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녘 책읽기


 시골집에서 새벽에 일어나면 맨 먼저 달빛과 별빛이 반깁니다. 까만 하늘이 차츰 파란 빛깔로 바뀌면서 닭이랑 멧새랑 우는 소리가 이 다음으로 반깁니다. 겨울날 차가운 바람이 이들과 함께 시골사람을 반깁니다.

 봄 여름 가을 동안 내리 바라보던 나무는 겨울에 들어서며 옷 벗은 나무가 되었지만, 찬찬히 들여다보면 거추장스러운 짐을 내려놓고 새봄을 기다리는 나무입니다. 또다시 살펴보면 거추장스러운 짐이라기보다 새봄에 새힘으로 새삶을 일굴 나무가 되도록 스스로 잎을 모조리 떨구어 흙을 살찌우려고 옷을 벗은 나무요, 알몸이 된 나무이며, 빈털털이가 된 나무입니다.

 멧골자락에서는 하늘과 흙과 나무와 눈밭과 달과 해를 마음껏 바라보며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 즐겁습니다. 시끌벅적한 자동차 소리라든지, 싸구려라 외치는 물건 파는 소리라든지, 철따라 유행이 바뀌는 대중노래 소리라든지, 사람들 싸우거나 멱따는 소리라든지, 하나도 귀로 스며들지 않습니다. 식구들 움직이는 소리와 아이가 떠드는 소리를 듣는 조그마한 보금자리입니다.

 밤나절 잠자리에 들면 언제나 허리가 쑤시고 결립니다. 이제 아이도 잠들었으니, 아빠는 아빠 하고픈 일을 하거나 책 좀 손에 쥘 수 있나 하고 헤아립니다. 무거운 눈꺼풀을 낑낑 인 채 책을 쥡니다. 이때에라도 읽지 않으면 도무지 읽을 수 없는 책이기에, 손 덜덜 떨면서 책을 쥡니다.

 새벽녘 잠자리에서 일어나면서 어제 잠들기 앞서 읽던 책을 만지작거립니다. 참말 이토록 고단한 나날에 내가 읽을 만한 책을 읽었는지, 이런 하루하루를 보내면서 내 곁에 둘 만한 책을 사랑하는지 곱씹습니다. 밤나절 잠자리에 들 무렵에는 이런 책이든 저런 책이든 손에 쥐지만, 막상 하루가 지나 새벽녘이 되면 엊그제 읽은 책은 덧없다고 느낍니다.

 책은 종이뭉치에 있지 않은 줄 알면서 종이뭉치에 깃든 책에 너무 마음을 빼앗기지 않나 곱씹습니다. 글을 쓰는 책상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생각을 가다듬습니다. 걸상에 앉아 글을 쓰도록 할 수 있지만, 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아 글을 쓰는 일도 즐겁습니다. 어쩌면, 겨울날은 바닥에서 올라오는 따스한 기운을 느껴서 한결 좋고, 무릎을 꿇으며 허리를 꼿꼿이 세우는 한편, 내 마음결을 차분히 다스리니까 글쓰기에는 한결 나을는지 모릅니다.

 오늘은 식구들 끼니를 어떻게 마련할까 하고 생각하면서 한숨을 가늘게 쉬다가는, 다 읽은 책 읽다 만 책 읽으려 하는 책 거듭 읽는 책 들을 하나하나 돌아봅니다. 눈을 들어 창밖을 바라보며 잎사귀 하나 없는 두릅나무에 머잖아 새잎이 돋으며, 이 새잎과 새싹을 칼로 살살 잘라서 냠냠짭짭 먹을 새봄이 곧 올 테지, 하고 꿈을 꿉니다. (4344.1.23.해.ㅎㄲㅅ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사진과 우리 말 66] Giftishow기프티쇼

 ‘Giftishow’라 적은 밑에 작은 글씨로 ‘기프티쇼’라 적어 줍니다. 참으로 마음이 넓기 때문인가 싶으면서도, ‘Giftishow’는 ‘기프티쇼’가 될 수 없으나, 이러한 말마디가 찬찬히 퍼지면서 스며듭니다. ‘Gifti’란 무엇일까요. 또, ‘기프티쇼’이니 ‘기프티콘’이니 하면서 읊는 말이란 무슨 소리일까요. ‘선물쇼’인지 ‘선물콘’인지, 무언가를 즐거이 나누려는 마음이라 할 때에도 이렇게 해야만 즐거움이나 나눔이 되거나, 또는 돈이 되는지 알쏭달쏭합니다. 한국사람은 영어를 배워서 이런 데에서 쓰는군요. (2011.1.23.해.ㅎㄲㅅ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누리말(인터넷말) 14] 커뮤니티

 사람들 작은 힘으로 온누리를 조금씩 바꾸면서, 우리들이 주고받는 말도 조금씩 달라집니다. 예전 같으면, 아니 요즈음도 어슷비슷하지만, 으레 “지리산 케이블카 반대” 같은 말마디만 썼다면, 이제는 “케이블카 없는 지리산” 같은 말마디를 쓸 줄 압니다. 다만, ‘케이블카’는 ‘하늘차’로 고쳐써야 하지만, 이렇게 고쳐쓰는 사람은 아직 없습니다. 생각해 보면, 어떤 잘못된 일을 가로막겠다 할 때에는, 여느 사람들이 익히 쓰는 말투대로 외침말을 적어서 가로막으려고 힘써야겠지요. 옳게 다듬을 말투는 ‘하늘차’이지만, 이렇게 다듬어서 이야기하면 여느 사람들은 말투를 다듬으려고 애쓰지 않는 만큼 못 알아듣습니다. 이리하여 사회운동이든 노동운동이든 정치운동이든 교육운동이든 환경운동이든, 슬프거나 딱하거나 아쉬운 말마디로 일을 할밖에 없어요. 그리고, 좋은 뜻으로 좋은 모임을 꾸려 이야기를 나누는 누리집 게시판 이름을 ‘커뮤니티’처럼 붙이고야 맙니다. ‘사랑방’이라든지 ‘이야기터’라든지 ‘회원 한마당’이라든지 ‘열린마당’이라든지 ‘쉼터’라든지 ‘우물가’라든지, 예쁘며 살가이 이름을 붙이는 데까지 마음을 기울이지 못합니다. (4344.1.23.해.ㅎㄲㅅ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누리말(인터넷말) 13] 배송비 페이백

 읍내책방을 다니든, 도시에 깃든 작은책방이나 헌책방을 다니든, 요즈음에는 책을 사면서 퍽 쓸쓸합니다. 책을 읽는 사람들이 하나같이 ‘거저로 그날 집으로 보내 주는 책’에 자꾸 길들기 때문입니다. 머잖아 전자책이 나오면 이렇게 할 일조차 없을 테지만, 종이에 찍은 책을 읽는 사람이라면, 책을 읽는 매무새가 좀 달라야 하지 않느냐 생각합니다. 《침묵의 봄》이나 《모래 군의 열두 달》이나 《우리들의 하느님》 같은 책마저 이렇게 ‘거저로 그날 집으로 보내 주는 책’, 아니 ‘거저로 그날 집으로 보내 주는 물건’으로 삼는다면, 이러한 물건을 받아쥐어 펼치는 사람한테 어떠한 사랑씨앗이 자라나는지 궁금합니다. 게다가, 책 몇 권 부치는 누리책방에서는 ‘돌려받으세요’라고도 하고 ‘페이백’이라고도 하는 제도까지 마련했답니다. 그러면, 책을 읽는 사람들이 돌려받는다는 우편삯은 누가 내는가요. 누리책방에서? 출판사에서? 어쩌면 책 읽는 내가? (4344.1.23.해.ㅎㄲㅅㄱ)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카스피 2011-01-24 21:48   좋아요 0 | URL
보통은 책값에 포함되어 있지 않을까요^^;;;

파란놀 2011-01-25 07:06   좋아요 0 | URL
네, 그렇지요.

시골 읍내 책방에는 없는 책이 너무 많고,
책방마실 하러 도시 나가기 만만하지 않아,
이제는 인터넷책방에서도 책을 사야 하는데,
이런 쓸데없는 정책들 때문에
정작 출판사들과 독자들이
피해를 입는데,
스스로 제살 깎아 먹는 줄 너무 모르거나 잊는 듯해요...
 



 책은 건네줄 수 있을 뿐


 책은 건네줄 수 있을 뿐입니다. 알맹이까지 알려줄 수 없습니다.

 맛있는 밥을 손수 차려서 대접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 맛을 제가 느껴 줄 수 없습니다. 밥을 먹는 사람 스스로 느낄 맛입니다.

 자전거를 탈 때에 흐르는 땀이 우리 몸을 얼마나 시원하게 해 주는지 글로 써서 읽힐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자전거를 타는 짜릿함과 힘듦을 제가 모두 느껴 줄 수 없습니다. 스스로 자전거를 타면서 느낄 짜릿함이요 힘듦입니다.

 보는 재미나 구경하는 재미가 아무리 크다 하더라도 우리가 몸소 해 보는 재미만큼 클 수 없습니다. 듣는 재미나 읽는 재미가 제아무리 크다 한들 우리가 손수 말하고 쓰는 재미보다 클 수 없습니다.

 논밭에 곡식을 심어서 거두어들이는 보람도 크다고 하지만, 거두기까지 하루하루 땀흘리며 가꾸고 돌본 보람보다 클 수 없습니다. 마지막에 열매를 맺어서 거두는 일이란 그동안 애써 일한 보람 가운데 아주 작은 한 가지입니다.

 처음 이야기로 돌아가 봅니다. 우리가 함께 나누거나 즐겁게 읽으면 좋을 책을 얼마든지 추천할 수 있고 알려줄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나중에 가서는 나한테 좋을 책은 나 스스로 골라야 해요. 책읽기뿐 아니라 ‘책 고르기’가 아직 서툴다고 한다면, 처음에는 저나 다른 누가 알려줄 수 있겠지요. 그런데, 저라고 해서 모든 책을 다 잘 알지 못하기 때문에 저는 제가 아는 만큼만 이야기합니다. 저한테 도움을 받는 분이건 다른 분한테 도움을 받을 분이건, ‘어느 한 사람이 살아오며 좋아하거나 즐기던 책 테두리’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서로서로 어떠한 삶을 꾸리면서 어떠한 넋으로 어떠한 책을 사랑하는가를 짚으려 한다면, 애써 추천받는 책을 찾아 읽어도 나쁘지 않습니다. 그러나, 사람이란 누구나 내 삶을 꾸려야지 남 삶을 구경할 수 없습니다. 내 삶을 돌보며 내 삶에 마음을 쏟아야지 남 삶에 기대거나 마음 쏟을 수 없어요.

 아이한테 삶을 가르쳐 주지 못합니다. 아이한테 지식 또한 물려주지 못합니다. 어버이는 아이하고 함께 살아갈 수 있을 뿐입니다. 함께 살아가는 어버이는, 어버이 몸가짐 그대로 아이한테 일깨워 주기만 합니다. 아이는 제 어버이를 바라보면서 하나하나 익히되, 아이 몸과 마음에 걸맞게 받아들입니다. 아이 몸과 마음에 걸맞지 않게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어버이가 열 마디를 하더라도 이 가운데 한 마디를 알아듣기까지 몇 달 몇 해가 걸립니다. 글을 가르치든 말을 가르치든 여러 해가 걸립니다. 아이가 손수 밥하기를 하도록 이끌자면, 아이가 손수 빨래를 하고 설거지를 하며 동생을 돌보도록 이끌자면, 얼마나 기나긴 해에 걸쳐 얼마나 숱한 땀을 흘려야 할까요.

 아이는 무럭무럭 자라서 홀로 우뚝 섭니다. 책읽기라는 길에 접어들고 싶은 분이라면, 누구나 ‘책을 건네줄 수 있으나 읽도록 할 수 없’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홀로서는 책읽기요, 홀로서는 삶입니다. (4344.1.23.해.ㅎㄲㅅ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