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는 빵을 드세요!
오오와다 토시코 지음, 타나카 츠카사 그림 / 미우(대원씨아이)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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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빵을 굽는 손길에는 무엇이
 [만화책 즐겨읽기 100] 타나카 츠카사·오오와다 토시코, 《맛있는 빵을 드세요!》(미우,2011)

 


 밥을 하는 손길에는 밥하는 사람 사랑이 깃듭니다. 빵을 굽는 손길에는 빵을 굽는 사람 사랑이 스밉니다. 좋은 사랑이 아니고서는 밥이든 빵이든 하지 못합니다. 좋은 사랑이 있을 때에 비로소 밥을 하거나 빵을 합니다.

 

 타나카 츠카사 님이 그리고 오오와다 토시코 님이 글을 넣은 만화책 《맛있는 빵을 드세요!》(미우,2011)는 동네 한켠에서 조그맣게 빵집을 꾸리는 아주머니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아주머니는 집일을 하고 아이들을 돌보며 옆지기을 먹여살리니까 눈코 뜰 사이 없습니다. 빵집은 날마다 열지 못한답니다. 한 주에 며칠씩 요일을 맞추어 한동안 살짝 열고는 이내 닫는답니다. 그런데 큰길가 사람들 많이 들락거리는 곳이 아닌 살림집 가득한 골목 안쪽 깊숙하게 자리한 ‘모퉁이 빵집’을 찾아오는 사람이 많고, 빵은 금세 동이 난다고 해요.

 

 빵맛이 좋으니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며 빵을 고르리라 생각합니다. 빵맛 돋우는 손길이 사랑스러우니 사람들이 요일에 맞추어 찾아와 기쁘게 방을 사들이리라 생각합니다. 빵맛이 없거나 빵맛을 돋우는 손길이 사랑스럽지 않다면 사람들은 큰길가 커다란 빵집이라 하더라도 애써 찾아가지 않습니다. 너무 배고픈 나머지, 또는 너무 바쁜 나머지 ‘맛과 손길’을 헤아릴 겨를이 없는 사람들만 ‘맛없고 손길 사랑스럽지 못한’ 빵집에서 빵을 사들여요.


- “냄새 좋다. 이게 갓 구워진 빵의 향기구나.” (27쪽)
- “아주 맛있어요. 감동 먹었어요.” “오오와다 씨도 구울 수 있어요. 천연 효모로 한번 도전해 보세요.” (81쪽)


 아이를 달래며 다독이는 손길에는 사랑이 있습니다. 아이를 품에 안고 노래하는 손길에는 사랑이 감돕니다. 사랑이 없이 아이를 달래지 못하고, 사랑이 없는 채 아이를 안지 못합니다.

 

 사랑이 없으면 아이하고 어울려 놀지 못합니다. 사랑이 없는 사람은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지 못합니다.

 

 사랑이 없으면서 아이하고 노는 사람은 아이들한테 함박웃음꽃을 베풀지 못합니다. 아이들 스스로 고운 웃음꽃을 피우도록 이끌지 못해요.

 

 사랑이 아니면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자리에 서는 사람은 다달이 일삯을 알뜰히 챙길 테지만, 막상 아이들은 사랑이 아닌 지식과 정보만 잔뜩 머리에 쑤셔넣습니다. 아이들은 아이들 삶을 북돋우거나 일구는 사랑은 조금도 받아먹지 못하면서 머리통만 굵어지고 맙니다. 머리통만 굵어지는 아이들은 이웃을 아끼거나 둘레를 돌아보거나 푸나무를 내 몸처럼 보살피는 마음씨를 건사하지 못해요. 머리통만 굵어진 아이들은 스스로 밥·옷·집을 마련하며 나누는 삶을 생각하지 못해요.


- ‘포기하지 않기를 잘했어. 코유키는 손이 많이 가는 밀이지만, 손이 많이 가는 보람이 있는 밀이었어.’ (128쪽)
- “난 그 누구에게도 손가락질 받지 않고 정정당당히 빵을 구워서 팔고 싶어.” (185쪽)


 빨래를 하는 손길에는 사랑이 흐릅니다. 빨래를 개는 손길에는 사랑이 맴돕니다. 사랑이 없이 빨래를 하지 못합니다. 속옷을 빨든 이불을 빨든 늘 매한가지입니다. 사랑스러운 꿈을 담아 빨래를 복복 비비고 헹구며 짭니다. 사랑스러운 믿음을 모아 빨래를 널고 걷으며 갭니다.

 

 이 옷을 입을 살붙이가 어떠한 몸과 마음으로 하루를 맞이하면 좋을까 하고 생각합니다. 이 옷을 입은 살붙이가 오늘 하루 기쁘게 맞이하며 예쁘게 살아가기를 바라는 넋입니다.

 

 제도가 훌륭하다든지 시설이 대단하다든지 복지가 빈틈없대서 좋은 삶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제도가 없더라도 살림을 보듬는 사람한테 사랑이 있으면 넉넉합니다. 시설이 없더라도 살림을 꾸리는 사람한테 사랑이 넘실거리면 흐뭇합니다. 복지가 없더라도 살림을 아끼는 사람한테 사랑이 샘솟으면 아름다울 수 있어요.

 

 손으로 빨래하거나 기계로 빨래하거나 대수롭지 않습니다. 바빠서 손빨래를 못 하지 않습니다. 시간이 남아돌아 손빨래를 하지 않습니다. 나와 내 살붙이를 사랑하는 넋으로 빨래를 합니다. 모두 아끼는 넋으로 옷가지를 매만집니다.


- ‘일단 내 손을 떠나면 그 빵이 어떤 상태로 진열되고 팔리는지 파악할 수 없는 거야. 내가 만든 빵은 내 눈이 닿는 곳에 둬야 하는 거였어. 백화점에 입점한 빵집이 그 자리에서 굽는 건 그런 이유였어.’ (157쪽)
- “만들어 줘서 고마워요. 정말 기뻐요. 동네에 빵집이 생겼다고 다들 많이 기뻐했어요. 많은 사람들을 기쁘게 하는 일을 한다는 건 참 좋은 일이에요.” (272쪽)


 만화책 《맛있는 빵을 드세요!》는 책이름 그대로 맛있는 빵을 드시라고 이야기합니다. 이 만화책에서 밝히는 맛있는 빵이란 가장 좋은 밀과 가장 좋은 기계로 굽는 빵이 아닙니다. 빵을 굽는 손길이 사랑스럽고, 빵으로 다시 태어나는 밀을 사랑스레 돌보았기에 맛있는 빵이 있습니다.

 

 맛있는 빵을 먹을 수 있다면, 맛있는 밥을 먹을 수 있어요. 좋은 옷을 입을 수 있고, 좋은 책을 읽을 수 있어요. 좋은 사랑을 나눌 수 있으며, 좋은 꿈을 키울 수 있어요.

 

 우리 아이들을 따사로이 돌볼 수 있겠지요. 내 보금자리를 아리따이 건사할 수 있겠지요. 내 앞길을 환하게 빛낼 수 있겠지요. 우리 지구별을 서로 곱게 쓰다듬을 수 있겠지요.


- “엄마, 어떡할 거야?” “다른 국산 밀을 쓰면 되잖아?” “안 돼. 우리 집 빵은 코유키이기에 나올 수 있는 맛이란 말이야.” (275쪽)
- ‘저는 생산 관계자를 만나 계약재배해 줄 것을 부탁드려 봤습니다. 하지만 좋은 대답은 듣지 못했습니다. 그럴 수밖에요. 저 같은 개인을 위해 생산해 봤자 농가에 보탬이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포기할 수 없었던 저는 몇 번이나 찾아뵈었습니다. 때로는 빵을 가져가기도 했습니다.’ (276쪽)


 내가 언제까지나 좋아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살아갈 때에 즐겁습니다. 스무 해나 서른 해를 채우고서 정년퇴직을 할 만한 일이 아니라, 늙어서 흙으로 돌아가는 날까지 기쁘게 누릴 수 있는 일을 찾아서 살아갈 때에 반갑습니다.

 

 어떤 일이든 다섯 살 어린이와 열다섯 살 푸름이가 함께 할 만해야지 싶어요. 일흔다섯 살 할머니와 여든다섯 살 할아버지가 힘차게 할 만한 일이어야지 싶어요. 돈버는 일자리란 ‘일’이 아니라 ‘돈벌이’입니다. 돈도 벌고 일도 찾는다는 삶이 아니라, 일을 일대로 즐기면서 사랑을 사랑대로 나누고 돈은 돈대로 알맞게 벌 수 있는 삶터에서 꿈을 펼치고 싶습니다. (4345.1.1.해.ㅎㄲㅅㄱ)


― 맛있는 빵을 드세요! (타나카 츠카사 그림,오오와다 토시코 글,한나리 옮김,미우 펴냄,2011.9.30./9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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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같이 눕는다

 


 아이들이 함께 엎드린다. 갓난쟁이가 어머니 곁에서 엎드린 옆으로 첫째 아이가 나란히 엎드린다.

 

 아이들이 함께 눕는다. 갓난쟁이는 어머니 곁에서 눕고, 첫째 아이는 아버지 곁에서 눕는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다섯 해를 함께 살았고, 아버지와 어머니와 첫째 아이는 네 해를 함께 살았으며, 아버지와 어머니와 첫째 아이와 둘째 아이는 이제 한 해를 함께 살아간다.

 

 함께 살아가는 네 식구는 한솥밥을 먹는다. 한 집에서 지내며 한 방에서 잔다. 같은 책 한 권을 넷이서 돌려읽거나 나란히 읽는다. 아버지나 어머니가 먼저 읽은 글책을 아이들은 나중에 물려받아 읽겠지. 아버지와 어머니가 돌본 땅뙈기를 아이들은 나중에 함께 돌보겠지.

 

 아버지와 어머니가 팔힘 다리힘이 빠진다면, 아이들이 빨래를 맡을 수 있을까. 아니, 이때에는 전기를 먹지 않는 빨래기계를 마련해서 이 집에 놓아 줄까. 아니, 아버지와 어머니 팔다리에 힘이 줄어들 무렵이면 아이들 옷가지 빨래할 일이 없을 테니, 조금 겨우 내는 힘으로도 아버지와 어머니 두 사람 옷가지쯤 너끈히 손수 빨래할 수 있으리라. 이제 아이들은 저희 옷가지를 저희가 마련하고 돌보며 빨래하는 삶을 일구어야지.

 

 어버이는 아이한테 아이가 읽을 책을 내밀 수 없다. 아이는 스스로 글을 읽을 무렵 스스로 읽을 책을 스스로 찾는다. 어버이는 아이가 바라는 대로 모두 이루어 주지 않는다. 아이가 이리 가고 저리 가며 스스로 길찾기 하는 동안 곁에서 가만히 지켜보며 길동무가 된다.

 

 책을 읽어 받아들이는 느낌은 오직 내 마음밭 넓이에 달린다. 밥을 먹어 받아들이는 느낌은, 맛은, 기운은, 기쁨은, 오직 내 혀와 입과 몸에 달린다. 좋은 밥으로 느껴 좋은 기운을 얻는다면, 좋은 글·그림·사진을 읽어 좋은 넋을 북돋우면서 좋은 사랑을 키우겠지.

 

 아이들과 같이 눕는다. 옆지기와 나란히 눕는다. 아이들과 같이 꾸리는 삶이다. 옆지기와 나란히 사랑할 삶이다. 책은 네 식구 사이에서 얌전히 제자리를 지킨다. 책은 네 식구 가슴마다 다 다른 이야기꽃을 피우며 이야기열매를 맺는다. (4344.12.31.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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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섣달그믐 책읽기

 


 섣달그믐날, 시골집 인터넷이 먹통이 되다. 무슨 까닭인지 알 길이 없다. 새해 첫날을 앞두고 100을 눌러 신고를 한다. 누군가는 섣달그믐 아침 아홉 시부터 전화를 받아 고장났다는 이야기를 받는다. 누군가는 섣달그믐뿐 아니라 새해 첫날에도 작은 자동차를 몰아 마을 곳곳 인터넷 먹통이 된 집을 찾아다니며 손을 본단다. 우리 집에는 새해 첫날이나 이듬날에 일꾼이 찾아올 듯하다.

 

 섣달그믐 날을 새야 한다지만, 우리 식구는 저녁 여덟 시 반이 조금 넘어 잠자리에 눕는다. 둘째 아이가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을 뿐더러, 아침부터 저녁까지 잠을 깊이 못 들며 제대로 놀지 않은 탓에, 너무 힘든 하루였으니까. 불을 끄고 아이 어머니가 품에 꼬옥 싸안고 누워서야 겨우 조용해진다. 첫째 아이 때에도 이렇게 어머니를 고단하게 했지. 아이 어머니는 두 아이를 돌보면서 밤잠을 옳게 들지 못하고, 두 팔이 베개 노릇을 하느라 얼마나 뻐근할까. 나는 집일을 도맡으면서 이래저래 눈코를 제대로 못 뜨느라 여기 어설프고 저기 서툴다.

 

 새해, 모두들 한 살을 더 먹는 해에는 모두들 한 살 나이만큼 무럭무럭 자라 야무진 몸과 씩씩한 마음으로 살아낼 수 있을까. 부디 튼튼하고 해맑게 한 해를 새롭게 사랑할 수 있으면 좋으리라 꿈꾼다. 꿈을 잊지 않으려고 글을 쓴다. 꿈을 두고두고 곱씹고 싶어 글을 쓴다. 꿈을 되뇌며 책을 읽는다. 우리처럼 꿈꾸던 이웃을 찾으며 책을 읽는다.

 

 이제 이웃 할머니 할아버지 댁에도 아이들이 찾아왔으리라. 아침에 떡국을 끓여 먹고 난 뒤, 한 집씩 인사하러 다니자. 모두들 예쁘게 차려입고 어여쁜 웃음을 나누며 아리따운 하루를 누리자. (4344.12.31.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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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알파 1 - 신장판
아시나노 히토시 글.그림 / 학산문화사(만화)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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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은 삶
 [만화책 즐겨읽기 102] 아시나노 히토시, 《카페 알파 (1)》

 


 좋은 마음일 때에 좋은 책에 깃든 좋은 꿈을 받아들입니다. 좋은 마음일 때에 좋은 푸성귀로 좋은 밥을 짓습니다. 좋은 마음일 때에 좋은 사랑을 담은 좋은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빈틈이 없도록 노래를 부르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사진을 찍는다 해서 사람들 가슴을 촉촉히 적시지는 않습니다. 빼어난 솜씨로 만화를 그리거나 글을 쓰거나 춤을 춘다 해서 사람들 가슴을 움직이지는 않아요.

 

 빈틈이 있다 하더라도, 솜씨가 어설프더라도, 여러모로 허술하더라도, 이래저래 모자라더라도, 사람들 가슴을 촉촉히 적시거나 움직일 수 있습니다. 사랑이란 돈으로 이루지 못하거든요. 사랑이란 이름값이나 힘줄로는 거머쥐지 못하거든요.


- “아, 자네 로보트라구? 좋겠군. 튼튼해서. 나 같은 늙은인 몸이 삐그덕거려서 말야.” “후훗, 그럼 바꿀까요?” (14쪽)
- “난 이곳이 좋아요. 이렇게 할아버지랑 얘기도 하고, 바다도 보고. 붐비고 시끄러울 때도 혼자 있을 때도 모두 좋아요.” (34쪽)


 백 살을 살거나 이백 살을 살아야 더 즐겁지 않습니다. 쉰 살을 살거나 스물다섯 살을 산대서 더 슬프지 않습니다. 내가 누릴 사랑을 오롯이 누릴 때에 내 삶이 아름답습니다. 내가 나눌 꿈을 살뜰히 나눌 때에 내 삶이 빛나요.

 

 이웃이 어렵기에 돕는다 할 적에, 누군가는 큰돈을 내놓을 수 있고 누군가는 푼돈을 내놓을 수 있는데, 누군가는 돈푼 하나 못 내놓을 수 있습니다. 돈이 없기에 밭에서 배추나 무를 뽑아서 건넬 수 있고, 품을 팔아 집일을 거들 수 있으며, 이도저도 안 되어 마음으로 사랑을 보낼 수 있어요.

 

 2만 원은 1만 원보다 크지 않아요. 3만 원은 2만 원보다 크지 않아요. 천만 원은 1만 원보다 크지 않으며, 1억 원 또한 1만 원보다 크지 않아요. 얼마만 한 돈이 되든 마음보다 클 수 없어요.

 

 네 살 아이는 폴짝폴짝 뜁니다. 다섯 살 아이도 폴짝폴짝 뜁니다. 두 살 아이는 콩콩 뜁니다. 열 살쯤 되거나 열다섯 살쯤 된다면 껑충껑충 뛰겠지요.

 

 어떻든 모두 뜁니다. 높이 뛰든 낮게 뛰든 뜁니다. 함께 뜀박질을 하면서 놉니다. 서로 뜀뛰기를 하고 나란히 달리기를 합니다. 더 빨리나 더 늦게는 없어요. 다 같이 즐거이 어우러집니다.


- ‘요 몇 년 동안 세상도 꽤 많이 변했다. 시대의 황혼기가 이렇듯 느긋하고 평화스럽게 오는 것이라니. 난 이 황혼의 세상을 천천히 보며 간다는 생각이 든다.’ (23쪽)
- “그러고 보니 이빨을 보기 전까진 그렇게 무섭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어.” “키타히로가 혼자 있기 때문에 놀러왔을지도 몰라.” (54쪽)
- ‘미사고는 이빨까지 드러내며 싱긋 웃었다. 하지만 이번엔 그렇게 무섭지 않았다. 그리고 따뜻해지자 멍해져서.’ (59쪽)


 빠른기차를 타고 몇 시간만에 서울부터 부산까지 달릴 수 있습니다. 빠른찻길을 내달려 몇 시간 들이면 서울에서 부산까지 자가용으로 달릴 수 있습니다. 비행기를 타면 시간은 더 줄입니다. 퍽 멀리 볼일을 보아야 하니 빨리빨리 오갈 수 있어요.

 

 누군가한테는 서울하고 부산만 보입니다. 누군가로서는 서울이랑 부산을 더 줄이는 길을 바라볼밖에 없습니다. 누군가는 서울도 부산도 아닌 문경이나 영동에서 살아갑니다. 누군가로서는 서울도 부산도 바라보지 않고 옥천이나 양양을 바라보며 살아갑니다.

 

 기찻길이 놓이면 거칠 데 없이 시원하게 달린다고 합니다. 이 기찻길한테 자리를 내줄 시골사람은 언제나 기차소리를 듣습니다. 기차를 탈 일도, 기차를 타고 더 빨리 어디로 오갈 일도 없다지만, 시끄러운 소리와 매캐한 먼저를 늘 들이마셔야 합니다.

 

 송전탑 둘레로는 전자파가 어마어마하게 나오니 사람한테 안 좋답니다. 사람한테 안 좋은 송전탑이 나무나 풀이나 흙이나 냇물에 좋을 수 없습니다. 큰도시이든 작은도시이든 송전탑이 서지 않습니다. 도시에 서더라도 바깥이나 변두리에 섭니다. 도시 한복판에 송전탑이 서는 일은 없습니다. 그러나, 시골마을에는 송전탑이 버젓이 서고, 송전탑한테 논이랑 밭이랑 멧등성이를 내주어야 합니다. 전기 쓸 일이 드문 시골사람은 송전탑을 끼면서 살고, 전기 쓸 일이 많은 도시사람은 송전탑은커녕 발전소조차 곁에 두지 않아요.


- ‘모두 자기 방식대로 보고 있다. 지금은 옛날만큼 계절이 분명하지 않지만, 모두 전보다도 사물에 깊이 감동하는 일이 많아진 것 같다.’ (128쪽)


 우리들 살아가는 이곳은 얼마나 아름답다 할 만한가 잘 모르겠습니다. 먹고 마시고 입고 쓰고 누리는 모든 것을 스스로 빚지 않아도 다들 잘 살아간다 하는 우리들 보금자리는 얼마나 아름답다 할 만한가 잘 모르겠습니다. 쓰레기를 스스로 돌보지 않는 우리들 보금자리는 얼마나 깨끗하다 할 만한가 잘 모르겠습니다. 새로 짓는 아파트만큼, 새로 세우는 도시만큼, 건축쓰레기를 어디로 버리고 어떻게 다루는가를 살피지 않는 이 나라는 얼마나 살 만한다 여겨도 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사람들은 웃습니다. 사람들은 웁니다. 그런데, 마음속 깊이 우러나오면서 웃거나 우는지 궁금합니다. 팔랑거리는 나뭇잎 하나를 바라보며 웃을 줄 아는지, 지는 꽃잎을 들여다보며 우는지 궁금합니다. 밭을 일구며 지렁이를 만나 웃는지, 물고기 비늘을 다듬으며 우는지 궁금합니다. 언제 웃고 언제 울며, 어떻게 웃고 어떻게 우는지 궁금합니다.


- ‘난 로보트라 다행이라 생각했다. 얼마만큼이라도 기다릴 수 있으니까.’ (16쪽)


 아시나노 히토시 님 만화책 《카페 알파》(학산문화사,1997) 1권을 읽습니다. 느리게도 느긋하게도 한갓지게도 아닌, 살아가는 빠르기 그대로 사랑하는 사람들 이야기를 담은 만화책을 읽습니다.

 

 느리게 산대서 더 나은 삶이지 않습니다. 느긋하게 살거나 한갓지게 살기에 더 좋은 삶이지 않아요.

 

 저마다 알맞게 살아갈 때에 즐겁습니다. 누구나 알뜰살뜰 살림을 꾸릴 때에 기쁩니다. 패스트푸드도 슬로푸드도 우리한테 좋을 수 없습니다. 우리한테는 우리 집에서 우리 땀을 들여 우리 손으로 거두고 우리 식구가 누리는 우리 밥그릇 하나가 좋습니다. 밥은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거든요.

 

 볍씨를 갈무리해서 모를 내고 모를 심고 물을 대며 풀을 뽑고 나락을 거두어 나락을 훑고 나락을 찧고 비로소 쌀을 얻습니다. 쌀은 날로 씹어먹을 수 있고, 먼지를 잘 씻고 돌을 일어 물에 불린 다음 밥으로 지을 수 있습니다. 빠르다 하면 가게에서 사다 먹을 때에 빠르겠지요. 느리다 하면 볍씨를 갈무리해서 심어서 거두는 삶이 느리겠지요.

 

 그러나, 무엇이 빠르고 무엇이 느린지 모르겠습니다. 빠르거나 느리다고 나누어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좋게 돌볼 삶을 생각하지 못한다면, 좋게 사랑할 살붙이를 바라보지 못한다면, 좋게 꿈꾸는 하루를 누리지 못한다면, 우리들은 고운 목숨 어버이한테서 물려받아 새롭게 빛내는 목숨을 예쁘다고 못 느끼는 쳇바퀴가 된다고 느낍니다. (4344.12.31.흙.ㅎㄲㅅㄱ)


― 카페 알파 1 (아시나노 히토시 글·그림,서현아 옮김,학산문화사 펴냄,1997.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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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네가 좋아
이모토 요코 글 그림, 변은숙 옮김 / 문학동네 / 200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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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은 하루를 어여삐 맞아들이는 새해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114] 이모토 요코, 《난 네가 좋아》(문학동네어린이,2002)

 


 나는 아이들 옷가지와 기저귀를 빨아 후박나무 빨래줄에 찬찬히 널며 해바라기 시키는 일이 좋습니다. 겨울날에도 따숩게 부는 바람이 옷가지를 나부끼며 곱게 말리는 일이 고맙습니다. 보송보송 잘 마른 옷가지랑 기저귀를 걷으며 생각합니다. 나는 이 겨울햇살처럼 따스하게 살아가고 싶고, 곧 찾아올 봄햇살처럼 보드라이 살아가고 싶다고. 이어서 찾아올 여름햇살처럼 싱그러이 살아가고 싶고, 이 다음으로 찾아올 가을햇살처럼 포근하게 살아가고 싶다고.


.. 나는 강아지가 좋아. 그래서 꼬옥 안아 주지 ..  (1쪽)


 나부터 좋은 마음이 되어 좋은 나날을 누린다면, 나랑 함께 살아가는 옆지기하고 아이들도 언제나 좋은 나날을 누릴 수 있겠지요. 나부터 좋은 마음이 못 되면서 이맛살을 찌푸리거나 성깔난 목소리로 퉁명스레 말하며 살아간다면, 나랑 함께 살아가는 옆지기하고 아이들 또한 바보스러운 아버지 때문에 자꾸자꾸 미운 마음이 스며들 테지요.

 

 밤새 제대로 잠을 이루지 못하는 둘째 아이는 제 어머니랑 아버지를 끊임없이 깨웁니다. 아이 어머니는 배에 얹혀 재우다가는 오른팔을 베개 삼아 재우다가는 왼팔을 베개 삼아 재웁니다. 오줌 눈 기저귀를 갈라치면 자지러지게 웁니다. 이리 달래며 조금 재우다가 저리 달래며 조금 재웁니다. 이러는 동안 아이 어머니는 도무지 밤잠을 이룰 수 없습니다.

 

 그러나, 아기는 몸이 힘들거나 아프거나 괴로우니까 제대로 잠들지 못할밖에 없어요. 아기를 다그치거나 나무랄 수 없어요. 더 따사로이 보듬고 더 포근하게 사랑해야 해요.

 

 아침에 일어나서 아기를 건네받습니다. 밤에 한 번 아기를 건네받고, 이제 아침에는 식구들 모두 일어날 때까지, 아기가 부디 깊이 잠들고 나서 일어나 주기까지, 이렇게 아기를 품에 꼬옥 안으면서 달래야겠다고 생각합니다.

 

 아기를 건네받기 앞서 밤새 기저귀 빨래 몇 장쯤 나왔는가 어림합니다. 아침에 끓일 떡국을 헤아리며 떡국떡을 물로 헹구어 불립니다. 뼈다귀를 펄펄 고아 이 물에다가 떡국을 해야 하나. 뼈다귀 국물을 안 하면 안 될까. 그러면 무슨 국물로? 우리는 우리대로 무랑 버섯이랑 감자랑 다시마를 펄펄 끓여 이 물에 떡국을 끓이면 어떠할까. 모처럼 달걀을 흰자랑 노른자랑 나누어 부쳐서 예쁘게 썬 다음 고명으로 얹으면 될까. 지난주 고흥 장마당에서 산 깜포를 박박 비벼 헹구고서 다 끓인 떡국에 살짝 데치듯 넣어서 국그릇에 뜨면 되겠지.


.. 강아지는 고양이가 좋아. 그래서 쫄랑쫄랑 쫓아다녀 ..  (3쪽)


 아기는 아버지 무릎에서 색색 잡니다. 더없이 고맙게 조용히 잡니다. 적어도 한 시간이나 두 시간쯤 이렇게 잠누리를 누비면 아주 좋겠습니다. 한두 시간쯤 이렇게 잠들어야 비로소 개운하게 일어나 씩씩하게 새해 새날을 맞이하리라 생각합니다.

 

 아기까지 모두 잠자리에서 일어나면, 이제 첫째한테는 어여쁜 옷을 입히고 모두들 마을 한 바퀴를 돌며 이웃 어르신들한테 인사를 다녀야지요. 이웃 어르신 댁에 찾아온 식구들한테도 인사를 해야지요.

 

 아마 다른 집은 일찌감치 아침밥상을 차려서 먹었겠지요. 아기가 있는 우리 집은 밤새 잠을 이루지 못하고 느즈막하게 일어나 겨우겨우 아침을 차려서 먹겠지요. 이웃집에서는 낮밥을 먹는다 할 때에 비로소 첫 밥술을 뜨겠지요.

 

 대청마루에서 바깥을 내다 봅니다. 오늘은 구름이 많이 낍니다. 어제도 구름이 퍽 많았습니다. 어젯밤 아기를 안고 밖으로 나왔더니 별이고 달이고 하나도 안 보였습니다.

 

 양력 아닌 음력에 맞추어 달 구경을 하니까 그러려니 하고 여기지만, 양력이든 음력이든 밤하늘 맑은 별과 밝은 달을 올려다보는 일은 참 즐겁습니다. 우리 아이들 이 시골집에서 밤하늘 별이랑 달을 마음껏 받아들이면서 저희 마음밭에 고운 빛씨를 품을 수 있으면 좋겠어요.


.. 병아리는 나비가 좋아. 그래서 팔짝팔짝 뛰어다녀 ..  (10쪽)


 이모토 요코 님 그림책 《난 네가 좋아》(문학동네어린이,2002)를 읽습니다. 아이는 강아지를 좋아하고, 강아지는 고양이를 좋아하며, 고양이는 병아리를 좋아한답니다. 병아리는 나비를 좋아하고, 나비는 해바라기를 좋아하며, 해바라기는 아이를 좋아한답니다. 그리고 모두모두 해님을 좋아하고, 해님 또한 모두모두 좋아한답니다. 서로가 서로를 아끼는 따스한 사랑으로 포근하게 낮잠에 빠져드는 조용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그림책입니다.


.. 그래서 우리를 모두 따뜻하게 감싸 주는 거야 ..  (21∼23쪽)


 서로서로 아끼는 누리에서는 다툼이나 싸움이 깃들지 않습니다. 다툼이나 싸움이라는 낱말부터 끼어들 자리가 없습니다. 다툼이나 싸움이 끼어들 자리가 없으니, 언제나 즐겁게 웃고 기쁘게 어깨동무할 수 있습니다.

 

 기운차게 두레를 합니다. 신나게 도르리를 합니다. 한솥밥을 먹으며 웃습니다. 나란히 땀을 흘리고 다 함께 정갈하게 씻습니다.

 

 어버이 스스로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어버이 일을 아이들이 물려받습니다. 아이들이 물려받는 일은 또 이 아이들이 낳을 아이들이 물려받습니다. 땅을 아낄 수 있는 일을 사랑합니다. 흙을 살릴 수 있는 일을 좋아합니다. 물을 북돋우고 하늘을 꽃피우는 일을 누립니다.

 

 돈을 더 벌거나 이름을 더 날리는 일이란 덧없습니다. 사랑을 예쁘게 나누거나 믿음을 어여삐 심는 일이 보람찹니다.

 

 햇살은 노상 햇살입니다. 바람은 언제나 바람입니다. 물은 늘 물입니다. 흙은 한결같이 흙입니다. 햇살을 먹고 바람을 쐬며 물을 마시고 흙을 디디고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이러한 사람들 마음에는 오직 하나, 사랑씨가 뿌리내리면서 무럭무럭 자라겠지요. 좋은 하루를 좋은 마음으로 맞이합니다. (4345.1.1.해.ㅎㄲㅅㄱ)


― 난 네가 좋아 (이모토 요코 글·그림,변은숙 옮김,문학동네어린이 펴냄,2002.10.20./8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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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2-01-01 18:17   좋아요 0 | URL
된장님 2011 서재의 달인 등극을 축하드립니다.
2012년 흑룡의 해,좋은일만 계시길 바라며 새해 복많이 받으셔요.^^
그리고 신년 새해 용꿈 꾸시라고 용 한마리 선물로 보냅니다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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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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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놀 2012-01-02 00:51   좋아요 0 | URL
카스피 님 즐거이 새해 맞이하셔요~
고맙습니다 ^^

페크pek0501 2012-01-02 11:32   좋아요 0 | URL
된장님 2011년의 서재의 달인, 저도 축하드립니다. 도대체 어떻게 그렇게 많은 글을 쓰실 수 있는 건지 궁금합니다. 저는 한 달에 몇 편 쓰는 것도 벅찬 사람이라서요. ㅋ

올해 새해에도 늘 그렇게 글쓰기 생활화의 모습을 기대하며 저도 배우도록 하겠습니다. 마음 따뜻하고 흐뭇해지는 그런 글, 참 좋습니다.

파란놀 2012-01-02 18:36   좋아요 0 | URL
그저 살아가는 이야기를 하나하나 글로 담을 뿐이에요.
pek0501 님 새해에
언제나 좋은 일 가득하리라 믿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