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글 읽기

2014.9.8. 큰아이―그림과 글



  글순이요 그림순이인 터라, 사름벼리는 글만 쓰고 싶지 않다. 그림을 먼저 그린 뒤에 글을 쓰고 싶다. 그림을 그린 뒤에도 글을 살짝 곁들인다. 어머니와 아버지와 동생한테 틈틈이 쪽글을 써서 선물이라며 건넨다. 차근차근 한 낱말씩 또박또박 적는다. 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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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밭 위 별 아래
타니카와 후미코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14년 7월
평점 :
품절





만화책 즐겨읽기 378



나도 여기 있는데

― 풀밭 위 별 아래

 타니카와 후미코 글·그림

 서수진 옮김

 대원씨아이, 2014.8.15.



  가을볕이 내리쬐는 구월 아침에 마당을 빗자루로 씁니다. 두 아이는 아침밥을 먹고 나서 마당에 놓은 동그란 고무대야에 물을 받아서 놉니다. 처음에는 물총놀이를 하고, 이윽고 물쏟기 놀이를 하다가, 어느새 옷에 물을 부어 적시는 놀이를 합니다.


  마당에 아이들이 놀면서 드나들라고 놓은 천막 바닥에까지 물이 고입니다. 부랴부랴 천막을 치웁니다. 깔개와 천막을 말리다가, 이 물로 마당을 쓸자고 생각합니다. 아침에는 마른비질을 했고, 낮에는 물비질을 합니다.


  마당에 꽤 오랫동안 풀포기를 쌓은 채 지냈습니다. 커다란 고무통도 마당에 그대로 놓았지요. 평상 밑에는 풀잎과 나뭇잎이 삭으면서 흙으로 바뀌었고, 웃밭에서 흘러내린 흙까지 고여서 꽤 두꺼운 ‘새 흙땅’이 되었어요.


  빗자루와 쓰레받기로 흙을 긁습니다. 흙을 긁을 때마다 지렁이가 꼬물꼬물 나옵니다. 지렁이는 마당 가장자리 꽃밭으로 던집니다. 1센티미터나 2센티미터쯤 될까 싶은 흙땅에서 새끼를 낳으면서 지내는 지렁이는 그곳이 좋았을까요. 깊은 흙이 아니더라도 지렁이한테는 포근한 보금자리였을까요.



- “하지만 지금 이대로도 좋잖아? 난 요시하루가 좋아. 좋아하는 사람과 이렇게 만나고, 좋아하는 일을 열심히 하고. 그걸로 충분하잖아. 즐겁고 충실하고, 나 정말 만족스러워.” (12쪽)

- “엄마랑 아빠는 걱정하면서도 언니랑 같이 있는 게 엄청 좋은가 봐. 옛날부터 우리 집은 언니 중심이었거든.” “헤에.” “아침에도 갑자기 언니를 위해서라며 밥이랑 된장국을.” “뭐 어때. 맛있겠네.” “그런 게 아니라.” (27쪽)




  아이들이 놀면서 흘린 물로 마당을 쓸다가, 물을 더 받고 뿌려서 마당을 신나게 씁니다. 흙물을 꽃밭으로 던지면서 쓸고 보니 등허리가 결립니다. 아이들은 몇 시간째 물놀이를 했으니 슬슬 춥다는 말이 나옵니다.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지켜보면 늘 이렇습니다. 아이들은 스스로 ‘덥다’거나 ‘춥다’고 느낄 때까지 놉니다. 어른이 느끼기에 덥거나 추워도 아이들 스스로 아직 안 덥거나 안 추우면 더 놀아야 할 때입니다. 그러니, 이럴 때에는 물끄러미 지켜볼밖에 없습니다.


  다만, 집이 아닌 바깥에서 놀았다면 이야기가 달라요. 집에서는 곧바로 씻겨서 옷을 갈이입힐 수 있습니다. 아이들이 놀다가 지치면 땀을 씻고 옷을 갈아입힌 뒤 샛밥을 주고는 자리에 눕힐 수 있어요. 바깥에서는 이렇게 하기 힘들기에, 아이들이 한창 잘 논다 싶을 무렵에 놀이를 끊어야 합니다.


  나는 속으로 생각합니다. 그래, 아버지도 마당을 치우느라 허리가 아팠어. 너희들이 그만 논다고 하니 아버지도 고맙구나. 이제 들어가서 쉬자.



- ‘언니는 어릴 적 몸이 약해서 엄마도 아빠도 늘 언니에게 붙어 있었다. 하얗고 작은 꽃 같아서, 누구나 언니를 지켜 주고 싶어 했다. 언니가 울지 않기를, 언니가 조금이라도 행복해지기를 바라면서. 나도 여기 있는데.’ (28쪽)

- “네가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건 나는! 나는 아사코를 계속 좋아했어! 처음 만났을 때부터 계속! 나한텐 오직 너뿐이야. 소중해서 견딜 수 없는데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나한테 사과해. 내 사랑에 사과해!” (50쪽)




  아이들이 샛밥을 먹는 사이에 빨래를 합니다. 물놀이를 하면서 적신 옷이지만, 물놀이도 하고 마당을 한창 뒹굴었으니 비누를 묻혀서 복복 비빕니다. 마지막으로 헹군 뒤 물기를 쪽쪽 짜고 탁탁 털면서 허리를 폅니다. 아이고 고되라, 그렇지만 개운해라.


  마당을 쓸면서 매미 주검을 보았습니다. 매미 주검은 머리와 몸통이 없이 몸 껍데기랑 날개만 있었습니다. 개미가 모두 파먹었나 봐요. 개미는 주검을 무척 알뜰히 먹는데, 왜 몸 껍데기랑 날개를 남겼을까요. 아니, 먼저 가장 맛난 데를 갉아서 먹은 뒤, 몸 껍데기랑 날개는 맨 마지막에 먹을 생각이었을는지 모릅니다.


  잠자리가 날면서 맥문동 잎사귀에 앉습니다. 풀개구리 한 마리가 후박나무 잎사귀에 달라붙어서 쉽니다. 저 아이는 언제 저기까지 올라갔을까요. 풀개구리가 풀숲뿐 아니라 나무를 타고 올라가서 먹이를 찾고 쉬기도 하는 줄 얼마나 많은 사람이 알까요. 개구리라면 으레 논가나 못가에서만 볼 수 있다고 여기리라 느낍니다.


  부전나비가 한 마리 부추꽃에 앉습니다. 범나비가 팔랑거리면서 부추꽃밭에서 춤을 춥니다. 한창 비질을 하다가 하염없이 범나비를 바라봅니다. 범나비는 언제나 눈길을 사로잡습니다.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 범나비가 팔랑거리며 지나가면 으레 그쪽으로 고개를 돌립니다. 범나비가 내 눈에서 벗어날 때까지 한참 쳐다봅니다.



- ‘하느님. 언니가 행복해지기를. 슬픈 일도 괴로운 일도 언니의 꿈에 나타나지 않기를, 언니의 소중한 사람이 언니를 웃게 해 줄 수 있기를.’ (64∼65쪽)

- “미안해요. 지금껏 요모기다 씨가 살아온 인생까지 전부, 전부 합쳐서 당신을 사랑해요. 그러니까 함께 있어 줘요.” (106∼197쪽)




  타니카와 후미코 님이 빚은 만화책 《풀밭 위 별 아래》(대원씨아이,2014)는 몹시 포근하면서 보드랍습니다. 가시내와 사내 사이에서 벌어지는 애틋한 사랑이 흐르는 만화인데, 말마디 하나와 그림 하나가 모두 살갑습니다. 무엇보다 ‘사랑만화’에서 ‘사랑이란 무엇인가’ 하는 대목을 즐겁게 읽을 수 있습니다. 얽매이거나 붙잡는 사랑이 아닌, 누군가한테 사로잡히거나 끄달리는 사랑이 아닌, 스스로 내 삶을 사랑하면서 내 곁에서 함께 웃고 노래할 님을 찾는 사랑을 반갑게 읽을 수 있습니다.



- ‘정말로 나 같은 건 수많은 학생들 중 한 명이구나. 그치만 난 ‘거기’가 아니야.’ (120쪽)

- “좋아하는 사람이 자신을 좋아해 주는 건 굉장한 일이에요. 기적 같은 거죠. 함께 산다는 건, 좋은 일도 나쁜 일도 전부 포함해서 함께 헤쳐 나가기로 결심했기 때문이잖아요? 정말 굉장한 일인데, 그렇게 아무래도 상관없는 것처럼 말하지 말아요.” (142쪽)



  나도 여기 있습니다. 아니, 나는 여기 있습니다. 언니와 나를 견줄 일이란 없습니다. 동생과 나를 견줄 까닭이란 없습니다. 동무나 이웃하고 나를 견주어야 하지 않습니다. 나 말고 다른 사람이 한몸에 사랑받는다고 느끼나요? 그러면, 내가 뭇사람한테서 사랑받고 내 동생이나 언니는 눈길 한 번 못 받는다면 어떠할까요? 


  나는 오직 나일 뿐입니다. 내가 가장 사랑할 사람은 바로 나입니다. 나는 나보다 남을 더 사랑하거나 덜 사랑할 수 없습니다. 그저 티없이 내 모습을 바라보면서 그예 가없이 내 삶을 사랑할 뿐입니다.


  내가 나를 사랑하기에, 누군가 나를 그리면서 따사로운 마음을 보냅니다. 내가 나를 사랑하기에, 나처럼 누군가 이녁 스스로를 사랑하는 사람을 알아봅니다. 서로서로 마음이 맞는 까닭은 서로서로 스스로를 참다이 아낄 줄 알고, 스스로를 참다이 아낄 줄 알기에, 서로를 슬기롭게 어루만지면서 착하게 보살필 수 있기 때문입니다.




- “나같이 아무것도 볼 것 없는 시시한 아이는, 이걸 돌려주면 선생님과 연결점이 사라져 버릴 것만 같았어요. 지켜보기만 해도 좋았어요. 수업 시간에 얼굴을 보는 것만으로도. 하지만 졸업하면 그것조차 불가능하다는 걸 깨닫고, 3년 동안 첫 수업 시간부터 계속 지켜봤어요.” (148∼149쪽)



  시시한 아이란 없습니다. 멋진 아이란 없습니다. 보잘것없는 어른이란 없습니다. 훌륭한 어른이란 없습니다. 모두 그대로입니다. 모두 사랑입니다. 모두 따사로운 숨결이고, 모두 싱그러운 바람입니다.


  사랑을 노래하는 만화책에 붙인 이름이 “풀밭 위 별 아래”라니, 참으로 잘 어울립니다. 풀밭과 별 사이에 사랑이 있습니다. 풀밭과 별 사이에 사람이 있습니다. 풀밭과 별 사이에 삶이 있습니다. 4347.9.11.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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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애(厚愛) 2014-09-11 15: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석은 잘 보내셨는지요?
추석인사가 늦었습니다.^^;;

이 만화 재밌어 보입니다.^^

파란놀 2014-09-11 17:07   좋아요 0 | URL
이분이 그린 다른 만화도 여러모로 재미있습니다.
오랫동안 활동한 작가라서
절판된 숨은 진주도 많지요~

요즈음 이분 작품이 여러 권 번역되어
무척 반갑게 모두 장만해서 읽었어요~

한가위 지난 구월빛 즐겁게 누리셔요~~~ ^^
 


  손으로 써도 시이고, 발로 써도 시입니다. 입에 붓을 물고 써도 시이고, 컴퓨터 글판을 두들겨서 써도 시입니다. 어떻게 쓰든 대수롭지 않습니다. 책상맡에 반듯하게 앉아서 써도 시이며, 졸려서 모로 누운 채 써도 시입니다. 맑은 넋을 기울여 써도 시이고, 졸음이 쏟아져서 몇 줄 쓰다가 잠들어도 시입니다. 밥을 짓거나 빨래를 하다가 떠올라서 몇 줄 끄적여도 시입니다. 아이와 놀다가 써도 시입니다. 잠든 아이를 무릎에 살며시 누인 뒤 적바림해도 시입니다. 버스나 전철에서 흔들리며 써도 시입니다. 시를 쓸 적에는 어떻게 쓰든 대단하지 않습니다. 그저 우리가 함께 나눌 이야기를 노래로 빚어서 담을 수 있으면 됩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하고 아끼면서 어깨동무를 할 적에 즐겁게 부를 노래를 글로 엮으면 됩니다. 남호섭 님은 1995년에 《타임 캡슐 속의 필통》을 선보이면서 ‘종이에 쓴 시’가 아닌 ‘컴퓨터로 쓴 시’라고 밝힙니다. 왜 이런 글쓰기를 밝혀야 할까요? 바야흐로 새로운 문명이 찾아왔기 때문일까요? 문명 사회가 되었어도 사람들은 몸에 아기를 담아 몸으로 아기를 낳습니다. 컴퓨터로 글을 쓰더라도 사람들은 햇볕을 쬐고 바람을 마시며 물을 먹습니다. 인터넷과 손전화가 춤을 추더라도 사람들은 눈빛을 마주하면서 웃고 떠들면서 하루를 누립니다. 시에 담을 이야기는 바로 우리 삶입니다. 우리는 삶을 즐기고 노래하는 이야기를 시로 담으면 될 뿐입니다. 4347.9.11.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한 줄 책읽기)


1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타임 캡슐 속의 필통
남호섭 지음 / 창비 / 1995년 9월
9,000원 → 8,100원(10%할인) / 마일리지 450원(5% 적립)
2014년 09월 11일에 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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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쓰는 김훈, 인간 전두환



  소설쓰는 김훈이기 앞서 신문기자 김훈일 적에 ‘인간 전두환 찬양’과 ‘대통령 전두환 찬양’을 한 해 동안 줄곧 써서 신문에 실었다고 하는 이야기를 오늘 처음 듣는다. 소설쓰는 김훈 님은 이러한 이야기를 열 몇 해 앞서 스스로 밝혔다. 여러 가지 이야기를 찾아보니, 소설쓰는 김훈 님은 1980년 언저리에 이녁이 쓴 글을 놓고 ‘딱히 잘못했다’고 느끼지 않는 듯하다. 그저 이녁이 걸어온 ‘글쟁이 한길’ 가운데 ‘그런 일도 있었다’ 하고 말하는구나 싶다.


  두 아이와 곁님이 먹을 아침을 차리다가, 살짝 밥짓기를 멈춘다. 전두환을 높이 우러르는 글을 쓴 일은 무엇인가? 잘못인가? 박근혜나 이명박을 높이 우러르는 글을 쓰면 무엇인가? 박정희를 높이 우러르는 글을 쓰면 무엇인가?


  소설쓰는 김훈 님은 이녁이 한 일을 스스럼없이 밝힌다. 떳떳하다거나 당차다고는 느끼지 않는다. 그냥 스스럼없을 뿐이다. 이녁이 바라보는 ‘여성’이나 ‘조선일보’나 ‘인종 차별’도 그저 이녁이 바라보는 눈길이요 생각일 뿐이다.


  다만, 나는 한 가지를 느낀다. 김훈이라고 하는 사람은 그저 ‘스스로 좋아하는 대로 살면서 글을 쓸’ 뿐이다. 그런데, 스스로 좋아하는 대로 살면서 글을 쓰다 보니, 때로는 지겹기도 하고 따분하기도 하며 힘들기도 하다. ‘좋아함’만 따르거나 좇기 때문이다. 얼마나 지겨울까? 밥벌이로 글을 쓰기도 지겨웠겠지만, 군사독재정권이 서슬퍼렇던 때에 전두환을 높이 우러르는 글을 쓰기도 얼마나 지겨웠을까? 이런 글을 더 쓰지 않는다면 ‘김훈이라는 사람이 스스로 생각을 고쳐먹었’기 때문에 더 안 쓴다고 느끼지 않는다. 그저 지겨우니까 안 쓸 뿐이다. 박정희를 우러르는 글을 안 쓴다고 할 적에도 그저 ‘쓰기 지겨우’니 안 쓸 뿐이리라. ‘인종차별’ 이야기를 글로 안 쓰는 까닭도, 굳이 그런 이야기를 글로 쓰기 지겨울 뿐이리라.


  전두환은 이녁이 어떤 짓을 했는지 스스로 모른다. 전두환은 이녁이 어떤 잘못을 저질렀는지 스스로 모른다. 아니, 전두환은 스스로 ‘잘못했다’는 생각조차 없다. 그러니 벌건 낮에도 술에 절어 주머니에 한푼 없다면서 거리낌없이 고개를 뻣뻣이 들고 산다.


  다시 말하자면, 소설쓰는 김훈이라는 사람이나 ‘인간 전두환’이라는 사람은 모두, 스스로 거듭나거나 발돋움할 마음이 없구나 싶다. 스스로 새롭게 눈을 뜨거나, 스스로 아름답게 삶을 꽃피우려는 마음이 없구나 싶다. 소설쓰는 김훈이라는 분한테 ‘전두환 찬양 기사를 쓴 지난날 이야기’가 이녁한테는 ‘새로운 글감’일 뿐일 테니, 어느 모로는 그악스럽고, 어느 모로는 불쌍하며, 어느 모로는 그냥 고개를 끄덕인다. 그렇구나. 그렇게 글을 쓰면서 스스로 지겨운 삶을 되풀이하는구나.


  다시 밥을 지어야겠다. 아침 열 시가 넘어간다. 4347.9.11.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사람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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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자말 ‘존재’가 어지럽히는 말과 삶

 (186) 존재 186 : 너의 존재


마루카미 교수님은 자신의 손자와 그 방계 가계에 대해 조사하던 중, 우연히 여기 재학중인 너의 존재를 알았어

《이와아키 히토시/서현아 옮김-칠석의 나라 1》(학산문화사,2014) 77쪽


 너의 존재를 알았어

→ 너를 알았어

→ 네가 있는 줄 알았어

→ 너라는 사람을 알았어

 …



  이 보기글에서는 ‘존재’를 다듬어야 하는데, 이에 앞서 ‘너의’도 말썽입니다. ‘너의’는 한국말이 아닙니다. 한국말은 ‘네’입니다. 이 자리에서는 ‘너라는’으로 적을 만합니다. 다만, “너의 존재”를 “너라는 존재”로 손질해도 ‘존재’가 걸려요. ‘-의’가 아닌 ‘-라는’으로 토씨를 넣고 싶다면 “너라는 사람”으로 더 손질합니다.


  글흐름을 살피면, ‘네가 이 학교에 다니는 줄’ 알았다고 하는 만큼, “네가 있는 줄”로 손질할 수 있어요. 이도 저도 번거롭다면 단출하게 “너를 알았어”로 손질하면 됩니다. 4347.9.11.나무.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마루카미 교수님은 이녁 손자와 이웃 집안을 살피다가, 뜻밖에 여기 다니는 너를 알았어


“자신(自身)의 손자”는 “이녁 손자”로 다듬고, “그 방계(傍系) 가계(家系)에 대(對)해”는 “이웃 집안을”이나 “이웃 집안 뿌리를”로 다듬습니다. “조사(調査)하던 중(中)”은 “살피다가”나 “알아보다가”로 손질하고, ‘우연(偶然)히’는 ‘뜻밖에’나 ‘문득’으로 손질합니다. “여기 재학중(在學中)인”은 “여기 다니는”이나 “이 학교를 다니는”으로 손봅니다.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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