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랑 놀자 57] 우수



  1980년대 첫무렵 즈음으로 떠오릅니다. 그무렵 어머니와 저잣거리로 나들이를 다닐 적에 저잣거리 길바닥에서 장사를 하는 할매는 으레 ‘우수’를 말씀했습니다. 더 얹어 주시면서 “이것 우수요.” 하셨어요. 우리 어머니도 “우수 없나요?” 하고 여쭈곤 했습니다. 요즈음은 어디에서도 ‘우수’라는 말을 듣지 못합니다. 아직 이 말을 가슴에 품고 지내는 분이 있으리라 생각하지만 좀처럼 들을 수 없습니다. 다만, 곧잘 ‘덤’이라는 말을 듣습니다. 그리고 웬만한 곳에서는 영어 ‘인센티브(incentive)’를 듣고, 한자말 ‘성과급(成果給)’을 듣습니다. 나라에서는 ‘인센티브 제도’라든지 ‘성과 제도’를 말합니다. 공공기관이든 회사이든 한국말 ‘우수’나 ‘덤’을 말하는 이는 없습니다. ‘선물’을 말하는 이도 없습니다. 대학교에서는 영어로 강의를 하고, 영어를 모르고서는 회사에 들어갈 수 없으니, 나날이 영어 잘 하는 사람은 늘어나는데, 한국에서 한국사람으로서 한국말을 슬기롭게 잘 하는 사람은 가뭇없이 사라집니다. 4347.8.16.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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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어떻게 찾을까? - 도서관에 가자 2
아카기 간코 글, 스가와라 게이코 그림, 고향옥 옮김 / 달리 / 2008년 12월
평점 :
품절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420



책, 도서관, 책방

― 책은 어떻게 찾을까?

 아카기 간코 글

 스가와라 게이코 그림

 고향옥 옮김

 달리 펴냄, 2008.12.24.



  오늘날은 도서관에서 책을 손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책방에서도 책을 수월하게 찾을 수 있습니다. 도서관이나 책방까지 가지 않고도 집에서 책을 거뜬히 찾을 수 있습니다. 목록을 만들어 인터넷에 띄우면 언제 어느 곳에 있더라도 책 하나 찾는 일이란 대수롭지 않습니다. 그런데, 도서관이나 책방에서는 목록으로 띄운 책이 아니면 찾아볼 수 없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도서관이나 책방에서 안 갖춘 책은 찾아볼 수 없어요.


  사람들이 만드는 모든 책이 도서관이나 책방에 가지 않습니다. 아니, 우리가 만드는 모든 책이 ‘도서관’과 ‘새책방’에 가지는 않습니다. 중앙정부에서 만들었으나 도서관에 안 들어가는 책이 있고, 도매상을 거쳐 팔려고 하지 않으면 못 들어가는 책이 있습니다. 그리고, 웬만한 도서관에서는 만화책을 다루지 않습니다. 그림책도 다루지 않습니다. 요즈음은 어린이책 도서관이 제법 많이 생겼는데, 인표어린이도서관이 나타나기 앞서까지 어린이책을 도서관에서 만나기란 아주 어려웠습니다. 도서관에서는 동화책조차 제대로 안 갖추었으니까요. 이는 오늘날에도 엇비슷해요. 동화책이나 그림책은 ‘아이만 보는 책’이라 여기면서 여느 도서관에서는 이 책들을 안 갖추려 하기 일쑤입니다.


  그러면, 여느 어른이 어린이도서관에 가야 할까요? 무엇보다 왜 동화책이나 그림책을 ‘모든 사람이 두루 즐기’도록 하는 책으로 느끼지 못할까요? 왜 만화책은 도서관에 안 갖추려 할까요?



.. 이 방법은, 0에서 9까지 열 개의 수를 가지고 이 세상의 모든 것을 나누는 방법이에요. 이 세상의 모든 것이 이 열 개 가운데 어딘가에 꼭 들어가야 합니다 ..  (16쪽)




  도서관에서는 ‘도서관 분류법’으로 책을 바라봅니다. 도서관에서는 ‘사서 눈길과 손길’로 책을 다룹니다. 분류법에 들어가기 어려운 책은 도서관에 들어가기도 어렵지만, 처음부터 분류법에 끼지 못하는 책이 있습니다. 사서가 받아들이지 않는 책이 있습니다.


  사서 몇 사람이 수십만이나 수백만에 이르는 책을 늘 그대로 건사하기란 어려울 수 있습니다. 책을 바라는 사람은 다 달라, 어떤 이는 책을 함부로 다룰 텐데, 도서관 바깥으로 책을 빌려가는 사람이 어떻게 다룰는지 지켜볼 수도 없습니다.


  도서관에서는 책마다 딱지나 스티커를 붙입니다. 어느 책은 겉장(표지) 하나에 온갖 품과 땀을 담아서 아름답게 여미었으나, 딱지와 도장과 바코드를 겉장 한복판에 떡하니 붙이면서 겉장 모양새를 송두리째 가리기도 합니다. 출판사에서는 애써 곱게 겉종이를 만들어 끼웠는데, 도서관에서는 겉종이를 뜯어서 버리곤 합니다.


  이웃나라 도서관은 어떻게 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나는 주한미군 도서관에서 책을 다루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주한미군 도서관에서는 책마다 얇고 속이 잘 비치는 비닐을 씌웁니다. 도서관 딱지나 바코드를 붙일 적에는, 책겉에 도서관에서 따로 씌운 비닐에 붙입니다. ‘책에 대고 바로 붙이’지 않습니다. 주한미군 도서관도 한국 도서관과 마찬가지로 책 안쪽과 책등에 도장을 신나게 찍기는 합니다. 그렇지만, 책 겉장을 다치게 하지 않아요. 주한미군 도서관에 있는 책들은 ‘책이 어떻게 생겼는가’를 잘 알아볼 수 있습니다.



.. 상상해 보세요. 의과대학 도서관과 건축대학 도서관이 책을 똑같이 분류할 수 있을까요? KDC 하나하나의 숫자가 무엇을 뜻하는지 외워 봐야 아무 소용없습니다. 다른 도서관에서는 분류 방법이 다르기 때문이지요 ..  (30쪽)





  아카기 간코 님이 글을 쓰고 스가와라 게이코 님이 그림을 그린 《책은 어떻게 찾을까?》(달리,2008)라는 그림책을 읽습니다. ‘도서관에 가자’라는 이름으로 세 권짜리 엮은 이야기꾸러미 가운데 하나입니다. 일본에서 어린이한테 도서관 나들이를 즐겁게 북돋우도록 빚은 그림책입니다. 첫째 권은 《도서관은 어떤 곳일까?》이고, 셋째 권은 《주제를 어떻게 정할까?》입니다. 둘째 권은 《책은 어떻게 찾을까?》입니다. 어린이가 도서관에 나들이를 할 적에 궁금해 할 세 가지를 잘 간추려서 보여준다고 할 만합니다. 멋진 얼거리입니다.


  그러고 보니, 그림책 《책은 어떻게 찾을까?》는 ‘도서관을 말하는 책’인데, 이 그림책은 한국 십진분류법 가운데 어디에 들어갈까 궁금합니다. 한국에서는 국립중앙도서관에 이 책이 없고, 국립어린이청소년도서관에 이 책이 있는데 “026(문헌정보학-일반 도서관)”에 있다고 합니다. 새책방에서는 이 책을 “국내도서-어린이-초등1∼2학년-그림책”에 넣습니다.


  따지고 보면, 아이들한테 이 책을 ‘문헌정보학’이라느니 ‘일반 도서관’이라느니 하고 갈라서 알려준다 한들 찾아보기 어려우리라 느낍니다. 그저 ‘그림책’으로 넣을 때가 ‘초등1∼2학년’으로 나눌 때가 어울릴 테지요.


  그런데 왜 ‘초등1∼2학년’으로 나눌까 하고 고개를 갸우뚱합니다. 모든 어린이가 초등학교에 다녀야 한다는 생각이기 때문일까요. ‘중등∼고등’이 아닌 ‘청소년’으로 나누어야 할 노릇이고, ‘어린이’도 나이에 맞게 나누어야 할 노릇일 텐데요.


  그나저나, 《책은 어떻게 찾을까?》는 판이 끊어졌습니다. 도서관이나 헌책방이 아니라면 만날 수 없습니다. 이 책을 일찌감치 장만한 도서관이 있으면 도서관에서 찾아볼 수 있을 테지만, 앞으로 도서관에서 이 책을 ‘대출실적’이 적거나 없다면서 치우려 한다면, 도서관에서도 만날 수 없는 책이 되고 맙니다.


  무슨 소리인가 하면, 우리는 도서관에 책을 찾으러 가지만, 도서관에서 ‘장만해서 건사했다가 빌려 읽는 사람이 없다고 여겨 몇 해 묵히다가 버리’면, 도서관에 가도 ‘책을 찾을 수 없다’는 뜻입니다. 빌려서 읽는 사람이 매우 드물다 하더라도 책을 알뜰히 건사하면서 지킬 수 있는 도서관이 될 수 있기를 빌어 마지 않습니다. 많이 낡거나 닳은 책을 새로운 책으로 바꾸는 도서관이 될 수 있기를 빕니다. 책이 있는 곳간이 되고, 책으로 삶을 밝히는 길을 여는 도서관이 되기를 빕니다. 4347.8.16.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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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방울 내려앉은 풀잎



  비가 오는 날은 온통 물바다가 된다. 마당도 풀밭도 꽃밭도 고샅도 온통 물바다이다. 빗물은 모든 곳을 촉촉하게 적신다. 비가 잦거나 길면 축축한 기운이 퍼진다. 비가 잦아들 무렵 마당에 내려서서 하늘을 올려다보다가 돌담에 돋은 풀을 문득 바라본다. 빗방울은 조그마한 풀잎에도 조그마한 물방울이 되어 내려앉는다. 조그마한 풀잎은 한여름을 지나면서 짙푸른 빛깔뿐 아니라 누렇거나 옅붉은 빛으로 바뀌기도 한다.


  시골에서 살기에 언제나 풀을 마주할는지 모르지만, 시골이라 하더라도 언제 어디에서나 풀을 마주하기는 쉽지 않다. 왜냐하면, 마을 이웃이 풀을 어떻게 헤아리느냐에 따라 사뭇 다르기 때문이다. 보이는 족족 뜯거나 뽑아야 마음이 풀리는 이웃이 있고, 풀이란 풀에는 죄 농약을 뿌려야 한다고 여기는 이웃이 있다. 오늘날에는 시골보다는 차라리 도시에서 풀을 보기가 더 수월할 수 있다. 도시사람은 길가에 풀이 돋건 말건 아랑곳하지 않을 뿐 아니라 쳐다보지 않으니, 뽑는다거나 농약을 뿌린다거나 하지 않을 테니까.


  나는 어릴 적에 빗방울놀이를 곧잘 했다. 비만 오면 풀잎에 빗방울이 내려앉기 마련이고, 비만 오면 풀잎 앞에 쪼그려앉아서 손가락으로 톡톡 퉁기며 놀았다. 하염없이 빗방울을 바라보곤 했다. 빗방울에 비치는 내 모습을 들여다보기도 했다. 빗방울이 어떻게 풀잎에 톡 붙어서 안 떨어지나 궁금하게 여겼고, 빗방울이 또르르 구르는 모습을 쳐다보면서 깔깔대며 웃었다. 두 아이와 살아가는 어른이 되어도 빗방울이 내려앉은 풀잎을 느끼면, 지나치지 못하고 가만히 들여다본다. 4347.8.16.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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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미



나무가 뿌리를 내려

우람하게 쑥쑥 자라서

굼벵이가 땅밑에서 쉬고

매미가 나뭇줄기 타고 올라

여름을 싱그러이 울린다.



4347.8.12.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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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빠지도록 글을 손질한 뒤



  지난 엿새 동안 그야말로 눈이 빠지도록 글을 손질했다. 지난 스무 해 동안 쓴 글 가운데 ‘한자말을 한국말로 번역하기’에 맞추어 쓴 1600꼭지쯤 되는 글을 샅샅이 살펴서 301꼭지를 추린다. 스무 해 동안 쓴 글을 엿새 만에 되읽자니 엄청나게 마음을 모아야 했다. 그만큼 집에서는 하루에 두 차례 가까스로 아이들한테 밥을 차려 주고 모든 하루를 이 일에 바쳤다.

  한국말사전 하나를 새로 빚는 길이다. 새로운 한국말사전에 깃들 올림말을 갈무리하는 일은 아직 아니지만, 그동안 한국에서 태어난 한국말사전이 어떤 모습인가를 곰곰이 돌아본 이야기라고 할 만하다. 먼저 한국에서 태어난 온갖 한국말사전을 찬찬히 살핀 뒤, 이 사전마다 알차거나 아름다운 대목은 받아들이거나 받아먹되, 안타깝거나 슬픈 대목은 가다듬거나 손질하거나 북돋아서 새로운 길을 열어야 한다고 느낀다.

  개화기 무렵부터 태어난 한국말사전을 돌아보면 한국말사전이 아니라 ‘한자말’사전이라고 할 만하다. 그만큼 아직 학자들 생각이 얕다. 학자들 스스로 생각을 가꾸거나 북돋우지 못했다.

  한국말이 한국말이 되도록 마음을 기울이는 일은 학자가 할 수 있을까? 학자도 해야지. 그러나, 학자에 앞서 여느 사람들, 바로 나와 내 이웃과 수수한 모든 사람들이 할 일이라고 본다. 지난 엿새 동안 눈은 아주 아팠고, 등허리뿐 아니라 팔다리까지 결렸다. 스무 해 남짓 글을 쓰며 사는 동안 이렇게 온몸이 아픈 적이 없다. 그러나 새벽마다 다시 몸을 털고 일어났으며, 오늘 비로소 모든 글을 갈무리해서 책 하나로 태어날 수 있는 꾸러미를 엮는다. 스무 해 앞서 ‘한자말 1000가지를 뽑아서 이 낱말이라도 하루 빨리 털어내자’고 다짐했는데, 1000가지를 못 하고 300꼭지를 하니 살짝 서운하다. 그러나, 300꼭지라도 즐거운 이야기로 내 이웃들이 맞아들여 주기를 꿈꾼다. 나중에, 어느 만큼 지나고 나서, 새로운 한국말사전을 곱게 선보인 뒤에, ‘한자말을 한국말로 번역하기 사전’을 내놓을 수 있겠지. 다시금 기지개를 켜자. 4347.8.15.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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