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나무 양철북 청소년문학 13
카롤린 필립스 지음, 전은경 옮김 / 양철북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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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 하나 53 ― “돈이야 벌 수 있지만, 네 마음은 늘 ……”
 : 카롤린 필립스, 《눈물나무》


- 책이름 : 눈물나무
- 글 : 카롤린 필립스
- 옮긴이 : 전은경
- 펴낸곳 : 양철북(2008.5.26.)
- 책값 : 9000원


 (1) 무엇을 먹으면서 살고 있나


 석유값이 오르기 무섭게 나라안 기름값이 오릅니다. 한 번 올라갔던 기름값은 두 번 다시 내려가지 않습니다. 이와 맞물려 온갖 물건값이 오릅니다. 공공요금도 오르고 책값도 오릅니다. 찻삯이 오르며 전기삯 물삯 집삯 모두 오릅니다. 그런데 한 가지, 곡식값은 좀처럼 오르지 않습니다. 우리 나라 ‘곡식자급율’을 생각해 본다면, 모자라고도 한참 모자라서 하늘로 치솟을 법도 합니다만, 놀랍게도 곡식값은 오를 생각을 않습니다.

 농약과 비료에 찌들지 않은 깨끗한 곡식을 바라는 사람들 손길이 늘어나는 흐름을 살핀다면, 가난한 사람들은 손가락이나 쪽쪽 빨아야 하는 노릇입니다. 그렇지만 곡식값은 오르기는커녕, 저잣거리와 할인매장에서는 떨이로 다루기도 하며 아주 싼 값으로 팔고 있습니다. 배추 한 포기에 천 원이나 천오백 원이면 삽니다. 굵은 무 하나도 비싸야 이천 원이지, 천 원에 살 때도 있습니다. 얼갈이 한 아름에 천 원이나 천오백 원입니다. 애호박 하나에 천 원 하는 일은 드물고 둘에 천 원을 하더니, 곳에 따라서는 서넛에 천 원만 받는 가게도 있습니다. 농사짓는 분들은 자기 땅에서 거둔 곡식과 푸성귀를 얼마에 팔고 있으신지. 아니, 얼마나 받고 당신들 피땀을 넘겨주고 있으신지.


.. 여기 티후아나에서 눈에 띄지 않고 국경을 넘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작은 구름만 빼고는. 구름은 국경경찰의 손이 미치지 않는 높은 곳에서 미국 영토로 날아갈 수 있었고, 바람의 방향이 바뀌면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다시 멕시코로 돌아왔다 …… 미겔의 아이들이 담장 건너편에서 축구공을 가지고 놀고 있었다. “후안, 공 이리로 던져 보렴!” 공이 담장 위로 높이 날아서 루카의 발 앞에 떨어졌다. 루카는 공을 건너편으로 차서 돌려보냈다. 아이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공이 이편에서 저편으로 오가는 모습을 국경경찰이 지켜보았다. ‘사람이 공이라면 좋겠다.’ 루카는 생각에 잠겼다. 아니면 구름이거나 비둘기라서 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  (170, 182쪽)


 오이를 먹고 열무를 먹고 가지를 먹고 호박을 먹고 버섯을 먹고 순무를 먹고 양파를 먹고 감자를 먹습니다만, 제 손으로 기르지는 못하고 저잣거리에서 사서 먹습니다. 우리 식구 형편으로는 천 원에 오이 넷도 만만치 않은 씀씀이라고 할 수 있으나, 농사꾼들은 이렇게 팔아서는 먹고살 수 없습니다. 굶어야지요. 무너지거나.

 그러니까, 시골에서 닭을 치고 돼지를 치고 소를 치는 분들은 사료값을 한푼이라도 줄이려고 항생제와 성장촉진제를 잔뜩 먹입니다. 하루라도 사료를 덜 먹여야 벌이를 맞출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우리 밥상에는 철을 잊은 푸성귀와 열매가 오르고 있는데, 우리들은 철없는 푸성귀와 열매를 얼마 되지 않는 돈으로 사서 먹으면서 아무것도 못 느끼고 있습니다. 언제까지 이렇게 살 수 있는지, 언제까지 이렇게 해도 되는지, 언제까지 시골살림이 버티어 줄는지, 언제까지 우리 땅을 더럽히면서 깨끗하게 돌려놓지 않아도 되는지 헤아리지 못합니다.

 제철을 잊은 곡식과 열매를 먹으면서, 제철 곡식과 열매 맛을 잊습니다. 이제는 곡식맛과 열매맛이 아니라 ‘곡식 이름과 열매 이름’만 배속에 넣고 머리로는 ‘무얼 먹었다’고 생각하는 셈입니다. 땅과 햇볕과 물과 바람 기운을 머금은 곡식과 열매가 아닌, ‘얼마얼마짜리 곡식과 열매’를 먹었다고 받아들입니다. 냉장고에 넣어 차게 한 수박을 먹으면서도, 아직 수박이 날 철이 아님을 생각하지 못합니다. 아니, 않습니다. 수박철도 아닌데 수박을 먹을 수 있어서 ‘세상 좋아진’ 줄 잘못 알고 있기도 하지만, 수박철이 언제인지도 까맣게 잊습니다. 두 손과 온몸으로 땅에 발디디지 않고 살게 되면서, 땅에서 일어나는 일을 잊습니다. 땅을 잊으니 하늘에서 일어나는 일을 잊습니다. 하늘을 잊으니 물이 어떻게 아파하는지, 바람이 어떻게 끙끙거리는지 느끼지 못합니다.


.. 루카가 (멕시코에서 살던) 마을 학교에서 2학년에 다니던 일곱 살 때의 어느 날이었다. 고국 멕시코를 자랑스러워해야 한다는 것과, 국가가 국민에게 일자리를 주고 부양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교과서에서 막 배우던 그 무럽, 저녁에 집에 돌아온 아버지가 농장에서 해고당했다고 말했다 ..  (46쪽)


 꽤 예전에 한치라는 물고기를 거의 모두 일본으로 내다 팔았다고 합니다. 요즈음도 일본으로 내다 팔 만큼 될는지 모릅니다만, 앞으로는 부피가 차츰 줄어서 나라안에서 먹기에도 벅차리라 봅니다. 아직까지 울릉도 앞바다에서 오징어를 잡는다지만, 언제까지 바다가 깨끗하게 남아 있을까요.

 꽃게 값이, 참게 값이 엄청나게 비싸게 된 까닭은 무엇인가요. 바지락칼국수나 조개구이를 돈 얼마 치르면 어디에서나 사먹을 수 있다지만, 조개가 자랄 갯벌은 이 땅에 얼마나 남아 있습니까. 논밭을 만든다며 메웠다가는 공장과 아파트로 돌리고, 수 만 마리 철새가 날아드는 아름다운 갯벌이었음에도 마구 메꾸면서 공항을 짓더니, 이제는 그 갯벌터에 수십만 채에 이르는 아파트를 올려세우고 대학교까지 옮겨심고 있습니다. 소래포구도 옛말이지, 이제는 소래아파트단지입니다.

 저는 보리술을 즐겨마시고 있습니다만, 한국땅에서 자라는 보리가 얼마 없을 텐데, 또 있다 한들 한국사람이 마시는 보리술을 댈 만큼 보리가 있지도 않을 텐데, 하는 걱정을 떨칠 수 없습니다.

 열 해쯤 앞서, 저로서는 처음으로 ‘베트남에서 건너온 쭈꾸미’를 보았습니다. 훨씬 앞서부터 베트남에서 들여왔을지 모릅니다. 아무래도 한국땅에서 잡아들일 쭈꾸미로는 한국사람들 배를 채울 수 없었을 터이며, 하루가 다르게 더러워지는 한국 땅과 바다에서 얼마나 많은 쭈꾸미를 잡을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자전거나라였던 베트남이 오토바이나라로 바뀌고 있는 이즈음, 값싼 품삯을 노리고 온갖 공장이 들어서고 있는 오늘날, 베트남도 앞으로는 쭈꾸미 내다 팔기를 그만두어야 하지 않을는지요.


.. (미국으로 건너온) 루카가 수업 시간에 뭔가 알아듣지 못하면 친구들이 사방에서 에스파냐어로 설명해 주었다. 점차 시간이 지나면서 루카는 이 학교에 불법 체류자가 자신만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아무도 솔직하게 이야기하지는 않았지만, 아이들의 눈빛이나 행동에서 알 수 있었다 ..  (102∼103쪽)


 식품회사가 넘쳐나고, 온갖 과일주스가 새로 나옵니다. 오렌지, 포도, 토마토, 당근, 사과, 배, 키위, 망고, 파인애플, 알로에, 석류, 매실 ……. 그런데 우리 나라 땅에서 거두어들여서 만드는 과일주스는 몇 가지가 되지요. 있기나 한가요. 있을 수 있습니까.

 밀 한 알 제대로 나지 않는 우리 나라인데, 우리 밀을 심어서 거둔다고 한들 얼마 되지도 않을 텐데, 시골 면내에도 빵집이 한두 군데씩 있을 만큼, 전국 곳곳에 빵집이 참 많습니다.


.. “시내 사람들은 우리를 좋아하지 않아.” 호세가 말했다. “우리가 자기들 집에 들어가 도둑질을 할까 봐 두려워해. 그러니 그 사람들이 우리를 안 보는 게 좋아. 그럼 우리가 여기 있다는 것도 잊을 테니까.” “하지만 우리가 수확한 토마토는 맛있게 먹고, 또 값이 싸다고 좋아하지.” 페드로가 말했다. “미국사람들이 토마토를 수확한다면 부자들만 먹을 수 있을 거야. 미국사람들이 이런 저임금으로 일을 하지는 않을 테니까.” ..  (64쪽)


 날마다 놀라면서 살아갑니다. 이렇게 하면서도 땅이 꺼지지 않고 하늘이 내려앉지 않아서 놀라면서 삽니다. 수도꼭지를 틀면 물이 좔좔좔 솟아나는데(미터기는 빙글빙글 돌 테지만), 우리 나라가 물이 넉넉한 나라가 아닐 텐데, 이렇게 물을 걱정없이 써도 괜찮은가 싶어서 놀랍니다. 돈 좀 있는 회사마다 시골에 땅을 사들여 땅속 물줄기를 뽑아들여서 돈 받고 물을 팔고 있는데, 이렇게 해도 한국땅에서는 지진 한 번 거의 일어나지 않으니 놀랍습니다.

 서울과 부산, 서울과 인천을 이으려고 하는 물길을 놓고, 더 많은 돈을 벌고 더 많은 사람한테 일자리를 만들어 준다고 하는 소리가 때때로 먹혀들어가기도 하기에 더욱 놀랍습니다. 발전소 전기를 돌려서 수도물을 끌어들이는 청계천과 같은 물길을 낸다며, 전국 여러 지자체에서 수천 억에 이르는 돈을 쓴다고 하는 소식을 들으면서도 놀랍니다. 반대하는 사람이 많아도 시와 군 우두머리가 밀어붙입니다. 공무원들은 우두머리 지시와 명령을 받고 착착착 기획서를 올리고 예산안을 짭니다.

 지난달, 우리 동네 큰길가 거님길 돌이 쫙 뜯겼다가 다시 깔렸습니다. 하수도 공사를 해야 하기 때문도 아니고, 무슨 사고가 났기 때문도 아니었습니다. 어느 지자체에서나 흔히 일어나는 일, 예산을 써 없애려고 돌바꾸기를 했을 뿐입니다. 이런 바보짓은 그만해야 하지 않느냐는 비판은 퍽 예전부터 나왔으나, 비판이 있든 없든 잘못은 바로잡히지 않습니다. 그예 되풀이되면서 사람을 쉬지 않고 놀래킵니다.


.. “파업이 얼마나 계속될 예정이냐?” 나이가 많은 흑인 직원이 아이들에게 물었다. “너희가 2주일 동안 시위를 지속한다면 우리 가운데 몇 사람은 일자리를 잃는다. 하지만 어쨌든 난 원칙적으로는 너희들 편이야. 30년 전에 우리도 똑같은 행동을 했지. 사람은 가끔 자신의 권리를 위해 싸워야 해. 특히 피부가 희지 않을 때는 말이다.” ..  (159쪽)


 저녁나절, 옆지기 다리를 주무르면서 배에 대고 이야기를 합니다. 두 달쯤 뒤면 세상에 나올 아이한테 말을 겁니다. “꽁꽁이네 아버지와 어머니도 세상 무서워서 살기가 팍팍한데, 너도 참 힘들겠구나. 그러니 너는 세상에 나올 때부터 튼튼해야 하고 억세어야 한단다. 굶기지 않도록 애쓸 테지만, 너는 네 힘으로 이 세상을 잘 살아야 한단다.”




 (2) 이 땅은 누구네 땅인가


 두어 달 앞서였나, 서울 회기동에 있는 헌책방에서 주한미군부대 병사들이 만들어서 기념으로 나누던 ‘군부대 사진첩’ 하나를 보았습니다. 이 군부대 사진첩은 “미국 제2 야전포병연대 7대대” 사람들 것이었는데, 이들은 1812년부터 싸움을 치러 왔다고 부대 역사를 적어 놓습니다. 1812년에는 캐나다에서 싸웠습니다. 그 뒤 자기들이 맡은 곳에 살던 북미 토박이(인디언)를 싹 쓸어버렸다고 합니다.‘seminoles’라는 이름이 보이는데 ‘세미놀레스’가 미국땅 이름인지 북미 토박이 겨레이름인지는 모르겠습니다. 그 다음으로 1840년대에 멕시코와 전쟁을 벌여서 이겼다는 대목이 나옵니다.


.. “당연하지. 멕시코사람들의 꿈은 오직 하나니까. 모두 여기로 오고 싶어 하잖아.” “틀렸어! 멕시코사람들이 미국을 똑바로 가리킬 수 있는 이유는 여기가 그 사람들 땅이기 때문이야! 이 나라에 맨 처음 살았던 주민들은 에스파냐와 멕시코사람들 그리고 인디언들이었어. 영어를 하는 백인들은 전혀 없었다고!” “우리가 1846년의 전쟁에서 승리했다는 걸 너희는 도대체 언제 인정할래?” 조지가 고함을 질렀다. “우린 너희를 이겼어! 그게 그렇게도 알아듣기 힘들어? 국경은 전쟁을 통해 달라지는 거야. 100년이 지난 뒤에도 여전히 불평을 하면 안 돼!” “그건 전쟁이 아니었어. 잔인한 습격이었지.” ..  (111쪽)


 한국이 일본 식민지였듯 멕시코는 스페인 식민지였습니다. 한국은 일본 식민지에서 벗어나며 한국말을 찾았지만, 멕시코는 스페인 식민지에서 벗어났어도 멕시코말이 아닌 스페인말을 쓰고 맙니다. 그나마 멕시코 문화라도 고유하게 지킬 수 없던 가운데, 백인들이 땅따먹기 싸움을 하면서 저희끼리 부딪치고 다투는 동안 멕시코 삶터는 더 무너져내렸고, 멕시코 문화는 더 찢기었으며, 멕시코 살림은 더 주저앉았습니다.


.. “…… 우린 이제 더 이상 함부로 취급받으며 살지 않을 거야. 로스앤젤레스에 새로운 미국을 건설하는 거지. 우린 벌써 투표권을 행사하여 라티노 시장도 뽑지 않았니? 멕시코사람들, 특히 불법 체류자가 없으면 미국 경제는 무너질 거다. 누가 밭에서 토마토와 레몬을 수확하지? 캘리포니아 농장 일군의 95퍼센트는 불법 체류자들이야. 레스토랑에서 누가 음식을 나르지? 부유한 사람들의 집은 누가 청소하고, 누가 아이들을 돌보며, 누가 잔디를 깎지? 우리의 시위가 끝나면 미국사람들은 라티노가 없으면 아무것도 안 된다는 걸, 한 명도 남김없이 알게 될 거야. ……” ..  (137∼138쪽)


 나라도 겨레도 문화도 살림도 차근차근 지키거나 가꾸기 어려운 멕시코에서 멕시코사람들은 ‘고향나라에서 굶어죽기’보다는 ‘죽음을 무릅쓰고 국경을 넘어 미국으로 건너가 허드렛일이라도 하며 달러 벌며 살아남기’로 가닥을 잡습니다. 마침, 미국도 미국 사회에 걸맞게 노동자 일삯을 주면, 부자들이 부자놀음을 이어갈 수 없었던 터라, 허드렛일을 헐값으로 시키고 부릴 생각으로, ‘불법 이민자’를 자꾸자꾸 받아들입니다. 한손으로는 불법이니 붙잡아서 내쫓고, 한손으로는 싼값으로 일을 부려먹으려고 끌어당기고.


.. 베로니카의 아버지는 매주 자신이 진행하는 방송을 통해 라티노들에게 다음과 같은 말로 집회에 많이 참가할 것을 권했다. “1620년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아메리카에 도착한 청교도들도 불법 이민자들이었습니다. 이들은 지금 미국의 조상으로 간주됩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이 대륙에 있는 모든 백인들도 예전에는 불법 이민자들이었습니다. 백인들의 아메리카는 4천만 라티노와 함께할 때만 유지될 수 있습니다. ……” ..  (154쪽)


 한국땅으로 들어오는 나라밖 노동자들도, 미국으로 넘어가려는 멕시코사람하고 똑같은 형편입니다. 빚을 지며 통행삯을 치러 목숨 걸고 국경을 넘은 다음, 여러 해 죽을힘을 다해 돈을 모아 빚을 갚고 겨우겨우 자리를 잡아서, 아이들을 가르치려고 합니다. 적어도 아이들한테 자기들과 같은 가난과 못 배움을 물려주고 싶지 않아서.

 한국땅에 들어오는 이주노동자들 또한, 고향나라에 남은 아이들을 먹여살릴 뿐 아니라 더 높은 학교까지 가르치는 데에 뜻을 두고 있습니다. 중국조선족이 남녘땅에 들어와 밥어미나 청소부나 밥집 아줌마 노릇을 해서 달마다 다문 백만 원이라도 벌어서 보내면(한 달에 딱 하루 쉬며 일하는 동안), 이 돈으로 자식들을 북경으로 보내어 대학등록금과 기숙사비를 댑니다.


.. “…… 그리고 다른 그링고들도 믿으면 안 돼. 네가 여기에 불법 체류 중이라는 걸 잊지 마. 미국사람들은 우리를 ‘불법 외계인’이라고 불러. 마치 지구 바깥에서 왔다는 듯이. 또 사실 우리를 그렇게 취급하지. 행운을 빈다. 잡히지 마!” ..  (75쪽)


 똑같은 ‘외국인’ 노동자이지만, 살갗이 하얀 사람은 쏼라쏼라 하면서 영어학원 강사 노릇을 합니다. 초등학교에서 ‘원어민 교사’ 노릇마저 합니다. 영어 솜씨가 훨씬 뛰어나다고 해도 필리핀사람이 원어민 교사를 하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스리랑카사람이나 라오스사람 또한 영어학원 강사를 할 수 없습니다. 아마, 강사나 교사 노릇을 한다고 해도, 학생들이 싫어하겠지요. 우리들 한국사람은 스스로를 ‘아시아사람’으로 생각하지 않으니까요.

 티벳과 인도로 성지순례를 떠나고 네팔과 몽골에 가서 드넓은 자연에 입을 쩍쩍 벌리는 한국사람들이지만, 티벳 이주노동자와 네팔 이주노동자와 인도 이주노동자와 몽골 이주노동자를 볼 때면, 꾀죄죄하거나 더럽다거나 못났다고 하면서 거리를 두고 있는 한국사람들입니다.


.. 카를로스는 화를 냈다. “이건 멍청한 짓이에요! 내가 오늘 아침에 토르티야를 먹는다고 도대체 뭐가 달라지나요?” “모든 사람이 너처럼 생각한다면 정말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을 거다!” 이모부가 카를로스의 손에서 시리얼 봉지를 빼앗았다 ..  (155쪽)


 어쩔 수 없는 노릇인가요. 한국사람이 ‘세계 소식’이라면서 텔레비전이나 인터넷으로 보고 듣는 이야기는 거의 모두 미국 이야기에 쏠려 있으니까요. 그 다음으로 유럽 이야기에 모두어져 있으니까요. 우리가 언제 티벳이나 네팔에서 뿌리내리며 살아가는 겨레붙이 문화와 사회 이야기를 들어 봅니까. 방글라데시 문화가 무엇인지 압니까. 그렇게들 많이 찾아가는 인도 사회가 어떻게 이루어져 있는지, 아르헨티나와 브라질 역사는 어떠한지, 베트남과 버마 살림살이가 어떠한지를 곰곰이 헤아릴 일이 있는지요. 인도네시아사람이 무엇을 좋아하고, 말레이지아사람이 무엇을 즐기며 살아가는지 모르는 가운데, 우리 곁에 있는 이웃나라를 살갗으로 받아들이거나 느끼기는 어렵다고 봅니다.

 부자가 하늘나라에 가기는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기보다 어렵다고 하는데, 부자 스스로 가난한 사람이 되고자 하지 않고, 가난한 사람한테 자기 재산을 나누어 주려 하지 않으며, 스스로 가난이 무엇인가를 몸으로 느끼거나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기 때문에, 부자들은 하늘나라에 못 가지 않으랴 싶습니다.

 한국사람이 이주노동자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까닭도, 한국사람 스스로 자기 뿌리를 느끼지 못하고, 자기 이웃이 어떠한가를 헤아리지 못하며, 자기 삶터가 어떻게 이루어져 있는지를 못 깨닫거나 안 깨닫기 때문이라고 느낍니다.


 (3) 《눈물나무》라는 책


 이야기책 《눈물나무》는 독일에서 중고등학교 교사로 일하는 사람이 씁니다. 멕시코사람이 왜 가난할 수밖에 없으며, 어찌하여 미국 국경을 넘어야 하는지를 깊이 있게 파고들면서 다룹니다.


.. “비바 메히코!” 헤어질 때 호세가 모자를 흔들며 소리쳤다. “잊지 마라, 네 집은 여기야! 국경 건너편에서 돈이야 벌 수 있지만, 네 마음은 항상 여기에 있어야 해. 한 번 멕시코사람이면 영원히 멕시코사람으로 남는 거다. 비바 메히코!” ..  (54쪽)


 한국에서 초등학교 교사로 일하는 사람도 멕시코사람 이야기를 써낼 수 있을까 생각해 봅니다. 대학교 교수로 일하는 사람도 멕시코사람 이야기를, 또는 가까운 데에 있는 중국조선족 이야기를 써낼 수 있을까 생각해 봅니다. 일본에 살고 있는 한겨레 이야기는 써낼 수 있을까 생각해 봅니다. 아니, 한국땅에서 아파하거나 괴로워하거나 힘들어하는 사람들 눈물이 무엇인지를 이야기 하나로 써낼 수 있을까 생각해 봅니다.


.. “국경을 건너가면 그렇게 끔찍하다면서, 그럼 아저씨들은 왜 여기에 있지 않고 넘어가려는 거예요?” 잠깐 동안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그래도 멕시코에서 굶어죽는 것보다는 나으니까.” 페드로의 말에 다른 사람들이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  (27쪽)


 우리네 긴 발자취를 더듬어 보면, 이웃나라로 쳐들어가서 땅을 넓힌 적도 있으나, 이웃나라가 쳐들어와서 땅을 빼앗긴 적도 있습니다. 쳐들어갔건 쳐들어왔건, 권력 쥔 사람이 아닌 여느 사람들, 바로 우리 아버지와 어머니는 늘 부들부들 떨면서 죽어야 했습니다. 군대로 끌려가거나 노예로 붙잡히거나 고향에서 죽어라 농사지어서 나라님한테 바치고 군량미를 대면서.

 신분 푸대접에 따라서 아주 많은 우리 어버이가 고달프게 살았고, 일본제국주의한테 짓눌리기도 했으며, 네나라 때(고구려,백제,신라,가야)와 마찬가지로 한겨레끼리 피를 흘리며 싸워야 하기도 했습니다. 독재는 겨우 걷혔지만, 속속들이 걷어내지 못해서 아직까지도 국가보안법은 서슬퍼렇게 남아 있습니다. 미친 소고기 문제가 아니더라도 우리 숨통은 온갖 나쁜법과 유전자조작 먹을거리 따위로 아슬아슬합니다. 그렇지만, 비정규직인 사람이 많은 만큼, 정규직인 사람도 많아서 내 이웃 아픔을 내 아픔으로 못 받아들이는 사람이 많습니다.

 아픔이 있고 눈물이 있는 우리 나라요 우리 겨레입니다. 멕시코사람들 아픔을 잘 곰삭이고 새긴 독일 교사 한 사람은 《눈물나무》를 써냈고, 우리 스스로 안고 있는 아픔을 잘 곱씹고 되새길 누군가가 앞으로 ‘눈물꽃’을 써낼는지 모릅니다. ‘눈물꽃’은 시인 고정희 님이 써냈으니 ‘눈물풀’을 누군가 써내려나요. 아니면, 우리 스스로 붙안고 있는 아픔을 알아보려 하지 않으면서 아무런 눈물도 느끼지 못하고, 한 방울 눈물도 흘리지 않으면서, 오로지 돈벌이에만 눈을 밝히면서 살아갈는지요. (4341.6.29.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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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 속 그늘 자리 - 자연이 예술을 품다
이태수 글.그림 / 고인돌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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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 하나 55 ― 사람도 자연, 자연은 그대로 예술
 : 이태수 글ㆍ그림, 《자연이 예술을 품다, 숲속 그늘 자리》



- 책이름 : 자연이 예술을 품다, 숲속 그늘 자리
- 글ㆍ그림 : 이태수
- 펴낸곳 : 고인돌(2008.5.25.)
- 책값 : 14800원



 (1) 우리 집 옥상마당


 수요일 저녁, 우리 동네에서는 밥찌꺼기를 내놓는 날입니다. 골목마다 밥찌꺼기 모아 가는 통이 놓이고, 저녁 일곱 시 뒤부터 한 집 두 집 바깥으로 밥찌꺼기를 내다 버립니다.

 밥찌꺼기통은 닫혀 있기도 하지만 열려 있기도 합니다. 옆지기와 밤마실을 하면서 지나가다 보니, 뚜껑 열린 밥찌꺼기통에 머리를 박고 끼니를 채우는 길고양이가 여럿 보입니다. 몇 미터 거리가 되니 고양이가 퍼뜩 놀라며, 먹던 고개를 꺼내어 탈탈탈 걸어서 길가에 세워진 자동차 밑으로 숨거나 우리와 멀찌감치 떨어집니다. 밤나절은 고양이가 느긋하게 저녁 먹는 때이니 발걸음을 좀더 죽여야겠군요.


[고깔제비꽃] .. 새로 돋아나는 이파리가 고깔을 닮아 붙여진 이름, 고깔제비꽃. 씀바귀를 고채(苦菜)라 부르고 민들레를 포공영(蒲公英)이라고 하면 참 알아듣기 힘이 듭니다 ..  (12쪽)


 우리 집에서 밥찌꺼기 나올 일은 거의 없지만, 어쩌다가 바나나라도 사먹으면 껍데기가 나옵니다. 양파껍질은 그물주머니에 고이 모으고, 감자며 무며 껍질째 먹으니, 남아서 버려지는 찌꺼기가 없습니다. 지난 한 해 동안 우리 집에서 나온 밥찌꺼기는 1킬로그램이 채 안 되지 싶습니다. 두 식구가 먹기에 너무 많은 김치를 선물로 받아서 먹다 먹다 지쳐서 버려진 김치를 빼면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나마 이런 몇 가지 밥찌꺼기를 옥상마당에 내어놓고 비를 맞히고 햇볕에 말리니 물기 소금기 쏘옥 빠지며 바삭바삭 부스러지며 가벼워집니다. 이제 흙하고 섞으면 모자라나마 거름으로 삼을 수 있을는지.

 창가에 앉아서 책을 읽노라면, 동네에 사는 참새와 까치와 비둘기가 우리 집 옥상마당에 내려앉곤 합니다. 밥찌꺼기 같지도 않은 밥찌꺼기가 조금 나와 있어서 그럴 텐데, 몇 번 부리로 찍어 보더니 ‘영, 시원찮군!’ 하며 다시 포르르 날아가곤 합니다. 지금도 참새 한 마리가 부지런히 뭔가를 쪼고 있는데, 따로 새모이라도 놓을까 싶기도 합니다. 옆지기는 밤나절, 고양이밥을 조금 마련해서 길모퉁이에 놓으면 어떻겠느냐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참개구리] .. 집 뒤에 논이 있었습니다. 오월이면 개구리 소리 즐거웠습니다. 지금은 작은 물웅덩이 하나 남기지 않은 채 개구리 삶터를 갈아엎고 사람 집을 지었습니다 ..  (32쪽)


 지난해에 옆지기가 데려온 길고양이 열 마리는, 모두 우리 집 옥상마당에서 나가서 인천바닥 어딘가에서 잘들 살아가고 있습니다. 드물게 만나곤 하는데, 우리 얼굴을 떠올리는지 잊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러다가 지난달에 한 마리, 지난주에 한 마리, 또다시 ‘귀염둥이 짐승으로 집에서 기르다가 버려진 고양이’ 두 마리를 우리가 맡게 되었습니다. 맡는다기보다 옆에서 먹이와 물을 주면서, 무럭무럭 자라 스스로 동네를 누비며 길을 익힐 때까지만 함께 지낼 뿐이라고 할 수 있지만.

 두 녀석 모두 처음 우리 집으로 왔을 때 바들바들 떨면서 구석에 숨은 채 나올 줄을 몰랐습니다. 어린 녀석들이지만, 몸으로는 ‘어미 품도 모르면서 이곳저곳에서 떠돌다가 버려지기만 하는가’ 하는 느낌을 받았구나 싶습니다.

 생각해 보면, 어미 품에서도 떠나야 했지만, 형제도 없고 동무도 없이 외딴 집안에서 집임자하고 살아가야 하는 형편이었는데, 자기와 함께 살아갈 집임자가 ‘싫다’면서 내보내게 되었으니, 이런 느낌을 왜 모르겠습니까.

 그런데 녀석들은 하루이틀 지나면서, 사흘나흘 흐르면서, 차츰 우리 집에 익숙해지고 우리 두 사람 얼굴과 목소리에 길이 듭니다. 이제 두 녀석 모두 우리뿐 아니라 다른 사람한테까지 아양을 떨 만큼 되었습니다. 고양이 바탕은 사람과 함께 살 수 없이 홀로 길을 간다는데, 먼저 온 녀석은 앞으로도 우리 집에 머물 듯하다는 생각도 들더군요.

 녀석들 풀어 놓은 옥상마당을 슬며시 내다보니, 큰 녀석은 종이상자집에 들어가 알쏭달쏭한 모습으로 단잠에 빠져 있고, 작은 녀석은 쓰레받이며 노끈이며 낡은 바구니며, 옥상마당에 그대로 둔 물건들을 노리개 삼아서 만지작거리기도 하고 뒹굴면서 놉니다.


[늑대거미] .. 물 위를, 물풀 위를 징검징검 걸어다니면서 벼멸구를 잡아먹는 늑대거미. 살아 있는 농약이라고 말합니다. 자연은 사람이 끼어들지 않으면 서로 먹고 먹히면서, 서로 도우면서 한쪽으로 기울어지지 않고 스스로 숨쉬며 살아갑니다 ..  (42쪽)


 (2) 골목꽃과 이름


 몇 해 앞서까지만 해도, 꽃이랑 나랑은 아무 끈이 이어져 있지 않다고 생각하면서 지내 왔습니다. 책만 보며 살았고, 책방만 다니면서 살았으며, 자전거로 싱싱 달리기만 했습니다. 더 빠른 길을 찾아내어 달리는 데에만 마음을 기울이고, 자동차와 내기 달리기라도 하듯 용을 써 왔습니다.

 그러다가 여러 해 산골자락에서 지내면서 달따라 피어나는 꽃을 보고 나무를 보는 동안, 마음이 차츰차츰 바뀌었습니다. 꽃이나 나무나 풀을 살뜰히 담아낸 그림이 담긴 책을 좋아하면서도 정작, 두 눈으로 꽃이나 나무나 풀을 찬찬히 들여다보는 움직임에는 소홀했습니다. 산골자락 삶 여러 해는, 제 어수룩함이 무엇인가를 넌지시 짚어 주었고, 부끄러움을 느끼기보다는 놀라움과 고마움을 느끼면서 자연 삶터로 다가갈 수 있도록 이끌었습니다.

 이제, 산골자락에서 떠나 도시 한켠으로 들어온 몸이 되면서, 산골자락에서 꽃과 나무와 풀을 느끼듯, 골목길을 다니면서 온갖 꽃과 나무와 풀을 보고 있습니다. 이름을 아는 꽃과 나무와 풀이 있으나, 이름을 모르면서 바라보고 쓰다듬고 냄새를 맡는 꽃과 나무와 풀이 있습니다.


[봉숭아] .. 흙이 아스팔트로, 시멘트로 덮이고 손톱이 매니큐어에 덮인 지금 붉은 봉숭아물 들이고 여름, 가을 가고 겨울 손톱 끝에 매달린 초승달 사랑을 가슴 졸여 기다리는 ..  (52쪽)


 길을 거닐다가 몇 차례, 동네 할머니나 아주머니한테 여쭈었습니다. “아주머니, 이 노랗고 예쁜 꽃은 이름이 어떻게 되어요?” “할머니, 이 소담스러운 꽃은 이름이 무엇인가요?” 딱 한 번, 꽤나 긴 서양이름이 붙은 꽃이름을 들었습니다. 아주머니는 아무렇지도 않게 익숙한 말씨로 줄줄줄 꽃이름을 대는데, 저와 옆지기는 못 알아듣습니다. 속으로, ‘그래, 꽃이름은 몰라도 꽃을 예쁘게 느낄 수 있으면 되지 않아’ 하고 생각했습니다.

 꽃이름을 모른다고 하는 다른 아주머니나 할머니들은 “예쁘니까 심었지 뭐” 하면서 빙그레 웃습니다. 당신들도 골목골목 찬찬히 거닐며 저잣거리를 오가는 동안 눈여겨보았던 꽃이 지고 씨를 맺으면, 씨 조금 얻어서 헌 꽃그릇을 마련하고 흙을 어디선가 퍼 오고 거름을 내고 힘을 북돋운 다음 씨앗을 고이 심어서 어여쁜 꽃을 길러내셨지 싶습니다.


[강도래 애벌레] .. 사람이 오고 간 발자국이 많을수록 사람이 남기고 간 자국이 많을수록 맑은 물은 흐려지고 맑은 물에서 사는 작은 생명들은 살 곳을 잃어 갑니다. 그러면서, 점점, 사람도 놀 곳을 살 곳을 잃어 갑니다 ..  (74쪽)


 사람마다 이름이 있고 꽃마다 이름이 있으며 짐승마다 이름이 있습니다. 우리 사람들은 꽃과 나무와 풀에, 또 짐승들한테 이름을 붙여 주는데, 꽃과 나무와 풀도 우리 사람을 보면서 ‘저건 뭐다’ 하면서 이름을 붙이지는 않을까 싶습니다. 사람이 짐승한테 이름을 붙이며 부르듯이, 짐승도 우리 사람을 보면서 ‘너는 뭐다’ 하고 이름을 붙이며 머리속에 새기지 않으랴 싶습니다.

 우리 집 고양이 조금 큰 녀석은 ‘후추’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예전 임자가 붙인 이름으로, 털빛이 후추 빛깔이라 해서 붙였답니다. 지난주에 들인 어린 녀석은 ‘애깽’이라고 하다가 ‘밤톨’로 이름을 붙였습니다. 아기 고양이라고 해서 ‘애깽’으로 했고, 아직 밤톨 만한 크기이기도 하지만, 털빛이 밤톨 빛깔이라는 느낌이라서 ‘밤톨’이라고 했습니다.


[조릿대] .. 응달에서 잘 자라고 추위에 잘 견디는 조릿대 이파리는 겨울철 먹이가 모자라는 산양에게 겨울을 이겨 내는 먹이가 됩니다 ..  (92쪽)


 (3) 《숲속 그늘 자리》라고 하는 그림이야기


 《보리 아기 그림책》부터 《심심한 오소리》까지, 자연 삶터와 목숨붙이를 찬찬한 그림으로 담아 온 이태수 님이 《숲속 그늘 자리》라고 하는 그림이야기책을 하나 내놓았습니다.

 그림 하나에 이야기 하나를 붙인 짜임새입니다. 그림 하나에 붙인 이야기 하나는 시라고 느낄 수 있고, 짤막한 생각이라고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읽어내기 나름입니다.


[비오리] .. 물이 맑고 물 흐름이 빨라서 겨울에도 잘 얼지 않는 동강은 비오리, 수달, 논병아리, 어름치 ……. 수많은 생명을 품고 흐르고 또 흐릅니다 ..  (102쪽)


 이태수 님은, 책 머리말에서 “이 책에 실린 생명들은 아주 귀한 것보다는 살아가면서 흔히 볼 수 있는 것들이 많고, 몇몇 생명은 조금만 힘을 들이면 만날 수 있는 것들입니다. 자연에 조금만 관심을 가지고 들길을 걷거나, 산에 오르내리고, 바닷가를 걸으면 볼 수 있는 것들입니다.” 하고 이야기합니다.

 지금 우리 삶터는 자연하고 너무 멀리 떨어져 있기에, 이 그림이야기책에 실린 목숨붙이들도 ‘너무 멀다’고 느낄지 모르는데, 도심지에서도 눈을 크게 뜨고 들여다보면 손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자동차 싱싱 내달리는 찻길가에서 자라는 나무 둘레 몇 뼘 안 되는 흙에서도 보고, 호젓한 골목길 한켠에서도 보며, 골목 안쪽에 손바닥 만하게 마련한 텃밭에서도 봅니다.

 사람 아닌 목숨붙이도 자연이지만, 우리 사람 또한 자연입니다. 우리 스스로가 자연이며, 우리 스스로도 자연을 이루고 있다고 느끼지 못하기에, 우리 둘레에 고이 뿌리내리며 살아가는 이웃 자연을 못 느끼거나 못 깨닫거나 못 보지 않느냐 싶어요. 이리하여, 내 이웃과 동무도 나와 똑같은 ‘사람이면서 자연’입니다만, 내 이웃도 ‘살가운 사람’이고 ‘아름다운 자연’이라고 받아들이지 못하면서, 서로 밟고 올라서고 빼앗고 겨루려고만 복닥이는지 모를 일이에요.


[도롱이벌레] .. 집 모양이 도롱이를 닮은 도롱이벌레. 자기 삶터에서 가장 흔한 나뭇가지, 나뭇잎으로 집을 짓고 겨울을 납니다. 집이 무너지면 다시 흙으로 돌아가 쓰레기를 남기지 않습니다 ..  (108쪽)


 나 혼자 살려고 하는 마음이 아닐 때, 우리 몸에 깃든 자연이 시나브로 빛을 냅니다. 나와 이웃이 함께 흐뭇하기를 바라는 넋을 가꿀 때, 우리 마음에 잠자고 있던 자연이 살며시 깨어나 고운 냄새를 풍깁니다.

 그늘을 드리워 뭇 목숨붙이가 뜨거운 햇살에 마르지 않도록 잎사귀를 벌리는 나무가 있습니다. 뜨거운 햇살일수록 더욱 맛난 밥으로 여겨 잎사귀를 더욱 벌리고 키를 한껏 높이는 나무가 있습니다.

 그림이야기책 이름이 《자연이 예술을 품다, 숲속 그늘 자리》인데, 책을 덮으며 헤아려 보건대, “자연은 그대로 예술”이지만, 우리는 우리 자신이 자연인 줄 모르고, 우리 이웃도 자연인 줄 깨닫지 못하는 한편, 우리를 둘러싼 너른 자연이 어떻게 예술이며 얼마나 아름다운 예술인지를 못 들여다보는구나 싶습니다. 글이 길게 실리지 않은 책이나, 띄어쓰기 틀린 대목이 열 군데가 넘어서 조금 아쉽습니다. (4341.6.26.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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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기를 잃어버렸다. 밤길을 걸어 구멍가게에 맥주 한 병 사러 가는 길에 곰곰이 따져 본다. 벌써 몇 번째 잃어버렸는가? 도둑맞은 사진기도 여럿이었기 때문에, 모두 더하면 이번이 일곱 번째인지 여덟 번째인지.

 사진 찍을 생각도 없으면서 남 사진장비에 군침을 흘리면서 훔쳐갈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있음은 어처구니없기도 하지만, 그만큼 요즘 사람들이 돈에 목말랐다는 뜻이 아닌가. 자기한테 돈벌이가 되면, 이웃사람이 울며 불며 괴로워하든 말든 아랑곳하지 않으면서.

 그러나 사람들 탓을 하면 무엇하랴. 내가 좀더 제대로 간수하면서 잃어버리지 말았어야지. 도둑맞은 일들을 생각하면, 지금도 목매달고 죽고 싶은 마음이지만, 어찌하겠는가. 전철간에서 너무 고단하고 사진기가방도 무거워서 짐칸에 올려놓았다가, 졸다 깨다 되풀이하던 어느 때, 문득 올려다보니 감쪽같이 사라졌던 사진기가방. 무거운 사진기가방은 잠깐 바닥에 내려놓고 책을 읽다가 그만, 내릴 곳에서 책에 눈을 박은 채로 내리다가 사진기가방을 전철칸에 그대로 두고 내렸는데, 역무원한테 전화해서 다음 역을 알아보았더니, 그 자리에는 벌써 가방이고 뭐고 아무것도 없다고 했다. 자전거를 타고 돌아다니던 어느 날, 사외보 기자들이 취재한다고 찾아와서 헌책방에 함께 간 다음 늦게까지 이야기가 이어져서 술을 한잔 걸쳤기에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데, 택시기사가 자전거를 짐칸에 실었다고 내내 꿍얼거리는 바람에, 택시에서 내리면서 자전거를 먼저 꺼냈는데, 뒷자리에 실어 놓은 사진기가방을 미처 꺼내지 않았는데 부웅 하고 떠나버리기도 하고. 신문사지국에서 일하던 때에는 어떠했는가. 새벽에 배달을 나간 틈을 타서 몰래 들어온 좀도둑이 냉큼 집어가 버린 적도 있지 않은가.

 도둑은 부잣집을 노리지 않는다고 느꼈다. 부잣집은 훨씬 값나갈 뿐더러 비싼 물건과 돈도 많을 터이나, 그만큼 지키는 벽이 탄탄하다. 그렇지만 가난뱅이들은 어쩌다가 한두 가지 어렵사리 장만한 물건을 가지고 있다고 하나, 따로 지키지도 못하고 허술하다. 이리하여 도둑들은 외려 가난한 사람들 살림을 축낸다. 몰래 빼낸다. 벼룩 간을 빼먹는다는 말이 틀린 소리가 아니다. 도둑들한테는, 있는 사람들한테는, 벼룩 간이 소 간보다 맛있다고 느껴지지 싶다.

 잠자리에 누웠지만 잠이 오지 않는다. 옆지기가 나를 꼬옥 안으면서, 잠이 안 오면 좀 걷자고 한다. 그럴까. 걸을까. 부시시 일어나서 옆지기를 슬며시 바라본다. 눈가가 젖어 있다. 나보고는 ‘나 (집에) 없을 때 울었지요?’ 하고 묻더니만, 뭐.

 잃어버린, 또는 도둑맞은 사진기 숫자를 세고 싶지 않다. 세면 셀수록, 떠올리면 떠올릴수록 속만 쓰리다. 눈물만 난다. 그냥 아무 말이 나오지 않는다. 번듯하게 돈 많이 버는 일을 해 오지도 않은 주제인데다가, 내가 찍는 주제인 ‘헌책방’을, 그래도 내 나름대로 좀더 나은 장비로 담아내고 싶어서, 여러 해 동안 적금을 부어서 어렵사리 마련한 돈으로 100만 원짜리 몸통에 180만 원짜리 렌즈를 끼워서 쓰고 있지 않았던가(이렇게 장만한 사진기와 렌즈를 여러 차례 도둑맞아서 다시 모아 다시 장만하기를 되풀이했는데, 또 잃어버렸으니). 렌즈 앞에 끼우는 필터도 좋은 렌즈를 쓰다 보니 지름이 넓어서 유브이필터 하나만도 이만오천 원이었고, 귤빛 필터 하나도 오만 원이 넘었다. 돈으로 따지기 싫어도, 돈값만큼 제 솜씨를 뽐내어 주던 장비였다. 그래서 직업사진가들이 아무리 못해도 이만한 장비부터는 갖추고 사진을 찍는다고 느꼈다.

 ‘그래, 너는 애써 적금 부어서 산 장비를 몇 해 쓰지도 못하고 잃거나 도둑맞으니, 남 좋은 일만 시켜 주니?’ 한숨과 눈물이 고루 섞인 어머니 푸념이 들려오는 듯하다. ‘어쩔 수 없지, 다시 사야지 뭐, 그런데 돈은 있냐?’ 마음으로 함께 울어 주고, 어려울 때마다 슬쩍슬쩍 도와주는 우리 형이 동생을 토닥여 주는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하다. ‘뭐? 잃어버려? 에잉, 그게 얼마짜리인데.’ 아버지가 아들내미 소식을 들으면 되레 짜증을 내면서 한 마디 하실 테지. 여태껏 장비를 잃어버린 뒤, 속쓰림과 허전함에 몇 달 동안 일손이 잡히지 않는 가운데에도 어찌어찌 돈을 마련하고 적금 깨면서 가까스로 다시 장비를 마련하곤 했는데, 이제는 깰 적금도 없다. 그렇다고 식구들한테 손을 벌릴 수 있는가.

 옆지기 배속에서 자라는 아기는 이런 아버지를 보고 무슨 생각을 하려나. 참 딱한 양반이라고, 참 불쌍한 놈이라고, 참 한심한 분이라고 혀를 끌끌 차려나. 에그, 그래도 자기(아기)가 있고 옆지기가 있으니 기운내서 어떻게든 수를 써 보라고 내 등을 토닥토닥 어루만져 주려나. (4341.6.25.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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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서 달님이 뚝! 떨어졌어요 - 벨 이마주 101 벨 이마주 101
제마스티안 메쉔모저 지음, 전재민 옮김 / 중앙출판사(중앙미디어) / 2008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달님과 치즈와 다람쥐와 죄수
 [그림책이 좋다 48] 제바스티안 메쉔모저, 《하늘에서 달님이 뚝! 떨어졌어요》



- 책이름 : 하늘에서 달님이 뚝! 떨어졌어요
- 글ㆍ그림 : 제바스티안 메쉔모저
- 옮긴이 : 전재민
- 펴낸곳 : 중앙출판사(2008.4.15.)
- 책값 : 9000원



 (1) 치즈와 달


.. 어느 날 아침, 다람쥐는 깜짝 놀라 잠에서 깼어요. 하늘에서 달님이 집 앞으로 뚝! 떨어졌지 뭐예요 ..  (7쪽)


 그림책 《하늘에서 달님이 뚝! 떨어졌어요》는 ‘하늘에서 떨어진 달’이 아니라 ‘언덕받이에서 농사꾼 아버지와 아들이 쉬고 있는 옆에 세운 수레에서 미끄러지며 구르다가 벼랑에서 슈웅 날아 다람쥐 사는 나뭇가지에 턱 얹힌 동그란 치즈 한 덩이’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그림책 안쪽 종이부터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그린이는 치즈 한 덩이만 노란빛으로 그리고, 다른 곳은 흑백으로 그립니다. 그림책을 펼치는 사람들은 누구나 ‘뭐여, 치즈 한 덩이가 떨어진 일이네’ 하고 처음부터 알아챌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난데없이 하늘에서 뭔가가 툭 떨어졌는데, 마침 이 큰 덩어리가 노랗고, 더욱이 달님을 먼발치로만 바라보았던 다람쥐로서는, 치즈가 아닌 달님으로 잘못 생각할 수 있습니다.

 다람쥐는 혼자서 ‘달님이 왜 여기로 떨어졌지?’ 하고 생각을 하다가 ‘하늘에서 달이 사라졌다고 사람들이 찾으면 어쩌지?’ 하고 걱정을 합니다. 끝내, ‘이러다가 내가 달님을 훔쳤다고 해서 붙잡아 감옥에 가두지 않을까?’ 하는 무서운 꿈까지 꿉니다.


.. 어느 날 아침, 염소가 잠에서 깨어났어요. 달님에게 박혀 있는 고슴도치가 투덜대는 바람에요. 달님한테 꼬랑내가 난다는 거예요 ..  (34쪽)


 혼자힘으로 달님을 하늘로 돌려보낼 길이 없고 숨길 수도 없어서 어쩌지 못하던 다람쥐는, 고슴도치한테 힘을 빌고 염소한테도 힘을 빕니다. 그러나 둘 모두 달님을 어찌하지 못합니다.

 다람쥐는 생각합니다. ‘이러다가는 고슴도치도 염소도 함께 감옥에 갇히겠다’고.

 하늘에서 떨어진 녀석은 달이 아니라 치즈덩어리. 그래서 치즈는 조금씩 냄새를 피우고, 이 냄새를 맡은 파리떼가 몰려듭니다. 곧이어 쥐들이 좋은 먹잇감이 생겼다면서 갉아먹습니다.

 다람쥐는 속으로 울부짖지요. 쥐들이 더 큰일을 만든다고. 그런데 쥐떼가 ‘달님 아닌 치즈덩어리’를 갉아먹어 주었기 때문에, 치즈에 가시를 박던 고슴도치와 뿔을 박던 염소는 풀려납니다. 그렇지만 다람쥐는 걱정을 이어갑니다. ‘이제는 나와 고슴도치와 염소에다가 쥐까지도 감옥에 갇히겠군!’ 하고.


.. 염소가 풀려났어요…… 고슴도치도 풀려났어요…… 쥐들은 ‘꺼억’ 배가 불렀답니다. 그런데 이런, 달님이 망가져 버렸어요! ..  (37∼38쪽)


 다람쥐는 어찌할 바를 모릅니다. 배불러 드러누운 쥐는 꼼짝을 않습니다. 홀로 끙끙 앓습니다. 더구나 망가뜨리고 만 달님 모습을 누가 알면 어쩌나 두렵습니다. 이제 참말로 어찌해야 할는지. 꼼짝없이 감옥에 갇혀서 눈물로 세월을 마감해야 할는지(다람쥐 혼자 하는 생각이지만), 무언가 뾰족한 좋은 수를 찾아내어 이 어려움에서 벗어날는지.




 (2) 《하늘에서 달님이 뚝! 떨어졌어요》라는 그림책


 그림책 《하늘에서 달님이 뚝! 떨어졌어요》를 처음 보았을 때에는 뭔 뚱딴지 같은 소리를 하느냐 싶어 금세 덮었습니다. 옆에서 함께 책을 보던 옆지기가 그림이 재미있다고 하기에 그런가 보다 하고 다시 들추어보았습니다. 책을 다시 펼치니, 다람쥐가 혼자서 생각하는 이야기(자기가 감옥에 갇힌 모습)가 나오는데, 죄수는 십자수를 하고 있고, 창살로 달빛이 환하게 들어오는 한편, 그 옆으로 양변기 큰 것과 작은 것이 나란히 있습니다.

 그 다음 다람쥐 생각(이번에도 감옥에 갇힌 모습)을 보면, 죄수는 실이 다 떨어져서 바늘에 실을 꿰고 있고, 창살 밖으로 보이는 달 아래쪽에 고슴도치가 달에 가시를 박은 채 매달려 있습니다.

 마지막 다람쥐 꿈(이때에도 감옥에 갇힌 모습)을 들여다보면, 창살 밖으로 달이 사라집니다. 쥐때가 달을 모두 먹었기 때문입니다. 죄수는 십자수를 할 수 없어 짜증스러운 얼굴이 되고, 그 옆으로 염소와 고슴도치가 나란히 앉아서 멀뚱멀뚱한 얼굴이며, 죄수 한쪽 옆으로 쥐들도 죄수옷을 입고 앉아 있습니다. 양변기는 짐승들 크기에 따라 작은 녀석으로 새로 하나 놓입니다.

  그림책 《하늘에서 달님이 뚝! 떨어졌어요》를 다시 한 번 처음부터 넘겨서 봅니다. 한 번 더 보고 또 한 번 봅니다. 연필과 색연필을 쓴 바탕그림과 물감으로 그린 달(치즈) 모습이 서로 돋보입니다.

 책을 보는 우리들로서는 ‘말도 안 되는 일’일 수 있으나, 자다가 쿵 소리에 깬 다람쥐로서는 어처구니없는 일이며, 다른 짐승 동무들한테도 큰일입니다. 다람쥐나 고슴도치나 염소는 치즈를 안 먹으니 달로 잘못 생각할 수 있고, 치즈를 먹는 쥐도 배고픔을 채우려고 아무 생각 없이 달려들었고.

 우리 세상을 사람 눈으로만 바라본다면 너무 뻔하거나 뚱딴지로 여길 수 있을 일일지 모르지만, 사람이 아닌 짐승들 눈으로, 또 짐승 가운데에도 조그마한 짐승 눈으로 볼 때에는 사뭇 다를 수 있구나 싶습니다. 아니, 다르지요.

 갑작스러운 일이 생겼으니 마음 착한 동무들은 스스럼없이 나서서 도와줍니다. 사람끼리이든, 짐승끼리이든. 나이든 사람이든 나어린 사람이든.

 책상맡에 놓아 두고 또 한 번 그림책을 펼치니, 이 이야기를 짜내고 그림을 그린 분은 ‘재미있게 보라면서 즐겁게 그리지’ 않았으랴 싶습니다. 생각해 보라고, ‘농사꾼 아버지와 아들’은 애써 마련한 치즈덩어리인데, 잠깐 쉬는 사이 미끄러지며 데굴데굴 굴러서 떨어져 버렸으니 오죽 속이 타겠습니까. 그런데 속타는 농사꾼 마음은 모르는 채, 숲속에서는 짐승들끼리 큰일이 벌어졌고, 쥐떼는 ‘하늘에서 떨어진 밥 선물’을 고맙게 먹습니다. 누군가한테는 안타까운 일이 누군가한테는 고마운 일이 되기도 합니다. 마음을 느긋하게 추슬러서 ‘잃은 치즈덩어리야 어디로 가겠니, 숲속 짐승들이 먹겠지. 우리는 하늘에 걸린 저 달을 보며 아름다움을 생각하자’고 아버지가 아이를 달래었을 수 있습니다. 거꾸로, 아이가 아버지를 달래며 ‘우리 저 아름다운 달을 보면서 잊어요. 그러고 보니 저 달이 우리 치즈하고 꼭같은 빛깔이네요’ 하고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다람쥐네도 ‘달로 여기는 치즈덩어리’ 때문에 생긴 일을 얼른 마무리하고 걱정없이 자기 삶으로 돌아가기를 바라겠지요. (4341.6.24.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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꺼벙이로 웃다, 순악질 여사로 살다 : 길창덕 - 오마주아 총서 004
박인하 지음 / 하늘아래 / 2002년 12월
평점 :
절판



 만화를 삶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나라에서
 [잠깐 읽기 6] 박인하, 《꺼벙이로 웃다, 순악질 여사로 살다》(길창덕 비평)


- 책이름 : 꺼벙이로 웃다, 순악질 여사로 살다
- 글 : 박인하
- 펴낸곳 : 하늘아래(2002.12.2.)
- 책값 : 12000원


 (1) 만화와 우리 삶


 만화를 즐기는 사람은 많은 우리 나라이지만, 만화를 이야기하는 사람은 좀처럼 많지 않았고, 만화를 이야기하는 책도 몇 가지 나오지 않았습니다. 만화를 이야기하는 일은 ‘평론’ 대접을 못 받기도 했지만, 만화라는 갈래가 ‘만화 문화’나 ‘만화 예술’이나 ‘만화 삶’으로 우리 사회에 찬찬히 받아들여지지 못한 탓이 조금 더 크지 않으랴 싶습니다.

 더구나 ‘만화 = 나쁜 볼거리’라는 생각이 어느 때부터인가 우리 사회에 퍼지기도 했습니다. 만화를 그리는 어른은, 그리는 사람대로 손가락질과 푸대접을 받는 데에다가, 정보ㆍ수사 기관에 끌려가기도 했습니다. 만화를 즐기는 사람(어른 아이 모두)들 또한, 덜 떨어진 사람이라는 손가락질에다가, 공부는 안 하고 딴 짓이나 한다는 핀잔에다가, 교육에 나쁘다는 엉터리 같은 화살을 맞으면서 고달파야 했습니다.

 이러는 가운데 만화는 만화라는 고유한 이름을 못 쓰면서 ‘명랑만화’가 되고, ‘학습만화’로 갈라지고, ‘성인만화’ 딱지를 받기도 합니다.


.. 그러나 성인 만화는 1950년, 한국전쟁 이후 5ㆍ16쿠테타와 군사정부에 의한 검열로 인해 채 꽃망울도 맺지 못한 채 사라지게 되었다. 이 야만적인 검열 행위는 대중적 전파력이 뛰어난 만화를 ‘아동용’이라는 족쇄에 옭아매어 이 땅에서의 만화 문화의 발전을 가로막았다 … 그의 부푼 기대는 곧 현실의 벽에 부딪쳤다. 길창덕을 가장 괴롭힌 것은 대중들에게 가장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신문 만화에 대한 권력의 감시와 탄압이었다. 조금만 비판적인 만화가 나오면 정보 기관(당시는 중앙정보부였다)에서 전화가 오는가 하면, 때로는 임의 동행 형식으로 불려가기도 했다 ..  (94, 109쪽)


 우리 사회는 예나 이제나 민주주의 나라가 아니라고 느낍니다. 자유가 없고 평등이 없으며 평화와 통일은 꿈 같은 이야기라고 느낍니다. 빈부차별은 버젓이 일어날 뿐더러, 학교와 집에서도 차별을 가르치고, 어른들은 아이들한테 일찍부터 경쟁과 따돌림을 몸에 익히도록 가르칩니다. 동무들과 살가운 벗이 되도록 하려는 집안이 없기에, 아이들이 골목이나 고샅에 나와도 함께 뛰놀며 어깨동무를 할 수 없습니다. 놀 시간이 없는 아이들한테는 동무나 이웃을 돌아볼 마음마저 없어집니다.

 학교라고 해서 다른 수를 내지는 않는다고 느낍니다. 지금 우리네 학교에서 아이들을 맡아 가르치는 분들부터, 초중고등학교와 대학교를 거치는 동안 ‘놀이를 가까이한’ 사람이 몇이나 있을는지요. 교과서와 문제집을 붙들고 시험점수와 학과점수 높이는 데에만 마음을 기울인 분들이 아니었나요. 교과서 진도에서 홀가분하지 못하는 가운데, 아이들하고 함께 읽을 책을 스스로 찾아서 읽은 교사가 몇 분이나 있을까 모르겠습니다. 초등학교 교사를 꿈꾸면서 어릴 적부터 어린이책을 꾸준히 찾아 읽으며 마음을 닦은 교사가, 중고등학교 교사를 꿈꾸면서 어릴 적부터 청소년책을 줄기차게 찾아 읽으며 얼과 넋을 다스린 교사가 몇 분이나 될는지요.

 오늘날 교사들은 자기가 맡아 가르치는 아이들 삶과 마음을 굽어살피지 못할 뿐더러, 아이들이 즐겨 뛰놀 틈을 내어주지 않습니다. 그리고, 아이들이 스스로 느긋하게 뛰어놀도록 자리를 마련하지 않습니다. 머리통만 무겁게 합니다. 책과 땀이 고루 어우러질 수 있도록 이끌지 못합니다.


.. 결국 원고가 누더기가 될 때까지 매달리는 길창덕의 작가정신과 빨리 책 한 권을 뽑아야 하는 단행본 만화의 생리는 도저히 일치할 수 없었다. 결국 길창덕은 1967년도를 끝으로 더 이상 단행본 만화를 그리지 않았다 ..  (69쪽)


 집에서 뛰놀지 못하는 아이들이 학교에서라도 뛰놀면 좋으련만, 집에서 뛰놀지 못하는 터전인 사회에서는 학교에서도 뛰놀지 못하리라 봅니다. 부모들 일터가 집하고 거리가 먼 곳에서 오로지 돈버는 데에만 치우쳐 있을 뿐, 이웃과 어울리면서 함께 일하고 함께 벌고 함께 나누는 쪽으로는 가지 못합니다. 부모들이 서로서로 어울리면서 함께 땀흘려 일하고 함께 보람을 거두는 곳이 될 때에는, 부모들 일터는 집하고 멀리 떨어진 곳까지 가지 않습니다. 그리고, 아이들은 부모들 일터와 가까운 데에서 서로서로 동무를 사귀면서 함께 뛰놀 수 있습니다.


.. 간단한 선으로 이루어진 캐릭터들은 ‘간단’하기 때문에 그만큼 많은 독자들에게 동질성을 선사한다. 근육질로 멋진 캐릭터들은 배가 나온 평범한 우리들과 동질성을 공유하기 힘들다. 하지만 3등신의 명랑만화의 캐릭터들은 많은 사람들에게 ‘나의 모습’으로 받아들여진다 ..  (116쪽)


 이와 같은 우리 사회에서 만화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만화는 무엇을 보여줄 수 있었을까요. 만화로 나눌 수 있는 이야기는 얼마나 우리 삶으로 파고들 수 있을는지요.




 (2) 길창덕 님 만화


 어제에 이어 오늘도 이불 빨래를 합니다. 요사이 장마철이라고는 하지만, 웬걸 비가 아닌 햇볕만 쨍쨍이기에, 겨우내 묵혀 두었던 빨래감을 꺼내어 날마다 한 채씩 빱니다.

 여느 빨래와 달리 이불 빨래는 힘들고 고단합니다. 이불을 다 빨고 나면 팔힘이 쪼르르 빠집니다. 그렇지만, 후들거리는 팔로 빨래줄에 이불을 척 걸쳐놓고 아랫단 물을 쪽쪽 짜 준 뒤 햇볕에 자글자글 말라 가는 모습을 보며 이마에 흐르는 땀을 훔치면 더없이 개운합니다. 힘이 들어도 이 맛으로 이불을 손으로 빤다고, 나중에 아이하고 이불을 함께 빨면 이 느낌과 맛을 살며시 물려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빨래를 해 주는 기계를 썼다면, 팔힘은 거의 안 듭니다. 꾹꾹 눌러서 짜 주기도 하니, 물짜기 걱정도 없습니다. 널어 놓을 자리로 옮기면 그만입니다. 그러나, 빨래기계를 쓰면, 이불 한 채를 빨 때 물이 얼마나 드는가를 모릅니다. 이불을 빨면서 어디가 더러워져 있는지, 얼마만큼 깨끗해지고 있는지를 느끼기 어렵습니다. 손빨래를 하면 씻는방에서 이불을 헹구며 나오는 물로 바닥과 벽도 닦을 수 있으나, 빨래기계를 쓰면서 바닥 청소를 할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팔다리를 부지런히 놀려야 하니 얼마나 큰 운동이 되는지요.

 시간? 빨래기계를 돌리면 시간을 아낄 수 있다고 생각할지 모르나, 기계를 돌리는 만큼 써야 하는 전기값은 따로 일해서 벌어야 하고, 빨래기계 값은 누가 거저로 주지 않습니다. 손빨래는 몸뚱이와 비누 한 장이면 넉넉합니다. 돈도 품도 운동도, 또 삶도 가꾸어 줍니다.


.. “한번은 운전면허를 따러 자동차 교습소에 가려고 버스를 탔는데, 차장 아가씨가 나에게 아는 체를 하는 거예요. 혹시 만화 꺼벙이를 그리시는 분이 아니냐고. 그렇다고 했더니 그 차장 아가씨가 너무 반가워하더군요. 목적지에 다 와서 내리려고 하는데 그 차장 아가씨가 뭔가를 내 손바닥에 쥐어 주는 거예요. 엉겁결에 받아쥐고 버스에서 내려 손을 펴 보니 토큰 하나가 들려 있어요. 반가운 마음에 뭔가를 주고 싶은데, 줄 게 없으니까 토큰을 되돌려준 거지요. 이게 얼마나 값진 선물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엄격한 의미에서 말하면, 장물이었겠지만, 참 이상하게도 보건소나, 동사무소, 시장 골목 같은 삶의 구비에서 마주친 사람들이 나를 항상 기억해 주었어요.” ..  (길창덕 님 말/26쪽)


 책꽂이에서 길창덕 님 만화 몇 가지를 꺼내어 들춥니다. 만화 이야기를 쓰는 박인하 님 책 《꺼벙이로 웃다, 순악질 여사로 살다》에 사이사이 나오는 대목을 살펴봅니다. 길창덕 님은 당신이 살아가는 모습과 당신 이웃 삶을 넘겨다본 모습을 만화에 담았습니다. 1960년대 만화에는 1960년대 삶이 묻어납니다. 1970년대 만화에는 1970년대 삶이 담깁니다. 1980년대 만화에는 1980년대 삶이 펼쳐집니다.

 지난날 도시(서울) 골목길이 어떠한지, 골목집들 살림이 어떠한지, 마당이며 골목이며 부엌이며 마루며 방이며 어떠한지 찬찬히 드러납니다. 아이들 놀이가 만화에 고스란히 나타납니다. 어른들 매무새가 만화에 하나하나 보여집니다. 어머니가 앞치마를 두르고 무릎걸음으로 마루를 걸레로 훔치는 모습 옆으로는 담배를 입에 물고 텔레비전을 켠 채 신문을 보는 아버지가 나옵니다. 그때는 이런 삶이었습니다. 이런 삶이 남김없이 만화에 담겼습니다. 그러면서, 이와 같은 삶터에서 자기 깜냥껏, 주제껏, 재주껏, 마음껏 꿈을 꾸면서 생각을 키우고 사람을 만나며 놀이를 즐기고 어수룩하지만 공부도 하는 꺼벙이며 덜렁이며 쭉쟁이며 재동이며 고집세며 이야기를 엮어 갑니다. 다 다른 아이들은 다 다른 삶을 찾아서 다 다른 이야기를 풀어놓습니다.

 문득, 사람들은 길창덕 님 만화를 놓고 ‘명랑만화’라는 이름을 붙였지만, ‘명랑’이라는 말보다는 ‘생활’이라는 말을 붙이는 ‘생활만화’가 한결 어울리지 않으랴 싶습니다. 삶이 묻어나는 만화, 삶이 담기는 만화, 삶을 녹여낸 만화, 삶을 가꾸어 가는 만화를 길창덕 님이 그려 나가지 않았으랴 싶습니다.

 길창덕 님 스스로 ‘나는 내 삶과 내 이웃 삶과 내 아이 삶을 그렸다’고 내세우지 않더라도 길창덕 님 만화를 보는 사람들은 ‘우리 삶이 여기에 다 있군요’ 하고 느끼면서 즐길 수 있습니다. ‘우리는 누구나 자기 삶을 헤아리면서 찾고 가꾸면서 일구어 가면서 오순도순 이야기를 나누면서 살아가는군요’ 하고 느끼면서 책장을 넘길 수 있습니다. (4341.6.23.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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