기를 가지고 옵니다. 1회용 사진기를 가지고 온 사람은 저 하나뿐이기도 했으나, 집에서 찾아내어 수리를 맡긴 낡고 값싼 자동사진기를 가져온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이무렵 필름카메라는 수동사진기에서 전자동사진기로 크게 바뀌던 터라, 수동사진기를 쓰는 사람은 전자동사진기 앞에서 잔뜩 주눅들곤 했습니다. 까맣고 커다란 전자동사진기를 어깨에 걸치거나 큰 가방에 담고 작은 필름사진기를 비웃는 사람도 꽤 보았습니다.

 그렇다고, 없는 살림에 백만 원을 웃도는 사진기를 장만할 돈이 없을 뿐더러, 백만 원이 웃도는 값은 몸통 값일 뿐이요, 렌즈를 따로 사자면 더 어마어마한 돈이 든다는 소리를 듣고는 야코가 죽었습니다. 1998년에 한겨레신문을 230부(하고 스포츠신문·서울신문 곁들여 모두 260부) 남짓 돌리면서 신문배달 일삯으로 한 달에 삼십만 원을 받는데, 이 가운데 십육만 원을 적금으로 넣고 남은 십사만 원으로는 몇 해를 아무 데도 돈을 안 쓰고 모은들 꿈조차 꿀 수 없는 전자동사진기였기 때문입니다. 그나마 가장 값싸게 살 만한 수동사진기인 미놀타 엑스300마저 십삼만 원을 주어야 했으니, ‘내가 사진을 배우겠다고 나선 일은 참 턱도 없는 일이 아닌가?’ 하고 생각했습니다. 막상 사진기를 장만한다 하더라도 필름을 사야 합니다. 신문사지국 작은 방에 얹혀 지내는데 암실은커녕 현상하거나 인화할 장비조차 살 돈이 없습니다. 사진관에 현상과 인화를 맡겨야 하는데, 가장 싼 필름을 알아보아 한 통에 천 원짜리를 어찌저찌 찾기는 했는데, 한 통을 현상·인화 하려면 칠천 원쯤 들었어요.

 사진을 처음 배우던 때, 대학교 강의실에서 값비싼 사진기를 아무렇지 않게 장만해서 값비싼 필름을 아무렇지 않게 쓰는 사람들 웃음소리를 듣기가 몹시 거북했습니다. 이들은 으레 뒷자리에 앉고, 저는 맨 앞자리에 앉습니다. 나는 1998년 이해에 신문방송학과 모든 강의를 다 듣고 대학교를 그만둘 생각이라 모든 강의를 한 마디 한 마디 새겨들으려 했습니다. 등록금은 너무 비쌌고 대학 강의란 덧없다고 느꼈으나, 그만두기 앞서 ‘혼자 책을 읽어서는 알거나 배우기 힘든’ 실기수업은 들어야겠다고 생각하며 보도사진 강의를 들었어요. 이때에 보도사진 강사를 맡은 분은 무척 고맙게도 나처럼 1회용 사진기를 쓰거나 아주 싸구려인 낡은 자동사진기를 가진 사람한테 힘이 되는 말을 자주 들려주었습니다. 당신이 미국에서 사진을 배우던 일을 되새기면서, “미국 사진기자는 싸구려 자동사진기로도 특종을 찍지만, 한국 사진기자는 비싼 캐논과 니콘을 가지고 멀리서 망원으로 싸구려 사진을 찍는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싸구려 자동사진기를 가진 미국 사진기자는 취재원 코앞으로 다가와서 사진을 찍지만, 비싼 캐논과 니콘을 가진 한국 사진기자는 멋없는 풍경 비스무레한 사진만 수없이 쓰며 필름을 버린다고 덧붙였어요.

 보도사진 강의는 한 학기로 끝납니다. 1998년 가을에는 따로 사진 강의가 없습니다. 더 들을 만한 강의를 찾을 수도 없기에 1998년 12월에 휴학계를 냅니다. 새벽에는 신문을 돌리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대학교 도서관과 학교 앞 새책방과 서울 시내 헌책방을 쏘다니며 혼자 책을 읽으며 배웁니다. 1999년 여름에 교육책과 어린이책을 내는 출판사에 영업자로 뽑혀 들어갑니다. 이듬해에 이곳을 그만두고 다른 출판사로 옮기는데, 다른 출판사 사장님이 저한테 큰 선물을 하나 해 줍니다. 제가 쓰는 값싸고 낡은 사진기를 보시더니 “얘야, 아무리 그 사진기로 사진을 훌륭히 찍는다 하더라도 장비가 뒷받침이 안 되면 안 된다. 앞으로는 네가 돈을 더 벌어서 더 나은 장비를 갖추더라도, 이제부터 십 년 동안 쓸 사진기를 하나 사 줄 테니까, 나중에 우리 회사를 그만두면 받을 퇴직금으로 생각하고 이 사진기를 써라.” 하고는 캐논 이오에스 5번을 선물로 주었습니다.

 출판사에서는 신문사지국보다 일삯을 많이 받았습니다. 1999∼2000년에 출판사 영업자로 일하면서 62만 원을 받았습니다. 이 가운데 30만 원은 적금으로 떼고 32만 원을 내 몫으로 썼습니다. 신문사지국을 헤아리면 곱배기를 적금으로 부으면서도 살림돈은 곱배기로 남습니다. 그래도 새 사진기를 장만하기는 벅차요. 사진기를 선물해 주신 새 출판사 사장님은 일삯을 100만 원 주었습니다. 이제 100만 원 가운데 50만 원은 적금으로 부으며 50만 원을 살림돈으로 삼았고, 다달이 십만 원 안팎을 더 덜어 그러모은 다음 새 전자동사진기에 걸맞을 렌즈를 장만합니다. 처음에는 여러 해 손에 익은 사진기가 좋았지만, 차츰 새 사진기에 익숙해집니다. 사진기가 두 대가 되어, 하나는 빛깔사진을 찍기로 하고 하나는 흑백사진을 찍기로 합니다. 이제 막 새 사진기를 얻었기에 이무렵에는 ‘L렌즈’가 있는 줄 몰랐습니다. 퍽 값싼 렌즈만 쓰다가 28-105미리 엘렌즈가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또 이 렌즈를 한 번 빌려서 몇 장 찍고 보니 ‘온누리가 달라 보였’어요.

 새삼스레 생각합니다. ‘그래, 그렇구나. 나 같은 사람들이 제아무리 값싼 사진기로 용을 쓰고 애를 쓰더라도, 돈이 있는 사람은 이런 장비를 손쉽게 턱하니 장만해서 내가 용쓰고 애쓴 사진을 어렵잖이 찍을 수 있구나.’

 그렇지만, 사진은 장비로 찍지 않습니다. 사진은 몸으로 찍습니다. 현장에 있는 사람이 사진을 찍지, 현장에는 없되 값진 사진기를 갖춘 사람이 사진을 찍지 못합니다. 넉넉한 돈으로 장만할 수 있는 더 나은 장비가 있을지라도, 나 스스로 어떤 사진을 어디에서 찍으려 하는가를 살피지 못한다면 부질없습니다. 사진기를 쥐어야 할 때를 알아야 하고, 사진기를 내려놓을 때를 알아야 합니다.

 제 사진감은 헌책방입니다. 예나 이제나 헌책방을 사진감으로 삼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나 때때로 헌책방으로 취재를 나오는 기자들을 만납니다. 이들 신문사 기자나 잡지사 기자는 캐논 이오에스 5번보다 훨씬 빼어나다는 몸통에다가 갖가지 값진 엘렌즈를 붙여서 사진을 찍습니다. 기자들이 헌책방을 취재한다며 사진 찍는 모습을 보며 속으로 불길이 치솟습니다. 이들 기자는 여느 때에는 헌책방이 어디에 있는지조차 모르고, 헌책방을 다니지도 않으며, 헌책방이 어떤 곳인지를 마음으로 아로새기지도 않습니다. 슥 한 번 둘러보며 ‘그럴듯한 그림’을 신나게 만들어 냅니다. 값진 사진기와 장비와 렌즈는 ‘몸으로 제 사진감을 겪거나 치르거나 만나지 않’더라도 ‘그때그때 무척 빼어나다 싶은 그림을 손쉽게 선물해’ 줍니다.

 짧으면 5분이나 10분, 길면 30분쯤 ‘풍경 스케치’를 끝내는 사진기자가 돌아가고 난 자리에서 헌책방 책시렁을 뒤적이며 아픈 속을 달랩니다. ‘그래, 저들은 내가 이룰 수 없는 멋져 보이는 풍경 스케치를 놀라운 장비로 놀랍게 만들겠지. 내 사진기로도 어찌저찌 하면 틀림없이 나 또한 사람들한테 멋지게 보일 만한 풍경 스케치를 이룰 수 있는지 몰라. 그렇지만, 나는 풍경 스케치가 싫어.’

 필름을 마련하고 현상·인화를 하면서 다달이 십만 원 남짓 따로 모으려던 돈이 좀처럼 모이지 않습니다. 인화한 사진을 스캐너로 긁어야 한다는 소리를 듣고 스캐너를 장만하니 목돈이 쉽지 않습니다. 두 해만에 드디어 ‘헌 엘렌즈’ 하나 살 돈이 모입니다. 그러고 또 한 해 다시금 푼푼이 돈을 모아 값싼 미놀타 엑스300을 캐논 에이이 1번으로 바꿉니다. 필름을 긁는 스캐너가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거듭 돈을 추스르며 한 해 반이 지나 다른 스캐너를 장만했고, 다시 한 해 반이 지난 뒤에 캐논 9900에프 스캐너로 바꿉니다. 이러는 동안 몇 차례 사진기를 도둑맞아 적금을 깨서 사진기와 렌즈를 다시 사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사진기를 잃었을 때에는 이제 적금이 하나도 남지 않아 까마득했습니다. 그래도 나보고 사진길을 멈추지 말라는 고마운 뜻인지, 형이 살림돈을 보태 주어 디지털사진기로 캐논 450디를 마련하고, 고운 사진벗이 니콘 에프 삼번을 빌려줍니다.

 이리 되든 저리 되든 사진기를 쓰자면 돈이 있어야 합니다. 돈이 없고서야 사진기를 쓰지 못합니다. 내가 장만하든 남이 빌려주든, 누군가는 적잖이 돈을 치러 사진기를 장만해야 합니다.

 그림을 그리는 사람은 붓이나 연필이나 물감하고 종이를 장만해야 합니다. 글을 쓰는 사람은 연필과 종이를 장만해야 합니다. 종이값이나 연필값은 사진기값하고 대면 아주 싸다 할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종이값이나 연필값이 참말 싼지 잘 모르겠습니다. 없는 살림에는 종이값조차 비싸고 벅찹니다. 있는 살림에는 파노라마사진기마저 대수롭지 않습니다.

 없는 살림에는 종이 몇 장 장만하려면 더 많이 일해야 하고, 종이 몇 장에 글조각 끄적일 겨를을 어렵사리 마련합니다. 있는 살림에는 값진 사진기를 수월히 장만할 수 있고, 이곳저곳 마음껏 돌아다니며 온갖 모습을 담기 마련입니다.

 글을 쓰든 사진을 찍든 생각합니다. 틀림없이 더 나은 장비가 있고, 더 나은 장비는 틀림없이 더 빼어난 ‘풍경 스케치’를 베풀어 줍니다. 안젤 아담스가 빚은 사진을 십삼만 원짜리 수동사진기로 빚기란 힘들 뿐 아니라, 빚을 수 없다고 할 만합니다. 아니, 이래저래 따라해 볼 수 있는지 모르지요.

 그러니까, 값싼 사진기로는 ‘따라해 볼’ 수 있습니다. 값싼 사진기는 값진 사진기로 빚는 놀라운 풍경 스케치를 따라해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진이라는 이름을 붙일 만한 사진은 낳지 못합니다.

 사진기는 ‘더 나은 장비가 빚는 더 놀라운 풍경 스케치’를 따라하며 똑같이 빚으라 하는 장비가 아닙니다. 연필과 종이는 ‘더 좋은 연필과 종이로 빚은 더 놀라운 글이나 그림’을 따라하며 똑같이 빚으라 하는 연필과 종이가 아니에요.

 1회용 사진기로는 1회용 사진기로 찍을 사진을 즐겁게 찍으면 됩니다. 십삼만 원짜리 사진기로는 십삼만 원짜리 사진기로 찍을 사진을 신나게 찍으면 돼요. 내 삶이 부잣집 사람들 삶을 따르는 삶이 아니라, 내 나름대로 내 즐거우며 아름다울 길을 찾는 삶이라면, 내 사진은 내 깜냥껏 가장 즐거우며 가장 사랑스럽다 싶은 아름다운 사진을 찾는 사진삶이 되면 됩니다.

 돈이 없으니, 돈이 없는 대로 나한테 가장 걸맞을 장비를 장만합니다. 나는 나한테 가장 걸맞을 장비를 장만하지 ‘온누리에서 가장 좋거나 훌륭한 장비’를 장만하지 않습니다. 자전거를 좋아하는 내가 ‘온누리에서 가장 좋거나 훌륭한 자전거’를 장만하지 않듯, 나는 내가 타고 다닐 가장 알맞으면서 괜찮은 자전거를 신나게 타고 돌아다닙니다. 돈에 맞추는 삶이 아니라 삶에 맞추는 돈입니다. 돈에 따라 꾸리는 삶이 아니라, 삶에 따라 마련해서 쓰는 돈입니다.

 돈이 있는 사람은 돈을 쓰라고 하면 됩니다. 마음이 있는 사람은 마음을 쓰면 됩니다. 돈이 넉넉한 사람은 더 빼어나다는 장비를 홀가분하게 장만하면 됩니다. 사랑을 따스히 나누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사랑을 따스히 나누면서 내 삶을 누리면 됩니다.

 좋은 사진기로 사진을 찍는 사람이 더 좋거나 더 나쁘거나 하지 않습니다. 그저 좋다는 장비로 사진을 찍을 뿐입니다. 좀 허술하거나 값싼 사진기로 사진을 찍는 사람이 더 나쁘거나 더 훌륭하거나 하지 않습니다. 그저 좀 허술하거나 값싼 사진기로 사진을 찍을 뿐이에요.

 우리 집 아이가 입는 옷은 거의 모두 얻어다 입힙니다. 아이 어머니가 뜨개한 옷이 몇 벌 있습니다. 아이는 어느 옷을 입어도 참 어여쁩니다. 아이 아버지는 날마다 아이 옷가지를 손빨래하면서 아이가 기쁘게 입고 예쁘게 뛰놀기를 바랍니다.

 저는 가장 사랑스럽게 손을 뻗으면서 사진을 찍고 싶습니다. 값싼 사진기를 쓰든 값진 사진기를 쓰든, 저마다 가장 사랑스럽게 손을 뻗으면서 사진을 찍어야 한다고 느낍니다. 가장 사랑스레 뻗는 손으로 사진기 단추를 누르면, 값진 사진기로는 참 훌륭하다 싶은 그림이 태어날 테고, 값싼 사진기로는 참 아리땁다는 이야기가 태어나겠지요.

 만 원짜리 안경을 쓸 때보다 십만 원짜리 안경을 쓸 때에 한결 잘 보일는지 몰라요. 삼천 원짜리 고무신을 신을 때보다 십만 원짜리 운동신을 신을 때에 훨씬 잘 달릴는지 몰라요. 온누리를 더 잘 볼 수 있으면 더 좋을 수 있고, 달리기를 더 잘 하면 더 기쁠 수 있습니다. 다만, 저는 아름다운 사람을 아름다운 눈길로 바라보며 아름답게 살고 싶습니다. 내 삶자락을 예쁘게 북돋우며 고운 넋으로 어여삐 살아가고 싶습니다. 1등이나 2등이나 3등이나 아무 뜻이 없습니다. 더 좋아 보이는 사진이란 아무 보람이 없습니다. 마냥 바라보면서 좋은 모습이라면 사진으로 안 담고 내 눈과 내 마음에 담으면 그예 좋습니다. 내가 찍었되 내가 다시 보아도 참 좋아서 틈틈이 다시 보는 사진이라면, 이렇게 사진으로 찍어도 좋지만, 내가 사진으로 찍은 그곳을 틈틈이 다시 찾아가서 맨눈으로 실컷 들여다보아도 좋습니다. 사진으로 찍힌 모습은 늘 한 모습이고, 맨눈으로 보며 마음으로 찍는 모습은 늘 새삼스러운 무지개빛 모습입니다.

 돈이 있으면 한결 돋보인다 싶은 사진을 쉽고 빠르게 얻습니다. 돈이 없거나 적으면 한껏 돋보일 사진을 땀과 사랑과 믿음을 들여 천천히 얻습니다. 어느 사진이든 사진입니다. 어느 쪽 사진이 더 낫지 않습니다. 돈이 많아 온누리 어려운 사람을 많이 돕는 사람이 더 훌륭하지 않습니다. 돈이 없어 늘 살림돈을 얻으며 살아가는 사람이 안 훌륭하지 않습니다.

 돈이 있어 하루아침에 값진 사진기를 쉬 장만할 수 있습니다. 돈이 적거나 모라자기에 여러 해에 걸쳐 조금씩 돈을 그러모아 값진 사진기를 장만할 수 있습니다. 돈이 적거나 모자란 나날을 보냈기에, 내가 그리는 값진 사진기를 꿈꾸며 여러 해에 걸쳐 돈을 그러모으며 지내다 보니 ‘여러 해가 흐르는 동안 내가 꿈꾸던 사진기보다 훨씬 기능이 나아진 새 사진기’가 나오기도 하더군요. 그래, 사진기란 돈으로 장만합니다. 돈으로 장만하는 사진기는 한두 해 쓰고 버리거나 바꿀 사진기가 될 수 없습니다. 돈으로 장만하든 선물로 받아서 쓰든, 내가 손에 쥘 사진기는 이제부터 쉰 해쯤 고이 돌보면서 쓸 사진기가 될 수 있으면 즐겁습니다. (4344.4.19.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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