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말을 죽이는 외마디 한자말
 (1309) 의롭다義- : 의롭게 살면

 

의롭게 살면 하느님이 나를 예뻐해 주실 것이다
《공선옥-공선옥의 마흔살 고백》(생활성서사,2009) 77쪽

 

  “주실 것이다” 같은 말투는 그대로 둘 만하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오늘날 사람들 누구나 ‘것’을 아무 데나 흔히 아무렇게나 쓰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것’을 넣는 말투는 우리 말투가 아니에요. 널리 쓴다고는 하더라도 곰곰이 돌아볼 대목입니다. “나를 예뻐해 주시리라”나 “나를 예뻐해 주시리라 본다”나 “나를 예뻐해 주실 테지”나 “나를 예뻐하시겠지”처럼 손볼 수 있어요. 아니, 예부터 이렇게 여러모로 다 다른 말투로 이야기를 펼쳤어요.


  외마디 한자말 ‘의(義)롭다’는 “정의를 위한 의기가 있다”를 뜻한다고 합니다. ‘정의(正義)’는 “진리에 맞는 올바른 도리”라 하고, ‘진리(眞理)’는 “참된 이치”라 하며, ‘의기(義氣)’는 “정의감에서 우러나오는 기개”라고 해요. 그러니까, ‘의롭다’는 ‘올바르다’나 ‘참되다’를 가리키는 한자말이라 할 만합니다.

 

 의롭게 살면
→ 올바로 살면
→ 참되게 살면
→ 착하게 살면
→ 바르게 살면
 …

 

  곰곰이 생각해 봅니다. 스스로 올바르게 살면 하느님이 예뻐해 주십니다. 무엇보다 올바르게 살아가는 내 모습을 바라보는 나 스스로 즐겁습니다. 그러니까, 올바로 살면 스스로 예쁜 사람으로 거듭나요. 나를 예뻐하기에 나 스스로 예쁜 사람으로 다시 태어난달 수 있어요. 스스로 올바르게 말하면서 올바른 넋이 되고 예쁜 넋이 되며, 이윽고 예쁜 말이 됩니다. 4346.12.22.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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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바로 살면 하느님이 나를 예뻐해 주시리라

 

(최종규 . 2013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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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5. 문득 서는 군내버스

 


  우리 마을 앞으로는 군내버스가 하루에 여덟 대 지나간다. 이보다 드물게 지나가는 마을이 많고, 이보다 자주 지나가는 마을도 많다. 두 시간에 한 대 지나가는 꼴이다. 읍내마실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갈 적에 버스때를 맞추기 쉽지 않다. 그래서, 우리 마을에서 1킬로미터쯤 떨어진 봉서마을에서 내려 십오 분쯤 걸어서 들어가곤 한다. 식구들과 함께 먹을 여러 가지를 큰 가방에 잔뜩 담고 천천히 걷는다. 무거운 가방을 짊어지느라 겨울에도 땀이 흐른다. 그런데 군내버스가 저기 가다가 문득 선다. 왜 설까. 십오 초쯤 있자니 할매 한 분 버스에서 내린다. 그러고는 군내버스는 다시 달린다. 아하, 할매 한 분이 버스에서 꾸벅꾸벅 졸다가 그만 내릴 곳을 놓치셨구나. 군내버스 일꾼이 할매를 저쪽에서 내려 주었구나. 그래도 할매가 용케 잠에서 깨었으니 저쯤에서 내리실 수 있었지. 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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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딱지나물꽃 책읽기

 


  겨울바람 아직 수그러들지 않은 이월로 접어든 때부터 밭둑과 들판에 울긋불긋 피어나는 꽃이 있다. 이 꽃을 두고 우리 식물학자는 ‘광대나물’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아직 ‘학명’이 없던 때, 일본 식물학자가 이름을 먼저 붙이기 앞서 한국 식물학자가 ‘광대 옷차림이 울긋불긋’하다고 떠올리면서 붙인 이름이다.


  그런데, 학자가 식물학에 따라 풀이름을 붙이기 앞서, 먼먼 옛날부터 시골에서 흙을 만지며 풀을 먹던 사람들은 풀마다 이름을 다 붙여 놓았다. 식물학자는 시골사람이 붙인 풀이름을 학명, 이른바 학술이름으로는 안 쓰기 일쑤인데, 시골사람은 식물학자가 붙인 이름이 이러거나 저러거나 대수롭게 여기지 않는다. 한의사가 어려운 한문으로 이름을 붙이거나 말거나 대단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풀은 풀이지 ‘草’도 ‘野草’도 ‘雜草’도 아니며, ‘植物’ 또한 아니다. 풀이 맺은 꽃은 풀꽃일 뿐 ‘野生花’일 수 없다.


  코딱지나물은 코딱지나물이다. 코딱지나물이 맺는 꽃은 코딱지나물꽃이다. 시골마을에 깃들어 시골사람들 시골말을 듣기 앞서까지, 나도 ‘광대나물’이라는 이름만 듣고 알았지만, 시골사람들 누구나 코딱지나물이라고 말하는데, 나도 시골에서 시골사람으로 살면서 광대나물이라는 학술이름을 쓸 까닭이 없다고 느낀다.


  찬바람 씽씽 부는 섣달 한복판에도 씩씩하게 잎사귀 내놓고 줄기 올리며 꽃을 피우는 이 앙증맞고 사랑스러운 들꽃은, 시골내음 그득한 이름으로 부르며 톡 따서 입에 넣어 야금야금 씹으면 봄내음 물씬 퍼진다. 손끝으로 살살 쓰다듬으며 생각을 기울인다. 다른 고장 다른 고을에서는 어떤 이름을 쓸까. 내가 이 풀과 풀꽃을 바라보며 새롭게 이름을 붙인다면 어떤 이름을 붙일 수 있을까. 매서운 바람과 따순 볕 사이에서 흐드러지는 이 상냥한 들풀과 들꽃한테는 어떤 이름이 가장 곱게 어울릴까. 4346.12.22.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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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3-12-22 18:07   좋아요 0 | URL
정말 씩씩하고 예쁜 '코딱지나물꽃'이네요~
그런데 꽃송이가 푸른 이파리들(?) 속에서 되게 신기하게
피어 나는군요~

파란놀 2013-12-22 19:45   좋아요 0 | URL
네, 그런 모습이 꼭 코딱지 같다고 할까요 ^^;;;
저렇게 불쑥 튀어나와서 추욱 처지는 듯한 모습이니까요~
 

사진과 함께 22. 곁에서 맞이하는 빛

 


  아이들과 밥을 먹는 자리에서 사진을 곧잘 찍는다. 아침저녁으로 밥상을 마주하면서, 아니 아침저녁으로 밥상을 차리면서 으레 사진을 몇 장씩 찍는다. 아이들 먹이려고 차린 밥이 대견하기에 사진을 찍지는 않고, 아이들과 함께 먹으려고 차리는 밥상에 감도는 빛, 이를테면 밥빛이 날마다 새삼스레 재미있다고 느껴 사진을 찍는다.


  밥빛을 흑백사진으로 찍을 수도 있다. 아마, 흑백사진으로 찍는 밥빛은 무척 새로우리라 본다. 그런데, 밥차림을 흑백사진으로 찍는 사람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옷차림을 사진으로 찍을 적에도 흑백사진으로 찍는 사람은 아주 드물고, 밥차림도, 또 집안 살림살이도 흑백사진으로 찍는 사람은 무척 드물다. 왜냐하면, 밥차림이나 옷차림이나 집살림 모두 온갖 빛깔이 곱게 어우러지면서 정갈하고 환하기 때문이다.


  가난한 나라로 찾아가서 다큐사진을 찍는다든지, 어떤 이야기틀 하나를 세워 사진을 찍는다고 할 적에, 사람들은 으레 흑백사진을 더 좋아하거나 즐긴다. 무지개빛 사진으로 찍으면 어수선하다고들 말한다. 틀린 말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맞는 말은 아니라고 느낀다. 왜 그런가 하면, 어수선한 느낌은 사진을 찍는 사람 스스로 갈무리하거나 다스릴 노릇이다. 언뜻 보기에 어수선하구나 싶대서 흑백사진으로 찍으면 안 어수선하게 보일까? 여러모로 어수선하도록 흐트러진 빛깔 때문에 눈이 아프다면, 이 어수선하도록 흐트러진 빛깔을 다스려 아름다운 빛과 무늬로 보여주는 몫을 바로 사진가(또는 사진작가) 스스로 맡아야 하지 않을까?


  흑백사진에는 흑백사진 맛이 있다. 흑백사진다운 맛을 살리려고 흑백사진을 찍을 적에 비로소 맑게 빛난다. 검정과 하양이 얼크러진 고운 빛을 살리려는 흑백사진일 때에 바야흐로 아름다운 흑백사진이 태어난다.


  다시 말하자면, 무지개빛을 사진으로 담으려 할 적에도, 이 무지개빛을 곱게 살리면서 살가운 멋을 나누려는 넋이 있어야 한다. 이런 넋이 없이 이냥저냥 무지개빛 사진을 찍으면 너무 어수선하고 만다. 이런 넋이 없이 그냥저냥 흑백사진을 찍으면, 제빛이 제대로 살지 않는다.


  아이들과 밥을 먹는 자리에서 가끔 흑백사진으로 찍어 보기는 했는데, 영 맛과 멋이 살지 않는다고 느꼈다. 퍽 재미있기는 하지만, 잡아야 할 빛을 흘려 버리는 셈이라고 느끼곤 했다. 무지개빛이 아이들 손과 몸에 고이 깃드는데, 이 빛을 섣불리 지우거나 감추는구나 하고 느끼기도 했다.


  아이들은 저희가 좋아하는 빛깔이 눈부시거나 환한 옷을 즐겨입는다. 아이들 밥그릇은 알록달록 곱다. 아이들이 눈으로도 즐겁게 밥을 먹기를 바라면서 밥과 나물도 보드랍게 빛나도록 요모조모 헤아려 그릇과 접시를 놓는다. 그러니, 아이들 밥차림은 처음부터 무지개빛 사진으로 찍도록 엮은 셈이다. 눈빛 하나 손길 하나 따사로운 햇볕이 깃들어 여러 빛깔 골고루 퍼지기를 바라면서 차린 밥상이기에, 이 밥상을 자연빛 그대로 찍는다. 4346.12.22.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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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들보라 밥상맡에서

 


  누나 곁에 찰싹 달라붙어 앉은 산들보라, 밥상맡에서 숟가락도 젓가락도 쥐지 않는다. 그러면 무엇을 하나. 밥이랑 국이랑 반찬이랑 물끄러미 바라보기만 한다. 배고프지 않니? 그저 눈으로 쳐다보아도 배가 부르니? 누나 곁에 앉으니 먹지 않아도 배가 부르니? 국내음과 밥내음을 맡는 셈일까. 한참 물끄러미 산들보라를 바라보다가 숟가락에 밥을 퍼서 “자, 먹어야지.” 하니까 입을 쩍 벌린다. 옳거니, 먹여 달라는 뜻이로구나. 그런데 말야, 너 곧 네 살이 되잖니. 네 살이 되는 주제에 이렇게 떠멱이라고 해서야 쓰것느냐. 하기는, 네가 다섯 살이나 여섯 살 되면, 또 아홉 살이나 열 살이 되어서까지 먹여 달라 하지는 않을 테지. 귀여움 부리면서 먹여 달라고 하는 나이도 곧 지나가겠구나. 4346.12.22.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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