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신 창비아동문고 210
이경자 지음, 오오니시 미소노 그림, 박숙경 옮김 / 창비 / 200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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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책과 함께 살기 112

 


꽃내음 나누는 어깨동무
― 꽃신
 이경자 글
 오오니시 미소노 그림
 박숙경 옮김
 창비 펴냄, 2004.2.20.

 


  아이들과 살면서 아이들 얼굴을 읽습니다. 아이들과 살기 앞서는 아이들 얼굴을 제대로 못 읽었습니다. 아이들이 졸린지 배고픈지 심심한지 아픈지 즐거운지 하는 얼굴빛을 읽자면, 스스로 아이가 되든지 스스로 어버이 되어 아이를 돌보아야 하는구나 하고 깨닫습니다.


  졸린 아이는 억지로 재우지 못합니다. 아무리 졸리다 하더라도 잠자리에 억지로 누이면 다시 일어나려 합니다. 졸린 아이는 포근한 품으로 따사롭게 안아야 합니다. 또는 까르르 웃고 떠들도록 더 놀린 다음 살짝 쉬자는 느낌으로 품에 안으면 어느새 곯아떨어집니다.


  밤잠을 이루지 못하는 아이라면 곁에 함께 누워서 노래를 부릅니다. 밤잠을 미루려는 아이라면 옆에 나란히 누워서 노래를 부릅니다. 때로는 두 시간까지 노래를 불러야 합니다. 으레 삼십 분이나 한 시간쯤 노래를 부르곤 합니다. 날마다 잠자리에서 삼십 분이나 한 시간씩 노래를 부르자면 목이 쉰다거나 힘들다거나 여길는지 모르나, 하루에 삼십 분이나 한 시간씩 부르는 노래는 대수롭지 않아요. 잠자리뿐 아니라 낮에도 언제나 흥얼흥얼 노래를 부르니까요.


  아이 둘을 왼쪽과 오른쪽에 누이고 두 손으로 아이들 이마를 어루만집니다. 입으로는 노래를 부릅니다. 이 노래는 아이들 마음으로 살며시 스며들겠지요. 이 노래는 아이들뿐 아니라 어버이인 내 가슴으로 찬찬히 젖어들겠지요. 아이들이 즐겁게 잠들도록 돕는 노래이면서, 어버이인 내 삶을 북돋우는 노래입니다. 가장 사랑스럽고 아름다운 노래를 골라서 부릅니다. 가장 즐거우면서 밝은 노래를 가려서 부릅니다.


.. 고모네 집은 차로 30분. 위험하니까 자전거로는 절대 가지 말라는 말을 늘 듣지만 지금은 하나도 생각나지 않았다. 눈에 익은 버스 정류장을 차례차례 지나며 계속 페달을 밟았다. 뒤따라가던 버스는 이제 모습도 그림자도 안 보인다 … “어머니가 늘 편지를 써 놓고 가시나 봐?” “아니, 좀 늦어질 때만 그래. 엄마가 늦게 오시면 내가 쌀을 씻어야 해.” 모리노는 그렇게 말하면서 쌀 세 컵을 능숙하게 담더니 박박 씻었다 ..  (53, 66쪽)


  아이가 새로 태어나기에 집안이 이어집니다. 아이가 새로 자라기에 마을이 있습니다. 아이가 새로 크기에 나라가 있습니다. 아이 없는 집안이나 마을이나 나라는 없습니다. 아이는 집안에서나 마을에서나 나라에서나 보배입니다. 아이가 있기에 집안에서도 마을에서도 나라에서도 웃음꽃이 피어납니다.


  아이를 아끼지 않는다면 집안도 마을도 나라도 없습니다. 아이를 아낄 때에 비로소 살뜰한 집살림이요 알찬 마을살림이요 빛나는 나라살림입니다.


  그렇지만, 정작 아이 이야기가 제대로 불거지지 않습니다. 아이를 낳아 돌보는 삶은 ‘육아’나 ‘보육’이나 ‘교육’으로 바라볼 수 없습니다. 아이가 물려받을 삶과 사랑을 헤아릴 노릇입니다. 아이가 누릴 즐거움과 웃음과 꿈을 살필 노릇입니다. 나라에서 돈을 들여 유치원 삯이나 어린이집 삯을 대줄 일이 아니에요. 어버이가 스스로 아이를 맡아 돌볼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할 노릇입니다. 집집마다 다른 아이들이 저마다 즐겁게 자라면서 기쁘게 사랑받도록 보금자리를 가꿀 수 있어야 합니다.


  신문을 펼치면, 아이를 사랑하도록 돕는 기사가 없습니다. 아이한테 어떤 지식을 더 빨리 가르쳐서 더 빨리 입시기계로 만드느냐 하는 기사만 있습니다. 방송을 켜면, 아이를 사랑하도록 이끄는 풀그림이 없습니다. 아이한테 어떤 정보를 더 많이 집어넣어 더 많은 자격증이나 졸업장을 거머쥐도록 하느냐 하는 풀그림만 있습니다.


  입시기계나 시험기계가 되어야 하는 아이들이기에, 학교에서 따돌림이나 괴롭힘이 불거집니다. 중·고등학교뿐 아니라 초등학교에서도 입시와 시험에 목이 졸리는 아이들인 터라, 꿈과 사랑으로 동무를 아끼는 길을 찾지 못해요.


.. “미스즈, 이것 봐 봐. 네가 주운 거하고 똑같지? 이것이 많이 작기는 하지만, 모양이나 무늬가 닮았잖니?” 시즈는 약간 흥분한 상태였다. 손가방에서 고이 꺼낸 물건은 정말 미스즈가 주운 난쟁이 배의 작은 모형이었다. 두 짝이 분홍 색실로 이어져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이건 꽃신이라고 하는 거야.” … “이렇게 조그만 것이 바다를 건너왔네.” “응, 정말 바다를 건넜어.” ..  (62, 64쪽)


  학교는 무엇을 가르쳐야 할까요. 대학입시에 나오는 시험문제를 가르치면 되는 학교일까요? 교과서는 무엇을 담아야 할까요. 보편타당한 지식을 담아서 도시에서 회사원이나 공무원이 되어 살아갈 길을 담으면 교과서일까요?


  아이들은 사랑을 배워야 합니다. 어른들은 사랑을 가르쳐야 합니다. 학교는 사랑을 나누는 터전이어야 합니다. 대학교는 사랑을 가꾸고 북돋우는 길을 깊고 넓게 여는 몫을 맡아야 합니다. 교과서는 사랑으로 집을 짓고 밥을 지으며 옷을 짓는 빛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교사는 사랑으로 집을 짓고 밥을 지으며 옷을 짓는 즐거움을 웃음으로 노래할 수 있는 어른이어야 합니다.


.. 1919년 3월 1일 일본의 지배와 억압에 저항하여 일어난 독립운동에 앞장서다 쓰러진 17세의 소녀, 유관순. “…… 나는 내 나라를 되찾고 싶을 뿐. 그것이 죄가 됩니까!” 격렬한 외침이었다. 다 읽고 났을 때, 미스즈는 숨을 깊게 내쉬었다. 수많은 민중과 함께 독립 만세를 외치는 소녀의 늠름한 모습에 가슴이 뜨거워졌다. 하지만 미스즈는 그 책에 쓰인 이야기를 쉽게 믿을 수는 없었다 … “시즈, 우리끼리라도 지금부터 포스터를 그리지 않을래? 어른들은 자기 멋대로 말하지만, 우리 같은 아이들하고는 아무 상관도 없잖니. 아, 예 그렇습니까 하면서 꼬리를 내린다면 너무 억울해.” ..  (77, 100쪽)


  이경자 님이 쓴 청소년문학 《꽃신》(창비,2004)을 읽으며 생각합니다. 일본에서 살아가는 일본사람과 한국사람(조선사람) 이야기가 흐릅니다. 일본에서 태어났으니 일본사람이라 할 테고, 한국에서 태어났으면 한국사람이라 할 테지요. 그렇지만, 일본사람이 일본에서 살아가지 못하고, 한국사람이 한국에서 살아가지 못합니다. 일본에서 났으나 일본사람이 아니요, 한국에서 났어도 한국사람이 아닙니다.


  일본과 한국이라는 울타리는 무엇일까요. 한국과 베트남이라는 울타리는, 또 베트남과 프랑스라는 울타리는 무엇일까요. 학교에서 가르치는 역사는 무엇이고, 책에 적히는 역사는 어떤 이야기일까요.


  어른들은 스스로 어떤 삶을 일구면서 역사를 빚는가요. 어른들은 아이들한테 어떤 삶을 물려주면서 어떤 역사를 들려주려 하는가요.


.. 조선인의 피가 섞여 있다는 것이 그토록 숨겨야만 하는 일일까. “엄마, 엄마는 자신이 순수한 일본인이 아니라는 것이 싫어요?” 엄마는 깜짝 놀란 눈으로 미스즈를 보았다. “아버지도 그게 싫어요?” 미스즈가 다그치듯 묻자 아버지는 당황해서 천장을 올려다본 채로 꼼짝도 않는다. “너희들은 …… 어떠냐?” ..  (139쪽)


  꽃내음을 나눌 수 있는 어깨동무가 즐겁습니다. 꽃내음은 바다를 가로지릅니다. 꽃내음은 비무장지대를 훌훌 넘나듭니다. 꽃내음은 전라도와 경상도를 나누지 않습니다. 꽃내음은 부잣집과 가난한 집 사이를 스스럼없이 오갑니다.


  꽃씨는 한국에도 일본에도 똑같이 뿌리를 내립니다. 꽃빛은 한국에서도 일본에서도 똑같이 빛납니다. 한국땅에 드리운 ‘서양민들레’를 안 좋아하는 이가 있는데, 거꾸로 한국민들레가 서양으로 날아가면 그곳 사람은 ‘한국민들레’를 안 좋아해도 되는 셈이겠지요.


  배추가 언제부터 한국 푸성귀였나요. 감자와 고구마와 고추를 한국사람이 언제부터 먹었나요. 양파라는 이름을 잘 들여다봐요. ‘洋파’입니다. 소금에 절인 푸성귀를 한국사람이 먼 옛날부터 먹었다지만, 배추가 한국에 들어온 지 고작 즈믄 해쯤 되었을까요? 배추보다 갓이 먼저 한국에 들어왔을 텐데, 김치라는 먹을거리를 얼마나 한겨레 먹을거리로 삼을 만한지 아리송하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울타리를 따질 일이 없습니다. 어디에서 먼저 태어났는지 가릴 까닭이 없습니다. 함께 노래하면 되고, 함께 웃으면 됩니다. 서로 돕고 아끼면 돼요. 같이 춤추며 이야기잔치 벌이면 돼요.


  우리는 누구나 지구사람인걸요. 우리는 누구나 푸른 바람을 마시는 목숨인걸요. 우리는 누구나 별빛이고 꽃빛인걸요.


  꽃은 꽃씨한테 교과서나 역사를 물려주지 않아요. 오직 하나 사랑을 물려주어요. 나무는 나무씨한테 책이나 재산을 물려주지 않아요. 오직 하나 사랑을 물려줍니다. 사람이 사람한테 물려줄 한 가지라면 마땅히 사랑입니다. 어른이 아이한테 가르칠 한 가지라면 바로 사랑입니다.


  사랑이 있을 때에 사랑이 있기에, 이곳에는 전쟁도 미움도 다툼도 따돌림도 없습니다. 사랑이 자라는 곳에 사랑이 있으니, 이곳에는 계급도 신분도 종교도 국경도 없습니다.


  꽃신 하나가 바다를 건넜어요. 꽃신 하나가 아이들 사이에 징검다리를 놓아요. 꽃신 하나가 아이와 어른 사이에 깃들 사랑을 이야기해요. 4347.3.24.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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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쪽지 2014.3.16.
 : 나들이에 앞서 나들이

 


- 월요일부터 먼 나들이를 간다. 지난 3월 6일에 서울에서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책잔치가 있어 퍽 오래 바깥마실을 했다. 곁님은 람타공부를 하러 미리 경기도 용인으로 갔다가 일산으로 갔고, 나는 아이들과 시골집에서 놀다가 5일에 인천에 있는 형네 찾아갔다. 책잔치를 마친 뒤 일산으로 가서 사흘 묵고 시골로 돌아왔으니 나흘 동안 바깥잠을 잔 셈이다. 이렇게 바깥마실을 하면 달포 즈음 시골에서 쉬곤 했는데, 며칠 쉬지 못한 채 다시 바깥마실을 나가야 한다. 곁님이 이동안 아이들과 밥 잘 먹고 잘 지낼까. 걱정하면 걱정대로 이루어지니 그리 걱정하지는 않으나, 집에 찬거리가 떨어지지 않도록 면소재지에 나들이를 다녀오기로 한다. 내 자전거에서 샛자전거를 뗀다. 수레만 붙인다. 작은아이는 새근새근 낮잠을 잔다. 큰아이도 낮잠을 잘 법하지만 안 잔다. 큰아이한테 묻는다. “벼리야, 샛자전거를 떼었는데 수레에 앉아서 갈래?” “응.”

 

- 샛자전거를 붙인 뒤 수레는 언제나 동생 차지였다. 샛자전거를 붙이고 나서 큰아이는 수레에 한 차례인가 두 차례만 탔다. 어릴 적에 늘 혼자 차지하던 수레이지만, 이제는 동생이 수레를 홀로 누린다. 일곱 살 큰아이한테 수레는 어떤 느낌일까. 일곱 살이 된 오늘 큰아이한테 수레는 어떤 이야기가 깃든 동무일까.

 

- 수레를 탄 큰아이가 노래를 부른다. 되게 즐거운 듯하다. 동생을 떼어놓고 큰아이와 둘이 마실을 한 때가 언제더라. 아예 없지는 않지만 퍽 드물다. 언제나 두 아이를 홀로 건사하며 살림을 꾸리니, 늘 두 아이와 함께 다닌다. 나나 곁님이 으레 동생을 많이 챙겨야 하니 큰아이가 서운해 할 법한데, 큰아이는 서운한 티를 드러내지 않는다. 다만, 이렇게 큰아이 혼자 아버지나 어머니를 차지하며 어울릴 적에 무척 좋아하는 빛이 나타난다.

 

- 이것저것 저자를 본다. 큰아이는 “집에 가서 보라가 깨면 같이 먹을래.” 하면서 과자 몇 점을 챙긴다. 과자를 고를 적에 늘 한 아이에 하나만 고르도록 하는데, 동생이 같이 못 왔대서 동생 몫을 챙긴다. 네 이 귀여운 마음은 어디에서 싹텄을까. 네 이 예쁜 생각은 어디에서 태어났을까. 네 가슴에서 싹텄겠지. 네 숨결에서 태어났겠지.

 

- 샛자전거를 달지 않고 수레만 붙인 자전거가 가볍다. 작은아이를 태우지 않고 큰아이만 태운 자전거가 날듯이 달린다. 샛자전거랑 작은아이가 없을 뿐인데 자전거가 이렇게 가볍다니. 수레마저 떼고 나 혼자 자전거를 달린다면 얼마나 가벼울까.

 

- 나들이에 앞서 나들이를 마친다. 다음 한 주 동안 아이들과 자전거 나들이를 못 다니겠구나 하고 생각하니, 이렇게 큰아이와 둘이서 자전거 나들이를 참 잘 했구나 싶다. 오늘 드디어 반소매에 반바지만 입고 자전거를 달렸다. 바야흐로 봄자전거이다.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자전거와 함께 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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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밥 먹자 64. 2014.3.23.

 


  우리 집 쑥이 뜯을 만큼 올라왔다. 드디어 뜯는다. 얘들아, 지난 한 해 우리 네 식구한테 고마운 밥이 되었는데, 올해에도 새롭게 고마운 밥이 되어 주렴. 보들보들한 갓잎을 뜯고 까슬까슬한 갈퀴덩굴을 꺾는다. 갓잎과 갈퀴덩굴은 송송 썰어서 네모난 접시에 담는다. 쑥은 국을 다 끓이고 나서 된장을 푼 뒤 살그마니 얹는다. 국뚜껑을 닫고 아이들을 부른다. 다른 먹을거리를 밥상에 올린 뒤 맨 나중에 쑥국을 올린다. 쑥내음이 나니? 쑥맛이 나니? 일곱 살 큰아이가 “이거 예전에 먹던 거야.” 하고 말한다. 지난해에 먹은 쑥국이 떠오르는구나. 오늘부터 우리 집 국은 날마다 쑥국이다. 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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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밥 먹자 63. 2014.3.13.

 


  얘들아, 우리 어떤 밥을 먹을까? 맛난 밥을 먹어야겠지? 너희한테는 어떤 밥이 맛이 있니? 너희는 어떤 밥을 몸에 넣어 즐겁게 뛰놀 기운을 얻고 싶니? 오늘은 네 아버지가 좋아하는 대로 이렇게 밥상을 꾸리는데, 너희가 앞으로 스스로 밥상을 차릴 즈음에는 어떤 밥을 하나둘 올리며 빙그레 웃음을 지을 수 있을까? 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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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과 함께 37. 빛과 볕과 살

 


  생각을 하면서 살아가면 말을 틀리거나 잘못 쓰는 일이 없습니다. 생각을 안 하면서 살아갈 때에는 말을 틀리거나 잘못 쓰곤 합니다. 생각을 하면서 살아가면 노래를 즐기거나 꽃피웁니다. 생각을 안 하면서 살아가면 노래가 샘솟는 길을 못 느끼기 마련입니다.


  사진을 찍으면서 생각을 합니다. 사진이 즐겁기를 바라니 즐거운 생각을 합니다. 사진을 찍으면서 생각을 기울입니다. 사진이 사랑스러운 빛이 흐르기를 꿈꾸니 사랑스러운 생각을 합니다.


  햇빛을 보고 햇볕을 쬐며 햇살을 맞이합니다. 햇빛이 드리울 적에 빛깔을 살피고, 햇볕이 내리쬘 적에 따스한 기운을 느끼며, 햇살이 퍼질 적에 기쁜 웃음이 터져나옵니다. 해님이 베푸는 세 가지를 곰곰이 받아들입니다. 빛이 있어 서로서로 알아봅니다. 볕이 있어 함께 어깨동무합니다. 살이 있어 다 같이 노래합니다.


  사진찍기나 그림그리기에서 흔히 ‘황금분할’을 말합니다. 차분하면서 한결 깊거나 넉넉한 느낌을 보여준다고 하는 비율이 황금분할이라고 합니다. ‘좋은 틀(구도)’이라고 하는 만큼, 이 비율을 잘 맞추거나 살핀다면 사진이 여러모로 보기 좋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면, 무엇을 찍든 황금분할을 잘 맞추어야 할는지 헤아릴 노릇입니다. 네모난 틀을 들여다보면서 황금분할을 맞추는 데에 마음을 어느 만큼 기울여야 하는지 돌아볼 노릇입니다.


  나는 사진을 찍으며 황금분할은 생각하지 않습니다. 제대로 말하자면, 저는 황금분할을 배운 적이 없고, 황금분할이 어떤 비율인지 모릅니다. 나는 사진을 찍으면서 늘 ‘스스로 가장 즐겁고 따사로우며 사랑스러운’ 빛을 찾습니다.


  지구별을 비추는 해님이 천천히 움직입니다. 하루 스물네 시간 빛이 언제나 다릅니다. 빛깔이 늘 달라요. 해님이 움직이는 결에 따라 빛이 달라질 뿐 아니라, 따스한 기운인 볕이 달라집니다. 빛과 볕이 달라질 뿐 아니라, 살 또한 달라져요.


  스스로 마음속으로 그린 이야기를 찍는 사진입니다. 스스로 마음속으로 그린 이야기가 없으면 사진을 못 찍습니다. 사진은 단추질이나 기계질이 아닙니다. 단추질이나 기계질이라면, 기계를 시켜도 사진을 찍어요. 사진은 단추질이나 기계질이 아닌 만큼, 사람들이 저마다 스스로 마음을 기울여 이야기를 빚을 때에 태어납니다. 이야기가 있을 때에 사진입니다. 곧, 이야기를 담을 때에는 사진이요, 이야기가 없이 황금분할을 했대서 사진이 되지 않습니다. 이야기를 담으면, 흔들리거나 조리개를 어설피 맞추었어도 사진입니다. 이야기를 담으면, 빗나가거나 기울었어도 사진입니다. 눈으로 보기에 차분하거나 그윽하대서 사진이 되지 않습니다. 눈으로 보기에 차분하거나 그윽하다면 ‘구경거리’로 좋다는 뜻입니다. 사진이 된다는 말이 아닙니다.


  황금분할이라는 비율은 이러한 비율을 좋아하는 어떤 사람이 만든 틀 가운데 하나일 뿐입니다. 사진을 찍는 사람이 맞출 비율이 아니고, 사진을 읽는 사람이 살필 비율이 아닙니다. 비율을 말하자면 순금분할이라든지 은분할이라든지 봄꽃분할이라든지 달빛분할도 있어요. 사진찍기에서는 사진을 헤아릴 뿐, 다른 것은 살필 일이 없습니다. 그러면, 왜 빛과 볕과 살을 헤아리느냐 하고 묻겠지요. 왜냐하면, 빛과 볕과 살이 있어야 삶이 있거든요. 해님이 지구별을 아름답게 비출 적에 지구별에 아름다운 삶이 있어요. 해님이 지구별을 사랑스레 비출 적에 지구별에 사랑스러운 삶이 있어요. 저녁으로 넘어가는 볕살이 드리우는 평상에서 아이들과 라면 한 그릇 먹으면서 따사로운 빛을 느꼈기에 사진 한 장 고맙게 얻습니다. 4347.3.24.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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