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훑기와 속읽기

 


  겉만 따로 읽을 수 있습니다. 옷차림을 읽을 수 있고 얼굴빛을 읽을 수 있습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을 찬찬히 읽을 수 있어요. 이와 달리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속을 따로 읽을 수 있습니다. 마음을 읽거나 생각을 읽습니다. 사랑을 읽고 꿈을 읽습니다. 겉으로는 알 수 없는 이야기를 곰곰이 읽습니다.


  겉읽기라서 어리숙하지 않습니다. 속읽기라서 훌륭하지 않습니다. 겉은 겉대로 알뜰히 읽고, 속은 속대로 살뜰히 읽으면 됩니다. 겉읽기와 속읽기를 알뜰살뜰 할 때에는 오롯이 삶읽기 이루어집니다.


  흔히 말하는 ‘비판정신’이란 제대로 읽는 눈길에서 태어난다고 느껴요. 제대로 읽지 않고 겉말에만 얽매여 속알맹이를 들여다보지 못하면 겉만 보는 꼬리잡기나 헐뜯기만 이루어지지 싶어요. 옷차림을 두고 사람을 꼬리잡으면 얼마나 겉돌기가 될까요. 옷차림이 아닌, 옷 안쪽에 있는 사람을 봐야겠지요.


  그러니까, 우리들은 ‘읽기’를 할 노릇입니다. 겉이든 속이든 읽기를 할 일입니다. 이렇게 읽기를 하지 못한다면 ‘훑기’만 하고 맙니다. 이를테면 ‘겉훑기’이지요. 겉으로 드러난 몇 가지 모습으로 어떤 사람이나 일을 놓고 속내까지 아무렇게나 말하는 모습이 바로 ‘겉훑기’입니다.


  겉읽기는 겉읽기일 뿐입니다. 겉을 읽는다고 해서 어느 한 사람 속까지 읽는다고 할 수 없습니다. 겉을 읽었기에 속을 함부로 따지거나 재거나 금긋기를 할 수 없습니다. 현상학, 미시, 거시, 이런 어려운 말은 굳이 안 써도 돼요. 우리 말로 쉽게 겉과 속을 헤아리면 돼요.


  누구나 맨 먼저 속알맹이가 되는 삶을 헤아리고는, 이 다음에 겉모습이나 겉말을 하나하나 짚어야지 싶습니다. 어떤 마음이요 생각인가를 읽고, 어떤 사랑이요 꿈인가를 읽으면서, 어떤 말과 몸짓과 눈빛과 손길이 밖으로 드러나는가를 읽을 때에, 사람과 삶과 사회를 올바르게 헤아릴 수 있으리라 봅니다.


  ‘비판정신’에 앞서 ‘올바로 읽는 눈’이 있어야 한다고 느낍니다. 올바로 읽는 눈일 때에 ‘올바로 말하는 입’이 됩니다. 올바로 말하는 입일 때에 ‘올바로 듣는 귀’가 됩니다. 눈과 입과 귀는 언제나 올바를 수 있어야 합니다.


  올바른 몸가짐은 딱딱하거나 메마르지 않습니다. 올바르지 못한 몸가짐이 딱딱하고 메마릅니다. 올바른 몸가짐은 슬기롭습니다. 슬기로운 몸가짐은 아름답습니다. 아름다운 몸가짐은 사랑스럽습니다. 사랑스러운 몸가짐은 착합니다. 착한 몸가짐은 참답습니다. 참다운 몸가짐은 다 다른 사람 다 다른 빛이기에 ‘나답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올바른 사람 앞에서는 왼쪽도 오른쪽도 따로 없습니다. 왼쪽에서든 오른쪽에서든 올바른 사람을 함부로 못 건드리고 어설피 해코지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올바르기 때문입니다. 왼쪽에 서거나 오른쪽에 서는 사람은 모두 외곬입니다. 왼쪽이든 오른쪽이든 스스로 놓치는 대목과 빛과 삶이 있습니다. 우리들은 어느 한쪽에 설 사람이 아닙니다. 아름다운 넋을 아름다운 글로 밝힌 어떤 분 말씀마따나 두 날개로 날아갈 새와 같은 사람입니다. 두 손으로 일하고 두 다리로 서며 두 눈으로 바라볼 사람입니다. 두 귀로 듣고 두 코로 숨을 쉬며 웃니 아랫니 두 이빨 부딪혀 목소리를 내고 밥을 먹을 사람입니다.


  위와 아래는 높낮이나 계급이 아닙니다. 왼쪽과 오른쪽은 금긋기나 파벌이 아닙니다. 그저 위와 아래일 뿐이고 왼쪽과 오른쪽일 뿐이에요. 자리에 앉아 보셔요. 누워 보셔요. 물구나무를 서 보셔요. 위와 아래란 무엇입니까. 왼쪽과 오른쪽이란 무엇인가요. 인천과 강릉을 생각해 보셔요. 인천에서 서울은, 또 강릉에서 서울은 무엇인가요.


  올바로 읽을 수 있으면, 남들이 무어라 하든, 눈엣가시로 여기거나 말거나, 하나도 대수롭지 않아요. 왜냐하면, 올바르게 걷는 길은 즐겁고 아름다우며 사랑스러우니까요. 올바르게 일구는 삶은 즐겁고 아름다우며 사랑스레 빛나니까요. 올바르게 꿈꾸는 사랑은 즐겁고 아름다우며 사랑스러운 이야기꽃으로 태어나니까요. 4346.11.9.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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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en 2013-11-10 15:43   좋아요 0 | URL
참 좋은 글입니다. 함께살기 님의 글을 읽으니 몽테뉴가 인용했던 '목욕과 공부는 때를 씻어 내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던 철학자의 말이 떠오릅니다.
* * *
철학 강의를 들어 보라. 착상과 웅변과 지당한 말은 당장에 그대에게 깊은 인상을 주며, 그대를 감동시킨다. 그대의 양심을 건드리거나 자극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들은 양심에 말하는 것이 아니다. 사실 아닌가? 그래서 이리스톤은 "목욕이나 공부는 몸을 닦아서 때를 씻어 내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고 하였다. 껍데기에 구애되는 것은 좋지마는, 그것은 속의 골수를 뽑아 낸 다음이라야 한다. 마치 아름다운 잔에 가득한 좋은 술을 마시고 나서, 판에 새겨진 그림을 감상하는 격으로 말이다.

파란놀 2013-11-10 16:30   좋아요 0 | URL
이 글은, 알라딘서재에서 아름다운 이웃 분이 남겨 준 댓글 때문에
저 스스로 더 깊이 생각해 보면서 쓸 수 있었어요.
그분이 댓글을 달아 주지 않으셨으면
'겉훍기'와 '속읽기'가 무엇인가 하는 대목을
저 스스로도 오랫동안 생각할 일 없지 않았을까 하고 느껴요.

참말 oren님은 훌륭한 고전을 두루 꿰면서
좋은 말씀을 알맞게 잘 들려주시는
엄청난 힘이 있으시네요!
 

아이들이 책방에 나들이를 가서

 


  어른들은 굳이 책방마실 안 하고 인터넷 켜서 책을 살 수 있다. 그러나, 아이들은 책방마실을 하지 않으면 제 마음에 드는 책을 찾을 수 없고, 만질 수 없으며, 볼 수 없다. 어버이 된 사람이라면, 아이들과 함께 다리품을 팔아 책방마실을 해야 한다. 아이들이 읽을 만한 책을 어른들이 슬기로운 눈빛 밝혀 하나하나 캐내고 골라서 안길 수 있다만, 아이들 또한 스스로 이런 책 저런 책 가만히 눈여겨보면서 책빛을 가슴으로 포옥 안을 수 있어야 아름다우니까.


  책방마실을 한다면, 책방만 들르지 않는다. 책방까지 가는 동안 아이들은 이런 삶 저런 사람을 만난다. 책방으로 오기까지 아이들은 이런 하늘 저런 골목을 마주한다.


  책방에 들어선 아이들은 어린이책 있는 칸만 바라보지 않는다. 맨 먼저 책방 골마루를 신나게 휘젓고 다닌다. 이쪽 골마루 저쪽 골마루 구석구석 누빈다. 한참 뛰놀며 땀을 쪼옥 뺀 뒤에야, 아이들은 저희 눈높이에 걸맞다 싶은 책이 있는 자리를 찾아간다. 어느 어른이 굳이 이끌지 않아도 아이들 스스로 몸이 알아챈다.


  책방마실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아이들은 가슴이 뿌듯하다. 마음에 드는 책을 품에 안아도 뿌듯하고, 딱히 마음에 드는 책을 찾지 못하더라도, 바깥바람을 쐬고 어버이와 나란히 나들이를 다닐 수 있어서 즐겁다.


  아이들은 손전화 기계로 책을 읽지 않는다. 아이들은 셈틀을 켜서 글을 읽지 않는다. 아이들은 종이로 된 책을 읽는다. 아이들은 종이로 된 책이 꽂힌 책방으로 마실을 다녀야 책을 만난다.

 

  아이들은 종이책을 만나지 않더라도 늘 가까이에 있는 어버이를 바라보면서 삶을 읽는다. 우리 어머니와 아버지를 마주하면서 사람을 읽고 사랑을 읽는다. 꿈을 읽고 생각을 읽으며 마음을 읽는다. 마당에서 뛰놀며 흙빛과 바람빛을 읽는다. 풀빛을 읽고 꽃빛을 읽으며 나무빛을 읽는다.


  아이들한테는 어떤 책이 아름다울까. 아이들은 책방마실을 얼마나 누려야 할까. 거꾸로 생각해 본다. 어른들한테는 어떤 책이 아름다운가. 어른들은 책방마실을 얼마나 누려야 하는가. 아름다운 사람들이 남긴 책을 읽지 않고서, 어른들 스스로 아름다운 삶 얼마나 씩씩하거나 야무지게 일구는가. 아름다운 책방으로 마실을 다니지 않으면서, 어른들은 이웃을 얼마나 잘 알거나 살피거나 눈여겨보거나 어깨동무를 하는가.


  사람살이는 점과 점이 아니다. 이 점에서 저 점으로 옮기면 되는 사람살이가 아니다. 점과 점 사이에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있고 삶터가 있으며 마을과 보금자리가 있다. 책방마실 찬찬히 누리는 동안, ‘책으로 담긴 이야기’에 나오는 사람들 삶터와 마을과 보금자리 옆을 지나간다. 책방 또한 책지기들 삶터요 마을이며 보금자리이다.


  돈으로 값만 치르면 살 수 있는 책이란 없다. 삶으로 읽고 삶을 읽으며 사랑스러운 삶을 함께 나누려는 웃음꽃으로 만나는 책이 있다. 4346.11.9.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헌책방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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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는 보이지 않아 카르페디엠 34
수잔 크렐러 지음, 함미라 옮김 / 양철북 / 2013년 10월
평점 :
품절


푸른책과 함께 살기 106

 


맞고 자란 사람이 때린다
― 코끼리는 보이지 않아
 수잔 크렐러 글
 함미라 옮김
 양철북 펴냄, 2013.10.31.

 


  꽃을 바라보는 사람은 꽃내음을 맡습니다. 꽃내음을 맡는 사람은 온몸에 꽃내음이 살살 감돌며 꽃빛이 환합니다.


  하늘을 바라보는 사람은 하늘숨을 마십니다. 하늘숨을 마시는 사람은 온몸에 하늘내음이 골고루 스미며 하늘빛이 곱습니다.


  풀밥을 먹는 사람은 풀숨을 맞아들입니다. 풀마다 싱그럽게 푸른 빛깔과 무늬와 냄새를 골고루 받아들입니다. 풀밥은 풀내음이고 풀빛입니다. 풀밥은 풀노래이고 풀물입니다. 몸과 마음 모두 푸르게 빛나면서 푸른 이야기가 솟습니다.


  바라보는 대로 눈빛이 달라집니다. 바라보는 자리마다 눈매가 바뀝니다. 맑은 빛을 바라볼 적에는 맑은 빛이 눈을 거쳐 마음속과 몸속으로 젖어듭니다. 밝은 빛을 바라볼 때에는 밝은 빛이 눈가를 스쳐 살갗과 뼈마디로 속속들이 파고듭니다.


  싱그러운 물을 마시면 내 몸에는 싱그러운 피가 흐릅니다. 멧골물을 마시면 멧골에서 솟아 흐르는 기운이 내 몸에 흐릅니다. 시냇물을 마시면 시냇물 되어 흐르던 물줄기에 깃든 숨결이 내 숨결로 이어집니다.


.. 여자아이는 화들짝 놀라 다시 스웨터를 내렸다. 그렇게 손동작 한 번으로 배에 난 자줏빛이 감도는 갈색, 그리고 노랗게 변한 커다란 멍 자국을 가렸다 … “마샤 언니!” 나도 똑같이 소리를 지르며 물었다. “왜?” 그러자 율리아가 큰 소리로 말했다. “막스는 내가 잘 돌봐 줄게!” … 한여름인데도 긴팔을 입은 율리아는 가느다란 두 팔로 길길이 뛰는 동생을 꽉 붙잡았다. 그러면서도 율리아는 아무 소리도 내지 않았고, 어른처럼 진지했다 … 내가 양심의 가책을 덜어내는 데 도움을 준 것은 아주머니와 함께 문 앞에 서서 마치 자신이 바렌부르크를 통틀어 가장 다정하고 아이들을 잘 돌봐 주는 아빠인 것처럼 행동하는 브란트너 아저씨에게서 느낀 어마어마한 분노였다 ..  (20, 34, 57, 111쪽)
쪽)


  맹자 어머님이 아니더라도 누구나 가장 아름다우면서 사랑스럽고 좋은 보금자리를 찾기 마련입니다. 공자 어머님도 맹자 어머님과 똑같았을 테지요. 한석봉 어머님이라고 다를 까닭 없어요. 어느 어머니라 하더라도 아이들이 슬기롭고 맑으며 착하게 살아가는 숨결 받아먹을 수 있는 곳에 보금자리를 이루려 마음을 기울이기 마련입니다.


  갓 태어나 자라는 아이들은 좋거나 나쁘거나 가리지 않아요. 옳거나 그르거나 바르거나 비틀리거나 따지지 않아요. 모두 받아들여요. 모두 바라보고 모두 가슴으로 안아요. 어머니로서는 아이들이 아무것이나 바라보지 않도록, 어머니로서는 아이들이 아름답고 사랑스러우며 좋은 것을 마주하도록 마음을 쓸밖에 없습니다.


  아이들한테는 꽃을 보여줍니다. 칼이나 총 아닌 호미를 쥐어 줍니다. 아이들이 흙을 만지면서 놀도록 이끕니다. 앞으로 흙을 돌보며 살찌울 길을 걸어가며 착하게 새 삶 일구기를 바라니까요. 칼이나 총을 거머쥐어 돈이나 힘자랑 하기를 바라는 어버이가 있을까요. 이웃을 밟고 올라서면서 거들먹거리기를 바라는 어버이가 있을까요.


  어느 어버이라 하더라도 아이들한테 사랑을 물려주고 싶습니다. 어느 아이라 하더라도 어버이한테서 사랑을 물려받고 싶습니다. 그러니까, 어버이가 아이한테 사랑을 물려주지 않고 돈을 물려준다면 말썽이 생깁니다. 사랑에 앞서 돈부터 물려주면 뒤틀립니다. 사랑 없이 돈만 만지는 아이가 어떻게 될까요. 사랑 없이 힘자랑 겉멋에 끄달리는 아이가 어찌 되나요.


  착하게 어깨동무하는 길을 어버이한테서 물려받지 못한 아이는 이웃을 아끼는 눈길이나 손길이나 마음길이 없습니다. 착하게 품앗이와 두레를 하는 삶을 누리지 않는 어버이는 아이한테 사랑과 꿈을 가르치지도 보여주지도 베풀지도 못합니다.


  어버이는 돈이나 아파트나 자가용 따위는 물려주지 않아도 돼요. 이런 것들은 아이들 스스로 얼마든지 마련하거나 벌어들일 수 있습니다. 어버이와 아이는 서로 아끼고 기대며 보살필 줄 아는 고운 사랑과 착한 꿈과 맑은 빛을 주고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 누군가 다른 사람에게 모욕을 당하는 현장에 우연히 있게 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 “그 사람들이 자기 아이들을 때린다고요.” “마샤! 지금 네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전혀 모르나 본데, 네가 그런 말을 하는 게 우리한테 얼마나 창피한 일인지 알고 하는 소리니? 더군다나 다른 사람들에게까지 그런 소리를 하고 다닌다면 어떨 것 같니?” “할머니, 배에 멍이 들었다고요!” … 아무도 자동차 대리점 주인이 자기 아이들을 얼마나 때리는지, 또 그 집 아이들이 자기들 몸에 난 상처를 머리카락으로, 긴팔 셔츠로 감추느라 하루 종일 바쁘다는 사실에 관해선 그 어떤 것도 알려고 하지 않았다 ..  (23, 41∼42, 75쪽)


  맞고 자란 아이가 어른이 되면 ‘맞고 자라는 아이’를 키웁니다. 거친 말 듣고 자란 아이가 어른이 되면 ‘거친 말 듣고 자라는 아이’를 키웁니다. 입시지옥에서 살아남는 길 걸어간 아이가 어른이 되면 똑같이 ‘입시지옥에서 살아남는 길 찾는 아이’를 키웁니다. 그야말로 배운 대로 물려줍니다.


  어른들은 좀처럼 사슬을 못 끊습니다. 어른이 된 뒤에는 좀처럼 쳇바퀴에서 못 벗어납니다. 어른이라는 자리에 서면 좀처럼 생각이나 마음을 활짝 열지 못합니다.


  가만히 살펴보면, 사슬을 끊는 사람은 으레 아이들입니다. 쳇바퀴를 부수고 아름다운 무지개를 되찾는 사람은 어김없이 아이들입니다. 생각이나 마음을 활짝 열어 모든 숨결과 손을 맞잡는 사람은 늘 아이들입니다.


  길이 들면 삶이 사라집니다. 삶은 길들이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날마다 다 다른 삶인데, 삶은 길이 들 수 없어요. 날마다 똑같은 때에 일어나 똑같은 밥을 먹고 똑같은 길을 가서 똑같은 일터에서 똑같은 일을 해야 한다고 말할 사람이 있을지 모르나, 똑같이 걷는 길은 없습니다. 시계로 보아서는 똑같다 하더라도, 날과 달과 해와 철이 모두 달라요. 여름과 겨울에 골목빛이 달라요. 봄과 가을에 하늘빛이 달라요.


  옷차림만 다르지 않습니다. 흐르는 바람이 달라요. 뜨고 지는 햇살이 달라요. 내리는 비와 눈이 달라요. 우리는 늘 언제나 다른 삶을 누립니다. 열아홉 살은 한 번뿐입니다. 열일곱 살도 한 번뿐입니다. 스물여섯 살도, 서른다섯 살도, 마흔네 살도, 쉰세 살도 언제나 한 번만 나한테 찾아온 뒤 지나갑니다.


  똑같이 차린 밥이라 하지만, 밥 한 그릇 마주하는 내 삶은 날마다 다릅니다. 그러니, 나는 언제라도 길들 수 없습니다. 누구나 언제라도 길들지 않습니다. 새로운 삶이고 새로운 넋이며 새로운 사랑으로 새삼스레 거듭날 뿐입니다.


.. 내가 그보다 훨씬 더 좋아한 건 아빠가 나와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엔 벽만 바라보는 행동 같은 건 하지 않으니까 … 나는 이 말이, 그러니까 ‘잠을 잤다’라는 말이 진짜로 무슨 말이었는지 이해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 말은 아침마다 막스가 아빠에게 질질 끌려 욕실에 들어가야 한다는 것, 그리고 아빠가 막스의 옷을 벗긴다는 걸 뜻했다. 아빠가 미리 받아 놓은 진짜 뜨거운 욕조 물에 막스를 확 밀어 넣는다는 것이었다 … “엄마는 아빠가 우리를 때리지 못하게 하려고 대신에 자신한테 주의를 돌려 차라리 엄마를 때리게 하려고 해. 그러면 나는 가만히 있지 않고 무엇이든 해. 그러면 아빠가 다시 나에게 관심을 돌려.” ..  (30, 118, 134쪽)


  수잔 크렐러 님이 쓴 청소년문학 《코끼리는 보이지 않아》(양철북,2013)를 읽으며 생각합니다. 이 책은 ‘가정폭력’을 다룹니다. 가정폭력이 ‘마을에서 조용히 이루어지는 모습’을 다룹니다. 사람들이 서로 나 몰라라 하는 모습을 다루고, 스스로 아름다움도 사랑스러움도 즐거움도 일구지 못하는 모습을 다룹니다. 어른들은 아무것도 안 하는 모습을 다룹니다. 아이들 또한 ‘아무것도 안 하는 어른들 사이에서 길들’면서 어른들과 똑같이 아무것도 안 하는 모습을 다룹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마샤’라는 열세 살 아이가 이 모두를 바꿉니다. 아버지한테서 제대로 사랑받지 못하고, 아버지하고도 멀리 떨어진 채 할머니 할아버지하고 지내는 동안 할머니한테서도 할아버지한테서도 사랑을 못 받으며 홀로 외롭던 마샤라는 열세 살 아이가 이 모든 굴레와 수렁과 사슬을 바꿉니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마샤라는 아이는 이 아이를 ‘길들이는 어른’이 없습니다. 아무도 마샤라는 아이를 눈여겨보지 않고, 마샤라는 아이와 이야기를 나누지 않습니다. 마샤라는 아이는 혼자서 생각하고 혼자서 놀고 혼자서 외로우며 혼자서 쓸쓸하다가는 혼자서 지냅니다. 온통 혼자로 있으면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는지’ 아무것도 모르던 마샤인데, 이 마샤 앞에 ‘가정폭력에 시달리며 무서움에 벌벌 떠는 아홉 살 일곱 살 어린 두 아이’가 나타납니다.


.. 지켜보는 것만으로는 그 사람들을 더 기쁘게 해 주지 못했다 … 내가 분명히 깨달은 것이 있었다. 율리아와 막스, 그 아이들에게 관심을 기울이는 사람이 여긴 아무도 없다는 것이다 … “자, 우리 이제부터 도망가기 놀이 할 거야.” … 나는 아빠가 즐거워할 때라고는 다큐멘터러 영화를 만드는 동료들과 전화할 때뿐이라는 이야기도 했다. 그리고 나를 위해선 아무런 즐거움도 남겨 둔 게 없다는 이야기도 했다 ..  (51, 70, 79, 139쪽)


  맞는 아이 아홉 살짜리 ‘율리아’는 맞는 동생 일곱 살짜리 ‘막스’를 지키고 싶습니다만, 어떻게 지켜야 할는지 모르고, 지킨다고 하더라도 어떻게 살아야 할는지 모릅니다. ‘마샤’라는 아이도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는지 모릅니다. 그렇지만, 어른들이 하는 바보스러운 짓을 그치게 해야 하는 줄 압니다. 마샤 아버지가 보여주는 터무니없는 짓도 못마땅하고, 율리아와 막스네 아버지가 보여주는 끔찍한 짓은 더더욱 못마땅합니다.


  이 아이들은 무엇을 해야 할까요. 이 아이들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맞고 자라는 아이들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사랑을 못 받으며 자라는 아이들은 앞으로 어떻게 ‘사랑해야’ 할까요.


  그냥저냥 학교만 다니면 될까요. 그냥저냥 시험공부 잘 해서 이름난 대학교에 들어가면 될까요. 그냥저냥 성적 잘 받아 회사원이나 공무원이 되어 돈을 많이 벌면 될까요. 그냥저냥 학교를 다니다가 회사원이 되다가 이렁저렁 나쁘지 않은 짝꿍을 만나 혼인을 하고 아이를 낳으면 될까요. 자, 그러면 그냥저냥 살다가 그냥저냥 낳은 아이는 어떻게 하지요? 그냥저냥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에 보내나요? 그냥저냥 학교에 넣어 ‘어버이인 내가 그냥저냥 학교에 다녔듯이’ 우리 아이도 그냥저냥 학교에 보내 그냥저냥 대학교에 집어넣고 그냥저냥 회사원이 되게 해서는 그냥저냥 혼인하고 그냥저냥 아이 낳도록 하면 될까요?


.. 나는 평소에 아이들을 때리거나 마구 밀치거나 던지는 사람이 아이들에게 어떤 선물을 할지, 선물을 많이 주는지, 아니면 특별히 적게 주는지 궁금해졌다 … “저는…… 모르겠어요. 왜…… 그러니까…… 할아버지, 왜 이렇게 저한테 친절한 거예요?” “글쎄다. 그건 바렌부르크에 있는 사람들 가운데 그 아이들을 도와주려고 했던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기 때문이지. 엘제 리프카를 빼면 말이다.” ..  (176, 228쪽)


  오로지 맞기만 하며 자라면 오로지 때리기만 하는 어른이 됩니다. 꼭 한 번이라도 따스하게 사랑받은 적이 있다면 이 작은 사랑이 아주 조그마한 씨앗으로 마음밭에 깃들어 언젠가 곱게 피어날 수 있습니다.


  전쟁무기만 만들고, 군대만 키우며, 경찰과 전경이 그득그득 넘치는 나라에는 평화가 없습니다. 그 어떤 사회운동과 정치운동과 교육운동으로도 이런 전쟁나라·군대나라·경찰나라를 바꾸지 못합니다. 아무런 운동도 독재정권·식민지정권·사대주의정권·자본주의정권을 갈아치우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나쁜 놈 물러가라’ 하고 외친들 나쁜 놈은 물러가지 않아요. 나쁜 놈은 더욱 크게 전쟁무기를 키우고 더욱 촘촘히 법그물을 짜며 더욱 무시무시하게 쳇바퀴 제도권 울타리를 쌓습니다.


  이 땅은 ‘운동’이 아닌 ‘삶’으로 바꿀 수 있습니다. 주먹다짐은 아무것도 못 바꿉니다. 보드랍게 부는 바람과 따스하게 비추는 햇볕과 촉촉히 내리는 비와 싱그러이 흐르는 냇물이 지구별을 푸르게 가꾸듯이, 따순 사랑과 푸른 꿈과 맑은 이야기와 고운 마음으로만 이 지구별 ‘나쁜 놈’을 말끔히 씻거나 바꿀 수 있습니다.


  풀바람을 마시고 흙내음을 노래할 때에 지구별이 달라집니다. 나무와 껴안고 숲에 작은 보금자리 마련할 때에 지구별이 거듭납니다. 사랑을 심어야 사랑이 자랍니다. 사랑을 안 심는데 사랑이 자랄 턱이 없습니다.


  생각해야지요. 독재정권 무너뜨리고 나서 무엇을 하고 싶나요? 그 다음을 생각해 본 적 있나요? 어떠한 사람이 나라를 다스려야 아름다운 삶이 될까요? 나라를 아름답게 다스리는 길이란 무엇인가요? 어떻게 할 때에 모든 사람이 즐겁고 사랑스러우며 아름다운 삶 누려, 사랑과 평화와 민주가 이 땅에 솔솔 피어날 수 있을까요?


  독재정권 무너뜨린 자리에 다른 독재자가 들어서는 모습을 제대로 읽을 줄 알아야 합니다. 바보스러운 정치꾼이나 얼간이를 몰아낸 자리에 새삼스럽게 다른 바보스러운 정치꾼이나 얼간이가 들어서는 흐름을 제대로 읽을 줄 알아야 합니다.


  폭력이 왜 사라지지 않을까요. 폭력만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폭력이 왜 그치지 않을까요. 사랑을 생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율리아와 막스네 아버지는 사랑을 겪은 적도, 사랑을 느낀 적도, 사랑을 배운 적도 없으리라 느껴요. 마샤네 아버지 또한 사랑을 누린 적도, 사랑을 나눈 적도, 사랑을 이야기한 적도 없구나 싶어요. 《코끼리는 보이지 않아》에 나오는 마샤네 할아버지 한 사람만, 마지막에 이르러, 비로소 ‘아이(손녀)한테 물려줄 한 가지는 오직 사랑뿐이네’ 하고 깨닫습니다. 이리하여, 마샤와 마샤네 할아버지가 마을을 바꾸고 삶을 바꾸며 이야기를 바꾸는 사랑을 꽃피웁니다.


  무엇을 해야 할까요. 어디에서 무엇을 해야 할까요. 어디에서 누구와 무엇을 해야 할까요. 어디에서 누구와 언제 무엇을 해야 할까요. 정치폭력과 군대폭력과 학벌폭력과 경제폭력과 교육폭력과 문화폭력과 역사폭력과 외교폭력과 언론폭력과 서울폭력과 남자폭력과 어른폭력 따위가 수그러들지 않는 까닭을 생각합니다. 모두들 사랑을 모릅니다. 모두들 사랑을 한 번조차 생각하지 않습니다. 모두들 사랑은 등돌린 채 힘자랑과 돈자랑과 이름자랑에 파묻힙니다. 4346.11.9.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청소년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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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란드에서는 사람들이 어떤 삶을 일굴까. 봄에 여름에 가을에 겨울에, 철에 따라 저마다 어떤 이야기 길어올리면서 하루하루 사랑을 속삭일까. 우리들은 이 나라에서 어떤 삶을 일굴까. 한겨레는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봄과 여름과 가을과 겨울에, 철마다 어떤 삶 새삼스레 보듬으면서 하루하루 이야기꽃을 피울까. 핀란드 사람들 발자취는 《무민의 모험》을 읽으면 맑고 밝게 헤아릴 수 있다. 한겨레 사람들 발자취는 어디에서 맑고 밝게 헤아릴 만할까. 우리 이야기는, 우리 삶은, 우리 사랑은, 우리 노래는 무엇일까. 아름다운 삶을 아름다운 그림에 담아 아름다운 책으로 빚으면, 이 삶과 그림과 책은 오래오래 따사로운 햇살처럼 드리울 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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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민의 모험 1- 무민, 도적을 만나다
토베 얀손 지음, 김대중 옮김 / 새만화책 / 2013년 10월
12,000원 → 10,800원(10%할인) / 마일리지 600원(5% 적립)
2013년 11월 09일에 저장
절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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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밭에서 살아가는 사마귀

 


  사마귀는 풀밭에서 산다. 사마귀는 시멘트땅이나 아스팔트 찻길에서 살아가지 못한다. 메뚜기와 방아깨비도 풀밭에서 산다. 여치와 풀무치도 풀밭에서 산다. 무당벌레도 진드기도 풀밭에서 산다. 개미는 용하게 어디에서나 살아간다. 제아무리 높다란 아파트라 하더라도 개미는 씩씩하게 산다. 개미가 없다면 지구별은 어찌 될까. 아마 온통 쓰레기투성이가 되리라. 지렁이와 개미가 있기에 지구별이 깨끗하다. 이를테면, 과자부스러기 하나 떨구어 보아라. 개미가 말끔히 치운다. 파리나 모기 한 마리 잡아서 바닥에 두어 보아라. 개미가 낱낱이 뜯어 아주 깨끗하게 치운다. 올여름에 신나게 파리를 잡아 마당에 신나게 떨구었는데, 개미들이 어디에선가 볼볼볼 나타나서 파리 주검을 그야말로 낱낱이 뜯어서 저마다 한 짝씩 들고 어디론가 사라지더라.


  풀밭이 없으면 사마귀도 메뚜기도 방아깨비도 모조리 죽는다. 개미는 사람들이 버리는 쓰레기를 치우며 살겠지만, 사마귀도 메뚜기도 방아깨비도 없다면, 이러한 곳은 사람이 얼마나 살아갈 만한 데가 될까 궁금하다. 논과 밭에 풀벌레 하나 없다면, 이러한 논밭이 얼마나 사람 목숨을 살찌우는 곡식이나 푸성귀나 열매가 나올까 궁금하다.


  풀밭이 없고, 논밭에 풀벌레가 없다면, 새는 어떻게 될까. 풀벌레와 애벌레를 잡아먹을 수 없는 새는 어떻게 해야 할까. 새는 하는 수 없이 사람들 논밭에서 곡식과 열매를 쫄밖에 없다. 아무런 먹이(벌레)가 없는데 어쩌겠는가. 이러다가 새들은 농약바람에 모조리 목숨을 빼앗길 텐데, 농약바람 따라 들새와 멧새가 모조리 목숨을 빼앗기면 이때부터 어찌 될까. 아마, 사람들이 어찌 손을 쓸 수 없을 만큼 어마어마하게 나방이 깨어나 온 들과 마을 뒤덮을 테지.


  풀밭에서 사마귀 한 마리 살아갈 수 없다면, 풀밭에서 사마귀가 알을 낳을 수 없다면, 풀밭에서 어린 사마귀 꼬물꼬물 깨어나 바람에 날리며 이리저리 다 다른 삶터 찾아 떠날 수 없다면, 이 나라와 지구별은 어떻게 될까. 4346.11.9.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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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3-11-09 10:21   좋아요 0 | URL
아...사마귀가 초록색에서 갈색으로 몸빛이 달라진다는 걸 몰랐어요..^^;;
보호색인 줄 알았는데, 알을 낳을 때가 되면 그렇군요~
하긴 물고기들도 산란기가 되면, 어여쁜 산란색으로 바뀌지요~^^

파란놀 2013-11-09 10:49   좋아요 0 | URL
사마귀뿐 아니라 모든 풀벌레가
다 몸빛이 달라진답니다~ ^^;

보호색(지킴빛)이면서
또 저절로 바뀌는 자연 흐름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