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밥놀이 1

 


  별꽃나물 큰아이한테 내민다. “자, 꽃 달린 예쁜 풀이니까, 예쁜 벼리한테 줄게.” “고마워요.” 큰아이는 별꽃나물 한 줄기 곧바로 안 먹는다. 오늘은 밥상에서 꽃놀이를 한다. 왼손에 별꽃나물을 살며시 쥐고는 “옹 옹 옹, 여기는 어디야? 여기는 보라 젓가락이야. 옹 옹 옹, 여기는 어디야? 여기는 웃는 숟가락이야. 옹 옹 옹, 여기는 어디야? 여기는 작은 접시야. 옹 옹 옹, 여기는 어디야? 여기는 예쁜 누나 밥그릇이야. 옹 옹 옹, 여기는 어디야? 응, 밥상이야. …….” 한참 꽃송이하고 놀더니 입에 앙 집어넣는다. 냠냠냠. 4346.4.15.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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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분 풀내음

 


  꼭 5분이면 한 끼니 먹을 풀 실컷 뜯는다. 1분 동안 한 가지 풀을 뜯으니, 5분이면 다섯 가지 풀을 뜯는다. 10분 들이면 열 가지 풀을 뜯는다. 그러나, 곰곰이 따지면, 다섯 가지 풀을 뜯더라도 5분 아닌 1분이면 넉넉하달 수 있다. 왜 한 가지 풀 뜯는 데에 1분 들이느냐 하면, 풀을 뜯으며 풀내음 맡고 풀놀이 즐기니까 1분씩 들인다.


  미나리 줄기 한 움큼 꺾는 데에는 몇 초면 넉넉하다. 미나리 뜯기 앞서 흙도랑 물끄러미 바라보며 물내음 맡는다. 민들레 잎사귀 몇 뜯는 데에는 참말 몇 초면 넉넉하다. 민들레 잎사귀 뜯기 앞서, 얘야 너희들 하얀 꽃 소담스레 피우는데 이렇게 잎사귀 뜯어서 미안해. 맛있게 먹으며 예쁘게 살아갈게. 이야기 조곤조곤 들려주면서 뜯는다. 갈퀴나물 솎으면서 또 말을 건다. 너희들 곧 꽃 피우려고 하는데, 꽃망울까지 자꾸 뜯어서 먹는구나. 너희는 우리 식구들 몸으로 스며들면서 우리 몸속에서 새로운 꽃으로 피어난단다. 쑥잎 뜯는다. 너희 쑥은 몇 천 해 몇 만 해를 살며 또 오늘 좋은 밥거리가 되는지 궁금하구나. 국에도 넣고 풀로도 먹고, 참 고맙다. 별꽃나물 뜯고, 봄까지꽃나물 뜯는다. 싱그러이 잎사귀 통통하게 오르는 정구지를 뜯는다. 꽃마리랑 좀꽃마리 알맞게 뜯는다. 이듬해부터는 제비꽃 잎사귀도 뜯을 생각이다. 올해까지는 제비꽃을 거의 그대로 둔다. 조금 더 퍼지렴. 조금 더 널리 퍼지렴. 이듬해에 널리널리 우리 집 둘레에 잔뜩 퍼지면 그때부터 너희도 맛나게 먹으마.


  밥물 올린 냄비 불을 끄고, 국물 올린 냄비 거의 다 끓을 무렵, 꼭 5분 들여 풀을 뜯는다. 국물 끓이는 냄비 불을 끈 뒤 쑥을 헹구어 넣는다. 보글보글 김 나오는 국냄비에서 쑥은 푸른 빛 곱게 살아나며 쑥내음을 국물 깊이 퍼뜨린다. 작은아이는 아버지가 밥과 멸치와 해바라기씨와 호박씨와 함께 씹어서 주는 풀밥을 먹는다. 큰아이는 스스로 씩씩하게 풀을 씹어서 먹는다. 풀물 짜서 먹어도 좋고, 이렇게 날풀 냠냠 씹어서 먹어도 좋지. 풀을 먹는 우리들은 모두 풀사람이다. 4346.4.15.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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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3-04-15 11:20   좋아요 0 | URL
쑥국, 참으로 향긋하니 참 맛있겠습니다.
저도 먹고 싶네요~^^

파란놀 2013-04-15 16:59   좋아요 0 | URL
네, 시장에서 즐겁게 쑥 장만해서 드셔 보셔요.
쑥내음 피어나는 쑥국으로 몸 따뜻해집니다~ ^^
 

꽃 먹는 어린이

 


  시골마을 사름벼리는 꽃을 먹는다. 지난해 다섯 살 적 돌아보면, 꽃을 어떻게 먹느냐 했으나, 올들어 꽃 아주 예쁘게 잘 먹는다. 이제 아버지가 굳이 꽃을 따서 내밀지 않더라도, 아이 스스로 꽃을 따서 먹곤 한다. 벼리야, 꽃 맛있지? 꽃이 얼마나 맛있는 잎사귀인 줄 알겠지? 손수 풀밭에서 뜯어서 먹지 않고서는 꽃맛을 모른단다. 꽃 먹는 너는 꽃내음 물씬 받아들이며 꽃아이가 된단다. 4346.4.15.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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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

 


  사월 십사일. 해가 길어 저녁에도 밝은 볕 들어온다. 저녁 일곱 시이지만, 방문 활짝 열었는데에도 이십 도 온도 되면서 따스하다. 좋구나. 스물이라는 숫자를 넘어가면 이만큼 좋구나. 집 둘레 밭자락에는 온갖 풀 수북하게 자라, 얼마든지 뜯고 뜯어도 식구들 실컷 먹을 만하다. 잎을 뜯는 풀은 앞으로 늦가을까지 푸르게 자라리라. 그리고, 홀로 씩씩하게 공부하러 떠난 옆지기 곧 집으로 돌아온다. 옆지기가 집을 비운 지 꼭 스무 날 된다. 즐겁게 공부 마치고 튼튼한 마음 되어 돌아올 테지. 아이들은 밥 잘 먹고, 잘 뛰놀며, 잘 웃는다. 큰아이는 작은아이한테 한 마디 두 마디 말 가르치는 재미 들이고, 서로 툭탁거리더라도 예쁘게 아끼면서 아버지 품에 살포시 안겨든다. 웃기는 녀석들이, 큰아이는 아버지 오른쪽에 눕고, 작은아이는 아버지 왼쪽에 눕는다. 큰아이를 왼쪽에 눕힌다든지 작은아이를 오른쪽에 눕히면 서로 싫어한다. 그냥 잠자리일 뿐이잖니, 굳이 왼쪽 오른쪽 안 따져도 되잖니, 그런 자리 하나 너희 자리란 뜻이니, 너희들 그런 투정 투덜거림 얼마나 귀여운지 아니. 하루하루 이야기 쌓이고, 날마다 따스함 넘친다. 이 아이들은 저희 넋을 살찌우면서 무럭무럭 자라고, 아이들과 살아가는 어버이는 온누리 밝히는 빛이 어디에서 샘솟는가 하고 새삼스레 돌아본다. 스무 살은 참 좋은 나이라 할 만하지. 스무 살 겹으로 되는 마흔 살도 참 좋은 나이라 할 만하지. 스무 살 곱곱 쌓이는 예순 살도 참 좋은 나이라 할 만하지. 스무 살 곱곱곱 겹치는 여든 살도 참 좋은 나이라 할 만하지. 오늘밤은 아이들이 이불 걷어차며 자더라도 괜찮다. 나도 이불 살짝 걷고 자다가, 작은아이 쉬 마렵다 낑낑거리는 밤에 일어나 오줌 누인 뒤 비로소 이불깃 여민다. 포근한 밤 지나가면 너희 어머니 비행기 타고 돌아오기 앞서, 저 먼 나라에서 전화를 걸며 기쁘게 웃으리라. 4346.4.15.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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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3-04-15 11:23   좋아요 0 | URL
'스물'이라는 숫자에 이렇게 좋은 것이 다 들어 있군요.
참 좋습니다~^^

파란놀 2013-04-15 15:14   좋아요 0 | URL
스물도 마흔도 예순도 여든도, 또 백도 모두모두 좋아요~
 

미나리 죽이는 시멘트도랑

 


  군청과 도청에서는 해마다 흙도랑 없애고 시멘트도랑 늘린다. 시골 어르신들은 흙도랑이 시멘트도랑으로 바뀌어야 비로소 ‘농업발전’ 되는 듯 여긴다. 논둑을 몽땅 시멘트로 덮어 나락 아닌 다른 풀 아예 자라지도 못하게 하기를 바라는구나 싶기까지 하다.


  흙도랑일 적에는 도랑에서 미꾸라지 잡고 가재 잡으며 미나리를 꺾을 수 있다. 흙도랑일 적에는 개구리 살고 개똥벌레 살며 거미가 살 수 있다. 논에서 여러 목숨붙이 어우러져 살아갈 때하고, 어떠한 목숨붙이도 살아남지 못할 때하고, 나락맛이 같을 수 없다. 온통 시멘트로 둘러싸인 논배미에서 어떤 맛난 나락이 자랄 수 있을까. 빙 둘러 시멘트로 가둔 채 비료와 농약을 쳐대는 논자락에서 어떤 좋은 나락이 클 수 있을까.


  요즈음에도 논도랑에서 미나리 꺾으며 나물맛 즐기는 시골 어르신 있겠지. 그러나, 할매 할배 두 식구 먹을 미나리는 아주 조금이면 된다. 앞으로는 굳이 미나리까지 안 자실는지 모르고, 허리 굽은 판에 미나리까지 꺾으러 다니기 힘드실 수 있다. 이래저래 시골마을 곳곳 흙도랑을 군청과 도청에서 자꾸자꾸 시멘트도랑으로 바꾼다. 군청과 도청은 어마어마한 건설 예산을 들이고, 건설업자는 당신들 스스로 무슨 짓을 하는지 못 깨닫는 채, 시골 들판을 망가뜨린다.


  땅을 사고 싶다. 시골 논과 밭을 사고 싶다. 멧자락을 사고 싶다. 시골 숲과 골짜기를 사고 싶다. 그래서 시골 논밭과 숲과 골짜기 모두 푸른 숨결 그대로 흙내음과 흙맛 감도는 사랑스러운 터로 오래오래 이어갈 수 있도록 보살피고 싶다. 아침에 흙도랑에서 미나리 한 움큼 뜯어 밥상에 올리며 생각한다. 여섯 살 큰아이한테 “자, 이 풀은 미나리야.” “미나리?” “응, 미나리를 먹으면 미나리 풀내음 고루 입안에 퍼지지.” 4346.4.14.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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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3-04-15 11:29   좋아요 0 | URL
저희 동네에서도 지난해에 아주 오래되고 아름다운 회화나무랑, 오래된 벚나무들을 몽땅 뽑아내고(그 나무들은 이제 어디에 있을까요.)
흙화단도 최소한으로 줄여버리고 시멘트 길들로 다 바꿔 버렸어요.
오래 되어 푸르고 아름다운 나무들이 다 없어져 버리니..참 안타깝고 아쉽더라고요...
왜들 자꾸 그렇게 해야만 하는지...

파란놀 2013-04-15 14:38   좋아요 0 | URL
뽑은 나무들은... 다 땔감으로 판답니다...
한국사람은 나무를 너무 막 다루는데
이 슬픈 버릇이 어디에서 비롯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