밍밍한 풀맛

 


  읍내 가게에서 돗나물 한 꾸러미를 장만한다. 된장에 무쳐서 먹는다. 한겨울에도 읍내 가게에 가면 돗나물 한 꾸러미를 장만해서 푸른 빛 나는 풀을 먹을 수 있구나 하고 생각한다. 그런데, 한 젓가락 집어서 입에 넣으니, ‘퍼석’ 하는 밍밍한 물맛만 난다. 아, 그래, 그렇지. 한겨울에 읍내 가게에서 사다 먹을 수 있는 푸성귀라면, 비닐집에서 키웠을 테니까. 비닐집에서 물과 비료만 먹고 자랐을 테니까. 햇볕과 흙과 바람과 빗물을 마신 풀이 아닐 테니까. 그러고 보면, 우리 집 텃밭에서 봄부터 가을까지 얻는 돗나물은 줄기가 퍽 가늘고 잎사귀도 작다. 가게에서 사다 먹는 돗나물은 줄기도 굵직하고 잎사귀도 큼직하다. 겉보기로는 먹음직스럽지만, 막상 먹고 보면 밍밍한 물맛만 돌 뿐, 풀다운 풀맛이 돌지 않는다. 4346.1.6.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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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래기계한테 맡기고

 


  아침에 손빨래를 할까 생각하다가 모처럼 기계한테 맡긴다. 엊저녁 손님을 치르느라 이래저래 아침부터 집일이 멧더미처럼 쌓였기에, 손빨래를 하고 보면 다른 일거리가 뒤로 밀리겠다 싶어 빨래기계를 쓴다. 손으로 빨면 15분이나 20분이면 넉넉하지만, 빨래기계한테 맡기면 자그마치 56분이나 걸린다. 물이랑 전기는 또 얼마나 많이 쓸까. 그러나, 고마운 노릇이지. 내 일거리 하나를 나누어 맡았으니까. 어여쁜 빨래기계야, 씩씩하고 즐겁게 우리 아이들 옷가지 빨아 주렴. 4346.1.6.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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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책 하나 있어

 


  아름다운 책 하나 있어 책방이 빛납니다. 아름다운 책이 여럿 있어도, 천 권이나 만 권 있어도, 책방은 빛날 테지요. 그런데, 아름다운 책이 꼭 하나 있어도 책방이 빛나요.


  아름다운 책은 나한테만 아름다운 빛으로 스며들 수 있습니다. 아름다운 책은 여러 사람 또는 많은 사람한테 아름다운 빛으로 젖어들 수 있습니다. 책을 쓰고 책을 펴내며 책을 다루는 사람들 아름다운 손길이 골고루 담긴 아름다운 책 하나입니다. 살아가는 빛을 보여주고, 사랑하는 빛을 들려줍니다. 서로 아끼는 빛을 펼치고, 함께 어깨동무하는 빛을 드리웁니다.


  한 사람이 읽을 책은 한 권일 수 있고 백 권이나 천 권이나 만 권일 수 있습니다. 몇 권을 읽든 좋습니다. 마음속에서 고운 빛이 샘솟도록 북돋우는 책이면 됩니다. 아름다운 이야기 북돋우는 따사로운 책이라면, 스스로 바라는 만큼 즐거이 읽으면 돼요. 나부터 스스로 빛나면서 책이 빛나고, 나와 책이 빛나면서 책방이 빛나며, 나와 책과 책방이 빛나면서, 내 마을과 삶터가 환하게 빛납니다. 4346.1.6.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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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어른입니까 9] 동무읽기
― 내 동무는 누구인가

 


  새해(2013년)를 맞이해 여섯 살 세 살 되는 우리 집 두 아이는 어린이집에 안 갑니다. 한 해 더 지나 큰아이가 일곱 살 되면, 아마 ‘취학통보서’가 우리 집에 날아올 텐데, 우리 집에서는 아이들을 학교에 보낼 마음이 없습니다. 학교는 아이들 모두 대학바라기로 이끌 뿐 아니라, 모두 시골 떠나 도시에서 살도록 길들이기만 합니다. 시골에서 아름다운 숲 누리면서 예쁘게 살아가고 싶어 시골에 보금자리를 튼 만큼, 어여쁜 시골살이 즐거이 누리도록 이끄는 배움터가 아니라 한다면, 우리 아이들은 어디로도 보내고 싶지 않아요.


  둘레 어른들은 우리 아이를 만날 때 자꾸 “시골에 또래 동무가 없어서 어쩌니?” 하고 말합니다. 나이가 엇비슷한 또래가 없고, 시골 아이는 죄 도시로 떠났으니 동무가 없다는 뜻일 텐데, 또래가 없거나 동무가 없대서 그리 걱정스럽지 않아요. 왜냐하면, 어린이집이나 학교에 가서 또래를 만나거나 사귄다고 해서 아이들이 한결 즐거이 놀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우리 아이 또래를 헤아려 보면 슬픕니다. 우리 아이 또래인 다른 집 아이들은 으레 아주 어릴 때부터 영어노래를 배우고 영어만화를 봅니다. 어린이집부터 온통 비디오와 만화영화에 길들고, 따로 무슨무슨 학습이라면서 머리에 지식조각을 집어넣어야 해요. 집집마다 거의 다 있다는 자가용을 아주 어릴 때부터 익숙하게 탑니다. 두 다리로 개구지게 뛰노는 또래 아이들을 찾아보기 몹시 힘듭니다. 두 다리로 풀숲을 헤치고 들판을 누비거나 바다를 가르는 또래 아이들은 어디에 있을까요.


  우리 마을이나 집이나 학교 둘레에 ‘풀숲 헤치’고 ‘들판 누비’며 ‘바다 가르’는 또래가 있다면, 곧장 이 아이한테 찾아가 서로 동무로 삼자고 할 생각입니다. 이 같은 또래가 아니라면, ㅃㄹㄹ이니 ㅌㅇ이니 하는 ‘텔레비전 캐릭터’에 마음을 빼앗긴 채, 흙이나 모래를 마음대로 주무르지 못하는 또래라 한다면, 이 아이들이 우리 집 아이들하고 나이가 엇비슷하대서 서로 어울리게 하고 싶지는 않아요.

  그래도, 아이들끼리 두면, 집안 아닌 마당이나 바깥에서 아이들끼리 두면, 아이들은 어느새 ‘텔레비전 캐릭터’나 ‘영어노래’ 따위는 잊습니다. 온몸 굴리고 뜀박질하는 놀이에 흠뻑 젖어듭니다.


  아이들은 뛰놀 마당과 숲과 들과 바다와 멧골이 있어야 해요. 아이들은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이나 놀이공원이나 보육시설이 있어야 하지 않아요. 아이들은 마음이 맞는 벗을 찾아야 할 뿐이에요. 아이들은 또래를 만나지 않아도 돼요. 또래가 꼭 동무가 되지 않아요. 동무란, 서로 마음이 맞는 아름다운 사이로 지내는 이웃입니다. 동무란, 나와 네가 마음을 활짝 열며 아름다이 사랑을 일구는 삶지기입니다.


  나이가 같대서 동무가 되지 않아요. 어른끼리도 그렇거든요. 어른끼리도 나이가 같아야 동무가 되지는 않아요. 마음이 맞아야 동무입니다. 마음이 사랑스럽고, 마음이 믿음직하며, 마음이 넉넉할 때에 비로소 동무예요. 4346.1.5.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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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벼운 아이

 


  아침에 작은아이 쉬를 누이고 나서 얼마 안 지났는데, 작은아이가 이맛살 찡그리며 응응응응 한다. 응? 왜? 아하, 똥 마려? 응가 마렵구나. 응가 눌래? 응응응응. 그래, 그러면 응가 누러 가자. 응응응응. 자 앉아 봐. 응가 영차. 응가 영차. 응응응응.


  작은아이를 오줌그릇이자 똥그릇에 앉힌다. 아버지는 아침에 먹을 밥을 끓이려고 냄비에 불을 올린다. 국을 어떻게 끓일까 생각한다. 이러는 동안 대청마루 오줌그릇에 앉은 작은아이더러 “응가 영차!” 하는 노래를 불러 준다. 작은아이는 이제 다 누었는지, 다시 응응응응 한다.


  너 응응응응 하면서 찡그리는 이맛살 되게 귀엽거든. 다 누었다면서 또 응응응응 하는 볼때기도 귀엽거든. 작은아이는 오늘 아침 오줌바지 두 벌을 내놓았지만, 똥바지는 내놓지 않는다. 참 예쁘구나. 오줌바지에 척척 빨면 쉽고, 똥바지는 좀 품이 들잖니. 세 살 먹었다고, 새해 첫머리에 아주 귀엽고 착한 짓을 다하는구나. 똥 곱게 눈 너를 한팔로 안아 다른 한팔로 따순 물 틀어 네 밑을 닦는다. 세 살 아이는 참 가볍네. 넌 아직 참 가벼운 아이야. 여섯 살 너희 누나는 이렇게 한팔로 안아서 씻기지 못하거든. 4346.1.5.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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