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책방에 안 들어가는가 보다. 하는 수 없이 마이페이퍼로 띄운다) 



 인천 동구에서 공장을 찍은 사진
 [찾아 읽는 사진책 14] 김보섭, 《시간의 흔적, 동구의 공장들》(성광디자인,2010)



 인천 동구에는 공장이 참 많습니다. 인천 중구에도 공장이 참 많고, 남구에도 공장이 몹시 많습니다. 인천 부평구에도 공장이 있을 테지요. 그러면, 인천시청 둘레에는 공장이 얼마나 있을까요. 인천 연수동이나 계산동이나 구월동이나 송도처럼 아파트가 잔뜩 들어선 곳 둘레에는 공장이 어느 만큼 있으려나요.

 인천 동구나 중구나 남구에 깃든 공장들은 으레 살림집 옆에 담벼락을 드리우기 마련입니다. 어쩌면 인천 동구나 중구나 남구에 깃든 공장들에 일하러 가는 사람들이 공장 둘레에 보금자리를 틀었다 할 만하고, 가난하고 힘여린 사람들 살림집 있는 동네 한복판이나 기스락에 공장이 생겼다고 할 만합니다.

 오늘날 우리 터전에서는 공장이 없으면 하루도 도시살림을 꾸릴 수 없습니다. 여느 시골살림이라면 경운기·콤바인·트랙터·짐차가 없어도 흙을 일굴 수 있습니다. 기계가 없으면 낫과 호미와 괭이와 보습을 쓰면 됩니다. 전기 없이 얼마든지 살아갈 수 있는 시골이요 꾸릴 수 있는 시골살림입니다. 그러나 도시에서는 전기 없이는 하루는커녕 한 시간도 움직이지 못합니다. 서울이나 부산처럼 큰도시에서 전기가 한 시간만 끊어진다고 생각해 보셔요. 아마 어마어마하게 끔찍스러운 싸움판이 벌어지겠지요. 은행이 멈추고 전철이 멎으며 지하상가 불이 꺼지고 높은건물 승강기를 못 타며 백화점이 깜깜해지면 어찌 되겠습니까. 회사마다 컴퓨터로 모든 볼일을 볼 텐데 어떻게 되지요. 공장은 또 어찌 되려나요.

 전기를 먹으면서 살아가고, 전기를 먹으려고 끝없이 석유나 우라늄을 때며, 석유나 우라늄을 때자면 지구별 땅속 깊이 자꾸자꾸 파야 하고, 땅속 깊이 파헤친 터전은 환경이 무너질 뿐 아니라 석유나 우라늄을 태우며 엄청나게 많은 재와 쓰레기가 새로 나옵니다. 도시에서는 쓰레기봉투를 쓴다지만 쓰레기봉투도 비닐이요, 분리수거를 한다지만 제대로 나누어 버리지 못할 뿐더러, 페트병에 붙은 종이딱지를 벗겨 페트병 안쪽을 씻고 뭐를 하자면 다시 쓰거나 살려서 쓸 때에도 돈이 참 많이 듭니다. 이리 보든 저리 보든 도시살림이란 돈 놓고 돈 쓰기입니다. 인천 동구·중구·남구처럼 지붕낮은 골목집들 오글오글한 둘레에 깃든 우람한 공장을 쉼없이 돌려야, 도시는 숨을 트고 도시는 살아나며 도시는 꿈을 꿉니다. 공장 없는 도시란 있을 수 없습니다.

 요즈음, 공장은 시골로 옮깁니다. 아니, 진작에 공장들이 시골로 옮겼습니다. 우리 식구들 살아가는 멧골자락 둘레에도 빈틈없이 공장이 있습니다. 도시에서는 땅값이 오르며 변두리 골목동네나 달동네라 하던 곳조차 아파트가 들어서야 하니까 공장이 쫓겨납니다. 나라밖에서 우리와 살빛이 비슷한 구리빛 이주노동자를 받아들여 시골자락에 가두어 놓듯 하면서 공장을 돌립니다. 이렇게 해도 공장 임자는 돈벌이가 시원찮으니 아예 중국에 공장을 지어 더 싼 일삯으로 더 많은 일꾼을 한꺼번에 부려 더 크게 돈벌이를 하고자 꾀합니다.

 그렇지만, 시골이나 중국에 공장을 잔뜩 지었어도, 인천에는 공장이 꽤 많이 남습니다. 왜냐하면 인천 곁에는 서울이라는 엄청나게 큰 도시가 있고, 서울이라는 도시와 둘레에는 ‘흙을 일구어 먹을거리를 마련하거나 공장을 돌려 물건을 만드는’ 사람이 얼마 없거나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인천시청이나 연수동이나 송도 같은 데에 공장이 깃들지 못하듯, 서울시청이나 광화문이나 종로나 강아랫마을이나 송파구 같은 데에 공장이 깃들지 않습니다. 인천 동구·중구·남구 공장들은 인천 동구·중구·남구 골목집들한테는 매캐한 먼지 섞인 바람과 물을 베풀면서 인천땅 아파트사람하고 서울땅 아파트사람한테 값싼 물건을 베풉니다.

 이러한 공장 자리를 오래도록 가만히 바라본 인천 사진쟁이 한 사람이 인천에 깃든 공장 가운데 동구에 있는 공장 몇 군데를 하나하나 살피면서 사진을 찍었습니다. 사진책 《시간의 흔적, 동구의 공장들》이 태어났습니다.

 공장 둘레에는 사람이 보이지 않습니다. 아니, 공장 둘레에는 반드시 사람이 있습니다만, 공장 사진에서는 사람이 보이지 않습니다. 공장은 기계로만 돌아가지 않습니다. 기계를 움직이는 사람이든, 공장을 돌리며 돈을 버는 사람이든 꼭 있습니다. 그러나 공장 안팎에 어떠한 사람이 얼마나 있고, 어떤 모습으로 일하거나 쉬거나 놀거나 살아가는지를 찾아보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커다란 공장 굴뚝뿐 아니라 공장 담벼락과 설비에 묻혀 사람 그림자를 찾아보기 힘듭니다. 그래도 이 커다랗거나 우람하거나 으리으리하거나 대단한 공장 기계와 설비는 사람들 손길이나 손때를 타며 만들어졌습니다. 한 해 두 해 흘러 첨단사회가 되는 동안 이 도시에 있던 공장은 저 시골로 가고, 저 시골에 있던 공장마저 중국이나 베트남이나 동남아시아로 옮기지만, 공장은 어김없이 있습니다. 도시가 커지면 커질수록 공장은 더 커져야 하고, 공장을 굴리는 사람들은 더 돈을 벌어야 합니다.

 공장은 돈을 거머쥔 사람들 살림집하고는 자꾸자꾸 멀어집니다. 아파트를 지으려 해도 중장비뿐 아니라 중장비를 써서 붓고 붙이며 날라야 하는 시멘트며 원자재며 쇠붙이 들이란 공장에서 다듬거나 만듭니다. 몇 억이나 수십 억에 이르는 비싸다는 아파트에 들여놓는 텔레비전이나 냉장고는 누가 어디에서 만들까요. 아이들한테 사먹이는 과자 한 봉지는 누가 어디에서 만드나요. 가난한 사람이 먹어야 한다는 값싼 라면은 어디에서 만들지요. 무슨무슨 폰인지 하는 손전화는 누가 어디에서 만들려나요. 밥그릇은, 젓가락은, 옷가지는, 신은, 자동차는, 자전거는 다 어디에서 누가 어떻게 만드는가요.

 공장은 공장에서 만드는 물건을 써야 하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살림집 가까이에 있어야 합니다. 발전소는 전기를 많이 써야 하는 사람들이 지내는 보금자리 둘레에 있어야 합니다. 쓰레기를 파묻거나 태우는 곳은 시골이 아니라 도시여야 합니다. 공장과 발전소와 쓰레기터는 왜 아파트 둘레에 놓지 않을까요. 공장과 발전소와 쓰레기터는 왜 가난한 사람들 살림집 둘레나 시골에서 흙을 일구는 사람들 논밭 둘레에 마련해야 하나요.

 내 어린 날을 더듬어 보면, 나와 동무들 살던 동네 옆에는 늘 공장이 있었습니다. 내가 다닌 국민학교와 중학교와 고등학교 옆에는 언제나 공장이 가득했습니다. 학교로 오가는 길 사이사이 숱한 공장을 지나야 했습니다. 내가 태어나기 앞서부터 이 공장들은 움직였고, 내가 고향집을 떠나 시골로 옮겼어도 이 공장들은 우람한 굴뚝에서 매캐한 연기를 내뿜고 옆구리로는 코를 찌르는 물을 내놓습니다.

 오늘날 인천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가운데 인천에 공장이 얼마나 많고, 이 많은 공장들이 골목집 둘레에 얼마나 가까이 맞닿았는가를 헤아리거나 깨닫거나 느끼는 사람은 얼마쯤 되려나 궁금합니다. 인천에도 아파트가 참 많고, 새로 짓는 아파트 또한 많으며, 이제는 아파트에서 살아가는 사람들투성이라 할 텐데, 아파트 유리창 하나를 어디에서 만들고, 아파트 유리창을 만드는 공장 둘레에서 살던 사람은 빨래를 어떻게 널어야 했는지를 돌아볼 만한 가슴이나 마음을 건사하는 사람은 얼마쯤 있으려나 궁금합니다.

 공장에서도 시간이 흐른 자국을 찾습니다. 공장은 시골이나 중국으로 많이 떠나기도 했지만, 인천땅 동구와 중구와 남구 곳곳에 아직 참 많이 남았습니다. 이 공장들 가운데에는 돈벌이가 안 맞아 멈춘 기계도 제법 있으나, 힘차게 돌아가는 기계 또한 많고, 힘차게 매연과 쓰레기물 내놓는 기계도 몹시 많습니다.

 인천 동구에 있는 공장을 인천 연수동에서 살아가는 사진쟁이 한 사람이 알뜰히 담아서 찬찬히 보여줍니다. 사진쟁이 김보섭 님은 사진책 첫머리에서 말합니다. “인천은 서울의 주변도시로서 많은 공장들이 바닷가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타 지역과 달리 공장과 갯벌이 어우러진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1957년에 설립된 한국유리(판유리)가 군산으로 공장을 이전하면서 공장이 철거되었다. 우리의 삶과 밀접한 인천의 상징인 슬레이트 구조물이 부서지는 것을 1년 간 보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굴뚝과 공장과 모든 것을 그대로 둔 이 독특한 바닷가 공장 지대를 자연과 어우러진 문화지역으로 재탄생시킬 수 없을까 생각해 본다.” (4344.2.16.물.ㅎㄲㅅㄱ)


― 시간의 흔적, 동구의 공장들 (김보섭 사진,성광디자인 펴냄,2010.3.10./2만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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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마실과 책읽기


 서울마실이나 인천마실을 할 때면 늘 아이를 데려가든지 집식구 모두 움직인다. 마실을 가는 길에 책을 두 권쯤 꼭 챙긴다. 이렇게 챙긴 책을 꺼내기는 꺼내고 들추기는 들춘다. 그렇지만 제대로 읽어내기란 참 힘들다. 시외버스에서 꾸벅꾸벅 졸면서 읽고, 전철에서 아이를 안은 채 읽는다. 한 쪽을 읽든 두 쪽을 펼치든 어찌 되든 한 번은 꺼내어 펼친다.

 오늘 서울마실을 한다. 옆지기가 아이하고 시골집에 남는다고 한다. 지난주부터 같이 가기로 얘기하고서 어떻게 짐을 꾸리며 챙길까 하고 생각하면서 집에 남는 먹을거리가 없도록 밥을 해 왔는데, 이렇게 되면 걱정스럽다. 옆지기가 밥을 아예 못하거나 몸을 조금도 못 움직이지는 않으니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둘째를 밴 뒤로 뜨개질로 하루하루 몸을 버티며 마음을 다스리는 터에, 혼자 아이를 이틀씩 건사할 수 있을까. 아침부터 저녁까지 방방 뛰며 놀아도 지치지 않고 낮잠조차 없는 아이를 옆지기 혼자 돌볼 수 있으려나.

 아이 없이 홀로 서울마실이나 인천마실을 한다면, 나로서는 시외버스에서든 전철이나 버스에서든 마음을 툭 놓고 책을 읽을 수 있다. 그렇지만, 책을 읽는 내내 시골집 식구들이 근심스러운 나머지, 읽다가 자꾸 덮고 읽다가 또 덮는다.

 식구들 함께 움직여도 가방에 넣은 책을 꺼내지 못하지만, 홀가분하게 돌아다녀도 가방에 넣은 책을 제대로 넘기지 못한다.

 지난밤 잠자리에서 생각한다. 옆지기와 내 삶을 거꾸로 놓고 생각해 본다. 내가 옆지기요, 몸이 아프면서 거의 꼼짝 못하며 지내는 삶이고, 옆지기가 글을 쓰고 사진을 찍으며 집살림 꾸리는 한편 돈도 번다면, 나는 내 옆지기한테 무어라 말을 하려나. 내 옆지기한테 어떻게 하라고 말을 하려나.

 집안에서도 집밖에서도 더 힘내어 알차게 살아야 한다. 집안에서도 나는 나대로 내가 할 몫을 하면서 아이와 옆지기하고 나란히 할 몫을 알뜰히 해야 한다. 게으를 겨를이란 없지만, 손을 놓는다든지 풀이 죽는다든지 기운이 꺾인다든지 할 수는 없다. 늘 더욱 힘을 내어 씩씩하고 튼튼하게 살아야 한다. 책을 손에 쥐었으면 신나게 읽고, 책을 손에서 내려놓았으면 밥하기이든 설거지이든 빨래하기이든 비질이든 즐거이 하면 된다. 오늘 함께 마실을 간다면 얇은 책으로 두 권, 오늘 혼자 마실을 간다면 두꺼운 책으로 두 권을 챙기련다. (4344.2.16.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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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들이 사는 집’ 이야기를 풀어놓은 책


 ‘작가들이 사는 집’ 이야기를 풀어놓은 책을 읽다. 읽었다기보다 두 해 동안 책시렁에 얌전히 모시다가 엊그제 후다닥 읽어치웠다.

 책을 읽어치우기를 몹시 싫어하지만, 때때로 책을 읽어치우고 만다. 내 둘레 책시렁에 책이 너무 쌓이다 보면, 이제 더 쌓이도록 하지 말자고 다짐하면서 한꺼번에 열 권 스무 권 서른 권 마흔 권 닥치는 대로 후다닥 읽어치워서 도서관으로 옮긴다.

 허접한 책이라면 구태여 장만하지 말았어야 한다. 어떻게 본다면 허접한 책마저 이 책에서도 얻을 대목이 있으니까 읽어야겠다고 생각하는지 모른다. 참말 허접하다는 책이든 아름답다는 책이든 우리한테 이야기를 건넨다. 이 이야기에 귀를 살살 기울일 수 있어야 한다.

 그러면 ‘작가들이 사는 집’ 이야기는 허접한 책이었을까. 글쎄, 허접한 책이라고까지는 생각하지 않는다. 이 책에 글을 싣고 사진을 담은 사람이 조금 더 깊이 헤아리지 못해서 슬펐다. ‘작가들이 사는 집’에서 다룬 작가들은 꼭 한 사람을 빼고는 모두 책을 많이많이 팔아서 돈을 많이많이 벌어 마치 귀족이라도 되는 듯이 집을 꾸미면서 살았기 때문이요, 글쓴이는 이러한 대목에 지나치게 많이 마음을 썼기 때문에 슬펐다.

 나도 우리 시골집을 고쳐서 쓰는 날을 꿈꾼다. 얻어 지내는 이 춥고 더운 시골집을 이래저래 고치자면 천만 원쯤 들어야 한단다. 내가 뭐 손재주가 좋아 이리 뜯고 저리 손질할 수 있지 않다. 나무 베고 흙 주워서 뚝딱뚝딱 고칠 수 있는 집이 아니다. 얻어 쓰는 이 시골집 말고, 바로 곁에 빈 살림집 하나를 요모조모 고치고 보일러 들이고 뭐 하자면 그쯤 든단다. 그러니까, 나도 글을 쓰는 사람이니, 내가 살아가는 집을 누군가 이야기하려 한다면, 아마 ‘아무개 씨도 돈 얼마를 무슨무슨 책을 팔아 얻은 돈으로 요모조모 꾸몄다’ 하고 이야기하지 않을까 싶다. 그런데 이런 이야기란 무슨 보람이나 뜻이나 값이 있을까.

 ‘작가들이 사는 집’ 이야기를 읽을 때, 내가 딱 하나 눈여겨본 대목은, 사랑소설을 쓴 사람이든 어린이문학을 한 사람이든 학문하는 글쓰기를 한 사람이든, 모두 도시를 떠나고 사람들 발길이 쉬 닿지 않는 외딴 시골이나 멧골에 집을 마련해서 자연이랑 벗삼으며 흙을 일구는 나날을 즐긴 대목. 이 가운데 꼭 한 사람, 돈을 못 번 한 사람(돈을 못 벌었다기보다 버는 족족 술값으로 퍼부었단다)만 시내에서 살았는데, 이 시내라 해 보았자 우리로 치면 바닷가 면내나 읍내쯤 되고, 이이는 얻어 지내는 집에서 늘 술에 절어 살았단다. 이이는 벌어들이는 돈이 있으면 몽땅 술 마시는 데에 쓰고 집식구 아닌 바깥여자랑 바람 피우는 데에 썼단다.

 ‘작가들이 사는 집’이 오직 돈을 많이 벌어야 얻을 수 있는 집이라면 끔찍하다. ‘작가들이 사는 집’이 조용하면서 스스로 땀흘려 흙을 일구어 살아가는 집이라면 아름답다. ‘작가들이 사는 집’이 으리으리한 건물과 장식품을 이웃이나 동무한테 뽐내려고 사람들을 부르는 집이라면 무섭다. ‘작가들이 사는 집’이 살가운 이웃이나 동무하고 밥 한 그릇 나누어 먹으며 도란도란 이야기꽃 피우는 집이라면 즐겁다.

 내가 아름답다고 느끼는 글쟁이나 사진쟁이나 그림쟁이는 흙을 사랑한다. 흙을 사랑하듯 사람을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하듯 목숨을 사랑하며, 목숨을 사랑하듯 집과 글과 사진과 그림을 사랑한다. (4344.2.16.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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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듯하게 누워서 잔다


 반듯하게 누워서 잔다. 몸을 옆으로 돌리지 못한다. 그대로 쭉 뻗어서 잔다. 누운 동안 내 몸은 방바닥에 찰싹 달라붙는다. 옆으로 살짝 돌려 모로 눕고도 싶으나, 이렇게 누우면 하나도 개운하지 않다. 그저 등바닥과 발과 손 모두 방바닥에 척 대고 누울 뿐이다. 몸이 무거울 뿐더러 찌뿌둥해서 조금도 움직이지 못한다. 그렇지만 잠결에 아이가 끄응 소리를 내면 ‘아하, 오줌을 누었나 보구나.’ 하고 생각하면서 부시시 일어난다. 아이 기저귀에 손을 댄다. 폭삭 젖었다. 바지까지 젖었다. 기저귀를 풀고 바지를 벗긴다. 새 기저귀로 잠지 둘레를 톡톡 치며 오줌 기운을 닦는다. 새 기저귀를 댈 때에는 한 번 뒤집어서 댄다. 바지를 입힌다. 이불을 씌운다. 그러고 다시 눕는다. 언제나처럼 새벽 일찍 깬다. 새벽이라기보다 깊은 밤에 깬다. 두어 시나 서너 시를 새벽이라 할 수는 없을 테니까. 일어날 때에는 또 벌떡 일어난다. 잠자리에 드러누울 때에는 어쩜 이리도 죽은 듯이 자더니, 일어날 때에는 말짱하게 일어난다. 그러나 해가 기울어 깜깜한 시골자락 밤이 다시 찾아들면, 나는 마치 흙으로 돌아갈 사람처럼 꼼짝없이 뻗고야 만다.

 내가 반듯하게 살아가서 반듯하게 누워서 잠들지는 않는다. 하루하루 이 일 저 일에 치이면서 그저 모두를 잊고 잠들 뿐이다. 어쩌면, 아이를 돌보다가, 옆지기를 건사하다가, 나 스스로 나 하고픈 일을 한다고 하다가, 이렇게 어느 날 소리 없이 말끔하게 흙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내 마지막 꿈은 집에서 조용히 숨을 거두어, 내 주검을 나한테 밥을 내어준 흙으로 돌아갈 수 있는 일이다. 꼭 무덤을 쓴다기보다 집 둘레 오래된 감나무 곁에 묻어 감나무가 더 싱그럽게 기운을 받아 새 감알을 소담스레 낼 수 있도록 거름이 되고 싶다. 내가 우리 시골집 감나무 곁에서 거름이 된다면, 내 아이는 감알을 더 맛나게 즐길 수 있겠지. (4344.2.16.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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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림은 가난하지만 마음은 따뜻한 노래벗
― 폴 란돌미, 《슈베르트》



- 책이름 : 슈베르트
- 글 : 폴 란돌미
- 옮긴이 : 김자경
- 펴낸곳 : 신구문화사 (1977.5.10.)
- 판 끊어짐. 헌책방에서만 찾아볼 수 있음.



 (1) 우리가 모르는 ‘가난뱅이’ 슈베르트


 일본 만화쟁이 ‘니노미야 토모코’ 님이 그린 만화 《노다메 칸타빌레》를 보기 앞서까지는 ‘노래를 짓는 사람’이 어떠하고, ‘지어진 노래를 부르거나 들려주거나 이끄는 사람’이 어떠한 줄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아주 동떨어진 곳에서 살아가는 사람으로 여겼고, 나와는 아주 멀리 떨어진 사람들이겠거니 여겼습니다. 모르는 노릇이지만, 여느 사람들 또한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사진을 찍는 사람을 놓고도 ‘나와는 동떨어졌겠지’ 하고 생각하지 않으랴 싶습니다. 연극을 하거나 영화를 하는 사람들을, 공연을 하는 사람들을, 춤을 하는 사람들을 ‘세상과 동떨어진 채 사는’ 사람으로 여기지 않으랴 싶습니다.


.. 얼마나 기뻤을까! 이제 대기를 가슴이 벅차도록 마셔들일 수 있다. 믿을 수 없을 정도다! 자유! 드디어 자유로 와졌다. 언제든지 마음이 내키면 작곡할 수 있는 자유! 그리고 먹고살아야 한다. 슈베르트는 개인 교수의 일자리를 찾은 끝에 몇 군데 일자리를 얻었으나 거의 무수입에 가까웠다 ..  (62쪽)


 곰곰이 돌아보면, 제 또래 동무를 비롯하여 선배나 후배가 저를 바라보는 눈길이 남다릅니다. 동네사람이 바라보는 눈길이나 구멍가게 할매 할배가 바라보는 눈길도 남다릅니다. 전철길에서 스치는 사람이나 자전거길에 엇갈리는 사람 또한 저를 남달리 바라봅니다.

 차림새며 생김새며 ‘여느 사람 모습’이 아니니까요. 또한, 제가 하는 일이란 여느 사람이 하듯 ‘돈을 버는 일’하고는 멀리 떨어져 보이니까요. 더구나 제가 글을 쓰는 사람이라고 할 때면 으레 ‘문학을 하나요?’ 하고 물으며, ‘우리 말 이야기를 쓴다’고 하면 ‘우리 나라에 그런 글을 쓰는 사람이 있는지’ 궁금하게 여깁니다. 무엇보다도 이런 글을 써서 밥벌이가 되겠느냐고, 애도 있는데 ‘돈 되는 글을 써야’ 하지 않느냐며 따끔하거나 따스하게(?) 도움말을 건네줍니다.


.. 1818년 11월 슈베르트는 비인으로 돌아갔다. 친구들과 다시 만나고, 그들에게 작곡한 작품 전부를 보여줄 수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기쁨에 가슴이 벅찼다 … 그는 방과 피아노를 빌 돈이 없었다. 그것은 친구들이 마련해 주었다. 처음에는 슈파운의 집에 가서 그의 방의 침대를 우선 이용했다. 다음은 쇼버가 자기 어머니의 집에 하숙을 마련해 주었다. 슈베르트는 반 년이란 세월을 폰 쇼버 부인네 집에서 더부살이를 했다. 그 다음부터는 마일호퍼, 외고집이고 우울한 마일호퍼의 가난하고 쓸쓸한 방에서 동거했다. 두 친구는 모든 것을 공동으로 하고, 가난 속에서도 대단히 행복했다 … 그는 아침 여섯 시부터 걸상에 마주앉아 끈이 보이는 낡은 옷을 입고, 그대로 오후 한 시까지 작곡했다. 이따금 파이프 담배를 태우거나 찾아온 친구들과 잡담하기 위해 일손을 쉴 뿐이었다. 방은 작았으나 겨울에는 덥지 않았다. 화기가 없는 것이다. 슈베르트는 꽁꽁 얼었으나 창작욕에 불타 추위를 몰랐다. 사람이 와도 때로는 “재미 어때?” 하고 물을 뿐, 붓을 놓지 않을 때도 있었다 ..  (65∼67쪽)


 제가 하는 일 이야기가 ‘사진찍기’로 넘어오면 골치가 더 아픕니다. 돈 되는 글을 안 쓰는 주제에, 사진 또한 돈 안 되는 사진만을, 더구나 누가 알아주지 않는 사진만을 찍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때때로 ‘뜻있는 사진을 찍는다’며 힘을 북돋워 주는 분이 있습니다만, 말로는 힘을 북돋워 주어도 말로만 그치기 때문에 저로서는 손 벌릴 자리가 모자랍니다(그렇지만 꼭 한 분이 고맙게 제 사진을 꾸준하게 사 주시고 있어서, 이분 힘으로 즐겁게 버팁니다).

 제 사진찍기를 옆에서 지켜보는 분들이 으레 이야기합니다. ‘이제 그 사진감은 그만 찍어도 되지 않느냐’고. 이제 그 사진감은 그쯤으로 끝내고 ‘돈 될 만한 새 사진감을 찾으라’고.

 당신이 걸어온 지난 발자국을 돌이켜보면서 들려주는 말씀이요, 젊은내기가 집식구 애먹이지 말라는 말씀인 줄을 느끼며 고맙다고 인사를 합니다. 그렇지만 제가 골라잡은 사진감은 몇 번 찍고 그칠 사진감이 아닙니다. 이것저것 찍는 가운데 내 온삶을 바칠 만한 사진감이 무엇인가를 헤아리면서 깨달은 사진감입니다. 첫발을 디딘 날부터 마지막발을 디딜 날까지 고이 이을 사진입니다.

 돈이 안 되어도 찍는 사진이며, 돈이 되어도 찍는 사진입니다. 이름이 팔리지 않아도 찍는 사진이며, 이름이 팔려도 찍는 사진입니다. 아무도 안 찍어도 찍는 사진이며, 누구나 다 찍어도 찍는 사진입니다. 왜냐하면 저는 제 사진감인 책과 헌책방과 골목길과 우리 아이한테 쏙 빠져들었으니까요.


.. 슈베르트는 여전히 우울했다. 건강은 다시금 좋지 않았다. 게다가 돈도 없었다. 친구 집에 더부살이할 때와는 달리 방세도 물어야 했다. 그것을 메워 나가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고난을 겪을 때는 언제나 그렇듯 그는 일기를 꺼내어 생각되는 환멸을 기록하였다. “아무도 남의 괴로움이며, 기쁨을 의아해하지 않는다. 언제나 사람은 서로 마주보며 걸어간다고 믿으면서, 사실은 서로의 옆을 걷고 있다. 오, 그것을 깨닫는 자의 괴로움! 내 고통만으로써 창조된 작품이 사람들을 가장 즐겁게 하는 작품이다.” … 그의 작품은 팔리지 않았다. 〈아름다운 물방앗간의 아가씨〉는 전혀 성공하지 않았다. 화려한 로시니 앞에서는 너무나 단순하고 내적이고, 너무나 도이치적인 것으로 간주되었다. 점잔뺀 멜로디가 더 좋았던 것이다 ..  (118∼119쪽)


 어린이문학을 제 나이보다 더 긴 나날에 걸쳐 하신 어르신이, 언젠가 저한테 ‘최종규 씨가 쓴 글을 보니까 괜찮던데, 이제는 잡문보다는 본격문학을 해 보지 그래?’ 하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제 글을 애써 읽어 주시면서 괜찮다고 받들어 주시니 고맙기 그지없으며, 더욱이 본격문학을 할 만큼 밑바탕이 다져졌다고 하시니 더없이 즐겁습니다. 그런데, 저로서는 본격문학을 할 마음이 아직 없습니다. 어쩌면 앞으로도 없을는지 모르나, 조금 더 두고볼 노릇이라고 느낍니다. ‘자, 이제부터 문학을 써 볼까’ 하며 마음을 먹는다고 해서 나오는 문학은 아니라고 느끼거든요. 문학으로 느끼며 쓰든 문학으로 느끼지 않으며 쓰든, 내 마음과 몸이 오롯이 문학이 되어야 문학이라는 글 하나가 솟구쳐나오지 않느냐 싶습니다. 내세우는 문학이 아니라 스스로 즐기는 문학이며, 팔아먹으려는 문학이 아니라 이웃과 기꺼이 나누려는 문학이기 때문입니다.

 잡스러운 제 글은 한낱 잡스러운 글에 지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누리에는 잡스러운 글을 쓰는 사람도 하나쯤은 있어야 하지 않느냐 생각합니다. 이 몫을 아무도 안 하려 한다면 제가 해도 괜찮다고 느낍니다. 잡스러운 글이라 하지만 홀가분한 글이며, 잡스러운 글이란 소리를 들어도 스스로 울타리를 치지 않는 글입니다.

 우쭐거리지 않는 글, 아니 우쭐거릴 수 없는 글이 잡스러운 글입니다. 누군가 깎아내리거나 깔아뭉개도 얼마든지 깎이거나 깔리는 글이 잡스러운 글입니다. 그렇지만 스스로 좋아하거나 즐기지 않으면 쓸 수 없는 잡스러운 글입니다. 돈을 망태기에 그득 담아 떠밀어도 쓸 수 없는 잡스러운 글입니다.


.. 그러나 놀고만 있을 순 없었다. 어떻게든 돈을 벌어야 했다 … 그러나 슈베르트는 그것을 거절하여 부친을 낙담케 했다. 그는 독립을 사랑하는 나머지 거절했다. 자유로이 작곡을 계속하기 위해서, 그리고 내성적이어서. 하긴 지위에 앉기 위해서는 약간 시험 비슷한 것이 있어서 슈베르트는 그것을 두려워한 것이다 … 어지간히 쪼들리지 않는 한 그다지 싸구려로 팔지 않았다. 그러나 어차피 그 방면으로부터의 수입이란 미미한 것이었다 … “누구십니까?” “작곡가인 프란쯔 슈베르트입니다.” “모르겠는데요.” “악장님도 제 곡을 들이신 적이 있다고 생각합니다만. 무슨 리이드 같은 걸.” “전혀 없습니다.” 아무래도 이야기가 잘 안 된다. 슈베르트는 아이프러에게 〈미사곡〉을 맡겨 두었다. 몇 주일 지난 후 아이프러는 말했다. “당신의 미사곡은 꽤 좋습니다. 하지만 황제 폐하가 좋아하실 스타일이 아니군요. 폐하께서는 줄거리를 재미있게 짠 푸가를 좋아하십니다.” 슈베르트는 인사를 하고 돌아가면서 생각했다. “황제 식의 스타일로 쓸 수 없는 사람은 손해군!” ..  (134∼136쪽)


 만화책 《노다메 칸타빌레》를 펼치면, 꼭 저 같지는 않지만 저와 닮았다고 느낄 만한 젊은내기들이 그득그득 나옵니다. 마땅한 소리이지만, 저보다 훨씬 훌륭하면서 아주 뛰어난 솜씨를 선보이는 젊은내기입니다. 이네들과 저 따위를 견줄 순 없습니다. 다만, 만화를 넘기는 내내 ‘만화에 나오는 이들이 다루는 악기’를 ‘제가 다루는 볼펜과 사진기와 자전거’로 바꾸면서 생각합니다. 가난하면서 하나도 가난해 보이지 않고, 부자이면서 하나도 부자로 보이지 않는 수많은 ‘만화책에 나오는 노래벗’님들 삶에 흠뻑 젖어듭니다.


 (2) 우리가 아는 ‘가곡왕’ 슈베르트


 헌책방에서 손바닥책 《슈베르트》를 처음 만난 때는 2000년을 조금 넘긴 어느 날입니다. 그러나 이때 만난 ‘신구문화사 손바닥책’ 《슈베르트》는 파본이었습니다. 겉은 슈베르트 이야기라고 찍혔지만, 몸글은 베토벤 이야기가 찍혔더군요.

 1974년부터 나온 신구문화사 손바닥책 목록을 살피면, 슈베르트를 비롯해 링컨, 로베스피에르, 톨스토이, 도스토예프스키, 페스탈로찌, 고호, 퀴리 부인, 쇼팽, 밀레, 세잔, 베토벤 같은 사람들 이야기가 있습니다. 모두 150쪽 살짝 넘는 조그마한 판으로 묶였습니다. 하나같이 판이 끊어져서 다시는 찾아볼 수 없는 책입니다. 프랑스에서 손꼽히는 로맹 롤랑이 쓴 《톨스토이》마저 나라안에서 만나기란 아주 힘듭니다.

 이리하여, 파본 아닌 《슈베르트》를 만나기까지 여러 해가 더 있어야 했고, 2006년 9월에 드디어 말끔한 녀석으로 만났습니다.

 헌책방 책시렁에서 《슈베르트》를 알아보고 끄집어낼 때 이 기쁨이란! 가슴벅참이란! 떨림이란! 짠함이란!


.. 슈베르트가 서먹서먹해 한 곳은 에티켓이 까다롭고 격식만 따지는 상류 사회였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서, 묵묵히 사람들이 주목하지 않을 구석에 숨어 있었다 … 가고 없는 벗 대신 새로 온 사람은 프란쯔의 소문에 끌려 그와 접촉하는 것을 자랑으로 삼는 학생이며 관리였다. 유감스럽게도! 평범하고 용렬한 친구들뿐이어서 그들의 회화에 슈베르트는 우울해졌다. “그들은 경마, 격검, 말이나 개에 대해서밖에 이야기하지 않는다.” 아아! 지난날의 아름다운 얘기들이여! 예술, 시의 낭독, 문학과 음악의 신작에 대한 피가 끓게 하는 논의 등. 그런 것은 이제 끝나 버린 것이다 ..  (71, 105쪽)


 그러나 2006년 9월 무렵은 시골살림을 접고 어디론가 새 살림자리를 찾아야 하던 때라 책을 제대로 펼칠 만큼 느긋하지 않았고, 한 해 남짓 책꽂이 잘 보이는 자리에 꽂아 두기만 하며 보냈습니다. 그러고 2007년 4월, 비로소 고향 인천으로 돌아와 자리를 잡으면서 즐겁게 책장을 넘깁니다.

 처음 안 지 예닐곱 해 만에 겨우 찾아내어 읽는 《슈베르트》는 줄거리도 줄거리이지만, 책에 바친 다리품과 땀방울이 곁들였으니, 한 줄 두 줄 차곡차곡 온몸에 배어듭니다. 한참 책알맹이가 온몸으로 빨려들 무렵 화들짝 놀라 책을 덮습니다. 한꺼번에 너무 많이 빨려들면 아쉽기 때문입니다.

 학교에서 교과서 한 권을 한 해에 걸쳐서 떼듯, 조그마한 책 《슈베르트》를 며칠 걸러 몇 쪽씩 야금야금 읽습니다. 이렇게 하여 2008년 3월에 한 번 다 읽어냅니다. 이 뿌듯함을 가슴으로 꼭 껴안으면서 셈틀이 놓인 책상맡에 그대로 두고, 몇 달 뒤 다시 집어들어 한 번 더 차근차근 새겨 읽습니다. 두 번째 읽을 때에는 처음 읽을 때에 놓친 대목이 보이는 한편, 《슈베르트》와 겹쳐서 보는 만화 《노다메 칸타빌레》 스물한 권이 새삼스럽게 다가옵니다.

 만화책을 보면, 주인공 노다메가 신이치하고 ‘피아노 함께 치기(연탄)’를 하고 싶어 그토록 조르고 바라는데, 왜 ‘함께 치기’를 하려고 했는가 하는 대목을 《슈베르트》를 읽으며 눈물 한 방울과 함께 깨닫습니다. 슈베르트는 무엇보다도 ‘당신을 알아주고 함께 가난을 짊어지며 살아가는 노래벗하고 함께 악기를 치거나 켜거나 두들기는 일’을 몹시 좋아했습니다. 이 보람으로 살았다고 해도 틀리지 않습니다.


.. 슈베르트는 쉬지 않고 썼다. 언제나 돈에 쪼들리면서 큰 보수도 없는 일을 몸을 걱정하면서 이럭저럭 해냈는데, 그는 또한 작곡하는 데에 행복을 느끼고 좋은 친구들과 같이 비인에서 생활하면서 그들 중의 몇 사람에게 이해받는 데에 행복을 느꼈던 것이다 ..  (137쪽)


 만화와 글로 만나는 슈베르트는 가락으로 만나는 슈베르트와 사뭇 다릅니다. 만화와 글로는 만나도 가락으로 만나지 못한다면 헛물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런데, 가락으로만 만나고 만화와 글로는 못 만나는 슈베르트라면, 이 또한 헛물이 아니랴 싶어요. 아니, 슈베르트 온 모습을 못 보는 셈이 아니랴 싶습니다. 제도권 학교 음악 교과서에 적힌 ‘가곡왕’이라는 이름으로만 읊는 슈베르트로 그치지 않을까 싶습니다.


.. 그 800굴덴을 슈베르트는 다 써 버린다. 피아노를 산 것이다. 그때까지 그는 자기의 것을 가지지 못했었다. 빌 돈도 없을 정도였다. 조그만 방에 새 악기가 들어왔을 때의 기쁨! 하긴 그래서 음악회를 연 것은 아니었다. 하나 그런 것은 아무래도 좋다. 우선 무엇보다 음악이다. 할 수 없지 않은가! 또 가난하게 살지 뭐. 내년에도 또 해서 이번에야말로 똑바로, 그야말로 아주 타산적으로 쓰자. 그때의 수입은 그날그날 꼭 필요한 데에만 쓰자 ..  (153쪽)


 옆지기와 함께 성당 나들이를 할 때에도, 미사를 기다리면서 《슈베르트》를 넘기곤 했습니다. 조그마한 책에 담긴 이야기는, 거룩한 책에 담긴 이야기 못지않게 가슴을 쿵쾅쿵쾅 뛰도록 이끌었습니다.

 이를테면, 제가 여러 해에 걸쳐 적금을 부은 돈으로 렌즈를 장만하거나 사진기를 마련하거나 필름스캐너를 들여놓던 짜릿함은, 슈베르트가 애써 얻은 돈으로 피아노를 처음 마련하던 짜릿함하고 같은 자리에 있었구나 하고 느끼면서 펄떡펄떡 뜁니다. 오늘 저녁 끼니가 걱정되어도 ‘이 책을 안 사고 뒤돌아서면 몇날 며칠이 아니라 죽는 날까지 땅을 치며 안타까워할는지 몰라’ 하는 마음으로 책값을 쓴다고 주머니를 탈탈 털던 눈물겨운 보람은, 슈베르트가 몇 푼 벌지 못하는 살림에도 오선지를 겨우 장만하고 새 노래 짓기에 바쳤던 눈물겨운 삶하고 비슷한 자리에 있었구나 하고 느끼면서 두근두근 떨립니다.


.. 11월 3일에는 형 페르디난트의 〈레퀴엠〉의 연주를 위해서 헤르나루스 성당에 간신히 갔으나 돌아올 때는 몹시 피로감을 느꼈다 … 그래도 그는 계획을 품고 있다. 지몬 제히터라는 이론가에게 새 작곡법을 배우려고 그 문하생으로 들어갔다. 그는 이미 대가이면서 자기의 지식 부족을 느끼고 학교로 돌아가려고 하는 순진성을 잃지 않았던 것이다 … 슈베르트는 무엇보다 리이드 속에서 찾아야 한다. 베에토벤의 일생은 자기 자신을 갱신하기 위한 끊임없는 노력의 일생이었다. 한 작품을 다 쓰고 나면 그는 올가미를 쓴 듯한 일종의 속박에서 벗어나려고 한 듯하다. 그는 굴레를 벗으려 한다. 한 번 획득한 수법에 틀어박히거나 같은 일을 되풀이하거나 하지 않고 그는 습관의 지배에서 벗어나서는 안 된다. 그는 새 길을 찾고, 새 기법을 연마하고, 새 이상의 실현에 힘쓴다. 슈베르트에게는 어떠한 갱신도 발전도 없다. 최초의 날부터 그는 그 자신이며 최후의 날에 이르기까지 17세 때의 그대로이다 … 슈베르트는 보다 세밀히 감응한다. 바다, 강, 산 등도 그의 작품 속에서 따로따로 가려서 그리고 있다 … 베에토벤은 대자연을 초월하지 않는다. 그 웅대한 세계를 그는 감수하고 있다. 슈베르트에게는 그 대자연도 좁은 듯이 생각된다. 그는 환상적인 세계로 도피한다 … 슈베르트에게 있어서의 지성은 모두가 상상력이다 ..  (134, 160∼163쪽)


 돈이 없어도 책을 사야 합니다. 돈이 없어도 사진을 찍어야 합니다. 그림쟁이는 돈이 없어도 붓과 물감과 종이를 사서 그림을 그려야 합니다. 노래쟁이는 돈이 없어도 악기를 장만하고 오선지를 장만하며 노래를 켜야 합니다. 농사꾼은 돈이 없어도 씨앗을 마련하여 심고 가꾸며 거두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글쟁이이든 그림쟁이이든 노래쟁이이든 농사꾼이든, 저마다 제 글과 그림과 노래와 흙을 사랑하니까요. 사랑이 담긴 눈물로 살고, 믿음이 서린 웃음으로 살아가니까요.


 (3) 우리 나라에는 누가 슈베르트처럼


 두 번째로 《슈베르트》를 덮으며 세 번째로 되읽을 날을 손꼽습니다. 몇 달 뒤에 한 번 더 읽을는지, 다른 못 읽은 책을 먼저 읽고 나중에 좀 느긋해지면 되읽을는지 헤아립니다. 헌책방 나들이를 하며 다시금 《슈베르트》를 만날 수 있다면, 기꺼이 한 권 더 장만하여 내 가장 아끼는 마음벗한테 선물해 볼까 하고 생각합니다. 아니면, 이 작은 책을 어떤 헌책방 책손이 알아보고 사들일까 하고 지켜보아도 괜찮으리라 생각합니다.


.. 슈베르트는 전혀 반대로 혼자서는 살 수도 없었고, 대자연만을 관조하면서 소일할 수도 없었다. 자아 속에 잠겨 버릴 수도, 사람을 초월하여 ‘커다란 전체’에 직접적으로 맺어질 수도 없었다. 그는 유쾌한 친구들에게 둘러싸이는 활달하고 떠들썩한 환경이 필요했다. 그는 속인들과의 교제가 필요했다. 그것도 그가 너무 내성적이어서 가까이 할 수 없었던 왕후 귀족과의 고제가 아니라, 그렇게 점잔빼지 않는 평민들과의 교제이다. 그는 그러한 곳에서 인간과 그 풍속ㆍ감정ㆍ정열 등을 넓게 갖가지로 알고, 그 예술을 베에토벤이 몰랐을 천차만별한 성격과 감동의 뉘앙스로 채색하고 있다 … 그는 차차 다른 학과에는 게을러지고 가장 좋아하는 음악을 위해서만 살려고 하게 되었다. 단 한 가지 곤란한 것은 5선지가 수중에 없고, 그것을 살 돈도 없는 것이었다. 그래서 백지에 선을 그었다. 그러나 그 종이도 없을 때가 가끔 있었다. 슈파운이 귀중한 5선지를 조심스레 대어 주면 슈베르트는 순식간에 그것을 다 써 버렸다 ..  (19, 21쪽)


 그나저나, 우리 나라에서는 슈베르트와 같은 노래쟁이로 누구를 꼽을 수 있을까 궁금합니다. 가곡을 써야지만 슈베르트와 같은 노래쟁이이지 않습니다. 삶이며 매무새이며 넋이며 몸짓이며 생각이며가 슈베르트와 같은가 다른가에 따라 달린 일입니다. 저한테 주어진 모두를 슈베르트가 제 깜냥껏 받아들이고 삭이며 살았듯, 이 땅 우리 나라에서 우리 모두한테 주어진 길을 스스로 삭이고 가다듬으며 걸러내어 노래 한길을 걷는 어떤 노래님이 있을는지 궁금합니다. 스스로 고운 노래를 즐기면서 우리 모두한테 살가운 노래벗이 되어 줄 사람으로 누가 어디에서 어떻게 땀을 흘리며 애쓸는지 궁금합니다.


.. 슈베르트는 연탄의 이점을 교묘히 끄집어냈다. 게다가 슈베르트는 절대로 고독한 사람이 아니다. 피아노를 친구들과 함께 친다는 것은 유쾌한 일이었다 … 그는 청중에게 “그의 손가락에 의하여 건반은 노래하는 소리가 된다”는 말을 듣는 것을 무엇보다도 기뻐했다 ..  (47쪽)


 어릴 적부터 장만하여 틈틈이 듣는 ‘흘러간 대중노래’인 장덕 테이프, 우순실 테이프, 신정숙 테이프, 이지연 테이프, 동물원 1집 테이프, 김현식 테이프, 한대수 테이프 들을 들으면서 생각에 잠깁니다. 슈베르트가 제 땅에서 제 이웃과 나눈 노래란 누구한테 즐거웁자고 빚은 노래이며, 그무렵 슈베르트가 지은 노래는 오늘날 우리들이 짓는 어떤 노래와 같을까를 곱씹습니다. ‘가곡왕’이라는 이름이 붙었으나, 이 이름보다는 ‘노래를 사랑한’ 사람이요, ‘노래를 삶으로 받아들인’ 사람이라는 이름이 한결 어울리지 않을까 싶은 슈베르트인데, 오늘 우리한테 슈베르트 노래는 어떻게 다시 태어날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2009.4.17.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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