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나시 면사무소 산업과 겸 관광담당 1
이와모토 나오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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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무가 들려주는 목소리를
 [만화책 즐겨읽기 171] 이와모토 나오, 《아메나시 면사무소 산업과 겸 관광담당 (1)》

 


  풀벌레가 한창 노래하는 한여름입니다. 저녁과 밤과 새벽에 풀벌레 노랫소리를 가만히 들으며 생각합니다. 내가 살아가는 이 마을은 조용한 시골이기에 자동차나 가게나 기계 소리가 아닌 풀벌레 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내가 도시에서 살아간다면 도시에서 흘러넘치는 소리를 들을 텐데, 나는 시골에서 살아가니까 시골에서 흐르는 소리를 듣습니다. 그러면, 내가 이렇게 듣는 풀벌레 노랫소리와 멧새 노랫소리만큼, 내 마음속에서 울리는 노랫소리는 얼마나 잘 듣는가 궁금합니다.


  한밤에도 31도까지 이어지던 날씨가 수그러듭니다. 봄과 첫여름을 지나 처음 27도 28도 29도가 될 적에는 이런 밤날씨에 어떻게 살아낼까 싶었습니다. 그런데, 30도 31도가 되는 한여름 밤을 지내고 보니, 30도 밑으로 떨어진 밤날씨가 참 시원스럽구나 싶어요. 처음 29도가 되던 한여름에는 찌는 듯해 땀이 줄줄 흘렀으나, 31도 밑으로 안 내려오던 밤날씨가 수그러들면서 30도나 29도가 되는 밤날씨가 참 괜찮구나 하고 느낍니다. 그러다 문득, 내 몸은 이렇게 날씨를 느끼지만, 내 마음은 어떠할까 궁금합니다. 내 몸은 덥구나 춥구나 좋구나 궂구나 하고 느낀다지만, 내 마음은 무엇을 느끼거나 받아들일까 궁금합니다.


- “유채꽃이 장난 아니네?” “유채꽃이 아니라 겨자거든? 먹으면 꽤 맛있어. 최근에 편의점 생겼는데 들렀다 갈래? 어차피 다른 가게도 없으니까.” (6쪽)
- “오빠, 이 마을에 고등학생 이상의 젊은이는 우리 셋밖에 없으니까 사이좋게 지내자.” (9쪽)


  마을마다 아이들이 거의 안 삽니다. 마을마다 할머니와 할아버지만 남기 일쑤입니다. 아이들도, 아이들을 낳는 어버이도, 으레 마을을 떠나 면소재지나 읍소재지에서 살거나, 아예 도시로 나아갑니다. 도시는 나날이 커집니다. 면소재지와 읍소재지는 차츰 작아집니다. 마을은 더욱 조용해집니다.


  마을에 집이 없거나 땅이 없기에 어린이와 젊은이가 떠나지는 않습니다. 마을에서 흙을 일구며 살거나 바다를 껴안고 살 때에 돈이 안 나오기 때문에 모두들 도시로 가지는 않습니다. 도시에는 사람들 몸을 스물네 시간 내내 건드리거나 이끄는 무언가 있습니다.


  시골에는 사람들 몸을 건드리거나 이끌 만한 무언가 없을까 헤아려 봅니다. 아무래도 사람들마다 달리 느낄 텐데, 언제 어디에 있더라도 스스로 느끼려 하면 느끼고, 스스로 느끼려 하지 않으면 못 느낍니다. 그렇지만, 아이들은 어린 나이부터 유치원과 어린이집을 거쳐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지날 무렵이면 도시 문화와 문명과 물질에 익숙해집니다. 보육시설이나 교육시설은 모두 도시에서 만들고, 교재나 교과서나 책은 온통 도시 이야기입니다. 시골에서 예쁘게 살아가며 예쁘게 꿈꾸는 이야기를 다루는 보육시설이나 교육시설은 찾아볼 길이 없습니다.


  곰곰이 돌이키면, ‘숲 유치원’도 ‘바다 초등학교’도 ‘멧골 중학교’도 없다 할 만합니다. 숲을 느끼는 유치원은 얼마나 있을까요. 시골 면소재지에 있는 유치원은 둘레에 널린 숲에서 아이들하고 부대끼려 할까요. 바닷가에 있는 초등학교는 가까운 바다를 아이들이 껴안도록 이끌까요. 태백산이나 지리산 둘레 중학교는 멧자락을 오르내리는 삶을 아이들이 어깨동무하도록 가르칠까요.


  어릴 적부터 도시살이에 익숙한 아이들은 고등학교를 다니면서 ‘도시에서 돈을 버는 일자리’만 생각하고 맙니다. 직업훈련이란 도시에서 회사나 공장을 다니도록 이끄는 직업훈련이지, 시골에서 흙을 만지거나 바다를 얼싸안는 직업훈련이 아닙니다. 멧나물을 뜯거나 숲을 보살피는 직업훈련은 아예 없다시피 합니다. 아니, 도시에서조차 작은도시는 큰도시로 가도록 내몰고, 큰도시라 하더라도 더욱 커다란 도시로 가도록 떠밉니다. ‘시골 고등학교’가 없고, ‘나무 대학교’가 없어요.

 

 

 


- ‘(오랜 벚나무 꽃잎을 흩날리는) 그 바람은 내 마음속의 ‘잘 선택했을까?’란 의구심과 ‘어쩔 수 없지’란 체념을 어디론가 아주 멀리 날려버린 듯해다.’ (32쪽)
- “쌍방향에서 차가 올 때 반드시 어느 한쪽은 기다려 준다거나 길에서 만난 고등학생이 반갑게 인사를 한다거나, 그런 곳이 그렇게 흔한 건 아니니까요. 전 더 많은 사람들이 우리 마을을 알아줬으면 좋겠어요.” (76∼77쪽)
- “그래도 갔다 와, 형. 풀죽어 돌아와도, 지금이라면 어느 집에 들어가든 따뜻한 밥 한 끼는 내줄 거야. 형이 하는 일은 바로 그런 일이거든.” (114쪽)


  나무 한 그루 우람하게 자라자면 스무 해나 서른 해를 지나야 합니다. 곧, 아이 하나 태어날 때에 씨앗 한 알 심어 스무 해나 서른 해를 지나면 우람한 나무 한 그루를 얻습니다. 이 아이가 자라 저희 아이를 낳아 다시 스무 해나 서른 해를 지나면 훨씬 우람한 나무로 자랍니다. 이때에 다른 나무씨 한 알을 더 심으면 우람한 나무 곁에 차츰 크는 새 나무 한 그루 나란히 섭니다. 살기 좋은 마을이라 여기는 곳에서 살기 좋은 보금자리라 여길 터를 일구면, 나무들은 차츰차츰 뿌리를 키우고 줄기를 굵힙니다. 나무는 백 살이 되고 삼백 살이 됩니다. 오백 살과 천 살을 먹습니다. 이제 천 살이나 이천 살을 먹은 나무가 마을이나 보금자리 둘레에 있으면, 이 나무는 뭇사람한테 좋은 기운을 늘 베풉니다. 싱그러운 풀빛과 상큼한 풀내음을 나누어 주면서 따사로운 삶을 누리는 기쁨을 베풉니다.


  고흥 읍내에 볼일 보러 갈 적에는 팔백예순 살 먹은 느티나무 밑에서 다리를 쉬곤 합니다. 어른 여럿이 팔을 벌려야 안을 만큼 굵직한 느티나무인데, 아이들은 나무에 올라가서 놀기를 좋아합니다. 어른도 이 나무에 올라가서 놀 만합니다. 우람한 나무는 누구한테나 좋은 그늘과 맑은 숨결을 베풉니다.


  곰곰이 헤아리면, 이 나라 곳곳에 나무가 꽤 있습니다. 그러나 몇 백 해를 아름답게 살아낸 나무는 퍽 드뭅니다. 몇 천 해를 기운차게 살아낸 나무는 아주 드뭅니다. 사람들 스스로 나무를 아끼지 않을 뿐더러, 사람들 스스로 나무하고 어깨동무하지 않아요. 사람들 스스로 어린이에서 어른이 되는 스무 해나 서른 해를 나무 한 그루 곱다시 지켜보며 사랑하지 못해요. 다시 스무 해나 서른 해를 나무 한 그루 곱다라니 지켜보며 사랑한다면, 어느 고을에 가든 눈과 귀와 코와 살결을 쉴 만할 텐데, 나무 한 그루 아닌 편의점과 가게만 끝없이 늘어납니다. 나무가 설 자리에 고속도로와 고속화도로가 자꾸 생깁니다. 나무 한 그루 천천히 자라날 빈터는 사라지고, 자가용을 댈 시멘트땅이나 아스팔트땅이 줄줄이 이어집니다.

 

 


- “나 같은 애는 어린 거 빼곤 아무 장점도 없으니까.” “무슨 소리야? 너같이 시간 잘 지키고 성격 좋은 애가 어딨다고. 넌 옛날부터 좋은 애였어.” (20쪽)
- “그치만 가슴도 크고 괜찮던데.” “가슴이야 확실히 컸지. 근데 진짜 중요한 건, 날 얼마나 좋아하느냐니까.” (70∼71쪽)


  이와모토 나오 님 만화책 《아메나시 면사무소 산업과 겸 관광담당》(대원씨아이,2010) 첫째 권을 읽습니다. 일본도 한국도 ‘작은 면’에서 어린이와 젊은이가 사라지는 흐름은 엇비슷합니다. 마을마다 할머니와 할아버지만 남고, 할아버지는 술놀이에 젖어드는 모습이 어슷비슷합니다.


  스스로 생생한 기운을 잊습니다. 스스로 맑은 기운을 잃습니다. 스스로 예쁜 기운하고 등돌립니다. 스스로 푸른 기운하고 멀리합니다.


- “미안해, 오빠. 고마워. 그렇게 동네 심부름 가는 차림으로 달려와 줘서.” (48쪽)


  도시사람은 휴가철을 맞이해 물과 흙과 하늘과 풀이 좋은 시골을 찾아 길을 떠납니다. 도시사람은 휴가철이 아니어도 틈틈이 ‘눈과 귀와 코와 살결이 예쁘게 쉴 만한’ 좋은 시골을 찾아 나들이를 다닙니다. 도시사람은 여느 때에는 언제나 도시에서 먹고 마시고 쓰고 즐기지만, 온통 도시에서만 젖어들지 못합니다. 숨을 돌릴 틈을 마련해야 합니다. 도시에서 공원을 찾고, 도시 곳곳에 나무 몇 그루나 꽃 몇 송이를 심습니다. 아파트 툇마루이든 방 한켠에든 꽃그릇 한둘이라도 놓으려 합니다. 좋아하는 사람한테 준다며 꽃다발을 마련하곤 합니다. 시골에는 꽃가게가 없습니다만, 도시에는 꽃가게를 쉬 만날 수 있습니다.


  시골에서는 들판과 숲을 바라보며 철과 날씨를 헤아리지만, 도시에서는 사람들 옷차림으로 철과 날씨를 헤아립니다. 시골사람은 신문이나 방송을 들추지 않아도 철과 날씨를 깨달으나, 도시사람은 신문이나 방송을 들추지 않고서야 철과 날씨를 깨닫지 못합니다. 사람 스스로 자연이요, 사람이 살아가는 고을이 바로 자연이지만, 도시에서 살아가며 사람들 스스로 자연이고 사람들 살림집 또한 자연인 줄 모르거나 잊거나 생각조차 못합니다. 이리하여 따로 자연그림책을 그려서 아이들한테 읽히거나 생태환경책을 써서 어른들끼리 읽곤 합니다.

 

 

 


- “내가 지금 하려는 일을 사람들은 반대할까?” ‘괜찮아, 여름축제도 해냈는데 뭐.’ “축제보다도 훨씬 어려운 일이야. 마을 전체를 설득해야 해. 그동안 이렇게 대규모의 일을 생각한 적도 없고, 했다가 실패할까 봐 두려워.” ‘하지만 넌 여기 계속 있을 거잖아.’ (175∼176쪽)


  나무는 늘 노래를 합니다. 풀벌레도 노래를 하고 멧새도 노래를 하는데, 자동차도 노래를 하고 공장도 노래를 하겠지요. 저마다 제 삶결에 맞추어 노래를 하겠지요.


  나무는 푸른숨으로 노래를 합니다. 나무는 푸른잎으로 노래를 합니다. 나무는 푸른빛으로 노래를 합니다.


  나무가 들려주는 노래를 들어 보셔요. 나무가 베푸는 노래를 맞이해 보셔요. 나무가 나누려는 노래를 받아들여 보셔요.


  도시에서도 시골에서도 나무는 씩씩하게 뿌리를 내려 짙푸르게 가지를 뻗고 싶습니다. 도시에서도 시골에서도 나무는 해마다 씨앗을 맺어 천천히 숲을 이루고 싶습니다. 도시에서도 시골에서도 나무는 사람과 벌레와 짐승과 새와 풀 모두하고 사이좋게 이웃이나 동무가 되어 예쁜 숲누리를 보살피고 싶습니다. 나무는 한 곳에 뿌리를 내리면서 온 고을에 맑은 웃음꽃이 피어나도록 이끄는 바람을 불러옵니다. (4345.8.9.나무.ㅎㄲㅅㄱ)

 


― 아메나시 면사무소 산업과 겸 관광담당 (이와모토 나오 글·그림,서수진 옮김,대원씨아이 펴냄,2010.12.15./5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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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밥상맡 만화책

 


  아이를 부른다. 아이는 만화책에 푹 빠졌다. 만화책은 밥을 먹고 나서 읽으라 말하지만 듣지 않는다. 한참만에 겨우 밥상맡에 앉지만, 손에 만화책을 쥔다. 밥을 다 먹은 다음 보라고, 보라고, 여러 차례 되풀이하며 말하니 비로소 바로 옆에 만화책을 내려놓는다. (4345.8.9.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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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라 먹는 어린이

 


  일산 할아버지하고 바닷가에 갔다. 고둥과 소라를 한 가득 주웠다. 큰 냄비에 넣고 팔팔 끓였다. 옷핀으로 찔러 빼낸다. 조그마한 몸통을 냠냠 먹는다. 삶은 소라에서 갯내음이 물씬 난다. (4345.8.9.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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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읽기
― 이야기를 사진으로 엮는다

 


  이야기를 사진으로 엮습니다. 나는 내가 살아가는 이야기를 사진으로 담아 내 나름대로 내 이야기책을 엮습니다. 이야기는 글로도 엮습니다. 나는 내가 살아가는 이야기를 글로 적어 내 깜냥껏 내 이야기책을 엮습니다. 내가 그림을 그리거나 만화를 그리는 사람이라면, 그림이나 만화로도 내 이야기책을 엮을 테지요. 내가 노래를 부르는 사람이라면 내가 지은 즐거운 노래 한 가락으로 내 이야기를 펼칠 테고요.


  내가 집에서 살림을 일구는 사람이라면, 내 손길이 닿는 살림살이에는 내 이야기가 사르르 묻어납니다. 내가 들에서 흙을 만지는 일꾼이라면, 들판 풀포기와 흙알 곳곳에 내 이야기가 스르르 묻어듭니다. 내 삶터는 내 일터요 내 놀이터이면서, 내 글터이거나 그림터이거나 사진터가 됩니다. 내 삶터는 내 사랑이 태어나는 사랑터이자 내 믿음이 피어나는 믿음터요 내 꿈이 이루어지는 꿈터입니다.


  이야기를 사진으로 엮습니다. 나 스스로 좋아하는 이야기를 찾아 씩씩하게 살아가는 걸음걸이가 온통 글이나 사진이나 노래로 거듭나면서 이 이야기를 새삼스레 갈무리해서 사진책이나 글책을 엮습니다. 따로 종이로 책을 묶지 않아도 마음속에 이야기를 아로새깁니다. 돌이키면, 먼저 내 마음속에 이야기를 아로새길 수 있어야, 종이에도 이야기를 아로새길 수 있습니다. 내 마음속에 아로새기는 이야기가 있기에 내 손가락을 놀려 원고지나 필름에 내 꿈 실은 사진을 빚을 수 있습니다.


  이야기를 엮는 사람은 글쟁이나 사진쟁이가 아닙니다. 어느 누구라도 스스로 이야기를 엮을 수 있습니다. ‘한 사람’일 때에 이야기를 글이나 사진이나 노래나 춤이나 그림이나 만화로 엮습니다.


  사진기를 어깨에 걸쳤거나 사진작품을 선보였거나 사진잔치를 열었기에 사진쟁이가 아닙니다. 사진과 함께 살아가면 누구라도 사진쟁이입니다. 사진을 찍어 돈을 버는 사람이라면 사진가라 할 만하리라 생각합니다. 사진을 찍어 이름을 얻는 사람이라면 사진작가라 할 만하리라 생각합니다. 굳이 이런 갈래 나누거나 저런 울타리 세울 까닭은 없습니다. 저마다 스스로 좋아하는 사진삶을 누리면서 사진밭을 일구면 됩니다. 사람이라면 밥을 먹으며 목숨을 잇기에, 사람이라면 누구나 스스로 살림꾼입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스스로 살림꾼이듯, 사람이라면 누구나 글꾼이 될 수 있고, 사진꾼이 될 수 있으며, 그림꾼이 될 수 있어요. 사람이기에 누구나 스스로 일꾼이 되거나 놀이꾼이 됩니다. 곧, 사람일 때에는 누구나 다 다른 빛으로 사랑꾼이 되고 꿈꾼이 되며 이야기꾼이 됩니다.


  나는 내 삶을 즐겁게 돌아보면서 사진 몇 장 그러모아 조그맣게 사진책을 꾸립니다. 이 사진책을 좋아해 줄 이웃도 있을 텐데, 이 사진책은 누구보다 나와 옆지기와 아이들이 좋아하며 곁에 둘 이야기꾸러미입니다. 우리 살붙이가 즐겁게 이야기꾸러미로 삼아 언제나 곁에 둔다면, 우리 둘레 좋은 이웃과 동무들도 이 이야기꾸러미를 함께 들여다보면서 맑은 웃음과 고운 노래 길어올릴 수 있겠지요. (4345.8.8.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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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무트 뉴튼 - 관음과 욕망의 연금술사 현대 예술의 거장
헬무트 뉴튼 지음, 이종인 옮김 / 을유문화사 / 2004년 11월
평점 :
절판



 사진과 섹스 두 가지
 [내 삶으로 삭인 사진책 36] 헬무트 뉴튼, 《헬무트 뉴튼, 관음과 욕망의 연금술사》(을유문화사,2004)

 


- 책이름 : 헬무트 뉴튼, 관음과 욕망의 연금술사
- 글 : 헬무트 뉴튼
- 옮긴이 : 이종인
- 펴낸곳 : 을유문화사 (2004.11.25.)
- 책값 : 2만 원

 


  (1) 가슴에 아로새기는 한 가지


  1920년에 태어나 2004년에 숨을 거둔 사진쟁이 헬무트 뉴튼 님 스스로 이녁 삶을 적바림한 책 《헬무트 뉴튼, 관음과 욕망의 연금술사》(을유문화사,2004)를 읽으면, 처음부터 끝까지 ‘섹스’라는 낱말이 ‘사진’이라는 낱말보다 훨씬 자주 많이 나옵니다. 한국말로 옮긴 책에 붙인 이름은 “관음과 욕망의 연금술사”이지만, 헬무트 뉴튼 님은 “AUTOBIOGRAPHY”라는 이름만 붙여서 이녁 이야기를 펼칩니다. 스스로 살아온 이야기를 적바림한 책이고, 스스로 생각한 이야기를 아로새긴 책이며, 스스로 사랑한 이야기를 읊은 책입니다.


  그러니까, 헬무트 뉴튼 님으로서는 이녁이 ‘살’고 ‘생각’하며 ‘사랑’한 이야기를 적은 책이기에, 스스로 마음에 오래도록 품은 이야기를 들려주는 책입니다.


  누구이든 스스로 살아가는 이야기를 글로 씁니다. 누구라도 스스로 살아가는 이야기를 그림으로 그리고 사진으로 찍으며 노래로 부릅니다. 누구나 스스로 살아가고 싶은 길을 말하며 차근차근 이룹니다. 헬무트 뉴튼 님은 이녁 삶에 두 가지를 나란히 놓습니다. 하나는 살섞기(섹스)이고, 하나는 사진입니다.


.. 나는 싱가포르에 처음 도착했을 때처럼 도서관에 죽치고 눌러앉은 시간이 많아졌다. 책과 잡지에 끌렸고, 브로샤이와 조지 허렐(Geoge Hurrell) 같은 훌륭한 사진작가들을 접하기 시작했다. 갑자기 사진작가가 되겠다는 욕구가 내 마음속에서 솟구치기 시작했다. 나의 스승 이바가 생각났고, 그녀의 스튜디오에서 얼마나 기쁨에 넘쳐 일했는지 회상하게 되었다. 나는 싱가포르에 있는 동안 전문직에 대한 야망을 잊어버렸고 장래를 완전히 망각했다 … 나는 (2차 세계대전 포로수용소에서) 화장실 청소 팀에 들어갔는데, 일은 불쾌해도 하루에 2시간만 집중하면 되는 것이 마음에 들었다. 그것만 끝내 놓으면 나머지 시간은 무슨 짓을 하던 자유였다. 드러누워서 일광욕을 하든지, 독서(수용소 내에 아주 훌륭한 도서관이 있었다(를 하든 자유시간을 즐겼다 ..  (127, 135쪽)


  내가 살아가는 나날을 돌아봅니다. 사진을 찍는 내 삶을 헤아립니다. 내가 스스로 내 사진을 말하는 자리에서는 어느 낱말을 골라 얼마나 자주 들먹일까 하고 생각합니다.


  아무래도 나는 내 사진을 이야기하는 자리에서 ‘삶’이라는 낱말을 틈틈이 들먹이리라 봅니다. ‘삶사진’을 말하다가 ‘사진삶’을 말할 테고, ‘삶찍기’와 ‘삶읽기’를 말하리라 봅니다.


  나는 사진찍기뿐 아니라 글쓰기를 이야기하는 자리에서도 ‘삶’을 으레 들먹입니다. 그래서 ‘글쓰기’는 ‘삶쓰기’요, ‘책읽기’는 ‘삶읽기’가 된다고 곧잘 이야기합니다.


  내가 내 사진밭을 이야기하면서 ‘삶’이라는 낱말을 읊는 횟수만큼, 헬무트 뉴튼 님은 ‘살섞기’라는 낱말을 읊겠지요. 내가 내 사진길을 되짚으면서 ‘삶’이라는 낱말을 노래하는 만큼, 헬무트 뉴튼 님은 ‘살섞기’라는 낱말을 노래하리라 느낍니다.


.. 그녀(아내가 된 준)는 내가 여태껏 알아 온 여자들과는 전혀 달랐다. 다른 여자들은 오로지 섹스에만 관심이 있었다. 그러나 그녀에게는 섹스 이외의 차원이 있었다 … 이런 점에서 준은 내게 힘을 주는 사람이었다. 그녀는 “밖에 나가서 양식을 살 돈을 벌어 오라.”고 말하지 않았다. 위대한 패션 사진작가가 되고 싶은 나의 욕구와 야망을 잘 알고 있었다. 이미 앞에서 말한 바 있듯이 사진을 선택한 것은 사진이 좋아서 그런 것이지, 큰돈을 벌기 위한 것은 아니었다 ..  (179, 212쪽)


  사진을 찍는 까닭이 있습니다. 그예 좋아서 사진을 찍습니다. 내가 살아가는 나날이 온통 사진이기에 아주 홀가분하게 사진을 찍습니다. 날마다 좋은 꿈을 꾸면서 예쁜 사랑을 빚으니 가없이 마땅하게 사진을 찍습니다. 어느 한 가지 뜻을 이루고자 차근차근 사진을 찍습니다. 1등이 되고픈 사람이 있고, 돈을 벌고픈 사람이 있습니다. 대학교수를 바라는 이가 있을 테며, 사진작품으로 책을 내거나 잔치를 열고픈 이가 있어요.


  어떠한 뜻이든 다 좋습니다. 어떠한 뜻이든 스스로 생각을 슬기롭게 품으면 모두 이룰 수 있습니다. 사진을 찍으며 삶을 빛낼 수 있습니다. 사진을 찍으며 사랑을 꽃피울 수 있습니다. 사진찍기를 즐기며 살섞기를 즐길 수 있습니다. 사진찍기로 돈벌이를 삼을 수 있습니다. 사진누리에서 1등이 될 수 있을 테고, 사진역사에 이름을 아로새길 수 있어요. 사진책을 수십 수백 권 내놓을 수 있고, 대학교 사진학과 교수가 될 수 있어요.


  다만, 이 길을 이루거나 저 뜻을 펼치는 모습이 ‘내 삶’에서 얼마나 아름다운가 하고 돌아보면 됩니다. 이 길을 이루거나 저 뜻을 펼치는 보람과 재미를 스스로 깨달으면 됩니다.


  높직한 멧봉우리에 올랐으니 내려와야 한다고 말합니다. 8000미터가 넘는 멧봉우리를 오른 이들은 멧꼭대기에 깃발 하나 꽂고 사진을 찍은 다음 바지런히 내려옵니다. 매서운 칼바람 부는 눈밭에서 먹고살 만한 사람은 없을 테니까요. 곧, 어떤 길이나 뜻을 이루려는 사람은 어떤 길이나 뜻을 이루고는 ‘다른 새로운 길이나 뜻’을 곧장 세우거나 천천히 또는 빠르게 ‘내려옵’니다.


  어느 모로 본다면, 사진누리에서 1등 자리에 올라서다가 아무것 아닌 자리에 내려오는 일은 부질없는지 모릅니다. 내가 1등 자리에 올라서기까지 다른 누군가가 1등 자리에 있었을 테고, 내가 1등 자리에서 내려올 때에는 다른 누군가가 1등 자리에 올라서겠지요. 그런데, 예나 이제나 앞으로나, 1등 자리에 서는 사람들은 무엇을 누리거나 겪거나 느끼거나 즐길 만할까요.


.. 그 후 나는 누가 나에게 너는 이렇게 살아라, 이렇게 해라, 이런 식으로 해서 돈을 벌어라 하고 말하는 것을 절대 용납하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 싫어하는 곳에 대해서는 타고난 저항심이 발휘되었다. 좋아하는 곳이라면 마치 택시 운전사가 된 듯 그곳의 지리를 훤하게 파악했다. 사실 파리에서 길을 익히는 데에는 몇 주밖에 걸리지 않았고 … 나는 편집자들의 사진 선택에 늘 불만이었다. 하지만 여러 해 전부터 사정은 나에게 유리하게 바뀌었다. 나는 요사이 일을 주문해 온 잡지사에 내 마음에 드는 몇 장의 사진만 제공한다 … 나는 이렇게 주장하곤 했다. “잡지사는 우리 작가들을 들개처럼 파리 시내에 풀어놓고 아주 파격적인 사진을 찍어 오도록 해야 한다. 프랑스의 《보그》만이 발표할 용기가 있는 그런 사진을 찍어 오라고 요구해야 한다.” ..  (189, 203, 237쪽)


  마음이 따사로운 사람은 무엇을 해도 따사로운 기운을 누립니다. 마음이 가벼운 사람은 무엇을 해도 가볍게 누립니다. 마음이 넉넉한 사람은 무엇을 해도 넉넉히 생각하고 품으며 어루만집니다.


  사진찍기라고 대수롭지 않습니다. 글쓰기라고, 흙일이라고, 대통령 노릇이라고, 도지사나 시의원 구실이라고 더 대수롭지 않습니다. 스스로 사랑할 수 있는 일일 때에 스스로 삶이 됩니다. 스스로 좋아하며 받아들일 때에 바야흐로 삶으로 누립니다.


  사진쟁이 헬무트 뉴튼 님은 ‘살섞기와 사진’입니다. 다른 누군가는 ‘나들이(여행)와 사진’이 될 수 있습니다. 어린 두 아이와 살아가는 나는 ‘아이들과 사진’이 될 수 있습니다(2012년에 다섯 살 큰아이와 두 살 작은아이가 있습니다). 아마, 나처럼 ‘아이들과 사진’으로 살아가는 사진쟁이가 꽤 있으리라 봅니다. 어느 사람은 ‘책과 사진’이 될 수 있습니다. 어느 사람은 ‘전쟁터와 사진’이 될 만하고, 어느 사람은 ‘사회와 사진’이 될 만해요. ‘노래와 사진’이라든지 ‘바다와 사진’이라든지 ‘예술과 사진’이라든지, 스스로 빚는 결대로 사진을 즐깁니다. 스스로 바라는 길을 스스로 찾아 스스로 빛냅니다.


  사진을 찍는 사람한테는 어느 회사 어느 사진기로 사진을 찍느냐는 대단하지 않습니다. 그림자(흑백)인지 무지개(칼라)인지는 대단하지 않습니다. 사진이면 됩니다. 얼굴이 예쁘건 몸매가 잘빠지건, 살섞기를 하는 사람은 살섞기를 할 뿐이에요. 나무가 우거지든 나무가 없든, 멧봉우리를 타려는 사람은 멧봉우리를 탈 뿐이에요. 빠르건 느리건, 노래를 부르는 사람은 노래를 부를 뿐이에요.


  가슴으로 담는 한 가지를 생각합니다. 내 가슴에 담아 내 몸으로 살아내는 한삶을 생각합니다. 가슴으로 스미면서 늘 되돌아보는 한길을 생각합니다.


.. 몇 년 전, 나는 좋은 아이디어가 하나 떠올랐다. 잡지사나 광고주가 가지고 있으면서 사진작가에게 돌려주지 않은 사진은 크기와 관계없이 엄청난 가격, 가령 한 장당 4000∼5000달러를 지불하도록 청구한다는 생각이었다 … 나의 사진 기술은 소년 시절에 익혔던 것에서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 빛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항상 더 많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사진을 찍을 때 과다노출이 될 위험은 항상 존재한다 ..  (239, 272, 297쪽)


  운동선수가 되거나 과학자가 되거나 스스로 되고 싶으면 될 수 있습니다. 가정주부 일을 하거나 회사원 일을 하거나 스스로 하고 싶으면 할 수 있습니다. 따사로운 햇살을 누리며 물놀이를 하고 싶다면 따사로운 햇살을 누리며 물놀이를 할 수 있어요. 시원한 바람을 쐬며 나무그늘에서 쉬고 싶으면 시원한 바람을 쐬며 나무그늘에서 쉴 수 있어요.


  기쁜 생각은 기쁜 삶을 부릅니다. 걱정어린 생각은 걱정어린 삶을 부릅니다. 사진쟁이 헬무트 뉴튼 님은 언제나 이녁한테 가장 기쁠 삶을 생각합니다. 사진쟁이 헬무트 뉴튼 님은 이녁한테 걱정스러울 삶은 굳이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녁 스스로 살아온 이야기를 펼친 책 《헬무트 뉴튼》은 헬무트 뉴튼 님 스스로 아주 좋아하고 아주 즐기며 아주 누린 한 가지 이야기만 신나게 담습니다. 그렇겠지요? 좋아해서 즐긴 이야기를 적을 ‘내 이야기(자서전)’예요. 어떤 일을 이루거나 못 이룬 이야기는 애써 적을 일이 없어요. 헬무트 뉴튼처럼 ‘사진을 찍어 이름을 얻’거나 ‘패션사진을 찍어 돈을 벌’거나 하는 이야기는 부질없어요. 헬무트 뉴튼은 이녁 스스로 생각을 어떻게 가다듬으면서 삶을 어떻게 누렸는가 하는 대목이 값있어요. 그래서 사진책 《헬무트 뉴튼》을 읽으면, 2/3는 ‘살섞기를 하며 지낸 옛이야기’요, 1/3은 ‘사진을 바라보는 짧은 글’이라 하는데, 사진을 바라보는 짧은 글조차 사진을 말하기보다는 살섞기를 말한다 할 만합니다. 왜냐하면, 나는 내 사진을 말할 때에 ‘삶’이 어떠한가를 밝힐 때에 내 사진이 환하게 드러나고, 헬무트 뉴튼 님은 ‘살섞기’가 어떠한가를 다룰 때에 이녁 사진이 밝게 드러나거든요.

 


  (2) 사진에 아로새기는 한 가지


  사진책 《헬무트 뉴튼》을 읽으면서, 이 사진책이나 다른 사진책에 실린 헬무트 뉴튼 님 사진을 읽으면서, ‘관음’도 ‘욕망’도 ‘외설’도 될 수 없다고 느낍니다. 마땅한 소리인데, 헬무트 뉴튼 님 생각은 오직 하나입니다. ‘살섞기’입니다. 좋아하는 짝꿍하고 살을 섞는 일은 관음도 욕망도 외설도 아니에요. 오로지 살섞기입니다.


  아이들하고 먹을 밥을 차리는 일은 밥하기입니다. 오로지 ‘밥하기’입니다. 요리도 영양도 과학도 의무도 부업도 전업도 아닙니다. 그예 밥하기예요.


  누군가는 요리를 하겠지요. 누군가는 영양사 자격증을 따고는 영양을 이루겠지요. 누군가는 과학을 하고, 누군가는 의무를 하며, 누군가는 부업으로 밥하기를 하고, 누군가는 전업으로 밥하기를 할 테지요.


  누군가는 ‘관음’을 노리며 사진기를 손에 쥡니다. 누군가는 ‘욕망’을 품으며 사진기를 손에 쥡니다. ‘외설’과 ‘예술’은 어떻게 다를까요? 사진기를 손에 쥔 사람이 어떤 마음이 되어 사진기를 쥐었느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 나는 이미 사진작가는 그 나라의 언어를 할 줄 몰라도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사진작가는 독특한 세계관과 열성 팬이 있다면 그의 작품은 높은 보수를 받고 세계 어디에서나 팔리는 것이다 … 사진작가인 내가 이런 생활 풍경을 둘러본다는 것은 사진 작업에도 유익했다. 나는 내가 무척 좋아하는 세계에서 살았다 … 파리 생활의 모든 단편들이 내게는 하나의 기쁨이었다. 나는 프랑스사람에게서 패션을 배웠다. 그들이 어떻게 패션 감각을 가지고 태어나는지, 그들이 어떻게 옷을 입는지, 옷으로 어떻게 분위기를 바꾸는지 따위를 배웠다 … 나는 사진을 찍게 되면 그게 나만을 위한 것이라고 하면서 서랍 속에 집어넣지 않는다. 나는 될 수 있는 대로 많은 사람들이 그 사진을 보아주길 바란다 ..  (86, 206∼207, 348쪽)


  ‘외설’을 바라는 사람은 나무줄기나 나무뿌리를 바라보면서도 ‘외설’답다 싶은 사진을 찍습니다. ‘관음’을 꾀하는 사람은 돌멩이나 꽃잎을 바라보면서도 ‘관음’답다 싶은 사진을 찍어요. ‘예술’을 이루고 싶은 사람은 옷을 벗은 몸뚱이를 바라보면서도 ‘예술’이라 할 만한 사진을 찍습니다. ‘삶’이라 여기는 사람은 옷을 벗은 몸뚱이를 바라보든 아이들을 바라보든 어디에 서서 무엇을 바라보든 늘 ‘삶’이라 여길 만한 사진을 찍습니다.


.. 나는 내일을 기대하고 어제를 되돌아보지 않는다. 오늘이 상당히 좋았다면 내일은 더 좋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 1946년 나는 유명한 사진작가가 되고 싶다는 야망에 다시 사로잡혀 이름을 바꾸기로 결심했다. 노이슈테터라는 고리타분한 독일식 이름은 내가 마음속으로 생각하는 새로운 인물과 맞지 않았다. 이름을 바꾸는 것은 낡은 껍질에서 탈피하는 것이었고 … 종군 사진기자들은 자신이 기록하고 있는 전쟁의 참상과 자신 사이에 카메라가 없었다면 과연 그 유혈 사태와 전쟁을 냉정하게 바라볼 수 있었을까 … 좋은 인물사진을 찍으려면 먼저 상대방이 나를 좋아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인물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사진작가의 입장에서 보면 유혹의 행위이다 ..  (140, 169, 264, 339쪽)


  헬무트 뉴튼 님은 ‘스스로 좋아해서 기쁘게 찍’은 사진을, ‘내 둘레 사람들 누구나 좋아하며 기쁘게 읽’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좋은 인물사진’을 찍을 마음이 없는 헬무트 뉴튼 님입니다. 스스로 좋아할 만한 사진을 찍고, 이렇게 스스로 좋아할 만한 사진이 된 다음에는, 이녁 둘레에 있는 사람들도 좋아할 만한 사진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 바람이 차츰 깊어지고 넓어지면서 헬무트 뉴튼 님 사진은 지구별 곳곳으로 퍼졌습니다. 이 바람이 찬찬히 튼튼해지고 씩씩해지면서 헬무트 뉴튼 님 사진은 사진밭을 한결 예쁘게 일구는 밑거름이 되었고, 어리거나 젊은 사진쟁이한테 좋은 넋을 불어넣어 주었어요.


  스스로 껍질을 만들지 않기에 겉치레 같은 사진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스스로 껍데기를 뒤집어쓰려 하지 않으니 겉발림 같은 사진을 찍지 않습니다.


  ‘큰 알몸’이든 ‘작은 알몸’이든 아무것 아니에요. 그저 사진입니다. ‘큰 포도’와 ‘작은 포도’는 어떻게 다를까요. ‘큰 얼굴’과 ‘작은 얼굴’은 얼마나 다를까요.


  마음과 마음이 만나서 사랑이 싹틉니다. 마음과 마음이 만나기에 ‘사진기를 쥐어 사진을 찍는’ 사람이랑 ‘사진기를 마주하며 사진에 찍히는’ 사람이랑 흐뭇하게 웃을 수 있습니다.


  마음과 마음이 만나지 못하면 사랑이 자라지 못합니다. 마음과 마음이 만나지 못하기에, 한국땅에서도 패션사진이든 알몸사진이든 벗긴사진이든 찍는 사람이 수두룩하다 하지만, 헬무트 뉴튼 님처럼 널리 읽히지 못합니다. 헬무트 뉴튼 님은 처음부터 ‘생각’이 달랐고 ‘마음’이 달랐어요. 스스로 품은 생각을 좋아하면서 삶을 좋아했어요. 스스로 품은 마음을 곱게 보살피려고 ‘돈이나 이름이나 주먹힘’ 같은 울타리하고는 등을 졌어요. 사진책 《헬무트 뉴튼》에서 ‘사진’을 말하는 이야기는 콩알만큼 조금 다루고 ‘살섞기’를 말하는 이야기는 수박알만큼 길게 다룰 만한 까닭이 있어요. 이 책을 읽으면서 어떤 대단한 이론이나 지식이나 정보를 얻을 일이란 없거든요. 이 책을 읽으면서 ‘삶을 사랑하고 마음을 좋아하는 꿈’을 느낄 수 있거든요.


.. 밥술이나 먹고 집세를 내려면 나는 인물사진과 결혼사진을 찍어야 했다. 결혼사진은 정말 지겨운 일이었다 … 창녀들이 옷을 입는 방식은 특이했다. 그들도 손님을 끌기 위해 타고난 패션 감각을 발휘해야 했다. 패션의 언어로 자신의 주특기를 보여주었다 … 나는 스튜디오 작업을 거부했는데, 스튜디오에서 일을 하면 별로 신이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 만약 그렇게 해야 한다면 나는 사진을 아예 찍지 않았을 것이다. 대중에게 영합하다니, 절대 그렇지 않다. 모델이 내 마음에 들면 그것으로 그만이다 ..  (184, 209, 212, 300쪽)


  사진에 아로새기는 한 가지는 누구한테나 한 가지입니다. 사진에 아로새기는 한 가지는 이 사람이라 해서 더 뛰어나거나 저 사람이라 해서 덜 뛰어나지 않습니다. 가장 뛰어날 만한 사진감은 없습니다. 초라하거나 보잘것없는 사진감은 없습니다. 다큐사진이든 패션사진이든 더 높거나 더 낮지 않습니다. 전쟁터에 뛰어들어 목숨을 걸고 찍은 사진이기에 더 값어치가 생기지 않습니다. 집에서 아이들을 보살피며 찍은 사진이기에 값어치가 없어지지 않습니다.


  스스로 어떠한 생각으로 살아가면서 사진기를 쥐느냐를 느껴야 합니다. 스스로 어떠한 마음이 되어 살아가는 나날인가를 느껴야 합니다. 사진은 저기에도 없고 여기에도 없습니다. 사진은 늘 내 가슴속에 있습니다. 사진은 바로 내 삶이고, 내 삶은 곧 사진이 됩니다. 사진으로 펼치는 내 꿈이고, 내 꿈을 드러내는 사진입니다. 사진과 함께 웃는 삶이며, 웃는 삶은 시나브로 사진으로 새롭게 태어납니다.


.. 나는 대단히 자기중심적인 사람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내 자신을 먼저 생각한다. 준이 파리에서 헐레벌떡 병원에 도착했을 때 의사는 그녀를 데리고 와서 이렇게 말했다. “여기 당신의 최고 귀중품이 도착했습니다.” “뭐라고요? 이게 나의 최고 귀중품이오.” 나는 나 자신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것은 나의 진심에서 우러나온 말이었다. 준은 섭섭했는지, 그 말을 결코 잊어버리지 않았다 … 지중해의 일몰 광경은 정말 아름다웠다. 한없이 마음이 포근해졌다. 햇빛은 오랫동안 대기 중에 남아 있었고, 황금빛 노을이 이탈리아의 해안과 우리가 여행하는 작은 마을 위로 퍼졌다. 몬테카를로를 떠나 약 30분이 지나자 기차는 보르디게라 역에 섰고, 나는 그 순간 그 마을과 역을 좋아하게 되었다 ..  (253, 268쪽)


  패션사진을 하고 싶으면 ‘패션’과 ‘사진’과 ‘패션사진’에 온마음을 쏟으며 살아가면 됩니다. 다큐사진을 하고 싶으면 ‘다큐’와 ‘사진’과 ‘다큐사진’에 온마음을 기울이며 살아가면 됩니다.


  언제나 한 가지입니다. 사진에 새기는 이야기도 한 가지요, 내 삶도 한 가지입니다. 스스로 아름답다 느낄 꿈누리에서 날갯짓을 펼치는 길도 한 가지요, 아이들과 좋은 사랑을 빚는 길도 한 가지입니다.


  헬무트 뉴튼 님에 앞서 패션과 사진과 패션사진을 한 사람들이 있었듯, 이제는 누군가 새로운 생각과 마음으로 새로운 삶을 누리는 사람들이 패션과 사진과 패션사진을 즐기며 하루를 빛내겠지요. (4345.8.8.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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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2-08-08 15: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몰입할 수 있는 좋아하는 일과, 그 일을 지지해 주는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을 것 같아요. 이걸 줄이면 '일과 사랑'을 다 갖다,가 되겠네요.
예전에 을유문화사의 책을 많이 봤는데, 그래서 신간 안내의 홍보물도 받곤 했는데,
좋은 책만 선별해서 출판하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오랜 만에 보니 반갑네요.
검색해 봐야겠어요.

파란놀 2012-08-09 07:34   좋아요 0 | URL
좋아하는 일은 스스로 좋아하니까
곁에 누가 지지하지 않아도 스스로 기운을 낼 수 있어요.
다만, 일 한 가지에만 빠지는 삶이 아니라,
일이 내 삶에서 어떤 사랑인가를 잘 느낄 수 있어야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