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서 낮 세 시 오십 분 시외버스를 타고

고흥에 저녁 여덟 시 즈음 떨어진다.

 

부산서 시외버스를 탈 적에는 속이 아주 더부룩하더니,

벌교 거쳐 과역면 지날 무렵부터는

속이 확 풀린다.

시외버스에서도 바람맛 달라진 줄 느낀다.

 

읍내에서 내려 걸으며,

또 마을 어귀에 닿아

개구리 노랫소리를 듣고 집까지 걸으며,

비로소 내 숨결이 살아난다고 느낀다.

 

이 아름답고 푸른 시골로 돌아와서

잠을 잘 수 있다는 기쁨 한껏 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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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3-05-31 23:32   좋아요 0 | URL
집에 오시니 참 편안하시고 좋으시지요~? ^^
함께살기님의 귀가에서 저마저 참으로 편안하고 좋은 기쁨을
느낄 수 있는 듯 싶습니다. ^^
함께살기님! 좋은 밤 되세요.~*^^*

파란놀 2013-06-01 06:15   좋아요 0 | URL
오래도록 뻗었다가
새벽 여섯 시 되어야
겨우 눈 비비고 일어났어요 @.@
 

책삶

 


  책에 빛줄기 서려 책빛이다. 책빛을 느끼면서 책을 읽기에 책삶이다. 책삶을 헤아리면서 하루하루 누리기에 책사랑 된다. 사랑을 깨닫는 삶이 아름답다고 느껴 책마음 이어간다.


  책을 쓴 사람은 어떤 생각을 품었을까. 그동안 내 손을 거친 책들은 나한테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었을까. 내가 글을 쓰고 사진을 찍는 까닭을 나 스스로 아직 잘 모른다. 아니, 굳이 생각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내가 읽은 책들이 나한테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빛줄기를 비추었기에, 아름다움과 빛줄기를 받아먹으면서 저절로 글이 샘솟았고 시나브로 사진을 찍을 수 있다. 아마, 내가 쓴 글과 내가 찍은 사진도 누군가한테는 고운 책빛으로 스며들어 새로운 글과 사진이 태어나는 밑거름 될 수 있겠지.


  나는 책을 읽는다. 책을 읽기에 삶을 읽는다. 나는 글을 쓴다. 곧, 책을 쓴다. 글을 쓰기에, 곧 책을 쓰기에 삶을 쓴다. 내가 읽는 삶은 내가 사랑하는 삶이다. 내가 쓰는 삶은 내가 사랑하는 삶이다. 사랑하는 삶이 있어서, 읽고 쓴다. 사랑하는 삶을 좋아하는 하루이기에, 언제나 책과 글과 사진이 나란히 있으며, 이 곁에 옆지기와 아이들 예쁘게 어우러진다. 4346.5.31.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헌책방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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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쓰기
― 가까이에 있는 사진벗

 


  사진기가 있으면 어떠한 모습이든 스스로 바라는 대로 찍는다. 찍을 수 없는 모습은 없다고 느낀다. 찍을 마음이 있기에 찍는 사진이요, 찍을 마음이 없기에 찍지 못하는 사진이라고 느낀다.


  구름을 찍고 싶으면 스스로 구름을 찍으면 된다. 손수 구름을 찍으면서 사진기를 어떻게 다룰 때에 ‘내가 바라며 내가 좋아하는 모습’이 사진으로 태어나는가를 차근차근 익히면 된다. 도시에서나 시골에서나, 낮이나 밤이나, 모델이나 마을 아재나, 어느 모습이 되든 스스로 가장 좋아하면서 아끼고 누리는 삶을 사진으로 담으면 된다.


  무엇보다, 사진을 찍을 때에는 나한테 가장 가까이에 있는 모습부터 찍으면 된다. 이를테면, 몸이 아파서 드러누운 채 꼼짝을 못하는 사람이라면, 창문을 찍을 수 있고 방문을 찍을 수 있다. 창문으로 스미는 빛을 새벽과 아침과 낮과 저녁과 밤에 따라 가만히 살피면서 다 다른 빛살을 사진으로 찍을 수 있다. 저 방문 열고 누가 들어오는가를 기다리면서 사진으로 찍을 수 있다. 햇볕이 방으로 스며드는 무늬를 찬찬히 살피면서 사진으로 찍을 수 있다. 물잔을 찍거나 밥그릇을 찍을 수 있다. 밥을 다 비운 밥그릇을 찍을 수 있고, 밥그릇에 숟가락이나 젓가락을 얹은 다음 찍을 수 있다.


  다른 사람 꽁무니를 좇으면서 사진을 배우기도 한다지. 그러나, 다른 사람 꽁무니를 좇을 때에는 그저 꽁무니 좇기에서 그친다. 흉내나 시늉은 배움이라 할 수 없다. 말 그대로, 흉내는 흉내이고 시늉은 시늉이다. 아이들은 어른들 말투를 가만히 귀를 기울여 들으면서 저희 말을 익힌다고 하지만, 아이들은 어른들하고 똑같이 말하지는 않는다. 어른들이 읊는 말마디를 아이들 깜냥껏 요리 엮고 저리 엮으면서 새말을 일군다. 이리하여, 어른들은 아이들이 하는 말 가운데 깜짝깜짝 놀랄 만한 새말을 으레 듣곤 한다.


  누군가 어떤 모습을 찍을 때 뒤에서 물끄러미 바라본다면, ‘어라, 저런 데에서 저렇게 찍을 수도 있구나.’ 하고 느낄 수 있겠지. ‘이야, 이런 자리에서도 이렇게 삶을 즐기면서 사진을 찍는 사람도 있네.’ 하고 느낄 수도 있다. 곧, 다른 사람 사진을 바라볼 적에는 ‘다른 사람이 사진을 즐기는 삶’을 바라본다. ‘사진을 사랑하는 매무새’를 바라본다고 하겠다. 사진을 아끼고 좋아하며 즐기는 숨결을 가만히 지켜보면서, 나는 나대로 내 삶을 얼마나 아끼고 내 사진을 얼마나 좋아하며 내 사랑을 얼마나 예쁜 이야기로 빚는가 하는 대목을 돌아본다.


  사진을 찍자면 언제나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진벗부터 찾을 노릇이라고 느낀다. 내 곁에서 나하고 사진을 놓고 오순도순 즐거이 이야기꽃 피울 만한 벗님을 찾아야 한다고 느낀다. 내 가까이에 있는 사람이 다섯 살 어린이라 하든, 내 옆지기라 하든 모두 좋다. 내가 좋아하며 일구는 삶을 헤아리면서 찍은 사진을 내 가까이에 있는 사람한테 보여주면서 ‘어때? 어떤 이야기 담긴 사진 같아?’ 하고 묻는다. 서로 꾸미지 않고 덧바르지 않는 이야기를 나눈다. 이러면서 ‘내 사진’을 하나하나 일군다.


  꼭 사진 전문가라든지 사진학과 교수라든지 사진 평론가한테 보여주어야 하지 않다고 본다. 내 곁에 있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한테 보여주면서 가장 수수한 느낌을 나눌 때에 내 사진이 발돋움한다고 느낀다. 왜냐하면 ‘작가’이든 ‘즐김이’이든, 사진은 사진기를 손에 쥔 사람이 하루하루 누리는 삶이 어떤 이야기인가를 보여주는 빛줄기이니까.


  가까이에 있는 사진벗을 사진으로 찍자. 사진벗한테 내 사진을 보여주자. 서로 즐겁게 생각을 주고받자. 스스럼없이 이야기를 듣고, 거리낌없이 이야기를 들려주자. 작품이 아닌 삶을 씨앗 한 톨 심는 마음가짐 되어 사진기를 손에 쥐자. 4346.5.31.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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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아이 5. 2013.5.30.

 


  아침에 일어나서 춥다고 말하며 이불 뒤집어쓰고 그림책을 펼친다. 추우면 옷을 입지 그러니? 그러나 이불 돌돌 말면서 책을 읽어도 재미있지. 아침햇살 드리우는 방 문턱에 엎드려 네 이야기 종알종알 빛내면서 즐겁게 하루를 열자.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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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2078) 광란의 1 : 광란의 연주

 

광란의 연주도 끝났네 / 악사가 잠시 떠난 자리
《이문숙-한 발짝을 옮기는 동안》(창비,2009) 32쪽

 

  ‘연주(演奏)’는 악기를 타거나 다루는 일을 가리킵니다. 이 한자말은 한자말이라 느낄 수 있고, 누구나 흔히 쓰는 한국말로 여길 수 있습니다. 즐겁게 쓸 수 있으면 되고, 때로는 ‘켜다’나 ‘뜯다’나 ‘타다’나 ‘치다’나 ‘들려주다’나 ‘다루다’ 같은 말로 손볼 수 있습니다. ‘잠시(暫時)’는 ‘한동안’이나 ‘한때’나 ‘살짝’이나 손질할 만한 한자말이에요. 그러나, 이 한자말도 즐겁게 쓰고픈 분이라면 누구나 즐겁게 쓸 수 있어요. 그리고, 이러한 한자말을 즐겁게 손질하고픈 분들은 즐겁게 손질해서 쓰면 됩니다.


  ‘광란(狂亂)’은 “미친 듯이 어지럽게 날뜀”을 뜻합니다. “광란의 도가니”나 “광란의 축제”처럼 쓴다고 합니다. 아마 이렇게도 쓸 수 있고 저렇게도 쓸 수 있겠지요. 다만, 이 나라에 ‘광란’과 같은 한자말이 들어와서 쓰이지 않던 지난날을 곰곰이 돌아봅니다. 1800년대에는, 1700년대에는, 1500년대에는, 사람들이 어떤 말로 어떤 마음을 나타냈을까 하고 헤아려 봅니다.

 

 광란의 연주도
→ 미친 듯한 연주도
→ 미친 연주도
→ 미쳐 날뛰는 연주도
→ 날뛰는 연주도
 …

 

  말뜻을 살핀다면 “어지럽던 연주”나 “어수선하던 연주”나 “시끌벅적하던 연주”나 “북새통 같던 연주”로 다듬어도 잘 어울립니다. “시끄럽던 연주”나 “시끌시끌하던 연주”나 “귀청 찢는 듯한 연주”로 다듬을 수도 있어요. 어떤 모습을 어떤 이야기로 담아낼 때에 가장 알맞으며 즐거울까를 생각하면, 말길을 솔솔 틀 수 있습니다. 4346.5.31.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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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지럽던 연주도 끝났네 / 악사가 살짝 떠난 자리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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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개모모 2013-05-31 08:57   좋아요 0 | URL
잠시 말고 잠깐이라고 써도 될까요?ㅇ.ㅇ?

파란놀 2013-05-31 09:03   좋아요 0 | URL
'잠깐'도 '잠간'이라는 한자말이랍니다 ^^;;;

그러나, 어떤 말이든
스스로 쓰고프면 쓰면 될 뿐이에요~~

다만, 저는 이런 말을 안 쓸 뿐이지요~~

무지개모모 2013-05-31 09:17   좋아요 0 | URL
된소리는 함정이었군요-^^;

어쩔 땐 오기가 생겨요.
뭘 쓰려고 하면 다 한자말이라
어떻게 피해갈 수 있나 궁금해져서
네이버 사전을 자꾸 뒤적거리게 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