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끼 드롭스 9 - 완결
우니타 유미 지음, 양수현 옮김 / 애니북스 / 2012년 10월
평점 :
품절


만화책 즐겨읽기 196

 


삶과 삶과 삶
― 토끼 드롭스 9
 우니타 유미 글·그림,양수현 옮김
 애니북스 펴냄,2012.10.26./8000원

 


  사람은 누구나 서로 사랑할 만한 사람과 살아갑니다. 서로 사랑할 만하지 못한 사람이라면 함께 살아갈 수 없습니다.


  이쪽 사랑이 저쪽 사랑보다 아름답지 않습니다. 저쪽 사랑이 이쪽 사랑만 못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서로 견줄 수 없습니다. 사람도 서로 견줄 수 없습니다. 어느 사랑이든 모두 아름답습니다. 사랑이 아름다운 줄 느끼지 못한다면 사랑이 내 마음속에서 찬찬히 샘솟는 줄 못 느끼는 셈이요, 사랑을 못 느끼는 삶이라면, 내 이웃들이 나를 사랑하는 푸른 숨결을 못 느끼는 모양새입니다.


  사랑하지 못하며 다람쥐 쳇바퀴처럼 빙빙 도는 삶도 슬프지만, 사랑받는 아름다움을 느끼지 못하면서 물질문명 사회에서 톱니바퀴 구실만 하느라 허리 구부정해지는 삶도 슬픕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누구나 사랑받는 나날이거든요. 사랑받지 못하는 사람은 없어요.


  밥 한 그릇에 사랑이 깃듭니다. 볍씨를 심어 모를 튼 다음 너른 논에 모를 심어 건사하는 흙일꾼이 있기에 밥 한 그릇 먹습니다. 그저 돈만 벌려 하는 흙일꾼이었으면 내가 목숨을 건사하지 못해요. 흙일꾼 한 사람 볍씨에 온 기운과 숨결과 사랑을 담았기에 내가 이 밥 한 그릇 먹으며 오늘 하루 새롭게 힘을 내어 살아갑니다.


  옷 한 벌에 사랑이 감돕니다. 실을 얻고 천을 엮어 옷을 짓는 사람들 사랑스러운 손길이 옷 한 벌에 사르르 묻어납니다. 길거리에서 값싸게 장만한 옷이라 하더라도, 이 옷 한 벌을 지은 사람 푸른 숨결이 곱게 드리우기 마련이에요. 나는 옷을 입을 뿐 아니라, 사랑을 입는 사람입니다.

  내가 걷는 이 길도, 내가 얻어 타는 버스와 택시도, 내가 손에 쥐어 읽는 책도, 내가 물을 따라 마시는 물잔 하나도, 모두 사랑으로 이 땅에 태어납니다.


- “몇 번이나 깨웠는데, 정말. 안 늦겠어?” “뛰어가면 돼!” (15쪽)
- “확실히 지난번에 말했던 것처럼, 내가 다이키치 옆에서 노후를 돌봐 주고 싶다고 생각하게 된 데엔, 다이키치를 좋아하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기도 해. 하지만 그게 다는 아냐. 부모처럼 날 키워 준 것, 부모가 아닌데도 키워 준 것, 그런 여러 가지 사실에 대한 생각이 모여, 지금 이 마음이 생겨난 거야.” (82∼83쪽)
- ‘아, 그런가. ‘엄마’가 밤에 외출할 수 있었던 대신에, 다이키치가 그러지 못했던 거야. 내가 있었으니까.’ (118쪽)


  한겨울에도 마을 풀숲이나 도시 골목동네에서 푸르르 떼지어 날아다니는 참새들이 들려주는 노랫소리도 사랑입니다. 한겨울 텅 빈 논에서 파릇파릇 새로 돋는 풀싹도 사랑입니다. 겨우내 텅 빈 채 찬바람 맞는 제비집도 사랑입니다. 아이들 서로 얼크러지며 까르르 터뜨리는 웃음꽃도 사랑입니다.


  사랑이란 가을잎입니다. 사랑이란 도랑물 소리입니다. 사랑이란 봄눈입니다. 사랑이란 소나기입니다.


  또, 사랑이란 무엇일까요.


  스스로 생각을 기울여 보셔요. 스스로 마음속으로 사랑을 느껴 보셔요. 스스로 사랑씨앗 하나 마음밭에 곱게 심어 보셔요. 스스로 사랑말 한 마디 살그머니 입에서 꺼내어 우리 둘레에 흐드러지게 퍼뜨려 보셔요.


  삶은 사랑이 있어 꽃피울 수 있고, 사랑은 삶을 누리는 사람마다 어여삐 돌봅니다. 삶은 사랑을 빛내며 즐겁고, 사랑은 삶을 즐기는 사람들 착한 손길로 차츰차츰 따사롭게 퍼집니다.


- “나는 이대로도 충분하고, 이 이상 특별히 뭘 바라지도 않아.” (19쪽)
- ‘린과 10년을 같이 살면서 처음으로 본 표정이었다. ‘좋아한다’니, 대체 무슨 뜻이야.’ (51쪽)
- “그 뭐랄까, 네 고통을 대가로 얻은 평온한 일상 따위, 하나도 안 좋거든.” (81쪽)
- “평생 여기에 눌러살 거야!!” (104쪽)


  돈을 넉넉하게 벌면, 넉넉하게 그러모은 돈을 가난한 이웃한테 나누어 주며 사랑을 펼칩니다. 내 목소리가 고우면, 언제나 상냥하게 노래꽃을 피우면서 신나게 사랑을 나눕니다. 자, 그러면 나는 어떤 사랑을 이 땅에 심을 수 있을까요. 음, 사랑을 담는 글 한 줄 쓸 수 있겠지요. 사랑을 싣는 사진 한 장 찍을 수 있겠지요. 사랑을 듬뿍 얹는 밥 한 그릇 지어 우리 살붙이랑 맛나게 먹을 수 있겠지요.


  공무원시험에 붙어야 사랑이 이루어지지 않아요. 대통령이 되거나 시장·군수가 되어야 사랑이 싹트지 않아요. 대학교에 들어가야 사랑이 되지 않아요.


  사랑은 늘 내 가슴속에 있어요. 내가 느낄 때에 사랑은 꽃이 되어요. 삶꽃이고 사랑꽃이며 사람꽃이에요.


  나무를 함께 바라봐요. 나무는 겨우내 앙상한 가지로 찬바람을 맞으면서 한결 씩씩하고 튼튼하게 새봄을 누려요. 봄 동안 잎을 틔우고 여름내 새 가지를 올리며 가으내 새 열매와 씨앗을 이 땅에 흩뿌려요. 나이테가 굵어지면서 이듬해 나무그늘은 더욱 짙고 푸르게 빛나요. 사람도 나이테가 굵어지면 슬기로움이 빛나고 사랑스러움이 환하겠지요. 어린이는 어린이대로 맑은 사랑을 속삭이고, 푸름이는 푸름이대로 밝은 사랑을 노래하며, 어른은 어른대로 그윽한 사랑을 꿈꿀 테지요.


  삶과 삶과 삶입니다. 사랑과 사랑과 사랑입니다. 한손에는 사랑, 다른 한손에도 사랑입니다. 왼눈으로도 사랑을 보고 오른눈으로도 사랑을 봅니다. 왼귀로도 사랑을 들으며 오른귀로도 사랑을 듣습니다.


- “그냥 얘기하면 되는데. 별로 특이한 애 아냐! 린은 엄마 아빠 없이 자라서 좀 야무진 것뿐이라구!” (24∼25쪽)
- “다이키치를 좋아해도 되는 거지?” (164쪽)


  우니타 유미 님 만화책 《토끼 드롭스》(애니북스,2012) 아홉째 권을 읽으며 생각합니다. 만화책 《토끼 드롭스》는 아홉째 권으로 모든 이야기를 마무리짓습니다. 첫째 권부터 흐르던 맑은 사랑이 차츰 밝은 사랑으로 빛나더니, 이제 그윽한 사랑으로 꽃을 피웁니다.


  사랑이 있기에 서로서로 살아갑니다. 사랑이 있어 서로 기대기도 하고 팔짱도 끼며 어깨동무도 해요. 어설프거나 어리석은 마음이 깃들 수 없습니다. 오직 사랑입니다. 어버이로서 아이를 사랑하고, 아이로서 어버이를 사랑합니다. 결 고운 사람으로서 결 고운 이웃을 사랑합니다. 다부진 매무새로서 다부진 동무를 사랑합니다.


  꿈을 꾸는 사랑은 꿈을 꾸는 사랑을 부릅니다. 참답게 흐르는 사랑은 참답게 흐르는 사랑을 부릅니다. 그러니까, 시커먼 마음은 시커먼 마음을 불러요. 얄궂은 꿍꿍이는 얄궂은 꿍꿍이를 불러요. 너그러운 마음은 너그러운 마음을 부르고, 따사로운 가슴은 따사로운 가슴을 부릅니다. 곧, 맑은 눈빛 되어 맑은 사랑을 아끼는 나날이라면, 내 곁에 찾아오는 님들은 누구나 맑은 눈빛 되어 맑은 사랑을 흐드러지게 꽃피웁니다.


- “다이키치는 나중에 내가 아이를 낳으면, 같이 잘 키워 주리란 걸 아니까. 난 그런 사람이 좋아.” “아이. 네가 아이를.” “응. 아이 낳고 싶어. 다이키치 아이. 그리고, 꼭 그 애를 행복하게 해 줄거야.” “린.” “나처럼 말이야.” “…….” “아, 다이키치 운다.” “시끄러워! 땀이야, 땀!” (215∼218쪽)


  사랑이 만나 아이를 낳습니다. 사랑이 만나 사랑을 낳습니다. 사랑이 만나 꿈과 이야기를 낳습니다.


  나는 어릴 적부터 옛이야기를 들으면 으레 ‘사랑’이네, 하고 느꼈습니다. 냇물에 엄마 무덤 쓸려 가며 울던 풀개구리 이야기도 사랑입니다. 여우 누이 이야기도 사랑입니다. 꼬부랑 할머니 할미꽃 이야기도 사랑입니다. 모두 사랑을 담아 이야기 한 자락 엮었고, 먼먼 옛날 옛적부터 어버이가 사랑 실은 목소리로 아이들한테 이야기 한 자락 들려주어 오늘날이 되었습니다.


  내가 아이들과 나눌 수 있는 한 가지란 오직 사랑이라고 느낍니다. 내가 나를 살찌우거나 북돋울 한 가지 또한 그예 사랑이라고 느낍니다. ‘내 아를 낳아도!’ 하고 부르짖는 외침이 아닌 ‘내 사랑을 낳고 싶어.’ 하며 따사로이 속삭이는 싯말과 같은 노래가 즐겁습니다. 삶과 사랑과 사람입니다. 4345.12.3.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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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어디 갔니?

 


  아버지인 내가 두 아이를 홀로 건사하며 마실을 다니면, 마주치는 사람마다 어김없이 “어머니 어디 갔어요?” 하고 묻는다. 어느 어른은 아이를 바라보며 “엄마 어디 갔니?” 하고 묻기까지 한다. 이럴 때, 이렇게 묻는 이들이 나로서는 참 ‘버릇없다’고 느낀다. 아버지가 두 아이를 잘 건사하며 다니는데, 아이들이 ‘버릇없는 말’을 뻔히 듣는다면, 아이 삶에 어떤 넋이 흘러들겠는가. 그래서 나는 두 아이와 함께 읍내나 면내에조차 마실을 하고픈 마음이 들지 않는다. 예쁜 사람들은 이런 버릇없는 말로 우리 식구를 맞이하지 않지만, 예쁜 넋으로 예쁜 삶을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은 으레 버릇없는 말로 이녁 스스로를 갉아먹는다.


  참말 어머니가 어디 갔으면 어떤가. 더구나 ‘이녁은 모르는 일’이지만, 아이들한테 어머니 없이 아버지 혼자 아이들을 맡아서 살아간다며 어떠하겠는가. 어머니 없는 아이들 앞에서 “어머니 어디 갔어요?” 하고 묻는 말이란 ‘아픈 생채기’를 후벼파는 셈 아닌가? 말은 함부로 해서는 안 된다. 낮 말은 새가 듣고 밤 말은 쥐가 듣는다고도 했으며, 소도 사람 말을 알아듣는다고 했다. 아이들이 ‘성 차별’을 느끼도록 북돋우는 엉터리 같은 말이 함부로 터져나오지 않도록 사람들 스스로 이녁 삶을 슬기롭게 다스릴 노릇이다. 아이들이 ‘아픔과 슬픔’을 받도록 부추기는 멍텅구리 말은 아무 데서나 새어나오지 않도록 사람들 스스로 이녁 삶을 올바로 추스를 노릇이다.


  우리 아이들한테는 아버지도 있고 어머니도 있다. 아버지가 집일을 도맡고, 아이를 보살피는 몫까지 으레 도맡는다. 어느 모로 바라보더라도 ‘아무런 성 평등이 이루어지지 않은 한국 사회’에서 우리 식구 같은 모습을 보기는 아주 힘들리라. 평등이니 평화이니 하는 말에 앞서, 아이는 두 어버이가 함께 사랑하며 돌볼 노릇이요, 집안일이건 집밖일이건 두 어버이가 씩씩하게 맡을 노릇이다. ‘어머니만 아이들을 도맡아서 보살펴야’ 하지 않다. 그렇다고 ‘아버지가 집일을 더 많이 맡거나 아이들을 더 오래 맡아서 보살펴야’ 하지도 않다. 사람이라면 마땅히 할 몫이고, 어버이라면 즐겁게 누릴 몫이다.


  삶을 읽고 사람을 읽으며 사랑을 읽을 때에 생각을 열 수 있다. 삶을 쓰고 사람을 쓰며 사랑을 쓸 때에 마음을 열 수 있다. 삶을 읽는 예쁜 이웃을 만나고 싶다. 사람을 읽는 고운 동무를 만나고 싶다. 사랑을 읽는 눈빛 맑은 사람과 이 지구별에서 살아가고 싶다. 4345.12.3.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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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들보라 복주머니 놀이

 


  이모 시집잔치 하는 날, 작은아이는 아버지 품에서 낮잠을 달게 잤기에 어수선 복닥복닥 하는 마당에서도 신나게 잘 논다. 큰아이도 낮잠을 잘 재웠어야 하는데 큰아이한테 참 미안하다. 작은아이는 복주머니를 이리 던지고 저리 굴리면서 예식장 한켠에서 혼자서 잘 논다. 4345.12.3.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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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랑신부 절 받는 어린이

 


  이모 시집잔치 하는 날, 낮잠을 제대로 즐기지 못해 힘든 몸으로 어머니 꾸지람을 듣고는 풀이 죽은 큰아이가 할머니 곁에 있겠다고 앙앙 울어서 할머니한테 보낸다. 큰아이는 시집잔치 내내 할머니 옆에 붙어서 할머니 치맛자락 붙잡고 움직인다. 신랑신부가 절을 할 적에도 나란히 절을 받는다. 너 절 받고 싶어서 앙앙 울지는 않았겠지. 이른아침부터 늦은저녁까지 기나긴 시집잔치를 잘 견디어 주어 고맙다. 4345.12.3.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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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꽃 2012-12-18 14:49   좋아요 0 | URL
예쁜 벼리가 예쁜 한복 입고 더 예쁘게 서 있네요~~

파란놀 2012-12-19 03:10   좋아요 0 | URL
네, 생각해 보면, 신랑 신부도 고운 한복 입을 때에 한결 어여쁘지 않으랴 싶기도 해요
 

깊은 밤에 작은아이 다독이며

 


  작은아이가 꼭 깊은 밤에 응애 울면서 칭얼거린다. 잘 놀고 곯아떨어지면 밤오줌 누이기 수월하지 않은데, 스스로 쉬를 가리지 못하고 바지에 흠뻑 싸고 나면 이렇게 울곤 한다. 그렇다고 깊은 밤에 달게 잘 자는 아이를 부러 깨우거나 안고는 오줌그릇에 앉힐 수 없다. 작은아이 스스로 쉬 마렵다는 티를 내며 아버지를 깨워야 비로소 바지를 안 적시며 오줌을 가리면서 작은아이 스스로 개운하게 다시 잠들 수 있다.


  나는 워낙 따로 밤잠을 깊이 들지 않는다. 잠이 들면 내 나름대로 깊이 자지만, 옆에서 무언가 부르는 소리를 내면, 이 소리를 듣고 살며시 눈을 뜨곤 한다. 언제부터 이런 버릇이 들었는지는 알 길이 없다만, 신문배달 일을 하던 때, 작은 소리 하나에도 잠에서 깨어 ‘신문사 지국에 찾아드는 도둑’을 잡아야 하던 날을 보냈기 때문이 아닌가 싶곤 하다. 참말 신문사 지국에 뭘 훔칠 게 있는지 모른다만, 고작 300원짜리(내가 신문배달을 하던 때 신문 한 장 값) 신문 한 장 훔치려고 신문사 지국에 슬그머니 찾아드는 이웃 아저씨들이 있었다. 이들이 처음에는 신문만 훔친다지만, 나중에는 금고를 훔치거나 우리 가방을 훔치지 말란 법이 있겠는가.


  어쩌면 이무렵 이런 밤잠이 버릇이 되어 오늘 두 아이와 살아가며 아이들 밤칭얼을 스스럼없이 받아들여 건사할 수 있는지 모른다. 나는 일찍부터 ‘아이 돌보는 아버지’가 되도록 내 매무새를 다스린 셈인지 모른다.


  옆지기 몸이 아주 튼튼하다거나 옆지기 마음이 무척 씩씩했다면 어떠했을까 헤아려 보곤 한다. 이때에는 옆지기가 아이 돌보는 나날을 그리 힘들게 여기지 않았을 테며, 아이 똥오줌 가리기라든지 빨래라든지 밥하기라든지 청소라든지 이것저것 기운차게 함께 했으리라 본다. 때로는 나한테 이래저래 잔소리도 늘어놓고 꾸지람을 하기도 했을 테지. 옆지기가 아픈 사람이기에, 나는 이제껏 제대로 모르거나 널리 돌아보지 않고 살던 ‘아이와 지내는 하루’라든지 ‘집일을 모두 맡아 건사하는 하루’를 실컷 누린다. 2008년 8월 16일부터 2012년 12월 3일 오늘에 이르기까지 다섯 해째 아이들 똥오줌을 날마다 주물럭거린다. 날마다 아이들 똥옷을 서너 차례 빨래하고, 아이들 밑을 서너 차례 씻긴다.


  오늘 저녁에는 작은아이 똥바지를 벗기며 밑을 씻기다가 그만 내 웃옷에 작은아이 똥이 푸지게 묻는다. 어쩌겠나. 묻었는데. 먼저 작은아이 밑과 다리를 싹싹 씻고 닦아 새 바지 입힌 다음 내 웃옷을 물로 헹군다. 이런다고 똥내가 가시지 않으니 복복 비벼서 빨아야 할 텐데, 고흥 시골집 아닌 일산 옆지기 어버이 댁에 머물기에 그냥저냥 똥옷을 입고 산다. 뭐 그래도 즐거우니, 작은아이가 어제 적게 눈 똥을 오늘 몰아서 왕창 누어 잘했구나 잘했어 노래하며 등짝을 톡톡 쓰다듬는다.


  칭얼거리던 아이를 데리고 밖으로 나와 달빛을 바라본다. 자장노래 한 가락 뽑고는 방으로 들어간다. 작은아이가 어머니 품으로 파고든다. 조용조용 색색 다시 곱게 잠든다. 예쁜 밤이 고즈넉히 흐른다. 4345.12.3.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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