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들이

 


파랗게 맑은 하늘에서 내리는 빗물
파랗게 밝아 싱그러운 바다 된다.
군내버스 일꾼은 파란바람 마시며
푸르게 우거진 숲길 달린다.

 

잿빛 하늘에서 내리는 빗물
잿빛 시멘트집 벽을 적신다.
시내버스 일꾼은 잿빛바람 마시며
전깃불로 밝힌 꽉 막힌 넓은 길 달린다.

 

시외버스 일꾼이 달리는 길은 어디일까.
시외버스는 어디와 어디를 오가는가.
고속도로는 어떤 숲과 내와 마을 가로지르는가.
국도는 어느 논밭을 가로지르는가.

 

걸어서 강진부터 서울 걷던 사람은
한 번 걸어서 오가더라도 글 남기나,
자가용 버스 기차 타고 다니는 사람은
서른 몇 해 오가더라도 글 못 쓴다.

 


4346.10.14.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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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0-22 21: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파란놀 2013-10-22 21:26   좋아요 0 | URL
그 심란한 일들이
앞으로 찾아올 아름다운 빛과 같은 일에
거름이 되려고 생겨났으리라 믿어요.

언제나 고우면서 맑은 마음으로
활짝 웃는 하루 이으셔요.

밤별도 밤바람도 더없이 환하고 보드라운 하루예요.
 

자전거쪽지 2013.10.17.
 : 선물받은 옷 입고

 


- 인천에 있는 헌책방 아벨서점 아주머님이 우리 집 큰아이한테 선물 하나 보내셨다. 뭔가 사러 시장에 가셨다가 그만 도톰하고 예쁜 겉옷이 보여서 하나 장만하셨다고 하면서 보내셨다. 큰아이는 예쁘며 따스한 겉옷을 두 벌째 선물로 받는다. 네 살 적에도 알록달록 꽃무늬 깃든 겉옷을 선물받았는데, 어느새 몸이 쑥쑥 자라 새 겉옷 선물을 받는다. 큰아이가 네 살 적에 입던 겉옷은 작은아이가 머잖아 물려받겠지. 작은아이가 입는 겉옷은 하나같이 큰아이가 입던 겉옷이다. 오늘 이렇게 선물받아 입는 큰아이 겉옷도 앞으로 이태쯤 뒤면 작은아이가 신나게 물려받으리라.

 

- 며칠 날이 선선하다. 자전거마실을 하면 아이들이 춥다 말한다. 긴옷을 입히며 타곤 했는데, 오늘은 옆지기가 ‘새 겉옷’ 입혀 보자고 한다. 그래서 큰아이한테 새 겉옷 입히고, 작은아이한테도 올들어 처음으로 도톰한 겉옷을 입힌다.

 

- 우체국에 닿기 앞서 작은아이는 곯아떨어진다. 고개를 폭 숙인 채 잠든다. 담요를 여민다. 면소재지 가게에 들러 천천히 집으로 돌아온다. 아이들이 춥다 하니 자전거를 천천히 몬다. 아이들은 춥다 하지만, 앞에서 샛자전거와 자전거수레를 함께 붙여서 끄는 아버지는 땀투성이 된다. 아이들은 도톰한 겉옷 입지만, 나는 아직 민소매에 반바지를 입은 채 땀을 뻘뻘 흘린다.

 

-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도화중학교일까 도화고등학교일까, 자전거를 끌고 가는 아이를 본다. 동호덕마을에 사는 듯하다. 손전화 받느라 자전거를 끈다. 날이 좋으면 자전거를 몰 테고, 비가 오면 걷거나 군내버스를 탈 테지? 비가 오는 날이라 하더라도 동호덕마을과 면소재지는 아주 가까우니까 우산을 받고 천천히 걸어서 갈 테지. 빗길을 천천히 거닐면 들에서 들리는 소리가 얼마나 보드라우면서 싱그러울까. 날이 좋아 자전거를 천천히 달리면 숲에서 흐르는 바람이 얼마나 상큼하면서 고울까. 시골 아이들이 이렇게 자전거로 학교를 오갈 수 있으면 참 어여쁜 빛 누리리라. 도시 아이들도 풀숲과 나무숲 우거진 길을 자전거나 두 다리로 오가면서 고운 빛 가슴으로 듬뿍 안을 수 있기를 빈다.

 

(최종규 . 2013 - 시골에서 자전거와 함께 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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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애(厚愛) 2013-10-22 23:26   좋아요 0 | URL
옷이 참 이쁩니다.^^
고흥은 많이 춥지요?
감기조심하세요~

파란놀 2013-10-23 06:13   좋아요 0 | URL
고흥은 낮에는 덥답니다~ ^^
고맙습니다. 후애 님 계신 곳에서도 늘 따스한 햇살과 바람 흐르면서
즐겁고 고운 나날 누리시기를 빌어요~

BRINY 2013-10-23 09:07   좋아요 0 | URL
담요를 덮고 저렇게 잠이 들면 참 기분좋을 거 같아요.

파란놀 2013-10-23 21:16   좋아요 0 | URL
알맞게 흔들흔들 움직이니
더 포근하게 잠들기도 하리라 느껴요~ ^^
 

비행기 날아가는 소리

 


  책을 부치려고 한창 봉투질을 하는 동안 두 아이는 마당에서 논다. 흙을 줍고 풀을 뜯으면서 논다. 째애액 하늘을 찢으며 비행기 갑자기 날아간다. 너무 큰 소리에 큰아이는 우뚝 서서 귀를 막는다. 작은아이는 “무서워!” 하면서 헐레벌떡 신도 못 벗은 채 집으로 뛰어든다. 큰아이는 동생한테 “비행기 안 무서워!” 하고 말하지만, 시골마을 위로 너무 낮게 날아가는 비행기가 하늘 찢으며 내는 소리는 세 살 어린이가 무서워하고도 남을 만하다. 아니, 저 비행기는 왜 시골마을 위를 낮게 날면서 하늘 찢는 소리를 내며 아이들을 무섭게 하는가?


  비행기를 모는 사람은 비행기가 하늘 찢는 소리가 얼마나 큰 줄 모를까? 이런 소리 듣는 시골사람이 얼마나 골이 아픈 줄 모를까? 옛날이라면 하늘 찢어지는 소리에 소며 돼지며 닭이며 깜짝 놀라 뱃속 새끼가 죽었으리라. 텅 빈 벌판도 아니고, 한창 가을걷이로 바쁜 시골마을 위로 저 비행기는 왜 하늘 찢는 소리 내면서 날아가야 할까?


  아이들은 비행기 지나가고 한참 지나서야 다시 논다. 마을 곁에 공항이 생겨 늘 비행기 소리를 들어야 하는 사람들은 날마다 어떻게 살아가려나. 4346.10.22.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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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는 손

 


  깊은 밤에 작은아이가 끙끙거립니다. 왜 그러는가 하고 일찌감치 알아채야 하는데, 작은아이가 그만 바지에 쉬를 하고 나서야 알아차립니다. 작은아이는 아직 쉬를 많이 싸지 않았습니다. 아이를 일으켜서 오줌그릇에 마저 누도록 합니다. 바지를 갈아입히고 다시 잠자리에 누이는데 이불 한쪽 제법 젖었습니다.


  작은아이 가슴을 토닥이고 나서 오줌그릇을 비우러 마당으로 내려섭니다. 바깥이 훤합니다. 몇 시쯤 되었기에 이렇게 훤한가 헤아리는데, 아직 깊은 밤이잖아 하고 생각하고, 달이 밝은가 하며 하늘 올려다보니 참말 보름달 둥그렇게 밝습니다. 마을 곳곳에 선 전등 불빛보다 훤한 달이 있습니다.

 

  보름달이 매우 밝지만, 달 곁에 별빛 함께 초롱초롱합니다. 달이며 별이며 고운 하루로구나 하고 생각하며 집으로 들어옵니다. 아이들은 새근새근 잡니다. 나도 아이들 곁에 누워야지요.


  아침에 어떤 밥을 지어서 함께 먹을까요. 오늘은 빨래를 얼마나 해야 할까요. 아이들과 무얼 하며 놀까요. 오늘은 어떤 이야기를 글로 빚어 이웃들과 나눌까요.


  내 손은 삶을 살찌우는 손이면서 아이들 밥을 차리는 손이고 빨래를 하는 손입니다. 내 손은 아이들 가슴 토닥이는 손이면서 하늘바라기 하는 동안 기지개를 켜는 손입니다. 내 손은 비질과 걸레질 하는 손이면서 자전거를 모는 손이요 풀을 뜯는 손입니다. 오늘 아침에는 까마중 열매 따는 손이 될 테고, 밥을 차리는 사이에 숯돌에 칼을 가는 손이 될 테지요. 이 손으로 연필을 쥐어 글을 쓰고, 크레파스를 쥐어 그림을 그리며, 책을 쥐어 이야기를 읽습니다.


  살림을 꾸리는 손으로 책을 읽습니다. 사랑을 속삭이는 손으로 책을 읽습니다. 풀바람 마시고 흙내음 맡는 손으로 책을 읽습니다. 냇물에 담그는 손으로 책을 읽는 한편 반가운 동무를 부르면서 흔드는 손으로 책을 읽습니다. 두 손 따사롭게 돌보면서 책을 쥡니다. 두 손 넉넉하게 보듬으면서 책을 만집니다. 두 손 즐겁게 맞잡으면서 책을 쓰다듬습니다. 4346.10.22.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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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 안 보는 책읽기

 


  사람을 만나려 할 적에는 얼굴이나 몸매를 보지 않습니다. 누군가는 얼굴이나 몸매를 놓고 사람을 따지거나 잴는지 모릅니다. 아마 누군가는 얼굴이나 몸매만으로 ‘사랑을 느낀다’고 말할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사람을 만나면서 ‘즐겁게 이야기를 나눌 수 없다’면 이녁하고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요. 얼굴이나 몸매만으로 한 사람과 하루라도 즐겁게 지낼 만한지 궁금합니다.


  책을 읽는다 할 적에는 껍데기를 읽지 않습니다. 누군가는 책껍데기만 읽을는지 모릅니다. ‘책 디자인’이 부질없다는 말이 아닙니다. 책겉을 아름답게 꾸미는 일은 뜻이 있습니다. 그런데, 책을 읽는다 할 적에는 책에 깃든 이야기를 읽으면서 줄거리를 마음속으로 삭혀 삶을 살찌우고 싶습니다.


  건물 껍데기를 바라보려고 ‘집에서 살지’ 않습니다. 껍데기를 그럴싸하게 꾸미면서 남 앞에서 자랑하려는 건물에서 ‘살림을 꾸리지’ 않습니다. 식구들이 아늑하게 쉬고, 나도 옆지기도 아이들도 몸과 마음을 느긋하게 다스릴 수 있는 집에서 지내고 싶습니다. 4346.10.21.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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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개모모 2013-10-22 08:12   좋아요 0 | URL
저도 멋있어 보이는 책에 먼저 손이 가요~
또 두껍고 뭔가 무게 있어 보이는 책에...+.+;
그러다 몇 번 망하고... 그 다음부터는 목차를 살핍니다.
역시 직접 찾아서 읽어보는 게 가장 좋은 것 같아요!
일부러 시간을 내야 하지만... 잘못샀다는 씁쓸한 기분을 안 느껴도 되니까요~

파란놀 2013-10-22 14:39   좋아요 0 | URL
사람도 책도 삶도,
또 밥과 과자까지도,
겉모습 아닌 속알맹이를
살뜰히 마주할 때에
아름다운 빛을 만나는구나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