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무리 예쁜 밤

 


  어젯밤 아이들과 함께 달무리를 바라본다. 아, 예쁘네. 고개 척 꺾어 올려다보는 밤하늘에 크고 둥그런 달무리가 참 예쁘다. 그런데, 옆지기는 달무리가 늘 있었다고 말한다. 쳇, 언제 늘 있었다구, 하고 대꾸하려다가, 내가 눈으로는 못 본 달무리가 늘 있었을는지 모르겠다고 깨닫는다. 왜냐하면, 내 눈으로 바라볼 수 있는 저 먼 별이 있지만, 내 눈이 느끼지 못하는 아주 먼 별이 있을 테고, 내 코앞에 있는 어떤 정령이나 도깨비를 나로서는 못 느낄 수 있다. 달무리를 놓고도 똑같은 셈이다. 달무리는 날마다 늘 있는데, 여느 사람 또한 느낄 만큼 굵고 짙은 달무리 있을 테고, 여느 사람은 누구도 못 느낄 가늘고 얇은 달무리 있으리라.


  내가 알아보기에 더 예쁜 달무리가 아니다. 내가 못 알아보기에 안 예쁜 달무리가 아니다. 내가 알아보는 달무리는 내가 알아보는 달무리일 뿐이다. 내가 못 알아보는 달무리는 내가 못 알아보는 달무리일 뿐이다. 그러니까, 나는 오늘 바라보는 달무리가 더할 나위 없이 예뻐 내 가슴을 촉촉히 적신다고 느끼면 된다. 아이들아, 너희 눈에 달무리 예쁘니? 우리 함께 달무리 실컷 누리자. 4346.2.23.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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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바라는 쪽글을 받고 이틀쯤 묵혔다가, 오늘 비로소 답글을 보낸다. 그냥 잊고 지나갈까 하다가, 애써 쪽글 보낸 마음을 생각하며, 글 하나 적어 본다. '서평 바라는 책읽기'란 무엇일까.

 

..

 


  쪽글 잘 받았습니다.

 

  즐겁게 애써 내시는 책을 보내 주신다는 뜻은 더없이 고맙습니다. 온누리 모든 책은 아름다운 손길 받아서 태어나잖아요.

 

  그런데, 저는 ‘부탁받는 서평’은 안 써요. 책을 선물받는 일이 더러 있지만, 선물을 받건 안 받건, 그 책이 얼마나 아름다우냐를 살필 뿐, 아름답지 않은 책일 때에는 ‘읽어도 아무 느낌글을 안 쓴다’든지, ‘읽고 나서 쓰는 느낌글에 어떠한 즐거움도 묻어나’기 힘들어요.

 

  저는 ‘서평 쓰는 기계’가 아니랍니다. 저는 ‘시골에서 아이들과 살아가며 책을 즐기는 살림꾼’입니다. 어느 선물받은 책은 두 해쯤 지나서야 비로소 느낌글을 쓴 적 있어요. 저로서는, 책읽기보다 아이들과 부대끼는 삶이 더 앞에 있어요. 저한테는, 아름다운 책 읽고 나서도 느낌글 쓰는 일보다 밥을 차리거나 빨래를 하거나 비질이랑 걸레질 하는 일을 더 앞서서 하자는 생각 가득해요. 제가 손수 산 책 가운데에도, 사서 읽은 지 다섯 해가 넘거나 열 해가 지났으나 아직 느낌글 못 쓰는 책도 많아요. 즐겁게 사서 읽고도 스무 해 넘도록 아직 느낌글 안 쓰고 ‘마음으로 묵히며 기다리는’ 책도 무척 많아요.

 

  책을 선물받고 한 주만에 뚝딱 하고 서평을 만드는 일이란 그리 즐겁지 못하리라 생각합니다. 책을 보내 주시면 고맙게 받고 싶습니다. 마음껏 즐겨야지요. 언제나 즐거움과 사랑으로 책을 빚으시기를 빌어요.


― (최종규) 전라남도 고흥군 도화면 신호리 973번지 동백마을 (548-892)


  저희 집은 시골집입니다. 저한테는 책소포나 택배나 편지가 많이 옵니다. 등기 아닌 일반우편으로 부치셔도 책이 사라지거나 없어지는 일 없어요. 고흥군 우체국 배달일꾼은 다 저를 알아요. 시골에서는 꽃샘추위 수그러들며 봄바람 가득해요. 봄내음 함께 누릴 수 있기를 빕니다. 4346.2.22.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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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는 눈물

 


  좋아하는 책 하나 읽고 좋아하는 느낌글 하나 적바림하면서 살짝 눈물 핑 돕니다. 이 느낌글 읽는 사람들도 내 좋은 이야기 살며시 깃들 수 있기를 바라는구나, 하고 생각합니다. 책을 읽으면서 눈물 한 방울. 느낌글 쓰면서 눈물 두 방울. 느낌글 내 글방에 띄우면서 눈물 세 방울. 4346.2.22.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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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 잡고 구경

 


  지게차 있는 이웃 불러 뒷밭 쓰레기를 파내고 뽕나무를 세우며 흙을 갈아엎는다. 이동안 아이들이 아버지 곁에 서서 구경한다. 더 가까이 오고 싶으나, 오지 말라 하니, 살짝 떨어진 자리에서 구경한다. 큰아이가 작은아이 손을 잡는다. 작은아이는 큰아이 손을 잡는다. 서로가 서로를 기대고, 서로가 서로를 돌본다. 어버이 하는 일이란 아이들 늘 함께 따라다니며 어울릴 만해야 한다고 새삼스레 느낀다. 아이들이 가까이 다가서지 못하는 어른들 일이라면, 아이들이 배우거나 받아들이거나 즐길 만하지 못하리라 느낀다. 아이들한테도 즐겁고 반가우면서, 어른들 누구나 즐겁고 반갑게 빛낼 일을 할 때에, 보금자리가 살아나고 살림이 알차면서 사랑이 솟아나리라 느낀다. 4346.2.22.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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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톱에 달이 뜬다 목언예원시조선 5
한분순 지음 / 목언예원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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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말
[시를 말하는 시 10] 한분순, 《손톱에 달이 뜬다》

 


- 책이름 : 손톱에 달이 뜬다
- 글 : 한분순
- 펴낸곳 : 목언예원 (2012.9.20.)
- 책값 : 1만 원

 


  누구나 시를 씁니다. 시인만 시를 쓰지 않습니다. 누구나 소설을 씁니다. 소설가만 소설을 쓰지 않습니다. 누구나 희곡을 씁니다. 극작가만 희곡을 쓰지 않습니다. 그러나, 책으로 나오는 문학은 으레 문학꾼들이 빚는 글만 다룹니다.


  지난 일제강점기에 일본 학자는 한겨레 여느 시골사람을 만나서 ‘일노래’와 ‘옛이야기’를 갈무리했습니다. 일본 학자는 아시아 여러 나라를 돌며 아시아 여러 겨레 일노래와 옛이야기를 갈무리하기도 했어요. 일본은 이녁 일노래와 옛이야기도 퍽 옛날부터 꾸준히 갈무리하고 건사하며 즐깁니다.


  지난날 시골사람이 부르던 일노래란 곧 시입니다. 노래이면서 시입니다. 지난날 시골사람이 나누던 옛이야기란 곧 소설입니다. 소설이면서 옛이야기입니다. 지난날 시골사람이 살붙이나 이웃이나 동무하고 주고받는 이야기가 곧바로 희곡입니다. 아이를 낳아 돌보는 삶자락이 모두 희곡입니다.


.. 집 비운 / 문틈 새로 / 햇빛 살금 찾아든다 ..  (빈집)


  오늘날 시인들은 시를 쓰기는 하지만, 노래를 부르지 못합니다. 시는 곧 노래요, 노래는 곧 시인 줄 살갗으로 못 느끼곤 합니다. 어떤 틀에 맞추어 글줄을 꿸 줄 아는 오늘날 시인이요 문학꾼이기는 한데, 사랑스러운 삶을 노래하며 즐기는 길하고는 자꾸 동떨어지고 맙니다.


  왜 그럴까요. 삶이 재미없어서 글도 재미없을까요? 삶이 고단해서 글도 고단할까요? 삶이 비틀리거나 꼬이거나 엉키기에 글 또한 비틀리거나 꼬이거나 엉킬까요?


  지난날 시골사람은 고단하고 힘든 일을 하면서 노래를 불렀습니다. 막대접을 받거나 푸대접을 받으면서 노래를 불렀습니다. 시집살이노래만 있지 않아요. 모내기노래만 있지 않아요. 자장노래만 있지 않아요. 언제나 노래예요. 소를 몰면서 노래를 부르고, 밭자락 돌을 고르며 노래를 불러요. 아궁이에 불을 때며 노래를 부르고, 밥상을 나르거나 나물을 무치면서 노래를 불러요. 물을 길으며 노래를 부릅니다. 빨래를 하며 노래를 부릅니다. 멧골이 깃들어 나무를 하거나 갈퀴질을 하며 노래를 부릅니다. 다듬이질을 하거나 베틀을 밟으며 노래를 부릅니다. 밥을 먹다가 노래를 부릅니다.


  이래도 노래요 저래도 노래입니다. 삶자락 어느 모습이건 노래로 거듭납니다. 삶결 온갖 모습이 노래로 다시 태어납니다.


  다시 말하자면, 지난날 시골사람은 모든 삶을 오롯이 노래로 빚었어요. 노래로 빚으면서 이야기로 엮습니다. 노래는 입에서 입을 거치며 이어집니다. 이야기는 삶에서 삶을 거치며 물려받습니다.


  굳이 머리를 쥐어짜야 나오는 노래가 아닙니다. 스스럼없이 풀려나오는 노래입니다. 애써 원고지를 구겨야 나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저절로 시나브로 샘솟는 이야기입니다.


.. 너는 무엇 / 나? / ― 글쎄, / 외줄 타는 광대랄까 ..  (광대놀음)


  말을 짜지 않아도 돼요. 삶을 말하면 모두 노래이면서 시예요. 말을 구슬처럼 꿰지 않아도 돼요. 삶을 즐기면 모두 이야기이면서 소설이에요.


  시에서 쓰는 말은 따로 없습니다. 스스로 살아가며 누리는 말이 모두 시입니다. 소설에서 써야 하는 말이 딱히 없습니다. 스스로 사랑을 나누는 삶이 고스란히 소설에서 쓰는 말이 됩니다.


.. 불그레 두근거리는 / 손톱 위의 / 봉숭아물 ..  (손톱에 달이 뜬다)


  한분순 님 시조시집 《손톱에 달이 뜬다》(목언예원,2012)를 읽습니다. 오랜 나날 시조를 즐긴 한분순 님이라고 합니다. 싯말이 정갈합니다. 시조 얼거리가 가지런합니다. 다만, 구수하거나 소담스럽다는 맛이나 결은 잘 못 느끼겠습니다. 오랜 나날 삶을 빛내고 즐기고 누리고 사랑하고 나눈 모습을 하나하나 적바림하면 될 텐데, 자꾸 말을 구슬처럼 꿰려고 하시는구나 싶습니다. 수수하게 노래하면 될 시요 시조인데, 꼭 어떤 틀을 맞추려고 하시는구나 싶습니다.


  홀가분하게 시를 즐기기를 빌어요. 시는 즐거움입니다. 즐겁게 노래하기에 시입니다. 즐겁게 사랑하고, 즐겁게 살아가니까 시가 저절로 태어나요.


  말구슬놀이는 말구슬놀이일 뿐이에요. 우리는 노래를 부르고 시를 즐기는 예쁜 이웃입니다. 말구슬놀이는 겉보기로는 살짝 재미있을까 싶다가도, 이내 차갑게 식어요. 말구슬놀이로는 삶을 밝히거나 빛내지 못해요. 노래 한 자락으로 삶을 밝혀요. 웃음 한 꾸러미로 삶을 빛내요.

  노래를 불러요. 웃으면서 노래를 흐드러지게 불러요. 그러면 날마다 아름다운 싯말 수없이 길어올릴 수 있으리라 믿어요. 4346.2.22.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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