낫짱은 할 수 있어 - 조선 아이 낫짱의 풍금 타기 대작전 보리피리 이야기 4
김송이 글, 홍영우 그림 / 보리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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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도 조선도 남녘도 북녘도 같은 사람들
 [푸른책과 함께 살기 77] 김송이, 《낫짱은 할 수 있어》(보리,2008)



- 책이름 : 낫짱은 할 수 있어
- 글 : 김송이
- 그림 : 홍영우
- 펴낸곳 : 보리 (2008.3.10.)
- 책값 : 9500원


 (1) 누가 한국사람인가


 아이를 태우는 수레를 달고 읍내로 마실을 다닙니다. 우체국이나 읍사무소나 가게 앞에 서려면 턱을 낮춘 거님길 자리로 들어서면서 건물 옆이나 한 귀퉁이에 세웁니다. 자전거를 세우는 자리를 따로 마련하는 건물은 거의 없습니다. 알아서(?) 자전거 세울 자리를 찾아야 하고, 알아서(?) 자물쇠를 채우든 해야 합니다.

 어제 낮, 한낮 땡볕을 고스란히 받으며 읍내로 나와 자전거를 세울 즈음, 맞은편에서 달려오던 자동차 하나가 자전거 앞으로 먼저 끼어들어 거님길 턱 없는 데로 들어서더니 자동차가 못 들어서도록 굵직한 돌을 박은 앞까지 끼익 하고 차를 댑니다. 자동차를 몰던 사람이 부리나케 튀어나와 은행으로 들어가려 합니다. 이리하여 자전거는 찻길에 뻘쭘히 서서 오도 가도 못하고 맙니다. 자동차를 몰던 사람을 불러 자동차가 올라서면 안 되는 곳에 올라온 데다가 자전거가 가야 하는 길을 꽉 막아섰으니 뒤로 빼라고 이야기하지만 들은 척하지 않습니다. 자전거가 못 지나가든 아기수레가 지나갈 수 없든 바퀴걸상이 오갈 수 없든 아랑곳할 까닭이 없다는 몸짓이며 말투입니다.

 그러나 이런 사람도 어김없이 한국사람일 테지요. 읍내라 하더라도 자동차가 아주 뜸한 시골 읍내에서, 좁은 두찻길이 아닌 널따란 여섯찻길인데, 길가에 얌전히 자동차를 세우고 은행 볼일을 보면 될 텐데, 딱지를 뗄 교통순경조차 없는 이 시골자락에서 애써 거님길에다가 자동차를 올려놓으며 사람도 자전거도 아기수레도 바퀴걸상도 꼼짝을 못하도록 하면서 낯빛 하나 바뀌지 않고 은행으로 그냥 들어가는 이런 사람 또한 틀림없이 한국사람이겠지요.


.. 개구쟁이들 대장 노릇 할 시간 있으면 공부나 할 것이지. 잘난 건 제 아빠지 저도 아니면서……. 흥! … “흥, 멍텅구리가 또 뭐라는 거야! 뭐, 조선사람이 있을 데가 아니라구? 너야말로 조용히 해. 이럴 시간 있으면 네 공주병이나 어떻게 해 봐!” 그래 놓고는 입속말로 “사바사바.” 하고 불렀더니 저도 모르게 “후훗.” 웃음이 나왔다. “너, 너, 조센진 주제에 어디서 거들먹거리는 거야!” ‘사바사바 공주’ 아베가 목 비틀린 오리마냥 꽥 소리냈다. 쳇, 조선사람이 뭘 어쨌다는 거야? ..  (10, 48쪽)


 읍내 마실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입니다. 자동차 열 대 가운데 아홉 대는 얌전하면서 조용히 자전거 옆으로 퍽 에돌아 지나갑니다. 때로는 자전거 뒤에서 뒷차가 섣불리 앞질러 두찻길에서 사고가 나지 않게끔 지켜 주기도 합니다. 말없이 도와주고 말없이 살피는 ‘열 가운데 아홉’ 사람이 참 고맙습니다. 그런데 열 가운데 한 사람은 난데없이 빵빵 하고 울리며 놀래킵니다. 수레에 앉은 아이가 깜짝 놀랍니다. 깜짝 놀란 아이가 “빠방이 시끄러워!” 하고 소리를 지릅니다. 시끄러운 소리를 듣고 시끄럽게 소리를 지를밖에 없습니다. 아이하고 도시에서 그대로 살았으면 아이는 이 시끄러운 소리를 날마다 숱하게 들었을 테니, 아이가 고운 마음결에 고운 목소리로 지내기는 꽤 벅찬 노릇이었겠다고 새삼 느낍니다. 자동차에서는 그냥 손을 슥 얹어서 빵 하고 울리겠지만, 오르막에서 낑낑대는 자전거를 모는 사람이나 수레에 앉은 아이는 그저 놀랄 뿐입니다.

 달리는 자동차는 빠르기를 늦추기 싫기 때문에 빵빵 울립니다. 자전거는 늘 길가에 붙어서 달리는데, 빵빵 울리는 자동차는 더 길가에 붙거나 멈추라는 뜻으로 빵빵 울립니다. 도시 한복판처럼 자동차가 많다면 모르되, 아니 도시 한복판에서는 자동차가 많으니 자전거가 옆에 있어도 자전거가 더 빨리 다니곤 합니다. 자동차가 거의 없어 2∼3분에 한 대 지나갈까 말까 하는 시골길에서 굳이 빵빵 울리면서 놀래키는 사람은, 자전거를 타거나 길에서 걷는 사람 마음을 모릅니다. 자동차를 똑바로 마주보면서 빵빵 울리는 소리를 들어도 놀라지만, 뒤에서 갑자기 울리는 빵빵 소리를 들으면 훨씬 크게 놀랍니다.

 그렇지만, 이렇게 자전거나 걷는이를 놀래키는 사람도 바로 한국사람입니다. 한겨레입니다. 이 나라 이 땅 이 마을에서 한국말을 함께 쓰고 한국글을 함께 읽는 한겨레붙이입니다.


.. “그럼, 안 그래도 할 일이 태산인데. 아이보개, 설거지, 장보기, 특활……. 얼마나 많다고!” “우와, 그 많은 일을 다 한단 말이야?” “그러니까 내가 없는 시간을 내서 우리 반 일을 도우려면, 그만 한 용기와 결의가 필요하단 말이야. 그걸 얄미운 애한테 줄 수는 없어. 알겠지?” … 이시하라한테 떵떵 큰소리쳤지만 마음을 갈기갈기 찢긴 것은 낫짱 자신이다. 공부도 열심히 안 하고 숙제를 자꾸 까먹으니까, 저런 돼먹지 못한 애한테 이런 일을 당한다 싶었다. 낫짱은 나오려는 눈물을 애써 삼켰다 ..  (22, 132쪽)


 착한 이웃도 한국사람입니다. 모진 이웃도 한국사람입니다. 참삶을 찾아 바른길을 헤아리는 동무도 한국사람입니다. 더 많은 돈을 바라며 더 높은 이름값을 좇는 동무도 한국사람입니다.

 진보나 보수로 나뉘건, ㅎ당이나 ㅁ당으로 갈리건, 저마다 한국사람입니다. ㅈ신문을 읽건 ㅎ신문을 읽건 너나없이 한국사람입니다. 20억짜리 아파트에서 살든 일곱 평짜리 작은 골목집에서 살든 모두 한국사람입니다. 커다란 가게에서 일하든 길바닥에 자리를 깔고 앉아 장사를 하든 누구나 한국사람입니다. 쌀집에서 자전거로 쌀푸대를 나르든 5톤 짐차로 무거운 짐을 나르든 서로서로 한국사람입니다.

 대통령이든 청소 일꾼이든 서로 아름다운 한국사람입니다. 한진중공업 일꾼이든 시골 논밭 일꾼이든 모두 사랑스러운 한국사람입니다. 일자리가 없어 집에서 쉬는 사람이든 날마다 끝없는 집일에 복닥이는 살림꾼이든 다 함께 좋은 한국사람입니다.


.. “사람이 살면서 그걸 죄다 차지하는 건 불가능해. 어느 하나밖에 가질 수 없어. 그렇다면 낫짱은 어느 걸 가지고 싶어할까? 마음의 행복일까?” ..  (104쪽)


 북녘에서 살아가는 사람이기에 머리에 뿔이 났을 수 없습니다. 터무니없는 막개발을 밀어붙이면서 남녘땅 물줄기를 까뒤집는 사람이라서 엉덩이에 뿔이 나지 않습니다.

 이웃을 등치는 사람도 한국사람입니다. 이웃을 돕는 사람도 한국사람입니다. 이웃을 들볶거나 괴롭히는 사람도 한국사람입니다. 이웃하고 사이좋게 어깨동무하는 사람도 한국사람입니다. 뒤에서 호박씨를 까는 사람도 한국사람입니다. 말뜻을 곱게 새기면서 마음동무로 지내려고 애쓰는 사람도 한국사람입니다.

 졸업장을 따지는 사람도 한국사람입니다. 얼굴이나 몸매를 따지는 사람도 한국사람입니다. 은행계좌나 자동차 크기를 따지는 사람도 한국사람입니다.

 가방끈 아닌 맑은 넋이나 밝은 얼을 살피는 사람도 한국사람입니다. 얼굴이나 몸매가 아닌 마음결이나 생각밭을 살피는 사람도 한국사람입니다. 은행계좌나 자동차 크기가 아닌 손길이나 눈길을 곱다시 여미는 사람도 한국사람이에요.

 그런데 잘 모르겠습니다. 모두 똑같이 이 땅에서 한겨레붙이로 살아간다지만, 참으로 잘 모르겠습니다. 나는 이 땅에서 한국사람답다 할 만한 사람인지부터 잘 모르겠습니다. 내 둘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이 땅에서 한국사람다이 일하거나 놀거나 어울리면서 지내는 사람인지조차 잘 모르겠습니다. 어떻든 모두 한겨레붙이고, 고운 목숨이며, 사랑스러운 사람인 한편, 어버이한테서 선물받은 사랑씨입니다만, 누가 누구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2) 일본에서 살아가는 조선사람


 일본사람은 일본말로 ‘자이니치’라 말한답니다. 한자로 적으면 ‘在日’이고, 한겨레붙이는 ‘재일’이나 ‘재일조선인’이나 ‘재일한국인’이라 말합니다. 이러하든 저러하든, 곰곰이 돌아보면 ‘일본땅 한겨레’입니다. 《낫짱은 할 수 있어》(보리,2008)는 일본땅 한겨레로 살아가는 한 사람이 어린 날 어떠한 터전에서 어떠한 동무와 어른을 마주하면서 보냈는가를 차분하게 들려주는 이야기책입니다. 어린이나 푸름이가 찬찬히 읽으면서 살갗으로 받아들일 만한 ‘다른 삶터 다른 사람들’이 벌이는 이야기를 다룹니다.


.. 안쓰러운 마음이 안 드는 건 아니지만, 낫짱은 일부러 핀잔을 주었다. “집은…… 아빠가 술 먹고 난리라서 싫어.” “집에 아빠만 계셔?” “응.” “엄마는 어디 가셨어?” “아빠하고 싸워서…… 집 나갔어.” “또?” ..  (12쪽)


 일본에서 힘들고 가난하게 살아가는 사람은 한국에서도 힘들고 가난하게 살아가리라 느낍니다. 일본에서 넉넉하고 오붓하게 살아가는 사람은 한국에서도 넉넉하고 오붓하게 살아가리라 느껴요. 일본에서 푸대접을 받는 사람이 한국에서라고 푸대접을 안 받으리라고는 생각하기 어렵습니다. 일본에서 막대접을 받으며 괴로운 사람이 한국에서라고 두 다리 쭉 뻗으며 좋은 일자리와 보금자리를 얻을 수 있으리라 여기기 어렵습니다.

 착하게 살아가려는 사람은 한국에서건 일본에서건 착하게 일구는 삶을 사랑하겠지요. 참다이 살아가려는 사람은 한국에서건 일본에서건 스스로 좋은 이웃이 되면서 다른 좋은 이웃하고 살가이 어깨동무를 하겠지요. 곱게 살아가려는 사람은 한국에서건 일본에서건 고운 꿈을 건사하면서 이웃과 동무가 품는 고운 꿈을 북돋우려고 힘쓸 테고요.

 그런데, 한국이고 일본이고 착하거나 참답거나 곱게 살아가는 사람을 괴롭히는 한 가지가 있습니다. 바로 전쟁입니다. 전쟁을 일으키는 사람입니다. 전쟁을 일으켜 돈을 버는 사람입니다. 전쟁을 일으켜 돈을 버는 사람한테 돈을 받으면서 권력을 거머쥐는 사람입니다.


.. ‘전쟁은 사람들을 불행하게 하는구나. 고모도 전쟁통에 그런 일을 겪지 않았다면 아이들과 헤어져서 살아야 하는 일은 없었을 텐데…….’ … 일본땅에 살면서 저희와 맞서는 건 일본사람뿐인 줄 알았는데, 조선사람끼리도 이렇게 맞서 싸우고 미워하는 일이 생긴다는 게 슬펐다 ..  (99, 145쪽)


 돈을 벌어야 살아남겠지요. 힘이 있어야 짓밟히지 않겠지요. 그러나, 돈을 번다고 살아남지 않습니다. 벌어들인 돈으로 밥을 사거나 집을 사거나 옷을 사야 살아남습니다. 그러니까, 돈벌이에 앞서 밥과 집과 옷을 어떻게 마련하거나 건사하느냐를 살필 수 있어야 합니다. 힘이 있어 남한테 짓밟히지 않는다고 하기 앞서 힘이 없는 내가 내 이웃이나 동무하고 얼마나 손을 맞잡으며 서로 토닥이거나 아끼는가를 돌아볼 수 있어야 해요.

 돈이 많아서 이웃돕기를 하지 않습니다. 돈을 10억 거머쥔 사람이 거지한테 다달이 백만 원씩 내주는 일이란 없습니다. 거지는 돈을 10억 거머쥔 사람한테서 다달이 백만 원씩 받으면서 먹고살지 않습니다. 거지만큼 힘든 살림은 아니지만, 퍽 팍팍한 살림으로 힘겨운 사람들이 백 원 천 원 보태는 돈을 고맙게 받으면서 먹고삽니다.

 커다란 삽차가 한두 번 뜨면 구덩이를 쉽게 파겠지요. 그런데 커다란 삽차를 불러서 땅을 파려면 돈을 얼마나 많이 들여야 하나요. 더디 걸리며 힘들다지만, 여럿이 서로 도우면서 삽과 곡괭이로 땅을 파면서 흘리는 땀으로 구덩이 하나를 팝니다. 밥 한 술씩 서로 나누어 뜨면서 함께 살아가는 이웃입니다. 밥 한 그릇을 따로 사서 선물할 수 있도록 돈을 벌어야 하지는 않습니다. 물 한 모금 나누어 마시면서 같이 웃고 우는 이웃입니다. 물 한 병 따로 사서 내밀 수 있도록 돈을 모아야 하지는 않아요.


.. 엄마는 우는 딸을 말없이 지켜보기만 했다. 낫짱이 기악부에 든다고 떼를 썼을 때 이런 일이 벌어질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낫짱한테 어떤 해코지도 당해 낼 수 있겠느냐고 다짐한 것이다. 그러겠노라고 약속했으니 제 힘으로 이겨내야 한다. 그래서 엄마는 속으로 응원만 보내는 것이다. 기껏 종이에 인쇄한 가짜 건반이다. 하지만 낫짱한테는 둘도 없는 보물이다. 낫짱은 가슴이 아파서 울었다. 패거리들 노릇이 너무 치사하고 의뭉스러워서 울었다 … 말로 욕하고, 눈으로 깔보고, 온몸으로 해코지하는 것은 상대해서 싸울 수 있다. 하지만 음흉하게 남의 보물을 훔쳐 없애는 짓은 상대가 보이지 않으니 싸울 수도 없다. 비겁하다 … ‘미요시 선생님, 정말 너무해!’낫짱은 다리가 부들부들 떨렸다. 주저앉고 싶을 만큼 힘이 빠졌다. 선생님들이야 해마다 찍는 사진이어서 대수롭지 않을지 모른다. 하지만 낫짱한테는 평생 딱 한 장밖에 없는 사진이다. 다시는, 다시는 없는 기회다 ..  (109∼110, 148쪽)


 이야기책 《낫짱은 할 수 있어》는 이야기합니다. 할 수 없는 일은 하지 않고, 할 만하지 않은 일은 하지 않으며, 하고 싶지 않은 일은 하지 않는 낫짱 삶을 이야기합니다. 할 수 있는 일을 하며, 할 만한 일을 찾아서 하고,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가를 곰곰이 생각하면서 스스로 찾아서 하는 낫짱 삶자락을 들려줍니다.

 우리가 할 일은 서로를 사랑하는 일입니다. 우리가 할 만하지 않은 일은 서로를 미워하거나 들볶는 일입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서로를 믿는 일입니다. 우리가 할 수 없는 일은 서로를 못미더워 하거나 못마땅히 여기는 일입니다.

 나뭇잎에 드리우는 햇살을 사랑하고, 나뭇잎을 흔드는 바람을 아끼며, 나무가 뿌리박은 흙을 고마이 여기는 삶입니다. 흙에서 태어나 흙으로 살다가 흙으로 돌아가는 목숨인 내 하루입니다.

 일본사람도 한국사람도 조선사람도 밥을 먹습니다. 한국사람도 조선사람도 일본사람도 똥을 눕니다. 조선사람도 일본사람도 한국사람도 갓난쟁이로 태어나 씩씩하게 커서 주름살이 늘다가는 곱게 숨을 거둡니다.

 권력을 거머쥐어도 백 살 무렵이 되면 힘을 잃고 흙으로 돌아갑니다. 돈이 넘쳐도 혼자 다 쓰지 못한 채 고스란히 남기며 흙으로 돌아갑니다. 밥은 한 그릇을 먹으면 배부르지, 열 그릇이나 서른 그릇을 먹어야 배부르지 않습니다.

 낫짱은 사랑을 할 수 있습니다. 낫짱은 꿈을 꿀 수 있습니다. 낫짱은 사랑을 하고 꿈을 꾸며 보낸 지난날을 뒤돌아보면서 글을 한 줄 남길 수 있습니다. (4344.7.18.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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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람


 자전거는 바람을 가르며 달립니다. 앞에서 마주 부는 바람일 때에는 이 바람을 뚫습니다. 뒤에서 떠미는 바람일 때에는 이 바람을 업습니다. 바람이 부는 날 자전거를 달리면 그닥 시원하지 않습니다. 바람이 불지 않는 날 자전거를 달려야 비로소 시원합니다. 두 다리로 걸을 때에는 바람이 아주 세게 불지 않는다면 맞바람이든 등바람이든 대수롭지 않습니다. 바람이 불지 않는 날은 땡볕을 거닐며 땀이 흐르고, 바람이 부는 날은 땡볕에서도 어느 만큼 견딜 만합니다.

 자동차도 때때로 바람에 흔들립니다. 그러나 바람이 불건 안 불건 자동차는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바람이 불지 않는 날에도 자동차는 에어컨을 틀면 되고, 창문을 열어도 됩니다. 바람이 부는 날에도 자동차는 에어컨을 틀면 그만일 뿐 아니라, 바람이 어떠한가를 느낄 수 없습니다. 바람이 불 때에 풀잎과 나뭇잎을 흔듭니다. 풀이 눕고 나뭇잎이 뒤집힙니다. 들판과 논에는 물결이 치고 하늘에는 구름이 흐릅니다. 그렇지만 풀과 나무를 도려낸 도시나 시골 읍내에서는 바람이 불 때에 쓰레기가 날리고 간판이 흔들립니다. 건물 사이사이 매섭게 때리는 된바람이 불 뿐입니다.

 바람이 부는 날, 바람소리에 잠겨 풀벌레나 개구리나 멧새가 우는 소리를 듣지 못합니다. 바람이 잠든 날, 온누리를 휘감는 풀벌레나 개구리나 멧새가 우는 소리로 시골집 둘레가 가득합니다. 바람이 불지 않는 무더운 여름 밤, 기저귀 빨래가 마르는지 안 마르는지 알 길이 없고, 네 살 아이는 이리 구르고 저리 뒤집으며 이불을 걷어찹니다. (4344.7.18.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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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낮잠 자는 아버지


 두 아이와 옆지기랑 함께 살아가는 아버지는 낮잠을 잡니다. 새벽에 글쓰기를 하고 이른아침부터 집일을 하며 살붙이 밥을 차리고 나서 빨래를 한 뒤에 아이를 씻긴 다음 숨을 조금 돌릴 만하다 싶을 무렵 낮잠을 잡니다. 아이 둘이 깨어나 칭얼거릴 무렵부터 부산한 하루가 열립니다. 월요일이라 더 쌓이는 집일이 아니고 일요일이라 아무것 없는 집일이 아닙니다. 날마다 똑같은 집일이고, 언제나 똑같이 치러야 할 집일입니다. 토요일이기에 밥을 굶어도 되지 않습니다. 금요일이기에 땀으로 절은 옷을 갈아입지 않아도 될 까닭이 없습니다. 목요일에는 반찬 없이 밥만 먹어도 되지 않을 뿐더러, 수요일에는 똥오줌을 안 눈다든지 화요일에는 땀으로 끈적이는 몸을 안 씻어도 되지 않아요. 어제 하루 방바닥을 쓸고 닦았으니까 오늘은 살짝 지나가도 되지 않습니다. 어제 하루 아침저녁으로 두 번 씻었으니까 오늘은 끈적거리는 몸을 안 씻어도 되지 않습니다. 어제 하루 배불리 밥을 차려 먹었으니까 오늘은 밥을 굶자고 해도 되지 않습니다.

 날마다 짊어질 집일을 건사하면서 가까스로 낮잠 한 번 자며 숨을 돌립니다. 이때에 네 살 아이가 곁에서 함께 잠들어 주면 아주 고맙습니다. 아이는 아이대로 일찍 일어나서 신나게 뛰고 소리지르거나 노래부르며 놀았으니, 살짝 한두 시간 눈을 붙이고 쉬면 더욱 신나게 뛰고 소리지르거나 노래부를 수 있을 테니까요.

 참말, 집에서 일하거나 살림하는 사람한테는 낮잠이 없으면 안 됩니다. 낮잠뿐 아니라 밤잠을 이룰 겨를조차 없이 힘겹거나 바쁘게 살아가는 사람이 퍽 많을 텐데, 하루하루 고마우면서 반갑게 맞아들여 즐거이 누릴 우리들은 하루에 한 시간 즈음, 낮나절에 모든 시름과 고단함과 어깨결림과 허리쑤심을 잊고 새근새근 맑은 얼굴로 꿈나라를 누빌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4344.7.18.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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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쪽지 2011.7.15.
 : 내리막 자전거는 자동차하고 똑같다



- 비가 살짝 갠다. 더 내릴 듯하지만 읍내에 다녀오기까지 퍼붓지는 않을 듯하다. 길바닥 물기가 다 마른 모습을 보고는, 아이하고 마실을 다녀오기로 한다.

- 바람이 많이 분다. 앞에서 부는 바람이다. 비가 살짝 개어 물기가 많이 마르기도 한 탓인지 숨이 턱턱 막힌다. 숨이 가쁘다고 느끼면서 오르막에서 두 번 쉰다. 두 번 쉬면서 아이한테 논자락에서 개구리 잡는 새를 함께 바라본다. 힘들어서 쉴 때에는 이렇게 둘레를 돌아볼 수 있어 좋다. 생각해 보면, 자전거를 타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자전거를 멈추어야 사진을 찍는다. 자전거를 탄대서 자동차보다 더 낫다고 섣불리 말할 수 없다. 자동차하고 똑같이 싱싱 내지르기만 한다면, 자전거는 자동차하고 똑같을 뿐 아니라, 어쩌면 더 무시무시할 때가 있기도 하다. 좁은 골목에서 내달리는 자전거는 오토바이 못지않게 시건방질 뿐 아니라 괘씸하다.

- 밭자락 한켠에 해바라기 한 포기와 도라지꽃 한 송이가 피었다. 어쩜, 이렇게 한 송이씩 피도록 심었을까.

- 오르막에서 맞바람 맞으면서 낑낑대는데 뒤에서 빵빵 울리며 놀래키는 짐차가 한 대 있다. 다른 자동차는 그냥 지나가는데 오늘은 꼭 한 대가 이렇게 놀래킨다. 조용히 옆으로 비켜 달리거나 빠르기를 늦추면 되는데, 마음이 착하지 않은 사람은 이렇게 빵빵이를 함부로 울린다.

- 해가 나면서 눈부시다. 등과 목과 얼굴이 땀으로 범벅되면서 따갑다. 


- 퍽 세게 부는 바람에 따라 벼가 눕는다. 김수영 시인이 풀이 눕는다고 쓴 시는 참으로 대단하다. 풀이 바람에 눕고, 벼가 바람에 눕는다. 풀은 바람이 잦아들며 다시 서고, 벼도 바람이 수그러들며 다시 선다.

- 읍내 마실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오르막에서 생각한다. 오르막은 느리게 달릴밖에 없는 길이다. 느리게 달리면서 둘레를 두리번두리번 살핀다. 때로는 자전거를 멈추며 사진을 찍기도 한다. 내리막에서는 빠르고 시원하게 달리니까 옆을 안 본다. 그저 앞만 본다. 시원하게 내달리는 내리막에서는 길에 돌이나 구멍이 있는가를 살펴야 하니까 앞만 바라본다. 그러고 보면, 자동차는 너무 빨리 달리기 때문에 앞만 바라보아야지, 옆을 볼 수 없다. 자동차를 달리는 이가 길가를 천천히 달리는 자전거를 바라보라고 바랄 수 없다. 빠르기를 늦추는 자동차가 아니라면 착한 마음이거나 고운 넋일 수 없다.

- 마을로 들어서면서 아이는 걷고 싶다고 말한다. 아이랑 걷는다. 멧기슭 따라 흘러내린 물이 길바닥을 적시며 흐르는 곳에서 아이는 엎드려뻗쳐를 하면서 물놀이를 한다. 아이가 어느새 엎드려뻗쳐를 혼자 할 줄 알았지? 손에 감기는 물살이 시원하고 재미있는지 퍽 오래 이렇게 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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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1-07-18 23:10   좋아요 0 | URL
된장님 사진을 보니 따님이 커서 시집갈때쯤 되면 아마 사진집 하나 내셔되 될것 같아요^^

파란놀 2011-07-19 06:39   좋아요 0 | URL
그때가 아니더라도 내려면 낼 수 있어요 ^^;;;
 
오리가 한 마리 있었어요 보림창작그림책공모전 수상작 10
정유정 지음 / 보림 / 200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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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보스럽든 슬기롭든 제 목숨껏 살아가는 오리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76] 정유정, 《오리가 한 마리 있었어요》(보림,2001)



 도시에서 태어나 살아가던 지난날에는 오리라든지 거위를 볼 일이 없었습니다. 흔하다는 닭이나 토끼 또한 볼 일이 없었습니다. 1980년대에 국민학교를 다니던 때 학교에 사육장이 있었고, 학년과 반에 따라 청소가 돌아가기 때문에 사육장 청소를 자주 했고, 이 사육장에는 거위와 닭과 공작이 있었습니다.

 사육장은 ‘짐승을 키우는 우리’라는 뜻이지만, 정작 사육장이라는 데를 들여다보면 쇠줄로 얽은 우리에 가둔 셈이요, 태어나서 자라는 동안 도시에서 짐승을 볼 일이든 돌볼 일이든 없는 국민학생이 이들 짐승을 어여삐 보살필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어린이에 앞서 어른인 교사부터 짐승우리 짐승을 예쁘게 바라보지 않았으니까요.

 어른인 교사는 날마다 쌓이는 짐승똥 치우기를 어린이인 국민학생한테 맡길 뿐입니다. 어른인 교사가 하는 일이란, 닭이나 거위가 낳은 알이 있을 때에 주워 오도록 시키는 한 가지입니다. 그런데, 닭이든 거위이든 좀처럼 알을 빼앗기지 않으려 했습니다. 호젓하거나 넉넉하게 살아갈 앞날이 보일 턱이 없는 쇠그물 2층짜리 울타리에 갇혀 지내면서도 암탉과 암거위는 끝까지 알을 품으면서 우리들한테 맞섰습니다. 이때, 사육장 청소를 맡은 동무들 누구나 알을 빼앗기 싫다고 생각했는데, 빈손으로 교실로 돌아가면 ‘어른인 교사’는 크게 꾸짖습니다. ‘그깟 알 하나 못 가져오느냐’고 몽둥이나 주먹을 흔들며 윽박질렀습니다. 닭이나 거위한테서 알을 빼앗기도 싫지만 얻어맞기도 싫습니다. 아니, 얻어맞는 일이 조금 더 무섭습니다. 끝내, 조금 더 힘이 센 쪽(어린이)이 조금 더 힘이 여린 쪽(닭과 거위)한테서 목숨을 빼앗습니다. 닭이든 거위이든 알을 빼앗으려 들어가면 금세 알아채며 콕콕 쪼거나 꽉 물려고 달려듭니다. 닭은 열 스무 마리가 한꺼번에 달려들어 쪼면서 똥을 싸지르고, 거위는 숫거위가 곁에서 껑껑 울고 부리로 쪼면서 몸으로 밀칩니다.


.. 오리는 우리 안에서 날마다 똑같은 하루하루가 되풀이되는 것이 정말 답답했어요. 그래서 집을 떠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  (5∼6쪽)


 똥을 잔뜩 뒤집어쓰고 온몸이 물려 아픈 채 달걀과 거위알을 들고 교사한테 갑니다. 교사는 커다란 냄비를 어디에선가 빌려서 교실에서 알을 삶습니다. 거위알은 닭알보다 훨씬 크고 빛깔이 다릅니다. 삶긴 뒤에도 빛깔이 퍽 다릅니다. 어른인 교사는 이 달걀과 거위알이 얼마나 좋은 줄 아느냐고 웃음지으면서 말하고, 사육장 청소를 맡은 우리한테는 거위알을 나누어 주겠다며 먹으라고 내밀지만, 사육장 청소를 맡은 우리 가운데 어느 누구도 달걀이든 거위알이든 받지 않습니다. 달걀이나 거위알이 싫어서가 아니라, 억지로 빼앗았기 때문입니다.

 어린 날 외할머니와 이모들 사시는 시골집에 갔을 때에는 달걀을 ‘곱게 얻어’서 ‘아주 고맙게’ 먹었습니다. 흔히 먹거나 아무 때나 먹을 수 없던 달걀이라고 시골집에서 새삼스레 느꼈습니다. 도시에서는 값싸게 사먹는다지만, 시골에서는 암탉이 알을 낳았을 때 드문드문 얻어 아껴서 먹습니다. 밥은 벼가 내어준 살점인 목숨이고, 달걀은 닭이 내어준 살점인 목숨입니다. 도시에서 살며 어머니 심부름으로 가게에서 달걀 열 줄이나 한 판을 사서 들고 올 때에는 ‘목숨을 먹는다’고 못 느꼈지만, 외할머니 댁에서 닭우리에 들어가 한 알 살며시 얻어 나와서 먹을 때에는 ‘목숨을 먹는구나’ 하고 느꼈어요.

 사육장 청소를 자주 맡아 하던 국민학생 때, 어른이자 담임인 교사가 알을 꺼내 오라고 시키던 날부터 닭과 거위를 바라보는 눈길이 달라집니다. 이 일이 있기 앞서까지는 닭똥과 거위똥 냄새가 구리다며 쓸고 치우기를 코를 감싸쥐며 했지만, 이 일이 있은 뒤로는 닭과 거위가 이 좁은 데에 갇혀서 조그마한 저희 알을 지키려고 애쓰거나 용쓰는 모습을 겪은 탓인지, 코를 감싸쥐지 않으며 쓸고 치웠으며, 모이는 예쁘게 그릇에 놓고 물그릇은 잘 씻어서 틈틈이 갈았습니다. 닭과 거위는 더 나대거나 울거나 물지 않았으며, 그저 조용히 그예 죽은듯이 지냈습니다.


.. 오리는 찔레꽃 향기로운 산길을 돌아 뒤뚱뒤뚱 걷고 또 걸었어요. “호수 냄새는 더 향기로울 거야.” 오리는 생각했어요 ..  (11쪽)


 그림책 《오리가 한 마리 있었어요》(보림,2001)를 읽습니다. 아이하고 함께 읽습니다. 아이하고 살아가는 시골마을에서도 닭이나 오리나 거위를 보기란 퍽 힘듭니다. 드문드문 닭을 치는 집이 있으나, 좋은 고기나 알을 얻어 조금씩 먹으려는 시골집이 아니고서는 굳이 닭을 치지 않습니다. 요즈음은 닭공장에서 금세 닭을 뽑아내어 값싸게 파니까, 시골집에서 닭을 친들 벌이가 되지 않습니다. 오리농사를 짓는 데가 아니라면 오리를 칠 일이 없겠지요. 거위를 치는 집은 훨씬 적습니다.

 만화영화 〈플란다스의 개〉를 보면 까만오리가 사람하고 함께 지냅니다. 이 까만오리는 날지 않고 걸어다닙니다. 가끔 날갯짓을 하며 조금 날기는 합니다. 사람 곁에서 한식구처럼 지내는 오리라면 이렇게 날지 않고 걷기만 하면서 지낼 수 있겠구나 싶습니다.

 사람들이 고기하고 알을 얻으려고 집에서 키우니 그렇지, 오리이든 거위이든 하늘을 날아다니는 짐승입니다. 새끼일 때에 날갯죽지를 끊어 못 날도록 하니까, 오리이든 거위이든 날기를 잊고 맙니다. 오리나 거위 스스로 잘못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오직 사람들 쓰임새에 따라 날짐승이라는 목숨값이 달라집니다.

 뒤뚱뒤뚱 걷는 오리나 거위를 보면 어딘가 어울리지 않습니다. 총총총 뛰듯 걷는 참새나 박새를 볼 때에도 그다지 어울리지 않습니다. 겅중겅중 걷는 왜가리나 해오라기를 봐도 그래요. 새한테는 어쩐지 걷기가 안 어울립니다. 새라면 날아야 어울려요. 가끔 날개를 모두 펼쳐 푸드덕거릴 때가 있는데, 안 나는 닭이나 거위라 하더라도 날개가 참 큽니다. 그래, 처음부터 하늘을 날도록 태어난 목숨이니까, 날개가 이처럼 커야겠지요. 커다란 날개가 아니고서는 좀 뚱뚱하다 싶은 오리나 거위가 하늘을 훌훌 날 수 없겠지요. 갈매기이든 매이든 올빼미이든 꾀꼬리이든 직박구리이든 날개가 몸뚱이와 견주어 얼마나 큰데요.


.. “백로 아저씨. 여기가 호수예요?” “호수? 여기는 논이야. 호수는 날아서 가야 돼.” “저는 날지 못하는데요.” “그럼 할 수 없지. 호수는 아니지만 여기도 살기 좋은 곳이야.” ..  (23쪽)


 그림책 《오리가 한 마리 있었어요》에서는 짐승우리에 갇힌 채 태어나 갇힌 채 죽는 오리들이 나옵니다. 물가나 숲이나 들판에서 살아가는 오리가 아닌, 처음부터 사람이 길러서 고기를 얻으려는 오리가 나옵니다. 이들 오리가 스스로 날갯짓을 하면서 우리를 빠져나올 수 없습니다. 사람들한테는 이들 오리가 돈이니까, 한 마리라도 섣불리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울타리를 빈틈없이 두르겠지요.

 그러나, 어찌 되든 그림책이기 때문에, 주인공 오리는 아무 걱정없이 홀로 살며시 빠져나옵니다. 다른 오리도 근심없이 빠져나올 수 있었을 텐데, 주인공 오리만 씩씩하게 길을 떠납니다. 찔레꽃 내음을 맡으며 언덕을 오르고 들판을 지납니다. 짐승우리 아닌 논에서 이웃 오리를 만나지만 이곳이 물가가 아닌 줄 알며 슬픔에 잠기고, 슬픔에 잠기기 무섭게 으르렁거리는 개한테 쫓깁니다.

 그림책이니까 벼랑까지 쫓긴다고 그렸을 텐데, 날지 못하고 걷기만 하는 오리로서는 금세 개한테 잡혀 물려 죽었겠지요. 어떻든 그림책이니까, 주인공 오리는 벼랑에서 힘껏 뛰어내렸고, 목숨을 걸고 뛰어내리며 날갯짓을 했기 때문인지 처음으로 하늘을 납니다.


.. 오리가 한 마리 있었어요. 물론 여러 오리 가운데 한 마리였지요 ..  (38쪽)


 오리는 수많은 오리 가운데 하나입니다. 이 오리는 우리에 갇혔으면서 우리인지 아닌지 모르거나 우리에 갇혔어도 그럭저럭 살 만하다고 여기며 태어나고 죽는 오리일 수 있습니다. 이 오리한테는 때맞추어 먹이를 주는 사람이 없으나, 스스로 먹이를 찾고 스스로 잠자리를 찾으며 스스로 짝꿍이나 동무를 사귀는 한편 스스로 날개를 다듬으며 하늘을 누빌 줄 아는 오리 가운데 하나일 수 있습니다.

 사름들도 수많은 사람 가운데 하나입니다. 여느 회사원으로 다달이 적잖은 일삯을 받아 아파트에서 퍽 괜찮다 싶은 살림을 꾸리는 사람일 수 있고, 시골에서 논밭을 손수 일구며 내 먹을거리와 보금자리와 아이들을 내 손으로 건사하며 사랑하는 사람일 수 있습니다.

 어디에서든 오리는 오리로서 살아갑니다. 어느 곳에서건 사람은 사람으로서 살아갑니다. 바보스러운 오리이든 사람이든, 제 목숨껏 살아갑니다. 슬기롭거나 씩씩한 오리이든 사람이든, 제 깜냥껏 살아냅니다. (4344.7.17.해.ㅎㄲㅅㄱ)


― 오리가 한 마리 있었어요 (정유정 글·그림,보림 펴냄,2001.2.15./9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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