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초피나무 풀빛

 


  어린나무는 어리다. 어린나무는 쑥쑥 자라지 않는다. 여러 해에 걸쳐 아주 천천히 자란다. 이동안 어린나무를 둘러싼 숱한 풀은 높이높이 자란다. 다른 풀은 봄부터 가을까지 어린나무 위를 몽땅 덮을 만큼 높다라니 자라기 일쑤이다. 그렇지만, 다른 풀은 가을이 되어 시들고는 모두 말라죽는데, 어린나무는 가을이 되건 겨울을 맞이하건 시들지 않고 죽지 않는다.


  어른 아닌 어린이 손가락 마디보다도 작기 일쑤인 어린나무를 바라본다. 줄기도 작고 잎사귀도 작다. 어른인 내 눈길 아닌 아이들 눈길로 바라보아도 어린나무는 참 작다. 그러나 이 작은 어린나무에는 어른나무와 똑같은 기운이 서린다. 어른나무와 똑같은 숨결이 흐르고 어른나무와 나란히 하늘바라기를 하면서 하늘숨을 쉰다.

 

  어린나무 곁에는 으레 어른나무가 있다. 어른나무가 벼락을 맞거나 사람들이 베거나 했다면, 어린나무는 한결 씩씩하고 야무지게 자라서 스무 해 마흔 해 지나면 새 어른나무 되어 숲을 밝히고 마을을 빛낸다. 그리고, 어른나무 된 이 작은 어린나무는 지난날 저 스스로 겪으며 살아냈듯이 조그마한 씨앗 흙땅에 떨구어 새 어린나무 자라도록 아름드리 그늘과 품을 베푼다. 4346.10.23.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꽃과 책읽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시로 읽는 책 67] 사진읽기

 


  흙을 일구면 누구나 흙지기.
  아이를 낳아 돌보면 모두 어버이.
  사진을 사랑으로 읽으면 ‘사진 즐김이’.

 


  누구라도 사진을 보면 다 ‘사진을 보는 사람’입니다. ‘평론가’라는 이름을 붙여야만 사진을 읽거나 볼 수 있지 않습니다. 저마다 다 다른 자리에서 저마다 다 다른 눈길로 읽거나 보면 즐거운 사진입니다. 여느 글도, 모든 시와 소설도, 스스로 즐겁게 읽으면 될 노릇입니다. 평론가나 비평가 눈썰미에 따라 이녁하고 똑같이 읽어야 하지 않습니다. 사진이든 책이든 시이든 문학이든 영화이든 춤이든, 마음으로 바라볼 수 있을 뿐입니다. 머리에 담긴 이론이나 논리나 지식이나 형식으로는 어느 것도 도무지 못 읽으며 못 느낍니다. 4346.10.23.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책빛마실 이야기책 (도서관일기 2013.10.22.)
 ― 전라남도 고흥군 도화면 동백마을, ‘서재도서관 함께살기’

 


  부산 보수동 책방골목 열네 해 마실한 이야기를 적바림한 《책빛마실》이라는 책이 나왔다. 이 책은 부산에서 펴냈다. 부산 보수동 책방골목 번영회에서 내놓은 책이라 할 수 있다. 처음 부산 보수동 책방골목으로 책마실을 하면서 ‘왜 아직까지(2000년) 부산 보수동 책방골목을 이야기하는 책이 하나도 없을까?’ 싶어 궁금했다. 그래서 이때(2000년)부터 열 해 뒤까지 다른 어느 누구도 이런 이야기책 내놓지 않는다면 내가 손수 써서 내놓자고 생각했는데, 2013년 10월에 이 뜻을 이룬다.


  ‘도서관 지킴이’ 해 주는 분들한테 이 책을 부치려 한다. 무게와 부피가 만만하지 않으니 하루에 모든 ‘도서관 지킴이’한테 책을 부치지 못한다. 이틀이나 사흘쯤 걸려 차근차근 봉투에 주소와 이름을 써서 부쳐야지. 도서관 지킴이를 해 주는 분들뿐 아니라 전국에서 씩씩하게 헌책방 책살림 일구는 책지기한테도 부치려 한다. 나한테는 책이 100권 있는데, 전국 모든 헌책방으로 이 책을 부치지는 못한다. 2쇄를 찍고 3쇄를 찍으면 그때에는 전국 모든 헌책방으로 이 책을 한 권씩 선물할 수 있으리라 본다.


  우체국으로 가는 길에 도서관에 들른다. 도서관에서 책 몇 가지를 챙기는 동안 아이들이 골마루를 이리저리 달리면서 논다. 땀을 흠씬 쏟고 나서 물을 벌컥벌컥 들이켜더니, 큰아이는 그림책 읽으면서 논다. 작은아이는 바퀴 붙은 작은 그림책 들고 논다.


  ‘책빛마실’이란 무엇인가. 책마실이나 책방마실 아닌 책빛마실이란 무엇인가. 책 하나 찾아서 읽는 사람들은 ‘물건인 책’을 사거나 읽지 않는다. 책을 사서 읽는다 할 적에는 책껍데기 아닌 책알맹이를 읽는다. 속살을 읽으면서 속살에 감도는 고운 빛을 마음으로 담는다. 값을 치러 책을 장만하는 책방마실인데, 곰곰이 돌아보면 책에 깃든 빛을 마음으로 담고 싶어 다니는 마실, 그러니까 책빛마실인 셈이다.


  책을 읽으면서 책만 읽지 않는다. 아니, 책을 읽으면서 넋을 읽고 꿈을 읽으며 사랑을 읽는다. 책을 읽는 동안 마음을 살찌우고 생각을 키우며 삶을 일군다. 책읽기를 하는 우리들은 ‘책빛읽기’를 한다고 느낀다. 책빛마실을 해서 책빛읽기를 하고 ‘책빛삶’ 누린다고 느낀다. 그러면, 책을 쓰는 사람들은 ‘책빛을 쓴다’고 할 수 있겠지.


  빛을 쓰고 빛을 읽는다. 빛을 즐기고 빛을 갈무리하는 도서관을 아름답게 돌보는 길을 걷는다. (ㅎㄲㅅㄱ)

 


* 사진책도서관(서재도서관)을 씩씩하게 잇도록 사랑스러운 손길 보태 주셔요 *
* 도서관 지킴이 되기 : 우체국 012625-02-025891 최종규 *
* 도서관 지킴이 되어 주는 분들은 쪽글로 주소를 알려주셔요 (011.341.7125.) *
* 도서관 나들이 오시려면 먼저 전화하고 찾아와 주셔요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가을민들레 잎사귀

 


  봄 아닌 가을에 새로 돋은 민들레를 만난다. 잎사귀 널찍하게 퍼뜨린 짙푸른 모습을 바라본다. 가을민들레 만나면서 ‘얼마나 맛날까?’ 하고 생각하며 군침을 흘린다. 며칠 더 지켜보고 나서 즐겁게 톡톡 뜯는다. 가을민들레도 새 잎사귀를 더 낼 수 있을까. 우리 집 대문 앞에도, 마을 고샅에도 가을민들레 잎사귀를 내민다. 가을날 싱그러운 들풀 먹기가 쉽지 않은데, 아주 고맙게 민들레가 선물을 베풀어 준다. 풀밭이나 고샅을 찬찬히 살피면, 민들레뿐 아니라 씀바귀도 새삼스레 잎사귀 내놓으면서 짙푸른 내음을 퍼뜨린다.


  그런데, 마을 고샅길 가을민들레는 꽃대를 미처 올리지 못하고서 시멘트를 뒤집어쓴다. 깊은 두멧시골에까지 주암댐 수돗물 마시게 해 준다는 ‘문화복지 정책’에 따라 커다란 물관 파묻는 공사를 벌인다. 가을민들레도, 가을민들레 곁 가을유채도 가을씀바귀도 가을미나리도 모조리 시멘트를 뒤집어쓴다.


  앞으로 자동차 드나들기 한결 나아지겠지. 그리고, 자동차 드나들기 나아지는 만큼 들민들레도 들유채도 들씀바귀도 들미나리(돌미나리)도 모두모두 자취를 감추고 말 테지. 4346.10.23.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꽃과 책읽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재미있게 글을 쓴다

 


  누구나 이녁 이야기를 글로 쓰면 재미있다. 이녁 이야기 아닌 다른 이야기를 쓰면 그닥 재미있지 않다. 스스로 겪은 재미있는 삶을 스스로 즐겁게 쓸 적에 더없이 재미난 글이 된다.


  글을 쓰고 싶은 사람은 ‘글쓰기 강좌’를 들을 까닭이 없다. ‘글쓰기 길잡이책’을 읽을 까닭이 없다. ‘대학교 문예창작학과’를 나와야 글을 쓸 수 있지 않을 뿐더러, 이런 강의나 책이나 학교는 글쓰기하고 아주 동떨어질 뿐이다.


  왜냐하면, 글이란 삶인데, 다 다른 사람들 삶을 다 다른 사람들이 스스로 적바림할 때에 글이지, 어떤 틀이나 흐름에 맞추어 쓰도록 한다면, 이는 글이 아니라 ‘박제된 상품’이 된다. 스스로 겪은 삶이 있으니 글을 쓴다. 스스로 겪은 삶이 없으니 글을 못 쓴다. 스스로 겪은 삶이 있어 이 삶을 놓칠 수 없다 생각하면서 글을 쓴다. 스스로 겪은 삶이 있더라도 마음으로 아로새기며 지내겠다고 생각하면 굳이 글을 안 써도 된다.


  비정규직 노동자 이야기는 스스로 비정규직 노동자로 일하는 사람이 쓸 수 있다. 밀양 송전탑 이야기는 스스로 밀양사람 되거나 곁에서 송전탑 때문에 골머리 앓는 사람이 쓸 수 있다. 시골 이야기는 스스로 시골에서 살거나 시골을 자주 드나들며 시골빛 가슴에 담는 사람이 쓸 수 있다. 정치나 문화나 예술 이야기라고 한다면, 스스로 정치나 문화나 예술에 몸을 담는다든지, 이런 정치나 문화나 예술 언저리에서 맴도는 사람이 쓸 수 있겠지.


  삶이 재미있으면 글이 재미있다. 삶이 아름다우면 글이 아름답다. 삶이 사랑스러우면 글이 사랑스럽다. 글쓰기를 배울 노릇이 아니라, 삶을 아끼고 사랑할 노릇이다. 대학교 문턱 밟기보다 살림살이 알뜰살뜰 여미는 데에 마음 기울일 노릇이다. 사랑하며 살아가는 사람이 연필을 쥐면 저절로 글이 샘솟는다. 4346.10.23.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삶과 글쓰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