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나누는 기쁨 ㉦ 사진문화와 사진예술
 ― 좋은 삶에서 길어올리는 사진꽃



 사람들은 사진을 잘 찍고 싶어 할 까닭이 없습니다. 사람들은 돈을 많이 벌어야 할 까닭이 없습니다. 사람들은 얼굴이 예뻐야 할 까닭이 없습니다. 사람들은 어떠한 일이든 빨리빨리 해내야 할 까닭이 없습니다. 사람들은 대학교를 나와야 할 까닭이 없습니다. 사람들은 영어를 솜씨있게 해야 할 까닭이 없습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제 결대로 살아갈 수 있으면 됩니다. 제 목숨을 보배롭게 여기면서 즐거이 살아가면 넉넉합니다. 저마다 사랑하는 사람을 곁에 두면서 저마다 사랑하는 마을에서 저마다 사랑하는 보금자리를 알뜰살뜰 일굴 수 있으면 좋습니다. 누구나 웃음과 눈물이 어우러진 삶자락을 누리면서 어깨동무를 할 때에 아름답습니다.

 이 나라에는 사진문화가 없습니다. 사진문화란 사진만 헤아리는 문화가 아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사진만 헤아리더라도 이 나라에는 사진 또한 없습니다. 더욱이 문화라 할 만한 모습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삶이 있기에 문화라는 이름을 붙이고, 삶이 있을 때에 문화가 비로소 태어납니다.

 전통문화란 여느 자리에서 수수한 사람들이 오순도순 꾸린 삶입니다. 김치이든 된장이든 시래기이든 콩국수이든, 잘나거나 대단한 사람들이 잘난 재주나 대단한 재주로 자랑하던 모습이 아닙니다. 밥이건 집이건 옷이건 노래이건 춤이건, 하늘에서 똑 떨어지거나, 사람들 살림살이나 마을에서 동떨어진 채 퍼지는 문화나 예술이란 없습니다. 그저 여느 삶이고 그예 수수한 사람이 어디에서나 나눈 전통문화입니다.

 짚신, 소쿠리, 삽짝, 온돌, 이엉, 질그릇, 멧돌이란 전통문화이면서 생활문화라고도 하지만, 이런저런 이름이란 부질없이 ‘삶’ 한 가지입니다. 삶이었고 삶이며 삶으로 이어가기에 ‘전통’입니다. 따로 ‘전통’이라는 앞머리를 붙일 까닭이 없이 삶이요, 삶이기에 학자들은 전통이라든지 문화라든지 예술이라든지 이름을 거듭 붙입니다. 도자기를 굽든 그림을 그리든 장구를 치든 굿을 하든 무어를 하든 인간문화재나 예술이나 문화이기 앞서 노상 삶입니다. 언제나 삶인 가운데 더욱 알뜰히 즐긴 이야기입니다.

 사진문화가 있다 한다면 사진이 삶으로 녹아들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사진예술이 있다 한다면 사진이 삶으로 꽃피운다는 소리입니다.

 나랑 너랑 우리, 그러니까 모든 사람들이 수수한 터전에서 조촐하게 어우러지면서 즐기는 삶인 사진일 때에 사진문화이면서 사진예술입니다. 이른바 ‘순수문화’나 ‘순수예술’이란 없습니다. ‘순수삶’부터 없기 때문입니다.

 ‘순수식사’란 없습니다. ‘순수육아’라든지 ‘순수살림’이라든지 ‘순수직장인’ 또한 없습니다. 어느 한 가지만 해서 되는 삶이란 없습니다. 어느 한 가지만 해서 되는 삶이란 기계와 같습니다. 어느 한 가지만 해도 되는 삶이란 사람이 사람다이 꾸리는 삶이 아닙니다.

 집 바깥에서 돈만 벌어들이면 되는 아버지 노릇이나 어머니 구실이 아닙니다. 집 안쪽에서 식구들끼리 이야기꽃을 피우면서 도란도란 생각과 꿈을 나누어야 비로소 어버이 노릇이요 딸아들 구실입니다. 밥하는 사람 따로 밥먹는 사람 따로일 때에는 집살림이 엉터리입니다. 함께 밥을 차리고 함께 밥상을 치우며 함께 마루에 둘러앉아야 합니다. 한 집안 식구가 다 같이 돌보는 아이입니다. 한 집안 식구가 모두 사랑하며 보살필 늙은 할머니 할아버지입니다.

 사람은 부속품이나 톱니 하나가 아닙니다. 사람은 늘 사람입니다. 공장에서 어느 한 가지 일만 해도 된다거나, 회사에서 무슨 한 자리만 지키면 된달지라도, 사람은 사람입니다. 말을 하고 귀로 들으며 몸을 움직이는 가운데 따사롭거나 너그러운 마음결을 고이 건사하는 살아숨쉬는 목숨인 사람입니다. 누군가한테 아버지나 어머니요, 누군가한테 딸이나 아들인 고운 한 사람입니다.

 오늘 이 나라에서는 수많은 사람들이 저마다 곱거나 착하거나 참다운 사람답게 대접받지 못합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예쁜 한 사람으로 사랑받기보다는, 졸업장이나 자격증이나 명함으로 다루어집니다. 경제개발을 이루어야 하는 톱니바퀴로 여겨집니다. 사람이 부속품처럼 나뒹구는 이 나라에서는 사진이란 어쩔 수 없이 부속품 구실을 합니다. 사람이 사람다이 홀가분하면서 아름다울 때에는 사진이란 한결같이 홀가분하면서 아름답습니다. 돈벌 생각만 하거나 돈벌 일만 하는 사람이 사람다울 수 없듯, 사진문화만 생각하거나 사진예술만 살필 때에는 문화도 예술도 못 될 뿐더러 사진부터 되지 않습니다. 사진찍기만 한대서 사진이 되지 않을 뿐더러 사진문화가 되지 못하고, 사진읽기(비평)만 한대서 사진이야기가 되지 않을 뿐 아니라 사진예술이 될 수 없습니다.

 집살림 꾸리는 돈은 돈대로 벌면서 집식구랑 살가이 어울리는 가운데 내 삶 그대로 사진을 하면 됩니다. 먹고살기 팍팍해서 ‘사진찍기’나 ‘사진읽기’는 젖혀 놓은 채 돈벌이만 한다면, ‘사진을 찍어서 돈벌이를 한다’고는 하더라도 ‘돈벌이를 할 뿐’이지 ‘사진을 찍는다’고 말할 수 없어요. 오늘날 신문·잡지사 사진기자가 수두룩하게 많기는 많으나, 돈벌이를 하는 사진기자만 있지 사진을 하는 사진기자는 몹시 드뭅니다. 스튜디오이든 사진관을 차린 이들 또한 돈벌이로 사진기를 매만지지, 삶을 헤아리며 사진을 찍는 사람은 매우 적어요.

 내 아이를 사랑하며 즐거이 돌보는 가운데 담는 사진 한 장이랑, 사진관에 찾아가서 예쁘장한 옷을 입히고 예쁘장하게 웃으라 하면서 찍는 사진 한 장이랑, 서로 견줄 수 없습니다. 서로 견줄 만한 값이 아닙니다. 무언가 뜻있는 모습을 보여주는 모델을 앞에 세워 놓고 사진기를 드는 사진 한 장이랑, 스스로 알차거나 다부지거나 씩씩하거나 즐거이 삶을 일구는 사람을 살가이 사귀면서 스스럼없이 사진기를 쥐는 사진 한 장이랑, 둘을 나란히 놓을 수 없습니다. 둘은 나란히 놓을 높낮이가 안 됩니다.

 사진문화나 사진예술을 살피려 한다면, ‘좋은 사진문화’나 ‘아리따운 사진예술’이 꽃피우는 나라나 겨레가 어떠한 모습인가를 살필 수 있어야 합니다. 사진을 즐기는 한 사람이 살아가는 터전에 따라, 이 사진쟁이 한 사람이 살아가는 터전(마을)에서 어떠한 보금자리를 일구며 삶을 즐기는가에 따라, 사진은 문화도 되고 예술도 됩니다. 좋은 삶에서 좋은 사진이 태어나기 때문입니다.

 ‘좋은 사진’만 따로 있지 않습니다. ‘좋은 문화’나 ‘좋은 예술’만 덩그러니 태어나거나 샘솟지 않습니다. 어느 한 가지 틀만 좋을 수 없습니다. 이렇거나 저렇거나 해야 좋은 삶이 아닙니다. 좋음이란 다 다름입니다. 다 다른 자리에서 다 다른 꽃을 피워 다 다른 열매를 맺고 다 다른 맛을 즐길 때에 좋음입니다. 호박꽃은 호박을 맺고 오이꽃은 오이를 맺으며 수세미꽃은 수세미를 맺습니다. 호박은 호박이어서 좋고 오이는 오이여서 좋으며 수세미는 수세미여서 좋습니다.

 잘 찍는 사진 한 장이란 없습니다. 사진을 잘 찍는 길이란 없습니다. 사진을 잘 찍자며 가르치거나 배울 학사과정이나 강의란 없습니다. 다 다른 사람들은 다 다른 자리에서 다 다르게 즐거우면서 좋은 사진을 당신 삶으로, 내 삶으로, 우리 삶으로 받아안으며 펼칩니다.

 잘 찍어 선보이는 사진이 없듯, 잘 찍어야 할 사진이 없습니다. 저는 제 아이랑 짝꿍을 굳이 잘 찍어야 하지 않습니다. 제 아이는 제 아이답게 찍으면 되고, 제 짝꿍은 제 짝꿍대로 찍으면 됩니다. 제가 살아가는 대로 제 아이를 바라보며 제 아이 삶을 사진으로 담습니다. 제가 일구는 살림살이대로 제 짝꿍을 마주하며 제 짝꿍 한삶을 사진으로 옮깁니다.

 내 됨됨이에 따라 내 삶이 달라지고, 달라지는 내 삶에 따라 사진 또한 달라집니다. 내가 먼저 고운 됨됨이가 되어 아름답게 살아가는 가운데 사진을 해야, 눈물을 흘릴 만큼 좋은 사진을 얻습니다. 나 스스로 착한 마음가짐으로 아리땁게 살아가는 가운데 사진을 즐겨야, 웃음꽃 흐드러질 만큼 기쁜 사진을 얻습니다.

 사진을 하는 내가 아니라, 참답고 착하며 곱게 살아가는 사람인 나로서 사진을 맞아들일 노릇입니다. 사진문화를 말하는 내가 아니요, 사진문화를 북돋우는 내가 아니라, 살붙이랑 이웃이랑 동무랑 따숩게 껴안을 줄 아는 예쁜 사람인 나로서 사진을 곰삭일 노릇입니다.

 저는 아이를 키우고 옆지기를 사랑하며 멧골자락 조그마한 집에서 시골 도서관을 꾸리며 살아가는 한 사람으로서 글을 쓰고 사진을 찍습니다. 제가 하는 사진이라면 제 삶에 따라 하는 사진입니다. 제가 좋아하거나 바라보는 사진이라면 제 삶자리에서 바라보며 좋아하는 사진입니다.

 ‘내가 대통령이라면’이나 ‘나한테 돈 10억이 들어온다면’처럼 덧없는 꿈을 꿀 일이란 없습니다. 나로서는 ‘딸아이 아빠로서’ 오늘 하루를 생각하고, ‘집살림 일구는 남편으로서’ 오늘 하루를 헤아리며, ‘시골마을 사람으로서’ 오늘 하루를 되뇝니다. ‘작가’라든지 ‘비평가’로 살필 사진이 아닙니다. 한 사람으로서 돌아보고, 사랑스러운 한 사람으로서 되돌아보며, 사랑받는 한 사람으로서 뒤돌아보는 삶인 가운데 사진입니다.

 이 나라에 내 삶을 내 삶대로 착하고 참다우며 곱게 즐기는 사람들이 조금 더 늘거나 조금 더 자리를 잡거나 조금 더 신나게 사진잔치를 마련하거나 사진책을 내놓을 때에, 아주 보드랍고 따사로이 사진문화가 꽃을 피고 사진예술이 무럭무럭 봄바람 꽃내음을 실어나릅니다. (4344.1.10.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1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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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을 사랑하는 아이


 글을 쓰는 아빠 곁에는 글을 쓰는 아이가 있습니다. 좋은 책을 알아보며 읽으려 하는 아빠 곁에는 좋은 책을 알아보며 읽으려는 아이가 있습니다. 셈틀을 켜 놓은 책상맡에서 자판을 또각거리는 아빠 곁에는 나란히 셈틀 앞에 앉아 자판을 또각거리고파 하는 아이가 있습니다. 얌전히 앉아 밥을 먹는 아빠 곁에는 얌전히 앉아 밥을 먹으려는 아이가 있을까요. 글쎄, 아이는 밥 먹을 때만큼은 참으로 말을 안 듣지만, 배고픈 때에 맞추어 알맞게 밥을 해서 차려 놓으면, 배가 찰 때까지 얌전히 잘 받아 먹어 줍니다.

 사진을 찍는 아빠 곁에는 함께 사진찍기 놀이를 하고픈 아이가 있습니다. 골목을 거니는 아빠 곁에는 함께 손잡고 골목마실을 하고픈 아이가 있어요.

 아이는 아빠 곁에서 삶을 배웁니다. 아이는 손재주나 말재주나 몸재주를 배우지 않습니다. 아이는 오로지 삶을 배웁니다. 제 아빠가 미운 삶을 일군다면 미운 삶을 배우고야 맙니다. 제 아빠가 고운 말을 사랑한다면 고운 말을 알알이 받아들입니다. 제 아빠가 착한 나날을 보낸다면 아이 또한 시나브로 착한 나날을 보낼 테지요.

 그러나 아이 곁에는 아빠만 있지 않습니다. 아이 곁에는 엄마랑 할머니랑 할아버지랑 이웃이랑 동무가 있습니다. 아이는 아빠 곁에서만 놀지 않습니다. 더 눈길을 끌거나 더 눈길을 사로잡는 데로 쏠리거나 휘둘리거나 휩쓸립니다. 우리 집에서는 텔레비전을 안 보지만, 어느 집에 가거나 어느 밥집에 들어가거나 텔레비전 없는 데가 없습니다. 아이는 텔레비전 켜진 데에서 발길을 떼지 못할 뿐더러, 텔레비전이 있는 집에서는 아빠가 열 번을 부르건 백 번을 부르건 쳐다보지도 않습니다.

 좋은 책을 알아보는 사람은 좋은 넋으로 살아가는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만, 좋은 넋으로 일구는 좋은 삶이란 무엇일까 알쏭달쏭합니다. 좋은 넋으로 좋은 살림을 일구지 않을 때에는 좋은 책을 알아보지 못한다고 느끼지만, 좋은 넋이란 또 무엇이고 좋은 살림이란 또 무엇이며 좋은 책이란 참말 무엇인지 아리송합니다.

 텔레비전 앞에서 방방 뛰며 눈을 못 떼는 아이 곁에 선 아빠는 눈을 지긋이 감습니다. 텔레비전 없는 우리 멧골집으로 돌아가기 앞서까지는 어찌하는 수 없습니다. 서울에 볼일을 보러 와서 전철을 타고 움직일 때에도 가야 하는 데까지 그예 가야지, 사이에서 내릴 수 없습니다. 밀고 밟으며 치는 사람들한테 시달리면서, 아이 또한 시달려야 합니다. 매캐한 바람을 아이도 마셔야 합니다. 복닥거리고 시끄러운 소리를 아이도 들어야 합니다.

 서울이라고 착하거나 참답거나 고운 사람이 없을 수 없습니다. 서울이든 대전이든 제주이든 착하거나 참답거나 고운 사람은 늘 있어요.

 그러나 이대로 좋으려나요. 이대로 이 나라 이 터전 이 나날이 괜찮으려나요. 서울 홍제동에 자리한 헌책방 〈대양서점〉에서 《한국인의 정서》(우석,1981)라는 묵은 책 하나를 이천 원쯤 주고 장만했습니다. 글을 쓴 하종갑 님은 경남일보라는 지역신문 기자입니다. 서울에서 살며 서울 이야기를 쓰는 기자가 낸 책이었을 때에도 《한국인의 정서》 같은 책이 잊히거나 묻히거나 안 읽혔을까 궁금하지만, 서울에서 살며 서울 이야기를 쓰는 기자는 《한국인의 정서》 같은 책을 처음부터 생각조차 하지 않으며 쓸 수조차 없으리라 봅니다. 아니, 이런 책이 나왔어도 읽어서 기쁘게 삭이며 즐거이 느낌글 하나 기사로 쓰지 못했겠지요.

 우리 아이가 글을 사랑하는 아이로 무럭무럭 자라 주면 좋겠습니다. 아빠부터 글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살아야겠지요. 우리 아이가 착한 마음씨를 보듬는 아이로 예쁘게 크면 고맙겠습니다. 아빠부터 착한 마음씨를 아끼는 사람으로 살아야겠지요. 오늘 하루도 아빠는 손에 물이 마를 겨를 없이 신나게 빨래를 합니다. (4344.1.9.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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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글쓰기 삶쓰기 ㉡ 글짓기랑 글쓰기


 《몽실 언니》라는 동화책 읽은 동무 있나요? 진작에 읽었다구요? 읽으라는 소리는 자주 듣는데 아직 못 읽었다구요?

 저는 《몽실 언니》라는 동화책을 1998년 1월에 처음 읽었어요. 1984년에 나온 《몽실 언니》인데, 아저씨는 자그마치 스물네 살 나이에 이 동화책을 비로소 알아보았답니다. 아저씨는 강원도 양구 산골짜기에서 군대살이 스물여섯 달을 보냈어요. 1995년 11월에 눈바람 맞으며 군대에 가서, 1997년 12월에 똑같이 눈바람 맞으며 군대를 떠났어요. 그런데 아저씨가 군대를 떠나 사회로 돌아온 1998년 1월은 새로운 대통령이 뽑힌 때이기도 하지만, 한창 국제통화기금이다 뭐다 하면서 편의점 알바이니 술집 알바이니 하는 일자리마저 없던 때예요. 군대에서 늘 하던 삽질 솜씨를 살려 막일꾼으로 일감을 찾아보고자 했지만, 이마저도 없었어요. 스물여섯 달 동안 산골짜기 깊은 데에서 외롭게 지내다가 사회로 돌아온 만큼 몸과 마음을 쉬고팠는데, 나라가 어수선하다 보니 여러모로 눈치밥을 먹어야 했어요. 군대에서 막 나온 몸으로 주머니에 돈이 있나, 집에서 돈 몇 푼 얻을 수 있나, 하는 수 없이 헌책방을 찾아가 여러 시간 조용히 책을 읽는데, 이때에 《몽실 언니》라는 동화책이 제 눈에 번쩍 뜨였습니다.

 우리 말사랑벗님들이라든지 말사랑벗님들 언니나 누나나 동생들은 《몽실 언니》를 초등학생 무렵에 처음 만나겠지요. 조금 늦으면 중학생이나 고등학생 나이에 만날 테고요. 그런데 저는 스물네 살이 되어서야 만났어요. 이무렵 《몽실 언니》를 처음 만나며 다른 어린이책을 하나하나 찾아 읽었어요. 그리고 더없이 슬퍼 눈물을 흘렸습니다. ‘왜 나는 내가 열두어 살 나이에 이 책을 만날 수 없었을까? 왜 나한테는 내 나이에 걸맞을 어린이책 하나 쥐어 주는 어른이 없었나?’ 생각했어요.

 앞서 말씀드렸듯이 저는 어린 날부터 학교에서 끝없는 베껴쓰기 숙제와 글짓기 숙제에 시달렸습니다. 그런데 《몽실 언니》를 읽고 나서는 속에서 자꾸자꾸 무언가 터져나오더군요. 책을 다 읽고 맨 끝자리 빈 종이에 ‘책을 읽으며 북받친 느낌’을 깨알같은 글씨로 촘촘히 적바림했어요.

 누가 읽으라 건넨 책이 아니고, 누가 쓰라 한 글이 아니었습니다. 그예 눈길이 꽂혀 읽은 책이요, 그저 마음으로 우러나며 쓴 글이었어요. 바야흐로 ‘글쓰기’를 몸으로 깨달은 셈입니다.

 이제 거의 모든 학교에서는 ‘글짓기’라는 이름을 안 쓰고 ‘글쓰기’라는 이름을 써요. ‘글쓰기’라는 낱말은 ‘글짓기’라는 낱말과 함께 낱말책에 곱게 실려요. ‘글쓰기’라는 낱말이 낱말책에 실린 지는 얼마 안 되었지만, 동네 조그마한 학원조차 “글쓰기 학원”이라 하지 “글짓기 학원”이라 하지 않아요. 글을 짓는 일이 얄궂거나 나쁜 일은 아니지만, 이제는 어느 누구도 섣불리 ‘글짓기’라는 낱말은 안 쓰려 해요.

 왜냐하면, 아저씨가 초·중·고등학교를 거치며 지겹도록 해야 했던 억지스러운 ‘글짓기’ 숙제하고 맞물리기 때문이랍니다. 글을 짓는 일은 “억지스레 머리로 쥐어짜듯 뱉어내는 글”이 되기에, 이 글을 쓰는 어린이나 푸름이나 어른이나, 제 꿈과 마음과 넋을 오롯이 담지 못한다고 여기기 때문이에요.

 ‘글쓰기’는, 글을 쓰려는 사람 누구나 스스로 살아가는 넋과 꿈과 마음을 차근차근 적바림하는 일이라고 해요. 이 낱말은 지난 2003년에 숨을 거둔 이오덕 선생님이 1960년대에 처음으로 쓰면서 퍼졌어요. 이오덕 선생님도 1950년대에는 ‘글짓기’라는 낱말을 똑같이 쓰셨지만, 학교에서 벌어지는 억지스럽고 모질며 틀에 박힌 수업으로 짓누르는 ‘글짓기’는 아이들 마음밭을 살찌우지 못한다고 여기셨어요. 아이들 마음밭을 살찌우면서, 아이들이 스스로 한결 씩씩하고 싱그러운 얼을 키우는 슬기를 빛내도록 돕고 싶어, 낱말부터 ‘글쓰기’라는 이름을 새로 일구어서 쓰셨습니다. 옳고 바른 마음가짐으로 착하고 참다우며 고운 이야기를 나누려는 글쓰기 나누기를 마흔 해 남짓 한 끝에 우리들은 오늘날 즐겁고 홀가분하게 ‘글쓰기’를 할 수 있답니다.

 여기에서 우리들은 곰곰이 생각할 수 있어야 해요. 이름은 ‘글쓰기’로 고쳤지만, 예전과 똑같이 억지스러우면서 모질고 틀에 박힌 채 벌어지는 글쓰기 수업이나 교육이라 할 때에는 ‘옛날 글짓기’하고 마찬가지예요. 이름은 허울이 아니거든요. 이름이 제아무리 좋다 하더라도 알맹이가 엇나가거나 비뚤어지면 도루묵이 되고 말아요. 이름부터 제대로 쓰도록 힘써야 하는 가운데, 속살 또한 제대로 여물도록 마음을 쏟아야 합니다.

 그래서, 이제는 ‘글쓰기’와 함께 ‘글짓기’ 마음가짐을 새삼스레 헤아릴 줄 알아야 하지요. 글쓰기는 이오덕 선생님이 얘기하고 나누며 뿌리내리도록 했듯, 꾸밈없는 삶이 꾸밈없는 넋이 되어 꾸밈없는 말글로 태어나도록 하는 일입니다. 글짓기는 글을 짓는 일이라고 했지요? 글을 짓는 일이란 무엇일까요? ‘짓는’ 일이란 또 어떤 일일까요?

 글쓰기와 함께 글짓기도 바른 제자리를 찾아야 한다고 느껴요. 우리들은 ‘마음쓰기’를 하듯이 ‘글쓰기’를 하고, ‘농사짓기’를 하듯 ‘글짓기’를 할 때에 더없이 알차며 아름다울 수 있지 않겠느냐 생각해요.

 한자말로는 ‘배려(配慮)’라고 하는데, 우리말로는 ‘마음쓰기’예요. 말사랑벗님, 낱말책에서 ‘배려’라는 한자말을 찾아보셨어요? 한번 찾아보셔요. 말풀이를 보면 “마음을 씀”이라고 적혔답니다. 남다른 뜻이나 느낌을 담은 낱말 ‘배려’가 아니에요. 누구나 쉽게 아는 말 ‘마음쓰기’를 한자로 옮겨적을 때에 바로 ‘배려’랍니다. 꾸밈없이 마음을 쏟아 이웃을 아끼거나 사랑한다 할 때에 ‘마음쓰기’예요. 이 매무새 그대로 글을 쓴다면 ‘글쓰기’예요.

 농사를 짓는 마음가짐을 곰곰이 헤아려 보셔요. 우리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우리 어머니와 아버지를 사랑하고 아끼는 넋 그대로 몸소 땅을 일구고 갈며 씨를 뿌려 건사하고 갈무리합니다. 이렇게 갈무리한 곡식을 찧고 일고 씻고 냄비에 안쳐서 구수한 밥을 짓습니다. 농사를 지어 밥을 짓고 글을 짓습니다. 농사짓기란 밥짓기로 이어지고, 밥짓기는 다시 글짓기로 이어가요. 저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글짓기’ 다음으로 ‘사랑짓기’로 이어 보곤 합니다. 다른 자리라면 ‘노래짓기’나 ‘옷짓기’, 또는 ‘책짓기’나 ‘마을짓기’로 이을 수 있어요.

 말을 살리는 길이란 넋을 살리는 길이고, 넋을 살리는 길이란 우리 삶을 살리는 길입니다.
 

(최종규 . 2011 -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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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졸음과 글쓰기


 졸려 쓰러질 판이지만 머리맡에 기저귀를 챙겨 놓아야 한다. 밤새 아이한테 갈아 줄 기저귀가 곁에 없이는 잠들 수 없다. 아침에 일어나서 맨 먼저 하는 일이란 오줌으로 젖은 기저귀하고 아이 옷가지를 빨래하기. (4344.1.8.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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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계 아닌 날씨를 보며 산다
― 데오도라 크로버, 《북미 최후의 석기인 이쉬》



- 책이름 : 북미 최후의 석기인 이쉬
- 글 : 데오도라 크로버
- 옮긴이 : 김정환
- 펴낸곳 : 창작과비평사 (1981.9.20.)



 이오덕 님이 1984년에 내놓은 책 《어린이를 지키는 문학》(백산서당) 끝자락을 보면 〈어린이의 마음을 지켰던 마지막 사람〉이라는 이름으로 《북미 최후의 석기인 이쉬》라는 책을 이야기하는 꼭지가 있습니다. 《북미 최후의 석기인 이쉬》라는 책을 제대로 읽어 제대로 말한 글은 1981년부터 2011년 오늘까지 오직 이 글 하나만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어쩌면, 책으로 묶이지 못하거나 신문·잡지 같은 데에 안 실린 채 조용히 적바림한 사랑스러운 느낌글이 있을는지 모릅니다. 구태여 누구한테 읽히려고 쓰는 느낌글이 아닌, 일기장에 살가이 적어 놓은 느낌글이 있을 수 있겠지요.


.. 캘리포니아 산기슭 언덕 지방의 샛강이나 하상에 깔린 자갈 속에 금이 들어 있다는 사실이 발견되자 처음 이주했을 때는 물방울에 불과했던 것이 강물을 이루어 산맥의 서쪽 면을 쏟아져내리게 되었다 … 그들(백인)은 비록 물방앗간샛강족은 한 명도 못 잡았지만 잡아 죽일 인디안 ‘몇 명’은 발견해야 하리라고 생각했다 … 길이 나고 목장이 들어서고, 구릉 지대로 새로 밀려드는 백인 이주민들 때문에 물방앗간샛강 지방은 갈수록 잠식당했던 것이다 ..  (64, 98, 144쪽)


 1981년에 나온 《북미 최후의 석기인 이쉬》를 쓴 ‘데오도라 크로버’ 님은 1982년에 나온 《마지막 인디언》을 쓴 ‘디오도러 크로버’ 님하고 같은 사람입니다. 어느 책이 옮게 적바림한 이름인지 모를 노릇입니다. 두 책 모두 글쓴이 이름을 알파벳으로 밝히지 않았거든요. 다만, ‘크로버’는 ‘Kroeber’로 적으며, 남편 이름은 ‘알프레드 루이 크로버’라 합니다. 알파벳 이름이 ‘Kroeber’라 한다면, 네덜란드 쪽 이름이 아닌가 싶고, 네덜란드 쪽 이름이라면 이 이름은 ‘끄루베르’로 읽어야 맞는데, 영어 투로 읽는다면 ‘크루버’입니다.

 책에는 안 나오는 이름을 인터넷으로 살펴 가까스로 ‘Theodora Kroeber’라는 알파벳 이름을 찾아냅니다. 이 알파벳 이름으로 다시금 살피니, ‘Theodora Kroeber’ 님은 1897년 3월 24일에 태어나, 1979년 7월 4일에 숨을 거두었습니다. 더욱이, ‘시오도라 크뢰버’ 님은 딸아이 ‘어슐러 K.르 귄’을 1929년 10월 21일에 낳습니다. 오늘날 한국에서 ‘어슐러 K.르 귄’은 판타지문학 작품으로 몹시 사랑받는 사람 가운데 하나입니다.


.. 1850년대는 야나족에 있어 고난으로 점철된 시기였다. 측면이 적에게 노출되자 그들은 도매금으로 노예 신세가 되거나 납치되었고, 성병으로 인한 극심한 타격 때문에 그 수가 엄청나게 줄어들었다. 이런 인접 지방의 위험으로부터 비교적 안전했던 야히족은 고기를 잡고 사냥을 하고 식량을 주워 모으던 땅을 상실하면서, 멀지않아 그들을 굶어죽게 만들 심각한 타격을 처음으로 실감하게 되었다. 사슴이나 다른 사냥감들의 수가 감소했음은 물론, 권총을 쏘는 소리(이쉬는 권총이 ‘부서지는’ 소리라고 했다)가 투석기나 활 따위가 지닌 무성무기의 장점을 짓밟아 버렸기 때문에 짐승들이 워낙 조심을 하는 터라 몰래 접근하기가 쉽지 않았다 … 인디안들은 가능한 시간, 가능한 장소에서 말·노새·소 그리고 양들을 가져갔다. 그들은 고기는 식량으로 가죽은 걸칠 것으로 만들면서 이 가축들의 어느 부분도 버리지 않았다 … 단지 살기 위해서 훔치거나 죽인 것이지, 가축 수를 늘리거나 재산을 모으려고 그랬던 것은 아니었다 ..  (88∼90쪽)


 헌책방마실을 하며 《북미 최후의 석기인 이쉬》를 곧잘 만납니다. 아주 흔한 책은 아니지만 아주 드문 책 또한 아닙니다. 헌책방 책시렁 한켠에 얌전히 꽂힌 모습을 심심찮게 마주합니다.

 그러나 이 책을 기쁘게 집어드는 사람은 썩 드뭅니다. 인류학을 하는 학자나 학생이 아니라면, 게다가 인류학을 하는 학자나 학생일지라도 책읽기를 몹시 좋아하거나 공부를 깊이 하려는 사람이 아니라면, 선뜻 이 책을 집어들지 않습니다.

 북중미 토박이들 말과 삶을 다룬 책이 그럭저럭 팔리거나 읽히곤 합니다. 북중미 토박이들이 살아오며 남긴 이야기를 바탕으로 ‘사람이 살아갈 슬기’를 얻는다고들 합니다.

 《북미 최후의 석기인 이쉬》라는 책은 ‘사람이 살아갈 슬기’를 다루지 않습니다. 북중미에서 마지막 석기사람으로 살았다 할 만한 ‘이쉬’라는 사람을 ‘박물관사람’으로 삼아 ‘보살폈다’고 하는 백인이 곁에서 지켜보고 학문으로 파헤친 이야기를 갈무리한 《북미 최후의 석기인 이쉬》입니다. 《마지막 인디언》은 《북미 최후의 석기인 이쉬》을 어린이도 알기 쉽도록 한결 부드러우며 애틋하게 엮은 동화문학입니다. 《북미 최후의 석기인 이쉬》는 이른바 보고서라 할 만합니다. 북중미 땅에서 ‘야히 겨레’가 어떻게 백인 손아귀에서 괴로워 하다가 그만 모조리 사라지고 말았는가를 차분히 들려주는 보고서라 할 수 있습니다. ‘이쉬’라는 야히 겨레 마지막 사람이 ‘야히 겨레란 어떤 사람들이었는가’를 스스로 적바림해 놓아야 한다는 ‘야히 겨레 옛사람 목소리’를 듣고 나서 스스로 박물관사람으로 지내는 자취와 삶을 곁에서 꼼꼼히 살핀 ‘적이 아니지만 동지 또한 아닌 인류학자(남편)랑 이야기꾼(아내)’이 갈무리하면서 엮어 놓은 ‘야히 겨레 역사를 다른 모습으로 담은 책’이라 해도 좋습니다.


.. 이쉬는 사냥의 어느 과정도 결코 가볍게 생각하지 않았다. 존경하는 마음으로 의식을 거치지 않고는 화살을 만지지도 않았다. 사슴 사냥을 나갈 때는 다른 의식절차도 첨가되었다. 사슴 사냥을 나가기 전날이면 이쉬는 밤이고 낮이고 생선을 먹지 않았고 담배도 피우지 않았다. 가능하기만 하다면 그 금욕기간은 3일로 연장되는 적도 있었다 ..  (268∼269쪽)


 야히 겨레 마지막 사람 이쉬는 당신 삶을 숱한 글과 사진과 이야기로 남긴 채 흙으로 돌아갔습니다. 야히 겨레 마지막 사람 이쉬 삶을 담은 첫 책이자 마지막 책이 될 《북미 최후의 석기인 이쉬》는 1981년에 조용히 태어나 조용히 읽히다가 조용히 눈을 감습니다. 아직 한국땅에서는 이 책이 책다이 읽히기 어렵다 할 테고, 문화학이나 인류학으로서도 깊이 헤아리기 힘들다 할 테며, 우리 삶을 돌아보는 좋은 길동무로 삼기에도 벅차다 할 테지요. 한국사람은 한국문화와 한국삶조차 살뜰히 돌아볼 겨를이 없을 만큼 몹시 바쁘니까요.

 시계나 달력에 맞추어서 살아간 사람이 아닌 이쉬입니다. 날씨와 철과 바람과 흙과 햇볕에 따라 살아간 사람인 이쉬입니다. 이쉬를 읽으려면 내 삶이 시계 아닌 날씨로 움직여야 하고, 달력 아닌 철에 따라 숨쉬어야 합니다. 돈이 아닌 사랑으로 사람을 사귀며 살아야 합니다. 1978년에 나왔다는 ‘이쉬 이야기 담은 영화’가 어떤 줄거리를 담았을는지 궁금합니다. 12달러면 살 수 있다는데, 한국에서 이 영화를 장만할 길을 찾아봐야겠습니다. (4344.1.8.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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