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점 숲의 아카리 8
이소야 유키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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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 다른 책, 사뭇 다른 사랑, 서로 다른 사람
 [만화책 즐겨읽기 39] 이소야 유키, 《서점 숲의 아카리 (8)》



 봄에는 봄비가 옵니다. 지난주에 내린 봄비는 벼락을 이끌고 쏟아붓던 봄비였는데, 올들어 처음으로 ‘비가 이토록 쏟아지는데 춥지 않구나’ 하고 느꼈습니다. 벼락비가 지나간 뒤 참말 날이 퍽 포근합니다.

 여름에는 여름비가 옵니다. 여름비는 시골마다 알뜰히 심은 곡식과 푸성귀가 알차게 자라도록 도와주는 비입니다. 여름비가 한꺼번에 몰아치지 않고 사나흘에 한 번씩 알맞게 내린다면, 곡식과 푸성귀는 얼마나 싱그러이 잘 자랄 수 있을까 생각합니다. 그러고 보면, 한국땅에서는 여름 빗물을 알뜰히 건사해서 가뭄에 고맙게 쓰도록 마련하는 일이란 없습니다. 도시에서는 그저 꼭지를 틀어 수도물을 쓰면 된다고 여깁니다. 가뭄날에도 도시사람은 물을 여느 때하고 똑같이 펑펑 씁니다.

 가을에는 가을비가 옵니다. 가을비는 바야흐로 추위가 닥치니까, 겨울맞이를 잘 하렴 하고 인사를 하는 비라고 느낍니다. 추적추적 내리는 가을비를 바라보면서 집살림을 다시금 여밉니다.

 겨울비는 이제부터 꽁꽁추위로 얼어붙으니까 마음 단단히 먹으라는 뜻이로구나 싶어요. 때때로 ‘겨울이라지만 너무 춥기만 하지? 살짝 녹여 볼까?’ 하는 뜻은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겨울이 물러서는 겨울비는 비로소 한숨을 놓는 비가 되기도 합니다.

 철 따라 다 다른 비입니다. 철마다 새삼스러운 비예요. 빗물은 와르르 쏟아부으며 지붕을 뚫을 듯하기도 하지만, 참으로 소리없이 흩뿌리기도 합니다. 꾸준히 내리기도 하고 갑자기 퍼붓기도 합니다. 나뭇가지와 풀잎에 맺힌 빗방울은 앙증맞기도 하고 가냘프기도 합니다. 이 빗물이 땅으로 스며들어 졸졸 흐르니까, 사람이든 짐승이든 푸나무이든, 이 물을 반가이 맞아들여 얻어 마십니다.


- “테라야마 씨.” “네.” “오늘 뭔가 할 얘기가 있었나요? 글귀에서 그런 느낌이 났거든요.” “예, 저, 나는 그때 아카리 씨에게 말한 것을 이제서야 후회하고 있습니다.” (55쪽)
- ‘왜 이러지? 별로 마시지 않았는데. (콜록콜록) 하아, 그때 난 아카리 씨에게 이런 기분이 들게 했던 걸까.’ (63쪽)



 만화책 《서점 숲의 아카리》 8권째를 읽습니다. 《서점 숲의 아카리》 8권째에는 ‘한국 서울에 새끼가게를 차린 이야기’가 나옵니다. 일본에서 일본 책방 이야기를 다루는 《서점 숲의 아카리》인 만큼 굳이 한국에 새끼가게를 차린 이야기를 다루지 않아도 됩니다. 왜냐하면, 책방이면 다 같은 책방이지, 일본이랑 한국이 뭐가 다르냐 할 만하거든요.

 그런데, 책방이면 다 같은 책방이라 할 때에는, 책이면 다 같은 책입니다. 이 책 저 책 따로따로 다룰 까닭이 없습니다. 더욱이, 이 사람 저 사람 다 같은 사람일 테니까, 숱한 사람들이 맺고 얽히면서 사랑하기도 하지만 미워하기도 하다가는 싫어하기도 하고, 애틋하게 여기기도 하는 온갖 삶을 보여줄 까닭이 없을 테지요.

 《서점 숲의 아카리》가 50권이나 100권까지 나올 수 있다면, 나중에는 중국이나 대만이나 미국이나 프랑스나 스웨덴 같은 나라에까지 새끼가게를 차리는 이야기를 보여줄 수 있으면 어떠하랴 싶기도 합니다. 나라마다 사람이 다르고 문화가 다르며 이야기가 다를 테니까요.


- ‘이거, 과연 끝날까. 일본에서는 어떻게 일했지? 나는 벌써 며칠째 제대로 책을 읽지 못하고 있는 걸까. 전에는 이렇게 책이 쌓인 장소에 있으면 외롭다는 생각이 안 들었는데.’  (87쪽)


 개구리알에서 깬 올챙이가 논물에 가득합니다. 왜가리와 해오라기는 이 올챙이를 잡아먹으려고, 또 일찍 개구리가 된 녀석들을 잡아먹으려고, 논가에 자주 찾아옵니다. 왜가리와 해오라기뿐 아니라 까치나 멧비둘기나 까마귀도 논을 드나듭니다. 장끼와 까투리도 드나듭니다. 올빼미와 뻐꾸기도 드나들 테지요.

 시골자락에서는 시골자락에 깃든 새들답게 시골에서 얻을 먹이를 찾아다니며 숨을 잇고 보금자리를 돌보며 새끼를 까는 멧새입니다. 도시에서라면 도시에서 살아가는 새들답게 도시에서 얻을 먹이를 찾아다니며 숨을 이을 도시새가 되겠지요.

 어느 쪽이 더 새다운 새라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어디에서든 새는 새일 테니까요. 어디에 살든 사람은 다 같은 사람이며, 어떤 일을 하든 사람은 다 한동아리 사람입니다. 아무리 매캐한 바람이 부는 도시라 하더라도, 푸나무는 용케 말라죽지 않습니다. 사람이든 새이든 쥐이든 뭐이든, 시끄러우며 어지럽고 시멘트로 흙이 다 덮인 곳에서 용케 살아냅니다.

 가만히 보면, 도시에서 살아가는 동안 책을 읽으면, 책은 그예 지식조각이 될밖에 없겠구나 싶습니다. 책은 종이로 만들고, 종이는 나무를 베어 만듭니다. 도시에는 나무가 없을 뿐더러, 도시에서 자라는 나무를 베어 종이를 만드는 일이 없을 뿐 아니라, 도시에는 종이를 만드는 공장이 없습니다.

 도시에는 ‘종이로 만드는 책에 실을 알맹이를 글로 쓰거나 그림으로 그리거나 사진으로 찍는’ 사람들만 있습니다.


- “테라야마 씨, 왜 그렇게 기뻐 보여요?” “예?” “첫날 사람들이 많이 왔을 때는 묘한 표정을 지었으면서.” “아니, 그게. 고객이 서서히 줄어든다는 건 책장 구성에 미진함이 있어서라고 생각해요. 아직까지 개성이 부족하다고 할까? 그런 찜찜한 상태에서 계속 손님이 오는 것보다는 우리에게는 오히려 훨씬 잘된 일인지도 모릅니다. 잘 팔릴 만한 책만 모아 둘 것이 아니라, 소규모 서점만의 개성을 표츌하고 싶어요.”  (106∼108쪽)


 만화책 《서점 숲의 아카리》 이야기를 버티는 두 기둥 가운데 하나인 테라야마 씨는 점장이 되는 길을 걷지 않다가는, 서울 지점으로 옵니다. 테라야마 씨는 점장이든 부점장이든 바라지 않습니다. 그저 책을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책을 아끼며 책하고 함께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둘레에서 테라야마 씨를 바라보는 사람들은 테라야마 씨를 바꾸고 싶어 합니다. 책을 이만큼 잘 알며 꿰뚫는 사람이 여느 일꾼으로 머물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책에 갇힌다 싶게 살아가는 모습은 그닥 안 좋을 수 있습니다. 책을 아끼고 사랑하되 책에 얽매이지 않아야 비로소 사람다운 사람이라 하겠지요. 테라야마 씨는 틀림없이 ‘책 울타리’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다만, 책누리에서 일하며 책 울타리에서 벗어나기보다는, ‘책이 태어나서 자라는 터전’을 몸으로 느끼고 마음으로 받아들이면서 책 울타리에서 벗어날 수 있을 때에 가장 아름다우면서 사랑스럽겠지요.


- “아까 ‘언어는 사람을 표현하는 것’이라고 말했는데, 저는 결코 ‘사람을 살피는’ 것을 잘하는 사람이 아니에요. 하지만 그게 좋아서 어학 공부를 열심히 했을지도 모르겠어요. 테라야마 씨와 저는 자라온 환경과 문화가 다르긴 하지만요, 음, 한마디로, 불안한 점이 있으면 분명하게 말로 표현해 주세요! 어려운 일일지도 모르지만! 그러면 가능한 정확하게 다른 직원들에게 전달할게요. 그게 함께 일하는 거라고 전 생각해요.“  (114쪽)


 책을 읽으면서 사랑을 알 수 없습니다. 책을 많이 읽었기에 사람을 알 수 없습니다. 몸으로 부대끼는 사람이 책에 깃든 모든 지식을 다 알지는 못하겠지요. 나는 나대로 몸으로 부대끼며 내 슬기를 갈고닦는다지만, 내 몸을 갈고닦으면서 아름다운 책을 가까이하다 보면, 내 둘레 수많은 사람들이 저마다 알뜰살뜰 갈고닦으며 아름다이 키운 슬기를 기쁘게 마주하면서 내 슬기를 한껏 북돋울 수 있습니다.

 책은 울타리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책은 좋은 보금자리가 되어야 합니다. 책은 지식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책은 따스하며 넉넉한 사랑이어야 합니다.

 《서점 숲의 아카리》에 나오는 테라야마 씨이든 아카리 씨이든, 또 카노 씨나 시오리 씨나 모두, 아직은 어느 한쪽에 얽매인 삶에 휘둘립니다. 저마다 어떤 응어리를 안습니다. 이 응어리를 깨닫거나 알아채기는 하지만 좀처럼 풀어내거나 씻어내지 못합니다. 또는 아직 못 깨닫거나 안 알아챕니다. 깨닫기는 했어도 굳이 풀어내려 하지 않는다든지, 알아채기는 했어도 대수롭지 않게 여깁니다.

 《서점 숲의 아카리》 9권부터는 이제 슬슬 이러한 응어리를 솔솔 푸는 실타래를 조금쯤은 보여주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토록 책을 많이 읽고 책하고 둘러싸인 채 살아가면서 아무것도 못 느낀다면, 또한 둘레에 서로서로 좋은 사람을 많이 마주하면서 하루하루 예쁘게 살아가는 데에도 좀처럼 제 굴레를 벗어던지지 못한다면, 《서점 숲의 아카리》는 어영부영 뒤죽박죽이 되다가는 괜히 권수만 더 늘린다든지, 뻔한 사랑열매 맺는 흐름으로 마무리될까 싶어 걱정스럽습니다. (4344.5.7.흙.ㅎㄲㅅㄱ)


― 서점 숲의 아카리 8 (이소야 유키 글·그림,설은미 옮김,학산문화사 펴냄,2011.3.25./42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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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5.5. 

자전거를 아직 잘 못 탄다. 그래도 자전거하고 놀면 좋아한다. 집으로 들어가기 앞서 자전거를 도서관 벽에 붙이자니까, 제가 끌겠다고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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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으로 보는 눈 159 : 도서관


 모두 아홉 권으로 된 《초원의 집》은 2005년에 새롭게 한국말로 옮겨집니다. 2011년이 되어도 꾸준하게 사랑받습니다. 2005년에 새롭게 옮겨진 이 책이 2050년까지 사랑받을 수 있으면 2050년까지 이 땅에서 살아갈 숱한 어린이와 푸름이와 어른은 좋은 넋으로 좋은 터전을 일구려 하던 사람들 땀방울과 마음결을 느낄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 책이 2050년까지 고이 잇지 못하면서 판이 끊어진다면, 이 책을 찾아보려면 헌책방을 누비거나 도서관을 찾아야 할 테지요. 도서관에서 아홉 권 한 질을 갖추었더라도 사람들이 오래도록 많이 찾아 읽는다면, 하루하루 낡고 닳아 더 빌려주지 못할 수 있습니다. 한 질을 알뜰히 갖추었다지만 사람들이 거의 찾아 읽지 않는다면, ‘도서관 건물을 애써 짓기는 했지만 새로 들여올 책을 넉넉히 꽂을 새 자리를 새로 늘리지 않는 한국 도서관 모습’을 돌아볼 때에, ‘대출실적 적은 책이라는 딱지가 붙으며 버려지’고 맙니다.

 나는 우리 네 식구 살아가는 조그마한 집이 살림집이면서 도서관이라고 여깁니다. 어설프지만 어설픈 대로 살림을 꾸리며 지내는 집이요, 이 집에는 식구들이 서로 아끼거나 좋아하는 책을 얌전히 꽂고는 틈나는 대로 끄집어서 읽습니다. 한 번 읽은 뒤로 오래도록 그냥 꽂히는 책이 있을 테고, 열 번 스무 번 다시 끄집어서 읽는 책이 있을 테지요. 그저 한 번만 읽는 책이든, 수없이 다시 꺼내거나 들추는 책이든, 우리 식구한테는 반가운 책입니다. 고마운 ‘집 도서관 책’입니다.

 이제 갓 네 살을 살아가는 아이는 제 어머니와 아버지처럼 글책을 마음껏 읽지 못합니다. 그러나 어머니와 아버지 되는 사람은 글책을 꾸준하게 장만합니다. 아이한테는 그림책을 읽히지만, 아이가 읽을 책 말고 어머니와 아버지가 읽을 책을 하나둘 갖춥니다. 아이는 제 어머니와 아버지가 책을 읽는 모습을 가만히 바라봅니다. 무얼 읽느라 이렇게 쏙 빠져들어 저랑 안 노는가 궁금해 할는지 모릅니다. 어머니와 아버지가 어떠한 책을 읽는지 저도 알고플 수 있습니다.

 아이는 앞으로 이 책을 읽을 수 있고 안 읽을 수 있습니다. 아이 스스로 글을 깨우치고 나서 퍽 여러 해가 흐른 뒤에는 제 어머니와 아버지가 읽던 책을 물려받아 읽을 수 있겠지요.

 아이가 스스로 글책을 신나게 읽을 때라면 적어도 열 해는 흘러야 합니다. 열 해가 흘러야 한다면 올해가 2011년이니 2021년은 되어야 합니다. 2005년에 새롭게 나온 《초원의 집》은 2021년에도 살아남을 만할까요. 2011년 4월 21일에 새로 나온 《성의 패러독스》(수전 핀커 씀,숲속여우비 펴냄) 같은 책은 앞으로 언제까지 사랑받으려나요. 이 나라 도서관 가운데 몇 군데에서 이 책을 살뜰히 사들여 알뜰히 건사하려나요. 국공립 도서관을 비롯해, 지자체 도서관이랑 초·중·고등학교 도서관, 또 대학교 도서관과 시골 작은 도서관에서는 《초원의 집》을 갖출까 궁금합니다. 《성의 패러독스》 같은 책을 갖출는지 궁금합니다. 우리 식구 살아가는 시골자락 둘레에는 도서관이 없어, 우리는 우리 집을 도서관으로 삼습니다. (4344.5.6.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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男子 (ペ-パ-バック)
梅 佳代 / リトル·モア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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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을 만든 남자한테 말을 걸다
 [잘 읽히기 기다리는 사진책 25] 카요 우메(梅 佳代), 《男子》(Little More,2007)


 우리 집 첫째 아이가 하루가 다르게 크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내 어린 나날은 어떠했을까를 가만히 곱씹습니다. 이른아침부터 늦은밤까지 지치지 않으면서 엉겨붙거나 노는 품을 바라보면서 아이들은 이렇게 싱싱하거나 기운차게 살아간다고, 무럭무럭 자라는구나 하고 헤아려 봅니다.

 수백 가지 웃음과 눈물을 보여주는 아이입니다. 수천 가지 몸짓과 노래를 선보이는 아이입니다. 수만 가지 이야기와 꿈을 밝히는 아이입니다.

 모든 사람은 어머니가 있고 아버지가 있습니다. 누군가는 어른이 되기 앞서 어머니나 아버지가 흙으로 일찍 돌아가곤 합니다. 누군가는 새어머니나 새아버지를 맞아들일 테지만, 낳은 어머니와 아버지가 없이는 내 목숨이 이 땅에 설 수 없습니다. 내가 낳아 돌보는 아이 또한 나와 옆지기가 있기에 예쁘게 태어나서 고맙게 살아갑니다.

 누구나 선물덩어리이면서 보배덩어리입니다. 누구나 선물을 듬뿍 물려주면서 보배를 가득 남깁니다. 일찍 혼인해서 일찍 아이를 낳든, 조용히 혼자 살아가며 아이 없이 지내든, 어떠한 사람이더라도 나부터 내 가슴에 펄떡펄떡 뛰는 목숨이 있습니다. 이 목숨을 어떻게 느끼느냐에 따라 사람과 삶과 사랑이 달라집니다. 일찍 혼인해서 아이를 열씩 낳았다지만 사람과 삶과 사랑하고는 동떨어질 수 있습니다. 짝꿍을 사귀지 않고 홀로 지내다가 앓아누워 조용히 숨을 거두더라도 사람과 삶과 사랑하고는 살가울 수 있습니다.

 내가 내 온몸을 사랑으로 돌본다면 나와 마주하는 모든 사람들은 고스란히 사랑입니다. 내가 내 온마음을 믿음으로 보듬는다면 나를 둘러싼 모든 사람들은 한결같이 믿음입니다.

 사진이란 ‘하루가 다르게 살아가는’ 사람들 이야기를 담습니다. 하루 동안에도 ‘때마다 다르게 살아내는’ 사람들 사랑을 담습니다.

 사진은 수백 가지 웃음과 눈물뿐 아니라 수만 가지 이야기와 꿈을 밝힙니다. 수천 가지 몸짓과 노래 또한 알알이 즐기면서 보여줍니다.

 값진 사진기로 값진 사진을 이루지 않습니다. 높은 이름값으로 거룩한 글을 이루지 못해요. 어마어마하다는 권력으로 아름다운 그림을 빚지 못합니다. 사람 목숨 하나이든 사랑스러운 손길 한 번이든 살가운 삶 한 자락이든, 돈이나 이름이나 힘으로 건드리지 못합니다. 살가운 사랑으로 사람을 사귀는 예쁜 삶이란, 살가운 사랑으로 이웃과 어깨동무하는 어여쁜 삶으로 마주하면서 느낄 수 있습니다. 값진 사진기가 아니라 ‘내 온 사랑을 담아 손에 쥔 사진기’로 담는 아름다운 사람들 아름다운 사랑 아름다운 삶입니다.

 카요 우메(梅 佳代) 님 사진책 《男子》(Little More,2007)를 들여다봅니다. 사진책 이름이 더도 덜도 아닌 ‘남자’입니다. 첫 쪽부터 마지막 쪽까지 ‘남자 어린이’ 사진이 펼쳐집니다. 장난꾸러기인지 개구쟁이인지 까불이인지 철부지인지 알 길이 없는 남자 아이들 사진이 가득합니다.

 이 아이들, 이 사내 녀석들은 장난꾸러기라 할 만할까요, 개구쟁이라 할 만할까요. 사진기 앞에서 스스로 바보스러운 몸짓과 얼굴짓을 하는 요 녀석들은 까불이라 할 만한가요, 철부지라 할 만한가요.

 여자 아이라 하면 사진기 앞에서 어떤 모습 어떤 몸짓 어떤 낯빛이 될까 궁금합니다. 여자 아이라 하든 남자 아이라 하든 다 마찬가지가 될는지, 남자 아이는 남자 아이답게 남달라 보이는 모습이 될는지 궁금합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지 않더라도, 남자 아이나 어른은 참 바보스럽습니다. 스스로 얼마나 바보스러운 줄 모르며 바보스레 살아가는 남자 아이나 어른입니다. 무엇 하나 대단하지 않은데, 어리석게도 대단하다 생각하며 얽매이는 남자 아이나 어른입니다. 그러니까, 정치라든지 권력이라든지 스포츠라든지 이름값이라든지 얽매이는 남자 아이나 어른입니다. 남자가 얼마나 잘나서 ‘공차기는 남자만 하는 놀이’라고 여깁니까. 여자가 권투를 할 때에 우악스럽다거나 징그럽다고 여긴다면, 남자가 권투를 할 때에도 매한가지입니다. 서로서로 신나게 두들겨패서 넋을 잃고 쓰러지면 손뼉을 치며 웃고 떠드는 남자들이란 더없이 바보요 멍텅구리입니다. 참삶을 모르고 참사랑을 모르며 참사람을 모르는 철부지요 꺼벙이입니다.

 축구선수도 밥을 먹고 권투선수도 밥을 먹습니다. 밥을 안 먹어도 될 사람은 없습니다. 축구를 못 하든 안 하든 대수롭지 않습니다. 밥을 못 먹거나 밥을 할 줄 모른다면 큰일입니다.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이 되든 말든 대단하지 않습니다. 밥을 못 먹거나 밥을 할 줄 모른다면 살지 못합니다.

 카요 우메 님 사진책 《男子》는 어린아이 모습을 담아 ‘남자’ 이야기를 들려주는데, 어린아이 모습으로만 읽을 남자 이야기만은 아니로구나 싶습니다. 남 앞에서 제 모습을 돋보이려는 이 바보스러운 남자들은 ‘사진에 찍힌 몇몇 아이만 바보스럽다’는 소리가 아닙니다. 이 아이들이 바보스러운 노릇이 아니라, ‘남자’라고 하는 목숨붙이들이 얼마나 바보스러운 짓을 하면서 바보스러운 줄 모르고 바보스러운 꼴을 되풀이하면서 제 삶을 슬프게 잊는가를 들려주는 셈입니다.

 한 마디로든 두 마디로든 세 마디로든 남자는 바보스럽습니다. 이 바보스러운 남자들이 정치 권력이나 사회 권력이나 사진 권력을 움켜쥡니다. 철없고 까부는 남자들이 평론이니 학문이니 무어니를 온통 거머쥡니다. 참말 남자들은 뭔 짓을 하는지 스스로 알기나 하겠습니까. 뭔 짓을 하는지조차 스스로 모르면서 바보짓을 하는 사람들이 곧 남자라는 목숨입니다. 슬프며 가녀린 목숨입니다. 쓸쓸하며 허전한 목숨입니다. 따순 손길과 포근한 눈길을 바라는 애처로운 목숨입니다. (4344.5.5.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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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탈논 도룡뇽 알


 멧길을 따라 오르며 비탈논 옆을 지난다. 비탈논 한복판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를 들여다보지는 못한다. 그러나 발이 폭폭 빠지더라도 한복판으로 들어서 보면 개구리들이 요기조기 숨거나 올챙이가 꼬리를 흔들며 쪼르르 내빼는 모습을 볼 수 있겠지.

 비탈논 한쪽 귀퉁이를 지나면서 동그랗게 말린 가느라단 무언가를 본다. 가만히 다가선다. 동그랗게 말린 가느다란 무언가 둘레로 갓 깨어난 올챙이가 꼬물꼬물 헤엄친다. 동그랗게 말린 가느다란 무언가를 곰곰이 들여다본다. 길다랗게 말린 무언가에는 길다란 작은 목숨이 옴찔옴찔한다. 언제쯤 깨어날 수 있을까를 기다리면서 천천히 자라난다.

 멧골자락 비탈논은 판판한 들판 논보다 퍽 늦게 모내기를 한다. 모판에 볍씨를 심고 나서 논삶이를 할 테니까, 이 도룡뇽 알은 그때까지 힘을 내어 깨어난 다음 올챙이에서 어른 도룡뇽으로 자란다면 얼마든지 살아난다.

 생각해 보면, 개구리이든 도룡뇽이든 사람들이 논삶이를 하며 모를 옮겨 심을 무렵까지 알깨기하고 어른되기를 끝마치면서 살아왔다. 개구리이든 도룡뇽이든 해마다 하루나 이틀씩 더 일찍 깨거나 더 빨리 어른이 되지 않는다. 사람들은 해마다 하루나 이틀씩 모내기를 앞당기지만, 개구리나 도룡뇽은 저희 삶을 앞당기지 않는다. 아니, 개구리나 도룡뇽도 앞으로는 저희 삶을 앞당겨야 할 테지. 지구별은 차츰 따뜻해지고, 이 나라 날씨 또한 금세 더운 여름이 찾아오니까, 사람들은 더운 날씨에 맞추어 모내기를 앞당기지 않겠는가. 더욱이, 더 빨리 심고 더 빨리 거두어 더 빨리 팔려고 하다 보니, 다들 모내기를 앞당긴다. 철과 날씨와 시골살이를 헤아리며 천천히 알맞게 모내기를 하는 사람은 늘어나기 힘들다.

 어느 농사꾼이든 모내기를 앞당기면서 개구리하고 도룡뇽한테 ‘자, 올해에는 앞당겨 일할 테니까 얼른 깨어나서 이곳을 떠나렴!’ 하고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이렇게 이야기한들 알아듣겠나. 이런 이야기를 알아듣는들 갑자기 더 빨리 자라서 논을 떠날 수 있겠는가. 논을 떠났다가 모내기를 마친 다음 다시 논으로 돌아올 수 있겠는가.

 아파트를 짓건 갯벌을 메우건 공항을 만들건, 또 네 군데 큰 물줄기를 손질한다는 일을 하건, 이 나라 사람 가운데 어느 누구라도 한겨레와 오래도록 함께 살아온 이웃 목숨붙이한테 소곤소곤 말을 거는 일이란 없다. 환경영향평가를 한다지만, 사람이 살도록 바꾸려는 환경영향평가일 뿐, 예부터 조용히 잘 살아오던 작은 목숨붙이가 오래오래 조용히 잘 살도록 마음을 쏟는 환경영향평가란 없다.

 도룡뇽 한 마리 때문에 고속철도를 늦추거나 에돌거나 멈출 수 없다던 대통령이고 정치꾼이고 기자이고 지식인이고 공무원이고 개발업자이고, 바로 우리들 아니던가. 도룡뇽 한 마리한테 마음을 쓸 수 없다면, 가난한 이웃한테도 마음을 쓸 수 없다. 가난한 사람한테야 보상금 찔끔 던진 다음 쫓아내면 되고, 강제수용 퇴거명령서 한 장이면 끽소리 못하고 떠나야 한다. (4344.5.6.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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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1-05-07 23:47   좋아요 0 | URL
허 저게 도룡뇽 알인가요.된장님 덕분에 자세히 보게되네요^^

파란놀 2011-05-08 06:23   좋아요 0 | URL
요즈음은 도룡뇽 알도 많이 줄어요. 게다가 무슨무슨 체험이랍시고 도룡뇽 알을 마구 건드리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