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의 린네 12
다카하시 루미코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13년 12월
평점 :
품절


 

만화책 즐겨읽기 299

 


즐겁게 놀고 일하는 삶
― 경계의 린네 12
 타카하시 루미코 글·그림
 서현아 옮김
 학산문화사 펴냄, 2013.12.25.


 

  바람이 잔잔하니 겨울이 포근합니다. 햇볕이 따사롭게 비추니 한겨울에도 숨통을 틉니다. 폭한 날씨를 누리는 아이들은 맨발로 마당으로 내려서며 놉니다. 옷차림도 가볍습니다. 전남 고흥은 워낙 따스한 고장이기도 하지만, 바람이 가라앉고 햇볕이 따끈따끈 내리쬐니 마치 봄날을 맞이하기라도 한 듯이 올망졸망 흙을 만지면서 놉니다.


  겨울 추위가 살짝 수그러드는 며칠은 더없이 반갑습니다. 겨울은 춥기에 겨울이요, 겨울날은 추위가 찾아들어 들도 숲도 멧골도 바다도 냇물도 곱게 쉽니다. 모두 조용히 쉬면서 새봄을 기다립니다. 겨우내 느긋하게 다리를 쉬고 팔을 쉬며 몸을 쉽니다. 마음을 쉬고 생각을 쉬면서 새로운 꿈을 키웁니다.


  저녁에 해가 기울면서 어둠이 찾아들어요. 어둠은 우리를 잠자리로 이끕니다. 조용하고 어두운 밤에 다 함께 이부자리에 드러누워 소근소근 속닥이다가 자장자장 노래를 부르다가 슬그머니 곯아떨어져요.


- “들리는 소문엔, 여기서 몇 년 전에 신인 아이돌이 데뷔 이벤트 중에 다이빙대에서 떨어져 죽었다는데.” (13쪽)
- “올바른 소원을 말하지 않으면, 소유주를 따라다니며 계속 피해를 입힌다고 해. 벗어나려면 새 주인에게 억지로 떠맡기는 수밖에.” ‘역시 나한테 떠넘긴 거구나.’ “그렇게 수많은 사람의 손을 거쳤지만, 누구의 소원도 들어준 적이 없어. 이건 그런 돌이지.” “올바른 소원을 말하면 되지. 그러면 그만이잖아?” (159쪽)


  두 아이를 왼쪽 오른쪽에 하나씩 누이고 잠자리에 들면, 이쪽에서 종알 저쪽에서 쫑알 수다를 떱니다. 아이들은 잠자리에 누워서도 놀 생각을 합니다. 아이들은 잠자리에 누워 저희끼리 노래를 부릅니다. 아이들 노래를 한참 듣고 나서 내 노래를 부릅니다. 그러면 아이들은 내 목소리를 따릅니다. 어버이 목소리를 귀를 기울여 들으면서 노랫말을 되새기고 노랫가락을 가다듬어요.


  아이들은 저희끼리 가위질도 잘 하고 삽질도 잘 합니다. 그런데, 둘레에서 어떤 어른이 참말 깊고 넓게 삽질을 하면 저희 삽질을 멈추고 물끄러미 쳐다봅니다. 아하 저렇게 하는구나 하는 눈빛입니다. 도마질을 할 적에 아이들은 옆에 달라붙어 구경합니다. 쌀을 씻을 적에, 빨래를 할 적에, 비질을 할 적에, 못질을 할 적에, 아이들은 옆에 가만히 붙어서 지켜봐요. 그래 그래 저렇게 하는구나 하는 눈망울입니다.


  마당에서 포근한 겨울바람을 누리는 아이들은 생각하겠지요. 그래 포근한 겨울바람은 이러한 결이로구나 하고. 쌩쌩 모질게 된바람 부는 날에는 또 이렇게 생각할 테지요. 아이고 겨울바람 된바람 되게 춥네 하고.

 


- “너무 성급했어, 로쿠몬! 모습을 드러내서 해결될 일이라면 진작 그렇게 했지!” (16쪽)
- “오보로, 0점이라니.” “내가 왜!” “넌 이름을 안 썼잖아.” “난 이름! 썼어요!” “이름만이라도 쓰면 5점.” “만세, 5점이다, 5점!” “훗, 이겼군.” (31쪽)


  삶이란 얼마나 재미난 하루일까요. 삶이란 얼마나 즐거운 웃음일까요. 날마다 새롭게 찾아오는 하루입니다. 언제나 빙그레 짓는 웃음입니다. 이야기가 자라고 노래가 흘러요. 이야기가 피어나고 노래가 감돌아요.


  타카하시 루미코 님 만화책 《경계의 린네》(학산문화사,2013) 열두째 권을 읽으며 생각합니다. 만화책 《경계의 린네》는 열두째 권에서도 살가운 이야기가 보드랍게 흐릅니다. 죽음을 맞이하고도 느긋하게 저승으로 가지 못하는 넋이 떠돌면서 누군가 저희를 건져내 주기를 바랍니다. 이승에서 못 다한 아쉬움을 풀 길을 기다립니다.


  어찌 하면 좋을까요. 어찌 하면 될까요. 죽음을 맞이한 뒤에도 느긋하지 못하다면, 죽음을 맞이하기 앞서, 이승에서 언제나 즐겁게 노래하는 삶일 때에 아름답지 않을까요. 언제나 아쉬움이나 안타까움 하나 없이 기쁘게 웃고 춤추는 삶이라면 사랑스럽지 않을까요.


- “쿠로스 6단, 이것은?” “재활용이군요. 같은 파친코 구슬을 몇 번씩 쓸 수 있어서 비용이 저렴하죠.” “과연 가난뱅이 린네의 흑묘로군. 하는 짓마다 궁상이야.” (91쪽)
- “최선을 다해! 그러고도 합격을 못하면, 그때는, 또 응시료 500엔을, 내 줄게.” “쿠로스 6단, 저것은?” “피눈물이죠.” (114쪽)

 


  부자가 된 다음에 놀 수 있지 않아요. 부자가 되어야 여행을 다닐 수 있지 않아요. 가난하기에 책을 못 읽지 않아요. 가난하기에 대학교를 못 가지 않아요.


  마음이 있을 때에 즐겁게 놀아요. 가위바위보만 하더라도 즐겁게 놀아요. 꽃 한 송이 바라보면서 즐겁게 놀지요. 냇물에 살그마니 손을 담그면서 즐겁게 놀 수 있습니다.


  먼먼 나라로 비행기를 타고 가야 여행이 아닙니다. 두 다리로 천천히 걸어서 뒷동산 올라가더라도 여행입니다. 마을 한 바퀴 천천히 걸어도 여행이에요. 아이와 손을 잡고 저잣거리 나들이를 다녀와도 여행입니다. 군내버스를 타도 여행이요, 자전거를 타고 면소재지 다녀오는 길도 여행입니다.


  삶은 노래이자 여행이며 놀이입니다. 일은 노래이고 여행이면서 놀이입니다. 즐겁게 누리기에 삶입니다. 즐겁게 맞이하기에 일입니다. 즐겁지 않으면 삶도 안 되고 일도 안 되어요. 즐겁기에 웃음꽃 피어나는 삶이 되고 웃음노래 흐르는 일이 됩니다.


- “로쿠도, 이거 먹어라. 선생님 애인이 직접 만든 거야.” “이게 다 해물장조림.” “밥도 주세요.” (152쪽)
- “나는 대체 뭐지? 아아, 그래도 물어 보기가 무서워!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인간의 소원을 들어주는 거야.” “네에, 그래서 어떤 소원을 들어줄 수 있는가로, 자기가 어떤 파워스톤인지 알아내려고, 자아를 찾는 여행이었군요.” “아아, 그래도 알기가 두려워.” (168쪽)


  사랑은 바로 오늘 이곳에서 이룹니다. 흰말 탄 님이 짠 하고 나타나야 하지 않습니다. 나 스스로 흰말 탄 사랑이가 되면 즐겁습니다. 꿈은 바로 오늘 이곳에서 펼칩니다. 먼먼 뒷날 엄청나게 이루어야 하지 않습니다. 나 스스로 날마다 아기자기하게 펼치면서 환하게 어깨동무하는 꿈이 되면 아름답습니다.


  나를 믿고 서로를 믿어요. 나를 아끼면서 서로를 아껴요. 나를 좋아하면서 서로를 좋아해요. 바로 오늘 이곳에서 스스럼없이 즐겁게 웃어요. 내 삶이 고스란히 이야기밭입니다. 내 사랑이 시나브로 빛물결입니다. 4347.1.2.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만화책 읽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한낮 군내버스

 


포근히 내리쬐는 겨울볕 받고
빈들마다 유채잎
오물조물 돋는다.

 

이쪽 전깃줄에 까마귀들 있고
저쪽 전봇대에 까치들 있으며
요 앞 풀숲에 참새 무리짓는다.

 

바람 일지 않으니
별꽃과 코딱지나물꽃 드문드문
고개 내민다.

 

졸랑졸랑
빨래터 물 흐르는 소리
마을 그득 감돈다.
빨래하는 사람 없고
물 긷는 사람 없지만
딱새와 멧비둘기 내려앉아
콕콕 물을 찍어 마신다.

 


군내버스 들어오겠지.

 


4347.1.2.나무.ㅎㄲㅅ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한글문화연대에서 하는 서울시 공공기관 언어순화 일을 거들려고

서울로 가는 길이다. 일은 1월 3일 낮부터 저녁까지 하는데

고흥에서는 그날 바로 가기가 힘드니

하루 먼저 길을 나서려고 한다.

 

오늘은 어디에서 묵으면 좋을까.

아무튼, 고흥에서는 첫 차를 타서 가도 많이 머니

다른 데로 나가기만 하면 어디에서든 가까우리라.

 

곁님과 아이들이

포근한 시골마을 보금자리에서

잘 지내리라 믿으며

즐겁게 다녀오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알아볼 사람은 알아볼 글쓰기

 


  모든 사람이 알아보도록 글을 쓰지 않는다. 내 글을 알아볼 사람만 알아보도록 글을 쓴다. 모든 사람이 알아차리도록 책을 쓰지 않는다. 내 책을 알아차릴 사람만 알아차리도록 책을 쓴다.


  마음이 있는 사람은 다 알아보기 마련이다. 사랑이 있는 사람은 누구나 알아차리기 마련이다. 마음이 있는 사람한테 들려줄 노래를 글로 쓴다. 사랑이 있는 사람과 나누고픈 웃음꽃을 책으로 쓴다.


  내가 어느 책 하나를 장만해서 읽는다고 할 적에는, 이 책을 쓴 사람 마음과 사랑을 함께 나눈다는 뜻이라고 느낀다. 내가 어느 글 하나를 찾아서 읽는다고 할 때에는, 이 글을 쓴 사람 넋과 숨결을 어깨동무한다는 뜻이로구나 싶다.


  마음으로 이야기를 나누는 곳에는 이야기꽃이 핀다. 마음이 없는 자리에는 이야기가 없고 지식과 정보만 춤추다가 말다툼이나 말꼬리잡기가 이어진다. 마음으로 이야기를 속삭이는 곳에는 이야기잔치가 열린다. 마음이 없는 곳에는 이야기도 꿈도 사랑도 없이 차갑고 메마른 겉치레가 흐른다.


  모든 사람한테 읽히려는 글이란 있을까. 모든 사람한테 읽힐 수 있는 글이 있을까. 이원수 님 동시도, 권정생 님 동화도, 마음이 없는 사람한테는 가슴으로 젖어들지 못하는 책이 될 뿐이다. 최명희 님 문학도, 박경리 님 문학도, 사랑이 없는 사람한테는 가슴으로 파고들지 못하는 책이 되고 만다. 4347.1.2.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삶과 글쓰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여기에 책이 있다

 


  여기에 책이 있는데 어디를 보니? 코앞에 있는 책은 왜 안 쳐다보고 자꾸 저 먼 데만 바라보니? 네 앞에 있는 책부터 보렴. 네 앞에 있는 책을 살뜰히 볼 수 있을 적에 비로소 저 먼 데에 있는 책을 알아볼 수 있어. 네 발밑에서 자라는 풀을 알고 느끼며 뜯어서 먹을 줄 알 때에, 비로소 밭을 가꾸어 푸성귀를 돌볼 수 있어. 밭을 가꾸어 푸성귀를 돌볼 때에 바야흐로 숲에서 자라는 모든 풀이 얼마나 상큼하고 푸르며 싱그러운가를 알 수 있어.


  책은 여기에 있어. 책은 바로 네 가슴에, 네 마음속에, 네 눈빛에, 네 온몸에 있어. 스스로 빛이 되어야 책을 읽지. 스스로 빛이 되지 않는데 어떻게 책을 읽겠니. 스스로 빛이 되지 못하면 어떤 책을 손에 쥐더라도 사랑과 꿈을 읽어내지 못해. 스스로 빛이 될 적에는 어떤 책을 손에 쥐어도 사랑과 꿈을 깨달으면서 맞아들이지.


  훌륭하다는 책을 내 손에 쥔다 한들 읽을 수 없어. 스스로 훌륭해야 비로소 훌륭한 책을 알아보면서 받아들여. 스스로 사랑스러워야 비로소 사랑스러운 책에서 흐르는 사랑빛을 알아채고는 받아먹어.


  온 사랑 담아서 쓴 책은 온 사랑으로 읽을 때에 어깨동무를 하지. 온 사랑 담아서 쓴 책을 줄거리훑기만 하거나 대학입시교재로 삼아서 들여다보면 무엇을 얻을까. 내가 바로 책이고, 풀 한 포기가 바로 책이요, 바람 한 줄기가 바로 책이야. 책은 바로 여기에 있어. 4347.1.2.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헌책방 언저리)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